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화가 작품영역좀

유명한 화가 작품영역좀

작성일 2008.08.05댓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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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센트 반 고흐       앙리루소       피카소         이중섭

 

 작품영역좀 알려주세요 예를들어

(예) 빈센트 반 고흐 : 풍경화 등..

 

 혹시모르니까 작품이름도 알려드릴꼐요

 

 피카소 : 아비뇽의 아가씨들,게르니카

 이중섭 : 흰소

 빈센트 반 고흐 : 빈센트의 방,별이 빛나는밤,밤의 카페,해바라기

 앙리루소 : 경악,잠자는집시,뱀을 부르는 여인,시인의 영감

 

 


#유명한 화가 #유명한 화가 순위 #유명한 화가의 작품 #유명한 화가 되는 법 #유명한 화가의 그림 #유명한 화가 자화상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질문자인사 ㄳ합니다.

 

*이중섭 힘차고 강한 필치가 특징. <달과 까마귀>, <도원>, <흰소> 등 http://user.chollian.net/~papasmf2/mititle000.htm


KBS 위성 TV '인물한국사'에 2002년 4월 1일자로 '흰소의 화가-이중섭 편'이 방영

 

http://100.naver.com/100.php?where=100&id=128066

이중섭 [1916.4.10 ~ 1956.9.6] 서양화가.
 
호  대향(大鄕)
활동분야  예술
출생지  평남 평양(平壤)
주요수상  자유미협전 태양상(1937)
주요작품  《소》 《흰 소》
오산고보(五山高普) 졸업. 일본 도쿄문화학원[東京文化學院] 미술과 재학 중이던 1937년 일본의 전위적 미술단체의 자유미협전(自由美協展:제7회)에 출품하여 태양상(太陽賞)을 받고, 1939년 자유미술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1945년 귀국, 원산(元山)에서 일본 여자 이남덕(李南德:본명 山本方子)과 결혼하고 원산사범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6·25전쟁 때 월남하여 종군화가 단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신사실파(新寫實派) 동인으로 참여했다. 부산·제주·통영 등지를 전전하며 재료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를 화폭 대신 쓰기도 했다.

1952년 부인이 생활고로 두 아들과 함께 도일(渡日)하자, 부두노동을 하다가 정부의 환도(還都)와 함께 상경하여 1955년 미도파(美都波)화랑에서 단 한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후 일본에 보낸 처자에 대한 그리움과, 생활고가 겹쳐 정신분열병증세를 나타내기 시작, 1956년 적십자병원에서 간염으로 죽었다. 작풍(作風)은 포비슴(야수파)의 영향을 받았으며 향토적이며 개성적인 것으로서 한국 서구근대화의 화풍을 도입하는 데 공헌했다. 담뱃갑 은박지에 송곳으로 긁어서 그린 선화(線畵)는 표현의 새로운 영역의 탐구로 평가된다. 작품으로 《소》(뉴욕현대미술관 소장), 《흰 소》(홍익대학교 소장) 등이 있다.
 
이중섭 박물관 [李仲燮博物館] 

http://100.naver.com/100.php?id=772224 제주 서귀포시 서귀동

 

 

http://100.naver.com/100.php?id=759090
봄의 아이들
작가  이중섭 한국의 서양화가 (李仲燮:1916∼1956)의 작품.
종류  종이에 연필, 유채
크기  32.6×49.6㎝
제작연도  1953년
1953년에 그린 작품으로 《봄의 어린이》라고도 한다. 아이들은 이중섭의 작품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인데, 이것은 작가의 두 아들을 대상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천진무구한 대명사로서의 대상인 아이들은 그의 그림 속에서 주로 다른 소재와 함께 어우러져 나타난다.

이 그림은 아이들을 소재로 봄의 정경을 그리고 있다. 때는 봄으로, 땅속에서는 식물이 솟아나고 나무에는 꽃들이 만발해 있다. 봄 둔덕에는 개미가 나오고 꽃을 찾아 나비도 등장한다. 봄 언덕에 뒹굴고 있는 아이들은 봄에 취해 자연과 한몸이 되었다. 봄이라는 환상적인 시공간 속에 자연과 아이들은 서로 융화된 모습이다.

