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들..

작성일 2004.07.11댓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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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그러셨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이쁜 여자는

모나리자 이고..


중국에서는 양귀비..


한국에서는 기생 황진이가 제일 이쁘다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클레오파트라 라고 합니다.


황진이는 마음이 아름다웟다고 하는데요..


당시 모나리자, 양귀비, 황진이, 클레오 파트라는


어떤 접대를 받앗고..


어떠한 인기가 잇었고..


그 미인들과 관련된 이야기나 놀랄만한 이야기나.


신기한 이야기 등을..


자세히 좀 갈켜주세요 ^ㅇ^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세상에서 가장 긴 영어단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차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물고기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강아지 #세상에서 가장 큰 수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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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의 비밀
모나리자는 우리들의 모습과는 달리 눈썹이 없습니다.
이 초상에는 처음부터 눈썹이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그것은 당시 넓은 이마가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져, 여성들 사이에 눈썹을 뽑아버
리는 일이 유행했기 때문이라고 하구요..
모나리자의 미소’는 보는 사람에게 신비성을 느끼게 하여 많은 풍설(風說)과 함
께 ‘모나리자의 수수께끼’로서 오늘날도 적지 않은 문학적 관심거리여서요..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는 알수없습니다..
사족인데, 의사들이 연구한 바로는 모나리자의 그런 특이한 미소는 안면근육에 병
이 있어서 입가 형태가 일그러져 나온 결과 라고 하더군요
의사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과학(논리)으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에 모나리자의 미소
라고 해요..음. 모나리자는 이것벆에 알려드릴수가 없네여..(__)



양구ㅣ비
본명 양옥환. 당대포주 영락인(719~756)(지금의 섬서 화음현) 출신. 음률의 조예가 깊고 가무에 능하였다. 당현종의 총비. 원래는 현종의 비가 아니라 당현종의 왕자 제 18 대 수왕(壽王)의 왕비였다. 즉, 현종의 며느리. 양옥환은 당현종이 그녀의 자태에 반하여 여도사로서 입궁시킴. 도호는 태진(太眞). 천보사년(745,天寶四年) 그 후에 현종의 총애가 지극하였다. 그녀가 현종 앞에서 춤을 추었는데 그 춤이 바로 예상우의무(霓裳羽衣舞)라는 것이다. 절세의 미모와 재주로 현종의 총애를 받고 일족이 부귀영화를 누렸다. 안사(安史 : 안록산-사사명)의 난 때 피난길에서 피살되었다.


※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중국 봉건 사회의 황금 시대라 일컬어졌던 당왕조의 개원 연간을 정점으로 그 후 이어지는 천보 연간(742∼756)에는 그렇게 번영했던 당왕조의 발전상도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현상은 결코 우발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고 잠재해 있던 경제적·사회적인 근원적 병폐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당시 간신들의 횡포와 현종의 양귀비에 대한 무분별한 총애가 그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림보가 조정의 실권을 한 손에 쥐게 된 736년에 현종은 사랑하던 무혜비(武惠妃)를 잃었다. 무혜비를 잃은 현종은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후궁에는 아리따운 미녀가 3천명이나 있었으나 누구 하나 현종의 마음을 끄는 여인은 없었다.

이럴 즈음 현종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한 가지 소문이 현종의 관심을 끌었다. 수왕비(壽王妃)가 보기 드문 절세의 미녀라는 소문이었다. 현종은 은근히 마음이 끌려 환관에게 명하여 일단 수왕비를 자신의 술자리에 불러오도록 하였다. 현종은 수왕비를 보자 한눈에 마음이 끌렸다. 수왕비는 빼어난 미모일 뿐 아니라 매우 이지적인 여성으로 음악, 무용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술자리에서 현종이 작곡한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의 악보를 보자 그녀는 즉석에서 이 곡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그녀의 자태는 마치 선녀가 지상에 하강하여 춤을 추는 듯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수왕비야말로 다름 아닌 후의 양귀비(楊貴妃)로서 현종 황제와 양귀비의 로맨스는 이 만남을 계기로 그 막이 오르게 되었다. 양귀비의 본명은 옥환(玉環)으로 원래는 현종의 열 여덟 째 아들 수왕 이모(李瑁)의 아내였다.

수왕 이모는 현종과 무혜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니 양귀비는 바로 현종의 며느리인 것이다. 56세의 시아버지 현종이 22세의 며느리와 사랑을 불태운다는 것은 당시로서도 충격적인 스캔들이 아닐 수 없었다.

