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강술래 뜻이 뭔가요?? 내공 5 겁니당..

강강술래 뜻이 뭔가요?? 내공 5 겁니당..

작성일 2007.11.06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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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 뜻좀 알려주세염^^ 내공 5걸꼐염 좋은 질문 부탁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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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가 어느 때 어떻게 하여 시작되었는지 그 유래에 대해서는 이렇다 하게 밝혀볼 수 없고 다만, 이 놀이가 꽤 오래 전에 발생한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고대 부족사회의 공동축제 등과 같은 모임 때 서로 손과 손을 맞잡고 뛰어 놀던 단순한 형태의 춤이 오늘날에 보이는 강강술래의 시원(始原, 처음,시작)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원무(圓舞=둥근 원을 그리며 추는 춤)의 형식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오랜 역사를 갖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손에 손을 잡고 한마음으로 하나의 흐름을 이루며 뛰노는 이 놀이가 민중의 축제에서 크게 놀아졌음은, 그 놀이의 형식이나 뜻으로 보아 바람직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원무 형식에 곁들여 불러졌을 노래 도한 오랜 연유를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강강술래는 또는 강강수월래 등으로 구전(口傳)되어 내려오는 강강술래 노래로 미루어, 강강술래놀이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미 원시 공동체 사회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추측하는 것이다. 훨씬 후, 이것이 임진왜란 때 충무공의 전술(戰術)과 결부되어 그 뜻이나 내용에 대한 폭이 넓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임진왜란 때의 충무공과 강강술래를 관련 지어 전해 오는 이야기를 소개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명량(鳴梁) 바다에서 왜적을 무찌를 때 충무공이 거느린 전선(戰船)은 불과 12척밖에 없었고, 이에 비해 왜선(倭船)은 3백50여 척이나 되었다고 한다.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왜적과 맞서기 어렵게 되자 충무공은 아낙네들을 모아 군복을 입히고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산봉우리를 돌게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왜적에게 마치 수만의 대군이 산 봉우리를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의병술(擬兵術)을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이때 아낙네들이 산봉우리를 돌면서 서로 손을 맞잡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던 것이 바로 강강술래의 비롯이라는 설이다.

둘째, 위와 같은 이야기지만, 산봉우리를 돌지 않고 갯마을에서 아낙네들이 노래 부르며 춤을 추면서 왜적의 눈을 속였다고 한다. 그 후 현지 주민들은 충무공의 승전(勝戰)을 기리기 위해서 이때 의병술(擬兵術)로 쓰였던 춤을 놀이화 하여 강강술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셋째, 옥동(玉洞) 앞바다에서 왜적을 크게 격파하였다. 왜적의 피로 바닷물이 물들어 이곳을 <피바다>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또 우수영(右水營)앞에 있는 울도에다 쇠줄을 매달아 왜선이 지나갈 때 쇠줄을 당기어 격침시켰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의 어린이들은 <울도>소리만 들어도 우는 소리를 그쳤다고 한다. 이처럼 처절한 싸움을 할 때 병력이 적은 충무공은 왜적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진도(珍島) 둔절리 뒷산을 곡창(穀創)으로 의장(擬裝)하여 군량이 많음을 과시하고, 한편 아낙네들을 동원하여 각기 색색옷을 입혀 산 둘레를 돌게 하였다. 이를 끝없는 군사의 행렬로 착각한 왜적은 크게 놀라 달았났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의장(擬裝)된 군사행렬이 강강술래의 기원이라는 설이다.

넷째, 임진왜란 때 남자는 모두 전쟁에 동원되어 전쟁터에 나갔고 마을에는 아낙네들만이 남았다. 충무공은 아낙네들에게 남자 옷을 입히고 좌수영 동쪽에 잇는 옥매산(玉埋山)에 올려보내 강강술래를 시켰다고 한다. 이 같은 의병술에 속아 왜적이 물렀났다고 한다. 충무공의 의병술로 창안한 강강술래가 민속놀이화 되어 그 후 계속하여 전승되었다고 하며, 강강술래라는 말은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의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라고 한다.

