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한복의 특징(내공드림)

시대별 한복의 특징(내공드림)

작성일 2005.04.03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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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생 5학년되는 어리~인 나이랍니다 ^^

부족국가의 한복의 특징과 발해의 한복의 특징을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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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한복의 변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삼국시대에 복식은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서 볼 수있는데 머리에는 관모를 으며 저고리가 엉덩이까지 내려오고 직선으로 교차시켜 여미는 깃형태의 직령교임식으로 외쪽여밈이다. 또 깃 부리 도련에는 다른 천으로 선을 두르고 바지는 가랑이가 좁은 홀태바지 형이다. 그리고 양복바지와 같은 궁고 가랑이가 넓은 광고 잠방이와 같은 바지도 있었다. 치마는 길이가 길고 거단까지 잔주름이 잡혀 있다. 두루마기는 무릎을 내려갈 정도로 길고 저고리와 같이 선도 보인다. 신은 주로 화를 신고 이도 병용하여 신었다.

[고구려]
고구려는 BC 37년에 건국되었다. 원래 고구려는 동북 아시아적인 문화 위에 웃 북부 중국의 한(漢) 육조문화 그리고 북부 중국을 거쳐서 스며드는 고대 서북방 민족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만주에 진출했던 흉노족을 비롯한 변방의 여러 부족을 통한 스키타이문화 등 북방계 문물과도 접촉했다. 고구려의 복식은 평양 부근과 통구평야 지대이다. 먼저 머리에는 남녀 모두 관모를 썼는데, 남자들은 건, 책, 절풍, 입, 변등을 썼고 여자들은 건귁을 썼다. 북방계 유목민있어던 우리 민족은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추위를 피하거나 햇빛을 가리기 위해 '관모'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기록으로는 '삼국지'의 '부여전'에 금과 은으로 장식한 모자를 썼다고 처음 나온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는 책이나 절풍을 비롯한 많은 관모가 나타난다. 또'삼국지'난 '후한서'등에는 '고구려에서 는 대가와 주부는 책을, 소가는 절풍을 썼는데, 그 형태는 고깔 모양이었다'라고 씌여 있다.
이것으로 보아 고구려의 관모는 실용적인 목적외에도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었다. '당서'나 '구당서'의 '동이전'에는 "부인은 머리에 건귁을 썼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것은 고구려의 여인들은 건귁이라는 머릿수건을 즐겨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건귁은 계속 이어져 내려와 근세 이후 개성 이북의 여인들이 많이 쓰던 머릿수건이 이것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고구려의 두루마기의 기본형은 곧은 깃에 왼쪽여밈, 좁은 소매였다. 이 두루마기는 저고리인 유가 길어진 것으로, 하층계급의 사람들이 입었다.상류층에서는 둥근 깃에 오른쪽 여밈, 넓은 소매로 된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중국 한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 추위를 막기 위해 입던 두루마기는 점차 의례적인 차림으로 바뀌어 갔다. 저고리는 곧은 깃에 좁은 소매, 왼쪽 여밈으로 되어있고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이가 길었다. 바지는 통이 좁았는데 신분이 높은 사람은 중국식의 통 넓은 바지를 입기도 하였다. 여자들은 짧은 치맛속에 바지를 덧입었다. 치마는 무용총 접견도에 보이는 승복용 치마를 제외하면 모두 여자의 옷이었다. 일반적으로 길이가 길고 허리에서 치맛단에 이르기까지 잔주름이 있으며, 저고리와 마찬가지로 치마 끝에 선을 둘렀다.

[백제]
백제는 고구려와 같이 부여족의 한 갈래이다. 시조왕(始祖王) 온조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백제라 하였다. 그 후 마한의 여러 부족국가를 멸망시키고 북으로 대방군을 공격하여 국세를 확장시켰다. 그러는 동안 고구려를 통해 북조문화의 영향을 받고 중국 남조문화를 들여와 찬란한 백제문화를 형성하였다. 백제의 초반(AD6C)엔 뛰어난 금속공예술을 보였다. 이시대에 많은 장신구들이 출토되었다. 백제의 복식 모양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난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고 본다. 곧 허리까지 오는 저고리에 바지(또는 치마)를 입었고 필요에 따라 포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양의 직공도에 보이는 백제국사의 옷 모양이, 고구려 백화의 인물상의 옷과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한층 확실시되고 있다. 다만 백제국사의 옷 모양에서 특이한 사실은 바지 끝단에 선이 둘러져 있었고 양복바지와 같이 대님을 매지 않고 그대로 입었다는 점이다.
물론 고구려 백화의 인물상에서도 바지 밑단에 가선을 두르거나 부리를 동여매지 않고 입은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의 예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만큼 고구려와 백제의 의복 차이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신라]
신라의 복식을 보면, 먼저 관모로는 일반인의 경우 가죽으로 만든 삼각형의 변형모를 많이 썼다. 또한 상류층에서는 금, 은, 옥 등으로 만든 금속제 관모를 예복용으로 썼다. 신라의 의복에서 남자는 허리까지 이르는 저고리에 통이 넓은 바지를 입었는데, 바짓부리는 묶여져 있었다 또한 여자는 허리 아래에 이르는 저고리에 발목까지 오는 긴 주름치마를 입고 있었다. 이러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기본적인 옷차림이 고구려인과 같았다는 것을 뜻한다. 기본 복식 위에 입었던 포도 그 형태가 고구려나 백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신라의 신 또한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이와 화가 함께 착용되었는데, 이는 주로 여자들이 많이 신었고 화는 남자들이 많이 신었다. 신의 재료도 천,금속제,흙,풀 등의 다양한 재료가 이용되고 있어 삼국 중에서는 가장 화려한 신발 문화를 이룩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화는 크게 발달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화가 남녀 모두에게 착용된 고구려와는 달리 신라에서는 남자들만 착용하였으므로 미에 관심이 많은 여자용의 이처럼 다양한 발달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신라의 복식 생활에서 또 하나 특기할 사실은 의료 수공업의 발달이었다. 이는 일찍이 신라에 가배라는 방적기술 연마 풍속이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의료 중에서도 특히 많이 생산된 것은 마포였고, 가는 견사를 날실로 하고 굵은 견사를 씨실로 해서 짠 비단의 일종인 모초도 생산되었다

