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에대하여

현대미술에대하여

작성일 2008.12.09댓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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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에 대하여 알려주삼요!!

내공 듬북↑  (>o<)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http://211.114.54.34/utopia/arthtml/artedu/study/art-f%5B1%5D.html서양미술 감상출처

20세기 현대 미술

20세기 초 미술의 흐름은 후기 인상주의 이후 작가의 개성과 강한 주관에 의한 표현으로 다양한 미술 운동으로 나타났다.
1. 야수파
1) 특징 : 형의 대담한 변형과 터치, 강렬한 색채로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표현을 함.
2) 화가
① 마티스[ Matisse, Henri , 1869.12.31~1954.11.3 ]-프랑스의 화가 : 형태의 대담한 변형과 색의 단순화
- '오달리스크', '붉은 실내'
② 루오 [Rouault, Georges , 1871.5.27~1958.2.13 ]: 거친 질감과 검은 윤곽선으로 종교적인 내면성을 표현
- '피에로', '잔 다르크'
③ 블라맹크[ Vlaminck, Maurice de , 1876.4.4~1958.10.11 ] : 강렬한 색채와 격정적인 터치
- '붉은 나무가 있는 풍경'

▲음악/마티스
▲세 사람이 있는 풍경/루오

2. 입체파
1) 특징 : 세잔의 기하학적 회화 이론에 영향을 받아 대상을 분해하고 재구성하여 여러 각도에서 본 모양을 한 화면에 표현
2) 화가
① 피카소 [ Picasso, Pablo Ruiz y , 1881.10.25~1973.4.8 ]: 프랑스의 입체파 화가. 입체파의 창시자. 청색시대, 장미빛 시대, 니그로 시대, 종합적 분석시대 등 다양한 화풍을 표현-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거울 앞의 소녀' 등
▲아비뇽의 아가씨
▲ 게르니카
▲등의자가있는 정물
▲꿈
▲소녀상
② 브라크[ Braque, Georges , 1882.5.13~1963.8.31 ]프랑스의 화가 : 입체파의 이론을 확립
- '물고기가 있는 정물'
③ 레제[ 1881.2.4~1955.8.17 ]프랑스의 화가 : 인체를 기계적 형태로 변형, 산업사회의 인간상을 표현
▲ 정물/브라크
▲ 가족/레제

3. 표현주의
1) 특징 : 색채의 강조, 형태의 과장에 의해 작가의 극단적인 내면 세계를 표현
2) 화가
① 뭉크 [ Munch, Edvard , 1863.12.12~1944.1.23 ]노르웨이의 화가 : 인간의 불안, 공포 등의 감정을 표현
- '절규', '사춘기' 등
② 코코슈카[ Kokoschka, Oskar , 1886.3.1~1980.2.22 ]오스트리아의 화가 .작가 : 이그러지고 절규하는 듯한 형태의 인물을 표현
▲절규(뭉크)

4. 다다이즘
세계 제 1차 대전 중에 시작되어 세계 대전후까지 스위스,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 전역에 걸쳐 일어난 문학과 예술상의반항운동으로 전통의 가치나 예술의 형식을 부정하고 우연적인 것과 자유로운 표현을 시도하였다. 뒤,샹 아르프 등이 있다.

뒤샹 [ Duchamp, Marcel , 1887.7.28~1968.10.2 ]프랑스의 화가·조각가
의 "샘"

5.초현실주의
1) 특징 : 꿈과 무의식의 세계, 공상의 세계를 내용으로 모순된 물체의 배치와 형태를 대담하게 표현하였으며, 작품에서
꼴라주, 몽타주, 프로타주 등의 기법 개발은 현대 미술 발달에 많은 영향을 줌.
2) 화가
① 달리1904.5.11~1989.1.23 에스파냐의 초현실주의 화가 : 초현실파의 대표 작가로, 꿈, 환상 등 비현실의 세계를 표현하여 보는 이들에게 공포감, 기괴함을 나타냄.
② 샤갈[ Chagall, Marc , 1887.7.7~1985.3.28 ]프랑스의 화가 : '나와 마을'
③ 키리코[ Chirico, Giorgio de , 1888~1978 ]이탈리아의 화가 : '거리의 우수와 신비'
④ 미로 [ 1893.4.20~1983.12.25 ]에스파냐의 화가 .도예가(陶藝家). : '곡예'


▲내란의 예감/달리
▲에펠탑부부/샤갈

6. 추상주의
1) 특징 : 사물의 구체적인 형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조형의 요소와 원리에 의하여 나타낸다.
2) 화가

① 몬드리안[ Mondrian, Piet , 1872.3.7~1944.2.1 ]네덜란드의 화가 : 수평과 수직선, 색 등을 조화시켜 화면을 구성한 차가운 추상
-'적·청·녹·황의 구성'
② 폴록[ Pollock, Paul Jackson , 1912.1.28~1956.8.11 ] 미국의 추상화가 : 물감을 뿌리거나 흘려서 작가의 감정을 정열적으로 자유롭게 표현한 뜨거운 추상
③칸딘스키[ 1866.12.16~1944.12.13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의 화가 : 비정형적 서정적. 표현적 뜨거운 추상

▲원 속의 원/칸딘스키
▲구성8/칸딘스키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몬드리안
▲적청녹황의 구성/몬드리안
▲NO 10/폴록

7.에꼴드 파리
세계 1차 대전 후부터 제 2차 대전 전까지 파리를 중심으로 활약한 작가들로는 위트릴로, 미로, 수틴, 샤갈 .
클레[ Klee, Paul , 1879.12.18~1940.6.29 ]스위스의 화가,
모딜리아니[ Modigliani, Amedeo , 1884.7.12~1920.1.24 ]이탈리아의 화가
등이 있다.

8.추상 표현주의
미국의 액션 페인팅은 물감을 흘리거나 떨어뜨려고 표현하는 뜨거운 추상으로, 대표 작가로는 폴록, 프란시스 등이 있다.

유럽의 엥포르멜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서정적인 회화로 일그러진 형상과 질감으로 격정적인 표현을 하였따. 대표작가로는 포트리에
, 뒤뷔페 등이 있다.

9. 팝아트
대중문화와 소비 사회를 사업적인 기법으로 과감하게 복제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였다. 워홀
리히텐슈타인 등.




- 리히텐슈타인

10 . 옵아트
선이나, 색, 면 등 순수한 조형요소들을 이용하여 화면에 시각적인 착각을 일으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추상미술이다.바자렐리
, 라일리 등.



라일리 [ Riley, Bridget , 1931.4.24 ]영국의 화가.
런던 출생. 골드스미스미술학교와 왕립미술학교를 나왔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개시하여, 1965년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열린 ‘응답하는 눈’ 전람회에 출품하여 ‘옵아트(Op art)’의 대표적 작가로서 국제적인 평가를 받았다. 또 1968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 출품하여 상을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흰색과 검은색으로 된 작은 세모꼴의 배열과 줄무늬 모양의 곡선으로 보는 사람의 눈에 파도 치는 것처럼 보이게 한 시각효과를 추구했으나, 1967년경부터는 색채도 대담하게 쓰기 시작하였다. 대표작에 《흐름》 등이 있다

11. 키네틱 아트
콜더에 의해 고안된 모빌은 공기나 바람의 힘에 움직이도록 고안되어 있으나, 키네틱 아트는 모터와 전자, 기계 등을 이용하여 움직이도록 하였다.

팅겔리,Tinguely, Jean , 1925~1991 스위스의 키네틱 아트 및 신사실주의 조각가.
1925년 스위스 프리부르주(州)에서 태어났다. 스위스 현대 조각예술을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키네틱 아트(kinetic art)·신사실주의(nouveau ralism:신현실주의) 예술가이다. 1945년 바젤 디자인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부터 프랑스 파리에 정착해 초기에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추상화 계열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그러다 새로운 전자시대를 예감하고 동력을 이용해 제작한 금속 조각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기 시작, 기계의 순기능과 역기능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60년 뉴욕 근대미술관 정원에 전시한 《뉴욕 찬가》는 선풍기·피아노·자전거·인쇄기 등 폐물을 모아 이들을 기묘하게 조립, 움직이는 것은 물론 불을 내뿜기도 하고, 요란한 소리까지 내다가 결국은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모든 것은 움직인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키네틱 아트의 본질을 집약적으로 반영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에도 그의 작품은 대부분 작품 자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요소가 첨가된 조각 형식을 취했는데, 《뉴욕 찬가》 외에 빛과 운동이 일체화된 작품 《발루바 Blauba》(1959) 등 많은 작품이 남아 있다. 1991년 사망하였는데, 스위스 바젤에는 그의 이름을 딴 팅겔리박물관이 있다. 2001년 6월, 한국의 갤러리 현대와 조선일보미술관이 '20세기 추상미술의 빛과 움직임전'을 열 때 그의 작품도 전시되었다

쉐페르 등
http://hanson.new21.net/art/western/%C5%B0%B3%D7%C6%BD.html

12. 20세기 조소
1) 특징 : 과학 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소재의 개발로 표현이 다양해지고 작가의 개성이 강조되었다.
2) 조각가
① 마이욜 : 부드러운 곡선과 풍부한 양감을 표현 - '지중해'
② 무어 : 단순화된 형과 양감의 표현 - '누워 있는 사람'
③ 쟈코메티 : 양을 극도로 생략한 선적인 표현 - '서 있는 사람'
④ 브랑쿠시 : 형태를 극도로 단순화 - '공간 속의 새'
⑤ 마리노 마리니 : 형태의 단순화와 긴장감을 표현 - '말과 기수'
⑥ 콜더 : 움직이는 조소의 창시자 - '모빌'


▲서 있는 사람/쟈코메티
▲공간 속의 새/브랑쿠시
▲지중해/마욜
▲모빌/콜더



7. 20세기 건축
1) 특징 : 19세기 후반 철근과 콘크리트의 출현에 따라 합리적이며 기능적인 고층 건물이 지어짐.
2) 건축가
① 그로피우스 - '바우하우스'
② 르 코르뷔지에 - "롱샹교회"
③라이트 - "구겐하임 미술관" , "낙수장"