위의 몇몇 속설(俗設=전해지는 이야기)대로 따른다면 강강술래놀이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의 의병술에서 연유되었고, 그 후 충무공의 전승(戰勝)을 기리기 위하여 연중행사로 놀아져 왔다고 볼 수도 있다. 이는 강강술래가 놀아지는 지방이 주로 옛날 충무공이 왜적들과 싸웠던 남해안 일대라는 것과, 강강술래가 충무공의 전술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을 유추(類推)해 볼 때, 위와 같은 속설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 농경시대의 파종(씨를 뿌림)과 수확 때의 공동축제에서 노래 부르며 춤을 추던 놀이 형태가 계속 이어져 내려오면서 점차 강강술래놀이와 같은 모습으로 발전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이 놀이를 의병술로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친 후 더욱 세상에 널리 알려져 당시의 격전지였던 전라도 남해안 일대에서 성행되어 온 것으로 추측된다.

이 놀이는 주로 한가윗날 밤에 놀았지만, 지방에 따라서는 정월 대보름밤을 비롯해서 봄 . 여름 . 가을 . 겨울 어느 때든지 달 밝은 밤에 수시로 놀아왔다. 또한 놀이꾼들도 여인네들에 국한하지 않고 남자들도 함께 어울려 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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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정월대보름날 동그랗게 손잡고 둘러쌓고 노래를 부르면서 빙빙 도는 겁니다

 

너무짧아서 죄송~!!!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강강술래의 유래입니다

강강술래가 어느 때 어떻게 하여 시작되었는지 그 유래에 대해서는 이렇다 하게 밝혀볼 수 없고 다만, 이 놀이가 꽤 오래 전에 발생한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고대 부족사회의 공동축제 등과 같은 모임 때 서로 손과 손을 맞잡고 뛰어 놀던 단순한 형태의 춤이 오늘날에 보이는 강강술래의 시원(始原, 처음,시작)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원무(圓舞=둥근 원을 그리며 추는 춤)의 형식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오랜 역사를 갖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손에 손을 잡고 한마음으로 하나의 흐름을 이루며 뛰노는 이 놀이가 민중의 축제에서 크게 놀아졌음은, 그 놀이의 형식이나 뜻으로 보아 바람직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원무 형식에 곁들여 불러졌을 노래 도한 오랜 연유를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강강술래는 또는 강강수월래 등으로 구전(口傳)되어 내려오는 강강술래 노래로 미루어, 강강술래놀이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미 원시 공동체 사회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추측하는 것이다. 훨씬 후, 이것이 임진왜란 때 충무공의 전술(戰術)과 결부되어 그 뜻이나 내용에 대한 폭이 넓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임진왜란 때의 충무공과 강강술래를 관련 지어 전해 오는 이야기를 소개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명량(鳴梁) 바다에서 왜적을 무찌를 때 충무공이 거느린 전선(戰船)은 불과 12척밖에 없었고, 이에 비해 왜선(倭船)은 3백50여 척이나 되었다고 한다.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왜적과 맞서기 어렵게 되자 충무공은 아낙네들을 모아 군복을 입히고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산봉우리를 돌게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왜적에게 마치 수만의 대군이 산 봉우리를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의병술(擬兵術)을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이때 아낙네들이 산봉우리를 돌면서 서로 손을 맞잡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던 것이 바로 강강술래의 비롯이라는 설이다.

