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의 문화재좀...

우리고장의 문화재좀...

작성일 2007.10.20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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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의 문화재좀 알려주세요!

저는 4학년이고요 저희 고정은 상암동이에요

10월20일 오후 6시 까지 부탁드립니다.

쉽게 쉽게 설명 해주세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오노봉위필청천일장지삼상작연지사아복중시

종    목 보물  제569-9호
명     칭 오노봉위필청천일장지삼상작연지사아복중시(五老峰爲筆靑天一丈紙三湘作硯池寫我腹中詩)
분     류 기록유산 / 서간류/ 서예/ 서예
수량/면적 1점
지 정 일 1972.08.16
소 재 지 서울 마포구  상수동 72-1 홍익대학교박물관
시     대 대한제국시대
소 유 자 홍익대학교
관 리 자 홍익대학교박물관

 


정명경집해관중소

 
종    목 보물  제736호
명     칭 정명경집해관중소(淨名經集解關中疏)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사찰본
수량/면적 2권1책
지 정 일 1982.11.09
소 재 지 서울 마포구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연세대학교
관 리 자 연세대학교중앙도서관
일반설명 | 전문설명
정명경은 ‘유마경’의 뜻을 풀이한 명칭이다. 유마경은 ‘유마힐소설경’을 줄여서 부르는 말로, 유마거사가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한 내용을 희곡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은 진나라의 승려 승조(僧肇)가 주석을 달아 놓은 유마경에 당나라 도액(道液)이 자신의 의견을 더하여 펴낸 것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권3, 4가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으며, 크기는 세로 34.2㎝, 가로 29.5㎝이다. 정명경관중소는 중국 돈황에서 발견된 2종과 의천이 수집해온 4권만 알려져 있는데, 이 책은 의천의『신편제종교자총록』에 수록된 4권 중 권3, 4의 남아있는 1책이다.,

각 권의 끝에 고려 헌종 1년(1095)에 흥왕사에서 간행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의천이 간행한 교장(敎藏) 판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글자체나 새김, 인쇄상태, 종이질 등이 세조 때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찍어낸『금강반야경소개현초』와 비슷하여 조선 세조때 교장(敎藏)을 보고 다시 새겨 찍어낸 판본으로 추정된다.,

돈황본에는 잘못된 글자가 많고 본문이 부분적으로 없거나 앞뒤가 바뀐 것이 많은데 이 책을 통해 교정하고 보완할 수 있어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월인석보

종    목 보물  제745호
명     칭 월인석보(月印釋譜)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사찰본
수량/면적 14권13책
지 정 일 1983.05.07
소 재 지 서울 마포구  신수동 1 서강대학교도서관외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서강대학교
관 리 자 서강대학교외
일반설명 | 전문설명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하여 세조 5년(1459)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이다. 이 책은 『월인천강지곡』이라는 명칭으로 발행된 것과 『석보상절』, 혹은 『월인석보』라는 명칭으로 발행된 3종류의 간행본이 있다.,

석보는 석가모니의 년보 즉 그의 일대기라는 뜻이다. 조선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불교서적을 참고하여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이 곧 『석보상절』이다. 세종 29년(1447) 세종은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월인천강지곡』이다.,

『월인석보』는 총 25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처음 간행된 권 1, 2, 7, 8, 9, 10, 11, 12, 13, 14, 15, 17, 18, 19, 23, 25와 재간행된 권 4, 21, 22 등 총 19권이 있다.

이 책은 조선 전기 2대에 걸쳐 임금이 편찬, 간행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불교서적을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조선 전기 훈민정음연구와 불교학 및 문헌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망원정지

 
종    목 시도기념물 
제9호 (마포구)
명     칭 망원정지(望遠亭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1,436㎡(1동)
지 정 일 1990.06.18
소 재 지 서울 마포구  합정동 457-1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서울시
관 리 자 마포구
상 세 문 의 서울특별시 마포구 문화체육과 02-330-2502
일반설명 | 전문설명
세종(1424)이 세종의 형 효령대군의 별서로 건립, 1425년 세종이 농사일을 살피고 정자에 들렸을 때 단비가 내려 희우정이라 명명, 성종 15년(1484)선종의 형 월산대군이 정자를 크게 고치고 산과 강을 잇는 아름다운 경치를 멀리 바라본다는 뜻으로 망원정이라 개명, 1925년 을축년 대홍수때 멸실되었다. 1986년 한강변 문화유적 복원게호기의 일환으로 문화유적 고증조사위원회의 문헌고정 및 1987년 현지 발굴조사 결과 복원키로 결정하였다.