통일신라는 기본적으로 호복계통인 고유복식의 구조 위에 삼국시대에 없었던 새로운 복식이 등장하는데, 관모에 있어서는 복두가, 의복에 있어서는 반비(半臂), 배당, 그리고 표가 그것이다. 삼국시대와 마찬가지로 통일신라기에도 바지는 남녀 공용이었다.
또한 여자들의 경우 평상시에는 바지만 입고 생활하다가 외출할 때에 예복용으로 치마를 덧입던 것도 삼국시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바지의 모양은 남녀 모두 바지통이 넓은 대구고를 입었고, 계급에 따른 의차는 옷감에 두었다.
한편 서민의 노동복은 길이가 짧고 바지통이 좁은 쇠코잠방이형의 바지가 착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치마의 모양은 치마허리와 끈, 그리고 치마의 부분으로 구성됨으로써 근본적으로는 삼국시대와 같았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의 치마는 표상과 내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새대의 내상은 단순한 속치마였다기보다는 다분히 의례적인 용도로 착용된듯 하다. 그것은 흥덕왕 복식금제에 진골녀의 표상이나 내상은 금제 대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어떤 화려한 옷감을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시대 여성들의 치마는 매우 화려했을 것으로 보이며, 그 길이 또한 땅에 끌릴 정도였음을 토우상을 통해 추측할 수가 있다.
이러한 통일신라기의 화려하고 긴 치마가 다음 시대인 고려로 이어져 많은 필수를 들여 치마폭을 제작하는 새로운 풍속도를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성상의

표의(表衣)
표의는 국제(國制)인 포(袍)를 지칭한 것으로 당시에는 두루마기를 신분의 귀천 없이 남녀가 모두 착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골품계급은 중국 포(袍)의 영향을 받아 활수형 (闊袖型) 이었고, 서민계급은 우리 고유 포 그대로 착수형(窄袖型)이었다. 옷감은 무늬 없이 짠 순색(純色)직물을 이용하였고,유관자(有官者) 만이 면주표의 (綿紬表衣)를 입었다.

단의(短衣)
저고리를 신라에서는 위해(尉解)라고 하였다.
그런데 흥덕왕 복식금제의 기록에는 단의라고 있어 오늘날 저고리와 같이 길이가 짧아지게 되어서 명명된 것인지, 또 두루마기에 비하여 짧아지게 되어서 명명된 것인지, 또 두루마기에 비하여 짧다는 뜻에서 단의라 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단의는 6두품, 5두품, 4두품, 여(女)에 대한 금제 (禁制)가 보일 뿐 남자에 대한 것이 없어서 더욱 그 형태를 알 수 없다.

내의(內衣)
내의는 표의(表衣)에 대응하는 것으로 포(袍)에 대한 유를 말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에서는 단의 (短衣)를 유와 같 것이라 고 보아서 내의를 글자 그대로 속옷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내의의 제도와 형태는 단의와 같이 전혀 알수가 없지만 5두품,
4두품은 소문릉(小文綾), 6두품 이상은 계, 수(繡), 금(錦), 나(羅)를 금하고 있는데, 이런 사항으로 보아 당시 복식의 사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반비(半臂)
반비는 당대(唐代)에 비롯한 복식으로 통일 이후에 들어온 것이라 생각한다. 남녀공용이며 여자가 남자보다 화려한 의차(衣次)를 사용하였다. 반비는 복식금제에서 보면 평인남녀는 규제가 없으므로 사용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형태에 대해서는 정확한 것을 알 수 없으므로 인접국가인 당(唐)나
라와 일본(日本)의 나라 조(朝)의 정창원 (正倉院) 유물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당(唐)과 일본(日本)의 단수의(短袖衣)를 참조하여
라대(羅代)의 반비의 형태를 추정하면 반소매에서 무수(無袖)까지 의 소매길이이며, 여밈의 형식은 고름을 사용하거나 매듭장식을 쓰고, 길이는 가슴 바로 밑까지 오거나 무릎까지 오는 것으로 다양하며 겉옷으로 착용되었고, 방한(防寒)의 목적보다는 의례적(儀禮的)인 목적이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반비와 같은 단수의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답호, 전복, 쾌자, 더그레, 배자, 몽두의로 분화되고, 현재는 서양식이 가미된 조끼로 전승
되지고 있다

남성하의


고(袴)
신라에서는 가반(柯半)이라고 하고, 복식금제에 남자의 고(袴)뿐만 아니라 여자의 고(袴)에 대해서도 규제하고 있는 것을 보아 삼국시대와 마찬가지로 이 때에 와서도 여자착고의 풍속은 여전하여 바지만 입기도 했으나, 의례용으로 치마를 바지 위에 입었으리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형태는 삼국시대에 이미 활수의에 대구고(大口袴)로 변해 왔듯이 세고(細袴)가 아직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발해는 신흥 거란에 의해 멸망됨으로써 그들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한민족에게 이어주지 못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발해의 관복은 발해라는 국호 자체를 당의 현종으로부터 받은 [발해군왕]이라는 작호에서 따온 것인만큼, 대략 당의 사색공복제도를 모방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발해고', '발해국지'등에 나타나 있듯이 9품을 4등급으로 나누어 3품 이상의 관리는 자색의 관복에다 아홀을 주고 금어대를 찼으며, 4품과 5품은 짙은 붉은색 관복에다 역시 아홀과 금어대(金魚袋)를 찼다. 또한 6품과 7품은 옅은 붉은색 관복에다 목홀을 쥐었으며, 8품과 9품은 녹색의 관복에다 목홀을 쥐었다.
평상복은 대략 고구려의 제도를 따랐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것은 발해의 역대 왕들이 항상 고구려에 대한 계승의식을 가지고, 고구려의 전통을 이어가려고 애를 썼기 때문이다. 그 한 증거로 속일본기에는 발해 무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가 게재되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은 신라와 후백제로 하여금 스스로 합병해 오게하니, 936년에 후삼국의 재통일이 이룩되었고 이에 고려시대의 막이 열리게 되었다.고려는 처음에는 통일신라 후기의 제도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 그러나 중앙 집권화 정책을 쓰면서 고려 사회는 점차 변화되어 갔다. 이러한 정치적인 대외 관계는 고려의 복식 제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던 바, 그 변천 과정은 대략 3기로 구분된다.

제1기는 오대와 송의 영향을 인한 변화
제2기는 원의 침입으로 몽고 복식의 영향을 받으면서 생긴 변화
제3기는 명의 영향권에 들면서 생긴 변화이다.

