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탑 판타지 동성팬픽 추천좀요..

틴탑 판타지 동성팬픽 추천좀요..

작성일 2012.12.16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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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팬픽에 눈을뜬지 한달된 인간인데요
제가 개와고양이 고스트헌터 이쁜이엄마가생겼어
안녕하세요 21세기를...
쨋든 저렇개 밧는대요 ㅠㅜㅠ
고스트헌터같은.판타지물이나 호러물은.없나요??
ㅜ 제발추천점 부탁드랴요 ㅜ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엔젤입니다. 동성팬픽 올리겠습니다^^ 답변확정 부탁!!

 

아직 2월이라 춥다. 여름이라면 있었을 나무 위의 나뭇잎조차 없다. 보기만 해도 쌀쌀한 그 풍경 사이에 두 남녀가 나란히 서있다. 오늘은 발렌타인데이. 막 종례를 마친 때라 둘 다 가방을 메고있다. 이제 교문만 나가면 바로 집에 가면 되는데 소녀는 5분째 소년을 불러놓고 아무말도 하지않는다. 곧 소녀가 보물이라도 되는 듯 두손으로 가슴에 꼬옥 품고있던 초콜릿 상자를 수줍게 내민다. 곧게 앞으로 뻗어지지 못한 두 팔에 소녀의 마음이 담겨있다. 수줍다. 나뭇잎 하나 없이 외롭게 가지만 있는 나무들 사이에서 소녀가 소년에게 초콜릿 상자를 내미는 장면이 수줍고 어설프다. 소년이 오른손을 뻗어 초콜릿 상자를 받아들자, 소녀의 두근거리다 못해 미친듯한 심장때문에 그 작은 입에서 한마디 새어나온다.

 

"나..나랑사귀자 이찬희"

 

소년, 그러니까 찬희는 이런일이 한두번이 아닌 듯 익숙한 표정이다. 무표정인듯 아닌듯 입가엔 애매한 미소가 걸쳐있다. 포장용 미소일지도 모르는 일. 찬희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다는 학교의 여자애들은 널리고 널렸다. 이찬희는 교내에서 여자보다 더예쁘다는 얼굴로 고백 많이 받는다는 이미지로 유명하다. 어떻게 남자가 여자보다 예쁘냐며 헛소문이라고 믿지 않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물론 과장된 말인것도, 거짓인것도 아니다. 찬희를 보고 반해 눈에 하트가 그려진 여자애들은, 하나 둘 친한척을 하거나 몇번눈여겨보다가 고백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찬희는 원래 소녀가 꺼내는 말을 들었을 때 부터 마음은 정해두고 있었다. 허나 예의상, 막상 차버린다면 소녀는 분명 상처입을테니까. 평소와도 다른 멘트를 준비하려 머리를 굴린다. 그리고 찬희의 입이 열린다.

 

"미안. 그냥 친구로 지내자"

 

둘다 고개를 바닥으로 떨군다. 그래도 소녀는, 초콜릿은 너 먹으라며 이만 간다는 소리를 하고 뒤돌아선다. 그 장소에 혼자 멀뚱멀뚱하게 서있는 찬희는 곧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익숙하게 단축번호 1번을 누르고 통화버튼을 누른다. 휴대폰 액정에 '이병헌'이라고 큰 글씨가 찍힌다. 야. 왜. 둘의 전화는 이렇게 짧게 시작된다. 찬희에게는 아쉽게도 병헌은 찬희가 무슨말을 할지 다 눈치를 채고있는 것 같다.

 

"나 또 고백받았어"

 

 

 

 

 

 

 

 

 

 
 01.

 

 


-병헌

 

이찬희가 고백받으면 나한테 얘기하는게 그렇게 오래된 일인것만큼은.. 별로 아닌것같다. 태어나서부터 계속 이 지역에 살던 나는, 어릴 적 소심해서 친구도 제대로 못사귀고 공터에서 또래 아이들이 어려서그런지 축구같지않은 축구를 하는걸 보고만 있었는데 처음보는 아이가 다가와 자판기에서 꺼낸 음료수를 건넨다. 땀에 절어있는 것으로보아 계속 축구를 하고 있었던 듯 했다. 그때가.. 다섯살?이었지.아마. 이사온지 일주일도 안 됫는데 잘 적응하고 있던 아이였다. 그날 나도 다섯살짜리들이 하는 축구같지않은 축구를 했고, 그날이후로 이찬희랑 친해졌다.

 

초등학교 6학년. 나랑 반은 나뉘었었지만 2반에 한달에 두번꼴로 고백받는 아이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이찬희였다. 그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찬희한테 고백을 하든, 이찬희가 고백을 받든. 6학년땐 반이 나뉘어서 별로 친하지도 않았다. 이대로 계속 사이가 멀어져갈줄 알았는데 같은 중학교로 올라가게 되고 3년 연속 같은반이 됫다. 그 3년간 우린 계속 친해졌고 같은 고등학교에도 가게 됫다. 1학년때 반이 같았고 그때부터 점점 고백을 많이 받던 이찬희가 왠지 멀게만 느껴졌다. 그해10월. 최종현이란 놈이 교실에서 이찬희한테 공개 고백을 했고 그때 나는 내 눈치를 살피던 이찬희를 봤다. 이후로 난 이찬희와 왠지 가까워졌고, 이찬희는 그 이후로 고백을 받으면 나한테 털어놓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점점 친해져왔다.

 

2학년으로 교실이 바뀌던 날, 1학년의 어떤 여자애가 고백을했다. 이찬희는 그 여자애가 맘에 들었는지 생각해보겠다고 하더니 나한테 말했다. 나? 안된다.난 반대다. 입학하자마자 고백하다니 순 여우다. 이찬희는 그 다음날 거절했고, 계속 계속 고백을 받아 왔지만 죽 거절해왔다. 고백을 거절받은 아이들은 모두 포기하고 물러났지만, 끈질기게. 아직까지 늘어져 이찬희를 붙잡고 있는 놈은 딱하나. 최종현.

 

어찌됫건 오늘도 고백을 거절한 이찬희는 평소처럼 교문앞으로 나오며 전화를 건다. 마침 매일 가던 떡볶이집 앞을 지나가고 있던 터라 그 떡볶이집에서 기다리겠다고 한 후 이찬희가 올때를 기다렸다. 곧이어 문이 열리며 딸랑거리는소리가 나더니 이찬희가 가게 안을 두리번거린다. 이내 나를 발견하고는 내 앞자리로 가 앉는다.

 

여긴 한두번 오는 데가 아니다. 이찬희가 고백받았다고 항상 전화하면 오는 곳이다. 평소처럼 이천원어치 떡볶이를 시키고 떡볶이가 나오면 일단 먹으면서 얘기하는거다.

 

"그래서?"

 

일단은 떡볶이를 입에 하나 집어넣고 뜨겁고 매워서 제대로 나오지 않는 발음으로 말한다. 이찬희는 못알아들었는지, 아니면 알아들었는데 뭘 뜻하는건지 모르는표정으로

 

"응?"

 

한다. 떡볶이를 목구멍으로 넘기고는 찼냐고. 하고 물어본다. 물어보기 무섭게 바로 답이 온다.

 

"응."

 

내 목구멍은 뜨거워서 너덜너덜한데 이찬희 표정은 얼었다.

 

"야 얼굴 펴."

"응?"

"다른때는 안 그런데 왜맨날 이땐 얼굴이 굳었냐?"

"어..그냥.."

 

말 안해도 안다.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 는 오버일지 몰라도 그렇다. 이찬희랑 나는. 이찬희 속사정이 나한텐 뻔히 보인다. 고백 받는게 한두번이 아니어도 부담스럽겠지. 다음엔 또 어떤 멘트로 거절하지. 왜 다른 사람들 냅두고 나한테 고백하지. 혹시 이제까지 받은 고백들이 다 장난이면 난 뭐가 되지. 분명 이 네가지중에 두개 이상 속한다에 내 남은 이번달 용돈 삼천원. 아니 평생 남은 용돈들과 내 이름을 건다.

 

근데 나도 모르게 이찬희를 계속 보고있었나. 이찬희가 옆에 놓인 수저통에서 젓가락을 한짝만 꺼내더니 내 손등을 쿡쿡 찌르며 여보세요. 한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으으응?" 한다. 이찬희가 풉하고 웃는다. 아..쪽팔려.

 

"근데 왜자꾸 차는거야? 전교 5등 안에 드는애에 교장 손녀, 집 좀 사는애여도 차고."

 

이찬희가 떡볶이를 집어들고 테이블 밑에서 두 발을 앞뒤로 흔들며 대답한다.

 

"음. 난 그런거 안보거든."

"웃기고 있네."

 

이찬희의 표정이 장난스레 굳는다. 장난스레 나를 째려보는 그 눈빛에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온다. 계속 떡볶이를 먹으려고 테이블 위 접시를 보는데 떡볶이가 하나밖에 안 남았다. 헐? 나 세개밖에 안먹었는데. 이찬희 이 돼지. 일단 마지막남은 떡 사수가 중요하다. 마지막 남은 하나를 먹으면 살찐다고들 하지만 우린 그런거 신경 안 쓴다. 일단 배고프고 난 아직 세개밖에 안 먹었다. 남은 떡 하나를 향해 분노의 젓가락질을 하는데 이찬희 이 얄미운 자식이 다른 떡들은 지가 다 삼켜놓고 남은 떡마저 집어 날 보며 메롱을 하더니 입안에 쏙 하고 집어넣는다. 아. 진짜 내가 아는 애들중에 쟤가 제일 얄미워.

 

"야!!"

"네~?"

 

얄밉게 말꼬리를 길게 뺀다. 아.얄미워.

 

"이...돼지야!!"

"어.. 왜 '꽃'자는 생략해? 꽃돼지*^0^*"

"맞을라고 이게."

 

이찬희 입에서 웃음이 터진다. 덩달아 나도 웃음이 터진다. 계산은 주문할 때 했으니까 그냥 나가면 된다. 가방을 메고 떡볶이집 문을 나선다. 또 오라는 주인 아줌마 목소리가 익숙하다. 이찬희가 고백을 받으면 항상 여기서 시간을 때우고 집에 가다 보니까 본의아니게 단골손님 다 됫다.

 

네시 삼십분밖에 안 됫는데 벌써 여섯시는 된 것 처럼 피곤하다. 이찬희랑 같이 걷고 있긴 한데 데려다주는 건 절대 아니다. 그냥 서로 옆집일 뿐. 계속 걷다 이찬희 집이 나오자 이찬희는 나한테 손으로 인사를 하고 들어간다. 여자친구 집까지 바래다 주는 남자친구 마냥 난 계속 이찬희 집 문이 닫길 때 까지 계속 그자리에 서서 기다린다. 문이 닫히고 이제 난 우리 집에 들어가면 되지만 그건 아직이다. 얼마 전 우리집 맞은편으로 이사 온 민수형 집 초인종을 누르자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린다. 민수형이 검은 반팔티 차림으로 자기방으로 들여보낸다. 민수형은 주방에 가 핫초코를 타온다. 민수형 침대에 걸터앉자 민수형은 흰 머그잔을 내밀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조용히 말을 꺼낸다.

 

"또 고백 받았대"

 

민수형이 얼굴에 물음표를 채우고선 쳐다본다.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 고백은 자꾸 받는데 자꾸 찬다 그러고. 근데 웃긴건 걔가 고백 받는게 왜 이렇게 싫지. 아무렇지도 않으면 또 몰라도."

 

뜨거운 흰 머그잔이 뜨거운지 잘 느껴지지 못할 정도로 머릿속에서 생각나는건 이찬희 뿐. 민수형은 조용히 듣기만 하고 있다.

 

"형 나 왜이러지?"

 

머그잔을 만지작거리던 형이 대답을 안할 기세로 보이더니 내가 한숨을 푹 쉬려는 타이밍에 맞춰 대답을 한다.

 

"너.. 게이냐?"

"...형 개그 아니지?"

"..미안"

 

두 손을 맞대고 장난스레 사과하는 민수형을 본다. 장난맞구나.

 

"근데 개그 아닐수도있어. 만약에 그게 이찬희 뺏길까봐 그런거면 개그 아냐. 잘생각해봐."

 

어느정도 방 안에 정적이 도는 듯 하더니 민수형이 이내 한숨을 푹 쉬고는 이제 고딩은 숙제할시간이라며 날 밖으로 내민다. 오늘 숙제 없는데...

 

"그럼~ 감정이 뭔지 잘 생각해봐~ 이병헌 군."