둘째, 위와 같은 이야기지만, 산봉우리를 돌지 않고 갯마을에서 아낙네들이 노래 부르며 춤을 추면서 왜적의 눈을 속였다고 한다. 그 후 현지 주민들은 충무공의 승전(勝戰)을 기리기 위해서 이때 의병술(擬兵術)로 쓰였던 춤을 놀이화 하여 강강술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셋째, 옥동(玉洞) 앞바다에서 왜적을 크게 격파하였다. 왜적의 피로 바닷물이 물들어 이곳을 <피바다>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또 우수영(右水營)앞에 있는 울도에다 쇠줄을 매달아 왜선이 지나갈 때 쇠줄을 당기어 격침시켰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의 어린이들은 <울도>소리만 들어도 우는 소리를 그쳤다고 한다. 이처럼 처절한 싸움을 할 때 병력이 적은 충무공은 왜적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진도(珍島) 둔절리 뒷산을 곡창(穀創)으로 의장(擬裝)하여 군량이 많음을 과시하고, 한편 아낙네들을 동원하여 각기 색색옷을 입혀 산 둘레를 돌게 하였다. 이를 끝없는 군사의 행렬로 착각한 왜적은 크게 놀라 달았났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의장(擬裝)된 군사행렬이 강강술래의 기원이라는 설이다.

넷째, 임진왜란 때 남자는 모두 전쟁에 동원되어 전쟁터에 나갔고 마을에는 아낙네들만이 남았다. 충무공은 아낙네들에게 남자 옷을 입히고 좌수영 동쪽에 잇는 옥매산(玉埋山)에 올려보내 강강술래를 시켰다고 한다. 이 같은 의병술에 속아 왜적이 물렀났다고 한다. 충무공의 의병술로 창안한 강강술래가 민속놀이화 되어 그 후 계속하여 전승되었다고 하며, 강강술래라는 말은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의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라고 한다.

위의 몇몇 속설(俗設=전해지는 이야기)대로 따른다면 강강술래놀이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의 의병술에서 연유되었고, 그 후 충무공의 전승(戰勝)을 기리기 위하여 연중행사로 놀아져 왔다고 볼 수도 있다. 이는 강강술래가 놀아지는 지방이 주로 옛날 충무공이 왜적들과 싸웠던 남해안 일대라는 것과, 강강술래가 충무공의 전술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을 유추(類推)해 볼 때, 위와 같은 속설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 농경시대의 파종(씨를 뿌림)과 수확 때의 공동축제에서 노래 부르며 춤을 추던 놀이 형태가 계속 이어져 내려오면서 점차 강강술래놀이와 같은 모습으로 발전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이 놀이를 의병술로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친 후 더욱 세상에 널리 알려져 당시의 격전지였던 전라도 남해안 일대에서 성행되어 온 것으로 추측된다.

이 놀이는 주로 한가윗날 밤에 놀았지만, 지방에 따라서는 정월 대보름밤을 비롯해서 봄 . 여름 . 가을 . 겨울 어느 때든지 달 밝은 밤에 수시로 놀아왔다. 또한 놀이꾼들도 여인네들에 국한하지 않고 남자들도 함께 어울려 놀기도 하였다.


< 강강술레 특징>

강강 술래는 흥겹게 놀면서 사람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심화시키므로 아이들의 평소 생활과 생각을 담아 내어 공동체로 이끌어 가는 대동 놀이로 좋다. 강강술래의 특징을 보면

첫째, 강강술래의 기본 대형은 원이다. 원이란 것은 중심에서 어디든 같은 거리에 있다. 그것은 거기에 참가하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한 관계임을 말한다. 사회가 권위적이고 계급적이 되면 원이 형태가 흩어지고 네모진 대형이 된다. 운동회나 학습 발표회 때 보여지는 무용의 형태를 보면 대부분 네모진 대형이다. 하는 사람과 구경꾼이 뚜렷이 구분되어 구경하는 아이들이 관심이없다.

둘째, 손을 맞잡고 마주본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보다는 춤을 추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심이 된다. 서로 손을 잡고, 발을 맞추고, 목숨(호흡)을 나누며 서로의 생활과 생각을 담는 앞소리와 그에 대응하는 뒷소리(강강술래)를 같이 부르며 공감대를 만들어 가고 그 동안 지내 온 것을 노래로 표현하면서 마음에 있는 갈등도 풀어내고, 새로운 소망을 담아 새로운 생활을 약속하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셋째, 다른 나라 원무와는 다르게 처음엔 쉬운 놀이에서 어려운 놀이로 다양하게 이어지고, 느린 가락(진양조)에서 점점 빠르게 진행된다. 이렇게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다양한 통일감으로 일치시켜 간다. 또한 부분 부분이 하나로 독립적이면서 전체가 통일되고, 다음 놀이로 진행될 때 잘연 스레 이어지면 부분을 떨어뜨려 놀아도 된다.