그러나 이렇나 대외 영향은 주로 관복 제도에 변천을 가져왔을 뿐, 일반 복식은 우리 고유의 복식 구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보편적으로 넓어진 바짓가랑이, 길이가 짧아진 저고리, 넓은 치마폭 등의 세부적인 변화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복의 세부적인 변화는 전체적으로 의복의 아름다움이 강조된 것이어서 복식미의 진일보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고려시대의 복식 생활에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문익점에 의한 목면의 전래였다. 이것이 비단이나 명주를 마음대로 입을 수 없었던 서민의 복식 생활에 커다란 전환기를 마련해 주었다. 고려의 복식제도는 신라시대의 것을 계승하였을뿐만 아니라 당, 송, 원 등의 문화를 다각도로 흡수하였다. 왕복을 비롯하여 백관복에 이르기까지의 관복은 송, 중국화된 원, 그리고 명의 제도를 받아 들였으나, 일반의 복장인 우리 나라의 고유복식은 서민층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왔으며, 여성복식은 공경대부(公卿大夫)에서 사민(士民)의 처(妻), 기생(妓生)에 이르기까지 큰 차이는 없었다.
충렬왕 이후 원나라의 부용국이 되면서 복식풍습 또한 많이 몽고풍을 따르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질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으며, 공민왕때 원나라가 쇠망하고 한족에 의한 명나라가 다시 중국을 지배하게 되자 몽고풍은 사라져 갔다. 그러나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소매가 좁아진 것은 몽고 복식에서 온 영향이며, 이로 말미암아 띠가 없어지고 대신 고름을 달기도 하였다. 또 여자 화관이 당나라에서 전해 온 것이라고 하면, 족두리는 몽고인의 고고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목면의 전래가 있었고, 이것이 비단이나 명주를 마음대로 입을 수 없었던 서민의 복식 생활에 커다란 전환기를 마련해 준 시대였다.

남자의 복식

백관의 공복을 4가지 색으로 구분하여 제정한 것으로 원윤 이상은 자삼, 중단경 이상은 담삼, 도항경 이상은 비삼, 소주부 이상은 녹사밍었다. 이로부터 고려는 22대 강종 원년 1212년까지 거란, 송, 요, 금 등의 관복을 따르고 있다.
왕복: 상복, 공복, 조복, 연복, 예복이 있다. 상복은 고려 도경에 의하면 오사고모를 쓰고 금벽을 수놓은 담황색의소매가 좁은 포를 입었으며 자색 늑건을 띠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여기에 오사고모는 중국천자의 조사절상건은 복두에서 일어난 것으로 조선시대의 익선과이 되었다고 한다.

백관복 : 제복, 조복, 상복, 공복이 있다.
제복에서는 칠류면 오장복은 1풍의 6원을 입고 오류면,
삼장복은 2품에 대상경 이하 15원 까지 무류면은 3품의 41원
이입었다.
조복과 상복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고 공복은 복두를 쓰고 광종대의 사색공복제도에 따르고 있는데 그 색복계급에 있어 자, 단, 비, 녹의 4색 공복을 이루고 있다.

민서복 : 몽고풍에 비해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소매가 좁아 졌으며 고름을 매게 되었다.

진사는 사대문락건에 조주구를 입고 흑대를 혁리를 신었다. 농민이나 상인은 백저포에 조선, 민장은 조주구에 문라건, 흑각대, 오혁리였다. 뱃사람은 바지저고리를 입지 않고 죽관에 단갈만 입었다고 하는데, 그 형태는 잘 알 수 없으나 현재의 승복인 동방과 비슷한 것으로 짐작된다. 불자는 일반사람들이 좋아하는 청적황배흑의 5가지 색을 제외한 잡색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국사는 납기사에 장수편삼과 자상을 입고 오혁대를 띠면 행전과 같은 금발을 치고 방울 달린 영리를 신었다. 두루마기는 유학자들은 조주구위라는 중국식 두루마기를 입었다. 농공상기인들은 두루마기형의 백저포를 입고 속대를 띠었다.

여자의 복식

고려의 여자복식은 통일신라 이래 별로 변함이 없었고 다만 원의 영향을 받안 몽고풍이 궁양을 이루었다.

왕비복: 원과의 국혼관계로 원의 공주가 고려의 왕비가 됨으로 궁중관복에 몽고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것은 상류층의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서민사회에서는 예복도 우리의 고유 복식을 입었다. 궁중관복은 고려 말렵 공민왕 19년 5월에 명의 효자황후가 보내온 적의를 보면 알수 있는데 이것은 칠적관, 적의 중단, 폐슬 대대 혁대 , 수 ,청말, 청석으로 이어진다.

위부녀복 : 에 보면 고려의 미혼귀녀들은 황의를 많이 입었다고 하며 상류층에서는 역시 몽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몽수 : 고려도경에 보면 귀부인들은 머리의 쓰개로서 몽수를 쓰고
다녔는데 그것은 1폭의 길이가 8자나 되는 검은 비단 3폭으로 만들며 이것을 머리위에서 드리워 얼굴만 내놓고 나머지는 땅에 끌리게 하고 다녔다고 한다. 일면 개두라구 한다.

화관, 족두리 : 화관은 신라문무왕 당시 당의 복식 제도에서 수입하여 궁양의 관모가 되었고 그후 고려세도 귀족계급의 예복에 착용하였다. 족두리는 고고리라하여 변발에
아름답게 장식하여 예복에 착용하였는데 이것은 중국의 원세조후의 고고관과 비슷하다.

두루마기 : 남자두루마기와 비슷한 형의 백색 두루마기를 입고 허리
띠를 맸다. 이띠에는 채색끈에 금방울이나 향낭을 찼는데 이것이 많을 수록 귀인으로 여겼다고 한다.

저고리 : 저고리는 차차 짧아져 띠가 없어지고 원의 영향을 받았을
때는 아주 짧아진 것을 볼수 있다. 그리고 저고리 길이가 허
리위로 올라가게 됨으로 자연히 저고리의 띠가 없어지고 고
름이 생기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바지 : 무늬있는 비단으로 만든 통넓은 것을 입었는데 생견으로 안을 받쳐서 옷이 몸에 붙지 않도록 품을 크게 하는 관고를 좋아했다
치마 : 가을과 겨울에는 색이 짙거나 엷은 황색면주치마를 공격대부의 부인에게 사민 유녀에 이르기 까지 특별한 차별없이 입었다. 그리고 왕비의 겨울용 치마는 홍색에 수를 놓았는데 일반 부녀
자들의 치마에는 못하게했다. 이것이 조선조의 스란치마가 될
것같고 이로부터 황유홍상이니 녹의 홍상이니하는 조선여자의 복색이 된 것으로 짐작된다.
선군 : 속치마의 일종으로 치마폭을 넓게 하기위한 것이었으며 조선
시대의 무지기치마 같은 것이었다. 따라 이 선군 위에 입는 겉
치마는 8폭에 길이가 꽤 길어서 걸을 때 겨드랑이에 끼고 다녔
다고 하는데 부귀한 집의 부인은 치마 한벌 만드는 데 옷감을 7~
8필이나 드렸다고 한다.
저상 : 3폭을 한 가랑이로 한다는 것으로 왕에게 서민에 이르기까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입었다. 옷감으로 주로 여름에는 모시를 겨
울에는 비단을 사용하였다. 또한 선이 없어지고 대신 동정이 나
타나고 있다. 그리고 손끝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 비록 주채를 들때라도 붉은 주머니로 손을 가렸는게 이것은 한삼의 용도와 비슷하다.