▲구겐하임 미술관/라이트
▲낙수장/라이트

http://windshoes.new21.org/20C-art03.htm
20세기 건축
1)특징 -철근, 콘크리이트의 출현으로 고층 건물 건조,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건축양식이 발달.
2) 대표작가
-라이트, 그로피우스, 르코르뷔지에 등

우리 나라의 현대 미술 작품에
* 이 글은 다음 카페 사이미대 이승훈 님의 글, 두산세계대백과사전, 현상과 인식 1988 여름호 곽대원의 [추상미술감상]에서 발췌
우리 나라의 현대미술은 일반적으로 1945년 8 ·15광복 이후로부터 접근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제의 억압과 속박으로 단절되었던 전통미술의 창조적 계승과 세계미술에의 참여가 이 시점에서부터 비로소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조석진 [ 趙錫晉 , 1853~1920 ]
한말의 화가.
주요작품 : 《군리도》 《매림유거도》 《매조도》
고종의 초상화를 그린 공으로 영춘군수(永春郡守)가 되고 정3품에 올랐다. 만년에는 후진육성에 힘쓰면서 1911년 서화미술원이 설립되자 안중식(安中植)과 함께 교수로 나가 이용우(李用雨)·김은호(金殷鎬)·이상범(李象範)·노수현(盧壽鉉)·변관식(卞寬植) 등을 길러내고 1920년에는, 서화협회를 설립하여 제2대 회장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안중식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한말의 대표적인 화가였다. 작품으로는 《군리도(群鯉圖)》 《매림유거도(梅林幽居圖)》 《운산서식도(雲山棲息圖)》 《매조도(梅鳥圖)》 등이 있다.


고희동[ 高羲東 , 1886.3.11~1965.10.22 ]최초의 한국인 서양화가

1918 45.5×33.5 국립현대미술관

http://jun5911.netian.com/syber3/%b0%ed%c8%f1%b5%bf.htm그림 사진발췌
주요작품 : 《금강산진주담폭포》 《탐승》
당초 조선 후기의 화풍을 잇고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워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가 되었으며 1920년대 중반부터 다시 동양화로 전환하여 전통적인 남화(南畵) 산수화법에 서양화의 색채·명암법을 써서 감각적인 새로운 회화를 시도했다.


등은 일제의 억압 밑에서 전통미술을 가꾸고 발전시켰으며,

허백련 [ 許百鍊 , 1891~1977 ]동양화가.
주요수상 : 예술원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주요작품 : 《계산청하(溪山靑夏)》(1924) 《설경(雪景)》(1965) 《추경산수(秋景山水)》 (1971)

의재 추경


오픈백과->http://hijindo.hihome.com/hbrn.htm출 처http://kwangju.co.kr/기획의재.asp
의재 허백련은 한국 남화의 대가이다.

김은호 金殷鎬 , 1892.6.24~1979.2.7한국의 화가.


1935미인도
주요수상 : 서울시문화상(1962), 대한민국예술원상(1968)
주요작품 :
《미인승무도(美人僧舞圖)》
《간성(看星)》《향로》 선전 1회에 출품한 《미인승무도(美人僧舞圖)》 이래 주로 인물 소재를 다루면서, 종전 스타일과는 다르게 선묘(線描)를 억제하고 서양화법의 명암과 원근을 적용하였다. 단순한 전통 화법의 계승에 만족하지 않고 일본화를 통해 사생주의(寫生主義)를 흡수하고, 또 양화풍의 화법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인물화 외에 수묵담채(水墨淡彩)의 산수풍경, 문인화(文人畵)에서도 독특한 필력을 발휘하였다.
작품으로는 《승무(僧舞)》《군리도(群鯉圖)》《춘향초상》《충무공 이순신 초상》 등이 있다.


이상범李象範 , 1897.9.21~1972.5.14 동양화가.
주요수상 : 3·l문화상 본상(1963), 서울특별시 문화상(1966)
주요작품 : 《창덕궁 경훈각 벽화》 《원각사 벽화》 《설로도》 《고원귀려도(高原歸旅圖)》 등



뉴스 홈 > 굿데이 기사목록 수묵으로 읊은 '귀거래사'…고 이상범 30주기 진경산수전 [기획/연재] 2002년 09월 01일 (일) 11:17


화선지 한장을 밑에 덧대 그런 겁니다. 그 화선지가 먹을 들이마시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되놓은 결과지요. 진한 먹으로 주요 부분의 골격을 그려놓고 점차 엷은 먹으로 마무리한 방식도 기존의 화법과는 다른 것입니다. 가로가 긴 작품에서 구도를 잡기 위해 작가는 모눈종이에 초가집, 인물, 나무의 위치와 시냇물의 방향을 적어 넣으며 스케치를 했다는

이상범-설촌


노수현 [ 盧壽鉉 , 1899~1978.9.6 ]
주요수상 : 조선미술상, 은관문화훈장(銀冠文化勳章)
주요작품 : 《고금영서(古今迎書)》

심산 산수화

.

뉴스 홈 > 조선일보 기사목록 [역사속의 오늘] 10월 13일 [속보, 생활/문화] 2003년 10월 12일 (일) 18:50


[조선일보 김정형 기자] [국내] ‘멍텅구리 헛물켜기’ 연재

배렴 裵濂 , 1911~1968 1911년 경상북도 금릉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성산(星山), 호는 제당(霽堂)이다. 어려서 한학을 배우고 금릉청년학관 중등과를 수료하였으며, 서울로 올라와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의 화숙(畵塾)에서 전통화법을 공부하였다.
1929년 제9회 서화협회(書畵協會) 전람회에 처음으로 《만추(晩秋)》를 출품한 뒤 1936년 서화협회의 마지막 전람회까지 해마다 출품하였다. 1930년부터는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도 출품하여 입선하였고, 1936년과 1943년에는 《요원(遼遠)》과 《산전(山田)》이 특선에 올랐다. 이 시기의 전람회 출품작들은 스승 이상범의 화풍을 본받은 수묵담채로 주로 향토적 풍경을 그렸다.
1940년 29세 서울에서 첫 개인전
주요 작품 《하경산수도》 《녹수청산(綠樹靑山)》(1943), 《부귀장춘》(1943) 등

변관식卞寬植 , 1899.3.19~1976.2.17 주요작품 : 《외금강 삼선암(外金剛三仙岩)》,《이어(鯉魚)》
적묵법(積墨法)에 의해 변화를 주었으며 관념적인 산수가 아니라 엄격한 사경(寫景)을 바탕으로 한 한국적 풍치가 배어났다. 그리고 그러한 산세에 접경되는 인물들은 비탈진 산길을 뒤뚱거리며 올라가는 흰 두루마기의 촌로들이 보여주는 해학적인 작품으로는 일련의 금강산 시리즈인 《외금강 삼선암(外金剛三仙岩)》 《내금강 진주담(內金剛眞珠潭)》 《옥류청풍(玉流淸風)》 등과 《이어(鯉魚)》 등의 어해도(魚蟹圖)가 있다




등도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우리 나라의 미술은 다양한 재료의 개발과 함께 우리의 풍토와 정취를 표현의 중심으로 하여 발전되어 왔다.
당시 서구의 현대미술을 탐구하고 도입한 선구자들은

구본웅具本雄 , 1906.3.7~1953.2.2한국의 서양화가 호 서산(西山). 서울 출생. 1929년 니혼대학[日本大學] 미술과, 1934년 다이헤이요[太平洋]미술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주로 도쿄에서 열린 이과전(二科展)과 독립전(獨立展) 등 전위적인 전람회에 출품하고, 귀국 후에는 서화협회(書畵協會) 전람회에 출품하였다.
1938년 미술지 《청색(靑色)》을 발간하는 한편 정판사(精版社)를 경영하였고, 1952년 서울신문 촉탁으로 언론계에도 종사하였다. 작품경향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아 지적이고 분석적이다. 작품에 《정물》 등이 있다

도상봉都相鳳 , 1902.1.6~1977.10.19 한국의 서양화가 호 도천(陶泉). 함경남도 홍원(洪原)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고, 숙명여대 교수로 있으면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심사위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대한미술협회장을 역임하는 등 일선 미술행정가로서도 활약하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서양화가로서 전통적인 예술세계를 지키는 데 충실하였으며, 백자(白瓷)나 라일락을 소재로 한 많은 정물화와 풍경화를 부드러운 필치로 묘사하였다. 정적인 소재를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에서 온화하고 여성적인 독특한 미적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예술원상·국민훈장모란장·문화예술상 등을 받았으며, 《백자 항아리가 있는 정물》 등이 대표작이다

이인성李仁星 , 1912.8.28~1950.11.4서양화가 대구(大邱) 출생. 보통학교를 나온 뒤 서동진(徐東辰)에게 사사, 수채화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1930년 도쿄미술학교를 다니면서 일본 제전(帝展)에 출품, 수차 입선하였다. 1935년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제전에서는 준특선, 1937년 추천작가가 되었다.
1938년 개인전, 1940년 김인승(金仁承)·심형구(沈亨求)와 함께 3인전을 가졌으며, 개인 아틀리에를 열어 후배를 양성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8·15광복 후는 이화여고 교사를 지냈고,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작품경향은 인상파적인 감각주의에서 그의 이국취향과 토속적 소재를 발전시켰다. 작품으로 《경주(慶州)의 산곡에서》 《실내》 등이 있다

