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와닿는 시를 부탁드려요

가슴에 와닿는 시를 부탁드려요

작성일 2011.12.13댓글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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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대문에 시를 쓰려는데 어떤 시가 좋을까요? 계절에 맞는걸로 써주세요 내공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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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 - 최계략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가니 꽃도 피어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떼도 숨어있다.

 

 

봄 - 김광섭

 

나무에 새싹이 돋는 것을
어떻게 알고
새들은 먼 하늘에서 날아올까


물에 꽃봉우리 진 것을
어떻게 알고
나비는 저승에서 펄펄 날아올까


아가씨 창인 줄은
또 어떻게 알고
고양이는 울타리에서 저렇게 올까

 

 

봄소식 - 이창건

 

꼬리가 짧은
2월의 버들강아지들이
연기가 나는 강 언덕을 바라보며
멍멍멍
짖고 있습니다


누가 오는가 봅니다

 

 

봄 시내 - 이원수


마알가니 흐르는 시냇물에
발벗고 찰방찰방 들어가 놀자.


조약돌 흰모래 발을 간질이고
잔등엔 햇볕이 따스도 하다.


송사리 쫓는 마알간 물에
꽃이파리 하나둘 떠내려온다.
어디서 복사꽃 피었나 보다.

 

 

봄이 올 때까지는 - 안도현


보고 싶어도
꾹 참기로 한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놓은 돌이
강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아무리 숨었어도 - 한혜영

 

아무리 숨었어도
이 봄햇살은
반드시 너를 찾고야 말걸
땅속 깊이 꼭꼭 숨은
암만 작은 씨라 해도
찾아내
꼭 저를 닮은 꽃
방실방실 피워낼걸


아무리 숨었어도
이 봄바람은
반드시 너를 찾고야 말걸
나뭇가지 깊은 곳에
꼭꼭 숨은 잎새라 해도
찾아내
꼭 저를 닮은 잎새
파릇파릇 피워낼걸

 

 

작은 약속 - 노원호

 

봄은 땅과 약속을 했다.
나무와도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싹을 틔웠다.
작은 열매를 위해
바람과 햇빛과도 손을 잡았다.
비오는 날은
빗방울과도 약속을 했다.
엄마가 내게 준 작은 약속처럼
뿌리까지 빗물이 스며들었다.

 

 

그해 여름밤 - 박인걸


쏟아지는 별빛을 물결에 싣고
밤새도록 지줄대며 흐른 냇물아
반디불이 깜박이던 한여름밤
불협화음에도 정겹던 풀벌레 노래
소나무숲 방금 지나온 바람
가슴까지 닦아내는 고마운 길손
왕거미 집 짓던 처마 밑에서
꿈길을 거닐던 하얀 바둑이
희미한 초승달 별 숲에 갇혀
밤새 노 젓다 지친 나그네
산새도 깊이 잠든 검은 숲 위로
더러는 길 잃은 운석의 행렬
수줍어 한밤에 고개를 들고
밭둑에 피어나는 달맞이꽃아
적막에 잠든 고향 마을에
은하수 따라 흐르던 그리움
이제는 아스라한 추억 너머로
꿈길에 더러 거니는 그해 여름밤

 

 

나무야, 나무야! - 박예분


너무 슬퍼하지마!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가만히 생각해 보렴,

 

뒷목 따갑게
햇살 내리쬐는 여름날
누군가
네 그늘에 앉아
한숨 쉬어간 적 없었니?

 

 
여름 - 권오범

 
모든 것이 바쁘다
해는 화끈하게 삶고 싶고
장마는 구름에 물 적셔와
세상 물바다 만들고 싶고


그 등쌀 아랑곳없이 살아남아
기어이 대를 이으라고
바람이 초목들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후덥지근하게 지쳐버린 중복허리


사람도 덩달아 수고로워야 한다
햇볕 피하랴 비 피하랴
시들고 물손받은 먹을거리들
어떡하든 살려내랴


선풍기 냉장고 에어컨
부채라고 해서 마음놓고 쉴 새 있겠는가
누워 빈둥대지 말고 하다못해 모기라도 쫓아야지
하루살이들 이별파티 때문에 가로등마저도

 


여름 2 - 권오범

 
햇빛 머금은 방울꽃 옥구슬처럼 굴리며
어렸을 적 방수가 잘된
우산 추억 되작이다 보니
토란 잎 등짝 혈관이 내 손등 닮았다
알토란같던 청춘 솔래솔래 허비해
껍데기마저 쭈그러든지 오래
징글맞게 불거진 핏줄 위해
토란국이 먹고 싶다
매미 시위 떠난 사랑의 화살이
뙤약볕 뚫고
어디론가 간절히 날아가는
웃비 걷힌 복날 한낮이라 더더욱

 


여름 - 정윤목

 
여름 사르락
흰 눈처럼 빛나던 빛
간 데 없고
흐려지는 안개비
소스락
강 만들 때


아이들
천방지축 뛰어놀고
땀방울
기쁜 열기


여름빛
쨍쨍하지만은,
우수의 습기 가득할 때
그리움 더욱 간절하여지고
희망조차 옅어지며
하나의 이름,
묻어둘 때
새들의 노래
풀들의 소리
끊임없는 파도
마음과 마음

 

 
여름나비 - 오보영

 
마땅히 내려앉을
꽃이 없어서
풀섶위를 방황하던
하얀 나비가


나보다 한발 앞서 미국엘 왔네


딸네집 앞뜰 화사한
분홍꽃에 앉아


두 날개 팔랑이며 반기어 맞네


그리던 님
예 와서 만났노라고
님의 체취
한껏 들이쉬고 있다고


자랑하며 어서오라 손짓을 하네

 


여름밤 - 김길자

 
처마 끝에
보름달 걸어 불 밝히고

 
말아놓은 멍석
주르르 펴
온 가족 둘러앉아


우물에서
막 꺼내먹는 수박맛
창자까지 시려와
삼복더위도
까만 씨 속으로 숨는다


별꽃 피던 이야기 코골고
엄마 품에 안긴 아기 꿈꾸는
유년기의 여름밤

 


여름밤의 추억 - 노태웅


돌돌 말린 멍석
텃마당에 깔아놓고
쑥향 번지는
모깃불 피어오르면
우물 속의 수박 한 덩이
나누어먹던 그때는
무수한 별들도
우물 속에 잠겨 있었다


샘물로 등목하던 깊은 밤
작은 돌 손에 깔고
바닥에 엎드리면
등을 타고 흐르는
물 한 바가지에
한기가 돈다
그때가 그리운 것은
등 밀어주는
정겨운 손길이 있어서일까?
초승달 내민 고개가
구름 속에 숨어들 때
여인들의 수다 속에
여름은 가고 있다

 

 

여름 밤하늘 - 동요아저씨

 

밤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네요.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깊은밤 숨바꼭질 놀이
구름 뒤로 꼭꼭 숨었을까요?
 