 

형 집 문이 닫긴다. 할 수 없이 터덜터덜 우리집 문을 연다. 내가 게이인가..? 그럴리가없는데. 비록 몇일 못가고 내가 차버렸지만 중학교때도 여자 만나고 다녔었는데 설마.. 그래도 민수형이 한 얘기에 대한 내용은 일단 save.

 

 

 

 

 

 

 

 

-찬희

 

집에 들어와서도 이병헌의 마지막 뒷모습(..)이라도 보려고 재빨리 창문으로 달려가 확인한다. 근데 이병헌이 자기집이 아닌 민수형 집으로 간다. 들어갔네. 뭐지. 왜갔지. 혹시 둘이 그렇고 그런건가..? 에이설마. 근데 생각해보니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내가 집에 들어온 걸 참 일찍도 안 창현이가 방에서 달려 나온다.

 

"형!!!!!!"

 

창현이가 내 손목을 잡고 거실 소파까지 고이고이 안내한다.

 

"오늘은? 고백 받았어?"

 

소파에 날 털썩 밀어 앉혀놓고 자기도 옆에 앉으며 눈을 반짝인다.

 

"응."

"그.. 이병헌이란 형한테 아직 말 안했지?"

"했는데."

 

창현이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뭐야. 상관없으면서.

 

"야! 그래도 난 형이랑 같이사는데 왜 그형한테 먼저 말해!"

"야? 너 일로와봐"

"아뇨 죄송합니다 형."

 

창현이 나한테 지른 야 라는 소리가 별로 낯설진 않다. 원래 흥분하면 뒤에서 존댓말을 하던 뭘 하던 '야'라는 말부터 나오는 창현이에겐 원래 익숙해 져 있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순 없기에 머리에 밤을 먹인다.

 

"아. 아퍼!!"

"버릇 고치란 형의 따끔한 충고야. 나그럼 간다."

 

방까지 가면서 목도리부터 와이셔츠가 나오기까지 옷을 천천히 벗으며 팔에 걸친다. 방문을 열고 일단 문을 닫는다. 내 방 창문 밖으로 또다른 창문이 보인다. 슬슬 어둑어둑한데 아직 불은 안 켜져 있다. 이병헌 방이다. 거실은 조용한 게 창현이가 방에 들어갔나보다. 일단 옷을 챙겨 씻으러 욕실로 간다. 물을 맞으면서 생각해보니 지금 이병헌도 씻고 있겠지? 일단 다 씻은 후 물기를 닦고 옷을 입고 나왔는데 엄마가 거실에서 티비를 보며 귤을 먹고 있다. 엇 하며 잠시 발걸음이 자동적으로 멈추더니 한개만 까 입에 털어 넣고 방으로 다시 들어온다. 조용히 창문 앞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킨다. 그런데도 할게 없다. 아. 생각났다. 이병헌 싸이 가볼까? 아. 이병헌 싸이 안하지. 막 컴퓨터를 끄려는데 건너편 방에 빛이 켜지고 곧이어 커텐도 열린다. 이병헌이다. 거의 매일 이렇게 보지만 이때 보는 이병헌이 제일 반갑다. 이병헌도 나도 서로에게 손짓으로 이사를 한다.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핸드폰을 집어 이병헌에게 전화를 건다. 건너편에서 이병헌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는 게 보인다. 풋. 항상 보던거지만 왠지 귀엽다.

 

"어. 오늘은 조금 빨랐어! 6초."

"뭐야. 그런건 왜 세."

"뭐어때~ 아 너근데 오늘 좀 늦게 들어온 거 같다? 뭐했어?"

 

아는데. 왜 늦게 들어온 지 아는데. 일부러 모른 척 한다. 민수형 집에갔다고. 가서 뭐 했다고 말 할 줄 알고 모르는 척 대답한건데. 저 바보. 내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다.

 

"으응? 아.. 그냥..좀."

"치- 싱겁긴."

"싱거워?"

"응. 많이 싱겁다"

"그럼 소금 가지구 와. 간 좀 하게."

"맞는다."

 

입으론 욕을 내뱉지만 사실 피식 한다. 내가 했으면 재미 없었을 것 같다.

 

"근데 최종현은 요즘 어때?"

"몇주간 아무 연락도 안하고 말도 안 걸긴 하는데. 그러니까 더 불안해 왠지. 대신 급식실이나 매점 같은데서 마주칠 때 마다 어색하게 웃긴 해."

"조만간 또 고백하겠지."

"응. 전엔 선물도 주던데 부담스러워."

"한두번 받는 고백이 아닐텐데 부담스럽다니."

"그야 물론 한두번은 아니지. 그래도 나도 사람이야.. 고백받으면서 그.. 말하긴 좀 그렇다만 당황스럽다거나 심장뛰는건 다 똑같다고"

"심장이 뛰어? 혹시 사랑ㅇ.."

"야!"

"ㅋ...ㅋㅋ"

 

핸드폰 너머에서 왠지 큭큭대는 소리밖에 안들린다.

 

"근데 너도 어느정도 인기많은건 알아? 여자애들이 고백을 안해서 그렇지. 생각해봐 너 오늘아침에도 사물함에 초콜릿 쌓여있었잖아"

"...그런가? 난 기억 안 나는데."

"반 애들이 너 오기전에 다 먹은거 아냐?"

"몰라 임마. 어. 나밥먹으래. 끊는다."

"에 벌써? 음.. 그럼끊어."

"어."

 

전화를 끊는다. 나도 방 밖에서 밥먹으라는 소리가 들린다. 아까 떡볶이 먹어서 별로 배 안고픈데.. 그래도 영!양!을 위해 먹으러 방을 나선다.

 

아까 떡볶이 먹어서 배도 부른데 저녁이 라면이다. 아. 결국 몇 젓가락만 먹고 일어선다. 아빠는 신경 안 쓰는 척 하지만 힐끔 힐끔 나한테 시선을 보내는 게 다 보이고 엄마는 대놓고 왜 안먹냐며 묻는다. 창현이가 자동적으로 "또 떡볶이 먹구 왔겠죠."한다. 예리한놈. 그러곤 방으로 돌아온다. 정말이지 이놈의 학교는 할 일 없을때 숙제 없고 할 일 많을때 숙제 많다. 오늘 피곤한데 그냥 자야지.

 

 

 

 

 

 

 

 

 

 
 02.

 

 


 

 

-병헌

눈앞에서 빛이 새어 들어온다. 눈이 너무 부시다. 계속 자고있다면 몰랐을거다. 알람이 울린다. 따릉따릉. 일어나. 어? 왜 폰 말고 앞에서 진짜 사람 목소리가 들리지? 그것도 따릉따릉 소리까지 사람이 직접 내는 소리다. 아, 엄마목소리. 어, 아닌데. 엄마 목소리는 더 쩌렁 쩌렁해야 할 텐데. 눈을 가늘게 떠보니 ....이찬희?

 

"일어나.야일어나!!"

 

이상하다. 내가 아직 꿈을 꾸고있나? 이찬희가 왜 아침부터 우리집에 오지? 아직 졸린 눈을 가늘게 뜨고 이찬희를 노려보는데 이찬희는 기가 찬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어머머머, 눈빛쏘는거봐요!!! 니엘아!!!! 일루와바!!"

 

뭐야? 안다니엘? 걔가 왜 우리집에 와? 아니, 그전에 오늘 목요일인데. 학교 가는 날인데 얘들이 사복을 왜 입고있어? 아침부터 이분들의 등장으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일단 핸드폰으로 시간부터 확인하자. ........

 

"야!!!!!!!!!"

"아 시끄럽게ㅡㅡ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내가 맘에 안 들었는지 투정부리듯 이찬희도 소리를 지른다. 아니. 그 전에 이 시간을 보고 소리를 어떻게 안 질러.

 

"ㅇ..열한시?!!!!!! 야!!!!!"

 

욕실에서 목에 수건을 걸치고 나오던 안다니엘이 급 조용해진 상황을 살펴보고 비웃는다. '풉'하고. 곧이어 비웃는 말투로 낄낄대며 말한다.

 

"야..너..혹시 오늘 학교 가는날이라고 생각하는거 아니지?"

"야 목요일!!아!!!!진짜!!!!!"

 

기가 차고 코가 차여서 짧게 소리를 지르게만 되는데 이번엔 이찬희가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가르키고선 웃는다.

 

"야 오늘부터 봄방학인뎅ㅋㅋㅋㅋㅋㅋㅋㅋ"

 

아... 2월15일. 붉은색으로 동그라미를 쳐놓고 옆에 하트를 만땅 그려놨다. 저거 내가 했지. 며칠 전 학교에서 마치고 집에 달려오자마자 가방에서 빨간 펜을 꺼내들어 티나게 동그라미를 치고 사랑스러운 날이라며 하트를 그렸던 내모습이 처참하게 생각난다. 아진짜..그건 둘째치고 내앞에서 손가락질하면서 비웃는 이 둘을 어떻게 해야할까.

 

"웃지마.."

"어떵ㅋ케ㅋㅋㅋㅋㅋ안ㅋㅋㅋㅋㅋ웃성ㅋㅋㅋㅋㅋㅋㅋㅋ앜ㅋㅋㅋㅋㅋㅋ챠니야 들엇서?? 야 목요일!!아!!!!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안다니엘. 얄미워 진짜. 성대모사 하는거봐 하나도안똑같아

 

"야 근데... 엄마는?"

"헐. 뭐야 이병헌. 일어나자마자 엄마부터 찾는거야? 진짜 어린애다"

"병허니가 다~ 그러치모~"

 

안다니엘 쫓아내고싶다. 아 쟤 진짜 얄미워. 너무 얄미워서 얄밉단 소리밖에 안 나온다

 

"우리 여덟 시 부터 너 일어날 때 까지 기다렸는데. 아줌마 한시간 전에 외출하셨어. 동네 다른 아줌마들이랑 어디 여행 갔다 온다는디.. 우리 엄마도 같이."

"...뭐?"

"... 아줌마한테 얘기 못 들었어?"

"전혀.."

 

뭐지? 아빠는 일때문에 지방 가셨는데.. 그럼 난 어쩌라고.. 일단 복잡한 뒷머리를 긁으며 거실로 나갔는데 헐 유창현이다. 유창현이 컴퓨터 하고있다. 유창현이 나한테로 고개를 돌린다. 이내 '흥'이라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홱 돌린다. 쟨 왜 맨날 나만보면 신경질이야.

 

"안...녕.."

 

소심하게 오른손을 들어올리며 인사하지만 유창현은 고개를 들어 표정없이 날 몇초간 바라보더니 또 흥 하면서 시선을 컴퓨터 모니터에 박아버린다. 왜저래. 안 그래도 가뜩이나 안다니엘이 날 미워한단 말이야!!으허허헝ㅠㅠㅠㅠ

 

"근데 왜 온거야? 아침부터 말도없이 부르더니.."

 

내 물음에 이찬희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러고는 곧이어

 

"그러게..? 왜 왔었지?"

 

한다. 어휴 저바보. 이찬희가 안다니엘을 보자 안다니엘도 기억 안 나는데. 한다. 내가 유창현을 쳐다보자 자신도 눈을 감고 어깨를 으쓱 하고는 다시 컴퓨터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다.

 

"야. 너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지 않아?"

"응? 뭐가."

 

이찬희가 계속 컴퓨터를 붙들고 앉아 있는 유창현에게 한 마디 한다.

 

"너 올때부터 컴퓨터 잡고 있더니.. 여긴 병헌이 집이야. 작작해."

"치- 그래 뭐 찬희형이니까."

 

뭐야 쟤...? 이찬희 좋아해? 아 이건 오번가.

 

"아!!!!!!!!!!!!!!!!!!"

 

주방으로 들어가던 안다니엘이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음을 꾹 참으며 주방으로 따라 들어갔는데

 

"야!!!!!생각났어!!!!!오늘 내 사촌 동생 돌잔치야!!!!!것도공짜!!!!!"

"...."

"걔네집이 돈이 좀 많아서 뷔페랜다, 12시 부터 3시까지 하고 잠깐 쉬다가 5시에 또 다시 연다는데!? 나보고 아는애들 막 데려오라 그랬어 고모가!!"

 

갑자기 우어어어어어소리를 내며 호들갑을 떠는 이찬희,유창현. 그리고 당사자 안다니엘.

 

"야 이병헌 빨리 옷입어!!!!! 열두시까지 사십분 남았다고!! 아!!!"

