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의 문화재에는 무엇이 있나요?

통일신라의 문화재에는 무엇이 있나요?

작성일 2007.09.12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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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의 문화재가 궁금해서 그런데요... 될 수있으면 답변 오늘까지.. 될까요?? ㅜㅜ내공은 25정도...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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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구려의 문화재라면 빠질 수 없는게 있죠..

바로 무용총이에요.

무용총은 고구려 사람들이 사냥 하는 것을 그려놓은 그림??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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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고구려의 문화재

:show_id_layer(this,'hcm120','KIN','XFILE','130503','1366793');" href="javascript:void(0);">hcm120 (2007-09-10 20:50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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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될까염...

 

분황사석탑 :  국보 제 30호

 

만든시기 : 신라 634년 (선덕여왕)

 

장소 : 경북 경주시 구황동

 

특   징  : 현존하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분황사 모전석탑이라고도 부르며,
               원래는 9층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3층만 남아 있고

               높이는  9.3m이다.
               임진왜란 때 크게 훼손되었다고 하며,
               지금의 모습은 1915년 일본인들에 의해서

              수리 복원된 것이다. 
              수리 당시 탑 안에서 사리함과 구슬 등의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감은사지 3층 석탑 : 국보 제 112호

 

만든시기 : 신라 682년 (신문왕)

 

장소 : 경북 경주시 양북면 감은사

 

특징 : 수십개에 이르는 부분 석재로 조립되었으며
            1960년에 서쪽 탑을 해체, 수리할 때 3층 탑신에서
            창건 당시에 넣어둔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고선사지 3층 석탑 : 국보 제 38호

 

건립시기 : 통일신라 전기 (7세기후반)

 

장소 : 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 박물관

 

특징 :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의 옛 터에 세워져 있던 탑으로,
           덕동댐 건설로 인해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1975년에 지금의 자리인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불국사 3층 석탑 : 국보 제 21호

 

건립시기 : 통일신라 751년

 

장소 : 경북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특징 : 불국사 대웅전 앞 뜰에 동서로 세워진 2탑 중 서쪽에 있는 탑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이며
            흔히 줄여서 '석가탑'이라고도 한다.
            이 탑은 1966년 해체·복원공사를 하던 중

            제2층 탑신 중앙부 사리공에서
            '금강사리함'과 많은 유물이 발견된 가운데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8세기 초엽 목판으로 인쇄된

            다라니경문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임이 밝혀졌다.

 

 

 

다보탑 : 국보 제 20호

 

건립시기 : 통일신라 756년

 

장소 : 경북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특징 : 보존불을 중심으로 총 59체의 불상을 조각하였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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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nltn97 님 메일 | 카페 | 블로그 |  | 뉴스 | 쇼핑 | 한게임  ·  전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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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Q&A > 쥬니버 >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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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의 문화재에는 무엇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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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33 답변4 점수25

답변기간이 3일 남았습니다. (2007-09-12 21:2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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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의 문화재가 궁금해서 그런데요... 될 수있으면 답변 오늘까지.. 될까요?? ㅜㅜ점수은 25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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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통일신라의 문화재에는 무엇이 있나요?

:show_id_layer(this,'phj6747','KIN','ING','130602','2965594');" href="javascript:void(0);">phj6747 (2007-09-13 04:21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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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사이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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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도읍지 - 엄태곤 http://gongmo.edu-i.org/2000/700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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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통일신라의 문화재에는 무엇이 있나요?

:show_id_layer(this,'15289992','KIN','ING','130602','2965594');" href="javascript:void(0);">15289992 (2007-09-13 20:2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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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저는 아는 것만 보여 드리겠습니다.

녹유골호(부석제외함) (綠釉骨壺(附石製外函))


 

통일신라시대의 뼈항아리. 골호의 높이는 16.5㎝이고, 석제외함의 지름은 43㎝이다.  불에 잘 구워져 녹색이 아름답게 발현되어 있는 걸작이다. 그릇의 아가리는 일단 안으로 턱을 지어 올려 뚜껑받이를 만들었으며 뚜껑의 아가리는 수평으로 턱을 만들어 그릇의 뚜껑받이에 물리도록 만들었다. 경주시에서 출토된 것으로 화강암으로 만든 외함(外函)에 들어 있는 채로 발견되었는데, 이 골호는 통일신라시대의 골호로서는 후기(8세기)에 속하는 것으로 가장 우수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국보 제125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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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종무열왕릉비 - 국보 25호 ※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서악동 844-1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무열왕의 능 앞에 세워진 석비이다. 태종무열왕(김춘추, 재위 654∼661)은 김유신과 함께 당나라를 후원세력으로 삼아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던 비들은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받침돌은 거북 모양을 하고 있고.. 비몸위의 머릿돌에는 이무기의 모습을 새겨져 있는데..태종무열왕릉비는 이러한 양식이 나타난 그 최초의 예가 되고 있다.

