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하회 마을에 대해내공 100검...

안동하회 마을에 대해내공 100검...

작성일 2008.05.19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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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 마을에 대해 알려 주셍요....

내공 100검...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회마을은 전래의 문화유산이 잘 보존된 마을입니다.마을전체가 중요 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된 마을로서, 국보, 보물, 중요민속자료 등으로 지정된 여러 유형·무형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징비록은 임진란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며, 하회탈과 고택 등은 민속문화에 관한 중요한 자료입니다.  



종목 분류 명칭
국보 121호
민속 공예류
하회탈 및 병산탈
국보 132호
원고본
징비록
보물 160호
활자본류기타
류성룡종손가문적11종 22점
보물 460호
고문서류기타
서애유물 3종 27점
보물 306호
고가
안동양진당
보물 414호
충효당
사적 260호
서원(사적)
병산서원
중요민속자료 84호
정사 / 가옥
북촌댁
중요민속자료 85호
원지정사
중요민속자료 86호
빈연정사
중요민속자료 87호
작천고택
중요민속자료 88호
옥연정사
중요민속자료 89호
겸암정사
중요민속자료 90호
남촌댁
중요민속자료 91호
주일재
중요민속자료 177호
하동고택
중요민속자료 122호
민속마을
하회마을
중요무형문화재 69호
연극
하회별신굿탈놀이
보호수
노거수
삼신당 느티나무
비지정 문화유산
화천서원 / 정려각 / 상봉정 / 기타 고택 / 서낭당 등
 
 
   
  태백산에서 뻗어온 지맥이 화산(花山)과 북애(北厓)를 이루고, 일월산에서 뻗어온 지맥이 남산과 부용대(芙蓉臺)를 이루어 서로 만난 곳을 낙동강이 S자형으로 감싸 돌아가므로, 하회마을을「山太極 水太極 - 산과 물이 태극 모양」또는「蓮花浮水形-물에 떠있는 연꽃 모양」이라 부른다. 풍수지리에 따른 마을의 주산(主山)을 화산(花山)이라 부르고, 부용대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화천(花川)이라 함은 연화(蓮花)에서 비롯한 이름이라 한다.
   
 
   
  하회마을의 풍산류씨의 세거 이전에는 허씨(許氏)와 안씨(安氏)가 먼저 세거하였다고 한다. 하회마을에는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이란 말이 전래되고 있으며, 하회탈의 제작자가 「허도령」이었다는 구전(口傳) 및 강건너 광덕동의 건짓골에 허정승(許政丞)의 묘가 있어 지금도 해마다 류씨들이 벌초를 하고 있으며, 숭정(崇禎)15년(1642)의 동원록(洞員錄)에는 류씨 이외에도 극히 적은 가구의 허씨와 안씨(安氏)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풍산류씨는 본래 풍산 상리에 살았으므로 본향(本鄕)이 풍산(豊山)이지만, 제7세 전서(典書) 류종혜(柳從惠)공이 화산에 여러 번(가뭄,홍수,평상시) 올라가서 물의 흐름이나 산세며 기후조건 등을 몸소 관찰한 후에 이곳으로 터를 결정했다고 한다.
입향에 관하여「나눔」의 전설이 있는데, 집을 건축하려 하였으나 기둥이 3번이나 넘어져 크게 낭패를 당하던 중 꿈에 신령이 현몽하기를 여기에 터를 얻으려면 3년 동안 활만인(活萬人)을 하라는 계시를 받고 큰고개 밖에다 초막을 짓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음식과 노자 및 짚신을 나누어주기도 하고, 참외를 심어 인근에 나누어주기도 하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활인(活人)을 하고서야 하회마을에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입향후 풍산류씨들은 계속된 후손들의 중앙관계에의 진출로
점점 성장하였으며, 입암(立巖) 류중영(柳仲영), 귀촌(龜村) 류경심(柳景深),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 등의 조선중기에 배춣한 명신들로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
하회마을의 전래놀이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을 위한 놀이와 선비들을 위한 놀이가 병존하엿다.
하회별신굿탈놀이 ------ 굿을 겸한 탈놀이 중요무형문화재 69호
하회선유불꽃놀이 ------ 시회(詩會)를 겸한 불꽃놀이
   
  집집마다 대문에는 입춘첩(立春帖)이 붙어있다.
   