마지막으로 강강술래는 모두가 주인으로 참여한다. 어느 한 사람 그냥 서있거나 구경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계속 움직이며 따라가서 이런 저런 형태를 만들고 이런저런 형태를 만들고 심지어 노래도 잘하는 사람이 앞소리 하면 전체가 뒷소리를 매기면 함께하고 있다. 큰 움직임이 없지만 모두 자신이 주인으로 판을 이끌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것이 생활화되어 그 밖의 다양한 문화에서 언젠가 모든 일을 주인으로서 내세우게 되는 근원이 된다.


<놀이 방법>

많은 여인네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둥그렇게 원을 지어 돌아가며 노래소리에 맞추어 춤을 춘다.

노래는 목청이 빼어난 사람의 앞 소리(先唱)에 따라 나머지 사람들이 뒷소리(合唱)로 받는다. 그리고 처음에는 느린 가락의 진양조에 맞추어 춤을 추다가 점점 빠른 가락인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등으로 변해가며 충추는 동작이 빨라진다. 춤이 빨라지면 자연히 뛰게 되므로 이를 '뛴다'라고 한다. 이렇게 놀다 지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놀며 또한 노는 사람의 수효가 많으면 여러패를 지어 놀기도 한다.
놀이를 하는 여인네들은 대개 젊은 처녀들로 구성되며 달 밝은 밤에 여럿이 모여 한때를 즐긴다. 강강술래 하면 그저 손을 잡고 둥글게 돌면서 노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속에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놀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강술래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가지 형태의 대영이 이루어지며 이러한 형태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강강술래는 늦은 강강술래를 시작으로 중강강술래, 잦은 강강술래, 남생아 놀아라, 고사리 꺽자, 청어였자, 청어풀자, 기와밟기, 덕석몰이, 덕석풀기, 쥔쥐새끼놀이, 문열어라, 가마등, 도굿대 당기기, 수선찾기, 품고동 등 이밖에도 여러 형태의 다양한 놀이가 있다. 이들 놀이는 지역에 따라 별개의 놀이로 행해지기도 하지만 해남지역을 비롯한 전남지역 대부분에서는 강강술래의 한 종류로 엮어져 행해진다.

이중 늦은 강강술래는 대체로 강강술래의 시작부분에 들어가는 것으로 달무리처럼 둥글게 원무하면서 목청 좋은 사람이 느릿한 진양조를 하면 다른 아낙네들이 이를 강강술래라고 받는 소리를 하면서 외씨 같은 발길을 사뿐히 옮기는 놀이가 늦은 강강술래다. 이 늦은 강강술래가 강강술래 놀이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여성스런 멋스러움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중 강강술래는 늦은 강강술래를 하다가 설 소리꾼이 흥겨운 중중모리 가락으로 메기면 다른 놀이꾼들은 이에 맞추어 동작이 좀 빨라지고 어깨 놀림이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따라서 그 놀이의 형태는 늦은 강강술래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가락이 빨라지기 때문에 손발이 유연해지며 또 원이 벌어진다. 이 중 강강술래는 해남 우수영과 진도 지방에만 전해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중강강술래를 거쳐 잦은 강강술래로 들어가면 갑자기 빨라지며 놀이꾼들도 이에 맞추어 양손을 쭉 뻗치고 뛰면서 논다. 그 원무형태는 같으나 원이 커지고 발놀림이 빨라지며 흥이 절정에 이른다.