김종영金鍾瑛 , 1915~1982.12.15 한국의 조각가 활동분야 : 예술-조각, 글씨 17세 때인 1932년 《동아일보》 주최 전국서예실기대회에서 1등으로 입선하였고, 1936년 도쿄[東京]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였다.
. 1953년 런던의 테이트갤러리가 공모한 국제조각전에서 입선한 《무명 정치수를 위한 모뉴먼트》를 계기로 구상조각에서 벗어나 추상조각으로 전환하였다.
한국 근대조각의 선구적 작가이자 교육자로서, 그 조형적인 특성은 구성적이며 공간적이고, 유기적인 생명감을 가지는 다양성을 이루었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창조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한 순수조형의 본질을 실현하였다.
작품으로는 《전설》(1958) 《전몰학생위령탑》(1958) 《3 ·1운동 기념상》(1963) 《가족》(1965) 등의 조각 작품 외에 유화 ·수채화 ·콜라주 ·드로잉 등의 회화도 남겼다. 서울시문화상(1960) ·국민훈장 동백장(74) ·예술원상(1978)을 수상하였다


등이며 1908년 고희동의 동경 유학으로 최초의 서양화가 도입되었다. 뒤를 이어

김관호金觀鎬 , 1890~1959.10.20 서양화가.1916 일본 문부성(文部省) 주최 제10회 전람회 ‘문전(文展)’에 작품 《해질녘 -특선
1923년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에 《호수(湖水)》 출품 1954년 《모란봉》 《해방탑의 여름》 등의 유화 대표작 《해질녘》은 도쿄예술대학 소장

가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나혜석羅蕙錫 , 1896.4.18~1949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조선미술전람회; 제1회~제5회 입선, 1921년 3월 경성일보사 건물 안의 내청각에서 한국 여성화가로서 최초의 개인전을 가졌다. 1926년부터 3년간 남편과 함께 세계일주, 귀국 도중 파리에서 그린 정원화(庭園畵)가 도쿄의 이과전(二科展)에 입선
대표작 《누드》

과 같은 최초의 여성 화가가 나오기도 했다.
#고희동 자화상

전통미술의 경우 1911년에는 전통회화 육성을 위한 서화미술원이 창립되었고, 1918년에는 서화협회가 조직되어 활동하였다. 1922년 조선총독부의 조선미술전람회(선전)가 열리면서 전통미술이 제법 활기를 띄고 서양미술도 많이 등장한다. 1930년대에 이르면 전통미술에 서양화법을 도입한 ‘교배양식(交配樣式)’이 주류를 이루기도 한다.
8·15광복 후 국권의 회복과 더불어 49년부터는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가 열리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의 한국화는 채색화를 배격하고 수묵화가 주가 되었으며, 50년대부터는 서양화법의 도입이 뚜렷해지고 추상화도 탄생하였다. 서양화는 19세기 말경부터 한 두 사람의 서양인 화가의 내한이 있었으나, 별다른 변화가 없었으며, 고희동도 귀국 후 전통회화 작업을 하였다.
서양화는 8 ·15광복 전에는 일본 서양화의 영향이 컸으나, 8 ·15광복 후에는 서양 미술계와의 직접적인 접촉이 늘어남에 따라 급속히 발전하고, 50년대부터는 비구상화가 서양화의 주체가 되어 69년부터는 국전 서양화부문에도 추상화가 독립하여 전시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현대미술은 세계적인 미술을 지향하면서 각종 국제교류전에 많은 작가들이 참여해 인정받고 있다. 더불어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국제미술전람회 창설 이후
비디오 아트
백남준 白南準 , 1932.7.20 한국의 비디오 아티스트.... #백과로 검색하시면 많은자료가 나옴


설치미술 등과 같이 여러 가지 재료와 기법을 이용하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김환기金煥基 , 1913.2.27~1974.7.25 서양화가.호 : 수화(樹話)전남 신안 출생. 1936년 니혼[日本]대학 미술과를 졸업하고, 1940년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아방가르드 연구소를 조직하는 한편 이과회(二科會)와 자유전(自由展) 등에 출품, 신미술(新美術:아르누보) 운동에 참여하였고, 8 ·15광복 후에는 신사실파(新寫實派)를 조직,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하였다. 1965년 이후 미국에 정착하여 작품활동을 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구체적인 이미지 대신 연속적인 사각 공간 속에 점묘(點描)를 배열하였으며, 한국 근대회화의 추상적 방향을 여는 데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초기 수업시대는 미술학교 재학시와 연구과 시절, 귀국하기까지의 몇 년 간으로 볼 수 있는데, 이과회 ·백만회(白蠻會)를 조직하여 당시 일본 신감각파 대열에서 활발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광복 이후부터 프랑스로 건너가기까지의 청년시절은 한국적 모티프 발견으로 일관했다고 할 수 있다. 운학(雲鶴) ·달 ·산 ·나목(裸木) ·꽃 ·여인을 통해 한국적 풍류의 정서를 표출하려는 것이 이 시기의 지배적 경향이다. 한국적 모티프에 대한 탐닉은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1959년 귀국하기까지의 파리시절에서도 농도를 더하였다. 약 10년간 미국에 있을 때에는 외견상 지금까지의 경향에 비해 많이 변모하였는데, 우선 모티프 해소, 순화된 색감, 공간의 심화와 확대라는 특징으로 묶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실지로 작품상에는 어떠한 변모도 초래하지 않았으며, 작가 내면의 발전으로 여과시킨 심화현상일 뿐이다. 대표작으로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론도》《해와 달》 등이 있다. 한편 그의 예술정신을 기리는 환기미술관이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세워져 1992년 개관되었다. 안좌면(安佐面) 읍동리(邑洞里)의 그의 생가는 지방기념물 제146호로 지정되었다



날으는새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은
1)앵포르멜 또는 표현주의적 추상시기:1950년대말- 1965년경

2)'환원'과 '확산'의 시기:1960년대말 - 1975년경.

3)제3기 추상, 탈 미니멀 추상 시기:1970년대 중반기 - 현재

4)신 이미니즘시기:1970년대말 - 현재.


http://www.kcaf.or.kr/kcaf/gongsi/venice.htm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제미술전인 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그동안 독자적인 전시공간이 없어 세계의 미술관계자들은 물론 관람객의 시선을 제대로 끌지 못했었으나 1993년 제45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백남준씨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이후 자국관 설립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높아져 문예진흥원은 정부와 미술계의 지원과 협조를 통해 베니스비엔날레 100주년이 되는 1995년, 세계에서 25번째로 베니스 교외 카스텔로공원에 한국관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현대미술도 세계의 미술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어 평가받을 수 있는 장을 마련했음을 뜻하며,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해 온 최고의 미술축제인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미술이 독립전시관을 갖고 참가하게 됨에 따라 우리 미술의 세계무대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95년 개관이후 5회의 미술전(1995, 1997, 1998, 1999, 2001)과 3회의 건축전(1996, 2000, 2002 예정)을 성공리에 개최하여 한국 미술 및 건축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관 개관 이후 95, 97, 99년도 연속 3회에 걸쳐 우리나라 참가작가들이 특별상을 수상(

전수천http://isimage.naver.com/people/47/82447.jpg 전수천사이트http://www.soocheon.com/ (全壽千) 출생 : 1947년 8월 26일 직업 : 서양화가, 설치미술가, 대학교수 소속 :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교수



강익중姜益中 , 1960 한국의 설치미술작가 1960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1984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7년 미국 프랫인스티튜드를 졸업하였다. 그후 뉴욕에서 작업하면서 백남준 이후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빛내는 미술가로 꼽히고 있다.
작품은 3×3인치의 작은 캔버스, 나무틀 등에 일상의 단편과 마음 속의 생각을 각양각색의 그림과 글로 표현하여 다인종·다문화를 바탕으로 지구촌 시대의 조화로운 세계상을 지향하며, 기호, 만화적 이미지, 캔버스에 콜라주한 오브제 등을 결합하여 동양과 서양, 정신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등이 평등하게 통합되는 것을 나타낸다.
1994년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멀티플 다이얼로그〉전을 열었고, 1997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하여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1999년 독일의 루드비히미술관에서 선정하는 '20세기 미술작가 120명'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청사 메인홀의 벽화와 뉴욕 지하철역의 환경조형물 등을 제작하였다. 《오페라를 부르시는 부처》 《영어를 배우자》 《한자를 배우자》 《사운드 페인팅》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등의 작품이 있고, 로스앤젤레스현대미술관(MOCA)과 휘트니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불http://news.naver.com/news_read.php?oldid=20030528000046111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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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개인전' 충격적 기법으로 담은 인간의 욕망 2000년 05월 30일 (화) 10:31 지난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설치작가 이불씨가 6월20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세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미래적인 바로크’라는 제목을 붙인 이번 전시회에서 그는 사이보그(Cyborg),사이몬스터(Cymonster),플럭서스(Plexus) 등 다소 충격적인 작품들을 선보인다.
사이보그와 몬스터를 결합한 ‘사이몬스터’는 승리와 성취의 기쁨을 그 자체로 간직하지 못하고 곧바로 허탈과 슬픔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간심리를 담아냈다. 전시된 사이몬스터는 2개로 하나는 ‘초신성’이라는 의미의 ‘슈퍼 노바(Super Nova)’이며,또 하나는 ‘고치’라는 뜻의 ‘크리살리스(Chrysalis)’로 폴리우레탄이 소재다. 마치 중벌을 받은 양 얼굴과 신체의 부분을 상실한 채 천장에 매달려 있는 사이몬스터는 고대 신화를 현재와 미래의 예술로 포용,승화시키려는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플럭서스’는 세 여인의 신체를 통해 끝없이 분출하는 인간욕망의 현실을 고발한 작품. 구슬 등 수많은 인공장식품들이 여인들의 가슴을 가르고 마치 요기처럼 뻗어나오고 있다. 이들 여인의 인체는 모두 머리가 없어 이성의 자제력을 상실한 가운데 허영심으로 가득찬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는 쾌거를 이루어 세계 미술계로 우리 예술가들이 활발히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 새로운 미술 재료가 개발되면서 표현 방법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대 미술은 세계적인 미술을 지향하면서 각종 국제 교류전에 많은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비디오 아트와 행위 예술과 같은...