  하회에서는 오늘날에도 전통적으로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이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인 충효당에서 써 붙이는 춘첩(春帖)을 예로 보면 다음과 같다.

○ 國泰民安, 歲和年豊(솟을대문의 좌우)
○ 泰回, 三陽(중간 좌우)
○ 取之無禁, 充隘露積(고방문)
○ 敬天愛人(통방문)
○ 積於外(뒤주)
○ 靜坐看書一昧長, 忠孝之外無事業(사랑문좌우)
○ 勝友來雲, 以文會友(사랑방 측문 좌우)
○ 以文會友, 學優登仕(우측 사랑방문)
○ 敢告己未立春(사당문),
○ 立春大吉, 萬事亨通(일각문), 萬壽無彊, 財數大通(祖母房門 우좌)
○ 笑門萬福來(祖母房 후문)
○ 萬事如意(모방, 新婦房 앞문)
○ 靜坐看書一昧長(新婦房 뒷문)
○ 金帛陳陳(祖母房 다락문)
○ 降福洋洋(안방 옆문) ○ 萬堂和氣(안방옆문 중앙)
○ 笑門萬福來, 家和萬事成(안방문 우좌)
○ 薪永自足(부엌기둥)
○ 瑞雲祥日, 建陽多慶(부엌문 우좌)
○ 甘且旨(장광문)
○ 充於內(도장문)
○ 立春大吉, 建陽多慶(안문 우좌)
○ 酒肴陳陳(안방 다락문)
○ 用之不竭(곳간문)

춘첩은 집집마다 문구가 다른 경우도 있으나 그 대의(大意)는 나라와 집안의 안녕(安寧), 풍농(豊農), 번영(繁榮), 소재(消災), 길상(吉祥), 장수(長壽), 화친(和親), 등과(登科) 등을 기원한다.
http://www.hahoe.or.kr/ 더 알고싶음 여기로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안녕하세요 ^^;;

 

자세히는모르지만 아는것만 알려드리겠씁니다 ^^

 

하회마을 하면

볼거리가 하회별신굿놀이죠 또 도산 서현이나. 하회탈 민속 박물관등이있습니다

 

제가알기로는 ;; 하회마을  어느 골목에 느티나무 한그루 있다네요 ;; 그 나무에 소원을 적어 넣은 풍속도 있답니다 !!  느티나무 이름이 ???? 느티나무 인데 ;; 잘모르겠네요 ^^

 

또 하회마을하면

 

먹거리죠 ^^ ;;

 

먹거리 중에서 제일 유명한게 두가지있습니다 안동간고등어, 안동식혜입니다 안동에 가면 꼭 먹어줘야 죠 !!

 

헛제밥? 인가 ㅋㅋ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하회탈및병산탈,
종    목 국보  제121호
명     칭 하회탈및병산탈(河回탈및屛山탈)
분     류
수량/면적 13개
지 정 일 1964.03.30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국립중앙박물관 보관)
시     대
소 유 자 하회병산동민
관 리 자 국립중앙박물관
일반설명 | 전문설명
경상북도 안동군 하회마을과 그 이웃인 병산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탈로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탈놀이 가면이다.

하회탈로는 11개가 전해지는데 주지 2개,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할미 탈이 있다. 이밖에 총각, 별채, 떡다리 탈이 있었다고 하나, 분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병산탈로는 2개가 남아 있다.

한국의 가면은 대개 바가지나 종이로 만든 것이 많아서 오래 보존된 예가 드물며, 그 해 탈놀이가 끝난 후 태워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하회탈과 병산탈은 드물게 보이는 목조탈이며, 격식과 세련됨을 갖춘 유물이다.

원래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거행되는 별신굿에 쓰이던 것이며, 마을마다 따로 가면들을 보존해 왔을 뿐만 아니라 탈에 대한 금기나 제약이 매우 엄격했다. 이 탈의 재료는 오리나무이며 그 위에 옻칠을 두겹 세겹으로 칠해 정교한 색을 내고 있다. 턱은 따로 조각되어 있어서, 아래턱을 노끈으로 달아 놀이할 때 움직이게 함으로써 생동감을 주도록 되어 있다. 하회 가면 중에서도 특히 양반과 백정은 세련된 입체감과 표현기교를 보여주고 있다.