비각안에 모셔져 있는 비는 현재 비몸이 없어진 채 거북받침돌위로 머릿돌만이 얹혀져 있다. 거북은 목을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등에는 큼직한 벌집 모양의 육각형을 새긴 후..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비몸을 꽂아두는 네모난 홈) 주위로 연꽃조각을 두어 장식하였다. 머릿돌 좌우에는 6마리의 용이 3마리씩 뒤엉켜 여의주를 받들고 있으며.. 앞면 중앙에 ‘태종무열대왕지비’라고 새겨 놓아 비의 주인공을 밝히고 있다.

통일신라 문무왕 원년(661)에 건립되었으며, 명필가로 유명했던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글씨로 비문을 새겨 놓았다. 표현이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있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강한 인상을 주며..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인들의 진취적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양권에서도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으로..
능숙하게 빚어낸 기법에서 당시 석조 조각의 발달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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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굴암 석굴 - 국보 24호 ※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진현동 891 석굴암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주실 안에 모시고 있는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본존불은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醍?중생들에게 자비로움이 저절로 전해질 듯 하다.?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
현재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종   목   국보   21호
명   칭   불국사삼층석탑
  (佛國寺三層石塔)
분   류   석탑
수   량   1기
지정일   1962.12.20
소재지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불국사
시   대   통일신라시대
소유자   불국사
관리자   불국사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혜공왕 10년(774) 12월 그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짓지 못하여, 그 후 나라에서 완성한 후 나라의 복을 비는 절로 삼게 되었다.

불국사삼층석탑과 불국사다보탑(국보 제20호)은 절의 대웅전 앞 뜰 동서쪽에 각각 세워져 있는데, 서쪽탑이 삼층석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의 양식을 이어받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다. 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의 기단이 튼실하게 짜여 있으며, 목조건축을 본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파손되어 1973년 남원 실상사삼층석탑(보물 제37호)의 머리장식을 본따서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를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탑이 건립된 시기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되며, 그 후 원래 모습대로 잘 보존되었으나, 안타깝게도 1966년 9월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다. 그해 12월 탑을 완전하게 복원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 제126호)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탑은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출저 : http://www.ocp.go.kr:9000/n_dasencgi/full.cgi?v_kw_str=&v_db_query=A1%3a11%2cA3%3a21%3b21&v_db=1&v_doc_no=00000021&v_start_num=1&v_disp_type=1)

       

종   목   국보   24호
명   칭   석굴암석굴
  (石窟庵石窟)
분   류   석굴
수   량   1기
지정일   1962.12.20
소재지   경북 경주시 진현동 891 석굴암
시   대   통일신라시대
소유자   석굴암
관리자   석굴암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軀)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주실 안에 모시고 있는 본존불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본존불은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로움이 저절로 전해질 듯 하다.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 현재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출저 : http://www.ocp.go.kr:9000/n_dasencgi/full.cgi?v_kw_str=%bc%ae%b1%bc%be%cf&v_db_query=A1%3a00&v_db=1&v_doc_no=00000024&v_start_num=1&v_disp_type=1)

       

종   목   국보   112호
명   칭   감은사지삼층석탑
  (感恩寺址三層石塔)
분   류   석탑
수   량   2기
지정일   1962.12.20
소재지   경북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1
시   대   통일신라시대 초기
소유자   국유
관리자   경주시


감은사터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쌍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로,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았다. 문무왕은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다. 이러한 호국사상은 탑에도 이어져 장중하고 엄숙하면서도 기백이 넘치는 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개에 이르는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탑을 세운 시기는 신문왕 2년(682)으로,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청동제사리(보물 제366-1호)와 청동제사각감(보물 제366-2호)이 발견되었다. 경주에 있는 3층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출저 : http://www.ocp.go.kr:9000/n_dasencgi/full.cgi?v_kw_str=&v_db_query=A1%3a11%2cA3%3a112%3b112&v_db=1&v_doc_no=00000112&v_start_num=1&v_disp_type=1)

       
종   목   국보   5호
명   칭   법주사쌍사자석등
  (法住寺雙獅子石燈)
분   류   석등
수   량   1기
지정일   1962.12.20
소재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209 법주사
시   대   통일신라시대
소유자   법주사
관리자   법주사


법주사 대웅전팔상전 사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사자를 조각한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매우 특수한 형태를 하고 있다.