 

 


고려 말엽에 이르러 신흥 사대부와 결탁한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정권을 잡고 조선왕조를 건국하였다. 고려의 복식은 남자는 바지, 저고리에 두루마기 여자는 치마, 저고리의 기본형이 서민복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다가 성종 5년 [국조오례의]의 편찬으로 의례복이 법제화되었고 [경국대전]의 편찬으로 백관들의 복식제도가 재정비되었다. 한편 서민의 복식은 엄격한 신분 사회제도에 묶여 직물의 종류, 색깔, 문양등에 이르기까지 앞 시대보다 한층 심한 규제를 받았다. 임진왜란 이후 작고 짧은 저고리에 풍성한 치마, 웅장한 머리모양 등 하후상박의 전통 한복미가 나타났다. 신분과 권력에 따른 복식이 특색있게 발달하는 등 많은 변화를 겪은 복식발전기이다

대례복은 종묘사직에 제사를 지내거나 원단, 조례, 왕비를 맞이할 때 등에 착용하던 복식으로, 면복이라고도 했으며 면류관과 곤복으로 되어 잇었다. 이때의 면류관은 고려와 같은 9류면이었고, 곤복 또한 고려에서처럼 9장복이었다. 그러다가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던 광부 원년에 면류관이 12류면으로 되었고, 곤복도 12장복으로 되었다. 12류면의 형태는 기본 구조가 9류면과 같았으나, 면줄이 12개였고 각 면줄에는 7개의 채색(황.적.청.백.흑.홍.녹색)구슬이 서로 엇바뀌어꿰어져 있었다. 또한 12장복은 고려에서와 같은 9개의 무늬 외에 황제를 상징하는 일,월,성신의 3가지 무늬가 더하여졌다. 한편 면복의 일습은 곤의,상,중단,폐슬,혁대,패옥,대대,수,말,석,규로 고려 시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상복은 왕의 평상시 무복으로 익선관, 곤룡포, 옥대, 화로 일습을 이루었다.

조선 중.후기의 임진, 병자 양란 후에 실학 사상으로 말미암아 복식에도 실용성을 부여하게 되고 단순화 시키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고종 21년 갑신정변과 더불어 복제 변경을 단행하였다. 개화기에 이르러 우리나라 복식은 고유복식과 양복의 소용돌이 속에서 끈질기게 그 전통을 발전시켜 왔다.

남성복식

왕 복
제복으로 면복, 조복에는 원유관, 강사포, 상복에는 익선관, 곤료오, 첩리, 답호가 있으며 전쟁시에 전립위에 융복을 입고 한가히 지낼 때는 편복을 입었다.

면 복
왕의 제복 및 대례복으로 면류관에 곤복으로 구성된다. 면류관은 위모관과 더불어 중국 고유의 관모로 주나라에서 유래된 것이다. 면류는 황제가 12류 12옥이고 황태자, 친왕은 9류 9옥이며 옥의 색채도 5채옥과 3채옥 등을 엮었다.

익선관. 곤룡포
익선관에는 왕의 상복으로 평상 집무 때입는 옷이다. 세종 26년 3월에 사은사 유수강이 명나라에서 가져온 왕의 상복을 보면 익선관, 곤룡포로 기록되어 있다. 익선관은 복두를 모방하여 만든 관모로 탕건위에 썼다. 그리고 명사 에 기록된 곤룡포를 보면 황제는 황색포에 앞뒤와 양어깨에 용문을 직금하였고 황태자는 색만 다른 홍색포였다. 따라서 조선에서는 친왕례에 따라 세종조에서 조선 말가지 홍색의 곤룡포를 입었으나 고종이 황제가 된후에는 황색포를 입었다.

사인복
사인복은 유관자 아닌 반인 계급의 복식을 말한다.,

남삼, 심의
남삼은 단령에 선을 두른 형태로 상사의 복식으로 삼았는데 이것은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입는 옷이다. 아울러 생원, 진사, 창방이 입었으며 앵삼과 같은 것으로 옥색길에 검은선을 둘렀다. 심의는 고대 중국의 천자, 제후의 평복이었고 사대부에게는 상복, 서인에게는 길복이었으며 유자의 법복이었다. 그 형태는 백포로 만들어 의 4폭, 상 12폭을 서로 연하여 둥근 소매, 모난깃, 굽은 단을 가졌으며 깃, 도련, 부리에 검은선을 두르고 복건을 썼다. 굽은 단을 가졌으며 깃, 도련, 부리에 검은 선을 두르고 복건을 썼다. 여기서는 치마폭의 12폭인 것은 1년 12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심의의 재료는 세포(세마포), 명주를 썼으나 특수층은 비단을 사용하였다. 이옷에 매는 띠오 흰색에 검은 선을 2줄 둘렀으며 매는 방법은 동심결로 맨다.

여성복식

조선왕조 여인의 예복
조선시대 여인의 예복에는 적의, 원삼, 활옷, 당의 등이 있다. 선 초기의 적의는 명(明)에서 사용한 군왕비예복인 대삼이다.

저고리는 짓는 방법에 따라 분류하면 겹저고리, 상겹저고리, 박이겹저고리, 깨기 저고리, 송저고리, 우비저고리, 적상 등이 있다. 그리고 형태에 따라 분류하면 전체를 같은감으로 제작하는 보통저고리, 깃, 고름, 끝동이 다른 색인 반회장 저고리, 곁마기가 있는, 상회장 저고리, 소매를 색동으로 하는 색동저고리 등이 있다.
마고자 초봉과 늦가을의 외출용이나 실내에서 저고리 위에 입는 방한용으로 전체적인 모양을 저고리와 비슷하지만 깃, 섶, 옷고름이 없다. 치마, 저고리색과 잘 어울리는 것을 선택하도록 하며 치마 저고리색과 같은 감으로 하기로 한다.

