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신분제도와 양반과 상민들의 생활모습을 A4용지 1장만큼만 써...

조선시대의 신분제도와 양반과 상민들의 생활모습을 A4용지 1장만큼만 써...

작성일 2005.04.05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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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를 좀 정확하면서도 요약해서 적어주시구요, 양반과 상민들의

 

생활 모습을 비교한 것을 적어 주세요 아 그리고 다음 숙제인데 임진왜란의 원인과 결과

 

두 좀 적어주시면 좋겠구요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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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법적인 신분제도는 양천(양반,천민)이지마는 실제로는 4가지 입니다.
1.양반-양반은 문반+무반으로 되어 있어 양반이라 부르고요.
조선시대의 양반들이 하는 일과표를 보니 거의 글공부를 하였습니다.
(문반경우에)왜냐하면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 지금의 사법고시보다 더욱 어려워서 하루종일 공부만 하였습니다.
시간이 나면은 사냥도 하고 난도 치고 자기 땅을 소작하는 소작인이나 마름, 돈을 대주는 상인이나 자기 광산을 순시하기도 했습니다.(조선후기때)
무반은 주로 조선세법(검술), 활쏘기, 말타기등 장군이 되기 위한 무술단련에 힘을 썻고요(그렇다고 글공부를 게을리 한것 아니죠.) 병법을 공부했습니다.

2. 중인 - 의관은 혜민서나 내의원에서 왕이나 신하, 백성들을 치료했습니다.
역관은 중국이나 일본등지로 가는 사신을 수행해서 통역하고, 상행위를 하기
도 했습니다.(그 때문에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외에는 관청에서 양반들을 도와 일을 했습니다.

3.상민-백성들의 대부분을 이루고, 주로 농사를 짓고, 수공업, 상업 등을 하였습니다.
부역의 의무가 있어서, 세금을 내고 군대에 가야 했고, 말로는 과거제도에 응
시 할수 있었지만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서 관리가 될 수도 없었습니다.
거의 풍족하게 살지 못하고, 관리나 양반들이 무고하게 때리거나 삥(?)을 뜯어
도 불쌍하게 다 뜻기고, 보릿고개때는 초근목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
다.
평소에는 농사짓느라 별만 보고 살았습니다.

4.천민-양반집 관청 등에서 종이나 노비로 일하고. 갓바치나 백정 등 험한 일을 했습니다.
무당이나 광대(현재 연애인)등이 있었고, 천민인 노비는 재산으로 간주되어 매매·상속·양도·증여의 대상이 되었으며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노비와 양인이 싸웠을 경우 노비는 한 등급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았습니다.
한번 천민은 영원한 천민(전공을 세웠을때 제외) 만약 양반들에게 개패듯이 맞아 병신이 되어도 하소연 할 수 없고, 당하기만 하는 초 불쌍한 존재였습니다...

A4쪼금 안되여....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역사적으로 신분제는 근대 이전에는 지배적이었으며, 각 신분은 제도로서 거의 법제화하여 세습적으로 고정되어 봉쇄적 ·배타적 특징을 지니고 있고, 각 신분간에는 귀 ·천, 상 ·하의 구별이 설정되어 있었다. 한편 계급은 생산수단 소유의 유무와 생산과정에 있어서의 역할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신분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러나 봉건사회에서는 신분과 계급의 혼동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것은 신분과 계급이 자본주의사회의 그것보다는 겹쳐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계급사회에 있어서 지배계급은 지배를 영속화하여 이를 불가침의 것으로 하기 위해 온갖 종교적 ·세속적인 의례(儀禮) ·신화 ·제도에 의해 지배의 존엄성을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지배계급이 존귀하고, 피지배계급은 존귀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되는 신분적인 싹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명확하고 복잡한 형태를 갖추게 되는 것이 봉건사회이다. 봉건사회에서는 농민과 소수의 수공업자 및 상인이 지주와 더불어 2대 계급을 이루는데, 이 가운데 지주의 중심세력은 영주(領主) 및 귀족이며, 그 지위는 세습적이었다. 거기에 생산력은 낮고 사회의 변화는 완만하고 미미하였기 때문에 이 부동성(不動性)에 근거해서 각종 법제도가 지주에게 특권을 부여하여 이를 귀족이라 하고, 농민 ·수공업자 ·상인에게 의무를 부과해서 이를 평민으로 함으로써 계급에다 신분이라는 외투를 걸쳤다. 그러나 이 귀족이나 평민 속에서도 각각 몇 개의 신분층이 만들어져 여기에서 탈락되는 자들은 갖은 명칭의 천민신분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고조선의 ‘8조금법(八條禁法)’에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는다”는 규정이 있어 지배층 ·피지배층과 더불어 최하 신분층인 노예신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BC 1세기경의 부여는 귀족인 사가(四加)와 관리층인 대사(大使)가 지배계급의 신분이었고 하호(下戶)가 피지배층이었으나 토착민으로서 공납(貢納)을 강요당하는 농노적 신분이었다.