강강술래는 다시 남생아 놀아라, 고사리 꺽자, 청어역자, 청어풀기, 기와밟기, 덕설몰이, 덕석풀기, 쥔쥐새끼놀이 등을 거치며 여러모양의 대형을 갖추었다가 풀고 빨랐다가 느려지며 다시 빨라지는 등 그 놀이를 이어간다.
이러한 놀이는 꽤 오랫동안 이어지지만 놀이도중 빠르기의 완급이 조정되고 여러 대영을 이루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놀이로서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강강술래는 일정한 가사(사설)가 없다. '강강술래'라는 여음을 매겨가면서 부르는 노래가 되기 때문에 그 가사는 다종다양하다. 일반적으로 강강술래하면 일정한 원가사가 있는 것 같이 생각되기 쉽지만 실제 고정된 가사는 없다. 그러므로 그 사설은 여러가지가 불려진다. 우리나라 시가의 전형적인 4.4조의 운율이 기본 율로서 거리에 맞는 사설이면 어느 것이나 일행이 끝낼 때마다 강강술래의 여음에 맞춰 노래를 부를 수가 있다.

이것이 강강술래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장점은 가사가 다종다양하기 때문에 놀이의 분위기에 따라 사설의 선택이 자유로울 수 있고 동시에 그 정황에 적응이 편리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설을 택하느냐에 따라 기존 분위기를 변모시키기도 한다. 슬픈 사설을 택하면 즐거웠던 분위기도 슬퍼지고 해학적인 사설을 택하면 슬펐던 분위기도 명랑해 질 수 있다.

그러니까 강강술래의 사설은 분위기에 쫓을 수도 있고 또한 분위기를 변모시킬 수도 있는 융통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강강술래 놀이는 얼마든지 다채로울 수 있고 또한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유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씨름은 순수한 한국어이며, 이 밖에 각저()·각저(觝)·각력()·각희()·상박() 등의 한자어 별칭이 있다. 씨름은 원래, 원시사회에 있어서는 맹수나 타종족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살 수 있었으므로 생활수단으로서 투기() 또는 자기를 보호하는 무술로서 행하여졌던 것이다. 그리고 차차 인간이 지적()·정서적·사회적 발달에 따라 무예로 발전하였다.

씨름은 농경사회의 제례행사의 여흥의 하나로서, 음력 5월 5일 단오절이 되면 남자들은 자기 마을과 이웃 마을 사람들과 힘을 자랑하는 내기로서 넓은 모래사장이나 잔디밭에 모여 씨름경기를 하였다. 음력 7월 보름이 되면 백중()이라 하여, 각 지방에서 힘이 센 장사들이 많이 모여 수백 명의 관중 앞에서 힘을 겨루는 씨름을 하여 천하장사를 가려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음력 8월 한가위, 즉 추석 명절이 되면 경향() 각처에서 힘이 세고 거대한 체구의 장사들이 많이 모여들어 자기 고장과 자신의 명예를 걸고 우승을 쟁취하기 위해 씨름경기에 참가하였으며 장사들은 맞붙은 상대를 이기기 위하여 서로 부둥켜 잡고는 당기고, 들고, 밀고, 허리를 돌리고, 다리를 걸고, 감고 또 되치기를 하며 자기의 기술을 총동원하여 최대의 힘을 다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마지막으로 이긴 자에게는 부상()으로 황소 한 마리를 상으로 주었다. 이와 같이 마지막 우승자에게 황소를 주는 풍습은, 옛날에는 씨름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농사를 짓는 농민이었다는 점과 또한 한국은 예로부터 농업을 천하지대본()으로 숭상하는 농업국이므로 농사일을 부지런히 하라는 뜻에서 황소를 부상으로 주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강강술래의 뜻은 아니지만 잘 모시고 체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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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의 유래>