종이 위에 연필로 대상을 그리고 그 위를 엷게 유채안료로 덮었다. 이 같은 방법은 이중섭의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보이는 보편적인 방법인데, 종이 위에 연필로 대상의 윤곽선을 그리고 있어 이미지는 한결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윤곽선으로 이미지를 부각시킬 뿐 여기에 별다른 표현을 가하고 있지 않은 것도 특징적이다. 호흡이 일정한 선의 흐름을 엿볼 수 있으며, 차분하면서도 격조 있는 선의 리듬이 화면을 덮고 있다.

따사로운 봄날에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간결한 형과 색으로 나타낸 이 작품은 모든 대상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면서도 환상적인 정경을 자아낸다. 아이들이 엮어내는 동작과 표정에서 낙원의 느낌이 연상된다.


가족과 아이들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


 

 

바닷가의 아이들


 

물고기와 노는 세 어린이 http://cbingoimage.naver.com/data2/bingo_3/imgbingo_37/startjs1018/24551/startjs1018_25.jpg

물고기와 노는 두아이 http://cbingoimage.naver.com/data2/bingo_3/imgbingo_37/startjs1018/24551/startjs1018_24.jpg

물고기와 노는 네 아이 http://cbingoimage.naver.com/data2/bingo_3/imgbingo_37/startjs1018/24551/startjs1018_23.jpg

물고기를 안을 아이 http://cbingoimage.naver.com/data2/bingo_3/imgbingo_37/startjs1018/24551/startjs1018_22.jpg

 

도원


노는 아이


아이들과 물고기


http://blogfiles.naver.net/data2/2004/5/13/45/%B4%D9%BC%B8%BE%C6%C0%CC%BF%CD_%B2%F6.jpg
http://blogfiles.naver.net/data1/2004/5/13/44/%C0%CC%C1%DF%BC%B7.jpg

 

해초와 아이들


다섯 어린이

 

두아이와 물고기와 게


두어린 와 사슴


물고기와 게와 두어린이

 

물고기와 노는 세어린이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해와 아이들

 

http://blog.naver.com/0soulmate0.do?Redirect=Dlog&Qs=/0soulmate0/2263848
http://100.naver.com/100.php?id=763863
종류  종이에 연필과 유채
크기  32.6×49㎝
제작연도  1952∼1953년
작품의 크기는 세로 32.6㎝, 가로 49㎝이며, 한국의 서양화가 이중섭(李仲燮:1916∼1956)의 1952∼1953년 작품이다. 이중섭은 아이들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이러한 작품들에는 먼저 세상을 떠나보낸 큰아들 태성이가 천국에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과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잘 담겨져 있다.

커다란 태양이 아이들을 다 보듬어 안을 듯 자상한 미소를 짓고 있으며, 해를 에워싸고 아이들이 놀고 있다. 그 사이로 꽃들이 펼쳐져 있다. 해는 아이들의 표정과 마찬가지로 빙긋이 웃고 있는 모습으로, 해의 얼굴을 의인화하여 인격체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특히 이채롭다. 아이들은 해를 받들기도 하고 해를 에워싸고 공중을 유영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동작은 자유롭고 유연한 자세를 이루고 있다.

해와 아이들과 꽃의 일부는 붉은색으로 처리하고 나머지 부분은 푸른색으로 그렸다. 대상은 선명한 연필선으로 그리고 그 위에 유화물감을 엷게 칠하는 이중섭 특유의 표현법을 사용한 그림이다

 

http://blog.naver.com/doolyking.do?Redirect=Log&logNo=60004457227 

한국 근대미술 - 이중섭   블로그제목 : 생을 그리는 작업실   등록일: 2004-07-28
             
 () 이중섭 40년 그 짧은 예술의 삶   블로그제목 : †★*함께 하는 세상*★†   등록일: 2004-01-29  http://blog.naver.com/anhwp.do?Redirect=Log&logNo=702906             
 
박수근·이중섭, 미공개作 함께   블로그제목 : 공룡과 나비잠   등록일: 2004-03-16  http://blog.naver.com/nabigam.do?Redirect=Log&logNo=100001313747 
이중섭은 담배를 싸는 은박지를 긁어 그린 뒤 물감을 메워 완성한 그림(양은박지화)으로 일가를 이뤘다. 하지만 물자가 부족한 피란지에서 가난한 화가가 발명했을 이 독특한 영역을 제대로 인식한 연구 성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처음 공개된 이중섭의 유화 '봄'과 '욕지도 풍경'은 그의 친구였던 시인 김광균(1914~93)이 지니고 있던 것으로 말년에 통영에 머물며 그린 풍경화다. 지상에서 얻을 수 없었던 낙원에 대한 화가의 동경이 소박하게 드러나 있다.

