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습니다.. 어쩌죠?

외롭습니다.. 어쩌죠?

작성일 2007.03.06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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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제가 살아온 인생을 적을까합니다.

과거 에서 지금 내모습까지.. 끝까지 읽어주세요.답변도 달아주세요 태클도 괜찮습니다. 제얘기를 들어주세요...;

 

저는 어릴때 형과 컷습니다. 엄마아빠는 기억에서 없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어릴때입니다.

제가 기억나는 가장 어린시적 추억은 포항입니다.

어릴때 우리집은 굉장히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철없던 형과나는 그런걸 모르고 순진한건지 현실에대한 도피감인지 모르겠지만 여느집 아니처럼 컷습니다.

어릴때 우리가 알고있던 어머니는 가짜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릴적 아버지에대해서 고모나 사촌누나등 큰엄마등 물어보면 이와같은 대답이었습니다. 니 아빠는 길거리에 노상방요를해서 경찰이 잡아갔다면서.. 전 그걸 철썩같이 믿고 바보같이 거리에 오줌한번 싸지 않았습니다. ㅋ

엄마랑 살때 엄마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안사주시던 엄마 매몰찻습니다

다른집애들은 자전거에 새옷에 맛있는거 먹고 자랐지만 우린 잘 못먹고 못입고 못타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너무타고싶어서 도둑질 한것도 한번인가 있었는데 그날 엄마는 안꾸짖고 눈물만 흘리시더군요. 그렇게 살면서도 형과난 서로에게 전부였습니다 전 형을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것이고 형도 마찬가지일거에요.. 그정도로 우리 형제간은 사이가 좋습니다. 형을보면 눈물이납니다 서글프고 어릴적 생각이 자꾸나서.. 형도 나와 같겠죠?

제 고모는 그당시 저희집에서 10미터정도 밖에 안되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자주 놀러도 오고 놀러가고 그랬습니다. 여느날 처럼 아침에 눈을떳는데 고모가 와있더군요 엄마는 그당시 어제 아버지 면회를 갔었구요 엄마는 그날  '같이 갈래? 엄마혼자 갈까?'

라고했는데 형과나는 귀찮아서 안갔습니다. 혼자가따와 엄마~'

그다음날 아침에 눈뜨니 고모가 잇고 엄마는 없고 대충 불길햇습니다 그어린나이지만..

고모가 하시는말씀이.. 니 엄마 면회가다가 버스가 화물트럭이랑 충돌해서 식물인간이 됫다고 하시더라구요.

어린나이에 식물인간이 뭔지 몰랐던 우리는 의아했지만 안좋은것은 알았습니다.

그날부터 우리는 10미터 떨어진 고모집에서 얹혀 살았습니다.

하지만 설움이나 눈치밥이나 그런건 없었습니다. 고모와 고모부 누나 형 들이 우리를 측은하게 생각했는지 굉장히 잘해줬거든요 그땐 행복햇습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아빠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빌며 소원이었습니다.

고모집에서 1년정도 살고 있던 어느날 학교갔다오니 큰엄마가 와 있더군요 큰엄마가 우리를 데려가겠다고 했답니다. 우리는 그날 저희는 대구에있는 큰집으로 갔습니다. 큰집식구들은 큰아빠 큰엄마 큰사촌누나 작은사촌누나 사촌형 이렇게 있었죠

 

큰집에서는 완전 가시방석이었습니다. 큰누나는 우리를 너무나도 싫어했습니다. 이유는알수가 없었지만 찬바람이 쌩쌩 불었습니다. 큰엄마는 밥도 안주고 한겨울에.. 제가 마루에 잇는 카펫에 물을 쏟았다고 팬티바람으로 한밤비오는 겨울에 날 대문밖으로 내몰더군요

완전 그때를 생각하면 서럽습니다. 그렇게 추위에 떨고있는데 형이 몰래나와 두꺼운 잠바를 하나 주면서 춥지 조금만참아 그러더군요. 한손에는 빵을 주구요.

그자리에서 너무 억울하고 서러워서 울어버렸습니다 너무크게 우니까 들렷는지 큰엄마가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들어와서는 지근지근 밟히다 싶이 맞고 방으로 던졌습니다.  

그날부터 난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언젠가는 자살을 하겠다고. 그러던어느날 큰엄마가 과일장사를 하러나간사이 부얶으로 갔습니다 팔을걷고 어린나이에 식칼을 손목에 가따댓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그을수가 없더군요.. 내가 죽으면 형혼자 어떻게 살까 생각하니까 말이에요. 포기하고 또하고 포기하고 또하고 어린시절 그렇게 컷습니다. 그때나이가 10 살이었습니다.

그렇게 지옥같은 시간도 흘러서 초등학교 5학년되던해 8 . 15 날에 아빠가 가석방출소를 햇습니다.

아빠가왔다면서 형과나는 무척좋아했습니다.

 

그동안의 설움들을 아빠에게 모두 털어놓고 위로 받고도 싶었고 따뜻한 정도 그리웠습니다

아빠는 예상대로 참 좋은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도 그때당시 돈이없었지만 문구점에가서 공책도 사주고 그때 당시 처음나왔던 연필처럼 길다란 지우개도 사주면서 우리가 좋아하는거는 뭐든 해줄려고 노력하더군요.

그렇게 아빠는 우리에게 너무 잘해줫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우리는 아빠에게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됫습니다.

얘전에 우리를 키워줬던 엄마는 진짜 엄마가 아니라고.. 그 사람은 큰아빠의 첫 부인되시는 큰엄마라고.. 그 큰엄마가 큰사촌누나를 낳았다고.