무더운 여름밤
견디기 힘들어  
차가운 계곡과
파도치는 시원한 바다로
모두 떠났을까요?

 

모두 어디에 있을까요?
어서 빨리 돌아와
검푸른 밤하늘에  
예쁜 수정 목걸이를 걸어주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여름비 - 박인걸


하염없이 쏟아지는
맑은 물방울들이
가슴속에 쌓인
지저분한 생각들을 씻는다.


허망한 탐욕들과
미련하고 어리석은 판단들
시기와 질투
그리고 오만과 불손까지


지칠 줄 모르고 퍼붓는
소방 살수(撒水)는
불처럼 달아오른 욕정을
얼음처럼 식히고 있다.


과분(過分)을 넘어선
삶의 수많은 욕망들을
완급(緩急) 조절하는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여름열매 - 이영지


파랗다 잎 곁에서 파랗다 더 파랗다
여름이 더운 여름 묶느라 한데 얼려
약간은 싱거우면서 떫은 맛이 파랗다
파랗다 잎을 닮아 파랗다 더 파랗다
여름이 익는 여름 묶느라 한데 묶여
약간은 못난 듯하며 열매값이 파랗다
파랗다 여름 닮아 파랗다 꼭 파랗다
긴여름 더위라도 잊느라 더 파랗다
약간은 기다리느라 발걸음이 파랗다

 

 

여름의 땅 - 차영섭

 

여름엔 땅도 바쁘실 거예요
사람들은 덥다고 물로물로 가는데
땅은 꼭 해야만 할 일이 많거든요
겨울 내내 참고 얼지 않게 붙든 뿌리랑
봄이 오자 사람들이 뿌린 씨앗이랑
봄의 땅이 애써 싹 트게 한 식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자라게 해야 하거든요
좀 더 멋있고 튼실하게 키워서
가을에 오는 햇빛이 쏘옥 단물 들게 하게요.

 

 
여름의 불씨 - 임영준


다시 한번 되살려보자
이글거리는 불볕 속에서


풀죽은 헛개비들도
그나마 숨돌릴 수 있고
지레 꺾어지더라도
마음껏 활개쳐볼 수 있는


얼룩도 별 대수롭지 않던
그 불씨를
다시 한번 되살려보자

 


팔월이 온다 - 홍우희  
 
칠월이 아직 사는
연립 우리집 마당
개구쟁이 쓰르라미
쓰쓰 쓰르렴 쓰쓰 쓰르렴
잔소리를 자꾸만
여기저기 늘어놓고
경비아저씨 대빗자루
오냐 그래 알았다
싹싹 쓸겠다 싹싹 쓸겠다
새로 오는 팔월을
단장하고 반길 테다
꽃을 떨어낸 열매들아
방학을 맞은 아이들아
크게 튼튼하게
웃으며 자라거라
 


하늘의 여름 - 차영섭

 

여름엔 하늘도 힘드실 거예요
사람들은 덥다고덥다고 피서를 가는데
하늘은 꼭 해야만 될 일이 있거든요
산에 산에 나무들도 키워야겠고
밭에 밭에 열매들도 익혀야 하니까요.
햇살 속에 물감이랑 설탕이랑 몰래 숨겨서
과일에게 곱게곱게 색칠도 해주고
듬뿍듬뿍 설탕을 뿌려 줘야 하니까요

 

 

가을 - 김지하
 

어지럼증을 앓는 어머니 앞에
그저 막막하더니
집을 나서는데
다 시든 낙엽을 밟으니
발바닥이 도리어 살갑구나.
 

 

가을 - 정호승
 

하늘다람쥐 한 마리
가을 산길 위에 죽어있다
 

도토리나무 열매 하나
햇살에 몸을 뒤척이며 누워있고
 

가랑잎나비 한 마리
가랑잎 위에 앉아 울고 있다
 

 

가을 - 조병화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푸른 모자를 높게 쓰고
맑은 눈을 하고 청초한 얼굴로
인사를 하러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더웠었지요" 하며
 

먼 곳을 돌아돌아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높은 구름의 고개를 넘어오고 있습니다
 


가을밤 - 윤석중
 

문틈에서
드르렁드르렁
"거, 누구요?"
"문풍지예요."
 

창밖에서
바스락바스락
"거, 누구요?"
"가랑잎예요."
 

문구멍으로
기웃기웃.
"거, 누구요?"
"달빛예요."

 

 

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 사랑 -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가을 저녁의 시 - 김춘수


누가 죽어가나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세상 외롬 속에서
물 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 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귀뚜라미 우는 밤 - 김영일
 

또로 또로 또로
귀뚜라미 우는밤
 

가만히 책을 보면
책속에 귀뚜라미 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귀뚜라미 소리만 듣는다
 

또로 또로 또로
멀리멀리 동무가 생각난다

 


단풍 - 김종상
 

빨갛게 익어가는 감을 닮아서
잎사귀도 빨갛게 물이 들었네.
감나무에 떨어진 아침 이슬은
감잎에 담겨서 빨강 물방울.
 

샛노란 은행알이 달린 가지에
잎사귀도 노랗게 잘도 익었네.
은행나무 밑으로 흐르는 냇물
은행잎이 잠겨서 노랑 시냇물.