 

 화가 이중섭  - 서양화가 이중섭의 생애, 관련기사, 증언 및 평가 수록, 망월, 소묘, 반우반어, 두마리 동물 등 주요작품 해설. 
      http://bull.new21.org/      
 
 
 

 이중섭 이미지모음  

 

http://imag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image&query=%C0%CC%C1%DF%BC%B7

 

http://imag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image&query=%C0%CC%C1%DF%BC%B7

 

    

"떠받으려는 소"로 흰소와 비슷한 시기인 1953년경에 종이에 유채로 그려진 작품

작품명 : 이중섭의 ‘흰소’
종류 : 나무판에 유화채색작품
시기 : 1954년 무렵 제작
화폭의 크기 : 30×41.7cm
소장 : 홍익대 박물관에서 소장

   


굵고 짧게 그어진 흰 선이 두드러져 보이는 작품이다. 흰 선은 마치 살아 있는 소가 거친숨을 내쉬며 분노하는 듯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다. 머리 부분에서 보인 이러한 절정은 목덜미를 지나 꼬리와 생식기를 거치면서 힘이 분산된다. 이 그림에서도 서예적인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그림 속의 소는 아무도 공격하지 않지만, 건드리면 즉각 반격하여 분노를 토할 듯하다.

 http://novel.joyedu.net 한국을 빛낸 역사인물 102인
 

 주일녕  - 고흐, 이중섭 시대별 작품갤러리, IIS, ASP 기초강좌 수록. 
 
   http://ilo.82.net      
 

 

 Innis의 그림이야기  - 천경자, 이중섭, 박수근, 샤갈 등 화가 약력, 갤러리 수록. 
 
     http://www.myinnis.com      
 

 

 deepen  - 한국현대미술작가 김환기, 박래현, 박생광, 박수근, 이중섭, 김창열, 오윤, 유영국, 박항률 작품감상 제공. 
 
     http://deepen.namom.net      
 
 

 윤영희 - 나무향기 가득한 집 - 이생진, 김재진, 고은별, 이상, 하덕규, 원성스님, 이용채의 시와 Vincent van gogh, 이중섭 그림 수록.  
   http://my.netian.com/~treestory 

 

http://www.shinheesung.com.ne.kr/ 이중섭 화가의 작품의 특징 중 전통과 모더니티란 아마도 소재나, 표현기법, 그 결과에서 느껴지는 전통적 요소와 마찬가지 표현기법이나 소재, 제목 등에서 느껴지는 모더니티 일텐데 그 외에도 작가의 개인적인 희망이나, 민족에 관련된 표현들도 포함될 것이다.

먼저 '민족화가'로서 이중섭은 합당한 바, 그 이유는 그 소재면 에서는 소와 게, 닭 등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과 우리의 풍경을 선택했으며, 꾸준하게 우리미감과 우리 기법, 우리의 분위기를 담아 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화가 이중섭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조형적 특징을 계승(〈투계〉,〈환희〉)했으며, 우리 나라 전통예술인 서예의 필체를 연구했음이 역력하다 -〈달과 까마귀〉에서 까마귀를 그려낸 표현은 서예의 비백과 같고, 두개의 작품 각〈흰소〉에서는 서예를 하듯 소를 그려내는 그의 필력에 놀랄 수밖에 없고, 추사체의 필 획을 보는 듯하다.