 

아까보다 더 격해지고 한층 더 높아진 듯 한 안다니엘의 호들갑이 빛을 발하며 나를 옷장앞으로 밀어 세웠다. 말라 비틀어진 놈이 이럴땐 힘도 참 세요. 나도 모르게 입에서 콧방귀가 큭 하고 새어 나오는데 안다니엘이 콧방귀 뀔 때가 아니라며 등짝을 후려친다.

 

"아 알았어. 옷 갈아입게 나가.좀."

"3분만에 갈아입고 나와. 시간 셀꺼야. 하나..둘..."

"아니 진짜 얘가. 우리 나가있는다. 대충 껴입고 나와. 나 뷔페 먹고싶어."

 

이찬희는 갈수록 심해지는 안다니엘, 일명 안호들갑의 입을 막고 방을 나간다. 거실에서 티비가 켜지는 소리가 나고 나는 아무 옷이나 껴입고 여분의 돈을 챙겨 나간다. 엄마한테 전화를 한다.

 

"엄마."

-응.-

"나 안다니엘 사촌 동생 돌잔치 가도되지?"

-응.-

"응.축의금은 어쩌지? 맨손으로 가기 뭐한데."

-글쎄. 엄마 옷장 뒤져보면 흰 봉투 하나 나올건데 거기서 십만원쯤 빼가.-

"응."

 

곧바로 안방으로 달려가는 내 등 뒤에서 쟤뭐야 하는 이찬희의 시선이 느껴진다. 근데 지금은 그런거 신경 쓰고싶지 않다. 옷장?여긴가? 잘 뒤져보니 안쪽에서 뭔가 봉투같은 느낌이 잡힌다. 보니 삼십만원쯤 되는것같은데 대충 십만원 빼간다. 엄마 비상금인가? 이걸 내방에 숨겨서 엄마 약점을 잡을까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일단 지금은 바쁘니까 옷장 문을 대충 닫는다.

 

"가자."

 

이찬희가 눈을 빛내며 말한다. 계속 서있던 안다니엘이 현관문을 연다. 민수형 빼고 가도 되나..

 

"민수형은?"

 

안다니엘을 쳐다보며 묻자 이찬희가 대신 대답한다

 

"너 오기전에 이미 불렀어.. 이집 들어오자마자 뷔페라는걸 까먹었을 뿐이지."

 

그럼 우리끼리 따로 가도 어떻게든 만나겠네. 근데 이찬희 얘는 자꾸 돌잔치 말고 뷔페라 그러네.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내린 후 자기가 안내하겠다면서 앞장서는 안다니엘을 따라다니는게 잘못이었다. 덕분에 시내를 50분동안 헤맸고, 결국 뷔페식장 이름이 뭐냐고 짜증내며 묻는 찬희의 물음에 안다니엘이 조용히 뷔페식장 이름을 말한다. 마침 보인 뷔페식장을 보고 안다니엘이 여기라며 돌잔치 뷔페 전문점으로 이끈다. 입구에 들어서는데 안다니엘이 자기 고모 먼저 찾는다. 그리고 시선이 한곳에 정착하자 바로 뛰어간다

 

"꼬모!!!!!!!!!!!!!!!!!"

 

꼬모.. 평소 애교를 많이 피우는 타입인가보다. '안다니엘 고모'란 분에게 다가가 축의금이랍시고 십만원을 건네는데 웃으시며 괜찮다고 다시 밀어냈지만 억지로 손에 쥐어드리고는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까보다 더 미소지으시며 이왕 온거 즐기다 가라고 하시네. 와 안다니엘이랑 정반대다.

 

 

 

 

 

-찬희

 

음식들을 둘러보는데 병헌이 씨익 웃으면서 날 보는게 느껴진다. 고개 돌리면 어색할 것 같아서 그냥 씹고 계속 둘러보면서 뭘 먼저 먹을까 고민하는데 아. 이병헌이 내 턱을 위쪽으로 툭 친다. 아ㅡㅡ혀 깨물었다. 악 소리를 내며 이병헌을 째려본다. 이병헌 이 특유의 멍하지만 실제로 멍하지않은 눈빛으로 말한다.

 

"턱 빠지겠다. 입닫아."

 

누가 그것때문에 봤냐고. 내가 계속 째려보자 이병헌이 왜 그렇게 보냐고, 얼굴에 뭐 묻었냐고 묻는다. 다니엘이 옆에서 불쑥 튀어들어 병헌이 얼굴을 보더니 아무것도 안묻었다며 내게로 고개를 돌린다.

 

"하- 또 이 형님 미모에 반했구만? 맞지?"

 

하. 기가막히고 코가 막혀서 진짜. 쟤는 진짜 왕자병일때 발로 걷어 차 버리고 싶다. 입을 열어 짜증을 가득 내려는 찰나 이병헌 뒤에서 익숙한 얼굴에 이병헌보다 세로로 더 긴 남자가 그 왕자병 말기의 머리를 툭하고 내려친다.

 

"혀 씹었다잖아. 찬희 표정좀 읽을 줄 알아라."

"아 씹...누구야"

 

이병헌이 뒤를 휙 돌아보는데 놀란 표정이다. 다니엘도 니가 여기 어떻게 왔냐는 표정이다.

 

"어. 종현이형."

 

최종현. 학교에서 나한테 고백하려고 달려들때 빼고 별로 안어색하다. 이병헌이 최종현을 보자 인상을 구기며 내뱉는다.

 

"아. 아침부터 진짜."

"워. 왜이래. 아침이라니. 지금 낮인데? 너 방금일어났지?"

 

참 신기한게 쟤는 이병헌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해도 눈도 깜짝 안 한다. 간이 큰건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저런건지는 잘 모르겠다. 세계 7대 불가사의다.

 

"야.. 근데 넌 여기 어떻게 온 거야?"

 

다니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최종현이 그러는 너희는 어떻게 왔냐는 표정을 한다.

 

"우리아빠랑 여기 아저씨랑 둘이 친해서 초대받았는데. 너흰 모야."

 

다들 의외란 뜻의 헐을 내뱉는다. 입구에서 민수형이 뛰어오는게 보이지도 않는 채.

 

"우린 이 형 고모가 초대해서"

 

창현이가 다니엘을 가르킨다. 최종현이 우리가 했던 표정을 따라한다. 업신여기는 표정으로. 민수형이 뛰어오고 있다는건 이제서야 알았다. 난 저형이랑 어색해서 암말도 안했는데 자동적으로 병헌이 손을 들어올린다. 형.여기. 하고.

 

"와...너무한다.. 날 버리고가?"

 

라고 투정부리던 민수형이 날 보더니 인사한다. "안..녕." 하고.

 

"어.응..안녕"

 

인사도 힘들다. 그래도 저번보단 나아진 편이다. 전에 나한테 고백하고 차이고나서는 한동안 민수형 보지도 못했는데. 다니엘이 음식 먹자면서 언제 갔었는지 저쪽 끝에서 접시하구 그런걸 다 가지고 온다. 이럴땐 빠르다. 너도 뷔페 좋아하는구나. 이음식 저음식 둘러보면서 평소 좋아하던 음식들을 접시에 담고있는데 이병헌이랑 둘이서 자주 먹던 떡볶이가 눈에 보인다. 일단 많이 담는다. 떡볶이 맛있겠다. 접시에 담긴 음식이 한두개가 아니지만, 자주 못먹는 음식들도 많지만 제일 기대되는게 떡볶이다. 여섯명 다 자기들이 먹고싶은걸 다 집고 아무 자리에나 여섯이서 둥글게 앉았다. 일단 먹는다. 먹고 본다. 최종현이 자꾸 날 훑어보는게 느껴진다. 날보고 입을 연다.

 

"야..찬희야, 너.."

"ㅇ..응?"

 

무슨 뜻인지 스캔하기 힘든 눈빛으로 쳐다본다. 뭐지.뭘까.뭐야.

 

"너 입..."

 

이번에 말하는데 목소리가 애절하다. 뭐야.뭔데.뭐야.입?입왜.뭐지.뭐야.뭐지.뭐지뭐지뭐지. 심장이 조마조마.왜인진 몰라도 그렇다. 최종현 옆에서 다니엘이 최종현 머리를 한대 쥐어박으며 말한다.

 

"야. 찬희 놀랬잖아! 찬희야. 입에 떡볶이 국물 묻었어. 입.입."

 

다니엘이 자기 손가락으로 자기 입을 가르킨다. 아....난또. 최종현이 입을 열었을 때 부터 내옆에 앉은 병헌이 눈에서 불이 이글이글 타오른다. 진짜눈에 불 붙거나 레이저 나오거나 둘중에 하나가 실현될 기세네. 다니엘이 원형 식탁 중심에 놓인 티슈를 뽑아서 우쭈쭈 우리차니 이리와봐 해놓고 톡톡 닦아주며 이병헌에게 메롱을 하자 이병헌 눈빛이 폭발하기 직전이다. 쟤 왜저래.

 

"병헌이형 눈빛 쏘는 거 봐요~"

 

병헌이가 자기 이름이 불리자 깜짝 놀라며 유창현을 쳐다본다. 낱..나? 자기를 가르키며 말하는 이병헌 목소리가 조마조마하다.

 

"네. 형 왜 종현이형이 찬희형 볼때만 그래요?"

 

병헌이 표정이 아까 내가 음식 보던 때랑 똑같은것 같다. 나보다 병헌이 입이 더 벌어졌다. 나방이아니라 입에 고등어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겠네. 다니엘이 이병헌을 째려보며 야너뭐야. 한다. 이병헌 표정이 맙소사다. 분명 속으로 이럴수가. 하고있겠지. 아니면 헐.이라던가. 아님 머릿속이 백지장일거다. 창현이가 갈수록 예리한 카리스마있는 눈으로 심문하듯 묻는다.

 

"형 찬희형 좋아해요?"

 

이번엔 내얼굴이 빨개지는걸 느낀다. 나도 모르는 새에 아니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다들 왜 내가 대답하냐는 눈치다.

 

"오~그래? 찬히얌, 이병헌이 너 좋아하는거 아니다 이소리지?"

 

최종현이 두손으로 턱을 괴고 눈을 빛내며 쳐다본다. 얼떨결에 응..으응.응. 했더니 최종현이 말한다.

 

"뭐야 이병헌. 너 그런데도 계속 나 미워했단말이야? 섭섭한데."

"니가 상관할게 뭐야. 그리고 이찬희 왜 니가 대답해."

 

원래의 시크한 이병헌으로 돌아왔다. 아까랑 완전 정 반대다. 초딩소설 뺨치는 어이없는 등장인물의 기분이 180도 뒤바뀜에 왠지 소름이 돋아 어깨에 힘이 쭉 빠졌다. 최종현이 병헌일 보면서 하는 말이 민수형을 움찔하게 했다.

 

"이찬희 이병헌 서로 좋아하는거 아니면 내가 이찬희랑 사귀어도 이병헌 넌 상관 없는거지?"

 

이병헌이 최종현을 죽일듯 노려본다. 최종현도 마찬가지로 뭘보냐는 일찐포스의 눈빛으로 쳐다본다. 서로간에 기싸움이 팽팽하다. 이도저도 못하는 내 반대편에 앉은 민수형이 왠지 불편해보였다.

 

"야 돌잔치 와서 이게 무슨 분위기야.. 찬희야 빨리 걔 눈 가려!"

 

다니엘을 보자 이미 팔 내리려고 애쓰고있는 최종현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아 나도빨리. 해서 손을 올리는데 탁 하는 소리가 난다. 뭐지. 이상황이 이해가 안간다. 장난이 아니다. 진심같다. 이병헌 화났다. 나한테 이렇게 싸늘하게 대하다니. 왠지모르게 얘랑 14년을 같이 다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한테 이렇게 돌탑마냥 굳고 딱딱하게 대한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병헌 눈은 최종현을 향하고 있지만 내가 안중에도 없는건 아닌 것 같았다. 이병헌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다니엘이 놀라 최종현 눈 앞 공중에 떠있는 손이 힘없이 천천히 내려가 제자리를 찾는다. 짧은 몇초동안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지만 곧 백지가 된다. 무의식적으로 내 손을 본다. 이병헌이 아프게 뿌리친 내 손을.

 

 

 

 

 

 

 

 

 

 
 03.

 

 

 

 

 

-병헌

 

처음부터 의도하려던 게 아니었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무의식중'이라는 단어로 충분히 표현된다. 최종현. 최종현만 아니었으면 내가 찬희 손을 뿌리치지도 않았을 텐데. 하여튼 저새끼가 나타나면 되는일이 없어. 내인생의 걸림돌이야 진짜.