고구려에는 왕족 ·준왕족, 5부족의 우두머리인 대가(大加)와 그 밑의 관료군(官僚群)으로 지배계급의 상위신분층을 이루고, 부여와 같은 하호가 노예 ·농노를 포함한 피지배 신분의 일반시민이었다.

백제의 신분제도는 자세하지 않으나, 토착의 씨족공동체를 이루었던 해씨(解氏) ·연씨(燕氏) ·협씨(氏) 등 8성(姓)의 귀족이 왕족과 더불어 최상의 신분층을 이루었다.

신라는 성골(聖骨) ·진골(眞骨)의 골제(骨制)와 6두품(六頭品) 이하 1두품까지의 두품제로서 독특한 신분체제를 갖추었다. 이에 따르면 성골 ·진골은 왕족이고 6두품 이하 4두품까지는 귀족이며, 3두품 이하는 평민층으로 관직담당은 4두품 이상에 한하였다. 그러나 왕족 및 귀족과 평민 사이에는 신분의 고하가 있어 관직의 등용, 특권 등에 차이가 있었다 하나 신분적 예속관계는 없었고 그 하층신분의 노예가 신분적으로 예속되어 있었다.

중세의 고려시대에는 대체로 지배층 ·서민층 ·천민층으로 신분이 구분되어 왕실 ·종친(宗親) ·척신(戚臣) ·공신(功臣) 등이 지방관과 요충지(要衝地)의 지방관을 차지하고 지방의 호족(豪族)들이 향직(鄕職)을 맡았다. 그러나 과거제도가 도입되면서 천인 및 노예를 제외한 왕족 ·귀족, 지방의 향족도 시험으로 등용되어 관료제도가 확립되었다. 또한 여기에 고관 또는 공신의 자손을 유일(遺逸) ·음관(蔭官) 등으로 특채하는 제도가 곁들여 가계(家系)에 의해 관직에 등용되는 새로운 지배층이 형성되었는데, 이상의 계층은 차차 문무관(文武官)의 정직(正職)을 맡을 수 있는 양반계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다음 중간계층이라 할 서인층(庶人層:良人)에는 남반(南班)과 잡기(雜)와 잡직(雜職) 및 기타의 양민층이 이에 속하였다. 서인층에서도 가장 격이 위인 남반은 궁중의 내료직(內僚職)에 취임할 수 있는 계층으로 그 직능은 궁중의 당직 ·시종 등이었다. 잡기는 기술로써 벼슬하는 계층으로, 의복(醫卜) ·지리 ·율(律) ·산(算) 등에 종사하였으며, 잡직은 사역(使役)으로 사관(仕官)하는 부류로, 대개 막사(幕士) ·문복(門僕) ·전리(電吏) ·장수(杖首) ·진역리(津驛吏) ·부곡리(部曲吏) 등 최하급 관리였다. 남반 이하 서인층 관리의 사회적 신분은 문 ·무 양반에 비할 수 없이 낮아 벼슬에도 제한이 있고, 그들 자손에게도 학교교육에 많은 제약이 따랐다. 그러나 서인층의 중심을 이루었던 것은 대다수 농민으로 이 중의 남자(丁)는 16세에서 59세까지 병역과 조역(調役) 등의 국역(國役)을 담당하여 국가의 국방력과 생산력의 중추적 기반이었다. 그러나 양반 ·귀족과 그 자제들은 국역에서 제외되는 특전을 받았다.