 


울음이 타는 가을강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
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코스모스 - 박경용
 

무얼 먹고 저리도
키가 컸을까?
하늘 먹고 컸겠지.
바람 먹고 컸겠지.
 

무얼 발라 얼굴은
저리 이쁠까?
햇발 발라 이쁘겠지.
달빛 발라 이쁘겠지.
 

하늘 먹고
바람 먹고
나보다 키클라...
 

햇발 발라
달빛 발라
나보다 이쁠라...

 

 

겨울 - 윤동주

 

처마 밑에
시래기 다래미
바삭바삭
추어요.

 

길바닥에
말똥 동그램이
말랑말랑
얼어요.

 

 

겨울 들판 - 이상교

겨울 들판이
텅 비었다.

들판이 쉬는 중이다.
풀들도 쉰다.
나무들도 쉬는 중이다.

햇볕도 느릿느릿 내려와 쉬는 중이다.

 

 위에 님들이 벌써 쓰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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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開花) - 이호우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과목(果木) - 박성룡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뿌리는 박질 붉은 황토에
가지느 한낱 비바람들 속에 뻗어 출렁거렸으나


모든 것이 멸렬하는 가을을 가려 그는 홀로
황홀한 빛깔과 무게의 은총을 지니게 되는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흔히 시를 읽고 저무는 한 해, 그 가을에도
나는 이 과목의 기적 앞에서 시력을 회복한다.

 


나무 - 김윤성


한결같은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를 보며
황금색 햇빛과 개인 하늘을
나는 잊었다.
누가 나를 찾지 않는다
또 기다리지 않는다.


한결같은 망각속에
나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다
시작도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누구에게 감사 받을 생각도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랄려고 한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펼려고 한다

 


낙화 -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난초 - 이병기



한 손에 책(冊)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2
새로 난 난초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침 볕이 발틈에 비쳐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 듯 밀어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3
오늘은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孤寂)한 나의 마음을 적이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 앉아 책을 앞에 놓아두고
장장(張張)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4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 김상용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눈을 위한 시 - 유하


눈이 내린다 눈빛이 내린다
난  멀디먼 눈길 뒤에서 굴뚝새처럼 헤매었다
눈물 다 흘리고 아린 눈으로 바라보던
그 무심한 눈발 그때 알아버렸다
컴컴하게 눈먼 하늘이 각혈하는 눈보라가
두고두고 이 세상 내 험한 눈길 속으로 가져다줄 눈빛을
그 눈시린 고통과 황홀의 눈빛을 그 후로
난 오래도록 잠들어 있었다 꿈속에서도 깨지 마라
깨지 마라 눈은 쏟아지고 눈뜨면 감은 눈 위로
거대한 설원이 기다림처럼 쌓이는 꿈을 꾸는 나를 보았다
아, 눈과 눈의 사랑 난 기어이 깨어났다
이 천지의 가믈고 가믄 숨소리 눈보라가
내 무거운 눈꺼풀을 벗겨갔다 난 보았다
그 무수한 눈송이가 무수한 눈물로 바뀌는 것을
눈은 땅으로 곤두박질치지만
눈물은 마침내 허공에 설원을 이룬다
눈발과 눈물의 가슴 시린 부딪침, 사랑
눈이 쌓인다 눈빛이 쌓인다 밤새
나는 잠들지 못하리라 저 황홀한 눈빛이
내 눈에 영원한 고통을 족쇄 채웠다 눈이 펑펑 내린다
나는 눈빛 쌓인 설원을 저물도록 떠돌아야 하리라
눈은 녹지만 끝끝내 당신, 눈빛은 녹지 않는 설원을
눈이 내린다 눈물이 솟아오른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 -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동천(冬天) -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머얼리 - 정훈


깊은 산허리에
자그만 집을 짓자.


텃밭엘랑

고추
둘레에도 돔부도 심자.


박꽃이
희게 핀 황혼이면
먼 구름을 바라보자.

 


별을 쳐다보며 - 김광섭


저 멀리서 반짝이는 저 별들은
어데서 와서 어데로 감인지
나는 그것을 알고자 함이 아니나


끝없이 넓은 공간에 흩어져
서로 사귀고 서로 영광을 누리는
거룩한 법칙 아래
다툼없이 빛을 주고받으며


영원히 반짝이는 저 별들은
모두다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고
모두다 스스로의 갈길을 가나니


비록 지상의 어두운 손님이 되어
외로운 곳에 섰을지라도
自律하는 천성을 얻어
영혼을 삼으면
나도 저 별 하나가 되리라

 


봄비 -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그러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봄은 고양이로다 -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산너머 남촌에는 - 김동환
 

1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데.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불 제 나는 좋데나.


2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른 벌엔 호랑나비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불 제 나는 좋데나.


3


산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재를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 오는 가는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산유화 -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섬진강 1 -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 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 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아침 이미지 1 - 박남수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의 잔치에
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안개가 짙은들 - 나태주
 
안개가 짙은들 산까지 지울 수야
어둠이 깊은들 오는 아침까지 막을 수야
안개와 어둠 속을 꿰뚫는 물소리, 새소리,
비바람 설친들 피는 꽃까지 막을 수야.

 


원두막 - 김종삼


비바람이 훼청거린다
매우 거세다


간혹 보이던
논두락 매던 사람이 멀다


산마루에 우산
받고 지나가는 사람이
느리다


무엇인지 모르게
평화를 가져다 준다


머지 않아 원두막이
비게 되었다

 


자연 - 박재삼


뉘라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을 아는 내 마음 꽃나무는
내 얼굴에 가지 벋은 채
참말로 참말로
바람 때문에
햇살 때문에
못 이겨 그냥 그
웃어진다 울어진다 하겠네.

 


작은 짐승 - 신석정


난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처럼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가는
붉은 산호와 흰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같이 자지러지게 흩어지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에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말없는 작은 짐승이었다.