배자 저고리 위에 덧입는 방한용으로 모양이 남자조끼와 비슷하지만 동정이 있고 깃이 생깃인 정이 다르다. 겉은 경직물로 하고 안에는 모피나 송이 넘어 만들며, 색은 일반적으로 짙은색으로 하지만 치마 저고리색과 조화되도록 한다.

치마에는 모양에 따라 뒤가트인 긴치마와 짧은 통치마가 있고 바느질 방법에 따라 겹치마, 홑치마, 깨끼치마, 송치마, 누비치마 등이 있다. 긴치마는 재래식 긴치마, 풀치마, 자락치마라고 하기도 한다. 허리에는 띠허리, 알기허리와 같은 재래식 치마 허리와 개량하여 흘러내리지 않고 활동에 편리하게 만들조끼 허리(어깨 허리 라고 함)가 있다. 긴 치마는 안단까지 개화기에 생긴 간소복, 활동복으로 뒤트임 없이 통으로 만든 치마로 긴치마보다 20cm정도 짧게하고 주름을 넓게 잡는다. 궁중에서 없었던 스란치마의 경우 금박을 찍은 스란이 2단이면 대란치마라 하여 더욱 격조 높은 예복치마가 된다.

두루마기는 치마, 저고리 위에 입는 반한용, 의례용 겉옷으로서 봄, 가을에는 겹두루마기, 여름에는 홑두루마기, 겨울에는 솜두루마기를 입었다. 조선시대에 착용되던 많은 종류의 포가 갑오개혁이후 지금의 두루마기로 정착되었다. 치마, 저고리 위에 서양식 코트를 입는 경우가 있으나 한복에는 한복의 A라인 실루엣을 잘 표현해주는 무가 있는 두루마기를 입어야 제 멋이 난다.

당의는 조선시대 중증이나 사대부집 아녀자들의 소례복으로 저고리 위에 덧입었으며, 소매끝동에는 흰색 거들지를 단다. 형태는 저고리와 비슷하지만 저고리보다 긴 앞뒷길, 트인 옆, 아름다운 곡선의 도련의로 되어 있다. 여름에는 홑당의, 봄, 가을, 겨울에는 겹당의를 입으며, 홑당의는 당적삼 또는 당한삼, 겹당의는 당저고리라고 한다. 가슴과 등, 양 어깨에 흉배를 달기도 한다.

원삼은 조신새대 상류계급 부녀자들의 대례복으로서, 신분에 따라 색과 문양을 달리하였으며 장중하고 우아한 멋이 있는 옷이다 황후는 황원삼, 왕비는 홍원삼, 빈은 자적원삼, 공주는 녹원삼을 착용했으며 서민들의 혼례식때 녹원삼의 착용이 허영되었다. 노랑이나 연두색 삼화저고리와 다홍색 대란 치마 위에 원삼을 입으며, 대대를 맨다. 부속품으로는 큰댕기, 앞댕기, 봉장이나 용잠, 칠보 족두리등이 있다.

활옷 조선시대 상류계급 부녀자들의 예복이었던 활옷은 후기에 와서 서민에게도 혼래복으로 허용되어 지금까지 많이 허용되고 있다. 겉감은 다홍색공단, 모본단, 양단 등으로 하고 안감은 남색으로 무늬는 없었다. 앞뒷길과 소매, 한삼에 장수와 길복을 의미하는 물결, 바위, 불로초, 연꽃, 모란꽃, 봉황새 등을 화려하게 수놓아 우아하면서도 품의가 있다. 활옷을 노랑이나 연두색 삼화장 저고리와, 다홍색, 남색 대란치마 위에 입으며 대대, 큰댕기, 앞댕기 봉잠이나 용잠, 칠보족두리나 화관 등이 부속품이다.

 


조선 후기는 실학 사상과 서양문물이 도입되었다. 즉 천주교와 기독교의 전래와 동학사상의 영향이 복식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 사회개혁은 조선후기 풍부한 의복의 형태는 곧바로 갑신의제개혁을 필두로 의제의 간편함과 실용성을 법령으로 강조하였다. 극도로 다양화된 조선 후기의 포제를 두루마기 하나로 통일시켰으며, 광수포의 착용을 법으로 금지 하였다.
1897년 병자수호조약제결 이후 서구문물이 유입됨에 따라 복식에서도 전통의 한복문화에서 한·양복 혼용문화로 넘어가는 변화를 겪게 되었다. 1895년의 단발령이 시행 되었고 1900년에는 관복이 양복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과거의 우리의 전통복위에 관복의 도입과 마찬가지로 왕상과 상류층에서 하류층으로 전파되었다. 개화기에 남자 한복은 현재 입혀지고 있는 우리한복 고유의 기본형으로 간소화되었다.

신교육의 보급, 특히 여성교육기관의 설립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가능하게 했고 교육기관과 언론의 보급은 의복의 변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개화기에 이르러서 우리의 복식은 중국과 서양, 그리고 우리 나라 고유의 복식이융합된 복식의 변천을 보인다. 남자복식은 의복제도의 개혁에 의한 관복의 변천과 사복의 변천 그리고 양복의 착용에서 복식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으며 여자복식의 변천은 한복의 개량과 양자의 착용을 들 수 있다. 개화기를 거쳐 일제시대로 오면서 남자의 복식은 완전히 한복과 양복의 이중구조를 이루었다. 이렇듯 남자에게 있어서 양복이 여자보다 쉽게 일반에게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활동량이 많았던 만큼 한복에 비해 활동성이 좋은 양복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복은 도시인 중심으로 착용되었고 농촌에서는 대다수가 한복을 입었다. 곧 상의로는 저고리, 적삼, 등걸이, 조끼 등을 입었으며 하의로는 바지, 고이, 잠방이 등을 입었다. 또한 겉옷으로는 두루마기를 입었고, 양복인 오바코우트를 걸치기도 하였다. 이밖에 머리에는 갓대신 모자를 많이 쓰게 되었고 족의는 버선과 양말이 공존했으며, 짚신과 미투리는 고무신과 구두로 바뀌었다. 여자복식은 도시인과 일부 해외 유학 을 중심으로 양복이 착용되기는 했으나 남자들 만큼 크게 일반화된 상태는 아니었다. 대신 개화기에 등장한 개량한복 곧 통치마에 긴저고리가 간편하고 활동적이라는 이점이 있어 크게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농촌의 부녀자들은 여전히 전통 복식인 저고리와 치마에 마고자, 배자, 두루마기 등을 입었다.