 

다들 날 보고있어서 여기서 종현이랑 시선이 오고가는데 다른사람 보면 찌질이 되는거다. 아. 찬희 표정 보고싶은데.. 분명 식겁했겠지. 놀랐겠지. 아어떡하지.

 

사실은 그게아냐. 생각없이 나간 행동이야. 그렇게 말하고싶은데 분위기가 그렇게 되질 않는다. 망했다. 중학교때부터 계속 꾸준히 친해져왔는데 여기서 한순간에 또다시 무너지는건 아니겠지. 절대로 안되. 그것만큼은 절대로 안 된다. 째려보는 시선은 종현과 오고가는데 관심은 오직 찬희에게 쏟아진다. 그때 시선을 놓을 수 있는 좋은 타이밍이 찾아왔다.

 

"여러분 오래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안민준 군의 첫 돌잔치를 시작합니다.

그에 앞서 자리에서 일어나 식장 입구에 있는 돌잡이 내기 투표에 참가 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첫 말이 시작되자 종현과 나는 거의 동시에 시선을 사회자 쪽으로 돌렸다. 쟤도 사실 이런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사회자의 말이 끝난 후에 창현이 바로 일어서 입구쪽으로 달려갔다. 곧이어 다니엘도 일어서자 나도 해볼까 하는 마음에 일어섰다. 아니 일어서야 했는데 왠지 일어서면 다른애들이 방금까지 화난거 아니었냐며. 왜갑자기 분위기가 싹바뀌지 하는 마음에 그냥 계속 앉아있는다. 종현도 망설이는 듯 하더니 일어선다. 다 갔는데 나만 자리에 앉아있다. 식장 전체에서는 돌잡이 이벤트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도 몇 있었지만 뻘쭘하다. 내눈치를 살피는 찬희가 느껴진다. 종현이 교실에서 공개 고백할때와 같은 모양으로 날 힐끔거리지만 느낌은 다르다.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한다.

 

-잘 놀고있지?

 

엄마의 문자가 보인다.

 

-응.

 

짧게 대답을 보낸다. 사실 잘 안 놀고있다. 엄마. 엄마 아들이 이래. 답장이 오지 않는걸 보아하니 숙소에 핸드폰 냅두고 어디 갔겠지. 편의점이나 그런곳. 곧이어 애들이 모두 자리로 돌아온다. 다들 자기들끼리 번호 몇번이냐고, 뭐 잡는다에 걸었냐고 이야기 하며 떠들썩한데 찬희가 내쪽으로 자기의자를 조금 더 당겨 앉더니 어색하고 수줍게 생글생글 웃으며 나에게 작은 종이를 건넨다. 52번. 뭐야이건. 돌잡이 투표지인가?

 

"ㅇ...왜.. 안했어? 상품 있다는데.."

 

자기 표인듯한 35번 표를 들어 보이며 계속 생글생글 웃으며 말한다. 웃는다고 휘어진 눈꼬리에서 보이는 눈웃음이 너무 예쁘다. 이럴때 보면 같은 남자가 봐도 역겹지 않고 예쁘다. 나도 웃으며 대답하고싶지만 아까 화낸 이미지가 있어 찬희를 대충 눈으로 흘기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가 돈에 한표 던지려니까 니생각이 나서.. 너 나랑 이런거 찍는데 취향 비슷하지? 니꺼도 돈에 넣었는데. ...맘에 안들어?"

 

어색한 분위기를 극복하려는 듯, 아무일 없었단것처럼 숨기려고 말을하지만 어색한 분위기는 조금밖에 풀리지 않은데다가 목소리가 힘이 없다. 계속 찬희를 보고 있자니 너무 기특하고 귀여워서 나도 몰래 입꼬리가 올라간다. 오른손을 들어 찬희의 볼을 꼬집으며 "장하다."한다. 찬희가 내가 웃는 모습을 보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는지 어색하지 않은, 평소다운 웃음으로 대답한다.

 

곧이어 투표가 끝나고 다니엘 사촌동생의 돌잡이가 시작된다. 제발.돈.돈.돈.

 

"실..제발 실.."

"연필..연필...민준아.."

 

다들 손을꼽아 자기가 투표한걸 잡도록 기도한다. 다니엘은 애절하게 자기 사촌동생 이름을 부른다. 민준이란 아기 손이 돈으로 가는 듯 하더니 저금통으로 슉하고 가버린다. 아...이럴수가...

 

"저금통. 저금통 잡았습니다! 저금통 투표하신분들 번호 부르겠습니다. 번호 부르신분들은 번호표 가지고 앞으로 나와주세요. 21번,6번,47번. ..."

 

저금통을 잡았다는 소리에 창현이 소리를 지른다. 6번이라는 번호가 불리자마자 앞으로 뛰어간다. 사회자는 계속 번호를 부른다. 아. 이럴수가. 옆에서 아쉬워하는 찬희 표정이 대충 보인다. 눈빛으로 대화한다. 너도아쉽지? 응. 뭐 이런 눈빛대화.

 

"여러분 저금통이 의미하는게 돈이죠?"

 

사회자가 말을 잇는다. 네. 돈이예요. 돈이라구요. 저금통엔 돈이 필요하다구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돈' 투표하신 분들중에 추첨을통해 딱! '한 분'만 상품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버님께서 직접 뽑으시져"

 

헐. 뭐야.뭐야뭐야뭐야. 아제발. 아저씨.52번... 그러고보니 다른애들은 에이뭐야 하는 표정으로 계속 음식 퍼온 걸 먹고있는데 나랑 찬희만 눈을 빛내고 있다. 상품을 받아 온 창현이 뷔페 한접시 더 퍼담으러 가는건 안중에도 없다.

 

곧이어 아저씨가 번호를 확인하고는 사회자 아저씨에게 번호표를 넘긴다. 사회자 아저씨가 들고 읽는다.

 

"52번 손님! 52번 손님 앞으로 나와주세요"

 

헐.뭐야.뭐야 나야? 진짜? 진짜 나야? 옆에서 찬희가 좋겠다며 슬쩍 일어선 내 등을 툭툭 친다. 찬희에게 웃는 얼굴을 한번 보여주고는 앞으로 달려나간다.

 

"어우 좋으시겠어요"

 

사회자 아저씨가 한마디 한다. 네 좋아요. 행복해 죽겠어요. 짧게 말을하자 이아저씨 또 한마디 한다.

 

"무슨 여자친구분이 대신 뽑아준것같은 표정이네요. 어우 이렇게보니까 잘생겼네요."

"아..감삽니다.."

 

아저씨가 말없이 나만 쳐다보더니 장난섞인 의심스럽단 목소리로 말한다.

 

"여자친구 있어요? 없기엔 아까운 얼굴인데.."

 

다른사람들 목소리에 섞였어도 저멀리서 최종현이 "치.쇼하네."하는 소리를 얼핏 들은 것 같다. 근데 그냥 없다그러려는데 왜 찬희가 생각나지. 여자같이 생겨서 그런가.

 

"없..는데요.."

"없다구요?"

"네."

"왜요!"

"...아근데 친구가 대신 뽑아준건 맞아요."

 

사회자 아저씨 표정이 놀란 표정이다. 객석들을 두리번거리며 아저씨 입에서 나온소리란 이거.

 

"대신 뽑아준 친구분 어딨나여. 손들어보세여"

 

한다. 찬희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손을 번쩍 든다. 앞으로 나와보라는 아저씨의 말에 순순히 앞으로 나온다. 찬희 옆의 옆에서 종현이 인상을 되는대로 다 구긴다. 풉. 앞으로 나오는동안 남자들은 여자인줄 알아서, 여자들은 남자인걸 알아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웅성거린다. 잘생겻다. 여자야? 이쁘게생겼다. 근데 왜 짜증이 나지.

 

"돌잔치 어떻게 오셧써여."

 

웃으며 마이크를 건네는 아저씨의 말에 찬희가

 

"친구가 자기 사촌동생이 돌이라고 초대했써여."

 

하며 웃으며 대답한다. 혀짧은 소리가 난다. 얘 왜이래. 왠지 몰라도 갑자기 당황스러워진다. 이어서 사회자 아저씨가 날 가르키며 이분이랑 어떤 친구사이길래 대신 뽑아주고 그래여. 한다. 이아저씨도 발음이 갈수록 혀짧은 소리다.

 

"어..그냥...5년.. 아닌데 10... 야 몇년이지?"

"14년."

"네 14년짜리 친구에요. 다섯살때부터 친구하고.."

 

어리버리하게 19-5도 못한다. 나한테 질문을 하는 모습이 귀엽다. 너 덧셈뺄셈 못하냐. 초등학교 다시가. 라고하고싶지만 상처를ㅠㅠ 받을것같아서 관둔다.

 

"14년! 와- 이런인연 힘들죠. 근데 두분 얼핏보면 연인같아요. 아세요?"

 

찬희가 소리내어 짧게 웃는다. 그 특유의 웃음소리가 내 머릿속에 박혀 빠져나오질 않는다.

 

친구분이 예쁘시네요. 근데 남자시네요. 여러분 정말 연인같죠? 하는 아저씨의 질문에 객석에서 네-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와중에 아니요-라고 꿋꿋이 소리치는 종현의 목소리가 들린다. 질투하냐?

 

"네. 아니요 하신 분 앞으로 나오신답니다." 이아저씨 뭐야. 종현이 앞으로 나온다. 아저씨가 마이크를 건네며 "질투하시나봐요?" 한다. 종현이 당당하게 "네."한다. 찬희 얼굴이 굳는다. 뭐야 얘는왜 여기까지와서 이러는거야. 대충 이런 표정이다. 아저씨 표정도 어? 한다. 객석 표정을 살포시 둘러보자 사회자 아저씨 표정이랑 같다.

 

 

 

 

 

-찬희

 

뭐야. 공개고백도 교실에서 한거면 만족해야하잖아. 왜이래. 종현아 너 이러지마. 종현이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여는 타이밍에 맞춰 병헌이 종현의 입을 막는다.

 

"얘.. 얘가 동성애 흉내가 취미라서요! ㅎ...하핫"

 

종현이 병헌일 째려보지만 병헌인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 재밌는 분이시네요. 자 그럼 52번 손님께 상품 증정합니다. 축하합니다~"

 

병헌이 상체를 꾸벅 숙이며 파란색 포장지에 쌓여진 조금 큰 상품을 받고 셋 다 자리로 돌아온다. 대부분의 사람들 시선이 우리에게로 꽂힌다. 이와중에 창현인 계속 먹기만 한다.

 

"야 이병헌. 그거뭐↗야?"

"...어?몰라."

 

다니엘이 병헌이에게 묻는다. 가끔 뒤집어지는 다니엘의 목소리에 민수형이 웃는다. 병헌이 선물을 뜯지도 않고 나에게 건넨다.

 

"...뭐야?이걸 왜 나한테 줘?"

"니가 뽑은거잖아."

"내가 뽑았지만 당첨된건 너잖아 그러니까 이건 니꺼지.."

"니가 뽑았지만 당첨된건 나지. 근데 그전에 니가 뽑아서 나 준거니까 너해."

"야.. 근데 니가 당첨됫으니까 니꺼지. 만약 내가 52번말고 35번 줬으면 내꺼지만 그게 이미 너한테 갔잖아. 35번말고 52번을 준 내 운을 탓하고 35번 말고 52번을 받은 니 운을 좋게 생각해야지.. 너가져."

 

뭔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알았다고 말하는 병헌이지만 나중에 갈때 내 품에 떠맡길거다. 다 보인다. 니 표정 읽는거야 나한테 식은 죽 먹기야, 병헌아.

 

그럭 저럭 돌잔치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는데 아직 4시도 안됫네. 그냥 집에 갈까 하다보니 어느새 애들이 한둘 다 집에 간다. 다니엘이 뒤늦게 식장에서 나오지만 아저씨 차를 타고 곧바로 집으로 가버린다. 병헌이랑 나만 남았는데 아까 손 사건이 생각나서 괜히 뻘쭘해졌다.

 

"이찬희."

 

낮은 목소리로 날 부른다. 잘은 모르겠는데 조금 진지한 목소리인것 같다. 난 벤치에 앉아있고 병헌은 서있던 탓에 물끄러미 병헌을 올려다보자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까 미안.."

"..응?...뭐가..?"

"손친거."

 

설마이걸 돌잔치 내내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었던건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표정을 잘 살펴보는데 그랬던것같다. 말없이 병헌을 계속 올려다보자

 

"아..그게 의식하고 한건 아닌데.. 그냥 무의식적으로 손이 올라가버려서.."