http://web.tenet.or.kr/@deart/museum/museum5.htm



근대 . 현대 미술
19세기 말에 서양 미술의 도입으로 우리 나라 미술은 새롭게 전개되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덕수궁 석조전, 고딕식 건축인 명동성당, 로마의 개선문을 모방한 독립문 등이 세워졌으며, 점차 새로운건축 기술의 발달로 기능미를 살린 현대식 건축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조소는 새로운 서양식 기법과 추상 조각이 도입되면서 더욱 발전하였으며, 대표적인 작가로는
김복진,
윤효중,
김종영,
권진규
등이 있다.
전통회화 작가로는 구한말 어진 화가로 북화풍으로 많은 초상화와 화조화를 그린 김은호, 간결한 구도와 현대적 감각으로 산수화를 그린 이상범,거친 필치로 실경을 그린 변관식 등이 있다. 또, 우리 나라에서 서양화를 처음 배우고 돌아온 고희동 이후에 작가들이 외국에서 서양화를 배워 오면서
다양한 양식의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서양화가로는 도상봉, 구본웅,
오지호



, 김종태,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 새로운 미술 재료가 개발되면서 표현 방법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대 미술은 세계적인 미술을 지향하면서 각종 국제 교류전에 많은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비디오 아트와 행위 예술과 같은 여러 가지 재료와 기법을 이용한 표현방법의 다양화로 새로운 경향이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근대 현대 미술
19세기 말 서양문화가 유입되면서 전통문화의 바탕 위에 새로운 우리 문화를 창조하게 되었다.



동양 화가 - 안중식(도원문진도)


김은호(비단잉어)
변관식(강촌유거), 이상범(설경 산수도), 허백련(계산 청하), 노수현(계산 정취), 박래현(노점)

서양 화가 - 고희동(자화상), 나혜석(스페인 해수욕장), 도상봉(보라색 라일락), 구본웅(여인), 이중섭(흰소), 박수근(나무와 연인), 김환기(백자)

건 축 - 덕수궁석조전, 명동성당, 독립문

조 각 - 김복진(여인입상), 윤효중(물동이를 인 여인), 김종영(자각상), 권진규(지원의 얼굴)

http://news.naver.com/news_read.php?oldid=20031016000028667014&s=536&e=774노형석 기자 [email protected] ⓒ 한겨레(http://www.hani.co.kr)
뉴스 홈 > 한겨레신문 기사목록 ;원로 한국화가 장우성씨 육필 회고록 ‘화단…’ 펴내
[속보, 생활/문화] 2003년 10월 16일 (목) 22:51 [한겨레] 해방 뒤 한국화 화단의 태동을 주도했던 원로 한국화가 월전 장우성(91·사진) 씨가 육필 회고록인 〈화단 풍상 70년〉을 미술문화에서 펴냈다. 그는 18살 때 전통 채색화 거장인 이당 김은호의 제자로 들어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미술전람회(선전) 등에 입선했으며, 해방 뒤 서울대 교수를 지냈다. 한국화 장르에서 서울대 인맥의 원조로 꼽히는 그는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며 일본 화풍을 극복하는 데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87쪽 분량의 이 회고록에서 장 옹은 식민지시대와 해방공간, 한국전쟁 와중에서 펼쳐진 초창기 미술인·관련 단체들의 활동, 초창기 화단의 현대 한국화 정체성 모색 과정 등을 자신의 시각으로 되돌아보고 있다. 등단 때 벌어졌던 일과 김기창 오세창 허백련 김환기 등 대가와의 만남에 얽힌 일화 등도 실었다.

 

 

 

 

현대 미술 작품 >

 

작품명: 초가집

 

 

작품명: 달 두 개

 




<야수파>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회화 운동으로 수년간 유사한 테크닉에 관심을 보였던 화가들에 의해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미술운동이다. 이 운동은 순수 색채의 고양에 주력했다.이 새로운 화법은 1899년, 그룹에서 주도적 인물이었던 마티스에 의해 시작되었다.야수파라는 명칭은 당시의 비평가 루이 복셀이 1905년 가을 마르케의 15세기풍의 청동조각을 가리켜 마치 "야수의 우리 속에 갇혀있는 도나텔로 같다"라고 평한데서 유래되었다. 이 운동의 동인은 귀스타프 모로의 문하생이었던 마티스, 마르케, 루오, 앙리 샤를르 망갱, 샤를르카무엥 그리고 장 퓌이등과 '샤토'로부터 블라맹크와 앙드레 드랭, 그리고 프리츠, 브라크, 뒤피의 그룹이 융합된 것이었으며 네덜란드 화가 반동겐도 참여 했다. 그들은 고호, 고갱, 신인상주의, 세잔느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 작품들의 특징은 강렬한 순수 색채에 있었으며 색채는 때로는 세잔느처럼 공간 구성에도 사용했지만 대부분 감정 및 장식적 효과를 위해 임의적으로 사용했다.


 

브라크- 포르투갈 사람


 




< 입체파>1900년부터 1914년까지 파리에서 일어났던 미술 혁신운동을 말한다.1908년 마티스가 브라크의「에스타프 풍경」이란 연작을 평하면서 '조그만 입체 덩어리'라고 말한데서 유래되었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발표함으로써 급격하게 발전한 이 운동은 일반적으로 세잔느풍의 입체주의, 분석적 입체주의, 종합적 입체주의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잇다. 입체파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 회화의 전통인 원근법명암법, 그리고 다채로운 색채를 쓴 순간적인 현실 묘사를 지양하고, 야수파의 주정적(主情的) 인 표현을 폐기한 대신 시점(視點)을 복수화하여 색 도 녹색과 황토색만으로 한정 시켰으며, 자연의 여러 가지 형태를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상으로 환원, 사물의 존재성을 이차원의 타블로로 구축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피카소, 브라크등이 이 운동의 중심이었고 그 밖에 몽파르나스에서 화면에 밝은 색채와 다이나믹한 율동을 도입했던 F. 레제와 R. 들로네가 있고, 화면의 구성원리를 추구하여 추상예술의 길을 열었던 쿠프카와, 비용, 뒤샹등이 있다. 입체파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종말을 맞았으나, 그 성과는 그 후의 미술, 디자인, 건축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표현파>표현주의는 야수파, 초기의 입체파, 인상주의, 그리고 의식적으로 자연의 모방을 거부한 다른 여러 화가들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 비평가들이 1911년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다.
1911년 마르크러시아 출신 칸딘스키는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절대 순수를 표현하고자 함으로써 절대주의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표현주의는 독일을 풍미하게 되었다. 청기사 그룹의 미술 가들은 더욱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을 제작했고 후배 세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미래파 (FUTURISM)미래파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전위예술 운동을 일컫는다. 이 운동은 시인 필립포 마리네티가 효시인데, 마리네티는 기존의 낡은 예술을 모두 부정하고 기계 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다이내믹한 미를 창조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자극되어 이듬해 2월 카를로 카라, 옴베르토 보치오니, 지노 세베리니, 루이지 루솔로, 쟈코모 발라의 5인의 화가가 연명으로 미래주의 화가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미술운동으로 전개되었다. 1미래주의의 커다란 공적은 기계가 지닌 차가운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조형 예술의 주제로까지 높였다는 것과 스피드감이나 운동을 표현하기 위해 회화에 시간의 요소들을 도입하려고 시도한데 있다.
이 유파가 뛰어난 조형작품을 낳았다고 할 수 없지만, 현대에 있어서 예술의 소재에 대해 새로운 문제제기를 한 의의는 크다.



다다이즘 (DADAISM)다다이즘은 1915~22년경 스위스, 독일, 프랑스등의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났던 반문명, 반합리적인 예술운동을 일컫는다.
제1차 세계대전을 낳게 했던 전통적인 문명을 부정하고 기성의 모든 사회적·도덕적 속박에서 정신을 해방, 개인의 진정한 근원적 욕구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 이 운동의 근본 정신이었다. 이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또는 전후에 세계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독일에서는 반전운동코뮤니즘에 결합된 베를린 다다가 1919년에 결성되었다. 미국에서는 1912년경부터 프랑스의 화가 마르셀 뒤샹이 만 레이와 함께 뉴욕의 화랑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뉴욕 다다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적인 경향으로는 소위 레디메이드오브제 또는 움직이는 오브제, 콜라주 또는 앗 상블라주로 통하는 메르츠 빌트등이 시도되었던 점이다. 기계적, 성적인 이미지의 사용도 특색이다. 이들 수법은 다다의 강렬한 가치 부정적 관념과 함께 추상미술, 초현실주의 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60년대 예술 등에도 강한 영향을 주었다



<초현실파> 인간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비합리적인 감정이나 잠재의식, 환상, 공상을 새로운 표현 기법을 통해 표출함으로써 현실을 초월하려한 화피이다."초현실주의는 1919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까지 약 20년동안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던 전위적인 문학·예술운동으로, 다다이즘과 미래주의등 20세기에 등장한 다른 전위운동에 비해 제1차, 제2차 세계대전동안 가장 폭넓게 확산되었으며 논쟁적인 예술운동이었다.
초현실주의는 근본적으로 경험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애썼으며 현실을 본능적이고 잠재적인 꿈의 경험과 융합시켜서 논리적이며 실재하는 현실, 그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시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현실에 도달하려 했다.초현실주의가 표현한 방법은 바로 "색다른 낯설음" 이었는데, 그 들은 일상 생활에서의 낯익은 사물들을 일상적 맥락에서 떼어놓음으로서 성취가 된다.또 한편 그들은 콜라주와 몽타주 기법 들을 이용했는데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물 들이 엉켜있는 작품에서 당혹스러운 결과를 도출해 낸다.결국 이들이 찾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꿈을 표현해 낸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일상화되고 관념화되어버려서 똑같은 삶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더 넓은 인식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 운동을 예시한 미술가들은 보쉬, 아르침볼드, 피라네시, 고야, 롭스, 그리고 연대에 와서는 르동, 키리코 등으로 환상적이면서도 기이한 면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보였다. 이 들과 비슷한 특징 때문에 샤갈 또한 이 운동의 선두주자로 언급된다. 미로, 아르프, 마송, 에른스트같은 화가들은 프로타주와 꿈의 현실적 재생산 사이를 넘나드는 기법을 통해 시각적인 등가물을 창조하려고 했다.