1920년대로 오면서 대폭적인 속옷의 개량이 이루어졌으며, 짚신이나 미투리 대신 고무신과 혁신화가 착용되었고, 버선도 양말로 대치되었다.
1930년대로 오면서는 개화기에 크게 논란이 되었던 내외용 쓰개가 완전히
없어졌다. 남자는 겉옷을 두루마기가 착용되었는데, 주로 외출을 할 때 바지
저고리 위에 입었다.
1940년대를 전후해서는 겉옷으로 우리 고유의 포인 두루마기와 함께, 양복인 오바코우트나 만또를 입는 예가 도시를 중심으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었다.
여자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도 치마,저고리 위에 두루마기를 입었고, 신
여성들은 양복인 오바코우트를 입었다. 두루마기는 대개 여름에는 입지 안
았고, 봄.가을에는 겹두루마기를 입었으며, 겨울에는 솜두루마기를 입었다.
두루마기감은 전통적인 명주와 비단 외에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 수입
방모제품이 쓰이기도 하였다. 또한 한일합방 이후 단발령이 단행되자 관모로 갓 대신 모자를 많이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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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장점


1. 한복은 아름다운 옷이다.

   한복의 아름다움은 세계인이 인정한다.

   사선과 직선의 아름다움 - 동정, 버선코처럼 살짝 들어올린 아름다움 - 섶코,

   처마의 곡선을 보는 듯한 도련과 배래, 오방색을 사용하여

   화려하면서도 품위있는 아름다움


2. 한복은 건강을 지켜주는 옷이다.

   한복은 평면재단으로 넉넉하게 만들어 몸을 조이지 않음으로 건강에 아주 좋다.

   “가슴 위는 차게, 배꼽 아래는 따뜻하게 하여야 건강하다”는 한방의 이론에 잘 맞는다.

   목 부위는 시원하게 터주고, 허리끈과 대님으로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준다.

   또 “삼음교”라는 경혈자리에 대님을 묶어 비뇨기과 계통의 건강을 돕는다. 


3. 한복은 더불어 사는 옷이다.

   넉넉한 품과 허리로 키만 비슷하면 내옷 네가 입고, 네옷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이다.


4. 한복은 몸을 감춰준다.

   한복은 넉넉한 옷으로 뚱뚱하거나 마른 체형을 감춰주어 신체의 부끄러움을 감춰준다.

   

5. 한복은 자신이 살찌거나 마르거나 상관이 없다.

   입는 사람이 마르거나 뚱뚱해져도 아무 문제없이 입을 수 있다.

한복의 정의

한복은 한국의 옷이다. 짧은 저고리와 긴치마의 여자 옷, 저고리와 넓은 바지의 남자 옷을 말한다.

특성

그 오랫동안 한복은 시대에 따라 저고리 길이, 소매통 넓이, 치마폭이 약간씩 달라질 뿐, 큰 변화는 없었다. 즉 한복은 둥글고, 조용하고, 한국의 얼을 담고 있다. 실크나 면, 모시로 주로 만들어졌으며, 고름의 색상이나 소매통 색상이 여자의 신분을 나타낸다. 또한 나이와 사회적 지위, 계절에 따라 색상에 변화를 줄뿐 옷의 모양은 안동의 시골아낙이나 대통령부인이나 모두 똑같다. 18m의 원단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입기 쉬운 점이 한복의 장점이다. 명절과 결혼식 같은 특별한 날 주로 입혀진다. 한국에는 약 오만개의 제작업체가 있으며, 발행부수 만부가 넘는 한복 전문잡지도 다수가 있다.

삼국시대 한복의 특징

고대의 한국이 중국보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한 사실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예 중 하나가 의복문화이다.

중국은 조무령왕(趙武靈王)이 B.C. 307년에 한국의 저고리 고를 기병복으로 채용한 후 당대까지 관리와 서민들에게 계속 입혀졌다.

일본에는 BC 1C AD 7C에 걸쳐 지속적으로 한민족 대집단이 한국 옷을 입고 이주하여 기층문화(基層文化)의 형성(形成)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한민족(韓民族)은 원몽고(原蒙古) 내지 Tungys족과 동계(同系)로 간주되며 중국학자 부사년(傅斯年)은 하(夏)는 서방계(西方系)이며 채도문화(彩陶文化)의 주인이고, 은(殷)은 동이(東夷)의 한 분파이며 흑도문화(黑陶文化)의 주역이라 하였고, 중국의 노고학자 이제는 산동반도가 중국 초보문화의 중심지요, 은왕조(殷王朝)의 발상지(發祥地)인 동시에 은족보다 선주했던 종족이 흑도문화(黑陶文化)를 특징으로 한 동이족(東夷族)이었다고 하였다

통일신라 시대의 한복의 특징

신라는 나라가 부강해짐에 따라 삼국을 통일하여 국력이 강대해지고 문화가 찬란하게 빛났으며 제반제도, 시설의 정비, 경제생활의 안정과 예술도 고도로 발달하여 민족문화의 금자탑을 이룩하였다. 특히 불교를 신봉하여 불교예술이 극도로 발달하였으나 이 시기의 유물이나 사적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다.

이 시기는 중국에 있어서 당나라가 융성하였던 때였으므로 신라에서는 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천당정책을 썼는데, 제28대 진덕여왕은 왕금(王錦)이라는 비단에 수를 놓아 당나라에 보내고 김춘추를 보내어 왕과 조신의 장복(章服)을 청하여 들여왔다. 그 후 통일을 완성한 문무왕 4년에는 부녀자들까지도 중국복식을 따르도록 했는데 이것이 중국의 관복제도를 정식으로 받아들여 입게 된 최초의 일이다. 이것은 궁중이나 특수 유관자층에 한했다 할지라도 우리 복시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으므로 복식사상 일대 변천기라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신라에서는 골품제도라는 것이 있어 성골 이하, 진골, 6두품, 5두품, 4두품, 평민 등 가문과 혈통에 따른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에 복식의 양상도 계급에 따라 유형을 달리하게 되어 다양하게 발전했다.

흥덕왕대에 이르면 신라문화는 완숙기에 접어들어 복식이 대단히 사치했을 뿐 아니라 외래품을 숭상하고 계급의 복식질서도 문란해졌기 때문에 복식금지제도를 새로 제정하게 되었다. 여기에 의하면 의복재료도 삼국시대에 비하여 현저하게 풍부해져서 견직물(絹織物)로는 금, 사, 나, 능(綾), 주(紬), 시, 세 등이 있었다.