 


청노루 - 박목월


머언 산 靑雲寺
낡은 기와집


山은 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두 구비를


靑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푸른 오월 - 노천명


청자빛 하늘이
육모정 탑 우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잎에
여인네 맵시 우에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일로 무색하구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 데 하늘을 본다


기인 담을 끼고 외따른 길을 걸으며 걸으며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냄새가 물큰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순이 뻗어나오던 길섶
어디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혼잎나물 적갈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


오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

 


플라타너스 -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 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프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난는 길이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해 -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맑앟게 씻은 얼굴 고은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어, 달밤이 싫어,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어,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딿아,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고 새도 짐승도 한 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 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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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 - 최계략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가니 꽃도 피어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떼도 숨어있다.

 

 

봄 - 김광섭

 

나무에 새싹이 돋는 것을
어떻게 알고
새들은 먼 하늘에서 날아올까


물에 꽃봉우리 진 것을
어떻게 알고
나비는 저승에서 펄펄 날아올까


아가씨 창인 줄은
또 어떻게 알고
고양이는 울타리에서 저렇게 올까

 

 

봄소식 - 이창건

 

꼬리가 짧은
2월의 버들강아지들이
연기가 나는 강 언덕을 바라보며
멍멍멍
짖고 있습니다


누가 오는가 봅니다

 

 

봄 시내 - 이원수


마알가니 흐르는 시냇물에
발벗고 찰방찰방 들어가 놀자.


조약돌 흰모래 발을 간질이고
잔등엔 햇볕이 따스도 하다.


송사리 쫓는 마알간 물에
꽃이파리 하나둘 떠내려온다.
어디서 복사꽃 피었나 보다.

 

 

봄이 올 때까지는 - 안도현


보고 싶어도
꾹 참기로 한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놓은 돌이
강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아무리 숨었어도 - 한혜영

 

아무리 숨었어도
이 봄햇살은
반드시 너를 찾고야 말걸
땅속 깊이 꼭꼭 숨은
암만 작은 씨라 해도
찾아내
꼭 저를 닮은 꽃
방실방실 피워낼걸


아무리 숨었어도
이 봄바람은
반드시 너를 찾고야 말걸
나뭇가지 깊은 곳에
꼭꼭 숨은 잎새라 해도
찾아내
꼭 저를 닮은 잎새
파릇파릇 피워낼걸

 

 

작은 약속 - 노원호

 

봄은 땅과 약속을 했다.
나무와도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싹을 틔웠다.
작은 열매를 위해
바람과 햇빛과도 손을 잡았다.
비오는 날은
빗방울과도 약속을 했다.
엄마가 내게 준 작은 약속처럼
뿌리까지 빗물이 스며들었다.

 

 

그해 여름밤 - 박인걸


쏟아지는 별빛을 물결에 싣고
밤새도록 지줄대며 흐른 냇물아
반디불이 깜박이던 한여름밤
불협화음에도 정겹던 풀벌레 노래
소나무숲 방금 지나온 바람
가슴까지 닦아내는 고마운 길손
왕거미 집 짓던 처마 밑에서
꿈길을 거닐던 하얀 바둑이
희미한 초승달 별 숲에 갇혀
밤새 노 젓다 지친 나그네
산새도 깊이 잠든 검은 숲 위로
더러는 길 잃은 운석의 행렬
수줍어 한밤에 고개를 들고
밭둑에 피어나는 달맞이꽃아
적막에 잠든 고향 마을에
은하수 따라 흐르던 그리움
이제는 아스라한 추억 너머로
꿈길에 더러 거니는 그해 여름밤

 

 

나무야, 나무야! - 박예분


너무 슬퍼하지마!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가만히 생각해 보렴,

 

뒷목 따갑게
햇살 내리쬐는 여름날
누군가
네 그늘에 앉아
한숨 쉬어간 적 없었니?

 

 
여름 - 권오범

 
모든 것이 바쁘다
해는 화끈하게 삶고 싶고
장마는 구름에 물 적셔와
세상 물바다 만들고 싶고


그 등쌀 아랑곳없이 살아남아
기어이 대를 이으라고
바람이 초목들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후덥지근하게 지쳐버린 중복허리


사람도 덩달아 수고로워야 한다
햇볕 피하랴 비 피하랴
시들고 물손받은 먹을거리들
어떡하든 살려내랴


선풍기 냉장고 에어컨
부채라고 해서 마음놓고 쉴 새 있겠는가
누워 빈둥대지 말고 하다못해 모기라도 쫓아야지
하루살이들 이별파티 때문에 가로등마저도

 


여름 2 - 권오범

 
햇빛 머금은 방울꽃 옥구슬처럼 굴리며
어렸을 적 방수가 잘된
우산 추억 되작이다 보니
토란 잎 등짝 혈관이 내 손등 닮았다
알토란같던 청춘 솔래솔래 허비해
껍데기마저 쭈그러든지 오래
징글맞게 불거진 핏줄 위해
토란국이 먹고 싶다
매미 시위 떠난 사랑의 화살이
뙤약볕 뚫고
어디론가 간절히 날아가는
웃비 걷힌 복날 한낮이라 더더욱

 


여름 - 정윤목

 
여름 사르락
흰 눈처럼 빛나던 빛
간 데 없고
흐려지는 안개비
소스락
강 만들 때


아이들
천방지축 뛰어놀고
땀방울
기쁜 열기


여름빛
쨍쨍하지만은,
우수의 습기 가득할 때
그리움 더욱 간절하여지고
희망조차 옅어지며
하나의 이름,
묻어둘 때
새들의 노래
풀들의 소리
끊임없는 파도
마음과 마음

 

 
여름나비 - 오보영

 
마땅히 내려앉을
꽃이 없어서
풀섶위를 방황하던
하얀 나비가


나보다 한발 앞서 미국엘 왔네


딸네집 앞뜰 화사한
분홍꽃에 앉아


두 날개 팔랑이며 반기어 맞네


그리던 님
예 와서 만났노라고
님의 체취
한껏 들이쉬고 있다고


자랑하며 어서오라 손짓을 하네

 