용강동정구중가

종    목 시도민속자료 
제17호 (마포구)
명     칭 용강동정구중가(龍江洞鄭求中家)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일곽(241평)
지 정 일 1977.03.17
소 재 지 서울 마포구  용강동 335
시     대 일제강점기
소 유 자 정구중
관 리 자 정구중
상 세 문 의 서울특별시 마포구 문화체육과 02-330-2502
일반설명 | 전문설명
좁은 터에 안채, 행랑채, 별당을 따로 만든 한옥 살림집이며 1920년대 이후 개량한옥으로서 보기 드문 예가 되는 집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다시 대문채가 있고 안쪽에 있는 대문을 들어서야 안채가 있다.,

대문간 행랑채는 일반적인 一자형 평면과 다르게 휘어지게 지었으며 대문의 남쪽으로 방 2칸과 광 2칸을 두었다. 현재 광 1칸은 방으로 개조하였다. 안채는 지붕 옆면의 선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며 창호는 대부분 현대식으로 바꾸었다. 대문채와 별당채는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도시의 제약된 좁은 집터에 오밀조밀 전통 한옥 구조의 깊은 맛을 보여주고 있는 집이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국보 제1호 국보 제2호 국보 제3호 국보 제4호
서울숭례문 원각사지십층석탑 북한산신라진흥왕
순수비
고달사지부도
       
국보 제5호 국보 제6호 국보 제7호 국보 제8호
법주사쌍사자석등 중원탑평리칠층석탑 봉선홍경사
사적갈비
성주사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국보 제9호 국보 제10호  
 
부여정림사지
오층석탑
실상사백장암
삼층석탑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1.경국사 목각탱

 

종 목 보물 제748호  

지 정 일 1983.05.07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정능3동 758 경국사

시 대 조선시대

 

 서울 성북구 정릉동 경국사 극락전에 모셔진 조선시대의 목각탱으로 중앙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모두 13구의 불상과 보살이 있다.

 

중앙에는 아미타여래가 커다란 광배를 배경으로, 여러 층으로 된 대좌(臺座) 위에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이 붙여 있으며, 넓적한 얼굴은 형식화가 정착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얼굴에 비해 몸은 왜소하고, 양 어깨에 걸치고 있는 옷은 두꺼워서 신체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는 아래위의 너비가 같은 조선시대 특유의 형식이다. 불꽃무늬가 위로 솟아서 뻗쳐있고 그 안에 작은 부처들이 표현되어 있다. 본존 좌우에 아미타 8대보살이 있고, 그 밑 좌우에 사천왕 중 증장천과 지국천이 있다. 8대보살은 지장보살을 제외하고 모두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으며, 두꺼운 옷을 입고 연꽃을 든 채 활짝 핀 연꽃 위에 서 있다. 본존과 같은 높이에 보살이 서 있고 바깥 좌우에는 나한상이 1구씩 서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수법이 둔중하고 양감이 결여되어, 형식화된 면을 많이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조선 후기 목각탱화 가운데 하나로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2.선잠단지

 

종 목 사적 제83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64-1

시 대 조선시대

 

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중국 고대 황제의 황비 서릉씨를 누에신(잠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 단은 조선 성종 2년(1471)에 처음 쌓은 것으로, 앞쪽 끝에 뽕나무를 심어 궁중의 잠실에서 키우는 누에를 먹이게 하였다.

 

세종대왕은 누에를 키우는 일을 크게 장려했는데, 각 도마다 좋은 장소를 골라 뽕나무를 심도록 하였으며, 한 곳 이상의 잠실을 지어 누에를 키우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중종 원년(1506)에는 여러 도에 있는 잠실을 서울 근처로 모이도록 하였는데, 지금의 강남 잠실이 바로 옛 잠실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선잠단의 설치 이후 매년 3월에 제사를 지내다가, 1908년 잠신이 의지할 자리인 신위를 사직단으로 옮기면서 지금은 그 터만이 남게 되었다.