〈해와 아이들〉에선 분청사기의 상감기법을 단아하게 그 외형을 본떠 계승한 흔적이 보이며,〈손〉에서는 전통 종교라 불릴 수 있는 불교의 냄새마저 풍기고 있고,〈달밤〉으로는 전통적으로 쓰이던 우리의 소재인 달을 우리네 미감으로 그 표현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제 그와는 반대로 화가 이중섭의 작품이 품고있는 근대적 성격을 살펴보면 〈파란게와 어린이〉에서는 게를 연출함에 있어 초현실주의적 연출을 그림 전체에서의 거칠게 표현한 우리의 미감에 융화시키려는 노력이 보이고,〈돌아오지 않는 강〉등 당시 마를린몬느가 출현한 영화의 제목을 빌려쓰기도 하였으며, 작품의 재료(유화 등) 역시 근대적인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독창적인 표현기법으로 연필구사법이나 은지에 그린 그림 등을 들 수 있다.

전통적 측면과 모더니티 측면만을 고집하다보면 뭔가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이중섭이란 작가가 작품에서 전통과 모더니티만을 얘기하려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작품〈섶섬이 보이는 풍경〉이나〈서귀포의 환상〉등에서는 그가 안도할 수 있었던 공간인 제주도를 표현한 것이며, 소재 '소' 는 우리민족이 겪어야 했던 현실이나, 작가 자신의 심정, 고향의 감회 등을, '닭'으로는 자신이 키우고 즐겨 먹었던 동물로서 자신이 익숙한 부분이나,〈부부〉에서는 '교미'를 표현함으로 '사랑의 언어'로써 표현하기도 한다.

 

작품〈구상네 가족〉에서는 헤어져 있는 자신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친구인 구상의 가족을 그림으로서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소년〉이나〈세 사람〉으로는 식민지 우리 민중이 내면을 표현했고 〈부부〉-1954 는 남북한의 문제를 그렸다고 작가가 직접 언급했다고 한다.

이렇게 화가 이중섭은 전통을, 모더니티를, 자신의 개인적 얘기를, 그리고 민족의 얘기를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이중섭의 작품은 낡은 판자집안에 누워 담배를 피며 창조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판잣집 화실〉

http://bull.new21.org/story/story02-02.htm 이중섭의 작품들을 반복적으로 감상하다 보면 뚜렷하게 구분되는 대조적인 세계를 만나게 된다.

즉 소그림과 군동화의 대조적인 세계이다.

이중섭은 소의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어린아이의 화가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그는 소보다 더 많은 어린아이를 그렸다.

 담배종이에 그린 은지화의 상당부분도 군동화이다.

그런데 이들 두 주제군의 작품들은 동일한 화가의 작품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대조적이다.

특히 소그림과 군동화는 이중섭 예술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이다.

 따라서 이 두 주제군의 작품에 나타난 대조적 특성을 예리하게 이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그림과 군동화의 대조적 특성에 관심을 집중할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소재의 숫자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지만, 이중섭의 소는 대개 한마리이면서 화면 전체를 압도하며 등장한다.

그것도 부족하여 [황소]의 경우처럼 소 얼굴만 나타나기도 한다.

이련현상은 이중섭의 인식 체계 속에서 '소는 본래 한바리다'라는 상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중섭의 소그림은 매우 강렬하다.

언제나 굵은 선과 강렬한 색상과 터치가 강조된다.

또한 소그림에는 어떤 잡물도 끼여들 수가 없었다. 이중섭은 '한국의 소를 그려야 한다'는 자의식이 매우 강했는데, 그의 소그림에는 코뚜레.쟁기.마차와 같은 한국소의 필수품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중섭에게 있어 소는 소 자체만이 관심 대상이었다.

시인 고은은 이중섭 소그림의 이런 특성을 가리켜 "소의 종교"라고 일컬었는데, 그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이중섭의 소는 본연의 모습으로 오로지 한마리로만 존재해야 하는 절대성과 유일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http://bull.new21.org/story/story02-01.htm

http://opendic.naver.com/100/entry.php?entry_id=76043

http://www.cde.hs.kr/art/e35.htm
이중섭은 가장 한국적인 작가인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화가이다.