에른스트- 친구들의 모임

달리- 기억의 지속



<추상파>현실적인 대상의 구체적인 재현보다는 선, 형, 색채 등의 순수한 조형 요소만을 사용하여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 화파로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추상 미술의 언어적 의미는 재현하는 대상이 없는 구체적 예술이다. 최초의 완전한 추상화는 1912년 뮌헨에서 나타나지만 추상화 전개에 있어 가장 활동적인 의욕을 보인 작가는 네덜란드의 몬드리안과 러시아 출신의 칸딘스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활동한 말레비치 등이 있다.


 

1. 칸딘스키<청기사>

초기에 표현주의의 마티스로 부터 깊은 영향을 받아서 밝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였다. 표현주의 그룹 청기사를 이끌었던 그는 우연히 작업실에 뒤집혀있는 자신의 작품을 보고 경탄에 마지 않고 급기야 내용이 되고 있는 사물의 형태에 의해 순수한 조형미가 불가능하다는 알게된다. 칸딘스키는 작품을 통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순수한 미적 정서를 불러 일으키고자 했는데 그의 작품들은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점을 시사하지도 나타내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단지 작품의 제목 자체의 관념들 처럼 미적 감성을 환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몬드리안<신조형 주의>

신조형이란 말 그대로 과거의 조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조형을 말한다. 몬드리안 등에 창간된 《데슈틸》이란 전위예술 잡지가 있는데 이 데슈틸 운동의 기본목표는 초자연적인 질서를 미적으로 표현할 보편적 조형언어를 탐구하는 것이다.신조형주의의 는 가능한한 개인의 주관적 정서와 개성을 제거하려고 하며 순전히 기하학적으로 표현된다. 그의 그림은 매우 이성적이다. 그의 그림은 순수한 색으로 채색된 직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조화로운 결합은 수학적인 원칙과 음악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이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쇤매커를 만나 조형수학을 접하면서 부터인데 수직과 수평선이 만나 만들어지는 기하학적 형태는 근본적인 모순의 해(解)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번갈아 우주적 힘과 관계하는 것으로 노랑은 햇빛, 파랑은 무한한 넓이의 공간, 빨강은 통일의 색이었다. 이러한 사상으로 그는 노랑, 빨강, 파랑의 구성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추상 표현주의 (ABSTACT EXPRESSIONISM )일반적으로 1940년대와 50년대에 미국 화단을 지배했던 미국 회화사상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회화의 한 양식이다. 본래 추상 표현주의라는 용어는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에 대해서 사용했던 말로, 미국의 평론가 알프레드 바가 1929년 미국에서 전시 중이던 칸딘스키의 초기작품에 대해 추상표현주의라는 말을 썼었다.이 용어가 부적당하다는 견해도 있어서 비평가가 해롤드 고젠버그는 액션 페인팅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추상표현주의는 서구 근대미술의 복합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야수파, 표현주의, 다다이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로 이어지는 한 계보와 인상주의, 입체파, 기하학적 추상의 계보를 모두 받아들이고 있다.전통적인 추상은 구상 회화의 경우처럼 인간, 사물, 풍경등을 표현 대상으로 삼지 않지만 삼각형이나 원 따위, 선이나 면에 의해 생성되는 형상을 갖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것은 현대 회화의 한 특성으로 화면은 원근감을 잃고 평면화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라운드와 전경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는 구상적이거나 추상적이거나 간에 지시성과 방향성을 거부한다



미니멀 아트 (MINIMAL ART)1960년대 후반, 미국의 젊은 작가들이 최소한의 조형 수단으로 제작했던 회화나 조각을 가리킨다. 여기서 최소한이란 일루전의 극소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은 회화의 감동, 마티에르의 풍부함 내지 자기 표현은 곧 예술이라는 신화를 기본으로 하는 종래의 예술 개념을 거부하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이 경향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엘즈워드 캘리, 프랭크 스텔라, 도널드 주드, 케네드 놀런드, 잭 영거맨, 래리 푼즈, 모리스 루이스 등을 들 수 있다.





<팝 아트>1960년대 초기에 미국에서 발달하여 미국 화단을 지배했던 구상 회화의 한 경향이다. '팝'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포플러(popular)'의 약자로 보는 것이 유력하다. 통속적인 이미지, 다시 말해서 일상 생활에 범람하는 기성의 이미지에서 제재를 취했던 이 경향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1950년대 초기의 미국 화단을 휩쓸었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다. 미국의 팝 아트는 미국으로 상징되는 현대의 테크놀로지 문명에 대한 낙관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다. 미국 팝 아트의 선배 작가로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재스퍼 존스를 들 수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흔히 발견되는 일상적인 이미지나 물체를 미술 작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목표로 하고 있다. 팝 아트의 작가들은 일상의 이미지를 인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기호나 기호체계로 사용하고 있다.특히 앤디 워홀, 로히 리히텐스타인등은 사회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 - 예를 들면 마릴린 먼로의 얼굴, 미키 마우스의 이미지 -을 작품 속에 도입함으로써 기초 체계와 그들 자신의 테마를 겹쳐서 표현하고 있다



앤디 워홀-블루 마릴린

리히텐스타인-소녀


 

(내용출처http://www.imoon21.com/ ,http://hangrim.new21.net/start.php, http://www.misulnara.pe.kr/naver)

극사실주의 (HYPER REALISM)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경향의 회화와 조각을 일컫는다.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극히 생생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특징으로 한다.주관을 적극 배제하고 어디까지나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과 같이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는데 주로 의미없는 장소, 친구, 가족등이 대상으로 취급된다. 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사실주의로, 특히 팝 아트의 강력한 영향 아래서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팝 아트처럼 평상의 생활 즉 우리의 눈앞에 늘 있는 진부한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그러나 팝 아트와는 달리 그것은 극히 억제된 것으로써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다만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 다룰 뿐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척 클로즈, 하워드 캐노비츠, 맬컴 몰리, 필립 펄 스타인, 시드니 틸림등의 작가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포스트 모더니즘은 지난 20세기에 걸쳐 서구의 문화와 예술, 삶과 사고를 지배해온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서 6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기 모더니즘은 하나의 통일된 사조나 운동은 아니지만, 그 중심적 동기는 모더니즘을 통해 수립된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엄격한 구분, 예술의 각 장르간의 폐쇄성에 대한 반발이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것은 건축 비평가들이었는데 이는 1960년대까지 유행하던 엄격한 사각형 형태의 양식에 대한 반발로 나온 건축물에 대해 쓴 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포스트 모던'적 경향이 분화되지 않은 과거의 예술을 소생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른 시대, 다른 문화로 부터 양식과 이미지를 차용하는 예술은 모두 '포스트 모던'의 자격을 얻는다.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가들의 또 다른 주된 특징은 모더니즘 문화와 사고 방식이 세워놓은 엄격한 지배의 틀을 거부하는데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소통이 불가능한 정치, 문화, 전문화의 영역을 깨뜨리고, 삶과 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예술에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끌여 들여 비판적으로 다룬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아직은 확정된 일관성 있는 체계는 아니며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욕망에 의해 촉발된 회의주의적이고 비판적인 의식이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즘의 폐허를 헤치고 나가며, 모더니즘의 부정이라는 가시적인 대안을 세우려 노력한다.



<비디오아트>비디오, 즉 텔레비전을 표현 매체로 하는 예술로 1970년대 전반부터 성행한 현대 예술의 한 경향이다. 비디오아트는 크게 나누어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예술적 가능성의 추구에서 생겨난 것과 형식주의적인 예술에 대한 반발에서 생겨난 것이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나 제작자보다도 감상자의 주체를 중시하는 정보의 개념에 기초를 둔 표현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비디오 아트는 아직 확실한 형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으로는 영화의 연장, 또 한편으로는 예술의 연장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거기에 공간이나 환경의 구성과도 결부되어 있어 어떤 방향에 더 가능성이 있으며, 또 어느 방향으로 귀착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비디오 아트는 현대예술의 새로운 장르로서 미술관이나 화랑 등에 전시되어 '움직이는 전자회화(電子繪畵)'라는 애칭으로 조용한 붐을 일으키고 있다



백남준- 백팔번뇌


 

98 경주세계문화엑스포모니터 1백8개로 이뤄진 백남준씨의 작품「백팔번뇌」. 영상실에서는 첨단 영상과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멀티디멘션 기법의 대형 영상쇼가 18분 간 격으로 매일 17회 상영(상영시간 12분)된다·첨단기법으로 인류문화 비전 제시.현대 미술에 있어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후 제기 되어온 오브제(Object)의 문제는 이제 새로운 사고의 전환으로 물리적 재료인 TV에 시간과 공간, 조형 예술 작업 등 미디어(Media)적 성격변화로 비물질적으로 변화되었다. 이제 예술은 조각의 형상적 작업이나 회화의 평면적인 작업이 아닌 전혀 다른 오브제 TV를 사용한다.바로 이런 새로운 유형인 비디오 아트의 가장 큰 특징은 회화, 음악, 조각도 아닌 전혀 새로운 것이며, TV브라운관을 통해서 움직이는 이미지 즉, 움직임을 따라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며 그 공간은 무한한 시간적 흐름을 가진다.