 

3.의릉

 

종 목 사적 제204호

지 정 일 1970.05.26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석관동 1-5

시 대 조선시대

 

조선 20대 경종(재위 1720∼1724)과 그의 비인 선의왕후의 무덤이다. 경종은 희빈장씨의 소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하여 왕위에 오른지 4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일반적으로 쌍릉은 좌·우로 조성하지만 이 무덤은 앞·뒤로 무덤을 조성한 상하이봉릉이다. 이처럼 앞·뒤로 만든 것은 풍수지리설에 의한 것으로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영릉에서 처음 나타났다.

 

왕릉에는 무덤 둘레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고 대신 무덤 주위에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했는데, 난간석의 기둥에는 십이간지가 방위에 따라 문자로 새겨져 있다. 난간석 밖으로 망주석·장명등·문무석과 말·양·호랑이가 있다. 무덤의 석물 배치와 양식은 명릉과 같이 규모가 작고 간소한 후릉제도를 택하였다. 왕비릉의 석물 배치는 왕릉과 같으나 무덤 뒤에 담을 두르지 않았다.

 

4.정릉

 

종 목 사적 제208호

지 정 일 1970.05.26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정능동 산87-16

시 대 조선시대

 

조선 태조 이성계의 두번째 부인인 신덕왕후(?∼1396) 강씨의 무덤이다.

 

원래의 자리는 정동에 있었으나 태종 5년(1405) 의정부에서 왕의 무덤이 모두 도성 밖에 있는데 정릉만이 도성 안에 있고, 무덤이 크고 넓다는 논란이 있어서 도성 밖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이것은 태조가 8왕자인 방석을 세자로 정한 것에 대한 방원(후에 태종)의 사적인 감정에서 비롯되었다.

 

태종은 무덤을 옮긴 후 정자각을 없애고, 홍수에 의해 없어진 광통교를 다시 짓는데 정릉의 십이지신상 등 석물을 실어다 만들게 하였다. 무덤을 옮긴지 수백년간 정릉은 왕후의 무덤이라기 보다는 주인없는 무덤에 불과하였는데, 현종 10년(1669)에 송시열의 상소에 의해 왕후의 무덤인 보호하였다.

 

정릉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고, 호석과 양석이 각 1쌍으로 줄어들고, 무석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왕후의 무덤에 비하여 빈약하지만 조선왕조 최초로 만들어진 왕비의 무덤이다.

 

조선왕릉의 무덤 제도는 고려왕릉 제도를 기본으로 하고 약간 변화시켜 만든 것이다. 정릉의 사각명등석이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무덤인 현재 정릉의 것을 따르고 있는 것을 보면, 조선왕릉은 고려왕릉을 규범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성락원

 

종 목 사적 제378호

지 정 일 1992.12.23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2-22외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었으나, 의친왕 이강(1877∼1955)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물이 흐르는 경치에 따라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자연 지형으로 앞뜰, 안뜰, 바깥뜰로 나눌 수 있다. 앞뜰은 두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쌍류동천과 안뜰 앞을 막아 아늑하게 감싸 만든 용두가산이 있다. 물줄기 속 암벽에 행서체로 새긴 ‘쌍류동천’이란 글은 성락원의 자맥을 보호하는 뜻도 있다고 한다. 또한 쌍류동천 주위와 용두가산에는 200∼300년 되는 엄나무를 비롯하여 느티나무,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다래나무, 말채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어 안뜰과 성락원 바깥을 가려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

 

안뜰은 영벽지와 폭포가 있으며 바깥뜰은 송석과 연못이 있는 지역이다. 서쪽 아래 지역에 고여한 늪이 있고, 북쪽에는 물길을 파서 인공폭포를 만들었다. 더하여 늪의 서쪽 암벽에 ‘장빙가’라고 새긴 글씨는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의 것이다.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져 그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고 있는 성락원은 조선시대 별장으로,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것이어서 가치가 있다.

 

6.삼군부 총무당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7호

지 정 일 1978.12.18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돈암동 512-160

시 대 조선시대

 

 조선의 군사업무를 담당하던 삼군부의 청사건물이다. 고종 5년(1868)에 덕의당·청헌당과 함께 지어졌다. 원래 광화문 남쪽 현재의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있던 것을 삼군부 청사의 중심이 되는 총무당만을 1930년대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앞면 7칸·옆면 4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중앙 3칸은 대청이고 양 옆에 1칸의 온돌방이 있으며 그 옆에는 광이 있다.