여름밤 - 김길자

 
처마 끝에
보름달 걸어 불 밝히고

 
말아놓은 멍석
주르르 펴
온 가족 둘러앉아


우물에서
막 꺼내먹는 수박맛
창자까지 시려와
삼복더위도
까만 씨 속으로 숨는다


별꽃 피던 이야기 코골고
엄마 품에 안긴 아기 꿈꾸는
유년기의 여름밤

 


여름밤의 추억 - 노태웅


돌돌 말린 멍석
텃마당에 깔아놓고
쑥향 번지는
모깃불 피어오르면
우물 속의 수박 한 덩이
나누어먹던 그때는
무수한 별들도
우물 속에 잠겨 있었다


샘물로 등목하던 깊은 밤
작은 돌 손에 깔고
바닥에 엎드리면
등을 타고 흐르는
물 한 바가지에
한기가 돈다
그때가 그리운 것은
등 밀어주는
정겨운 손길이 있어서일까?
초승달 내민 고개가
구름 속에 숨어들 때
여인들의 수다 속에
여름은 가고 있다

 

 

여름 밤하늘 - 동요아저씨

 

밤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네요.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깊은밤 숨바꼭질 놀이
구름 뒤로 꼭꼭 숨었을까요?
 
무더운 여름밤
견디기 힘들어  
차가운 계곡과
파도치는 시원한 바다로
모두 떠났을까요?

 

모두 어디에 있을까요?
어서 빨리 돌아와
검푸른 밤하늘에  
예쁜 수정 목걸이를 걸어주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여름비 - 박인걸


하염없이 쏟아지는
맑은 물방울들이
가슴속에 쌓인
지저분한 생각들을 씻는다.


허망한 탐욕들과
미련하고 어리석은 판단들
시기와 질투
그리고 오만과 불손까지


지칠 줄 모르고 퍼붓는
소방 살수(撒水)는
불처럼 달아오른 욕정을
얼음처럼 식히고 있다.


과분(過分)을 넘어선
삶의 수많은 욕망들을
완급(緩急) 조절하는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여름열매 - 이영지


파랗다 잎 곁에서 파랗다 더 파랗다
여름이 더운 여름 묶느라 한데 얼려
약간은 싱거우면서 떫은 맛이 파랗다
파랗다 잎을 닮아 파랗다 더 파랗다
여름이 익는 여름 묶느라 한데 묶여
약간은 못난 듯하며 열매값이 파랗다
파랗다 여름 닮아 파랗다 꼭 파랗다
긴여름 더위라도 잊느라 더 파랗다
약간은 기다리느라 발걸음이 파랗다

 

 

여름의 땅 - 차영섭

 

여름엔 땅도 바쁘실 거예요
사람들은 덥다고 물로물로 가는데
땅은 꼭 해야만 할 일이 많거든요
겨울 내내 참고 얼지 않게 붙든 뿌리랑
봄이 오자 사람들이 뿌린 씨앗이랑
봄의 땅이 애써 싹 트게 한 식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자라게 해야 하거든요
좀 더 멋있고 튼실하게 키워서
가을에 오는 햇빛이 쏘옥 단물 들게 하게요.

 

 
여름의 불씨 - 임영준


다시 한번 되살려보자
이글거리는 불볕 속에서


풀죽은 헛개비들도
그나마 숨돌릴 수 있고
지레 꺾어지더라도
마음껏 활개쳐볼 수 있는


얼룩도 별 대수롭지 않던
그 불씨를
다시 한번 되살려보자

 


팔월이 온다 - 홍우희  
 
칠월이 아직 사는
연립 우리집 마당
개구쟁이 쓰르라미
쓰쓰 쓰르렴 쓰쓰 쓰르렴
잔소리를 자꾸만
여기저기 늘어놓고
경비아저씨 대빗자루
오냐 그래 알았다
싹싹 쓸겠다 싹싹 쓸겠다
새로 오는 팔월을
단장하고 반길 테다
꽃을 떨어낸 열매들아
방학을 맞은 아이들아
크게 튼튼하게
웃으며 자라거라
 


하늘의 여름 - 차영섭

 

여름엔 하늘도 힘드실 거예요
사람들은 덥다고덥다고 피서를 가는데
하늘은 꼭 해야만 될 일이 있거든요
산에 산에 나무들도 키워야겠고
밭에 밭에 열매들도 익혀야 하니까요.
햇살 속에 물감이랑 설탕이랑 몰래 숨겨서
과일에게 곱게곱게 색칠도 해주고
듬뿍듬뿍 설탕을 뿌려 줘야 하니까요

 

 

가을 - 김지하
 

어지럼증을 앓는 어머니 앞에
그저 막막하더니
집을 나서는데
다 시든 낙엽을 밟으니
발바닥이 도리어 살갑구나.
 

 

가을 - 정호승
 

하늘다람쥐 한 마리
가을 산길 위에 죽어있다
 

도토리나무 열매 하나
햇살에 몸을 뒤척이며 누워있고
 

가랑잎나비 한 마리
가랑잎 위에 앉아 울고 있다
 

 

가을 - 조병화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푸른 모자를 높게 쓰고
맑은 눈을 하고 청초한 얼굴로
인사를 하러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더웠었지요" 하며
 

먼 곳을 돌아돌아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높은 구름의 고개를 넘어오고 있습니다
 


가을밤 - 윤석중
 

문틈에서
드르렁드르렁
"거, 누구요?"
"문풍지예요."
 

창밖에서
바스락바스락
"거, 누구요?"
"가랑잎예요."
 

문구멍으로
기웃기웃.
"거, 누구요?"
"달빛예요."

 

 

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 사랑 -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가을 저녁의 시 - 김춘수


누가 죽어가나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세상 외롬 속에서
물 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 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귀뚜라미 우는 밤 - 김영일
 

또로 또로 또로
귀뚜라미 우는밤
 

가만히 책을 보면
책속에 귀뚜라미 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귀뚜라미 소리만 듣는다
 

또로 또로 또로
멀리멀리 동무가 생각난다

 


단풍 - 김종상
 

빨갛게 익어가는 감을 닮아서
잎사귀도 빨갛게 물이 들었네.
감나무에 떨어진 아침 이슬은
감잎에 담겨서 빨강 물방울.
 