이 탈들의 제작자와 제작연대는 알 수 없으나 마을에는 허도령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다만 하회마을에 살았던 사람에 대한 기록으로 허씨가 살았고, 안씨 집안이 들어온 후, 유씨가 조선 전기에 살았다고 기록이 되어 있어 대체로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안동하회마을,
종    목 중요민속자료  제122호
명     칭 안동하회마을(安東河回마을)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마을
수량/면적 5,288,008㎡
지 정 일 1984.01.10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국유,사유
관 리 자 안동시
일반설명 | 전문설명
풍산 유씨의 씨족마을로 유운룡·유성룡 형제 대(代)부터 번창하게 된 마을이라고 한다. 낙동강 줄기가 S자 모양으로 동·남·서를 감싸 돌고 있고 독특한 지리적 형상과 빼어난 자연경관을 갖추고 있다. 유씨가 집단 마을을 형성하기 전에는 대체로 허씨, 안씨 등이 씨족으로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유의 하회별신굿탈놀이로 유명한 이 마을은 크게 남촌과 북촌으로 나눌 수 있으며 유서 깊고 제법 크기를 갖춘 많은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있다. 특히 별신굿에 쓰이던 탈들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제작 연대를 고려 시대로 추정하고 있어 마을의 역사가 뿌리 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대표적 가옥이라 할 수 있는 양진당(보물 제306호), 충효당(보물 제414호), 북촌택(중요민속자료 제84호), 남촌택(중요민속자료 제90호), 옥연정사(중요민속자료 제88호), 겸암정사 (중요민속자료 제89호) 등 많은 건축들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생활상과 발달된 집 구조 등을 연구하는데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더할 수 없이 멋스러운 경치에 민속과 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정신 문화의 연구·보존·발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마을이다.

안동하회마을만송정숲,
종    목 천연기념물  제473호
명     칭 안동하회마을만송정숲(安東 河回마을 萬松亭 숲)
분     류 자연유산 / 천연기념물/ 문화역사기념물/ 역사
수량/면적 476,430㎡
지 정 일 2006.11.27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1164-1 등
시     대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 안동시(안동시장)
일반설명 | 전문설명
만송정 숲은 낙동강이 하회마을을 휘돌아 흐르며 만들어진 넓은 모래 퇴적층에 위치하며, 조선 선조 때 문경공 류운용이 마을 맞은편 부용대의 기를 완화하기 위하여 1만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조성한 숲이다.

하회마을, 백사장, 낙동강 그리고 부용대 등과 어우러져 경관이 뛰어난 마을숲으로 경관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크다.

하회별신굿탈놀이,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명     칭 하회별신굿탈놀이(河回別神굿탈놀이)
분     류 무형유산 / 전통연행/ 연희/ 탈놀이
수량/면적
지 정 일 1980.11.17
소 재 지 경북 경북전역 
시     대
소 유 자
관 리 자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일반설명 | 전문설명
별신굿이란 3·5년 혹은 10년마다 마을의 수호신인 성황(서낭)님에게 마을의 평화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굿을 말한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는 약 500년 전부터 10년에 한번 섣달 보름날(12월 15일) 내지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무진생(戊辰生) 성황님에게 별신굿을 해왔으며 굿과 더불어 성황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하여 탈놀이를 하였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각시의 무동마당·주지마당·백정마당·할미마당·파계승마당·양반과 선비마당·혼례마당·신방마당의 8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놀이를 시작하기 전 대내림을 하는데, 정월 초이튿날 아침 성황당에 올라가 당방울이 달린 내림대를 잡고 성황신을 내리면 당방울을 성황대에 옮겨 달고 산에서 내려온다. 성황대와 내림대를 동사 처마에 기대어 세우고 비로소 놀이가 시작된다. 등장인물로는 주지승·각시·중·양반·선비·초랭이·이매·부네·백정·할미 등이 있다. 파계승에 대한 비웃음과 양반에 대한 신랄한 풍자·해학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제사의식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특히 각시탈은 성황신을 대신한다고 믿어 별신굿 외에는 볼 수 없고, 부득이 꺼내볼 때는 반드시 제사를 지내야 한다. 또한 탈을 태우며 즐기는 뒷풀이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놀이에 사용되는 탈은 주지탈 등을 포함하여 모두 10종 11개로 오리나무로 만들었으며 옻칠과 안료를 두세겹 칠하여 색조의 강도를 높였는데, 원본은 1964년 하회탈 및 병산탈(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탈놀이의 반주는 꽹과리가 중심이 되는 풍물꾼이 하며 즉흥적이고 일상적인 동작에 약간의 율동을 섞은 춤사위로 이루어진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우리나라 가면극의 발생이나 기원을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하회북촌택,
종    목 중요민속자료  제84호
명     칭 하회북촌택(河回北村宅)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일곽
지 정 일 1979.01.23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706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유영하
관 리 자 .
일반설명 | 전문설명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동족마을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민속·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촌이다. 그 중 북촌택은 양진당(보물 제306호)과 함께 하회 북촌을 대표하는 규모가 큰 집으로 북촌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경상도 도사를 지낸 유도성이 철종 13년(1862)에 지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한 것이다.