근데 왜 우리를 키워주고 큰아빠는 왜 새큰엄마를 맞이햇냐고 물으니 큰아빠가 큰엄마를 너무 싫어했답니다. 그래서 맨날 때리고 하니까 큰엄마가 도망간거라고 하더군요 그소식을 듣고 아빠는 빵에서 우리를 보살펴달라는 편지를 큰엄마에게 전햇고 큰엄마는 고민끝에 우리를 걷었다고 하더군요.

너무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그 쇼킹한 상태에 빠져있는 우리에게 아빠가 또 한마디 했습니다. 내일 진짜 엄마를 보러가자고..

그날 형과나는 잠을 못잤습니다. 우리가 그동안알고있던 모든것은 거짓이기 때문이죠.

엄마가 있다니.. 진짜엄마가.. 그당시 가을동화가 유행타고있던때였는데 우리는 허황된 부자집 엄마를 떠올렷습니다.  바보같이 말이죠.

다음날 우리는 대구역으로 갔습니다 기다리고 있는데 생전처음보는 사람들이 우리를향해 걸어오고있었습니다. 엄마로 보이는 아줌마랑 아저씨랑 할아버지 이렇게 말이죠

듣고 보니 엄마와 외삼촌과 외할아버지였습니다.

우리는 그날부터 엄마 아빠가 있는 완전한 가족이 됬습니다.

나는 좋았습니다. 기뻣습니다. 엄마아빠가 있어서요.. 학교다닐때 엄마가 없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놀렸던것도 있고 햇었는데 엄마가 생겨서요 근데 형은 모르겠습니다 좋은지 안좋은지

그날 엄마를 만나고나서 우리는 처음 가족끼리 놀러라는것을 가봤습니다. 우방타워랜드에가서 완전 재밋게놀았습니다. ㅋ

그날 저녘 달새방인 우리집에 와서 엄마 아빠 형 나 이렇게 모여앉았습니다. 아빠는 그때부터 이상해 졌습니다. 갑자기 이러는 거였습니다.

이제부터 너희들을 강하게 키울거다 스파르타식 교육에 들어간다 면서 완전 빨갱이 공산빼이 같은 말을 하는겁니다. 그래서 그게 웃겨서 웃었더니 아빠가 다혈질인지 절 때리더군요 그날 아빠에게 처음 맞아보았습니다. 그날부터 우리들은 너무 고생하면서 컷습니다 이사를 밥먹듯이하고 아버지가 하시는일이 자꾸바껴서 우리들도 같이 도와야 했습니다 소를 좋아해서 소도 키웠고 아빠가 개도 좋아해서 개도 400마리정도 키우고 하면서 우리들은 현풍 마산 진해 광주 공주 등등 무쟈개 이사하면서 자랐습니다 아빠는 그렇게 다니면서도 우리에게는 너무 냉정하고 무서웟습니다 완전 살인적인아빠로 돌변해갔습니다 형은 맨날 맞았습니다 밧줄로 묶어놓코 때리고 시멘트 바닥에 머리박아를 시키고 발로차고 밟고 욕하고 얼굴에 춤뱉고 등등을 거의 매일 하다싶이 우리들에게 해댓습니다 형은 그렇게 살면서 16살이 됫고 집을 나갔습니다. 학교는 그떄당시 아빠가 그만두라고 햇습니다 대학나와봣자 필요없다면서 일찌감치 돈벌어라면서 말이죠 형이 집나가고 그동안 어리다고 나는 별로 안맞았지만 이제 불똥이 저한태 튀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중1이엇습니다 형과 나는 서로 떨어져있엇지만 어릴때부터 함께 자랐고 함께 힘든시기를 보냈기때문에 연락도 하고 보고싶어했습니다. 그러던어느날 형을 잡았다고 경찰서에서 신고가왔습니다 형은 그날 집에와서는 아무말이 없었습니다. 아빠는 잘못했다면서 다신 너희들 안때린다면서 그러더군요 다시는 생이별 하지말자면서 또다시 충격적인 얘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아빠어릴때 아빠의 아빠는 식중독으로 돌아가시고 아빠의 엄마는 그당시 농사일을 너무많이 하셔서 류마티스 관절렴에 걸려 손이 돌아가고 뼈가 뒤틀리면서 아빠와 고모 와 큰아버지를 키웠다고 하더군요 큰아빠는 아빠랑은 9살 차이가 나는데 큰아빠는 초졸만겨우하고 할머니와 같이 돈을 벌엇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아빠는 컷다고..

아빠는 그렇게 크면서도 공부는 악작같이 해서 반에서 매일 1등을했고 전교에서도 1등을 했다고 하더군요 아빠는 못믿겠냐면서 그당시 성적표를 다 보여주셧습니다 아빠는 중3때 고등학교 입문계를 못간것이 한이 됬다고 하더군요 그당시 공고를 가서 자신이 이렇게 못살게됫다면서요 그당시 공고는 지금 공고랑은 달라서 대학은 꿈도 못꾸고 바로 공장취업이었습니다 공장에 취업해봣자 몸만 고생하고 돈도 안벌리지 차라리 그때 입문계로 가서 대학을 가서 의대나 치대 약대 로 갔었으면 지금 이런고생은 일찌감치 없었겠다면서요. 우리에게 털어놓터군요 그당시 아무도 대학가라 인문계가라 그런소리를 해주는사람이 없어서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른채 담임선생이 시키는대로 공고로 갔답니다 의과대학가서 의사가 되라고 말해준사람이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텐데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는사람이 없었다는군요 그게 한이 되서 너희들에게 하나라도 더 말해주고 싶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싶고 공부해라공부해라 하는거라면서요.  아빠는 공고를 졸업해서 취업을했는데 그때 엄마를 만났습니다 엄마와 아빤 같이 사랑했고 우리형이 태어났습니다 . 비록 그때당시 돈은 없고 가난했지만 아빠는 행복했다고 했습니다 그때당시 아빠는 형을 4살때 공부를 시켜서 형은 그때당시 일어도하고 영어도 다할줄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우리를 가르치며 컷으면 우리가 지금 공부를 무지잘햇을탠데 하면서 한숨을 쉬더군요 그리고 이어지는 아빠의 말에서 형과나는 또다시 충격을 먹었습니다 아빠가 일하러 간사이 나를 임신한지 3주되던 엄마를 아빠와가장친했던 고등학교친가 성폭행했다고 하더군요 엄마는 그걸 말했고 그때당시아빠는 화는났지만 그친구를 용서햇고 다만 다시는 우리앞에 나타나지말라고 했답니다. 하지만 3개월후 또 범행을햇고 아빠는 그 친구를 집에있던 전기선줄로 목을 졸라 죽였다고 했습니다. 아빠는 너무무서워 도망을 다녔다고 했습니다. 엄마에게 한번씩들리면서 미안하다고만 말하고.. 결국 아빠는 자수를 했고 감빵에 가게됫습니다. 엄마는 혼자서 나를 낳앗고 엄마는 혼자 우리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고 ... 우리를 버리고 외가로 갔답니다 그때 아빠가 큰엄마에게 편지를 썻고 우리를 그때부터 키웠다고 했습니다.