 

라며 멋쩍은지 머리를 긁으며 내옆에 앉는다.

 

"야... 나 그때 엄청 놀랐어.."

"치..어쨌든 미안."

"아냐 괜찮아."

 

병헌일 계속 보다보니 기특한 생각이 들어서 머리를 쓰다듬는다. 계속 계속 쓰다듬다보니까 이손을 언제, 어떻게 치워야하고 손을 치웠다 치더라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계속계속. 끝없이 쓰다듬고있다 보니까 아까 병헌이 느꼈을 그 '무의식중'이라는 행동이 나한테도 찾아온것같다. 그래도 난 볼에 살짝 하려고 했는데 마침 병헌이 내쪽으로 돌아보는 탓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술과 입술이 맞부딪혔다. 병헌이 날 쳐다본다. 나 미쳤나봐. 어떡하지.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슉슉하고 지나가는데 또 아까처럼 머릿속이 새햐얘진다. 병헌이도 아까 이런 기분이었을까. 서로 계속 쳐다보고만 있는데 어색하다. 어색해 죽겠다. 눈도 못 마주치겠는데 억지로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진게 오래된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동성애라는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꺼려하고 그러다보니까 너도 왠지 그럴 것 같아서. 더럽다고 피할것 같아서. 그 많은 사람들중에 왜 하필 내가 동성애자일까 하는 마음에 몇일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안먹어 야윈 내모습을 보고 걱정해주던 니가 내마음에 자리잡았다.

 

왜그러지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언제부턴가 고백을 받으면 너한테 습관적으로 말하게 되어버렸다. 그냥 주변의 애들보다 너한테 털어놓는게 더 편할것 같아서. 아니, 아니다. 잘 생각해보면 이게 변명이 아니라고 말 할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랬던 거 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내 마음속에 니가 자리 잡았는데 넌 아닐거니까. 그러니까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가 버리기 전에 날 잡아달라고. 나랑 사귀어달라고. 아니 마음이라도 알아달라고. 사실 마음 속으론 그렇게 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04.

 

 

 

 

-병헌

 

자기가 한 일에 자기도 놀랬는지 안그래도 큰 눈이 더 크게 떠져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만 본다. 찬희 표정을 읽어본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는 얼굴에 눈동자도 계속 날 보지도 못하고 자꾸 다른 곳으로 새어버린다. 당황했다. 분명 당황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보이는 찬희 얼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풉 하고 튀어나왔다. 웃으면 안되는 것 같긴 한데 웃음이 나오는건 어쩔 수 없다.

 

"뭐야.. 왜웃어.."

 

얄밉다는 듯 눈을 흘기는 찬희를 보니 너무 귀엽다. 이 상황이 너무 반갑고 고맙다. 내입으로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얘가 날 좋아했던건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수도없이 스쳐지나가는데 찬희의 붉어진 얼굴을 보니 너무 귀엽고 그래서 이 상황이 너무 행복하다. 계속 날 흘기던 찬희도 이내 웃음을 터뜨린다. 사랑스럽다. 너란 존재를 감히 내가 이렇게까지 가까이 해도 되는건지 불안할 정도로 너는 정말 사랑스럽다.

 

떡볶이를 먹을때면 항상 입에 떡볶이 국물을 묻히고 먹는 니가 많은 기억속에 스쳐지나간다. 그때 내가 항상 닦아줬지. 그생각을 하며 니 입을 보는데 내가 너무 행복해서 정신이 나간건지 미친건지 니 입에 떡볶이 국물이 보인다. 아까 떡볶이를 그렇게 퍼먹더니 결국 묻은건가. 평소처럼 닦을까 하다가 휴지도 없고 옷도 새거라서 옷으로 닦기 뭐하다.

 

"이찬희 잠시만."

 

내말에 찬희가 웃음을 멈춘다. 두 손으로 니 귀 뒤를 감싸자 입은 닿지도 않았는데 버벅거리며 눈을 꼭 감고 푸아 하며 숨을 크게 들이쉰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넌 정말 나한테서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보물의 가치를 뛰어 넘는 소중한 사람이다. 꿍얼꿍얼거리며 딴짓을 하려는 니 얼굴을 고정시키고 입술을 포갠다. 아까 니가 했다면 이번엔 나다. 내가 먼저 했어야했는데 니가 먼저 해버려서 억울하다. 억울하지만 좋다. 니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니가 교실에서 공개고백 받으면서 내 눈치를 살피던 그날. 넌 너무 안쓰러웠다. 겉으론 왜저래 하고 넘겼지만 속으론 자꾸 마음에 걸리는게 최종현이 미웠다. 싫었다. 죽도록 싫었다. 그날부터 너한테 고백해왔던 모든 여자들이 싫었다. 중학교때 사이는 서먹서먹했어도 나랑 사귀는 여자들을 흘겨보며 넌 항상 슬픈 눈으로 나와 그 여자를 바라보았지. 다섯 살 때부터. 찬희를 처음 만난 그 때 부터 넌 나에게 있어 첫 친구야. 항상 그렇게 생각해왔다고 느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게 아니었다. 넌 내 첫 친구이자 진짜 첫 사랑이다.

 

"푸하"

 

길었는지 짧았는지 뒷맛이 씁쓸하다. 너도 그럴거지만 나도 첫키스다. 계속 하고 싶었지만 너도 나도 숨이 차 올라 와서 더 할수는 없었다.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니가 숨을 뱉어내는 소리가 내 귀를 파고 들어온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떠드는 소리도 많았지만 내 귀엔 니 목소리만이 내 귀를 파고 들고, 니 모습만이 내 눈에 파고 들어온다. 니 이름만이, 너에 대한 것들만 내 머릿속에 인식되어 다른것들은 들어올 겨를이 없다. 진짜. 나한텐 너뿐이다. 이찬희.

 

조용히 내 어깨에 기대는 찬희를 내려다본다. 웃음이 끊이질 않는 표정이다. 얼굴에 나 지금 무지 행복해요 하고 써있다.

 

"그만웃어. 나중에 얼굴 당겨."

"뭐야. 그러는 너도 지금 입이 귀에 걸렸어"

 

너만이 지을 수 있는, 너 아니면  어울리지도 않는 웃음을 짓고는 나를 올려다본다. 나도 웃고있었나? 웃고있었든 울고있었든 행복한건 어떻게 할 수 없다. 너랑 이렇게 있으면 행복해서 세상이 폭발해버릴 것 같다. 지금 이 순간도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다.

 

"야. 배고파."

 

찬희를 내려다보며 말하는데 눈이 마주친다. 얼굴이 붉어졌다. 지금까지 사귀었던 여자들에게서 느낄 수 없던 심한 심장박동과 행복함이 나를 감싸 안는다. 숨이 막히도록 사랑스러운 니가 나한테 와줬다는 게 인연이었나보다. 하늘이 준 선물이란 말은 너무 식상하지만 정말 넌 나에게 있어 하늘과도 같은 존재다. 너만 보고 있다면 그 무엇도 싫을 게 없다. 심지어 핸드폰에 오는 스팸 문자 까지도.

 

"뭐야. 너 뷔페도 다섯접시 먹었잖아."

"그..그랬나."

 

나에게로 눈을 흘기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니 모습이 너무 귀엽다. 너무 귀여워서 어떻게 하지도 못 하는 너를 내가 금이라도 되듯 꽈악 감싸 안는다. 너무 세게 안았는지 내팔을 치며 웃는 니가 곧이어 벌떡 일어난다.

 

"우리 집 갈래?"

 

이찬희 집? 그러고보니 가본지도 오래 됫는데. 해맑게 그래! 하는 나를 보며 미소가 끊이질 않는 찬희 얼굴이 너무 예쁘다. 이래서 최종현도 좋아하는거구나.

 

찬희 집으로 가려 걷는데 어느새 우리집 가는 마냥 내가 앞장서고 찬희가 뒤에서 쫄래쫄래 따라온다. 왜 뒤에서 따라오나 했더니 이찬희 집 앞에 서서 막 뒤를 돌아보려 했는데 마침 찬희가 백허그를 한다. 치. 귀여운 것.

 

"집에 아줌마 안 계셔?"

 

내 허리를 감싼 찬희 손을 풀지도 않고 말한다.

 

"없어."

"왜?"

".. 아까 내가 말 안했어? 너네 아줌마랑 같이 동반 여행 가셨다고.."

 

찬희가 헐 그걸 아직까지 몰랐단 말이야? 하는 눈으로 쳐다보며 자기네 집 현관문을 연다. 집 안을 두리번거려보니 진짜 아무도 없다. 창현이 아까 먼저 가더니 집으로 간게 아니었나.

 

"뭐 먹을래? 라면?"

"으..응"

 

배가 고파 뭐든 먹고싶었나보다. 뷔페를 다섯 접시를 먹어 치웠다고 해도 어쩔 수 있나. 뷔페는 몇접시를 먹어도 식장을 나오면 배가 고픈 법. 식탁 의자에 앉아 라면을 꺼내는 찬희 뒷모습이 아담하고 귀엽다. 진짜 이찬희. 너무 귀여워서 귀엽단 말 밖에 안 나오고 너무 예뻐서 예쁘단 말 밖에 안 나온다. 라면을 끓이는 찬희 뒷모습을 몇 초 보지도 못한것 같은데 벌써 다 끓였다며 양은 냄비와 함께 그릇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양으로 보니 세봉지는 끓인 것 같은데, 쯧쯧. 이찬희. 넌 아직까지 날 몰라. 넌 한봉지 분량도 제대로 못 먹을 걸. 니가 한 그릇 먹을 시간에 난 세그릇 먹는다 이소리야. 말없이 라면을 먹다가 마지막 한젓가락 양에 너와 내 젓가락이 부딪힌다. 빠르게 시선이 오고가지만 남은 라면 한 젓가락은 절대 포기 못 한다 ...고 생각했을 리 없다. 결국 많이 먹지도 못한 찬희에게 양보하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넌 떡볶이 먹을때 혼자 다 먹는 애가 라면은.."

"야. 떡볶이랑 라면은 달라. 떡볶이는 그냥 입에 쏙 넣으면 끝이지만 라면은 계속 입에 끌어 넣어야되."

 

자꾸 장난식으로 주고받는 말에 잠깐 정적이 돌다가 둘다 웃음 폭탄이 연발 터진다.

 

 

 

 

 

-찬희

 

두근거린다. 아까 무의식적으로 병헌이에게 뽀뽀한 후로 계속. 너도 그렇겠지만 나한테도 첫입술에 첫키스다. 하지만 아직 사귀자는 말은 오고가질 않았으니 사귀는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계속 이렇게 사귀자고 말 안하다가 영영 안사귀면 어쩌나 싶었다. 생각해보면 병헌이도 장난으로 한거였을수도 있다. 걔는 중학교때 사귄 여자가 몇인데. 3년동안 6명은 사귀었을걸.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가는 생각때문에 복잡하지만 앞에 있는 병헌일 보면 그런 마음도 곧 사라진다.

 

"창현인?"

"어.. 친구랑 피시방 가기로 했다던것같은데."

 

갑자기 창현인 왜 부르나 싶지만 니 그 부드러운 목소리에 나는 녹아내리듯 대답한다. 넌 나한테 있어 빛이고 하늘이고 땅이다. 이세상의 전부다. 그것 뿐이다. 그렇게 따지면 니 말에 대답 하지 않을 리 없고 니가 날 볼때 나도 보지 않을 리 없다. 니 행동에 난 무조건 반사적으로 행동한다. 니가 내 행동을 책임진다. 너랑 같이 있으면 내가 여자가 되버리는 듯 하지만 상관 없다. 너랑 같이 있다면 내가 그 무언가가 되어버려도 좋다.

 

하암-하고 하품이 절로 나온다. 피곤하고 배도 부른데 아직 자기엔 한참 이른 6시다. 별로 깜깜해지지도 않았고 지금 잔다고 잠이 잘 올것같지도 않다.

 

"졸려?"

"아니..그냥좀 피곤해서.."

 

 

 

 

 

-병헌

 

니가 걱정되는 식으로 묻는다. 하긴 그렇게 밝은곳에서 그렇게 떠들썩하게 지낸건 오랜만이니까. 자기는 졸린다며 씻고 좀 일찍 자야겠다는 말을 던지곤 자리에서 일어난다. ...뭐야.. 좀 일찍 자? 그럼평소에 언제 잔단 소리야..