이와 같이 옷감의 종류가 다양함에 따라서 복식양식도 호화찬란하게 발전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과의 외교관계로 당나라의 패션이 유행하여 복두를 비롯해서 단령·반비·배당·표 등의 새로운 복식이 등장하였다.

이와 같이 통일신라의 복식은 호복 계통인 북방계통 복식을 기본으로 중국계 복식이 들어와서 우리 나라 복식구조의 일부가 되어 국속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복식도 주로 귀족계급에 한한 것으로 일반서민과는 관련이 적었던 것이다. 따라서 신라말기에서의 통일신라의 복식은 당제도를 상류계급의 복식으로 하고 하류계급에서는 국제(國制)를 습용하는 이중구조를 볼 수 있다

고려시대 한복의 특징

저고리류

수십기의 분묘 발구 복식을 정리하여 나타난 결과에 따르면 전반기 저고리 종류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모시로 만든 홑저고리나 일부 소맥 저고리 외에는 거의 모두 깃 섶 끝동 겨드랑이 사이 부분을 짙은 색의 금선단이나 필단으로 장식하였다. 크기가 매우 커서 길이가 50∼80cm에 이르고 품은 70cm를 전후하여 만들어져 있어 마치 현재의 남자 저고리와 유사한 모양이다. 겉깃과 안깃 모두 네모난 목판깃이며 깃이 넓고 여기에 넓은 동정이 목을 싸는 형태로 짧게 달려있다. 이와함께 직선형 배래와 완만한 도련선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편의상 저고리를 길이에 따라 단저고리형, 중저고리형, 장저고리형을 대별하고 부분적 특징을 살펴본다.

중저고리형은 길이만 길뿐 단저고리형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를 모방하여 직금단 대신, 필단으로 장식하여 만든 것으로 보여지며 문현 중 곁마기로 추정된다. 양 옆이 트인 장저고리와 구분하고 옆이 막혔다는 의미의 곁마기는 출도복식 저고리와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겨드랑이 사이를 별도의 옷감을 사용하여 봉재한 것은 대형이었던 당시 저고리 구성상 필수적인 것이었으며, 점차 여기에 장식성이 추가되어 화려하게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칼깃 형태의 남자 저고리가 중저고리형에 포함되어 있음이 주목된다. 이것은 당시 장의를 제외한 남자 직령포류의 깃 모양이 모두 칼깃인 것과 무관하지 않는다.

장저고리형은 모두 옆트임이 있다. 이 가운데 고급 필단이나 금선단으로 화려하게 만들어진 것은 당시의 당의임이 분명한 것 같다.

치마류

전반기의 치마류는 의래용과 평상용의 구분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전반기 저고리류가 모두 허리를 감추는 길이가 긴 형태이므로 당시의 모든 치마는 허리에 맞추어 입었다. 따라서 치마 허리라는 명칭도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때문에 당시의 평상용 치마 길이는 100cm전후 길이로 되어있다. 그러나 치마 폭은 현재에 비해 상당히 넒다. 이들 평상용 치마류는 모시 홑치마, 비단이나 명주로 된 겹치마, 누비치마, 솜치마 등 4계절용이 골고류 포함되어 있다.

조선시대
남자는 바지, 저고리에 두루마기. 여자는 치마, 저고리의 기본형이 서민복으로 이어져 왔다. 저고리의 길이가 길고 여유있는 형태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작고 짧은 저고리에 풍성한 치마, 웅장한 머리모양 등 하후상박의 전통 한복미가 나타났다.

신분과 권력에 따른 복식이 특색있게 발달하는 등 많은 변화를 겪은 복식발전기이다

등등거리 :     등에 걸치는 것으로, 옷이 살갗에 닿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바람이
                          옷속으로 잘 통하게 해주는 것이죠

등토시 :         팔에 끼는 것으로 옷 사이로 바람이 잘 통하게 하여 시원하게
                     해줍니다.

 

죽부인 :   대나무로 만들어 감촉이 차가운데다. 잠잘 때 끼고 자면 이불 속에 공간이 생겨

                바람이 잘 통하므로 시원합니다.

 

부채  :  손에 쥐고 흔들어서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덜거나 불을 일으키는 데 쓰는 물건.

 

통발 : 조상들의 옷이 삼베이기 때문에 무더위에는 찌듯이 더워 옷에 바람이 잘 통하도록철제로 만든, 옷 속에 넣어 사용하던 일종의 바람통하는 기계..

화문석 : 물들인 왕골로 꽃무늬 등을 놓아 짠 돗자리로 공기가 잘 통하여 여름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다.

 

 <-- 화문석

                                                                                     

 <-- 부채

1. 겨울철 한복의 특징
(1) 목화의 보급으로 두 겹의 천 사이에 솜을 둔 핫바지나 핫저고리와 같은 솜옷을 입었다.
(2) 바지에 대님을 매고 소매 끝에 토시를 끼고, 저고리 위에 조끼, 마고자 등을 겹쳐 입어
추운 기후에 대응하였다.
(3) 외출할 때에는 방한과 의례용으로 솜두루마기나 누비두루마기를 입었다.
(4) 한복은 추위를 막기 위해 여러 겹 껴입었다.
① 남자의 경우 '속고의 → 바지 → 저고리 → 버선 → 대님 → 조끼 → 마고자 → 두루
마기'순으로 껴입었다.
② 여자의 경우 상의로는 '속적삼 → 속저고리 → 저고리 → 배자 → 두루마기'순으로
입었고, 하의로는 '다리속곳(가장 밑에 입는 옷) → 속속곳(바지 밑에 입는 옷) → 바
지속곳(단속곳 밑에 입는 옷으로 고쟁이라고도 한다) → 단속곳(바지 위에 입는 옷으
로 길이가 약간 길다) → 너른바지(단속곳 위에 입는 옷) → 무지기(귀족들의 속치마)
또는 대슘치마(왕족들의 속치마) → 치마'순으로 입었다.
(5) 여러 종류의 방한용 모자를 써서 머리 부분의 추위를 막았다.

