아 제발 진짜 급함 역사 관련된거임

아 제발 진짜 급함 역사 관련된거임

작성일 2022.10.23댓글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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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대첩 명량 해전 노량 해전 

이거 조사해서 ppt만들어야함 ㅜㅜㅜ 제발 자세하면서도 중요한 부분만 짚어주셈… 나무위키나 위키백과에 있는거 그대로 가져오면 신고함 ㄹㅇ 개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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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대첩

임진왜란 때 한산섬 앞바다에서 경상우수사 원균(元均),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 및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이 거느린 조선수군이 왜수군의 주력대를 무찌른 해전이다.

1592년(선조 25) 4월 왜군은 수륙병진계획으로 조선을 침범하였다. 그러나 그들 수군이 남해ㆍ서해로 침범하던 중 옥포(玉浦)ㆍ당포(唐浦)ㆍ당항포(唐項浦)ㆍ율포(栗浦) 등지에서 연전연패하자, 수군의 유능한 장수였던 와키사카(脇坂安治)는 정예병력을 증강하여 73척을 이끌고 거제도 등지로 침범하고, 역시 수군장수였던 구키(九鬼嘉隆)는 42척을 거느리고 뒤를 따랐다.

왜 수군들의 동향을 탐지한 이순신은 7월 5일 이억기와 함께 전라좌우도의 전선 48척을 본영 앞바다에 집결시켜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7월 6일 본영을 출발, 노량(露梁: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에 이르러 원균이 거느리고 온 7척과 합세하니 3도의 전선은 모두 55척이었다.

이어 7일 저녁 당포 앞바다에 이르러 목동 김천손 (金千孫)으로부터 왜선 70여척이 견내량(見乃梁:거제군 사등면 덕호리)에 머무르고 있다는 말을 듣고 8일 한산섬 앞바다에 이르러 이를 확인하였다. 그때 왜수군의 세력은 대선 36척, 중선 24척, 소선 13척 등 모두 73척으로서 지휘관은 수군장수 와키자카였다.

이순신은 견내량 주변이 좁고 암초가 많아서 판옥전선(板屋戰船)의 활동이 자유롭지 못함을 확인하고 전략상 한산섬 앞바다로 유인하여 격멸할 계획을 세웠다.

먼저 판옥전선 5, 6척으로 하여금 왜수군을 공격하게 하여 반격해오면 한산섬으로 물러나면서 유인하도록 하자, 왜수군들은 그때까지의 패전을 보복하려는 듯 의기양양하게 공격하여왔다.

전기(戰機)를 포착한 이순신은 모든 전선으로 하여금 학익진(鶴翼陣)을 형성하여 공격하게 하자, 여러 장령(將領)과 군사들은 지자ㆍ현자총통(地字ㆍ玄字銃筒) 등 각종 총통을 쏘면서 돌진, 중위장 권준(權俊)이 층각대선(層閣大船) 1척을 나포하는 것을 비롯하여 47척을 분파(焚破)하고 12척을 나포하였다.

왜수군장 와키자카는 뒤에서 독전하다가 전세가 불리하여지자, 패잔선 14척을 이끌고 김해 쪽으로 도주함으로써 이 해전은 조선수군의 큰 승리로 막을 내렸다. 격전중 조선수군의 사상자는 있었으나 전선의 손실은 전혀 없었으며, 400여명의 왜병사들은 당황하여 한산섬으로 도주하였다가 뒷날 겨우 탈출하였다.

이 해전을 진주성대첩ㆍ행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부른다.

이 대첩은 왜수군의 주력을 거의 격파함으로써 그들의 수륙병진계획을 좌절시켰고, 그때까지 육지에서의 패전으로 사기가 저하된 조선군에게 승리의 용기를 주었으며, 조선수군이 남해안일대의 제해권을 확보함으로써 이미 상륙한 적군에게 위협을 주어 그때까지 매우 불리하였던 임진왜란의 전국을 유리하게 전환시킬 수 있었다는 데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외국의 사가(史家) 헐버트(Hulbert, H.G.)도 "이 해전은 조선의 살라미스(Salamis)해전이라 할 수 있으며, 이 해전이야말로 도요토미(豊臣秀吉)의 조선침략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라고 감탄하였다.