샛노란 은행알이 달린 가지에
잎사귀도 노랗게 잘도 익었네.
은행나무 밑으로 흐르는 냇물
은행잎이 잠겨서 노랑 시냇물.

 


울음이 타는 가을강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
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코스모스 - 박경용
 

무얼 먹고 저리도
키가 컸을까?
하늘 먹고 컸겠지.
바람 먹고 컸겠지.
 

무얼 발라 얼굴은
저리 이쁠까?
햇발 발라 이쁘겠지.
달빛 발라 이쁘겠지.
 

하늘 먹고
바람 먹고
나보다 키클라...
 

햇발 발라
달빛 발라
나보다 이쁠라...

 

 

겨울 - 윤동주

 

처마 밑에
시래기 다래미
바삭바삭
추어요.

 

길바닥에
말똥 동그램이
말랑말랑
얼어요.

 

 

겨울 들판 - 이상교

겨울 들판이
텅 비었다.

들판이 쉬는 중이다.
풀들도 쉰다.
나무들도 쉬는 중이다.

햇볕도 느릿느릿 내려와 쉬는 중이다.

 

 

겨울 이야기 - 이상현

 

겨울은
아이들 때문에 찾아온다.

알밤처럼
단단하게 여물어가는
목소리.

딱 벌어진
가슴으로,
눈싸움하는
개구쟁이들이 좋아

겨울은
언제나 눈송이를 터뜨린다.

불꽃처럼
사방에서 터뜨리는
그 눈밭에서

아이들은
날마다 깔깔대며 자란다.

제 키보다
큰 눈사람 만들 때,
제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그 겨울을 혼자서 굴릴 때

아이들은
부쩍부쩍 자란다.

 

 

눈 내리는 밤 - 강소천

말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누나도 잠이 들고
엄마도 잠이 들고

말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나는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벙어리장갑 - 신형건

나란히 어깨를 기댄 네 손가락이 말했지.
"우린 함께 있어서 따뜻하단다.
너도 이리로 오렴!"

따로 오뚝 선 엄지손가락이 대답했지.
"혼자 있어도 난 외롭지 않아
내 자리를 꼭 지켜야 하는걸."

 

 

하얀 눈과 마을과 - 박두진

눈이 덮인 마을에
밤이 내리면
눈이 덮인 마을은
하얀 꿈을 꾼다.

눈이 덮인 마을에
등불이 하나
누가 혼자 자지 않고
편지를 쓰나?
새벽까지 남아서
반짝거린다.

눈이 덮인 마을에
하얀 꿈 위에
쏟아질 듯 새파란
별이 빛난다.
눈이 덮인 마을에
별이 박힌다.

눈이 덮인 마을에
동이 터오면
한개 한개 별이 간다.
등불도 간다.

 

진짜로 힘드네요.. 체택부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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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 - 최계략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가니 꽃도 피어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떼도 숨어있다.

 

 

봄 - 김광섭

 

나무에 새싹이 돋는 것을
어떻게 알고
새들은 먼 하늘에서 날아올까


물에 꽃봉우리 진 것을
어떻게 알고
나비는 저승에서 펄펄 날아올까


아가씨 창인 줄은
또 어떻게 알고
고양이는 울타리에서 저렇게 올까

 

 

봄소식 - 이창건

 

꼬리가 짧은
2월의 버들강아지들이
연기가 나는 강 언덕을 바라보며
멍멍멍
짖고 있습니다


누가 오는가 봅니다

 

 

봄 시내 - 이원수


마알가니 흐르는 시냇물에
발벗고 찰방찰방 들어가 놀자.


조약돌 흰모래 발을 간질이고
잔등엔 햇볕이 따스도 하다.


송사리 쫓는 마알간 물에
꽃이파리 하나둘 떠내려온다.
어디서 복사꽃 피었나 보다.

 

 

봄이 올 때까지는 - 안도현


보고 싶어도
꾹 참기로 한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놓은 돌이
강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아무리 숨었어도 - 한혜영

 

아무리 숨었어도
이 봄햇살은
반드시 너를 찾고야 말걸
땅속 깊이 꼭꼭 숨은
암만 작은 씨라 해도
찾아내
꼭 저를 닮은 꽃
방실방실 피워낼걸


아무리 숨었어도
이 봄바람은
반드시 너를 찾고야 말걸
나뭇가지 깊은 곳에
꼭꼭 숨은 잎새라 해도
찾아내
꼭 저를 닮은 잎새
파릇파릇 피워낼걸

 

 

작은 약속 - 노원호

 

봄은 땅과 약속을 했다.
나무와도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싹을 틔웠다.
작은 열매를 위해
바람과 햇빛과도 손을 잡았다.
비오는 날은
빗방울과도 약속을 했다.
엄마가 내게 준 작은 약속처럼
뿌리까지 빗물이 스며들었다.

 

 

그해 여름밤 - 박인걸


쏟아지는 별빛을 물결에 싣고
밤새도록 지줄대며 흐른 냇물아
반디불이 깜박이던 한여름밤
불협화음에도 정겹던 풀벌레 노래
소나무숲 방금 지나온 바람
가슴까지 닦아내는 고마운 길손
왕거미 집 짓던 처마 밑에서
꿈길을 거닐던 하얀 바둑이
희미한 초승달 별 숲에 갇혀
밤새 노 젓다 지친 나그네
산새도 깊이 잠든 검은 숲 위로
더러는 길 잃은 운석의 행렬
수줍어 한밤에 고개를 들고
밭둑에 피어나는 달맞이꽃아
적막에 잠든 고향 마을에
은하수 따라 흐르던 그리움
이제는 아스라한 추억 너머로
꿈길에 더러 거니는 그해 여름밤

 

 

나무야, 나무야! - 박예분


너무 슬퍼하지마!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가만히 생각해 보렴,

 

뒷목 따갑게
햇살 내리쬐는 여름날
누군가
네 그늘에 앉아
한숨 쉬어간 적 없었니?