너무 충격적이엇습니다. 이런 내막이 있을줄은 몰랐거든요 우리집에. 우리 아빠 우리엄마에게말이죠 형은 충격은 먹었지만 이네 정신을 차리고 아빠에게 죄송하다고 하고 우리는 또다시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아빠는 7일정도는 처음우리를 만났을때처럼 잘해줬습니다 하지만 계속된 생활압박감이컷던탓인지 아빠는 또다시 변해갔습니다

또다시 얘전처럼 손을댓습니다 형은 또나갔고 이번에는 쉼터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때 내나이가 16 이었습니다. 나는 친구가 한명도 없었습니다 왕따는 아니였지만 내가 말을 걸지않고 항상 아빠가 말했듣이 세상에 친구는 없다 전부 널 이용할뿐이다 가족이 최고다 니형이 니친구고 아빠가 니친구고 니엄마가 니친구다 아무도 사귀지마라 다만 나중에 여자친구는 사겨라고 말햇습니다.

그래서 인지 나는 무의식중에 친구들을 멀리했고 나는 친구도 한명없는 왕따아닌 왕따가 됫습니다.

그때 형은 집을 나간상태고 저도 살기가 싫었고 자살도 결심하고 했습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고 안됬습니다. 도저히 혼자는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중3때 처음 무단 결석을 했고 한번되니까 두번되고 세번되고 점점 나는 학교생활과는 멀어져갔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아빠에게 걸렸고 아빠는 나를 나무에 매달아놓고 떄렸습니다 다신 아빠가 무서워서 안그러겠다고 했지만 마음 깊숙한곳에는 언제나 가출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중3떄 제성적은 백분율 86 퍼센트로 실업계도 골라서 가질 못하는 성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당시 학교학생인원수미달 이 뉴스에 한창 떠돌던시기라 아빠는 원서를 인문계로 냈습니다 나는 결국 인문계로 가게됫습니다 성적은 안됬지만 미달이라는 구원에 내가인문계로 갈수있었던거죠 하지만 인문계간다고 내가 공부잘하는것도 아니였습니다. 저는 노력햇습니다. 그때의 나는 지금도 믿어지지 않지만 처음 고등학교를 갔고 학교가 세로워지니 공부할 욕심도 나고 의욕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그날부터 연습장을 활용해서 하루에 한권씩 아무거나 막 적으면서 외웠습니다 영어단어도 외우고 사회 국사 과목 중요부분도 막 적으면서 외웟습니다 첫 중간고사를 봣고 성적은 기대했던거와는 정 딴판이었습니다 전교생 426 명 중 전교석차 234 등이엇습니다 100 등대에도 못미쳤다는 자책감과 그날 집에서 아빠는 맨날 니가 하는척만하니까 성적이 그따구지 세상을 진실되게살아 이 게새끼야 호러새끼야 씨발새끼야 라고 하는동시에 손지검과 구타를 했습니다 나는 맞으면서 공부에 취미를 읽었습니다.

그리고는 집에서 가출을했고 결국은 잡혔습니다. 아빠는 예전 예전 때와같이 한동안은 잘해줫습니다 하지만 또다시서서히 변해갔고 나는 이런 반복이 너무싫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기말고사를 봣고 아빠는 성적 기대는 하지도 않았는지 성적표를 가지고 오자 보지도 앉고 찢어버리고는 디비자 새끼야 라고 하더군요 그날 울면서 계획했습니다 일단 학교를 자퇴하자 할수있는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다음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나 학교에서 왕따다 나 학교가기 무섭다 싫다 라고요 그때당시 또 뉴스에서는 학교왕따폭력에 시달린애들 자살 ; 이라는 말들이 떠돌고 있었을때였고 내 선택을 옳았습니다 아빠는 학교그만두러가자면서 차분하고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나는 학교를 그만뒀고 3개월동안 집에서 생활햿습니다 그렇게 있다가 미용학원을 가라는 아빠의 말에 미용을 배우기 시작햇습니다 그때 제나이가 17 이었습니다

나는 미용학원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얼굴이 예쁘게 잘생겼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학원에서 알게 모르게 팬클럽까지 생겼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나는 괜찮타라는 생각을 항상 해왓습니다 그렇게 미용학원 6개월차 다니다가 나는 집의 잔소리가 너무 듣기싫어 또 가출을 했습니다. 이것이.. 나의 실수였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이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차라리 잔소리를 견뎌내던지 아니면 다른방법으로 가출을 하던지 했을꺼라는 생각을 떨쳐버릴수가 없습니다. 그때 가출한나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돈을 어떻게 버는건지 미성년자는 돈을 벌수가 없다고만 생각했고 미성년자는 방을 잡을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서 나올때 주머니에있던 10 만원으로 4일을 버티면서 피씨방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때나는 자살을 결심하고