 

찬희가 옷을 챙기고 욕실로 들어가는 동안 찬희 방을 둘러본다. 책꽂이를 보는데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이름의 책들이 빼곡하게 정리 되 있다. ..이래서 얘가 모범생인가. 방 구경을 끝내고 이번엔 창현이 방으로 들어가볼까 하는데 ...내가 자기 방 들어갔단걸 알면 무지 화 낼 것 같다. 아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날 그렇게 미워하는거지. 그냥 티비나 보자 하는데 별로 재밌는것도 안 한다. 쇼파에 누워서 천장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05.

 

 

 

 

 

 

-병헌

 

야.야 병헌아.이병헌.일어나. 날 부르는 찬희 목소리가 들리지만 너무졸려서 대답은 할 수 없다. 뭐 계속 씹으면 알아서 포기하겠지. 하며 계속 그 목소리를 듣다보니 금방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됫는지 일어나보니 불을 켜지도 않았는데 집 안이 밝고 창문 밖도 밝다. "찬희야"하며 쇼파에서 일어나며 찬희를 불렀는데 대답이 없다. 온 집안을 다 뒤져봐도 찬희가 없다. 어라. 얘가 어딜갔지.

 

집을 나서는데 우리집 모퉁이 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최종현이다. 여기가 우리집인지 모르는건지 자기 친구들 몇명이랑 모여서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쾌쾌하고 내가 싫어하는 그 특유의 냄새가 나는걸로 보아 담배를 피는가보다. 최종현은 담배 안 피는걸로 아는데.하고 빼끔 들여다보니 아하. 친구가 피고있구나.

 

"이병헌? 그게누구."

"아 씨발 담배냄새나. 꺼."

"아 알았어."

 

곧이어 담배를 바닥에 비비는 소리가 나자 말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말돌리지말고 이병헌이 누구냐고."

"맨날 나만보면 정색하고 으르렁거리는 이찬희 친구."

 

아. 야. 최종현. 내가언제 정색하고 으르릉거렸어.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이찬희? 니가 좋다고 따라다니는, 학교에서 고백많이받기로 유명한 그 이찬희?"

"어."

"헐..그런애가 이찬희를 안다고?"

"몰라 다섯살때부턴가 알았대."

 

그런애? 내가뭐. 내가뭐. 그런애? 그런애? 내가 어떤앤데.

 

"헐....인연이아니라 우연이네진짜."

"야근데 맨날 너보면 정색한다고? 혹시 너가 이찬희한테 고백하니까 그러는거 아냐?"

"뭔 상관이야 그게. 걔가 나처럼 게이냐"

 

은근 감싸주는 목소리.

 

"혹시 모르냐. 진짜 게이일지."

"아 아냐."

 

왜 멋대로 부정을 해?

 

"근데 그게 아니면 으르렁거릴 이유가 없잖아. 게이 맞ㅇ..."

"아 아니라니까!"

 

왜갑자기 짜증을 내. 니가 언제부터 날 감싸줬다고. 언제부터 내편이었다고. 나하고 편하게 대화 한마디 웃으면서 나눠본적도 없으면서.

 

"아..왜 짜증을 내구그래."

"야. 그래도 이병헌 이찬희 친구야. 괜히 나같은 이상한놈 만들지마."

 

종현이 정색까지 하면서 대답을 하는데 이쪽으로 걸어나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어. 어떡하지. 몰래 엿들은거 알면 화 내려나. 가야되나? 지금 가면 뛰어가야되는데 발자국소리 다 들릴텐데. 하며 고민하는 새에 종현이 골목을 나오고 나랑 눈이 마주치자 종현의 눈이 커진다.

 

"...이병헌"

"아..저...그게...."

 

계속 눈을 마주치고 있기도 힘들어서 시선을 여기저기로 피하는데 종현의 입에서 나온건 다들었냐는 얘기와는 다르게 찬희 어딨냐는 말이었다.

 

"...이찬희?"

"어. 아침부터 전화해도 바로 끊기고 집에 아무도 없는거같던데 어디갔는지 알아?"

"모르겠는데.."

 

대답을 하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자 부재중 전화가 두 통이 와 있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이찬희? 빠르게 다시 전화를 걸어 신호음이 가는가 싶더니 금방 찬희가 전화를 받는다.

 

"야. 야 너 어디야."

-야..나여기 어딘지 모르겠다-

"...길 잃었어?"

-어...그런가.. 버스잘못타고왔나봐-

 

...그럼 최종현이 전화했을때 바로 끊겼다는건 뭐야.

 

"어 기다려 데리러갈게. 어디야."

-어딘지 모르겠다는 사람한테 어디냐고 물어보면 어떡해!-

"주변에 간판읽어봐"

-아...잠시만.. 카페베네 파리바게뜨 선화꽃집-

"아 그런거 말고!"

-...그럼 맥도날드-

"야!"

-아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아..됫다 너한테 설명할 가치도 없다"

 

전화를 바로 끊고 종현과 같이 시내로 향하는데 시내 여기저기를 뒤집고다니다보니 이찬희가 보인다.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꽃다발을 안고있는데 멀어서 잘 안보이긴 하지만 얼굴에 뭐가 있다. 것보다 옆동네 간 줄 알았는데 아니구만.

 

"야 저기 찬희."

 

종현이 내어깨를 툭툭 치며 말한다. 나도 알아. 말을 뱉고는 바로 찬희에게 뛰어간다. 멀리서 뛰어오는 날 본 찬희가 웃는 듯 하며 꽃다발을 들어올리는 것 같더니 옆에 있는 종현이 보이자 바로 꽃다발을 내리고 뒤로 숨긴다.

 

이찬희 앞으로 가니 확실히 얼굴에 뭐가 있다. 상처자국 같은데 피도난다.

 

"야 이거뭐야."

 

종현이 상처를 손으로 어루만지더니 곧 정색을 하며 찬희를 쳐다본다. 약간 화가 난 목소리다.

 

"아..그게..넘어졌어"

"이게 넘어진거야?"

 

종현의 옆에서 내가 한마디 거들자 찬희가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분명 어디서 맞았거나 베였거나 긁혔는데 지나가다 긁혔을리는 없고. 이거 또 불량배들 만나서 얻어터졌구만.

 

"씨발."

 

작게 욕을 내뱉으며 찬희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팔을 잡았는데 찬희가 아아아아아. 하며 소리를 지른다.

 

"야..세게잡지마 부딪혀서 멍들었어."

 

찬희가 날 쳐다보며 일부러 울상인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데 아무리봐도 저 표정만큼은 연기다.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이찬희. 일단 집에 가자."

 

종현이 찬희를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하고 찬희는 고개를 끄덕인다. 걸어서 걸어서 집 가까이 도착했는데 아까 그 종현이 친구의 목소리가 얼핏 들린다.

 

"야 근데. 너무 심했나?"

 

뭐가 심해. 아까 종현이 보면서 내욕한게 심한건가 하면서 그냥 지나가려는데 이어지는 다른 목소리에 발걸음이 멈춘다.

 

"그다지.. 이참에 최종현도 휘어잡아보는거지. 지가 죽고 못사는 이찬희가 그렇게 얻어 터졌는데. 큭큭"

 

아까부터 기분이 안좋았는지 최종현이 말없이 고개를 치켜들고 인상을 쓴다. 찬희 표정은 그 목소리가 들릴때부터 안절부절 못했고. 나는 이게 무슨소린지 이해가 가기도 하면서 안 가는게 멀뚱멀뚱 발걸음만 멈춰있다. 종현이 아까 그 골목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킨다. 일부러 발소리나게 탁탁. 움직이는데 목소리는 멈추지 않고 자기들끼리 들 떠 하하 웃고있다.

 

"그럼 나는~ 최종현 표정이 어떨지나 구경하러 가봐야겠~..."

 

마침 일어서려는 녀석 앞에 최종현이 나타나자 최종현 친구인지 원수인지는 표정이 얼어버렸고 다른 한놈은 이미 도망가고 없다.

 

"너냐? 이찬희."

 

최종현이 살벌하게 웃자 최종현 친구'였던' 녀석이 식은땀을 뻘뻘 흘린다.

 

"아. 이찬희 줘 팬 게 얘야?"

 

어느정도 상황이 이해가 간 나도 종현의 옆에 서서 그녀석을 노려보자 줄행랑을 놓는다. 종현은 이미 저만치 쫓아가고 나도 막 발을 떼려는 찰나 찬희가 내 옷 소매를 잡고있다.

 

"이..이병헌."

"야 너.. 맞기만 한 건 아니지?"

"어... 아냐. 솔직히 말해서 내가 더 때렸는데 쟤 회복력 장난아니네. 일부러 얼굴만 피해서 때렸는데"

"뭐야. 걔들 허세피운거네. 어쨌든 잘했다 잘했어. 그래야 이찬희지."

 

내가 우쭈쭈 하며 찬희 엉덩이를 팡팡 두들기자 찬희가 "왜이래."하며 수줍게 웃는다.

 

"아.. 그리고 이거"

 

아까부터 손에 들고있던 꽃다발을 내미는 이찬희. 이게 뭐냐는 듯 눈짓으로 물어보자 찬희가 대답한다.

 

"어. 이제까지 고백받은얘기 들어줘서 고맙다고."

"...이제 고백받아도 얘기 안할건가봐?"

"아니, 할건데."

"뭐야.."

 

무슨뜻으로 주는 꽃다발인지 대충 짐작은 간다. 이찬희. 꽃다발 주면서 좋아한다고 하려던거지? 좋아한다고. 사귀자고 말할거였지?

 

 

 

 

 

-찬희

 

아침일찍 시내에 나온건 오랜만이라 원래 왔던 목적을 잊고 여기저기 쏘다녔는데 첨보는놈들이 종현일 아냐며 자기들쪽으로 부르더니 골목 구석으로 끌고가 무조건 때리길래 맞고있을 이찬희가 아니라서 일단은 나도 주먹부터 쥐고 본다. 근데 끝도없이 달려들어서 결국에 도망쳐 나왔는데 얼굴에 난 상처가 쓰리다. 맞으면서 뒤로 밀렸을때 벽에 얼굴이 살짝 긁혔는데 피가 새어나온다. 자꾸 만지면 안될것같아서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나오는데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일단 아침부터 시내 나온 목적인 꽃다발을 사러 꽃집으로 들어갔다가 크게 한다발 사가지고 나온다. 병헌이한테 전화를 걸자 금방 달려온다. 꽃다발을 내밀지만 병헌이 옆에 종현이 보인다. 곧 거둔다. 내가 병헌이랑 서로 좋아하는걸 알면 상처받겠지. 근데 얘들이 눈치는 빨라서 상처를 보고 욕부터 하는데 이거 어쩌지. 내가 더 때렸는데 이러면 내가 착한놈 되고 그자식들이 나쁜놈 되는거잖아.

 

집으로 오는데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며 쪼그려 앉아있는 그녀석들 목소리가 들린다. 아 얘들은 내가 더맞은줄 아는데. 쟤들이 더맞은거 알면 나더러 완전 내숭이라고 할건 뻔한데. 아. 미치겠네이거.

근데 하늘이 날 돕는지 일이 알아서 풀린다. 근데 내가 걔들을 더 때린건 아마 피 보고 눈이 뒤집어져서 그런거일지도. 평소에 애들 잘안때리고 다니는게 나다. 그냥 피가 보이자 눈에 뵈는게 없었던 거지. 아마도..

 

병헌이한테 건넨 꽃다발은 사실 사귀자고 말하려던 거 였는데. 말이 헛 나온다. 사귀자는 말을 하기가 힘들다. 왠지 심장이 터질것같아서.

 

것보다 얘랑 같이있으면 내가 여자가 되버린다니까. 난 남자라고. 인터넷에서 본 BL물에서 덮치고 당하는 역 중에 당하는 역이 내 역할인거야? 헝.. 그래도 이병헌 너니까 만족해.

 

"너네집 가자. 약해야지."

 

병헌이 날 우리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데 문이 열려있다. ...내가 비밀번호 창현이말고 알려준 사람이 있던가. 그러고보니 창현이 얜 어제 밤새도록 안오더니 어딜간거야. 이런저런 생각으로 거실로 들어서는데 다니엘과 창현이 티비를 보며 과자를 먹고있다.

 

"악!!!!!!!!!!!!!!!!!!"

"아!! 왜그래!"

"그과자!!!!!!!!!!! 내가 먹으려고 아껴둔건데!!!!!!!!"

 

내 과자를 뜯어먹는 다니엘과 창현을 보니 본능적으로 소리를 지르게된다.