크게 안채, 사랑채, 별당채, 대문간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문을 들어서 앞에 보이는 건물이 ㅁ자형 몸채이며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별당채이다. 사당은 별당채를 지나 안쪽에 별도로 담장을 둘러 지어 놓았다.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몸채는 완벽한 ㅁ자 평면을 가지고 있다. 앞쪽이 사랑채로 오른쪽에 큰 사랑, 왼쪽에 작은 사랑을 두었으며 각 끝칸에 대청을 만들었다. 큰 사랑에는 ‘화경당(和敬堂)’이라고 쓴 액자가 걸려 있는데 한석봉의 글씨라고 하며, 뒤쪽 방은 서재이다. 작은 사랑 대청 뒤편으로 1칸 방이 부엌 아랫방과 연이어 있다.

안채는 높은 축대 위에 세웠으며 기둥도 매우 높이 올렸다. 안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과 안방, 오른쪽에 아들과 며느리의 방으로 쓰는 건너방(윗상방)이 있다. 안방은 田자 구조로 함경도 지방의 형식을 띠고 있고 부엌은 3칸이 넘는 크기로 2칸의 아랫방과 연이어 있다. 건너방 앞에 툇마루와 연결된 방(아랫상방)은 살림을 물린 노부모가 사용하는 방이다.

별당채는 앞면 7칸·옆면 2칸 크기로 부엌, 온돌방, 대청, 마루방 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러 액자가 걸려 있고 건축 구조상 많은 장식으로 꾸며 지은 집이다. 별도로 마련된 사랑채는 3문을 두고 평범하게 지어 놓았다.

하회마을 북촌의 큰 집 중 하나이며 양반집의 대표가 될 수 있는 본보기로서 귀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하회원지정사,
종    목 중요민속자료  제85호
명     칭 하회원지정사(河回遠志精舍)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2동
지 정 일 1979.01.23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712-1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유영하
관 리 자 .
일반설명 | 전문설명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동족마을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민속·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촌이다.

이 건물은 서애 유성룡 선생(1542∼1607)이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것으로, 자신이 병이 났을 때 요양하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 선조 6년(1573)에 지었다고 하며 북촌의 북쪽에 강을 향해 정사와 누정이 자리잡고 있다.

정사는 앞면 3칸·옆면 1칸 반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왼쪽 끝칸에 대청을 두고 나머지 2칸은 온돌방을 두었다. 앞쪽으로는 반칸짜리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누정인 ‘연좌루’는 앞면·옆면 2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누마루 사방에는 난간을 둘렀으며 강가의 소나무 숲과 강 건너편 부용대, 옥연정사(중요민속자료 제88호) 일대가 바라다 보인다.

유성룡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은거할 때 자주 쓰던 별장으로 유서 깊은 곳이다

하회빈연정사,
종    목 중요민속자료  제86호
명     칭 하회빈연정사(河回賓淵精舍)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1동
지 정 일 1979.01.23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727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유상붕
관 리 자 .
일반설명 | 전문설명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동족마을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민속·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촌이다.