나같은 자살생각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모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네이버에 이런식으로 글을 올렸고 쪽지가 날라왔습니다 그사람들이랑 버디버디로 대화를햇고 서로의 사진도 주고받으면서 사람은 나까지 포함 5명이 됫습니다

4일째되던날 우리는 어떻게 죽을것인가는 만나서 결정하자면서 일단만나기로 했습니다

26살 회사원/24살 여학생/18살여고생2명/ 18 살 나  이렇게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때 나는 대구에 있었고 24/18살 2명은 군산이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26살 남자는 대구에 있다고 했습니다 일단 이사람을 먼저 만난후 군산으로 가겠다고 하고 나는 이사람을 만나기위해 돈이 필요해서 치밀한 계획을 한 후 대낮에 편의점을 털었고 계획범인것을 감추기위해 종업원가 실랑이도 했습니다  어차피 죽을껀데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못죽었고 잡힐경우를 대비해 풀려날 방법도 연구해서 범행을했습니다.  제 생각은 이러했습니다 대낮에 연필깍는 4쎈치미터 정도의 칼을 들고 종업원과 다툼끝에 욱하는마음으로 범행을한다 였죠 제가 대낮을 결정한것도 계획범이란것을 감추기 위함이었죠 그리고 칼의 종류도 연필깍이칼날 부러진 4센치미터 였고요

제가생각하는 계획범은 이런것입니다 . 한밤에 복면을쓰고 사시미같은 칼을 다짜고짜 들어가자마자 들이대고 돈내놔 라고 하는것과

우발범죄는 말그대로 실수로 한범죄라는 뜻으로 미성년자인 내가 법에 보호아래에있고 범죄를했지만 우발범죄였고 나는 자살할 생각으로 칼을 소지했고 손목에 상처도 냈고 대낮에들어가서 맨얼굴로 종업원과 다툼을해서 욱하는마음으로 종업원을 위협했는데 어쩌다보니 일이 커져서 이왕이렇게 된거 돈이나 가져가자라는 마음으로 돈을 털었다.

어는것이 풀려날 가능성이 커보입니까? 당연히 아래겠죠? 법에도 양심은 있기때문에 풀려날것을 알고 범행한것입니다. 그리고 더군다나 나는 초범이라는 유력한 보호막과 미성년자라는점과 자살이라는 보호막을 이용했죠.

 

우선 이얘기는 접어두고 그렇게 돈을 털어서 그남자를 만났고 그남자가 생활하고있던 모텔로 갔습니다. 처음 모텔이라는 곳을 들어가봤습니다. 가니까 좋터군요 물침대에 커다란 60 인치 정도 되는 티비에 컴퓨터 최신형도 있고 그리고 술과 통닭도 시켜놨더군요 담배도 있구요

만나서 얘기도 하고 하다가 어떻게 군산까지 가냐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갈려고 하니 버스는 타기싫엇고 기차도 번거롭고 해서 우리는 렌트를 햇습니다

대리인의 나이가 20대가 넘어가야한다는것을 알고있었기에 우리 형의 주민번호를 기억한 나는 렌트하로 갔습니다. 그남자는 면허증을 잃어버린상태였기때문에 대리인이 필요했던것입니다. 대리인으로 내가 될수 밖에 없었고요 한밤 10 시쯤에 렌트하는곳으로 가서 한떄 조폭을 했다던 렌터카 직원과 서류를 놓고 치밀하게 싸웠죠 그사람 신분사항을 적고 나도 우리형의 신분사항을 적었습니다 그리고는 경찰서로 가더군요?? 우리를 데리고 가자고 일단 타라면서 하면서 경찰서로 갔습니다. 아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이렇게 끝나고 마는가.. 라는 허탈함에말이죠 하지만 경찰서로 가서 신분조회만 할생각이었는지 간단한 신분확인만 거치고 다시 우리는 렌터하는곳으로 향했습니다. 조폭직원이 들리지 않을정도의 하지만 나는 들릴정도의 한숨을 그 남자가 쉬더군요. 그날 우리는 그 조폭직원이 해주기만을 바랬습니다 대충 그때 상황은 안된다였습니다 왜냐 그사람의 직감으로는 우리같이 집요하게 해달라고 하는사람들은 대충 사고치고 혹은 사고칠려고 하는사람들이 많다는거였습니다. 면허증도 없고 나는 대리인이라는사람이 신분증도 없었고 그렇기때문에 믿음이 안가서였겠죠. 끝내 안된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사정했지만 안되서 일단 안될것을 대비해서 기차시간을 봐놧던터라 기차를 타러갈려고 택시를 탓습니다 역에 도착했는데 열차남은시간은 13 분 남짓이었습니다 그떄 전화가 왔습니다.