넓다란 8각의 바닥돌 위에 올려진 사자 조각은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래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아랫돌과 윗돌에는 각각 연꽃을 새겨 두었는데, 윗돌에 두 줄로 돌려진 연꽃무늬는 옛스러운 멋을 풍긴다. 사자는 현재 남아있는 사자조각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 머리의 갈기, 다리와 몸의 근육까지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은 8각으로 높직하며, 네 곳에 창을 내어 불빛이 새어나오도록 하였다. 지붕돌은 처마밑이 수평을 이루다가 여덟 귀퉁이에서 위로 살짝 들려 있는데, 꾸밈을 두지 않아서인지 소박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석등을 세운 시기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측되며, 조금 큰 듯한 지붕돌이 넓적한 바닥돌과 알맞은 비례를 이루어 장중한 품격이 넘친다. 신라의 석등이 8각 기둥을 주로 사용하던 것에 비해 두 마리의 사자가 이를 대신하고 있어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시도였을 것으로 보이며, 통일신라는 물론 후대에 가서도 이를 모방하는 작품이 나타났다. 같은 절 안에 있는 법주사 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과 함께 신라 석등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출저 : http://www.ocp.go.kr:9000/n_dasencgi/full.cgi?v_kw_str=&v_db_query=A1%3a11%2cA3%3a5%3b5&v_db=1&v_doc_no=00000005&v_start_num=1&v_disp_type=1)

       

종   목   국보   35호
명   칭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
  (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분   류   석탑
수   량   1기
지정일   1962.12.20
소재지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시   대   통일신라시대
소유자   화엄사
관리자   화엄사


지리산 자락에 있는 화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세운 절로, 호남 제일의 사찰답게 많은 부속 건물과 화엄사 각황전앞석등(국보 제12호), 화엄사 동오층석탑(보물 제132호), 화엄사 서오층석탑(보물 제133호), 화엄사 원통전전사자탑(보물 제300호) 등의 중요한 유물들이 전해온다. 탑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절 서북쪽의 높은 대지에 석등과 마주보고 서 있으며,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천인상(天人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악기와 꽃을 받치고 춤추며 찬미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장 주목되는 위층 기단은 암수 네 마리의 사자를 각 모퉁이에 기둥삼아 세워 놓은 구조로, 모두 앞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다. 사자들에 에워싸여 있는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있는 스님상이 있는데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전하며, 바로 앞 석등의 탑을 향해 꿇어앉아 있는 스님상은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한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본떠 새기고, 양 옆으로 인왕상(仁王像), 사천왕상(四天王像), 보살상을 조각해 두었다. 평평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이 있으며,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있다.

각 부분의 조각이 뛰어나며, 지붕돌에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위층 기단의 사자조각은 탑 구성의 한 역할을 하고 있어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異形)석탑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출저 : http://www.ocp.go.kr:9000/n_dasencgi/full.cgi?v_kw_str=&v_db_query=A1%3a11%2cA3%3a35%3b35&v_db=1&v_doc_no=00000035&v_start_num=1&v_disp_type=1)

 

아. 똑같은 것도 나왔습니다만 도움이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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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야후 지식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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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통일신라의 문화재에는 무엇이 있나요?

:show_id_layer(this,'so5059','KIN','ING','130602','2965594');" href="javascript:void(0);">so5059 (2007-09-13 20:54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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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ongmo.edu-i.org/2000/700

요기로 들어가세용~~

도움이 될것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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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통일신라의 문화재에는 무엇이 있나요?

:show_id_layer(this,'shlad','KIN','ING','130602','2965594');" href="javascript:void(0);">shlad (2007-09-14 11:56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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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구려의 문화재라면 빠질 수 없는게 있죠..

바로 무용총이에요.

무용총은 고구려 사람들이 사냥 하는 것을 그려놓은 그림??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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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될까염...