이 해전과 하루 뒤에 있었던 안골포(安骨浦:창원시 진해구 안골동)해전을 승리로 이끈 전공으로 이순신은 정헌대부(正憲大夫, 정2품), 이억기ㆍ원균은 가의대부(嘉義大夫, 종2품)의 관계를 받았다.

명량해전

1597년(선조 30) 9월 16일 이순신(李舜臣)이 12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수군을 명량(울돌목)에서 대파한 해전이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원균(元均)이 거느린 조선수군은 대부분 패하고 말았으며, 그해 7월 22일 유성룡(柳成龍) 등의 간곡한 건의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은 휘하군사들의 전열을 재정비하였으나 남아 있던 전선(戰船)은 겨우 12척에 지나지 않았다.

이때 일본수군은 한산섬을 지나 남해안 일대에 침범하고 있었으며, 육군의 육상진출과 더불어 서해로 진출하려 하였다. 따라서 이순신은 서해 진출의 물목이 되는 명량을 지키기 위하여 이진(利津)ㆍ어란포(於蘭浦) 등지를 거쳐 8월 29일 벽파진(碧波津: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으로 이동하였다.

일본수군은 벽파진에 있는 조선수군에 여러 차례 야간 기습작전을 전개하였으나, 우리측의 철저한 경계망에 걸려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적정(敵情)을 탐지한 이순신은 명량을 등뒤에 두고 싸우는 것이 매우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9월 15일 조선수군을 우수영(右水營:해남군 문내면)으로 옮겼다. 다음날인 16일 이른 아침 일본수군은 명량으로 진입하고 있었으며, 망군(望軍)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순신은 출전령을 내리고 최선두에 서서 명량으로 향하였다. 그때 명량의 조류는 거의 정조시기(停潮時期)였으며 일본수군의 전선은 133척으로 확인되었다.명랑해전도에 있는 해군사관학교 모습

명랑해전도 - 해군사관학교

이순신은 명량으로 들어서면서 일자진(一字陣)을 형성하여 일본수군의 수로통과를 저지하려 하자, 일대 혼전이 전개되고 조류는 서서히 남동류(南東流)로 전류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본수군은 이순신이 타고 있는 전선을 포위하려는 기세였다. 매우 위급한 순간, 이순신은 뒤에 처져 있는 거제현령 안위(安衛)와 중군(中軍) 김응함(金應緘) 등을 불러들여 적진으로 돌진하게 하자, 전투는 절정에 이르렀다.

또한, 전류하기 시작한 조류는 소수의 전선이 활동하는 조선수군에 비하여 많은 전선을 거느리고 있는 왜군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였으며, 협수로에서의 불규칙한 조류분포로 인하여 서로의 진형(陣形)과 대오(隊伍)가 붕괴되고 있었다.

격전중 이순신의 전선에 동승하였던 투항왜인 준사(俊沙)가 적선을 내려다보며 "꽃무늬 옷을 입은 저 자가 바로 안골포해전(安骨浦海戰) 때의 일본의 수군장수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通總)다."라고 외치므로 이순신은 김석손(金石孫)을 시켜 그를 끌어올린 뒤 목을 베어 높이 매달자, 이를 본 일본수군은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었다. 이에 전기(戰機)를 잡은 조선수군은 현자총통(玄字銃筒)과 각종 화전(火箭)을 쏘면서 맹렬한 공격을 가하여 녹도만호 송여종과 평산포대장 정응두(丁應斗) 등 여러 장령들이 적선 31척을 분파하자 일본수군은 퇴주하고 말았다.

이 해전은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수군이 10배 이상의 적을 맞아 협수로의 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그들의 서해진출을 차단함으로써 정유재란의 대세를 조선군에게 유리하게 전개할 수 있게 하였다.

한편, 열세한 병력을 지휘한 이순신은 위장전술로써 피난선 100여척을 전선으로 위장하여 뒤에서 성원하게 하였다는 것과, 철쇄(鐵鎖)를 협수로에 깔아서 적선을 전복시켰다는 기록도 일부 전해오고 있다.

노량해전

1598년(선조 31) 11월 19일 이순신(李舜臣)과 진린(陳麟)이 이끄는 조ㆍ명연합함대가 노량 앞바다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이다. 임진왜란중 바다에서의 마지막 싸움이며, 이순신이 승리와 함께 전사한 해전이다.