이중섭은 평양에서 태어나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일본 도쿄문화학원 미술과 재학 중, 1937년 일본의 자유 미협전에 출품하여 각광을 받고, 1945년에 귀국하여 원산사범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52년 부인이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가자, 그는 전국을 떠돌며 부두노동 등을 하다가 전쟁이 끝나자 서울로 올라와 1955년 미도파 화랑에서 단 한 번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나 계속된 생활고와 가족들과의 생이별을 견디지 못하고, 1956년 적십자병원에서 40의 나이로 쓸쓸히 숨졌다.
그의 작풍은 야수파적인 강렬한 색감과 선묘 위주의 독특한 조형 등 서구적인 표현이지만, 향토적인 숨소리와 꿈을 표현하여 한국적이면서도 웅장하고 무한한 세계를 내포하고 있다.

그의 작품의 소재는 주로 소, 닭, 어린이, 가족 등 일상성을 띠고 있으면서 시정이 넘치는 것들이다. '소', '흰 소', '투계', '집 떠나는 가족', 그리고 담뱃갑 속의 은지에 눌러 그린 수많은 은지화들이 대표작들로 남아 있다.

그의 예술세계를 이루는 기반은 철저하게 자신의 삶으로부터 연유하고 있다.

생활고 속에서 처자마저 일본에 보내고 전국을 떠돌며 외롭게 제작한 고통의 산물들이었던 그의 작품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 새롭게 조명과 재평가를 받게 된다.

생전의 많은 인간적인 에피소드와 강한 개성이 담긴 작품들로 인해, 그의 삶과 예술은 이제 대중적으로 거의 신화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http://www.mct.go.kr/uw3/dispatcher/korea/culture_room/person_v.html?year=1999&month=01


이중섭대해서구요 딴사람들은인터넷에 피카소의영역치면나와서않햇어여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피카소

Guernica 게르니카

 스페인 내란 중 파시스트 독재자인 프랑코 총통은 나치의 폭격을 동원하여 바스크 지방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폭격하였다. 이들은 3시간 동안이나 폭탄을 퍼부어 2천명이 넘는 시민을 학살하고 수천명의 부상자를 만들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스페인 사람이었던 피카소는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폭 약7.8m, 높이 3.5m의 이 벽화를 한 달만에 완성하였고 이 작품은 곧 전쟁의 비참함을 다룬 작품 중 가장 힘에 넘친 걸작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피카소는 "그림이란 집안을 장식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을 공격하고 방어하는 전쟁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피카소는 강력한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일정한 디자인의 요소들을 차용하고 있다. 그는 절망감을 표현하기 위해 흑, 백, 회색의 색상만을 사용하고 있으면 시민들이 당한 폭력을 연상시키기 위해 인물들을 의도적으로 왜곡되게 표현하였다. 입체주의적인 선과 산산이 분할된 면들은 공포와 혼란상을 잘 나타내 주고 있으며 피라미드 구성은 이것들을 통합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화가는 우의적인 인물들로 이 사건의 공포를 암시하고 있는데, 목이 베인 군인, 죽은 아이를 품은 어머니의 절규 등이 그러하다. 또한 피카소가 사용한 상징들 중에서 부러진 칼을 꼭 쥐고 있는 잘린 팔은 패배를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상징들에 대해 피카소는 직접 언급한 것은 다음의 말뿐이다.

"황소는 파시즘의 상징은 아니나 잔인함과 어둠을 의미한다. 말은 민중을 상징한다."

 

The Blind Man's Meal (1903) 장님의 식사

이 당시 그의 작품의 주제 중 하나는 '실명(失明)'이었다. 피카소는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해 눈 먼 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깊은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있었고 게다가 심한 성병까지 앓고 있었다. 낭만적 파리 생활과는 또 다른 얼굴인 궁핍한 삶의 잔인한 고통과 밑바닥 삶의 근원적 외로움과 소위 민중적 삶의 비참함을 누구보다 몸소 체험하며 그 고통을 짙푸른 청색으로 표현했다

 

왼쪽 -Les Demoiselles d'Avignon (1907)

아비뇽의 처녀들

 