 

분황사석탑 :  국보 제 30호

 

만든시기 : 신라 634년 (선덕여왕)

 

장소 : 경북 경주시 구황동

 

특   징  : 현존하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분황사 모전석탑이라고도 부르며,
               원래는 9층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3층만 남아 있고

               높이는  9.3m이다.
               임진왜란 때 크게 훼손되었다고 하며,
               지금의 모습은 1915년 일본인들에 의해서

              수리 복원된 것이다. 
              수리 당시 탑 안에서 사리함과 구슬 등의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감은사지 3층 석탑 : 국보 제 112호

 

만든시기 : 신라 682년 (신문왕)

 

장소 : 경북 경주시 양북면 감은사

 

특징 : 수십개에 이르는 부분 석재로 조립되었으며
            1960년에 서쪽 탑을 해체, 수리할 때 3층 탑신에서
            창건 당시에 넣어둔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고선사지 3층 석탑 : 국보 제 38호

 

건립시기 : 통일신라 전기 (7세기후반)

 

장소 : 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 박물관

 

특징 :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의 옛 터에 세워져 있던 탑으로,
           덕동댐 건설로 인해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1975년에 지금의 자리인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불국사 3층 석탑 : 국보 제 21호

 

건립시기 : 통일신라 751년

 

장소 : 경북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특징 : 불국사 대웅전 앞 뜰에 동서로 세워진 2탑 중 서쪽에 있는 탑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이며
            흔히 줄여서 '석가탑'이라고도 한다.
            이 탑은 1966년 해체·복원공사를 하던 중

            제2층 탑신 중앙부 사리공에서
            '금강사리함'과 많은 유물이 발견된 가운데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8세기 초엽 목판으로 인쇄된

            다라니경문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임이 밝혀졌다.

 

 

 

다보탑 : 국보 제 20호

 

건립시기 : 통일신라 756년

 

장소 : 경북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특징 : 보존불을 중심으로 총 59체의 불상을 조각하였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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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불국사다보탑

 

 

종 목 국보 제20호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불국사

시 대 통일신라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짓지 못하여 그 후 나라에서 완성하여 나라의 복을 비는 절로 삼게 되었다.

 

다보탑과 석가탑(불국사삼층석탑,국보 제21호)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4m로 같다. 절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탑이 다보탑이다.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석가탑을 보면 2단의 기단위에 세운 3층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십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탑이 건립된 시기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된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았을 듯한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다.

 

2.불국사삼층석탑(석가탑)

 

 

종 목 국보 제21호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불국사

시 대 통일신라

 

불국사삼층석탑과 불국사다보탑(국보 제20호)은 절의 대웅전 앞 뜰 동서쪽에 각각 세워져 있는데, 서쪽탑이 삼층석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석탑으로,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의 양식을 이어받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다. 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의 기단이 튼실하게 짜여 있으며, 목조건축을 본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파손되어 1973년 남원 실상사삼층석탑(보물 제37호)의 머리장식을 본따서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를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탑이 건립된 시기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되며, 그 후 원래 모습대로 잘 보존되었으나, 안타깝게도 1966년 9월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다. 그해 12월 탑을 완전하게 복원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제126호)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탑은 ‘무영탑(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3.불국사연화교칠보교

 

 

종 목 국보 제22호

분 류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교통/ 교량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불국사

시 대 통일신라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세속 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라, 서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세속 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라,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전체 18계단으로, 밑에는 10단의 연화교가 있고 위에는 8단의 칠보교가 놓여있다. 청운교·백운교보다 규모가 작을 뿐 구조나 구성형식 등이 매우 비슷한데,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성이나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한 점, 다리 아래가 무지개 모양을 그리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비슷한 구성 속에도 이 다리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연화교의 층계마다 연꽃잎을 도드라지게 새겨놓았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오랜 세월동안 스쳐간 사람들의 발자국 탓에 많이 닳아서인지 조각이 희미해져 있어, 지금은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창건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오르내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하였고, 비구니가 된 신라 헌강왕비도 이곳을 오가며 왕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가 웅장한 멋을 보여주는데 비해, 섬세한 아름다움을 내보이고 있어, 불국사의 조형에 조화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4.불국사청운교백운교

 

 

종 목 국보 제23호

분 류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교통/ 교량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불국사

시 대 통일신라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는데,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전체 33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33이라는 숫자는 불교에서 아직 부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33가지의 단계를 의미한다. 즉, 다리를 통해 깨달음에 다다르고자 하는 ‘희망의 다리’, ‘기쁨과 축복의 다리’로의 표현의지인 것이다. 아래로는 17단의 청운교가 있고 위로는 16단의 백운교가 있는데, 청운교를 푸른 청년의 모습으로, 백운교를 흰머리 노인의 모습으로 빗대어 놓아 인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오르는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하여 정교하게 다듬었다. 다리 아래는 무지개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직선으로 딱딱해졌던 시선을 부드럽고 생동감있게 풀어주고 있다. 다리가 있는 석축 아래쪽으로 연못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지금도 계단 왼쪽에 물이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 물이 떨어지면 폭포처럼 부서지는 물보라에 의해 무지개가 떴다고 전하고 있어,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옛 불국사를 그려보게 된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신라시대의 다리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무지개모양으로 이루어진 다리 아래부분은 우리나라 석교나 성문에서 보여지는 반원아치모양의 홍예교의 시작점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5.불국사금동비로자나불좌상