강강술래가 어느 때 어떻게 하여 시작되었는지 그 유래에 대해서는 이렇다 하게 밝혀볼 수 없고 다만, 이 놀이가 꽤 오래 전에 발생한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고대 부족사회의 공동축제 등과 같은 모임 때 서로 손과 손을 맞잡고 뛰어 놀던 단순한 형태의 춤이 오늘날에 보이는 강강술래의 시원(始原, 처음,시작)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원무(圓舞=둥근 원을 그리며 추는 춤)의 형식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오랜 역사를 갖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손에 손을 잡고 한마음으로 하나의 흐름을 이루며 뛰노는 이 놀이가 민중의 축제에서 크게 놀아졌음은, 그 놀이의 형식이나 뜻으로 보아 바람직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원무 형식에 곁들여 불러졌을 노래 도한 오랜 연유를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강강술래는 또는 강강수월래 등으로 구전(口傳)되어 내려오는 강강술래 노래로 미루어, 강강술래놀이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미 원시 공동체 사회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추측하는 것이다. 훨씬 후, 이것이 임진왜란 때 충무공의 전술(戰術)과 결부되어 그 뜻이나 내용에 대한 폭이 넓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임진왜란 때의 충무공과 강강술래를 관련 지어 전해 오는 이야기를 소개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명량(鳴梁) 바다에서 왜적을 무찌를 때 충무공이 거느린 전선(戰船)은 불과 12척밖에 없었고, 이에 비해 왜선(倭船)은 3백50여 척이나 되었다고 한다.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왜적과 맞서기 어렵게 되자 충무공은 아낙네들을 모아 군복을 입히고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산봉우리를 돌게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왜적에게 마치 수만의 대군이 산 봉우리를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의병술(擬兵術)을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이때 아낙네들이 산봉우리를 돌면서 서로 손을 맞잡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던 것이 바로 강강술래의 비롯이라는 설이다.

둘째, 위와 같은 이야기지만, 산봉우리를 돌지 않고 갯마을에서 아낙네들이 노래 부르며 춤을 추면서 왜적의 눈을 속였다고 한다. 그 후 현지 주민들은 충무공의 승전(勝戰)을 기리기 위해서 이때 의병술(擬兵術)로 쓰였던 춤을 놀이화 하여 강강술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셋째, 옥동(玉洞) 앞바다에서 왜적을 크게 격파하였다. 왜적의 피로 바닷물이 물들어 이곳을 <피바다>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또 우수영(右水營)앞에 있는 울도에다 쇠줄을 매달아 왜선이 지나갈 때 쇠줄을 당기어 격침시켰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의 어린이들은 <울도>소리만 들어도 우는 소리를 그쳤다고 한다. 이처럼 처절한 싸움을 할 때 병력이 적은 충무공은 왜적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진도(珍島) 둔절리 뒷산을 곡창(穀創)으로 의장(擬裝)하여 군량이 많음을 과시하고, 한편 아낙네들을 동원하여 각기 색색옷을 입혀 산 둘레를 돌게 하였다. 이를 끝없는 군사의 행렬로 착각한 왜적은 크게 놀라 달았났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의장(擬裝)된 군사행렬이 강강술래의 기원이라는 설이다.

넷째, 임진왜란 때 남자는 모두 전쟁에 동원되어 전쟁터에 나갔고 마을에는 아낙네들만이 남았다. 충무공은 아낙네들에게 남자 옷을 입히고 좌수영 동쪽에 잇는 옥매산(玉埋山)에 올려보내 강강술래를 시켰다고 한다. 이 같은 의병술에 속아 왜적이 물렀났다고 한다. 충무공의 의병술로 창안한 강강술래가 민속놀이화 되어 그 후 계속하여 전승되었다고 하며, 강강술래라는 말은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의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라고 한다.

위의 몇몇 속설(俗設=전해지는 이야기)대로 따른다면 강강술래놀이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의 의병술에서 연유되었고, 그 후 충무공의 전승(戰勝)을 기리기 위하여 연중행사로 놀아져 왔다고 볼 수도 있다. 이는 강강술래가 놀아지는 지방이 주로 옛날 충무공이 왜적들과 싸웠던 남해안 일대라는 것과, 강강술래가 충무공의 전술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을 유추(類推)해 볼 때, 위와 같은 속설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 농경시대의 파종(씨를 뿌림)과 수확 때의 공동축제에서 노래 부르며 춤을 추던 놀이 형태가 계속 이어져 내려오면서 점차 강강술래놀이와 같은 모습으로 발전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이 놀이를 의병술로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친 후 더욱 세상에 널리 알려져 당시의 격전지였던 전라도 남해안 일대에서 성행되어 온 것으로 추측된다.