이 건물은 퇴계 선생의 제자로 원주목사를 지낸 겸암 유운룡 선생(1539∼1601)이 서재로 사용하던 집이다. 조선 선조 16년(1583)경에 지었다고 하며 하회마을 북촌의 서북편 경암정과 부용대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집 이름은 부용대 절벽 아래 깊은 곳을 ‘빈연’이라 부른데서 따왔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왼쪽에 앞면 1칸·옆면 2칸의 온돌방을 두고 나머지는 대청으로 꾸몄다. 대청 앞면 2칸은 문을 달지 않았으며 옆면과 뒷면에 골판문을 달았다.

주변 경치와 조경이 뛰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어 넉넉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하회풍산류씨작천댁,
종    목 중요민속자료  제87호
명     칭 하회풍산류씨작천댁(河回 豊山柳氏 鵲泉宅)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일곽
지 정 일 1979.01.23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672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유시주
관 리 자 .
일반설명 | 전문설명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동족마을로 빼어난 자연 경관과 민속·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촌이다. 작천 유도관 선생이 이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작천고택이라고도 부르며, 하회마을 북촌의 서쪽 끝 강변 가까이 자리잡고 있다.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건축수법과 양식으로 미루어 조선중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래 2동이 있었으나 1934년 홍수로 현재 1동만 남아있다.

안채는 앞면 5칸·옆면 1칸 반 크기로 왼쪽부터 부엌 1칸 반, 안방 1칸, 대청 1칸, 건넌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부지방의 전형적인 4칸 一자집 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랑방을 터놓아 구성에 변화를 주고 있다.

눈여겨 볼점은 작은 크기를 가진 집이면서 안채와 사랑방을 구별하도록 앞쪽에 담벽을 둔 점이다. 이것은 안채공간과 사랑방을 따로 두던 내외사상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최소한의 설비로 큰 규모의 양반집 못지 않게 지혜로운 변화를 보이는 예로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지정 당시 명칭은 하회유시주가옥(河回柳時柱家屋)이었으나, 현소유자의 증조부 류도관이 문경 작천리에서 현재 마을로 이주한 가옥으로 작천댁이라 불려지고 있어, ‘하회 작천댁’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하였다.

하회옥연정사,
종    목 중요민속자료  제88호
명     칭 하회옥연정사(河回玉淵精舍)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일곽
지 정 일 1979.01.23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 20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유영하
관 리 자 .
일반설명 | 전문설명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동족마을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민속·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촌이다. 이 집은 서애 유성룡(1542∼1607) 선생이 학문 연구와 제자를 키우기 위해 세운 것이다.

조선 선조 19년(1586)에 지었으며 하회마을 부용대 동쪽 강가에 자리잡고 있다. 크게 문간채, 안채, 별당채,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따로 떨어져 一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대문채는 앞면 6칸·옆면 1칸 크기로 뒷간과 광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있는데 앞면 4칸·옆면 2칸 크기이다. ㅡ자형 평면 가운데 부엌을 두고 좌우로 방을 배치한 특이한 구성으로 양반집에서는 보기 드문 예이다. 별당채는 안채 바로 뒤편으로 있으며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다. 제일 규모가 작은 건물로 온돌방과 2칸 대청을 두었다. 유성룡 선생은 이곳에서『징비록』(국보 제132호)을 집필하였다고 전한다. 사랑채는 앞면 4칸·옆면 2칸 크기로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1칸씩 방을 두고 툇마루로 꾸며 놓았다.

양반집이지만 이 지역 민가의 기본형인 도토마리(베틀에서 실을 감는 기구)집 형식으로 가운데 부엌을 두고 양쪽에 방을 둔 점이 독특하며, 정사(精舍)다운 지형 요건,『징비록』을 집필한 유서 깊은 곳으로 귀하게 평가 받고 있다.

하회겸암정사,
종    목 중요민속자료  제89호
명     칭 하회겸암정사(河回謙菴精舍)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2동
지 정 일 1979.01.23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 37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유상붕
관 리 자 .
일반설명 | 전문설명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동족마을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민속·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촌이다.