 

삼군부 총무당은 조선시대 관아건물로서 희귀한 문화재이다.

 

7.흥천사 극락보전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6호

지 정 일 1985.12.05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돈암동 595

시 대 조선시대

 

서울 돈암동에 위치한 흥천사는 조선 태조 4년(1395)에 신덕왕후 강씨가 죽자 능을 정릉으로 정한 후 세운 사찰이다. 당시 이 절은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기원하던 170여 칸 규모의 큰 사찰이었다.

 

흥천사 극락보전은 10겁 이전에 성불하고 서방 극락세계에서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으로, 철종 4년(1853) 계장스님에 의해 다시 지어졌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인 다포양식 건물이다.

 

흥천사 극락보전은 19세기 사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화려한 목조 건축으로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에서는 희귀한 사찰 건축이므로 매우 귀중한 유산으로 평가된다.

 

8.만해 한용운 심우장

 

 

종 목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7호

지 정 일 1984.07.05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222-1,2

시 대 일제강점기

 

 심우장은 승려, 시인,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이 1933년에 지은 집이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면서 중국에 망명하여 의병학교를 설치하고, 독립군의 훈련장을 돌면서 독립정신과 민족혼을 심어주는 일에 전력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민족대표 33명 중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3년 동안 옥살이를 하였다. 출옥 후에도 선생은 일본경찰의 감시 아래 강연 등 여러 방법으로 조국독립을 위해 힘쓰다가 1944년 심우장에서 중풍으로 죽었다. 저서로는 『조선불교유신론』, 『님의 침묵』 등이 있다.

 

심우장의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으로 옆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 기와집으로, 선생은 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 하여 일부러 북향으로 집을 지었다고 한다.

 

심우란 소를 사람의 마음에 비유하여 잃어버린 나를 찾자는 뜻이라고 한다.

 

9.성북동 이재준가

 

종 목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10호

지 정 일 1977.03.17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243-4

시 대 일제강점기

 

 190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집이다.

 

사랑채 비슷한 별채와 안채,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동북쪽에 있으며 행랑채는 북쪽에 있다. 누마루에는 ‘일관정’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안채는 조선 후기의 상인인 이종석이 지은 별장이라고 전하는데 당시 규모가 큰 상인들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집이다. 특히 가옥주변의 조경은 한국의 멋이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다.

 

10.장교동 한규설대감가

 

종 목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7호

지 정 일 1977.03.17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정릉동 855-2 국민대학교

시 대 조선시대

 

 조선 후기 한성판윤을 지낸 한규설(1848∼1930)의 저택이다. 원래 장교동에 있던 것을 국민대학교에서 사들여 교내로 옮겨 지었으며, 1890년 이전에 지은 건물로 추정된다.

 

원래의 모습대로 옮겨 지으면서 솟을대문 좌우의 행랑채와 중문간행랑채, 사잇담 등을 복원하였다. 사랑채와 안채·별채·사당·광채 등이 넓은 대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지금은 학교 생활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안채는 ㄴ자형으로 앞면 6칸·옆면 2칸의 규모이다. ㄱ자형의 사랑채는 앞면 4칸·옆면 2칸 반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별채 역시 ㄱ자형으로 광채와 연결되어 있으며, 사당은 일반적인 규모보다 약간 작게 지었다.

$도움이되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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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오노봉위필청천일장지삼상작연지사아복중시(五老峰爲筆靑天一丈紙三湘作硯池寫我腹中詩)
분     류 기록유산 / 서간류/ 서예/ 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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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정 일 1972.08.16
소 재 지 서울 마포구  상수동 72-1 홍익대학교박물관
시     대 대한제국시대
소 유 자 홍익대학교
관 리 자 홍익대학교박물관

 


정명경집해관중소

 
종    목 보물  제736호
명     칭 정명경집해관중소(淨名經集解關中疏)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사찰본
수량/면적 2권1책
지 정 일 1982.11.09
소 재 지 서울 마포구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연세대학교
관 리 자 연세대학교중앙도서관
일반설명 | 전문설명
정명경은 ‘유마경’의 뜻을 풀이한 명칭이다. 유마경은 ‘유마힐소설경’을 줄여서 부르는 말로, 유마거사가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한 내용을 희곡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은 진나라의 승려 승조(僧肇)가 주석을 달아 놓은 유마경에 당나라 도액(道液)이 자신의 의견을 더하여 펴낸 것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권3, 4가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으며, 크기는 세로 34.2㎝, 가로 29.5㎝이다. 정명경관중소는 중국 돈황에서 발견된 2종과 의천이 수집해온 4권만 알려져 있는데, 이 책은 의천의『신편제종교자총록』에 수록된 4권 중 권3, 4의 남아있는 1책이다.,