현종은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선 양귀비 자신의 뜻이라 빙자하여 그녀를 여도사(女道士)로 삼아 우선 남궁에서 살게 하고 태진(太眞)이라는 호를 내려 남궁을 태진궁(太眞宮)이라 개칭하였다. 현종은 수와 이모에게 죄책감을 느껴서였는지 수왕에게 위씨의 딸을 보내어 아내로 삼게 하였다.

태진이 귀비로 책봉되어 양귀비로 불리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지만 남궁에 들어온 태진에 대한 현종의 열애는 대단한 것이었다. 남궁에 들어온 지 1년도 채 못되어 태진에게서는 마치 황후가 된 듯한 도도한 행동마저 보였다.

현종과 태진 이 두 사람은 깊은 밤도 오히려 짧은 듯 해가 높이 떠올라도 잠자리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렇게 하여 일찍이 흥경궁에 근정전을 세워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정무에 열중하던 현종 황제는 정치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상실하여 마치 딴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남궁에 들어온 지 6년 후 태진은 귀비로 책봉되었다. 명실 공히 양귀비가 된 셈이다. 궁중의 법도상 귀비의 지위는 황후 다음이었으나 이때 황후는 없었으므로 사실상 양귀비가 황후의 행세를 하였다. 양귀비는 더욱 더 현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그녀의 일족들도 차례차례 고관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양귀비는 고아 출신으로 양씨 가문의 양녀로 들어갔기 때문에 혈연을 같이 하는 친척은 없었지만 현종은 양귀비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양씨 일족에게도 특별한 배려를 하였다. 양귀비의 6촌 오빠 양소는 별로 품행이 좋지 않았는 데도 불구하고 민첩하고 요령 있는 행동으로 점차 현종의 신임을 받아 현종으로부터 국충(國忠)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 후 재상 이림보와 대립하였고 이림보가 실각한 후에는 안록산과도 대립했던 양국충이 바로 양귀비의 6촌 오빠이다.

천보 10년(751) 칠월칠석날에 있었던 일이다.

현종은 화청궁에 거동하여 장생전에서 양귀비와 함께 노닐고 있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 하늘에는 은하수가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건만 웬일진지 칠석의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양귀비는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현종은 왜 우느냐고 달래듯 물었으나 양귀비는 그저 울음만을 계속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이윽고 양귀비는 눈물을 닦으면서 띄엄띄엄 그의 심정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하늘에 반짝이는 견우성과 직녀성,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입니까.
저 부부의 지극한 사랑, 영원한 애정이 부럽습니다. 저 부부와 같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에도 자주 기록되어 있지만 나이가 들면 가을 부채처럼 버림을 받는
여자의 허무함,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서글퍼 견딜 수가 없아옵니다......."

양귀비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현종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을 손을 서로 붙잡고 그들의 영원한 애정을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에게 맹세하는 것이었다.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될 지이다."

이 뜻을 풀이하면, '비익조'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새로, 암수가 한 몸이 되어 난다는 데서 사이가 좋은 부부를 상징하고, '연리지' 또한 중국 전설에 나오는 나무로, 뿌리는 둘이지만 가지는 합쳐져 하나가 된다는 데서 부부의 깊은 애정을 상징한다. 현종과 양귀비는 이 '비익조'와 '연리지'처럼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을 맹세한 것이다.

하지만 간신이 제멋대로 정사를 농락하고 현종은 양귀비에게 정신을 빼앗겨 당왕조의 정치는 부패 일로를 치닫고 있었다. 즉, 안록산이라는 절도사가 지나치게 권력을 쥐게 되어 조정에서 견제를 하려하자 난을 일으키게 되는데(안록산의 난) 그 후 사사명의 난, 황소의 난 등으로 당나라는 점차 쇠퇴하게 된다.


황진이
황진이는 조선 중종 때 개성의 기생이다. 그러나 그녀의 정확한 생존연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녀가 1520년대에 나서 1560년대쯤에 죽었을 것이라는 것만 황진이와 사귄 사람들의 일화로부터 추측할 수 있다. 또 황진이의 출자(出自)가 황진사의 서녀라고 전해져 있지만, 그녀는 개성의 아전진(陳)가에서 기녀의 몸을 빌어 태어났다는 것과 그녀의 기명이 명월(明月)인 것만은, 종실 벽계수(碧溪守)와의 수응에서 확실한 것 같다. 당시만 하여도 전국에 공식적으로 약 3만 명의 기생이 있었다. 원칙의 불의 속에서 태어나 관원 남성들의 노리개 거리로 존재한 해어화(解語花)인 황진이가 왜 이렇게 유명하고 신화적(神話的) 조명까지 받아왔는가?