이 놀이는 주로 한가윗날 밤에 놀았지만, 지방에 따라서는 정월 대보름밤을 비롯해서 봄 . 여름 . 가을 . 겨울 어느 때든지 달 밝은 밤에 수시로 놀아왔다. 또한 놀이꾼들도 여인네들에 국한하지 않고 남자들도 함께 어울려 놀기도 하였다.


<특징>

강강 술래는 흥겹게 놀면서 사람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심화시키므로 아이들의 평소 생활과 생각을 담아 내어 공동체로 이끌어 가는 대동 놀이로 좋다. 강강술래의 특징을 보면

첫째, 강강술래의 기본 대형은 원이다. 원이란 것은 중심에서 어디든 같은 거리에 있다. 그것은 거기에 참가하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한 관계임을 말한다. 사회가 권위적이고 계급적이 되면 원이 형태가 흩어지고 네모진 대형이 된다. 운동회나 학습 발표회 때 보여지는 무용의 형태를 보면 대부분 네모진 대형이다. 하는 사람과 구경꾼이 뚜렷이 구분되어 구경하는 아이들이 관심이없다.

둘째, 손을 맞잡고 마주본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보다는 춤을 추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심이 된다. 서로 손을 잡고, 발을 맞추고, 목숨(호흡)을 나누며 서로의 생활과 생각을 담는 앞소리와 그에 대응하는 뒷소리(강강술래)를 같이 부르며 공감대를 만들어 가고 그 동안 지내 온 것을 노래로 표현하면서 마음에 있는 갈등도 풀어내고, 새로운 소망을 담아 새로운 생활을 약속하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셋째, 다른 나라 원무와는 다르게 처음엔 쉬운 놀이에서 어려운 놀이로 다양하게 이어지고, 느린 가락(진양조)에서 점점 빠르게 진행된다. 이렇게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다양한 통일감으로 일치시켜 간다. 또한 부분 부분이 하나로 독립적이면서 전체가 통일되고, 다음 놀이로 진행될 때 잘연 스레 이어지면 부분을 떨어뜨려 놀아도 된다.

마지막으로 강강술래는 모두가 주인으로 참여한다. 어느 한 사람 그냥 서있거나 구경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계속 움직이며 따라가서 이런 저런 형태를 만들고 이런저런 형태를 만들고 심지어 노래도 잘하는 사람이 앞소리 하면 전체가 뒷소리를 매기면 함께하고 있다. 큰 움직임이 없지만 모두 자신이 주인으로 판을 이끌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것이 생활화되어 그 밖의 다양한 문화에서 언젠가 모든 일을 주인으로서 내세우게 되는 근원이 된다.


<놀이 방법>

많은 여인네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둥그렇게 원을 지어 돌아가며 노래소리에 맞추어 춤을 춘다.

노래는 목청이 빼어난 사람의 앞 소리(先唱)에 따라 나머지 사람들이 뒷소리(合唱)로 받는다. 그리고 처음에는 느린 가락의 진양조에 맞추어 춤을 추다가 점점 빠른 가락인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등으로 변해가며 충추는 동작이 빨라진다. 춤이 빨라지면 자연히 뛰게 되므로 이를 '뛴다'라고 한다. 이렇게 놀다 지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놀며 또한 노는 사람의 수효가 많으면 여러패를 지어 놀기도 한다.
놀이를 하는 여인네들은 대개 젊은 처녀들로 구성되며 달 밝은 밤에 여럿이 모여 한때를 즐긴다. 강강술래 하면 그저 손을 잡고 둥글게 돌면서 노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속에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놀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강술래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가지 형태의 대영이 이루어지며 이러한 형태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강강술래는 늦은 강강술래를 시작으로 중강강술래, 잦은 강강술래, 남생아 놀아라, 고사리 꺽자, 청어였자, 청어풀자, 기와밟기, 덕석몰이, 덕석풀기, 쥔쥐새끼놀이, 문열어라, 가마등, 도굿대 당기기, 수선찾기, 품고동 등 이밖에도 여러 형태의 다양한 놀이가 있다. 이들 놀이는 지역에 따라 별개의 놀이로 행해지기도 하지만 해남지역을 비롯한 전남지역 대부분에서는 강강술래의 한 종류로 엮어져 행해진다.