최초의 진정한 20세기 미술 작품이라 불리우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거의 500여년을 내려오는 서구 미술의 르네상스적 전통을 마감한 문제작이다. 조토와 마사초 이후로 가장 급진적인 혁신을 보여준 이 작품은 미술에 대한 고정 관념들을 산산히 부수고 있다. 다섯명의 나부를 보면 눈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거나 귀가 변형되어 있거나 사지가 제자리에 있지 않아서 해부학적으로 엉망이다. 피카소는 또한 원근법도 파괴하여 차츰차츰 뒤로 후퇴하는 대신 공간을 들쑥날쑥한 면들로 분할하였다. 심지어 한 인물의 눈은 정면을 바라보는데 그 얼굴은 측면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피카소는 또한 몸통을 작은 면들로 분할하였는데 어떤 비평가는 이를 보고 "부서진 유리의 파편같다"고 평하였다.
이 여인들의 극도로 추한 모습은 그이 화실을 방문하여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의 반감을 샀다. 마티스는 이 그림을 장난으로 그린 것으로 생각했고 브라크는 "불을 뿜으려고 등유를 마신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피카소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현대 소설의 작가 제르트뤼드 스타인은 "모든 걸작들이 이 세상에 선보일 때는 이와 같이 추한 모습을 하고 있기 마련이다. 이 추한 모습은 화가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투쟁한 흔적이다."라고 이 그림을 옹호했다.
피카소는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고 알고 있는 것을 그린다."고 말했다. 세잔의 기하학적인 패턴에 영향을 받아 피카소는 사물의 진실된 외형을 다시 점으로 분해해서 앞, 뒤, 전방, 후방에서 동시에 분석하고 있다.

오른쪽-La Vie (1903) 인생

그림에 나오는 남자는 피카소의 친구입니다. 벌거벗은 여자는 그 남자의 사랑하는 여인 이었는데 그 여자는 피카소를 사랑하게 되고 남자는 자살을 하게 됩니다. 피카소의 절친한 친구 였던 남자를 추모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The Dream(1932) 꿈

피카소는 우연히 금발 머리의 젊고 아름다운 한 처녀, 마리 테레즈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그리스 고전 조각에서 볼 수 있는 똑바른 콧날과 푸른 회색 눈을 가진 아주 이상적 미인이었다. 테레즈는 피카소가 다가가서 자신을 소개했을 때, 당시 이미 유명한 화가였던 그를 알지 못할 정도로 미술에는 문외한이었으며 대화가 통하는 상대는 못되었던 듯 하다. 그러나 피카소는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6개월 동안 구애하였으며 결국 자신의 집 근처에 비밀리에 거처를 마련하여 그 후 몇 년간 열정적으로 이 여인을 소재로 한 작품을 그렸다.

 

앙리루소

 
 
#버팔로를 습격한 호랑이


 

 
#나 자신


 

 
#땅꾼


 

 
#사육제의밤


 

 
#시골결혼식


 

 
#잠자는집시여인


 

 
#처녀림의 원숭이
 
#풋볼하는사람들


 

 
 
고흐고흐 당대의 화가>

고흐 당시는 화풍의 과도기적 시대였습니다. 고흐과 같이 개성파 화가들에겐 더없이 좋은 시기였죠. 고흐는 고갱과 함께 아를에서 거주하기도 했습니다. 고갱은 빈센트가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르는 등 정신불안과 같은 증세를 보이자 그를 떠났습니다.

고갱은 원주민들의 생생한 삶을 그렸습니다. 또한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그렸지요. 야만적인 그림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그의 그림에는 '가공되지 않은 원시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고갱이 빈센트가 그림그리는 것을 그린 거죠. 이 그림은 고갱이 빈센트를 위에서 내려다 보는 듯이 그린 그림입니다. 빈센트는 이 점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었죠. 그래서인지 빈센트의 팔이 굉장히 부자연스러워보입니다.

이 그림은 고갱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황색의 그리스도>

 

그리고 모네의 작품. 모네는 빛의 화가죠,


고흐는 모네의 점찍는 기술(정확히 뭐라 칭하는 지는 모르겠구요)에 감동을 받고 그린 그림 한 점이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네요.

 

또한 마네, 세잔

 

<고흐의 작품>

고흐의 작품은 꽤 많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별이 빛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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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해바라기에 대한 그림은 이것 말고도 꽤 많습니다. 그는 해바라기 그림을 즐겨 그렸지요.)