 

"뱉어! 뱉으라고! 빨리!!"

"아! 형 왜이래!! 병헌이형!!!!!"

 

소리를 지르며 창현과 다니엘의 등짝을 후려치자 창현이 평소에 그렇게 미워하던 병헌을 구세주처럼 불렀는데도 병헌은 뒤도 안 돌아보고 방에 들어가 약상자를 찾는다. 피식 하고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찬희 일로와."

 

약상자를 찾았는지 병헌이 날 부른다. 쫄래쫄래 병헌이 들어갔던 방으로 가자 병헌이 상처부위를 물티슈로 한번 닦더니 소독을하고 반창고를 붙인다. 서툰 손길이 느껴지지만 좋다. 행복하다. 이병헌 너라서 좋은거야. 받들어모셔.

 

"이제 맞고 다니지마. 이쁜얼굴 다 흉진다."

 

병헌이 내얼굴을 손으로 감싸더니 소리나게 쪽하고 입을 맞춘다. 어디부터 봤는지 니엘이 방문을 빼꼼히 열고 병헌을 따라한다.

 

"이제 맞고 다니지마. 이쁜얼굴 다 흉진다. 들었냐 창현아~ 이쁜 얼굴이랜다~"

"어~들었어~ 형~나 쪽 소리 나는것도 들었는데 내가 잘못들은거지~?"

"당연~한거 아니겠니 창현아"

 

뒤를 돌아보는데 허공을 쳐다보며 서로 얘기를 주고받는 다니엘과 창현의 모습도 귀여워보인다. 이병헌 이게 다 너때문이야.

 

 

 

 

이후로 몇일이 지나고 개학식을 하는데 이제 3학년이라니 믿기지도않고 그냥 3학년 일일 체험같다. 교실로 향하는데 자꾸 어떤 눈빛에 쏘이고 점심시간에 그 눈빛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봐서 얼굴이 진짜 뚫힐것 같다. 뭐야 하는데 밥을 다먹고 병헌이랑 같이 나가려는데 이 느림보자식이 아직 밥을 덜먹어서 그냥 혼자 가야겠다. 혼자 급식실을 나서는데 급식실 앞에서 기다린 듯 어떤 여자애가 다가온다.

 

"저기.."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걸어오는데 분위기가 또 심상치않다. 입학식때 보고 첫눈에 반했다는데 사귀자는 말이 입에서 나오자마자 내 뒤에서 어깨에 누군가의 앞발이 턱- 하고 올라오는데 뒤를 돌아보니 이병헌이다.

 

"미안."

 

병헌이 대신 대답을 하고선 내손목을 붙잡고 바로 교실로 향한다.

 

"야."

"응."

 

교실로 가는 길에 병헌이 그 입을 잠시도 가만히 하지를 못하고 또 말을 건다.

 

"그만좀 이뻐라 질투난다"

"치."

"이제 니옆에 붙어다녀야겠다"

 

하여튼. 이병헌 귀여워 진짜.

 

 

 

 

 

 

 

 

 

 
 06.

 

 

 

-병헌

 

"병허나. 병헌아. 이병헌. 야. 집에가야지. 야!!"

 

찬희 목소리가 들리는데 이상하게 아까 매점에서 사먹은 술도 아닌 사이다에 취했는지 일어나고 싶지가 않다. 찬희 목소리에 취해서 계속 엎드려서 자려는데 머리위로 주먹이 날아온다.

 

"야! 이날라리 병아리야!"

 

찬희가 왜 날 때리지 하는 생각에 한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위로 올려다보는데 헐 찬희가 아니라 다니엘이다. 뭐지? 방금내가 헛소리를 들었나?

 

"야 일어나. 또 떡볶이집 가야지."

"...?또 왜?"

"찬희 또 고백 받았대."

 

내 머리를 때린 주먹을 내리지도 않고 다니엘이 말하는데 주먹은 내려라. 제발. 또 때릴것같아서 무섭다고.

 

하여튼 다니엘이 찬희를 가르키는데 찬희가 옆에서 가방을 싸고있다. 비장한 표정이다.

 

"그럼~난 창현이랑 먼저 간~~다~"

 

얄밉게 말꼬리를 늘어빼고는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몰랐던 창현의 손을 꽉 잡고 문을 나서는데 진짜 둘이사귀냐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오늘 숙제가 없었던걸로 기억하고 책상위에 널브러져있는 펜들을 필통에 주워담아서 가방 속을 보지도 않고 쑤셔넣는데 잘 안들어간다. 뭐지 해서 보니까 안에 왠 인형이.

 

"아 그거 아까 2학년에 어떤 여자애가 너 잘때 넣고 막 가던데."

 

의아한 표정으로 인형을 멍하니 보고있는 내쪽으로 고개를 돌린 찬희가 아까와는 다르지만 억지로 왠지 조금 심각했던 표정을 일부러 억누르며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얼굴이 빨개져서는 편지같은것도 넣던데. 찾아봐."

 

아까의 해맑은 표정은 점점 사라져가고 질투심어린 눈빛으로 점점 변해가는데 그걸 보고있자니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이찬희 너란남자 무서운 남자. 내가 끝끝내 편지를 못찾자 결국 직접 찾아주는 너란남자 착한남자. 합치면 무섭고 착한 남자.

 

"병헌이오빠. 2학년 가은이예요. 아시죠? 친하진 않았지만 평소 인사도 몇번 하고 다녔던 최가은이요."

 

찬희가 국어책 읽기 식으로 한글자 한글자 임팩트를 담아 또박또박 읽는데 이것도 아까보다 만만치않게 등골이 오싹하고 서늘하다. 바람피다 걸리면 안되겠네.

 

"봄방학동안 오빠생각 많이 했어요. 잘은 몰랐는데 오빠를"

 

찬희가 편지를 읽다 말고 표정이 점점 굳어져가자 뭐라 적혀있나 싶어 편지지를 들여다보니 찬희가 탕 소리나게 편지를 내 책상에 올려놓고는 불이 활활 타오르는 눈과 아웃사이더 뺨치는 속사포로 말한다.

 

"좋.아.하.나.봐.요.편지보시거든아니면결정하신후에010-****-****으로전화해주세요오빠저랑사귀어주세요전화기다릴게요 라고하네 병헌아~"

 

그늘진 얼굴에 그렇게 웃지마. 나진짜 무서워서 울거같다고. 엄마 얘 누구야.

 

"누구한테? 누구한테 사귀자고해? 병헌이? 그 3학년 3반 병헌이~? 내말 맞지 병헌아~?"

"어..으응.."

"그럼~ 예의상 전화는 아예 하지 마시고~ 병헌아 우린 떡볶이 먹으러 가자 ^0^"

 

등 뒤가 서늘하더니 떡볶이 먹으러 가자는 소리에 급 화색이 도는 찬희 목소리를 들으면 신기하게도 아까 느꼈던 공포도 싹 사라진다. 효과 빠른 약같은.

 

전교생이 다 빠져나온 학교를 찬희랑 둘이서만 빠져나오면 학교가 우리것같아서 교문으로 가는 내내 소리도 지를수있고 좋다. 우리 매일 이렇게 늦게 갈까? 하고 찬희에게 물어보는데 장난스레 웃어준다. 교문에서 약 100m 앞에 있는 떡볶이집에 다다랐을때쯤 평소처럼 찬희가 말을 시작한다.

 

"이번엔 종현이."

"종현이? 최종현?"

"응."

"...또 고백했어?"

"아. 좋아한다고는 했는데 중심내용은 그게 아냐."

 

항상 앉던 그 구석자리로 갈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떡볶이도 시키고.

 

"미안하다 그러더라고. 이제까지 나 곤란할건 생각도 안하고 따라다녀서. 너랑 나랑 서로 좋아하는거 뷔페갈때부터 알고있었대. 근데 방해될까봐 일부러 그때부터 아무말도 안했다더라. 아직도 나 좋아하는건 맞는데 더이상은 고백 안할거고 마음 안접히면 계속 좋아할거라면서 알아서 나한테 관심 없어질때까지 계속 아무 방치도 안하고 계속 두겠다더라.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는 나를 다른 누군가한테 뺏기는건 싫어도 이왕 뺏기는거 너한테 뺏기겠다면서. 계속 너랑 행복하라고. 그동안 귀찮게 계속 쫓아다녀서 미안하다고 계속 좋은 친구로 친하게 지내자고 하면서 갔어."

"어딜 가?"

"..집에갔겠지."

".. 근데 뺏기는건 싫다면서 왜 난 괜찮다고.."

"그거야 나도 모르지. 다음에 보면 직접 물어보던가."

"넌 나랑 최종현이랑 안친한거 알면서 끝까지.."

"얼마전에 둘이서 나 찾아온거보면 안친한건 아니잖아."

"안친해."

 

딱잘라서 말하자 찬희 표정이 장난스레 굳는다. 두팔을 뻗어서 볼을 감싸자 얼굴이 두손안에 모두 들어온다. 손을 떼자 찬희가 베시시 웃는데 너무 예쁜거 아니냐고 이찬희 너.

 

떡볶이가 나왔는데 먹지도 않고 서로 눈치만 보다가 먼저 수저통의 젓가락을 집어든건 나였다. 젓가락을 한쪽만 꺼내들어 떡볶이를 하나 콕 찍어 정성스레 불어서 니 입에 가져다댄다. 안먹을 기세로 눈만 굴리다가 결국 덥석 물어버리는 너를 표정없이 보기도 힘들어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찬희

 

떡볶이집에서 또 볼일을 끝낸 후에는 집으로 향한다. 집 문을 열자 창현이 거실 쇼파에 앉아서 폰으로 게임을 하는 모습 먼저 들어온다. 티비는 보지도 않으면서 켜놓고. 하여튼 니가 하숙한 후로 전기세가 확실히 많이나와.

 

"야, 유창현. 티비 안볼꺼면 끄라고 내가 몇번을 말해!"

"아. 형 나 귀 터지겠엉. 남친 생긴 겸에 참아. 릴렉스 릴렉스."

 

평소랑 다르게 애교를 살살 피우는데 내눈엔 하나도 안 귀엽다. 애교를 부리려면 병헌이 정도는 되야지. ...병헌인 애교 부린 적 없나? 것보다 무슨 남친이야!?

 

"남..남자친구?...누구?"

"....아니야? 학교에 소문 다 났던데.."

"누,누..누누..누구?"

"어..이찬희 이병헌 사귄다고.."

"야!!!!!!!!!!!!!!!!"

"아!!!진짜!!! 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당황스러워도 한참 당황스러울 때, 그니까 엎어진 물을 주워 담고 싶을때 소리를 지르는 내 습관에 이어 창현이가 놀랐거나 흥분했을때 반말이 나오는 습관이 이어진다. 무의식중에 창현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소리를 지른다.

 

"거 거거 거짓말이지!!! 빨리 거짓말이라고 해!! 야!! 빨리!!!"

"아 그래 거짓말이야!!!!! 됫냐?! 그니까 빨리 이거 놔!!"

 

사실을 알고나면 뭔가 허무하다. 모르는게 약인데 그 거짓말을 알기전이 정말 약이었는데 거짓말이란걸 알고나니까 모르는게 약이었다는 느낌이 들도록 허전하다. 괜히 이상하게 오버를 한 나를 되돌아보니 너무 우습고 쪽팔려서 뒷머리를 긁적이며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는데 뒤에서 창현이 "씨잉.."하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방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창문 밖의 병헌이 방에서 불이 꺼져있다. 또 무슨일인지 전화라도 해볼까 하다가 할말도 없고 해서 그냥 관둔다.

 

 

 

 

 

 

 

 

 

 
 07.

 

 

 


 

-병헌

 

아침에 일어나 무의식중에 핸드폰을 열어보니 오전 10시다. 또 학교 뭐시기하고 번뜩 생각이 나지만 오늘 놀토라는 생각이 다시 들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다른때랑 똑같은 평범한 아침에 평범한 잠자리인데 다른게 있다면 평소 자고 일어나면 찌뿌둥하고 무거웠던 몸이 오늘은 조금 가볍다. 그래 오늘은 평범한 토요일이 아니라 특별한 토요일일것같은 느낌이 든다. 이찬희 너랑 나한테만.

시간이 10시인것을 확인하고 폴더를 닫았다. 그러나 문득 뭘 본것같아서 다시 불꽃같이 핸드폰을 연다. 문자. 문자가 와있다. 이게무슨 문자지? 하면서 메시지함을 확인하는데 발신자 표시에 이찬희가 눈에띈다.