이중 늦은 강강술래는 대체로 강강술래의 시작부분에 들어가는 것으로 달무리처럼 둥글게 원무하면서 목청 좋은 사람이 느릿한 진양조를 하면 다른 아낙네들이 이를 강강술래라고 받는 소리를 하면서 외씨 같은 발길을 사뿐히 옮기는 놀이가 늦은 강강술래다. 이 늦은 강강술래가 강강술래 놀이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여성스런 멋스러움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중 강강술래는 늦은 강강술래를 하다가 설 소리꾼이 흥겨운 중중모리 가락으로 메기면 다른 놀이꾼들은 이에 맞추어 동작이 좀 빨라지고 어깨 놀림이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따라서 그 놀이의 형태는 늦은 강강술래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가락이 빨라지기 때문에 손발이 유연해지며 또 원이 벌어진다. 이 중 강강술래는 해남 우수영과 진도 지방에만 전해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중강강술래를 거쳐 잦은 강강술래로 들어가면 갑자기 빨라지며 놀이꾼들도 이에 맞추어 양손을 쭉 뻗치고 뛰면서 논다. 그 원무형태는 같으나 원이 커지고 발놀림이 빨라지며 흥이 절정에 이른다.

강강술래는 다시 남생아 놀아라, 고사리 꺽자, 청어역자, 청어풀기, 기와밟기, 덕설몰이, 덕석풀기, 쥔쥐새끼놀이 등을 거치며 여러모양의 대형을 갖추었다가 풀고 빨랐다가 느려지며 다시 빨라지는 등 그 놀이를 이어간다.
이러한 놀이는 꽤 오랫동안 이어지지만 놀이도중 빠르기의 완급이 조정되고 여러 대영을 이루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놀이로서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강강술래는 일정한 가사(사설)가 없다. '강강술래'라는 여음을 매겨가면서 부르는 노래가 되기 때문에 그 가사는 다종다양하다. 일반적으로 강강술래하면 일정한 원가사가 있는 것 같이 생각되기 쉽지만 실제 고정된 가사는 없다. 그러므로 그 사설은 여러가지가 불려진다. 우리나라 시가의 전형적인 4.4조의 운율이 기본 율로서 거리에 맞는 사설이면 어느 것이나 일행이 끝낼 때마다 강강술래의 여음에 맞춰 노래를 부를 수가 있다.

이것이 강강술래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장점은 가사가 다종다양하기 때문에 놀이의 분위기에 따라 사설의 선택이 자유로울 수 있고 동시에 그 정황에 적응이 편리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설을 택하느냐에 따라 기존 분위기를 변모시키기도 한다. 슬픈 사설을 택하면 즐거웠던 분위기도 슬퍼지고 해학적인 사설을 택하면 슬펐던 분위기도 명랑해 질 수 있다.

그러니까 강강술래의 사설은 분위기에 쫓을 수도 있고 또한 분위기를 변모시킬 수도 있는 융통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강강술래 놀이는 얼마든지 다채로울 수 있고 또한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유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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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의 유래:

 

강강술래가 어느때 어떻게 하여 시작 되었는지 그 유래에 대해서는 이렇다 하게 밝혀 볼수 없고 다만, 이 놀이가 꽤 오래전에 발생한 것으로 추측될 분이다. 고대 부족 사회의 공동 축제 등과 같은 모임때 서로 손과 손을 맞잡고 뛰어 놀던 단순한 형태의 춤이 오늘날에 보이는 강강술래의 시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밖에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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