이 집은 서애 유성룡(1542∼1607) 선생의 맏형인 겸암 유운룡(1539∼1601) 선생이 학문 연구와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조선 명종 22년(1567)에 지었다고 하며 부용대 서쪽 높은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다.

정사(사랑채)는 하회마을이 바라다 보이는 남쪽 절벽 위편에 안채는 정사 뒤쪽에 배치하였다. 정사는 2층 누각 형식으로 앞면 4칸·옆면 2칸 크기이다. 가운데에 대청 4칸을 두고 좌우로는 방을 두었다. 방 앞쪽으로 좁은 퇴를 마련하였으며 ‘겸암정’이라고 쓴 현판은 스승인 이황 선생의 글씨라고 한다. 안채는 ㄱ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고,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 2칸과 안방 2칸, 오른쪽에 건넌방 2칸을 두었다. 안방과 건넌방 앞쪽으로는 툇마루를 마련해 놓았다. 짚을 이어 올린 헛간채는 안채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높은 절벽 아래 굽이도는 강줄기, 자연이 어울린 진풍경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정사(精舍)다운 지형 요건과 전통이 배어 있어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하회동하동고택,
종    목 중요민속자료  제177호
명     칭 하회동하동고택(河回洞河東古宅)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일곽
지 정 일 1984.01.10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739-2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유단하
관 리 자 .
일반설명 | 전문설명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동족마을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민속·유교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촌이다. 이 집은 용궁현감을 지낸 유교목 선생이 세웠다. 조선 헌종 2년(1836)에 지었고 남촌과 북촌을 가르는 길가에 자리잡고 있는데, 하회마을 동쪽에 있다하여 하동고택이라고도 부른다.

사랑채, 안채, 행랑채들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지만 사랑채와 안채가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배치 형식을 보인다. 안채는 가운데 3칸을 대청으로 놓았는데 오른쪽 뒤편 반칸에 2층 광을 설치하였다.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 2칸과 부엌 2칸을, 오른쪽에 건넌방과 마루, 중간방을 마련해 놓았다. 사랑채는 2칸 대청과 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 앞쪽으로 마루를 놓았고 중문간채와 연이어 있다. 중문간채는 1칸 문과 광 3칸을 배열하여 안마당 앞을 막고 있다. 행랑채는 4칸 크기로 왼쪽에 대문을 설치하였고 오른쪽으로 머슴방 2칸과 마구간을 만들어 놓았다.

예스러움을 잘 간직하고 있고 건넌방과 중간방 사이에 마련한 마루 등은 배치 형식에서 색다른 변화를 주고 있는 것으로, 조선후기 주택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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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분류 명칭
국보 121호
민속 공예류
하회탈 및 병산탈
국보 132호
원고본
징비록
보물 160호
활자본류기타
류성룡종손가문적11종 22점
보물 460호
고문서류기타
서애유물 3종 27점
보물 306호
고가
안동양진당
보물 414호
충효당
사적 260호
서원(사적)
병산서원
중요민속자료 84호
정사 / 가옥
북촌댁
중요민속자료 85호
원지정사
중요민속자료 86호
빈연정사
중요민속자료 87호
작천고택
중요민속자료 88호
옥연정사
중요민속자료 89호
겸암정사
중요민속자료 90호
남촌댁
중요민속자료 91호
주일재
중요민속자료 177호
하동고택
중요민속자료 122호
민속마을
하회마을
중요무형문화재 69호
연극
하회별신굿탈놀이
보호수
노거수
삼신당 느티나무
비지정 문화유산
화천서원 / 정려각 / 상봉정 / 기타 고택 / 서낭당 등

리 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탈로서 지금은 각시,중,양반,선비, 초랭이,이매,부네,백정,할미 9개의 탈들만 전해지며, 3개의 탈이 분실되었다.