 

따라서 모든 분야- 예술, 기술-의 전통적인 경계를 허물고, 인간 의식의 진보적 형성 및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매체의 모든 영역을 오브제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백남준의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는 인간의식의 변화 즉, 사고의 전환 그 자체인 것이다. 또한 다다의 허무주의적 파괴주의 정신을 기초로 한 것이나 매체의 적극적인 활용은 단순한 부정과 파괴가 아닌 하나의 승화된 형태로 나타난다.그러므로 새로운 매체들을 예술적 재료로 사용하여 시간적 연장속에서 전개되는 시각적 표현의 세계를 구현하고 대중매체로서의 TV와 비디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려 미술의 확장된 한 분야로서 인정받게 한 비디오아트의 효시가 백남준이다.


 

우선 2장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형성과 배경에서, 사상적 배경을 1958년 독일의 다름슈타트(Darmstadt) 하기 음악강습회에서 존케이지(John Cage)를 만남으로 인해 동양인으로서의 본질적 자각이 시작된 것으로 보았다. 케이지로부터 받은 영향은 59년부터 60년대 초,중반 플럭서스 콘서트, 미국에서의 초기 비디오 작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전통으로부터 일탈하여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나가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백남준의 예술 시기적 구분과 작품 제작 배경에서는 먼저 1961∼1964년을 기성화된 고급문화 제도와 전통에 대항하는 전위 예술가 모임인 플럭서스 운동시기로 나눌 수 있으며, 1964∼1968년을 미국 소호에서 샬롯 무어만과의 만남을 계기로 퍼포먼스 시기로, 1969년부터 비디오 예술의 시작에서, 비디오 예술의 전성기와 위성중계 예술을 현재까지 구분지었다.


 

현대미술에 있어서 비디오 아트는 1963년 3월 백남준이 독일의 파르나스 화랑( Parnass Gallery)에서 TV 수상기를 이용한 전시회를 열었던 시점으로 소급하게 된다. 비디오 아트는 시기적으로나 매체적 특성으로 포스트 모던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 시대의 특성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놓은 가장 대표적인 쟝르라고 말할 수 있다. 비디오 아트는 흔히 보는 텔레비젼 수상기를 통해 실현되는 예술이다. 모든 시각적 표현은 종이나 캔버스 혹은 벽 등의 공간적인 연장의 바탕위에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백남준은 영화에서처럼 텔레비젼의 화상을 통해 시간적 연장속에서 전개되는 미술영역의 확대를 열었다.


 

3장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의 주요 분류와 내용에서는 많은 형태 (오브제, 비디오 조각, 비디오 설치, 비디오 테이프, 비디오 퍼포먼스, 위성중계와 공연예술 등)들로 나타냈다. 4장에서 비디오 아트의 특징과 미술사적 의미를, 그의 비디오 이미지는 기존의 관념적이고 논리적인 시간개념을 부정하여 자유로운 시간을 표현했고, 비디오만이 갖는 시간의 특수성을 그가 제작한 일련의 작품들 중에 확실하게 반영시켰다. 반영된 그의 비디오 이미지는 관조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활성적인 객체, 즉 또 하나의 주체가 되어 지각주체와 상호 주관적 소통을 이루어 '인간 의식의 확장'을 경험케 한다. 이러한 그의 독창성은 전혀 새롭지만 가능한 방식을 도입하여 예술을 일상생활의 실제적인 영역속에 포함 시켰다.


 

따라서, 백남준은 비디오라고 하는 지극히 현대적이고 시간적으로 효과 범위가 넓은 매체를 사용하여 삶과 예술을 집결시켰으며, 예술가의 사명은 기술 및 텔레커뮤니케이션이 인간 생활에 기여 할 수 있는 역할을 탐구하는 것이며, 관객과의 참여와 상호 소통으로 인하여 삶의 예술화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그의 이러한 낙관적인 신념을 그의 비디오 아트를 통해 표현한 것이었다.


 

http://www.eduart2000.com/nonmun/nonmun/박혜정00.hwp 내용출처


 

백남준의 플럭서스(Fluxus)적인 자발성은 그의 경력을 통틀어 지속적인 맥락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순한 비디오 아트의 화제 작가가 아니라, 백남준이 중요한 예술가로 부각되는 이유는 그의 재발성과 관련된 행동의 체계적 양태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모건 저《백남준의 단편들》NAM JUNE PAIK'95 ART AND COMMUNICATION. Gallery HYUNDAI-
비디오는 현재까지 그 예술적 가능성이 개발되고 실험 중에 있는 예술 매체이며, 백남준 역시 다양한 매체로 실험하고 있는 예술가이다. 비디오 예술은 일시적인 유행이나 일개주의(一介主義, ism)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과 함께 그 예술적 영역이 확장되고, 매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미학이 탄생하는, 열린 개념의 예술이다. 그러므로 비디오 아트는 예술에 대한 고정 관념이나 기존의 예술 개념으로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비디오 예술의 이해는 예술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뿐 아니라, 예술에 대한 전혀 새로운 시각을 요구.
-김홍희 저《백남준과 그의 예술》p.12 ,디자인 하우스, 1992, 서울-

하고 있는데, "꼴라쥬 기법이 유화물감을 대신 하듯, TV 브라운관이 켄버스를 대신하리라"는 그의 말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백남준이 미술가로서의 방향제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존 케이지(John Cage)인데, 그것은 백남준이 음악도로 출발했던 배경과 케이지의 배경이 흡사하고 또한 비디오 예술이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http://halfmoon.hihome.com/andy.htm 내용출처 -참을 수 없는 예술의 가벼움



앤디 워홀 Andy Warhol (1928.8.6∼1987.2.22) 앤디 워홀 박물관 http://www.clpgh.org/warhol/



앤디 워홀 - 이미지가 만들어낸 신기루 왕국



예술? 그거 사람 이름 아냐?”- 앤디 워홀



워홀에 대해 어떤 수사학이 필요할 것인가. 만약 우리가 ‘예술가는 굵고 억세고 날카롭고 모진 가시면류관을 쓰고 나와야 한다’는 김수영고전적 아포리즘을 승인한다면 우리는 응당 워홀을 ‘가짜’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체코 노동 이민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영화배우를 흠모했고 스타들의 사진을 수집하며 유년기를 보낸 뒤 피츠버그의 카네기테크를 졸업한 다음 곧장 뉴욕으로 날아가 상업 디자이너로 출발했다.체코식 성 ‘워홀라’(Warhola)를 ‘워홀’로 고친 그는 1960년대부터 미국 미술계를 휩쓴 팝아트에 뛰어들어 신문이나 잡지를 오려 붙이거나 복사했으며 좀더 짧은 시간 내 많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팩토리’를 두고 조수를 고용했다.
그는 작품 제작과정에서 생기는 실수나 우연에 개의치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워홀은 이 방식을 아예 포드주의에 입각해 완전한 공장시스템으로 양산해내기 시작했다. 마릴린 먼로와 코카콜라와 통조림 깡통이 그의 공장에서 연거푸 쏟아져 나왔다. 그의 조수들은 워홀이 지시한 대로 밤을 새워 작품을 생산해냈고 심지어 그의 어머니마저도 워홀이 가르쳐준 대로 사인을 연습해 아들 대신 사인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잘못 인쇄된 우표가 고가에 팔리듯 그의 작품 역시 엉뚱한 실수와 조작에 따른 것이 훨씬 파격적인 관심 속에 매매됐다.유명한 <마릴린 먼로>(1962) 역시 이 과정에서 생산됐다.
1962년 마릴린 먼로가 사망하자 워홀은 1952년에 진 콘맨이 찍은 영화 <나이아가라>의 광고용 사진을 검은 바탕과 황금색 잉크 위에 다중노출시켜 을씨년스런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워홀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우연적인 효과들,
이를테면 농도의 차이, 선명도, 기계상의 실수 따위를 그대로 작품의 일부로 승인했다.마침표 하나에도 예술혼을 불어넣고야 말겠다는
인류사의 수많은 예술가들의 에고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작품에 대해 워홀은 일체의 콤플렉스도 갖지 않았다.



이 점만으로 그를 가짜라고 부르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예술가는 단지 놀라운 재능만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것은 아니며 작가의 의도와 무관한 이유로 심오한 조명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워홀의 경우라면 우리는 그를 60년대의 미국, 나아가 현대 산업사회와 연관짓지 않을 수 없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 시대는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시대이며 대중문화와 스타의 이미지가 지배적인 조류가 된 시대이다.워홀이 설령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수많은 활동은 이러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재창조됐고,이 과정에서 워홀과 그의 작업이 주목받았던 것이다.



사실 워홀은 이 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존 워커의 표현대로 현대의 젊은이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위해 특정한 청바지를 구입하지만 동시에 그 청바지는 수백만벌씩 전세계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대중 개인주의’의 단면임을 그는 직관으로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당신도 리즈 테일러도 대통령도 코카콜라를 마신다”고 했을 때
그는 분명하게 대중소비사회의 정곡을 찔렀던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사회가 코카콜라와 청바지의 평등은 허락할지 몰라도그보다 더욱 본질적인 경제적 사회적 평등은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에 근거한 워홀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러한 점에서 워홀의 가짜 혐의는 대강 벗겨진 셈인데,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적 워홀 현상에 대한 이해다. 요즘 우리 대중문화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워홀의 반복은, 전혀 독창성을 의식하지 않은 워홀의 독창성을 단순히 베끼고 있다는 점에서 관습적이며 비록 이 시대가 워홀의 60년대와 흡사한 점이 많다고는 해도 이미 워홀을 통해 걸러진 예술적 찌꺼기로 우리 시대를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짜라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하고 이미지를 대량 복제함으로써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한국판 포스트모던 보이들은 이미 그것이 관습화되고 정체돼 낡고 진부한 예술적 사기술이 됐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만일 워홀을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면 이제 워홀의 방식대로 세상과 교통하는 것은 하나의 사기라고 인식하는 것 뿐이다. 우린 아직 김수영 이전에 있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본명 Adrew Wahola, 미국의 미술가. 실험영화 감독.