그 원리는 간단하다. 당시, 사랑을 할 수 있는 장(場)은 기방(妓房)뿐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정신적인 세계에 머물지 않고 육감적(肉感的)인 것과 부합할 때, 그녀의 미모와 지성은 그런 전설을 불러일으킨 진원이 될 수 있다. 지금이야 그런 것을 초월 해서 전국민의 애인이 되었는데, 그 한몫은 황진이의 전설을 부연한 문인과 소설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은 지금이나 예나 같은 심정이었던지, 황진이를 에워싼 인물로 야사(野史)에 전하는 것만, 철학자 서경덕(徐敬德), 재상 송순(宋純), 황진이와 동거했다는 종실(宗室),이언방(李彦邦), 재상 소세양(蘇世讓)등이 있고, 망신한 이로 지족선사( 知足禪師)가 있고, 진이의 사적을 기록한 이로서도 허균(許筠)과 이덕형(李德炯), 유몽인(柳夢寅)등이 있다.
그런가 하면 백호( 白湖) 임제(林梯)는 황진이의 무덤에서 시조를 읊고 치제(致祭)했다 하여, 빈축을 사고 급기야 파직을 당한 것도 특기할 만 하다. 4백년 뒤, 이런 것을 많은 현대 문인들이 참여해서 다시 부연해서 황진이는 이제 기생으로서 전국민의 애인이 되었다. 황진이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해어화(解語花)로 존재했겠지만, 오늘날까지 숭앙을 받고 있는 것은 그녀의 문인(文人)다운 풍모, 즉 6수의 시조와 4수의 한시(漢詩)가 있기에 이를 받아들이는 조선 문치주의(文治主義) 전통이 지금도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

시조야 기방의 가요니까 황진이가 손쉽게 지었다 치더라도 한시는 평측(平仄)을 맞춰야 하니까, 당시로서는 일정한 교양을 쌓아야 한다. 여기에서 황진사 딸이라는 전설이 나왔을 것이다. 그것은 황진이의 머리가 비상하다는 증거가 될 것이고, 당시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을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더욱이 시조, "어뎌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로던가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난 졔 구태야 보내고 그리난 情(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에서는 변칙적인 작법을 쓰고 있는 이 '졔구태야'의 용법 은 특기할 만하다. 그래서 몇 수 안되는 시조를 가지고 국문학사상 하나의 이정표(里程標)가 되어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황진이를 육감적인 의미의 해어화로 파악할 수는 없다. 단지 그녀의 전설을 추체험(追體驗)하고 있는 것이다.


● 황진이(黃眞伊)의 작품 세계

다정다감하면서 기예에 두루 능한 명기(名妓)였던 황진이는 시조를 통하여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주로 사랑에 관한 내용을 담은 그의 작품들은 사대부 시조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표현을 갖춤으로써 관습화되어가던 시조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고 평가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체념을 '靑山은 내 뜻'이라고 역설적인 자기 과시로 표현하거나. 왕족인 벽계수(碧溪守)를 벽계수(碧溪水)에 견주어 유혹할 수 있는 등의 재치는 황진이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인 것이다. 황진이의 시조에 이르러서야 기녀(妓女) 시조가 본격화되는 동시에 시조 문학이 높은 수준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Cleopatra)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의 그리스 시대 왕비들의 전통적인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 시대의 마지막 군주였던 클레오파트라 7세 여왕의 이름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클레오파트라 여왕(기원전 51-30)은 이집트의 그리스시대(기원전 332-30) 마지막 통치자로서 로마 제국과의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 속에서 파란만장한 정치생활을 이끌었다.