그 조폭렌트카 직원이었는데 일단 두사람다 와보라면서 그러는거였습니다 그때 시간은 새벽 1 시 38 분이었습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선택할수가 없었습니다 렌터가 된다고 오라는것인지 우리 잘못을 알아채고 오라는것인지 알수가 없었기에 선듯 결정을 못내렸습니다 그리고 만약 간다면 열차는 못타기 떄문에 더욱 결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사람을 믿어보기로 하고 갔습니다 택시를타고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모 아니면 도 였습니다. 그아저씨와 한참을 신분확인 을 다시했습니다 주민번호를 다시 불러보라면서 그러는거였습니다 나는 내주민이 아니였기에 버벅거렸고 번복을 했습니다 그아저씨는 아 이거 수상한데 라고 하더니 도저히 안되겠다면서 가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모텔로 향하는 택시를 탓습니다. 진짜 허탈하더군요 내일 군산으로 가야한다니 생각하니까.. 말이죠. 그사람들 사정도 있었기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가야 만날확률이 많았기에 오늘 렌트를 할려고 했던것이었죠 근데 가던도중 전화가 왓습니다 오라면서 그러더군요. 우리는 택시를 돌리고 렌트카 조폭직원한테 갔습니다  직원이하는말이 아~~ 이거 직감상으로는 해주면 안되는데 하도 안되보이고 그리고 너무 급한것같아서 해주는 겁니다 라면서 차키를 그남자에게 넘기더군요 우리는 돈을 28 만원이나 주고 그랜저 엑스쥐를 렌트햿습니다. 그리고는 달렸습니다 완전히 기분 째지더군요 그때시간이 2시31 분이었습니다. 나와 그남자는 텅빈도로를 질주하면서 기분이 너무좋아서 소리를 마구 질렀습니다  한참을 소리지르다가 차에있던 음악을 크게 틀고 창문을 열어놓고 담배를 폇습니다 그때 내가 핀 담배맛은 자유였습니다. 온몸에 스릴이 넘치더군요

18 살 그떄 내나이에 이런 자유는 다른애들은 상상할수없는것이었습니다.

군산을 도착하고 그날 모텔에서 묵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일찍 3명을 만났습니다 3명다 여자였죠  24 살 여자 18 살 여자 18 살 여자 26 남자 18 나. 이렇게 모였습니다

모이고나서 핸드폰은 다 꺼라고 내가 말했죠 다끄고나서는 우리는 서천이라는곳으로 갔습니다. 서천에가서 밥을 사먹고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노래방도 가고 술도 마셧습니다 그남자에게 돈이 120 만원정도 있었고 나한테는 돈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나는 기릅값을 그사람은 기타 여비를 내면서 다녓습니다. 영화도 보러갓습니다. 영화도 보고 우리는 서천해수욕장 근처 민박집을 가서 방2개를 잡았습니다 남자두명이 쓸방 여자 3명이쓸방으로요 왜냐면 보는 눈들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방을 2개 잡고 새벽에 합방을 할생각이었죠

그렇게 있다가 맥주 30 캔을 사들고 한방에 둘러앉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죽을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햇습니다 바로 앞은 겨울밤바다 풍경이 펼쳐져있었고 파도소리에 묻힌채  모두들 침묵했습니다. 결국내린 결정은 모두 바다로 뛰어들자였습니다 모두 수영을 할줄 알았기에 채력이 다할때까지 바다로 질주할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바다 로 갔고 모래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유서들을 써놓고 제가 먼저 출발했습니다. 그때 멀리서 어디서 신고를 받고 왔는진 모르지만 경찰들이 왔습니다. 우리는 경찰서로 갔고 어떻게해서 잡혔는지 알수있었습니다 24 살 여자가 핸드폰을 끄기전에 자기남자친구에게 지금 어디로 간다 나는 죽을거다라고 쪽지를 보냈던겁니다.

아쉽게도 우리는 잡혔습니다. 나는 집에 가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일단 가면 맞을건 둘째치고 내가 했던 범행이 두려웠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들은 아니라고 우리가 자살을 근거로 만난게아니라 만나서 놀려고 만난것이다 그리고 아까 모래바닥에 폭죽이 있는것을 보지 안았냐면서 계속 항변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6 시까지 갔습니다 어느덧 날이 샐려고 하고있었고 그때 24 살 여자의 엄마와 남자친구가 왔습니다 24살여자는 잡혀갔고 나머지사람들 나까지 포함해서 4명은 모두 풀려났습니다 왜냐면 그 남자친구가 쪽지왔던것을 번복을했기때문입니다 놀러간다고 쪽지가 왔었다 근데 내가 여자친구가 바람이 날까 두려워 허위신고를 했던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 증거로 쪽지왔던것을 형사에게 보여줬는데 놀랍게도 진짜였습니다. 나~중에 알고봣더니 그여자가 쪽지 두통을 보냈더군요 처음에 보낸게 진실 두번째보낸게 이것을 대비해서 보낸 가짜쪽찌엿습니다. 남자친구는 여자친구의 마음을 이해했고 진실한쪽지를 삭제햇고 두번째 왔던쪽지를 형사에게 보여줬던것입니다. 근데 그남자친구는 사실상 우리가 죽지않으면 또다시 자신 여자친구가 우리를 만날까봐 그게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가 허위신고를 했다는 말을 했고 자기가 안좋은처벌을 받을껄 알면서도 그렇게 형사에게 말했던거일수도 있습니다. 정확한거는 모르겟고 오로지 내 추측일 뿐입니다. 하지만 분명한건 그때우리는 풀려났고 우리는 서천 그 민박에가서 일단 잤습니다 자고나서 그 24 살 여자를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고 24 살여자가 서천역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나서 우리는 그곳으로 갔습니다. 가던도중 그남자는 나와.동갑 여자 둘을 그곳이 어딘지는 지금 까먹어서 기억이안나지만 그곳에 내려주고는 돈 5 만원을 주면서 혼자갔다가 올께 위험할수도 있다면서 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남자 혼자 갔고 우리는 그곳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주위풍경은 완전 농촌지역이었습니다 버스도 2시간에 한대씩 올만큼 촌구석이었고 식당도 다 찌그러지는 식당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밥을먹고 기다리다 지쳐서 전화를 했지만 그남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그여자한태 전화를 했고 그여자는 다행히 연락이 됬습니다 그여자는 지금 서천에서 그남자를 만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다행이다라면서 버스타고 서천으로 가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서천으로 우리는 갔습니다 근데 서천에서 전화를 했는데 그여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날 찜질방을 겨우찾아내서 잦고 다음날 남은돈 16000원으로 피씨방을 갔습니다 가서 그여자와 처음 쪽지를 주고받았던 버디버디로 연락이 됬습니다 그여자가 하는말이 그날 엄마한테 또 붙잡혀서 폰을 뺃겻다면서 지금 그남자가 너희들 잇는데로 갈꺼다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안도하면서 컴퓨터를 하고있었습니다 근데 경찰이 올라오더니 우리를 끌고가더군요 알고봣더니 18 살 여자 한명의 아빠는 조폭이고 엄마는 술집마담이었습니다 그래서 발이 넓었던 그들은 24살여자한테 전화를해서 협박을했고 24살여자는 우리를 배신했던거죠 그후 우리는 경찰서로가서 모든사실을 털어놓고  18 살 여자는 엄마아빠에게 붙잡혀서 끌려가다싶이햇죠 근데 그여자는 ... 나와 눈이 맞아버렸습니다 그날 술먹던밤 몰래나가서 키스도 햇습니다. 우리는 혜어지는것이 너무 두려워서 다시 .. 꼭 다시만나자면서 전화번호를 교환했습니다. 그리고는 아직도 연락이 없습니다.  그날 18 살 여자가 엄마아빠에게 끌려갔고 한명의 18 살 짜리여자는 서울로 도망갔던 엄마가 군산에 찾으러 왓습니다 그래서 그엄마는 딸이 자살을 하다가 잡혔다는소리에 충격을먹고 안버릴태니까 같이 살자고 했답니다 그리고는 서울로 가서 지금도 살고 있다고 합니다. 나는 모두가 떠나버린경찰서에 혼자남아서 아빠를 기다렸습니다. 나는 그때 절망뿐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했던 죄값을 치를떄가 온것입니다. 그때 경찰관이 담배한대를 주면서 펴라고 햇고 그떄 폈던담배가 필라맨트 라이트 였습니다 이담배는 추억이 묻어있는담배라서 아직도 그담배를피면 그때생각이 납니다.