각 권의 끝에 고려 헌종 1년(1095)에 흥왕사에서 간행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의천이 간행한 교장(敎藏) 판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글자체나 새김, 인쇄상태, 종이질 등이 세조 때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찍어낸『금강반야경소개현초』와 비슷하여 조선 세조때 교장(敎藏)을 보고 다시 새겨 찍어낸 판본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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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석보

종    목 보물  제745호
명     칭 월인석보(月印釋譜)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사찰본
수량/면적 14권13책
지 정 일 1983.05.07
소 재 지 서울 마포구  신수동 1 서강대학교도서관외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서강대학교
관 리 자 서강대학교외
일반설명 | 전문설명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하여 세조 5년(1459)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이다. 이 책은 『월인천강지곡』이라는 명칭으로 발행된 것과 『석보상절』, 혹은 『월인석보』라는 명칭으로 발행된 3종류의 간행본이 있다.,

석보는 석가모니의 년보 즉 그의 일대기라는 뜻이다. 조선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불교서적을 참고하여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이 곧 『석보상절』이다. 세종 29년(1447) 세종은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월인천강지곡』이다.,

『월인석보』는 총 25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처음 간행된 권 1, 2, 7, 8, 9, 10, 11, 12, 13, 14, 15, 17, 18, 19, 23, 25와 재간행된 권 4, 21, 22 등 총 19권이 있다.

이 책은 조선 전기 2대에 걸쳐 임금이 편찬, 간행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불교서적을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조선 전기 훈민정음연구와 불교학 및 문헌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망원정지

 
종    목 시도기념물 
제9호 (마포구)
명     칭 망원정지(望遠亭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1,436㎡(1동)
지 정 일 1990.06.18
소 재 지 서울 마포구  합정동 457-1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서울시
관 리 자 마포구
상 세 문 의 서울특별시 마포구 문화체육과 02-330-2502
일반설명 | 전문설명
세종(1424)이 세종의 형 효령대군의 별서로 건립, 1425년 세종이 농사일을 살피고 정자에 들렸을 때 단비가 내려 희우정이라 명명, 성종 15년(1484)선종의 형 월산대군이 정자를 크게 고치고 산과 강을 잇는 아름다운 경치를 멀리 바라본다는 뜻으로 망원정이라 개명, 1925년 을축년 대홍수때 멸실되었다. 1986년 한강변 문화유적 복원게호기의 일환으로 문화유적 고증조사위원회의 문헌고정 및 1987년 현지 발굴조사 결과 복원키로 결정하였다.


용강동정구중가

종    목 시도민속자료 
제17호 (마포구)
명     칭 용강동정구중가(龍江洞鄭求中家)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수량/면적 일곽(241평)
지 정 일 1977.03.17
소 재 지 서울 마포구  용강동 335
시     대 일제강점기
소 유 자 정구중
관 리 자 정구중
상 세 문 의 서울특별시 마포구 문화체육과 02-330-2502
일반설명 | 전문설명
좁은 터에 안채, 행랑채, 별당을 따로 만든 한옥 살림집이며 1920년대 이후 개량한옥으로서 보기 드문 예가 되는 집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다시 대문채가 있고 안쪽에 있는 대문을 들어서야 안채가 있다.,

대문간 행랑채는 일반적인 一자형 평면과 다르게 휘어지게 지었으며 대문의 남쪽으로 방 2칸과 광 2칸을 두었다. 현재 광 1칸은 방으로 개조하였다. 안채는 지붕 옆면의 선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며 창호는 대부분 현대식으로 바꾸었다. 대문채와 별당채는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도시의 제약된 좁은 집터에 오밀조밀 전통 한옥 구조의 깊은 맛을 보여주고 있는 집이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종    목 보물  제736호
명     칭 정명경집해관중소(淨名經集解關中疏)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사찰본
수량/면적 2권1책
지 정 일 1982.11.09
소 재 지 서울 마포구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연세대학교
관 리 자 연세대학교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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