기원전 51년 그녀의 부친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죽자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클레오파트라의 정치적 후견인이 되었고, 그가 케사르에게 쫓겨나 알렉산드리아에서 암살당한 뒤 정식으로 이집트 왕위에 올랐다. 케사르가 죽은 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와 관계를 맺었고, 로마는 이에 대항하여 기원전 32년 이집트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기원전 31년 벌어진 악티움(Actium) 해전에서 클레오파트라의 해군이 주축이 된 안토니우스 측은 경쟁 세력인 옽비우스에게 패했고 클레오파트라는 서기 전 30년 8월10일 알렉사드리아에서 안토니우스와 함께 자결하였다. 투탄카문 Tutankhamun 투탄카문은 기원전 1336년 아케타텐(Akhetaten)에서 아케타텐(Akhetaten)과 키야(Kiya) 아이에서 투탄카텐('아텐이 생명을 줌'이라는 뜻)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부친 아케나텐이 죽은 후 여덟 살 때 왕위에 올라 수도를 멤피스로 옮기고 자신의 이름도 아문 신을 따서 투탄카문('아문이 생명을 줌'이라는 뜻)으로 바꾸었다.

투탄카문은 쇠퇴하던 제18왕조 말의 보잘것없는 왕으로서 9년을 통치하고 열일곱의 나이에 죽었지만, 1922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그의 무덤의 화려한 부장품들로 인해 오늘날 이집트의 대표적인 파라오로 인정받고 있다.

투탄카문의 무덤은 모두 네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맨 안쪽의 매장실에는 네겹의 금박을 입힌 나무 상자안에 붉은 화강암으로 만든 석관이 있으며 이 안에는 세겹의 관이 들어 있었다. 특히 맨 안쪽의 관은 110kg의 순금으로 제작되었고 색유리, 라피스 라줄리, 터키옥, 홍보석 등으로 상감 처리한 정교한 조각술을 보여주고 있다. 이 관 안에서 미이라가 발견되었고 머리 부분에는 무게11kg의 황금 가면이 덮여 있었다. 왕의 미이라의 보존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고, 시신의 부검 결과 뇌의 치명적인 손상으로 죽은 것으로 판명되어, 암살 등의 비극으로 후계자도 없이 통치를 마감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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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모나리자쓰신분!

웃긴 얘기를 만드느라 애쓰신 것 같은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죽기전 마지막으로 남긴 걸작이 모나리자이며 그가 사랑하던 여인이었습니다

다 그리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기에 눈썹이 없는 것이고요

다른사람이 완성하려 했지만 공들인 그의작품에 감히 손댈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는 그림인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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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옛날에서 미인의 기준점은

애 잘낳게 생긴 여자입니다

S라인 그런거아님

그냥 좀뚱뚱함

양귀비도 사실은 뚱뚱했다고하고

황진이는모르겠음

아무튼

옛날에서의 미인의 기준점 S라인과 얼굴을 안봅니다

애를잘낳게생기며잘키우게생긴여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들..

... 그 미인들과 관련된 이야기나 놀랄만한 이야기나. 신기한 이야기 등을.. 자세히 좀... 이마가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져, 여성들 사이에 눈썹을 뽑아버 리는 일이 유행했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누굴까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나일까요? 나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도 될까요? 세상에선 누굴까? 알수없네. 얼굴만 미인이라고 가장 아름다운건 아닌것같고 마음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죠?? 객관적으로요. 옛날 사람이든, 지금... 않은 가 싶은데... 저는 양귀비가 제일 나을 것 같네요.. 중국의 4대 미인이라고 유명한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 제가생각하시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어머님이 아닐까여?^^; 어머님보다 아름답다구 생각되는 사람은 없다구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미인이라면 모를까 아름...

세계의 10대 미인

... '영국 사람들이 뽑은 세계 10대 미인'이런걸로요. 1위가 엘리자베스 테일러, 2위가...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라고 불리우기도... 5위. 소피아 로렌 시원스런...

세상에서 가장아름다운 여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일까요? 저는 클레오 파트라 라고 여기는데..... 아프리카 부족은 검을수록 미인일 것이고 원시시대에는 튼튼하고 아이를 잘 낳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 사람이라면 미인들이 있겠지요 중국에는 달기,포사, 왕소군, 조비연, 양귀비가 있고요 서양에는 클레오파트라를 들 수 있겠네요 그런데 저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머리카락 색깔?

... 제개인적 생각엔 그시대에 주도권을 잡고있는 민족의 머리색깔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도 '찰랑대는 금발의 여자' 하면 대게 미인이 떠오르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누구...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누군지 궁금해서요... 클레오파트라나 어우동, 양귀비... 글쎄요 사람의눈에따라 다르겠지만 현대와 그당시의 미인기준은 달랐다고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 세상에서 가장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우선 이야기를하기전 아름답긴하지만 어딘지... 알아주는 미인들을 모두 불러 찾지만 꿈속에서 만난여인을 찾지는 못합니다(여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