 

-[언제? 몇시에온다고?]

 

뭘? 뭘 몇시에 와? 얘가 잘못보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뭘 몇시에와]

 

하고 답장을 보내니 내가 답장하길 기다렸는지 바로 답장이 온다.

 

-[니가오늘 우리집온다고햇자나ㅡㅡ]

[나?내가?]

-[그래이병헌너가]

 

내가 그랬던가? 기억이 날듯말듯 머릿속을 뒤집어보니 아 어제 학교마치고 집에오면서 오늘 집에갈테니까 기다리고있으라 그랬었구나. 어제 술을먹었나 필름이끊긴듯한현상이 드는건 왜지. 나 술 안먹는데..

 

[모르겠다 나방금일어남 서방님 열두시에갈테니까 식사대접할준비나해라]

 

과감히 서방님을 붙인다. 지금쯤 문자를 보고 굳은 얼굴로 웃고있을 찬희가 눈에 선하다. 뭐 어차피 너도 날좋아하고 나도 널좋아하는게 확실하니까 서방님 맞잖아 안그래? 하지만 돌아온건

 

-[ㅋ서방? 집에올때 갑옷입고와 죽을지도모르니까]

 

소름이돋아 손으로 팔을 쓱쓱 쓸어내리며

 

[ㅠㅠ미안.. 잠만나좀씻구]

 

이란 답장을 보내며 욕실로 들어간다.

 

-

 

씻고 나오니까 문자가 또 와있다. 아 하여튼 이놈의 인기란. 하고 문자를 확인했는데 빨리오라고 재촉한다. 헐?뭐지? 혹시 벌써 열두신가? 했는데 아직 열시 삼십분이다.

 

-[언제올꺼야ㅡㅡ]

[....아직열두시 안됬는데]

-[아그래 너그렇게 천천히하다가 밤열두시에 오세요]

[그래 내가 그렇게 보고싶은 니마음 어쩌겠냐ㅋ 에휴]

 

어지간히도 내가 보고싶었나보다. 거울을 보니 나도 내가 참 잘생겼다 싶다. 이러니까 이찬희가 안넘어와? 이러니 이찬희가 안반해? 이병헌. 넌 참 잘생긴 놈이야.

핸드폰을 옆에두고 방에있는 거울을 보며 거실에 있는 엄마 몰래 심취해있었는데 갑자기 핸드폰에 울린 진동때문에 깜짝놀랐다. 허나 일부러 시크한척하며 문자를 본다.

 

-[너갑옷은 준비하고 이러는거야?]

 

표정은 시크한척 해보지만 정신은 이미 안드로메다 멀리멀리 가버리고 없다. [ㅠㅠㅠㅠㅠㅠ미안ㅋㅋㅋㅠㅠㅠㅠㅠ] 하는 답장을 보내두고 빨리빨리 옷좀 갈아입어야겠다.

아 그전에 찬희볼때만 쓰려고 사둔 남ㅋ좌ㅋ의 냄새가 철철 나는 향수도 뿌린다. 시ㅋ크ㅋ간지 꽃소년과 저멀리 미쿸 퀠릐포ㅓ니아 갱스터 스타일을 한꺼번에 보일수 있도록 옷을 입는다. 원래 이렇게 잘 안뿌리고 잘 안입는데. 왜냐고? 오늘은 이찬희와 나를위한 특ㅋ수ㅋ 굿 홀리데이니까.

 

 

-

 

 

"엄마 나 나갔다올께"

"어딜가?"

"찬희집."

"아그래"

 

찬희집은 하도 들락날락거려서 이젠 당연하게 여기는 엄마가 티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시크하게 보내준다. 내가 이렇게 시크한건 엄마를 닮아서인가. 아, 안시크하다고? 미안미안. 것보다 난 누구랑 이렇게 대화하는거지.

 

찬희 집에 들어가기전 시간을 본다. 열한시 오십분. 뭐 대충 열두시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고 찬희얼굴을 보길 기다리는데 으잉 찬희가 아니고 창현이다. ㅊㅎ인건 똑같은데 찬희랑은 다른 저 '써글'이라고 적힌 표정.

 

"........."

"......."

 

둘사이에 어색한 정적만 흐르고 아무대화 없자 찬희가 안에서 나온다.

 

"야, 내가 데리고 들어오라그랬지 여기서 감상하라그랬냐? 이리와, 빨리와. 당장와."

 

찬희가 창현일 끌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이거 안으로 들어가기 뭐하고 그냥 서있기도뭐하다. 뒤늦게서야 들어오라는 손짓을 보고 들어간다.

참 진짜 한두번 오는 찬희집이 아니다보니 집 구조는 다 익혔지만 볼때마다 뭔가 바뀐것같지만 물어보면 아니란다. 갈수록 집에 들어섰을때 느낌이 다른것같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근데 뭐때문에 온다던거야?"

 

밥을 먹다가 갑자기 얘기를 꺼내는 찬희와 눈이 마주치자 이유없이 미소짓게된다. 웃지말고 얘기해보라며 자기도 미소를짓고 물어보는 찬희가 밥을 다먹을때까지 계속 미소짓는다. 대충 눈치를 챈건지 아니면 그냥 웃고있는건지.

 

밥먹고 무작정 찬희를 상가쪽 공원으로 데려가서는 기다리라고 하고, 바로 공원 밖으로 뛰어나간다. 그다음 바로 꽃집으로 향해서는 인심쓰고 삼만원짜리 꽃다발을 큰맘먹고 산다. 평소같으면 비싸다고 사지도 않았을 꽃이지만 오늘은 특별하니까 산다. 이찬희 내가 너때문에 돈쓰는거봐. 그다음 주변 팬시점으로 들어가서는 이찬희 키의 반만한 곰인형을 사서는 바로 뛰어나온다.

많이 기다렸겠지, 아니 기다리고 있겠지. 그생각을 하면서 뛰는데 땀이난다. 근데 힘들지도 않고 숨차지도 않는다. 머릿속에 니생각밖에 없다. 꽃다발이랑 인형때문에 앞이 잘 안보이지만 다시 고쳐잡고 뛰어간다. 사람들이 무슨인형인지 하고 쳐다본다. 지나가는 아이도 저인형 사달라며 엄마를 조른다. 주변이 어떻든 신경도 안쓴다. 신경을 안쓰는게 아니라 신경이 안쓰인다.

공원에 도착하니 니가 아까 그 시계탑 분수대 앞 벤치에 앉아 노래를 듣고있는지 귀에 이어폰을 꽂고 흥얼거린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서야 알아채고는 이어폰을 빼고 인형에 가려진 꽃다발은 보지도 못하고 그저 인형에 놀라며 이게 뭐냐고 미소짓는다.

 

"...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지만 말하자니 쑥쓰럽고 첫글자가 안나온다. 그 첫글자만 말하면 다 말 할 수 있을것 같은데 그게 잘 안된다. 사람도 없는 한적한 이곳에서 난 뭐때문에 이렇게 바보같이 말도 못하고 찬희 눈치만 보고있는거지. 이미 내가 무슨말을 할지 다 알아챈 찬희가 찬스인듯 아닌듯 살짝 건넨다.

 

"나 너 좋아하는거 맞아."

 

푹 숙여지고있던 고개를 들어 찬희를 쳐다보는데 항상 먹던 그 떡볶이맛과는 다른 달달한 미소를 짓고있다. 항상 내가 아닌 다른놈들에게 고백받을때 짓던 그 떡볶이맛의 매운 미소가 아닌 단맛의 미소. 항상 나한테만 지어주던 그 미소를 보자 갑자기 용기가 생긴다. 인형에게 꽃다발을 안기고 찬희에게 꽃다발을 건넨다. 찬희가 받아든 꽃다발이 찬희의 그 단맛 미소보다 못해 시들시들해져 보인다. 참 새삼 느끼는거지만 세상 그 어떤 꽃도 너보다 빛날순 없구나.

찬희가 꽃다발을 받아들자마자 인형의 팔을 벌려 인형 품에 찬희를 쏙 넣고는 눈감고 지른 내한마디.

 

"이찬희 나랑 사귀자"

 

숨을 내뱉으며 미소짓는 찬희가 내가 아닌 인형의 입에 뽀뽀한다. 그리고 내가아닌 인형을 끌어안고 함박웃음꽃을 피운 찬희가 이렇게 말한다.

 

"그래, 병헌아"

 

 

 

 

 

 

 

 

 

 
 -에필로그

 

 

 

-찬희

부모님은 우리가 사귀는거 모르신다. 뭐 당연히 친구들한테 말 할거면 부모님한테도 말 해야하고 부모님한테 말 안 할거면 친구한테도 말 안 해야 하지만 괜히 상처 드리기가 무섭다. 애지중지 키워온 아들이 동성애자인데 충격받으면 어쩌시나 하는 생각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여자친구 만나고 온다고 하고 밖에 나갔다 왔지만 어느날 엄마가 이런 말을 했었다.

 

"여자친구 얼굴 한번 보자. 얼마나 이쁘면 그렇게 주말마다 만나고 다녀?"

"아, 얼굴은 무슨. 사귄지 얼마나 됬다고.."

"아니 얘가, 사귀자마자 엄마한테 데려와야지, 나도 손주손녀좀 보자. 얼른 데려와."

"아진짜 아직 졸업도 안했는데 무슨 손주손녀야. 엄마 진짜 할머니 다됬어"

 

다행히도 창현인 가만히 있었다. 나랑 사귄다는 애가 여자다 남자다 아무말도 안했고, 나랑 사귀는 애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아예 관심 없는 척 했다.

 

허나 엄마도 하나뿐인 친아들이 만난다는 여자애가 얼마나 잘난 애길래 얼굴도 안보여주나 해서 그랬는지 어느날 병헌일 만나러 가는 내 뒤를 밟았다. 그리고 그자리에서 봤다. 병헌이랑 내가 손잡고 뽀뽀하는거.

 

아, 망했구나 싶었다. 병헌이네 어머니야 뭐 동성애자에 대해 별 꺼려하시지 않고 개방적이셔서 우리사이 다 알고 계시지만, 우리엄마는 아니다. 혐오 정도는 아니지만 별로 좋아하진 않으셨고. 그런데 우리 앞에 나타난 엄마가 근처 카페로 데리고 가더니 내옆에 앉아 맞은편에 앉은 병헌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게 아닌가.

내가 그렇게 좋은지, 다른사람들 시선에 상처받지 않고 날 정말 행복하게 해줄수있는지, 자기가 믿어도 되는지, 이런걸 자꾸 물어보다가 어느새 나한테 고개를 돌리면서 약간 충격받은 얼굴 위에 억지웃음이란 가면을 덮어쓰고는 말했다.

 

"내가 동성애 같은데에 개방적인건 아닌데, 너가 남자 좋다면 나도 이해해볼게. 너 아빠한텐 내가 잘 말해볼테니까 신경쓰지 말고."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런게 자식사랑이구나 하고. 난 엄청 혼날줄 알았는데. 아니면 엄마가 병헌이 멱살 잡고 제발 그러지 말라고 울고불고 한다던가. 아니면 심한경우엔 쇼크먹고 쓰러질줄 알았는데 아니다. 그렇게 사귄지 한달만에 양쪽 부모님 둘다 허락하셨다.

 

이 얼마나 기쁜 순간인가. 엄마의 질문을 받으면서 그동안 진지했던 병헌이의 굳은 얼굴도 순식간에 밝아지고 나와 시선을 맞추더니 활짝 웃어보인다.

 


-

 


학교에서 아는건 반 애들 외에 몇몇 뿐이다. 몇 애들이 인상을 펴지 못하지만. 그래서 왠만한 스킨쉽은 자제중이다.

고백받는 횟수는 별 차이 없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전처럼 떡볶이집은 꼭 놓칠 수 없는 코스다. 떡볶이는 매워도 우리사이는 그저 달다. 왜이렇게 단맛이 나는지 깨가 쏟아진다는 느낌이 이런거일까 한다.

 

참 진짜 새삼 느끼는거지만 너랑있으면 너무 행복하다. 니 눈만 봐도 행복하고 숨소리만 들어도 행복하고. 심지어는 눈을 가려도 니가 옆에 있다는게 너무 좋다. 목아래까지 답답하게 둘러싸인 느낌인데도 그게 행복이라서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뭘해도 머릿속을 울리는 니목소리, 머리카락 하나하나 다정하게 쓸어주는 니 손길이 오늘도 날 설레게 한다.

 

사랑해, 병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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