하회탈은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먼저 그 소중함을 알아주지 않던 중에 류한상 전 안동문화원장이 하회탈을 맥타카드(Arther Joseph Mactaggart)교수에게 소개하여, 1954년 그 가치를 인정하여 해외 학계에 발표함으로써 하회탈이 세계제일의 가면으로 극찬을 받았으며, 그 후에 국내 학계에서도 활발히 연구하여 국보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하여 겉으로만 보지 말고 깊이 연구하여, 그 소중함을 알아야 함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잃어버린 탈(총각탈, 떡다리탈, 별채탈)을 저명한 조각가와 화가 및 미술사 관련 전문가들로 하여금 복원을 추진하기도 하였으나, 운보 김기창 화백과 그 일행이 하회탈을 면밀히 감상해 보고서 하회탈의 오묘한 이치와 조형적 탁월성에 놀라 자기들로서는 복원이 불가능하다.라고 하였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하회탈의 작가는 허도령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허도령에게는 사랑하는 처녀가 있었는데, 허도령이 신의 계시를 받고 탈의 조각을 위하여 홀로 외딴 집으로 가기 전에 탈을 완성하기까지는 절대로 찾아오지 말고 기다려달라!고 말하였으나, 오래 기다리던 처녀가 사모하는 정을 가누지 못하고 허도령이 혼자 있는 집을 찾아가서 차마 문을 열지는 못하고 문구멍을 뚫어서 안을 들어다 보는 중 허도령은 이를 보자 부정을 타서 죽었다고 한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신의 계시란 강렬한 예술적 영감을 의미하며 부정을 타서 죽었다.란 심혈을 다하여 작업 중에 있던 허도령이 영감이 흩어지게 되자 쇼크에 의한 사망으로 생각되며, 이처럼 목숨바쳐 이룩한 작품이기에 오늘날 세계 제일의 가면으로 되어 있다.

양반탈은 위로 향하면 웃는 얼굴, 밑을 향하면 성낸 얼굴로 표정변화가 일어나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너털웃음을 웃을 때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성을 낼 때는 얼굴을 아래로 하는 인체공학을 연구하여 조각되어 있으므로 광대의 몸짓과 자연스럽게 일치되도록 한 점도 두드러진다.

각시탈은 한쪽 눈이 가늘다. 이는 각시 광대가 얼굴을 살짝 돌리면 상대에게 눈을 흘기는 교태(윙크)가 되도록 하였다. 다른 탈 들도 제각각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다

한국의 가면은 대개 바가지나 종이로 만들기 때문에 오래 보존된 예가 드물며, 그 해의 탈놀이가 끝난 후 태워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하회탈은 재료가 오리나무로서 표면에 옻칠을 2겹 3겹으로 칠하여 정교한 색을 내었고, 격식과 세련됨을 갖추었으며, 부락에서는 별도로 동사(洞舍)를 세워서 가면들을 보존해 왔을 뿐만 아니라, 특히 각시 탈은 성황신을 대신한다고 믿어 별신굿을 할 때 외에는 볼 수 없었고, 부득이 꺼내볼 때는 반드시 제사를 지내야 하는 금기(禁忌)나 제약(制約)이 있었으므로 오늘날까지 전하여질 수 있었다.

 

회의 2가지 놀이 중 하회 선유 불꽃놀이가 선비들 놀이였다면,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서민들 놀이였다.
약 500년 전부터 10년에 한번 정월 보름날 또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서낭신에게 별신굿을 해왔는데, 굿과 아울러 서낭신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탈놀이를 하였으며, 우리 나라의 탈춤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다.
탈놀이 중에는 탈을 쓴 광대가 양반을 향하여 평소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여 나무랄 수 있었으며, 양반에게 수작을 할 수도 있었다.
이 제도는 건전한 비판과 견제가 없는 사회는 온갖 폐단이 발생하므로, 양반이 서민에게 언로(言路)를 개방하기 위함이었다.