다음의 천인계층은 진척(津尺:津丁) ·역정(驛丁) ·양수척(楊水尺:禾尺) ·재인(才人:광대) ·상인(商人) ·공장(工匠) ·악공(樂工) ·노비(奴婢) 및 향(鄕) ·소(所) ·부곡(部曲) ·도민(島民)으로, 이들은 가장 천대를 받았던 최하의 신분층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천대를 받았던 노(奴)와 비(婢)는 왕궁 ·관청 등에 소속된 공노비(公奴婢)와 사찰에 소속된 사노비(寺奴婢), 귀족 등 개인에게 소속된 사노비(私奴婢) 등으로 구분되어 매매 ·증여 ·상속 ·약탈 ·전당 등의 대상이 되었다.

노비의 값은 15세 이상 50세 이하가 가장 높아 포(布) 120필, 15세 이하 60세 이상은 가장 낮아 50필에 해당하는 등 효용가치에 따라 달랐다. 이들은 소유주의 호적에 올라 어느 정도 법률상의 보호를 받고 특수한 공로가 있으면 벼슬을 할 수도 있고, 양반의 비첩(婢妾)이 되기도 하였다. 고려의 신분제도는 비교적 엄격하여 8세(世:代) 호적 중에 천인층과 혈연관계가 없어야 사관(仕官)하게 되었고, 과거를 치르는 데도 가계(家系)를 엄밀히 심사하여 천인과의 혈연관계가 있으면 응시자격을 박탈하였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는 대체로 고려의 것을 계승한 것이어서 그 구조상 본질적 차이는 없다. 다만 고려와는 달리 적서(嫡庶)의 차별이 심하여 양반의 첩자손인 서얼(庶)은 사족(士族)이 기피하는 무관(武官)의 말직을 차지하는 등 특수층을 형성하여 기술관 ·서리(胥吏) 등으로 진출하는 중인(中人)과 더불어 양반 ·양인(良人)의 중간계층을 이루었다. 다음은 법률상 양인으로 불리는 계층이 있다. 이들은 조세(租稅) ·요역(役) ·군역(軍役)을 담당한 대다수의 농민으로 서인(庶人) ·상민(常民)으로도 불렸으며, 고려와는 달리 상인(商人) ·공장(工匠)도 양인에 속하였다. 최하층의 천인으로는 노비 ·역리(驛吏) ·진정(津丁) ·백정(白丁) ·재인(才人) ·광대 ·창우(倡優) ·승려 ·무격(巫覡) 등이 있었다.

노비의 지위는 고려와 별로 다르지 않았으나 조예(隸) ·반당(伴) 등의 하졸(下卒)에 채용되는 지위가 약간 향상되었다. 역리 ·진정 등은 직무의 세습적 의무를 지녀 신분적으로는 구속되어 있었고, 창우 ·재인 ·광대 ·백정 등은 연예 ·도살(屠殺) 등 천역에 종사하였으나 신분적 구속은 받지 않았다. 권력구조와 관련하여 중국보다 엄격하고 폐쇄적이었던 조선시대까지의 신분제도는 관료층 ·생산층 ·천역층(賤役層)으로 대별되어 특권과 수탈, 제약과 구속으로 특징지워져 내려오다가 임진왜란 후의 변혁과정 속에서 서서히 붕괴양상을 띠다가 갑오개혁 후에 급속히 해체되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조선시대의 신분 제도에 관해서...

『고려와 마찬가지로 조선초에는 국가 공무원의 관등과직위를 중심으로 하여 문반과무반을 합친 양반으로 편성하였는데,낙하산체계가 더욱 정비되고 관등과직위의 높고 낮음에 따른 차별이 크게 줄었다.

14세기 후반부터 전국에 퍼져있던 유향품관 에게는 관직을 주지않고 품계만을 주거나 생원지방제도 진사와 같은 관직과 상관없는 자격을 주어 지배층으로 편제하였다.』

『양반』:

①조선의 상류계급으로 백성들을 지배하였다.

②유학을 공부하고 과거시험을 통과 하여관리가 된후에 나라를 다스리는데 참여 하였다.

③선비로서 바른 생활을 하여 백성들이 모범이 되도록 요구하였다.