49 피츠버그 카네기 기술연구소 디자인과 졸업, 그후 뉴욕에서 상업적인 삽화가로 활동



62 시드니 재니스 화랑 ‘뉴리얼리스트전’에 <캠벨 수프 깡통> <코카콜라 병>

<브릴로 비누상자> 출품



63 영화 <슬립> <앰파이어> 64 <엘비스 Ⅰ과 Ⅱ> 65 영화



66 영화 69 영화



75 책 <앤디 워홀의 철학> 79 책 <1970년대의 조망>

햄버거

신화 : 미키마우스

Are You "Different?"

엘비스 프레슬리

캠벨스프깡통

*해밀턴 { Hamilton, Richard , 1922 }영국의 팝 아트(Pop Art)의 대표적인 작가.


 

국적 : 영국

활동분야 : 미술

출생지 : 영국 런던

주요수상 : 윌리엄 노머 코플리 재단상(1960)

주요작품 :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1956)


 

1922년 영국의 런던에서 출생하였다. 1934년 야간예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1936년 전기회사의 광고팀에서 근무하면서 웨스트민스터기술대학과 세인트마틴예술학교에서 공부했다. 1938∼1940년에는 왕립아카데미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1948∼1951년 슬레이드예술학교(Slade School of Art)에서 회화 수업을 받았으며, 1950년 짐펠 필스(Gimpel Fils)에서 첫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1951년 런던에서 '성장과 형상(Growth and Form)'이라는 이름으로 기획전시회를 열었다. 1952년 중앙예술공예학교(Central School of Arts and Crafts)에서 은공예, 타이포그래피, 산업디자인 분야의 강사로 있으면서, 동료였던 에두아르도 파올로치(Eduardo Paolozzi)와 함께 ICA 독립파를 구성했다.
1960년 윌리엄 노머 코플리 재단상(William and Norma Copley Foundation Prize)을 받았다.
작품에는 콜라주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1956) 등이 있다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 So Different, So Appealing?
" 영국의 팝 아트 작가 리처드 해밀턴의 초기 작품




 

리처드 헤밀턴 Richard Hamilton(1922~)

로이 리히텐슈타인((Lichtenstein, Roy 1923.10.27~1997.9.29)

미국의 화가.



국적 : 미국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미국 뉴욕

주요작품 : 《공놀이소녀》

 

 

 

이상 여기까지 입니당!! ~~ 쓰느라 3시간 낭비... ㅠㅠ 점수좀 주심 ㄳㄳ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한마디로 현대미술이라고 하지만 그 개념은 실제로 매우 막연하다. 무엇을 두고 현대미술이라고 하느냐 하였을 때 우선 떠오르는 것이 근대미술이다. 그리고 이 두 용어를 따로따로 확연하게 구분짓기는 힘들다.
오늘날의 현대미술은 개념은 좁은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미술, 곧 20세기 후반기의 미술을 가리키고, 근대미술은 19세기 미술을 포함한 20세기 전반기까지의 미술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전후(戰後) 미술을 현대미술이라고 부를 때, 이 시대의 미술은 엄격하게 현대미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여러 독자적인 성격과 양상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미술이 전후에 갑자기 태어난 것은 결코 아니다.
20세기 미술은 야수주의의 봉화와 함께 막이 열린다.
50년대는 추상표현주의의 시대라 불릴 수 있을 만큼 이 운동이 세계적으로 파급되었다.
60 년대는 특히 미국의 현대미술이 강력하게 활기를 띤 시기이며, 그 초반에는 팝 아트와 오프 아트가 쌍벽을 이루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20세기 후반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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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야수파>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회화 운동으로 수년간 유사한 테크닉에 관심을 보였던 화가들에 의해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미술운동이다.
이 운동은 순수 색채의 고양에 주력했다.이 새로운 화법은 1899년, 그룹에서 주도적 인물이었던 마티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야수파라는 명칭은 당시의 비평가 루이 복셀이 1905년 가을 마르케의 15세기풍의 청동조각을 가리켜 마치 "야수의 우리 속에 갇혀있는 도나텔로 같다"라고 평한데서 유래되었다. 이 운동의 동인은 귀스타프 모로의 문하생이었던 마티스, 마르케, 루오, 앙리 샤를르 망갱, 샤를르카무엥 그리고 장 퓌이등과 '샤토'로부터 블라맹크와 앙드레 드랭, 그리고 프리츠, 브라크, 뒤피의 그룹이 융합된 것이었으며 네덜란드 화가 반동겐도 참여 했다. 그들은 고호, 고갱, 신인상주의, 세잔느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 작품들의 특징은 강렬한 순수 색채에 있었으며 색채는 때로는 세잔느처럼 공간 구성에도 사용했지만 대부분 감정 및 장식적 효과를 위해 임의적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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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모자 쓴 여인]


망갱[해안의 풍경]Manguin, Henri Charles 1837∼1911
파리에서 출생한 화가. 파리의 국립미술학교(Ecole des Beaux-Arts)에서 모로에게 그림을 배웠다. 초기에는 시냐크와 쇠라 등의 점묘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1차대전을 피해 스위스에서 몇 년간 피난 생활을 했으며 돌아와서는 지중해 연안의 셍-트로페(Saint-Tropez)에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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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체파>


1900년부터 1914년까지 파리에서 일어났던 미술 혁신운동을 말한다.
1908년 마티스가 브라크의「에스타프 풍경」이란 연작을 평하면서 '조그만 입체 덩어리'라고 말한데서 유래되었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발표함으로써 급격하게 발전한 이 운동은 일반적으로 세잔느풍의 입체주의, 분석적 입체주의, 종합적 입체주의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잇다. 입체파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 회화의 전통인 원근법과 명암법, 그리고 다채로운 색채를 쓴 순간적인 현실 묘사를 지양하고, 야수파의 주정적(主情的) 인 표현을 폐기한 대신 시점(視點)을 복수화하여 색 도 녹색과 황토색만으로 한정 시켰으며, 자연의 여러 가지 형태를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상으로 환원, 사물의 존재성을 이차원의 타블로로 구축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피카소, 브라크등이 이 운동의 중심이었고 그 밖에 몽파르나스에서 화면에 밝은 색채와 다이나믹한 율동을 도입했던 F. 레제와 R. 들로네가 있고, 화면의 구성원리를 추구하여 추상예술의 길을 열었던 쿠프카와, 비용, 뒤샹등이 있다. 입체파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종말을 맞았으나, 그 성과는 그 후의 미술, 디자인, 건축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피카소[게르니카]


브라크[포르투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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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파>


표현주의는 야수파, 초기의 입체파, 인상주의, 그리고 의식적으로 자연의 모방을 거부한 다른 여러 화가들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 비평가들이 1911년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다.
1911년 마르크와 러시아 출신 칸딘스키는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절대 순수를 표현하고자 함으로써 절대주의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표현주의는 독일을 풍미하게 되었다. 청기사 그룹의 미술 가들은 더욱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을 제작했고 후배 세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키르히너[드렌스덴의 거리]


놀데[황금송아지의 춤]

미래파 (FUTURISM)

미래파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전위예술 운동을 일컫는다. 이 운동은 시인 필립포 마리네티가 효시인데, 마리네티는 기존의 낡은 예술을 모두 부정하고 기계 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다이내믹한 미를 창조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자극되어 이듬해 2월 카를로 카라, 옴베르토 보치오니, 지노 세베리니, 루이지 루솔로, 쟈코모 발라의 5인의 화가가 연명으로 미래주의 화가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미술운동으로 전개되었다.
1미래주의의 커다란 공적은 기계가 지닌 차가운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조형 예술의 주제로까지 높였다는 것과 스피드감이나 운동을 표현하기 위해 회화에 시간의 요소들을 도입하려고 시도한데 있다.
이 유파가 뛰어난 조형작품을 낳았다고 할 수 없지만, 현대에 있어서 예술의 소재에 대해 새로운 문제제기를 한 의의는 크다.

다다이즘 (DADAISM)

다다이즘은 1915~22년경 스위스, 독일, 프랑스등의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났던 반문명, 반합리적인 예술운동을 일컫는다.
제1차 세계대전을 낳게 했던 전통적인 문명을 부정하고 기성의 모든 사회적·도덕적 속박에서 정신을 해방, 개인의 진정한 근원적 욕구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 이 운동의 근본 정신이었다. 이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또는 전후에 세계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독일에서는 반전운동과 코뮤니즘에 결합된 베를린 다다가 1919년에 결성되었다. 미국에서는 1912년경부터 프랑스의 화가 마르셀 뒤샹이 만 레이와 함께 뉴욕의 화랑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뉴욕 다다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적인 경향으로는 소위 레디메이드의 오브제 또는 움직이는 오브제, 콜라주 또는 앗 상블라주로 통하는 메르츠 빌트등이 시도되었던 점이다. 기계적, 성적인 이미지의 사용도 특색이다. 이들 수법은 다다의 강렬한 가치 부정적 관념과 함께 추상미술, 초현실주의 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60년대 예술 등에도 강한 영향을 주었다


<초현실파>


" 인간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비합리적인 감정이나 잠재의식, 환상, 공상을 새로운 표현 기법을 통해 표출함으로써 현실을 초월하려한 화피이다."
초현실주의는 1919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까지 약 20년동안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던 전위적인 문학·예술운동으로, 다다이즘과 미래주의등 20세기에 등장한 다른 전위운동에 비해 제1차, 제2차 세계대전동안 가장 폭넓게 확산되었으며 논쟁적인 예술운동이었다.
초현실주의는 근본적으로 경험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애썼으며 현실을 본능적이고 잠재적인 꿈의 경험과 융합시켜서 논리적이며 실재하는 현실, 그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시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현실에 도달하려 했다.
초현실주의가 표현한 방법은 바로 "색다른 낯설음" 이었는데, 그 들은 일상 생활에서의 낯익은 사물들을 일상적 맥락에서 떼어놓음으로서 성취가 된다.또 한편 그들은 콜라주와 몽타주 기법 들을 이용했는데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물 들이 엉켜있는 작품에서 당혹스러운 결과를 도출해 낸다.
결국 이들이 찾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꿈을 표현해 낸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일상화되고 관념화되어버려서 똑같은 삶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더 넓은 인식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 운동을 예시한 미술가들은 보쉬, 아르침볼드, 피라네시, 고야, 롭스, 그리고 연대에 와서는 르동, 키리코 등으로 환상적이면서도 기이한 면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보였다. 이 들과 비슷한 특징 때문에 샤갈 또한 이 운동의 선두주자로 언급된다.
미로, 아르프, 마송, 에른스트같은 화가들은 프로타주와 꿈의 현실적 재생산 사이를 넘나드는 기법을 통해 시각적인 등가물을 창조하려고 했다.