 

 
여름 - 권오범

 
모든 것이 바쁘다
해는 화끈하게 삶고 싶고
장마는 구름에 물 적셔와
세상 물바다 만들고 싶고


그 등쌀 아랑곳없이 살아남아
기어이 대를 이으라고
바람이 초목들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후덥지근하게 지쳐버린 중복허리


사람도 덩달아 수고로워야 한다
햇볕 피하랴 비 피하랴
시들고 물손받은 먹을거리들
어떡하든 살려내랴


선풍기 냉장고 에어컨
부채라고 해서 마음놓고 쉴 새 있겠는가
누워 빈둥대지 말고 하다못해 모기라도 쫓아야지
하루살이들 이별파티 때문에 가로등마저도

 


여름 2 - 권오범

 
햇빛 머금은 방울꽃 옥구슬처럼 굴리며
어렸을 적 방수가 잘된
우산 추억 되작이다 보니
토란 잎 등짝 혈관이 내 손등 닮았다
알토란같던 청춘 솔래솔래 허비해
껍데기마저 쭈그러든지 오래
징글맞게 불거진 핏줄 위해
토란국이 먹고 싶다
매미 시위 떠난 사랑의 화살이
뙤약볕 뚫고
어디론가 간절히 날아가는
웃비 걷힌 복날 한낮이라 더더욱

 


여름 - 정윤목

 
여름 사르락
흰 눈처럼 빛나던 빛
간 데 없고
흐려지는 안개비
소스락
강 만들 때


아이들
천방지축 뛰어놀고
땀방울
기쁜 열기


여름빛
쨍쨍하지만은,
우수의 습기 가득할 때
그리움 더욱 간절하여지고
희망조차 옅어지며
하나의 이름,
묻어둘 때
새들의 노래
풀들의 소리
끊임없는 파도
마음과 마음

 

 
여름나비 - 오보영

 
마땅히 내려앉을
꽃이 없어서
풀섶위를 방황하던
하얀 나비가


나보다 한발 앞서 미국엘 왔네


딸네집 앞뜰 화사한
분홍꽃에 앉아


두 날개 팔랑이며 반기어 맞네


그리던 님
예 와서 만났노라고
님의 체취
한껏 들이쉬고 있다고


자랑하며 어서오라 손짓을 하네

 


여름밤 - 김길자

 
처마 끝에
보름달 걸어 불 밝히고

 
말아놓은 멍석
주르르 펴
온 가족 둘러앉아


우물에서
막 꺼내먹는 수박맛
창자까지 시려와
삼복더위도
까만 씨 속으로 숨는다


별꽃 피던 이야기 코골고
엄마 품에 안긴 아기 꿈꾸는
유년기의 여름밤

 


여름밤의 추억 - 노태웅


돌돌 말린 멍석
텃마당에 깔아놓고
쑥향 번지는
모깃불 피어오르면
우물 속의 수박 한 덩이
나누어먹던 그때는
무수한 별들도
우물 속에 잠겨 있었다


샘물로 등목하던 깊은 밤
작은 돌 손에 깔고
바닥에 엎드리면
등을 타고 흐르는
물 한 바가지에
한기가 돈다
그때가 그리운 것은
등 밀어주는
정겨운 손길이 있어서일까?
초승달 내민 고개가
구름 속에 숨어들 때
여인들의 수다 속에
여름은 가고 있다

 

 

여름 밤하늘 - 동요아저씨

 

밤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네요.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깊은밤 숨바꼭질 놀이
구름 뒤로 꼭꼭 숨었을까요?
 
무더운 여름밤
견디기 힘들어  
차가운 계곡과
파도치는 시원한 바다로
모두 떠났을까요?

 

모두 어디에 있을까요?
어서 빨리 돌아와
검푸른 밤하늘에  
예쁜 수정 목걸이를 걸어주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여름비 - 박인걸


하염없이 쏟아지는
맑은 물방울들이
가슴속에 쌓인
지저분한 생각들을 씻는다.


허망한 탐욕들과
미련하고 어리석은 판단들
시기와 질투
그리고 오만과 불손까지


지칠 줄 모르고 퍼붓는
소방 살수(撒水)는
불처럼 달아오른 욕정을
얼음처럼 식히고 있다.


과분(過分)을 넘어선
삶의 수많은 욕망들을
완급(緩急) 조절하는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여름열매 - 이영지


파랗다 잎 곁에서 파랗다 더 파랗다
여름이 더운 여름 묶느라 한데 얼려
약간은 싱거우면서 떫은 맛이 파랗다
파랗다 잎을 닮아 파랗다 더 파랗다
여름이 익는 여름 묶느라 한데 묶여
약간은 못난 듯하며 열매값이 파랗다
파랗다 여름 닮아 파랗다 꼭 파랗다
긴여름 더위라도 잊느라 더 파랗다
약간은 기다리느라 발걸음이 파랗다

 

 

여름의 땅 - 차영섭

 

여름엔 땅도 바쁘실 거예요
사람들은 덥다고 물로물로 가는데
땅은 꼭 해야만 할 일이 많거든요
겨울 내내 참고 얼지 않게 붙든 뿌리랑
봄이 오자 사람들이 뿌린 씨앗이랑
봄의 땅이 애써 싹 트게 한 식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자라게 해야 하거든요
좀 더 멋있고 튼실하게 키워서
가을에 오는 햇빛이 쏘옥 단물 들게 하게요.