 

 

종 목 국보 제26호

분 류 유물 / 불교조각/ 금속조/ 불상

수량/면적 1구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불국사

시 대 통일신라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삼국유사』에 의하면 김대성은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 석굴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불국사 비로전에 모셔져 있는 높이 1.77m의 이 불상은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기교있게 붙여 놓았으며, 얼굴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자비로운 인상을 풍기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은 매우 얇게 표현되어 당당한 신체의 굴곡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는 옷주름의 표현은 매우 사실적이다. 손모양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어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과는 반대로 표현되었다.

 

떡 벌어진 어깨, 양감있는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등에서 이상적이면서 세련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6.불국사금동아미타여래좌상

 

 

종 목 국보 제27호

분 류 유물 / 불교조각/ 금속조/ 불상

수량/면적 1구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불국사

시 대 통일신라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 경주시 토함산 기슭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삼국유사』에 의하면 김대성은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 석굴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불국사 극락전에 모셔진 높이 1.66m의 불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기교있게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원만하고 자비스러운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으며, 눈썹은 반원형이고 콧날은 오똑하다. 떡 벌어진 어깨, 당당한 가슴, 늘씬한 몸매 등은 장대하고 건강한 남성의 체구를 연상시키며, 두 무릎은 넓게 퍼져서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에는 거침없는 주름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옷깃 안쪽에서 밖으로 늘어지는 옷 접힘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어깨 높이로 들어 약간 오므린 왼손은 손바닥을 보이고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에 올려 놓고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약간 구부리고 있다.

 

떡 벌어진 어깨, 양감있는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등에서 사실적이면서 세련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7.법주사쌍사자석등

 

 

종 목 국보 제5호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석등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209 법주사

시 대 통일신라

 

 법주사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사자를 조각한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매우 특수한 형태를 하고 있다.

 

넓다란 8각의 바닥돌 위에 올려진 사자 조각은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래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아랫돌과 윗돌에는 각각 연꽃을 새겨 두었는데, 윗돌에 두 줄로 돌려진 연꽃무늬는 옛스러운 멋을 풍긴다. 사자는 현재 남아있는 사자조각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 머리의 갈기, 다리와 몸의 근육까지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은 8각으로 높직하며, 네 곳에 창을 내어 불빛이 새어나오도록 하였다. 지붕돌은 처마밑이 수평을 이루다가 여덟 귀퉁이에서 위로 살짝 들려 있는데, 꾸밈을 두지 않아서인지 소박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석등을 세운 시기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측되며, 조금 큰 듯한 지붕돌이 넓적한 바닥돌과 알맞은 비례를 이루어 장중한 품격이 넘친다. 신라의 석등이 8각 기둥을 주로 사용하던 것에 비해 두 마리의 사자가 이를 대신하고 있어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시도였을 것으로 보이며, 통일신라는 물론 후대에 가서도 이를 모방하는 작품이 나타났다. 같은 절 안에 있는 법주사 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과 함께 신라 석등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8.중원탑평리칠층석탑

 

 

종 목 국보 제6호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11

시 대 통일신라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당시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앙탑이라고도 부르는 이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시작되는 기단은 각 면마다 여러 개의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 끝이 경쾌하게 치켜올려 있어 자칫 무겁게 보일 수 있는 탑에 활기를 주고 있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탑 정상의 머리장식은 보통 하나의 받침돌 위에 머리장식이 얹어지는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이중으로 포개어진 똑같은 모양의 받침돌이 머리장식을 받쳐주고 있다.

 

기단에서의 기둥조각 배치,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의 짜임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8세기 후반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커서 웅장하기는 하나 너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듯 하여 안정감은 덜하며, 세부수법이 약화되고 섬약해져 있어 당시의 경향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1917년 탑을 보수할 때 6층 몸돌과 기단 밑에서 사리장치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6층 몸돌에서 발견된 거울이 고려시대의 것으로 밝혀져 탑 조성 이후 고려시대에 와서 2차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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