7시쯤 넘어서 아빠가 왔습니다. 아빠는 모든걸 포기한듯 눈빛이 차가웠습니다 차에 탓고 아빠는 조금 가다가 경찰서와 떨어진 인적 드문 산에 갔습니다 그리고는 트럭 뒤에있던 쇠파이프로 나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팔이 부러지고 머리에 살짝 금이 갔습니다 그리고나서 나는 집에와서 병원신세를 지며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한후 나는 미용학원도 안가고 피시방에 갔습니다. 갔는데 그떄 경찰에게 붙잡혔고 나는 경찰서로 갔습니다 가서.... 진술할때 미리 계획했던 우발을 얘기햇습니다

그리고 나는 유치장 구치소 소년원 가기전의 한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재판날짜를 기다렸습니다 다행이도 나는 아빠가 면회도 자주오고 나가면 희망도 있다는 관찰소 직원들의 진술서 덕분에 풀려났습니다 내가 그곳에서 생활을잘해서 이쁘게 봐줬던 모양입니다. 내가 진술했던 자살문제로 소지했던 길이 4센치의 도로코 칼날로 종업원을 우발적으로 위협했고 가출상태였기때문에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돈을 요구했다고 되있는 경찰 진술서를 보던 판사가 속아넘어갓습니다 나는 강도상해라는 무서운 죄명도 무색할정도로 가벼운 판단인 1 .3호를 받았습니다. 사회봉사 40시간 보호관찰2년

이라는 판결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나는 풀려났는데 그떄 그안에서 사겼던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만나서 놀다가 그친구들에게 어울려서 또 가출을 했고 나는 이용만당하다가 6개월만에 다시 집으로 내발로 찾아갔습니다 아빠는 이제 너는 못믿겠다고 하면서 문도 안열어주었습니다. 그조폭들이랑 같이 왔냐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아니라고 나혼자 왓다면서 나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그러자 안으로 들어오라고했고 지금 대구에있는 이 아파트는 좀있으면 경매넘어간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창원에 엄마랑 형이랑 니형수랑 니 조카가 있다면서 그러더군요 나는 모든걸 용서해준 아빠가 너무고마웠고 진심으로 말을 잘들었고 아빠도 얘전같이 그러지않고 나를 따뜻하게 대하여주었습니다.

나는 창원으로 갔고 창원에서 형을 만나자 눈물이 글성거렷습니다 형도 마찬가지로 눈물을 글성이더군요 몇년만에 만났기때문입니다. 근데 형이 딸을 낳았다고 하니 믿어지지가않았습니다. 근데 사실이었습니다 형수님도 있고 조카인 아연이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그떄 내나이는 여전히 18 이었습니다

집에서 놀수만 없었던나는 일을했습니다

 

나는 그동안 미용학원을 다녔고 그리고 미용실에서도 대구에서 일해봤던 나는 그곳 번화가인 용호동에서 모 미용실을 다녓습니다.

근데 내가 그곳에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곳에는 대구와는달리 인정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지밖에모르고 이기주의적이었습니다

끼리끼리 붙어다니고 나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집에만가면 아빠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들 고생햇다 오늘은 안힘들었냐

저는 항상 어 안힘들었다

라고 대답했고 나의 이런고통은 가족들은 몰랐습니다

나에게는 친구도 한명없고 직장에서는 매일 잔소리에 심할때는 야이새끼야 라는말을 손님들앞에서 들어가면서 꾹참고  하다보니까 삶에 회의를 느꼇습니다.