1597년 재침한 왜군은 그해 9월 명량해전(鳴梁海戰)에서 패배한 데 뒤이어 육전에서도 계속 고전하던 중 다음해 8월 도요토미(豊臣秀吉)가 병사하자, 순천 등지로 집결하면서 철수작전을 서둘렀다.

이 소식을 접한 이순신은 명나라 수군도독(水軍都督) 진린과 함께 1598년 9월 고금도 수군진영을 떠나 노량근해에 이르렀다. 명나라 육군장 유정과 수륙합동작전을 펴 왜교(倭橋)에 진을 치고 있는 왜군 고니시(小西行長)의 부대를 섬멸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고니시는 수륙양면으로 위협을 받게 되어 진린에게 뇌물을 바치고, 퇴로를 열어줄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진린은 고니시가 마지막으로 애원하는 통신선 1척을 빠져나가게 하고, 이순신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고니시는 통신선으로 사천(泗川) 등지의 시마쓰(島津義弘)와 연락하여 남해ㆍ부산 등지에 있는 그들 수군의 구원을 받아 조ㆍ명연합수군을 협격하면서 퇴각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러한 전략을 잘 알고 있는 이순신은 진린을 꾸짖고 함께 진형을 재정비하여 왜군을 맞아 격멸하기로 하였다.

11월 18일 밤 이순신이 예견한 대로 노량수로와 왜교 등지에는 500여척의 왜선이 집결하여 협격할 위세를 보였다. 200여척의 조ㆍ명연합수군을 거느린 이순신은 전투태세에 들어가 19일 새벽, 싸움은 막바지에 이르고 이순신과 진린은 서로 위급함을 구하면서 독전하자 200여 척의 왜수군이 분파(焚破)되고 패잔선 50여척이 겨우 달아났다. 이순신은 관음포(觀音浦)로 마지막 도주하는 왜군을 추격하던 중 총환을 맞고 쓰러지자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戰方急愼勿言我死)"는 세계사상 길이 빛나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이 해전에서 명나라장수 등자룡(鄧子龍)과 가리포첨사(加里浦僉使) 이영남(李英男), 낙안군수(樂安郡守) 방덕룡(方德龍) 등이 전사하였다. 한편, 순천 왜교에서 봉쇄당하고 있던 고니시의 군사들은 남해도 남쪽을 지나 퇴각하여 시마쓰의 군과 함께 부산에 집결, 철퇴하였으며 노량해전을 끝으로 정유재란은 막을 내렸다.

출처 : https://www.gyeongnam.go.kr/index.gyeong?menuCd=DOM_000009301002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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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확정 부탁드립니다

일제강점기 역사 수행평가 급함 빨리빨리

제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행평가를 쳤는데 역사적 사실을... ㅜㅜㅜ 진짜 급해요 제발 알려주세요 일제가... 정치에 관련해서 이야기한 것이고, 우리나라 국민이 일제에...

진짜 급함 .... 제발 해주세요 ㅜㅜ...

... 사건과 관련하여 문의할 사항이 있으니 000-0000번으로 문의 바랍니다 아이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제발 지식인님들 힘을보여주셈 ㅜ 1. 본인이...

정말고민입니다 급함진짜제발루여

... 제가완전 영어 초짜라서..진짜완전ㅠㅠ 가능할까요?... 하지만 다 알 필요는 없구요. 그렇다고 지금 문법을... 이중 문법 관련 문제가 2문제지요. 그니까 문법은 문법지문을...

진짜알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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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가야 되는대요!! 아진짜엄창급함

... 학생부선생님이라엄청무섭거든요 아진짜 맨날교문에서... 아오 제발요 ㅠㅠ... 반성문이라도정말제대로써야되요... 그에 관련된 다른 잘못도 함께 반성하고, 이런식으로...

11] 역사관련 내용. 진짜급함 ㅠㅠ

... ㅠㅠㅠ급해요 제발!!!!!!!!!!!1111 역사에 있어 인물의 가치를 매길 순 없죠 우리 선조... '훈민정음'으로 우리 글을 만들어 냈다는건 엄청난 업적이라는 걸 지금 손쉽게 한글을...

(급함)똥 관련 제발 답변좀ㅠㅠㅠ

... ㅠㅠㅠㅠ 아진짜 개심각... 똥먹는다고 (끊인거) 병에 걸리거나 그렀진안져? 아 제발 답변해주세요...ㅠㅠㅠ 진지한 답변 원합니다.부탁합니다. ..질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