【상민】:

①백성들의 대부분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②주로 농사짓는 일을 하였다.

③수공업,상업등을 하기도 하였다.

④세금을 내고,군대에 가야하는 의무가 있었다.

⑤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기 때문에 관리가 될수 없었다.

☆천-민☆:

①양반집,관청등에서 종이나 노비로 일을 하였다.

②갓바치,백정등 험한일은 천민이 하였다

③향,소,부곡등에서 따로 사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많았다.)

이글 괜찮나요?}-{좀이상한것 같네요

하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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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이란?관리가되어나라를 다스리는에에 직접 참여하였고 관리가 되지 않은 양반은 주로 활쏘기나유교경전 (글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농사는 천민들이 해주어 양반은 편안함 그자체이다

중인이란?양반을 도와 관청에서 일하였다 앙반보다 낮은 계층이다

상민이란? 농업,수공업,상업등에 종사하였다 백성들의 대분분이다 상업에종사하는사람들은 천대받았다그 종류는 시전상인 보부상 등등~농업에 종사하는사람이 가장 많았다

세금을 내고 군대에가야하는 의무가있다

천민이란?종으로 불리 노비들과 천하게여겼던 직업에 종사하는사람들 이었다 →넘불쌍해

그리고 관리에서 그들을 막 부려먹었다 ☆좋은 참고자료 되셨길 바레요 ^^
보부상-마을마다 돌아다니면 장사를 하던사람 이사람의 반대 시전상인-마을 한곳에서 장사를 하던사람 이런 상업에 종사하던사람은 조선시대에 천대받았당~

임진왜란으로 명나라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일본이 처들어온 까닭?명나라와 친하게 지내다 조선에게 명나라를 가는 길은 내달라고하여 조선이 거부하였다 그때 이러난 전쟁이 임진왜란이다 과정은 부산진성,동래성이 무너지고 두달만에 한양과 평양을 빼앗겼다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고 명나라에 지원병을 요청함 이때 힘쓴 장군이 이순신장군이다 임진왜란 3대첩에는 진주대첩 행주 대첩 한산도 대첩 이있다 특히 한산도 대첩에서는 이순신의 학익진 전법이 유명한데 ...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7년만에 일본을 물리쳤다 하지만 이순신은 죽음에 처했다 결과는 국토가 황폐해지기는 물론이고 많은 문화재가 불타 없어지고 학자와 기술자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래서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문화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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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신분제도라..

일단 왕→사대부(신하)→양반→평민→노비 순입니다

왕은 그나라를 통치하는 우두머리고

사대부들은 고위관직자들이며 궐력에 핵심인물들입니다

또한 양반들은 사대부는 아니지만 과거를 볼수있으며 과거를 보고 합격할경우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평민들은 대략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고

노비들은 사대부나 양반들의 시중을 드는 사람이였습니다

(노비들은 만일 시중을 드는 인물이 반란을 일으키는면 그걸 관청에 신고할경우

노비의 신분에서 평민이 될수 있었다)←만치는 않았지만..

또한 사대부들중 역심을 품고 반란을 도모하는 경우

성공할경우 반정이되고 실폐할경우 난이된다

성공할경우 왕족들중 왕위에 오를 수있는 자를 선택해 그자를

왕위에 올리고 자신들은 반정에 일등공신이 되어 평생을 보장받았다

실폐할 경우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참수되며 그일가족들은 노비가되

팔려가게 된다 또한 반란을 일으킨자들의 아들들 또한 참수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중에 복수할까봐)물론 참수당하지 않으려면 평생 숨어살아야한다

여성의 신분은

왕실에서는 대왕대비→왕대비→대비→왕비→공주,옹주→후궁→상궁→나인→무수리→방자(또있는데 생각이않남)

→의녀

외명부중에서는 부부인(왕비의어머니)→부부인,부인(대군과 군의 아내)→그밖에 사대부의 부인들

왕실밖에서는 평민,기생,노비(가노라고들한다)등이있다

상민들의 생활모습을 A4용지 1장만큼만...

일단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를 좀 정확하면서도 요약해서 적어주시구요, 양반과 상민들의 생활 모습을 비교한 것을... 당하기만 하는 초 불쌍한 존재였습니다... A4쪼금 안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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