더군다나 월급을 받으면 엄마를 다줬기때문에 나는 하루용돈 3천원으로 살았습니다

담배도 제대로 사지못하는실정이었습니다

버스비뺴고나면 하루에 용돈은 천원이기때문이죠

하지만 꾿꾿이 버텻습니다 보호관찬소는 1 년 2개월 정도 남았고

나는 한달에 한번씩 보호관찰소도 다녀야합니다 안가거나 하면 나를 잡으러 추격대가 전국에 배치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선처없이 바로 소년원으로 간다고합니다

그리고 집에는 형수님과 형과 조카 가 있었기에 나는 버텻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옥같았습니다.. 진짜 그직장은 숨이 턱턱 막히는 직장이었습니다. 그곳의 손님들은 하나같이 싸가지가 없고 나를 사람보듯이 안했습니다. 사회경험많이 해보신분들은 아실겁니다. 그렇게 2개월을 하고나서 2007 년 1 일 이 왔습니다

그날 형과 형수와 조카는 방에없었습니다

눈을뜨기전에들려오던 아빠의 목소리 안방에서 들렸습니다

이것들 도망갔다 짐도없고 애도 없고

난 눈이 번쩍 띄여저서 일어났습니다

진짜였습니다. 없었습니다. 도망을간것입니다

나는 형을 이제 믿지않습니다

나는 형을 이렇게 좋아하지만 형을 믿지않습니다

형이 빠뜨리고간 민증을 챙기고 도장도 챙겼습니다

그리고 그달 나는 월급받으면 도망가겟다는 결심을 햇습니다

다른방법이 없었습니다

우리집식구들은 너무나도 나에게 잘해줬지만 직장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대략 한 23명정도 되는 미용실 직원들이 하나같이 나에게 심한말을 합니다 나는 견디기 힘듭니다

그래서 그런결정을 했죠

엄마생각하면 눈물이나지만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직장을그만둔다고하면 아빠가 가만히있지않을게 뻔하기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형민증으로 통장을 하나만들었고 거기다가 월급을 넣고 3월 5 일날 서울로 왓습니다 . 바로 어제 ...... 진짜 슬프다....................................................... 외롭다 난.......

서울로 오고싶어서 서울로 왓습니다 예전에 집나갔을때도 서울로 한번 왔었는데 요번에도서울로 온거죠 나는 지금 보호관찰이라는 덫에 걸려있습니다 한번씩 창원까지 가야하는데 그게 보통일이아니고......

 

그리고 제일괴로운건 외롭다는거에요.. 이제 19 인 나에게 이 상황은 견뎌내기 힘드니까요..

 

아마 내 또래에 나같은 인생을 살아온사람은 드물겁니다.

저위에 자살할려고 햇었던 일들있죠 저거 인터넷 신문에도 낫다고 합니다.

 

나는 못봣지만 아버지가 신문에 났다고 하더군요..

 

어제 고시원방 하나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월급받은걸로 지금 피시방에 와있구요 조만간 일자리를 구할생각입니다

 

보호관찰떄문에 한번씩 창원으로 내려가야하고 외롭습니다

 

지금 제목표는 어떻게는 보호관찰소 직원들이 눈치못채게 관찰소를 서울로 옮기는 거고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제얘기를 읽어줘서 고맙구요..

조금이나마 답변좀 부탁드려요.. 위로해주세요.... ㅠ_ㅠ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참 인생을 어렵게 살아왔군요..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사회 나가면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기죽지 말고 열심히 사세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긴글이였지만..빠지지 않고 읽게 되네요..

어린나이에 고생 정말 많이 하셨네요...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지금은 정말 외로우시겠어요...말도 못하죠

한밤엔 잠도 안올것이고.. 뭐가 먹고 싶어도 함께 먹을 사람도 없고..

제가 님의 아픔을 다 알진 못해도, 지금 얼마나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지,

그렇게 어린나이에 가족에게 버림받은 느낌이 어떤지,

가난이 어떤건지, 세상이 얼마나 냉정하고 무서운건지는 참

잘 압니다..

이젠 죽고싶단 생각 하지 마세요. 제가 오늘 부터 정말 맘속으로

앞으론, 일에 적응 잘하시고, 좋은 사람 많이 만나게 해달라고

빌어드릴께요, 저는 먼 지방에 있기 때문에, 같이 만나 술한잔 해줄수는

없지만,, 그냥 글을 보고서라도 이렇게 마음이 아파서,

마음이라도 진실하게 , 잘되시길 빌어드릴께요, !

어머니, 아버지, 그들이 비록 그렇게 냉정하게, 매정하게 하셨지만......

사랑하는 표현이 잘못된 불쌍한 부모님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나중에 자식낳으면 절대로...절대로.....절대로 폭력을 가하는

부모가 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폭력이 얼마나 가혹하고.. 특히 가족에게 받는 폭력은 어디에다

말할수 없을만큼 고통이 크다는 것 쯤은 알고 계시죠..

 

이런말도 있어요.. 흔해빠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신께서는 항상 그 사람이 감당할 만큼의 시련만을 주신다."

 

저도 종교가 없지만, 고통이 닥칠때마다 위의 말을 항상 되새깁니다.

내가 더 강해지기 위해 이런일이 있는거야, 라고,,

 

님, 힘내세요, 아직 나이가 어리잖아요

언젠가 그 험난한 경험들이 남들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는

큰 재산이 될거라 믿습니다.

 

가난이요, 그거 안겪어 본것 보다 겪어본 것이 이 세상 사는데 참 도움이

많이 되는겁니다.

폭력, 내가 폭력이 얼마나 안좋은건지 알기때문에, 더 정의로운 정신세계를

갖고 살수도 있잖아요,

 

님아, 빨리 일자리 찾고, 못다한 공부 해봐요,

꼭 학교를 나오라는 게 아니에요, 님이 할 수 있는 일,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공부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랄께요,

늘 힘내세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일단 간단하게 말할게 너보다 5~6살 정도 많으니 25이니깐.. 편하게 말한다

 

이글은 태클도 아니고 스스로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너를 보니 한심해서 이렇게 올린다

 

혹시 말이야 나보다 힘들게 살은사람 있음 나와보라그래 라는 생각을 가지고있는지 심히

 

걱정된다.