 

 
여름의 불씨 - 임영준


다시 한번 되살려보자
이글거리는 불볕 속에서


풀죽은 헛개비들도
그나마 숨돌릴 수 있고
지레 꺾어지더라도
마음껏 활개쳐볼 수 있는


얼룩도 별 대수롭지 않던
그 불씨를
다시 한번 되살려보자

 


팔월이 온다 - 홍우희  
 
칠월이 아직 사는
연립 우리집 마당
개구쟁이 쓰르라미
쓰쓰 쓰르렴 쓰쓰 쓰르렴
잔소리를 자꾸만
여기저기 늘어놓고
경비아저씨 대빗자루
오냐 그래 알았다
싹싹 쓸겠다 싹싹 쓸겠다
새로 오는 팔월을
단장하고 반길 테다
꽃을 떨어낸 열매들아
방학을 맞은 아이들아
크게 튼튼하게
웃으며 자라거라
 


하늘의 여름 - 차영섭

 

여름엔 하늘도 힘드실 거예요
사람들은 덥다고덥다고 피서를 가는데
하늘은 꼭 해야만 될 일이 있거든요
산에 산에 나무들도 키워야겠고
밭에 밭에 열매들도 익혀야 하니까요.
햇살 속에 물감이랑 설탕이랑 몰래 숨겨서
과일에게 곱게곱게 색칠도 해주고
듬뿍듬뿍 설탕을 뿌려 줘야 하니까요

 

 

가을 - 김지하
 

어지럼증을 앓는 어머니 앞에
그저 막막하더니
집을 나서는데
다 시든 낙엽을 밟으니
발바닥이 도리어 살갑구나.
 

 

가을 - 정호승
 

하늘다람쥐 한 마리
가을 산길 위에 죽어있다
 

도토리나무 열매 하나
햇살에 몸을 뒤척이며 누워있고
 

가랑잎나비 한 마리
가랑잎 위에 앉아 울고 있다
 

 

가을 - 조병화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푸른 모자를 높게 쓰고
맑은 눈을 하고 청초한 얼굴로
인사를 하러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더웠었지요" 하며
 

먼 곳을 돌아돌아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높은 구름의 고개를 넘어오고 있습니다
 


가을밤 - 윤석중
 

문틈에서
드르렁드르렁
"거, 누구요?"
"문풍지예요."
 

창밖에서
바스락바스락
"거, 누구요?"
"가랑잎예요."
 

문구멍으로
기웃기웃.
"거, 누구요?"
"달빛예요."

 

 

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 사랑 -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가을 저녁의 시 - 김춘수


누가 죽어가나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세상 외롬 속에서
물 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 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귀뚜라미 우는 밤 - 김영일
 

또로 또로 또로
귀뚜라미 우는밤
 

가만히 책을 보면
책속에 귀뚜라미 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귀뚜라미 소리만 듣는다
 

또로 또로 또로
멀리멀리 동무가 생각난다

 


단풍 - 김종상
 

빨갛게 익어가는 감을 닮아서
잎사귀도 빨갛게 물이 들었네.
감나무에 떨어진 아침 이슬은
감잎에 담겨서 빨강 물방울.
 

샛노란 은행알이 달린 가지에
잎사귀도 노랗게 잘도 익었네.
은행나무 밑으로 흐르는 냇물
은행잎이 잠겨서 노랑 시냇물.

 


울음이 타는 가을강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
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코스모스 - 박경용
 

무얼 먹고 저리도
키가 컸을까?
하늘 먹고 컸겠지.
바람 먹고 컸겠지.
 

무얼 발라 얼굴은
저리 이쁠까?
햇발 발라 이쁘겠지.
달빛 발라 이쁘겠지.
 

하늘 먹고
바람 먹고
나보다 키클라...
 

햇발 발라
달빛 발라
나보다 이쁠라...

 

 

겨울 - 윤동주

 

처마 밑에
시래기 다래미
바삭바삭
추어요.

 

길바닥에
말똥 동그램이
말랑말랑
얼어요.

 

 

겨울 들판 - 이상교

겨울 들판이
텅 비었다.

들판이 쉬는 중이다.
풀들도 쉰다.
나무들도 쉬는 중이다.

햇볕도 느릿느릿 내려와 쉬는 중이다.

 

 

겨울 이야기 - 이상현

 

겨울은
아이들 때문에 찾아온다.

알밤처럼
단단하게 여물어가는
목소리.

딱 벌어진
가슴으로,
눈싸움하는
개구쟁이들이 좋아

겨울은
언제나 눈송이를 터뜨린다.

불꽃처럼
사방에서 터뜨리는
그 눈밭에서

아이들은
날마다 깔깔대며 자란다.

제 키보다
큰 눈사람 만들 때,
제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그 겨울을 혼자서 굴릴 때

아이들은
부쩍부쩍 자란다.

 

 

눈 내리는 밤 - 강소천

말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누나도 잠이 들고
엄마도 잠이 들고

말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나는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벙어리장갑 - 신형건

나란히 어깨를 기댄 네 손가락이 말했지.
"우린 함께 있어서 따뜻하단다.
너도 이리로 오렴!"

따로 오뚝 선 엄지손가락이 대답했지.
"혼자 있어도 난 외롭지 않아
내 자리를 꼭 지켜야 하는걸."

 

 

하얀 눈과 마을과 - 박두진

눈이 덮인 마을에
밤이 내리면
눈이 덮인 마을은
하얀 꿈을 꾼다.

눈이 덮인 마을에
등불이 하나
누가 혼자 자지 않고
편지를 쓰나?
새벽까지 남아서
반짝거린다.

눈이 덮인 마을에
하얀 꿈 위에
쏟아질 듯 새파란
별이 빛난다.
눈이 덮인 마을에
별이 박힌다.

눈이 덮인 마을에
동이 터오면
한개 한개 별이 간다.
등불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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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닿는 까닭;;;좀 빨리좀 빨리 빨리 부탁드려여 !! 오늘 8시까지 부탁드러여!!!!!!! 완전... 마음에 와 닿는 까닭: 시의 분위기가 엄마가 직접 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포근해서...

가슴에 와 닿는 좋은 글귀

... 교훈적이거나 감동적인 글귀로 부탁드려요. 고교 참고서적 중 좋은 글귀가 있더군요 소개해 드립니다. 세월이 흘러간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성장하고 커가고 있다는 이야기.....

... 마음에 와닿는 시부탁드릴게요.

... 와닿는 시 없을까요? 학교숙제인지라... 있으면 부탁드릴... 함께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눈을 위한 ... 눈물의 가슴 시린 부딪침, 사랑 눈이 쌓인다 눈빛이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