너무 작네요..

이 해바라기 그림 말고 배경이 노란 해바라기 그림이 있습니다. 전 해바라기 그림 중에선 그걸 제일 좋아해요.

 

그리고 빈센트의 방.


 

감자먹는 사람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엄청난 양의 스케치를 해야 했습니다. 빈센트는 엄청난 노력파였죠. 이그림에 나타난 실내는 그 당시 시골 농가의 모습과 무척 닮아 있습니다. 몇 달에 걸쳐 이 그림을 완성한 빈센트는 판화로 찍어 동생과 삼촌에게 보내지요. 그러나 당대의 한 유명한 화가가 이 그림은 아무런 사전준비 없이 그린 티가 역력하며, 팔이 너무 길어 신체 비례가 맞지 않아 원숭이처럼 보인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빈센트는 몹시나 속이 상했지요. 사실 팔을 길게 그리고 손을 크게 그린 건 그들의 삶이 이 팔과 손으로 인해 유지됨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노란색조로 훈훈함과 따뜻함, 그리고 소외된 자들에게의 연민을 드러냈습니다.

 

 


 

밤의 카페


 

아를의 도개교


 

측백나무와 별과 길

 

이 여자분.. 그 카페의 연인입니다











 이중섭.망월

이 그림은 화가 이중섭이 그린 망월 이라는 작품이다.

둥근 달은 독립을 상징하며, 한쫀 속을 하늘을 향해 벌리고 달을 바라보는 얼굴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며, 머리가 반쯤 잘린 소는 조국을 상징한다고 한다.

3.닭

["달과 까마귀"]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유명한 화가 작품 영역은....

 

고흐;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피카소;게르니카

이중섭;흰소...

(그림도 없고, 내용도 적은 이해바람....)

ㅎㅎㅎ

유명한 화가 작품영역좀

빈센트 반 고흐 앙리루소 피카소 이중섭 작품영역좀 알려주세요 예를들어 (예)... htm KBS 위성 TV '인물한국사'에 2002년 4월 1일자로 '흰소의 화가-이중섭 편'이 방영...

유명한 화가분들은 본인작품을 어떻게...

제 아는 지인이 진짜 유명한 화가이신데요..이름은... 작품수가정말 많고 인지도좀있으신 화가분들은 어떻게 본인... 걱정이 되네요. 사실 무슨 사고가 나서 불에타기라도...

외국의 유명한 화가들이랑 작품 ...

... 다른 나라의 유명한 화가들이랑 작품 조사예요. 근데 찾아봐도 마땅한 정보가 없네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말고 다른 사람들도 해주세요. 유명한 화가들이고요. 뭐...

유명한화가 작품내공75!

... "다음 시간까지 유명한화가 작품 한 개 그리고 설명적어와!"하고요. ;;;;;;;;;;;;;;;;;;;;;;;;;;;;;;;;;;;;;;;;;;;;;;;;;;;;;;;;;;;;;;;;;;;;;;;;;;;;;;;;;;;;;;;;;;;;;;; 아무리 인터넷을...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 엄청급함 (내공80검)

... 유명한 화가작품2개 이상 찾아주시고, 그림의 작가이름, 그림제목, 작품의종류(입체,평면)특징,생각이나느낌 올려주삼......... 빨리 올려주시면 감사하겠네요.......

세계유명한 화가작품들[내공 30]

세계 유명한 화가에 대한 설명 그 화가작품의 특징 그 화가작품을 올려주세요 이렇게 정리 해주세요 글도 정리해 주시고요 정말 존경할...

,유명한 화가(네오나르다빈치등)의 작품...

유명한 화가(네오나르다빈치등)의 작품 제작 방법좀요 그리고 그화가유명 한 그림좀 부탁 매너리스트 예술은 복잡한 자세안에 근육, 묘사와 복잡한 구성에 의해 성격을...

좋은 미술 작품이나 유명한 화가 ...

... 저 자신 많이 다스려질 것 같고, 마음도 편안해질 것 같고, 즐거워질 것 같아서 요..ㅎ 좋은 미술 작품이나 유명한 화가 알려주세요. 부탁해요~ ㅎ 그리고 이 외에도 나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