1928년 후 단절되었으나, 류한상(柳漢尙) 전 안동문화원장이 하회탈 (LINK 하회탈)과 함께 발굴하여 사라져가던 것이 재생(再生)되었고, 전 서울대 이두현 교수에 의해 해외주재 대사관을 통하여 외국에 하회탈춤이 홍보되었으며, 현재는「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와 동호인에 의해 상설공연장에서 매주 개최되고 있다.
놀이마당은 무동마당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과 선비마당 혼례마당 신방마당의 8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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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하회마을이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豊川面) 하회리(河回里)의 민속마을. 이 마을은 풍산유씨(豊山柳氏) 동족마을로서 낙동강의 흐름이 마을의 동·남·서 3방형을 감싸도는, 풍수지리상으로 태극형의 명기(名基)로 일컬어졌다. <하회>라는 지명과 <물도리동>이라는 별칭도 이러한 지형적 특색에서 연유한다. 유씨가 자리잡기 이전에는 허씨(許氏)·안씨(安氏) 등이 유력한 씨족이었는데, 특히 풍산유씨가 기반을 확고히 한 것은 유운룡(柳雲龍)·유성룡(柳成龍) 형제 때로 알려져 있다. 하회마을은 조선 전기 이래의 건축물들과 영남의 유서깊은 터전이라는 풍수지리적 경관, 역사적 배경, 하회별신굿·하회서낭제 등의 민간전승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의 가옥 가운데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으로는 안동양진당(安東養眞堂;보물 306)과 충효당(忠孝堂;보물 414)을 비롯하여 하회북촌댁(河回北村宅;중요민속자료 84), 하회원지정사(河回遠志精舍;중요민속자료 85), 하회유시주가옥(河回柳時柱家屋;중요민속자료 87), 하회옥연정사(河回玉淵精舍;중요민속자료 88), 하회겸암정사(河回謙菴精舍;중요민속자료 89), 하회남촌댁(河回南村宅;중요민속자료 90), 하회주일재(河回主一齋;중요민속자료 91)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주거사(住居史)에 의미가 깊은 건축물들이 많다. 마을 전체가 봉건신분사회의 질서에 의해 조성된, 유수한 문화재이다. 마을을 감싸 흐르는 화천(花川)에서는 음력 7월 보름에 강상유화(江上流花)라는 줄불놀이와 시회(詩會)가 벌어졌으며, 양반의 허위를 풍자하는 하회별신굿과 정월 대보름에 지내는 하회서낭제 등이 있었다. 중요민속자료 제122호.
 
도움이 됬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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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ㅠ 안동하회마을지역의 특징좀 써주세요 내공검..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경상북도... 성에 대해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지배층의 권위의식을 풍자함으로서 성에 대한 일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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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질문은 제목을 보시다싶이 안동 하회마을의 탈놀이연극에대해 자세하게 알려주셨으면합니다. 그리고 하회마을에대한 정보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보를...

빨리 답변좀 안동 하회마을...내공100검

빨리 답변좀 부탁드림 논산에서 안동 하회마을 가는법이랑 유래좀 알려주셈...이상 허접한질문임...내공100걸어요.ㅎㅎㅎ 빨리 답변 부탁드림 제발 저희 할머니집이 안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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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에 대해 자세히 1시간 안에 되도록 많이 알려주세요. 내공 100 걸게요!!! 살려주세요!! 답변: 안동 하회마을/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분류 인문(문화/예술...

나주에서 안동하회마을까지

... 안동하회마을의 위치에 대해 상세히...위 치 만!!!!!!! 내공많이 속도로 이용은 중앙고속도로에서 안동으로 진입하려면, 서안동IC에서 진입하여야 하며, 남안동IC와...

나주에서 안동하회마을까지가는것

... 안동하회마을의 위치에 대해 상세히...위 치 만!!!!!!! 내공많이 속도로 이용은 중앙고속도로에서 안동으로 진입하려면, 서안동IC에서 진입하여야 하며, 남안동IC와...

상대참조에 대해 일려주세욤 내공 100검

내공 100검 ※ 상대참조, 절대참조, 혼합참조 1. 상대참조 -> 상대참조는 말 그대로 상대적으로 변하는 주소를 말하고 채우기 핸들을 하면은 셀 주소가 바뀝니다. (Ex : =A1) 2....

군면제에 대해 내공 100검!!

제 가족사를 말해보면 어렸을때 부모님이 이혼을해서 엄마랑만 할머니랑만 살다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지금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시는데 저는...

안동 하회마을의 위치에 대해 질문이여

... 국어숙제로 안동 하외마을의 위치에 대해 알아오래요... 좀 가르쳐 주세요<내공 10검> 참고사항 : 안동이라고 하시는 분들 그러지 마세요. 내공냠냠, 별의별 광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