 

너가 과거에 있었던 일은 이야기 하지 않고 지금 현재 어떻게 해야될꺼란것에 중점을 둬

 

서 이야기 하마..

 

형도 참 세상 머 같이 살아왔다  어렸을때 부터 머가 그리 싫은지 맨날 치고 박고 싸워서

 

틈만 나면 경찰서 가고 형 집은 그렇게 불황스럽지 않다만은 주위 친구 불알 놈들은

 

너보다 더한 경우가 많아서 어느정도 이해가 가지만은...

 

그친구놈들도 보면 대부분 마음 잡고 열심히 살고있다..

 

성인이란게 머가 성인이라고 생각하냐. 나이 20살되면 다 성인?

 

26살짜리가 머가 그리 비관적인지 너희들 데리고 바닷가 가서 자살이나 쳐할라고 그러고

 

나이 처먹어가 지고 말이야 애들 선동이나 하고...씨발놈~ 면상한번 보고싶네 

 

형도 공부가 영 안맞아서 운동을 하기로 맘먹고 운동하면서 헬스트레이너도 해보고 이것

 

저것 해가면서 살아가고 있다만은..

 

이딴이야기는 다 집어 치우고.....

 

지금 19이냐? 일단 살아야될거 아니냐.. 집에 들어가라고 강요하기는 싫다..

 

서울에 있으면 10년 계획 세우고 성공해서 부모님 뵌다고 생각해라 독하게 맘먹어라..

 

쉽지 않을꺼라고 생각 하지 말고 쉬우니깐..

 

너희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그거 다 버려~ 가족이 친구다라는건 그런 생각 버리고

 

가족은 친구가 될수없다 가족은 중요하지만 친구랑은 별개지... 

 

하나 하나 차근히 성격을 개조한다고 생각 하면서 일부로라도 더 밝게 사람 대하고 그러

 

라고..  인맥이란건 상당히 중요하니깐~

 

공부하기싫다 했는데 그럼 고졸도 아니고 고등하교 중퇴네..

 

형도 엘리트 생활은 해오지 않았지만 생각과 행동이 모든걸 좌지우지 한다고 해도

 

틀린말이 아니다.

 

행동으로 옮겨 자살같은거 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나 생각만하지말고 행동으로 옮기라고~

 

형의 생각을 간단하게 적어 보자면 부모님과의 연락은 하되 뵙는건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

 

 

일단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고 기숙사가 있음 좋을련만 기숙사 있고 너가 할만한것은 아직

 

까지는 주유소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주유소 그것도 우습게 볼일이 아니야..

 

요세 할아버지들이 나이 드셔서 집에서 쉬시는게 싫어서 일부러 주유소 일하는 할아버지

 

꽤 많으니깐 말이야. 젊은 너가 왜 못하겠냐..

 

그리도 돈을 모아라 쓸때없는것에 쓰지말고.. 돈을 모으면서 검정고시 패스.고등학교 졸업

 

은 해야지 않겠냐

 

그래도 우리나라사회는 고등학교 졸업은 해야된다 .. 절대 흘겨 듣지 말고 이왕 살자고 맘

 

먹은거 씨발 손가락질 받으면서 사는거 남자새끼가 쪽팔리잖냐

 

일하면서 검정고시 봐~ 시간 그리 오래 안걸릴꺼다 .. 그것부터 해봐 하나씩 그러면 자신감

 

그딴건 알아서 생기니깐..

 

그리고 군면제 보다 군필자가 낳겠지?  요세 중졸도 군대 간다고 했나.. 잘 기억은 안나지

 

만.. 군대 갔다와라~ 군대 요세 빠질 만큼 빠졌다고 해도 배울건 배우고 오니깐...

 

가기싫은건 모든 남자들 다 똑같은 거지만 군필자들은 그래도 사회에서 어느정도 성인으

 

인정해주는 계기가 되는거니깐..

 

그리고 나서 너의 인생을 계획해 아직 어리고 할수도있는것들이니깐..

 

세상에 나왔음 폼나게는 살아봐야될거 아니야 폼나게 살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할

 

려면 능력이 있어야되고 능력이 있을라면 배워야되는거니깐 말이야..

 

자신있게 당당하게 당차게 살아라 그게 형 신조기도 하고.. 행동으로 옮겨 생각할 시간에

 

행동으로 옮기는게 더 효과적인 방법이니깐~~

 

그리고 성공해서 부모님께 떳떳하게 가는거다 .. 나 이런놈이다 독하게 성공했다

 

안된다고 생각하지말고 생각 하기전에 뛰어들어 그냥 무조건~

 

마지막으로 절대 후회하면서 살지말고 내가 왜 공부할껄 그냥 잔소리 들어도 있을껄

 

이딴건 다 집어 치우고 후회 하면 머가 나와? 냉정하게 생각 하고 앞만 바라보기다

 

힘내라~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힘내시구요 분명히 좋은 날이 올겁니다..

 

관찰소 서울로 옮기는것도 잘 될거구요...

 

빨리 일자리 구하셔서 좋은 친구도 만나고

 

얼른 안정된 생활을 하셨으면 좋겠어여~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눈물이 나네요........

 

정말 힘들게 사셧군요........

 

앞으로 좋은일만 가득하시길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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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죠 ????? 고민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심심하시겟다 ㅜㅜ;; 나도그런대가면 존나심심해뒤질꺼임 혼자돈모아서 한국와서 가난하더래도 혼자알바하면서살꺼임 힘내삼;;...

구설수 말때문에 너무 스트레스에요

... 어쩌죠? 정인이 상관패인해줘야 좋은거죠? 공부더해야할까요? 수양?하ㅠ 을목이 금이... 조금은 외롭습니다. 욱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특히 올해 시비 구설 경쟁자가 생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