에른스트[친구들의 모임]
달리[기억의 지속]




<추상파>


" 현실적인 대상의 구체적인 재현보다는 선, 형, 색채 등의 순수한 조형 요소만을 사용하여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 화파로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추상 미술의 언어적 의미는 재현하는 대상이 없는 구체적 예술이다. 최초의 완전한 추상화는 1912년 뮌헨에서 나타나지만 추상화 전개에 있어 가장 활동적인 의욕을 보인 작가는 네덜란드의 몬드리안과 러시아 출신의 칸딘스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활동한 말레비치 등이 있다.
1. 칸딘스키<청기사>
초기에 표현주의의 마티스로 부터 깊은 영향을 받아서 밝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였다. 표현주의 그룹 청기사를 이끌었던 그는 우연히 작업실에 뒤집혀있는 자신의 작품을 보고 경탄에 마지 않고 급기야 내용이 되고 있는 사물의 형태에 의해 순수한 조형미가 불가능하다는 알게된다. 칸딘스키는 작품을 통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순수한 미적 정서를 불러 일으키고자 했는데 그의 작품들은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점을 시사하지도 나타내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단지 작품의 제목 자체의 관념들 처럼 미적 감성을 환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몬드리안<신조형 주의>
신조형이란 말 그대로 과거의 조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조형을 말한다. 몬드리안 등에 창간된 《데슈틸》이란 전위예술 잡지가 있는데 이 데슈틸 운동의 기본목표는 초자연적인 질서를 미적으로 표현할 보편적 조형언어를 탐구하는 것이다
신조형주의의 는 가능한한 개인의 주관적 정서와 개성을 제거하려고 하며 순전히 기하학적으로 표현된다. 그의 그림은 매우 이성적이다. 그의 그림은 순수한 색으로 채색된 직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조화로운 결합은 수학적인 원칙과 음악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이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쇤매커를 만나 조형수학을 접하면서 부터인데 수직과 수평선이 만나 만들어지는 기하학적 형태는 근본적인 모순의 해(解)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번갈아 우주적 힘과 관계하는 것으로 노랑은 햇빛, 파랑은 무한한 넓이의 공간, 빨강은 통일의 색이었다. 이러한 사상으로 그는 노랑, 빨강, 파랑의 구성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몬드리안[회색나무]
칸딘스키[콤포지션]

추상 표현주의 (ABSTACT EXPRESSIONISM )


일반적으로 1940년대와 50년대에 미국 화단을 지배했던 미국 회화사상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회화의 한 양식이다. 본래 추상 표현주의라는 용어는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에 대해서 사용했던 말로, 미국의 평론가 알프레드 바가 1929년 미국에서 전시 중이던 칸딘스키의 초기작품에 대해 추상표현주의라는 말을 썼었다.
이 용어가 부적당하다는 견해도 있어서 비평가가 해롤드 고젠버그는 액션 페인팅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추상표현주의는 서구 근대미술의 복합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야수파, 표현주의, 다다이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로 이어지는 한 계보와 인상주의, 입체파, 기하학적 추상의 계보를 모두 받아들이고 있다.
전통적인 추상은 구상 회화의 경우처럼 인간, 사물, 풍경등을 표현 대상으로 삼지 않지만 삼각형이나 원 따위, 선이나 면에 의해 생성되는 형상을 갖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것은 현대 회화의 한 특성으로 화면은 원근감을 잃고 평면화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라운드와 전경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는 구상적이거나 추상적이거나 간에 지시성과 방향성을 거부한다.

7) 미니멀 아트 (MINIMAL ART)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젊은 작가들이 최소한의 조형 수단으로 제작했던 회화나 조각을 가리킨다. 여기서 최소한이란 일루전의 극소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은 회화의 감동, 마티에르의 풍부함 내지 자기 표현은 곧 예술이라는 신화를 기본으로 하는 종래의 예술 개념을 거부하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경향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엘즈워드 캘리, 프랭크 스텔라, 도널드 주드, 케네드 놀런드, 잭 영거맨, 래리 푼즈, 모리스 루이스 등을 들 수 있다.





<팝 아트>


1960년대 초기에 미국에서 발달하여 미국 화단을 지배했던 구상 회화의 한 경향이다. '팝'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포플러(popular)'의 약자로 보는 것이 유력하다. 통속적인 이미지, 다시 말해서 일상 생활에 범람하는 기성의 이미지에서 제재를 취했던 이 경향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1950년대 초기의 미국 화단을 휩쓸었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다. 미국의 팝 아트는 미국으로 상징되는 현대의 테크놀로지 문명에 대한 낙관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다. 미국 팝 아트의 선배 작가로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재스퍼 존스를 들 수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흔히 발견되는 일상적인 이미지나 물체를 미술 작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목표로 하고 있다. 팝 아트의 작가들은 일상의 이미지를 인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기호나 기호체계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앤디 워홀, 로히 리히텐스타인등은 사회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 - 예를 들면 마릴린 먼로의 얼굴, 미키 마우스의 이미지 -을 작품 속에 도입함으로써 기초 체계와 그들 자신의 테마를 겹쳐서 표현하고 있다.


앤디 워홀[블루 마릴린]
리히텐스타인[소녀]

극사실주의 (HYPER REALISM)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경향의 회화와 조각을 일컫는다.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극히 생생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특징으로 한다.주관을 적극 배제하고 어디까지나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과 같이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는데 주로 의미없는 장소, 친구, 가족등이 대상으로 취급된다.
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사실주의로, 특히 팝 아트의 강력한 영향 아래서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팝 아트처럼 평상의 생활 즉 우리의 눈앞에 늘 있는 진부한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팝 아트와는 달리 그것은 극히 억제된 것으로써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다만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 다룰 뿐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척 클로즈, 하워드 캐노비츠, 맬컴 몰리, 필립 펄 스타인, 시드니 틸림등의 작가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

포스트 모더니즘은 지난 20세기에 걸쳐 서구의 문화와 예술, 삶과 사고를 지배해온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서 6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기 모더니즘은 하나의 통일된 사조나 운동은 아니지만, 그 중심적 동기는 모더니즘을 통해 수립된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엄격한 구분, 예술의 각 장르간의 폐쇄성에 대한 반발이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것은 건축 비평가들이었는데 이는 1960년대까지 유행하던 엄격한 사각형 형태의 양식에 대한 반발로 나온 건축물에 대해 쓴 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포스트 모던'적 경향이 분화되지 않은 과거의 예술을 소생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른 시대, 다른 문화로
부터 양식과 이미지를 차용하는 예술은 모두 '포스트 모던'의 자격을 얻는다.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가들의 또 다른 주된 특징은 모더니즘 문화와 사고 방식이 세워놓은 엄격한 지배의 틀을 거부하는데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소통이 불가능한 정치, 문화, 전문화의 영역을 깨뜨리고, 삶과 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예술에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끌여 들여 비판적으로 다룬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아직은 확정된 일관성 있는 체계는 아니며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욕망에 의해 촉발된 회의주의적이고 비판적인 의식이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즘의 폐허를 헤치고 나가며, 모더니즘의 부정이라는 가시적인 대안을 세우려 노력한다


<비디오아트>


비디오, 즉 텔레비전을 표현 매체로 하는 예술로 1970년대 전반부터 성행한 현대 예술의 한 경향이다. 비디오아트는 크게 나누어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예술적 가능성의 추구에서 생겨난 것과 형식주의적인 예술에 대한 반발에서 생겨난 것이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나 제작자보다도 감상자의 주체를 중시하는 정보의 개념에 기초를 둔 표현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비디오 아트는 아직 확실한 형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으로는 영화의 연장, 또 한편으로는 예술의 연장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거기에 공간이나 환경의 구성과도 결부되어 있어 어떤 방향에 더 가능성이 있으며, 또 어느 방향으로 귀착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비디오 아트는 현대예술의 새로운 장르로서 미술관이나 화랑 등에 전시되어 '움직이는 전자회화(電子繪畵)'라는 애칭으로 조용한 붐을 일으키고 있다.


백남준[백팔번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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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특징에 대하여.....내공팍팍

... 바로 현대미술에 대한 것인데요... 제가 질문을 하나하나 올리겠습니다.... 1. 현대미술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3.현대미술을 살펴보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봅시다...

현대미술에 대하여,,, >ㅁ<;;

제 숙 제 가 요 현 대 미 술 에 관 해 그 림 , 설 명 을 스 크 렙 해 오 는 거 든... 국립현대미술관 http://www.moca.go.kr/ http://www.moca.go.kr/Modern/modern1/exhibition/exhibition...

현대미술에 대하여..

1.현대미술 이란 어느 시기의 미술을 말하는지 쓰시오 2.현대미술의 특징 2가지를 쓰시오. 내공 30 겁니다. 내공냠냠,비방글 신고 오늘내로 부탁드립니다. 20세기이후의미술임

현대미술의 특징

... 70년대 현대미술에 대하여 유보적이기는 해도 긍정적인 견해도 더러 있다. 이일의 ⌜현대미술과 오늘의 한국미술-그 창조성과 모방성⌟에서는 “50년경까지의 우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