 겨울철 한복에 사용되는 옷감
(1) 명주 : 누에의 실샘으로부터 분비된 단백질이 주성분인 천연 섬유로서 그 광택과 촉감이
우수하며 부드럽고 따뜻하다. 누에고치를 기르는 과정이나 섬유로 만드는 과정이 어려
워 삼국시대 이후 명주나 비단옷은 일부 귀족층에서 주로 입었다.
(2) 무명 : 문익점에 의해 우리 나라에 도입되기 전까지 일반 서민들은 겨울에도 삼베옷을
입었다. 그러나 문익점이 중국으로부터 목화씨를 들여온 후 무명이 전국적으로 보급되
었다. 무명은 천이 부드럽고 손질이 쉬워 사계절 모두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1. 조상들의 겨울나기 물건
(1) 버선 : 지금의 양말과 같은 것으로 겨울에는 천과 천 사이에 솜을 넣은 솜버선을 신어 발을 따뜻하게 하였다.
(2) 풍차 : 외출용 방한 모자의 하나로, 남녀가 모두 썼지만 여자용은 술장식 등으로 장
식을 했다. 볼끼 겉감에는 끈이 붙어있어 그 끈으로 턱 밑에 묶거나 볼끼를 위로올려 정수리에 묶기도 하였다.
(3) 토시 : 겨울철 손목 방한구로서 원래는 남자용이었으나 개화기 이후 부녀자들도 외출시 착용하였다.


덧입는 한복

배자 : 안에 털가죽을 댄 덧옷으로 소매가 없습니다.
갖저고리 : 털가죽을 댄 두꺼운 저고리입니다.
장옷 : 여자들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장옷이나 쓰개치마를 입었습니다.
쓰개치마 : 옛날에 여자들이 나들이할 때 머리에 써서 머리와 윗몸을 가리던 치마이다.
조바위: 여자들이 외출용 방한모자로, 위는 트여있고 귀와 빰을 가릴 수 있었다.
굴레 : 어린아이가 쓰는 수놓은 모자
둥그미신 : 짚으로 엮어 만든 신발

1.삼베

 

1)서민들이 주로 즐겨입는다.

2)비가 적게 내려도 잘 자란다.

3)전국적으로 재배가 됬다.

4)올이 굴고 거칠다.

5)삼 껍질을 이용하였다.

 

2.모시

 

1)귀한 옷감으로 양반이나 귀족들이 입는다.

2)재배 조건이 까다롭다.

3)충청 남도, 전라 북도, 경상 남도 등에서 재배가 된다.

4)깔깔하고 바람이 잘 통한다.

5) 모시풀 껍질을 이용하였다.

 

겨울철 한복의 재료에는

무명과비단이 있습니다.

 

1.무명

 

1)목화솜으로 만들었다

2)부드럽고 따뜻하다

3)손질하기 쉽다.

4)사계절 내내 서민들이 사용한다.

 

2.비단

1)누에고치로 만들었다.

2)매우 부드럽다.

3)손질하기가 까다롭다.

4)매우 귀한 옷감으로 양반,귀족들이 입었다.

 

여름한복

여름에는 모시, 삼베가 주소재로 시원한 소재가 역시 인기이다.
초여름에는 무명이나 다듬이한 모시로, 흰색이나 푸른색과 청색 염색 을 하는 데, 자연소재가 갖고 있는 미색 그대로의 빛깔로 만들어 입어도 멋스럽다.
또 명주하면 의례 더운 옷감으로 알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예전부터 생명주, 모시, 항라 등을 여름철 옷감으로 사용했으며,익히지 않은 명주도 여름철 옷감으로 사용해 왔다.
한여름에는 베나 쟁친 모시(다듬이질 하지 않은 모시)로 적삼을 즐겨 입었고, 반저모시 로는 흰 치마저고리를 즐겨 입었다.

겨울한복

겨울에는 양단과 공단, 실크 등으로 치마저고리를 지어 입고, 겉옷으로 두루마기를 지어 입으면 좋다. 겨울 한복은 물겹바느질을 하는 천으로 지어 입는 것이 제격인데 수직실, 명주, 위사수직,
자미사 등이 그나마 요즘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겨울용 옷감이다.
겨울 한복은 방한용으로, 외출시엔 두루마기나 반두루마기, 갖 저고리를 걸치고 가벼운 외출시에는 배자를 걸치면 추위를 막을 수 있다.            왼쪽이 여름 오른쪽이 겨울

 

1) 한복이란?


한복이란 간단히 말해서 한국 고유의 옷을 뜻한다.


한복은 형태나 구성이, 아름다움, 재질, 위생적인 면에서 그 뛰어난 특색을 자랑하고

있다. 특별한 날 우리의 눈길을 끄는 옷차림은 고운 색상의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 입

고, 두루마기까지 걸친 한복차림이다. 가장 신부답고 가장 신랑다운 의상은 한복이다.


신부가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녹의 홍상, 녹색 저고리에 붉은
색 치마를 입고 사뿐사뿐 나다니는 신부의 모습은 사뭇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아무리 자유분방한 사람이라도 한복을 입은 자세를 바르게 하게 되어, 어른들에게도
훨씬 좋은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그래서 시대가 많이 바뀌어도 약혼식과 신혼 나들이
길에는 신랑 신부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모습이 한층 정겹고 아름다워 보인다.

2) 한복의 특징

- 형태와 구성상의 특징


한복은 평면적인 옷감을 직선적으로 재단하고 이를 꿰매어, 평면적인 옷을 만들며 이것
을 다시 입체적인 인체에 맞도록 남은 부분을 주름을 잡거나 접어서 끈으로 고정시키는
형태이다. 바지의 경우에는 마루폭 이외에 활동에 필요한 여유분을 주기 위하여 사폭을


만들고 이것을 다시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나누어 전후 좌우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구성방법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우리나라의 자연적인 조건과 민
족적인 미적감각을 잘 살려준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한복은 평면구성으로 이루어져
서 입어야 비로소 입체감이 형성되어 더 부드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 미적인 특색


한복의 아름다움은 외관으로 보이는 선의 흐름과 옷감이 지닌 색채의 조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추녀의 곡선과 같이 하늘을 향한 듯한 저고리의 배레선과 도련의 곡선 동정의 예리
한 직선과 조화를 이루며 여기에 깜찍하고도 앙징스러 우리만큼 동글면서도 뾰복한 작은
섶코의 선은 저고리를 한층 돋보이게 해준다. 한복의 나타나는 이같은 선의 흐름과 조화


에서 우리는 선조들의 뛰어난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으며 여기에 옷을 입고 움직일 때
에 생기는 동적인 선의 아름다움까지 가미하면 우수한 선의 조화는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


을 만한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옷감의 색채면에서 볼 때에는 한민족을 일
컬어 “백의민족” 이라 했듯이 백색은 좋은 인연을 가져온다는 뜻으로 예부터 숭상하게 되
었고 따라서 흰옷을 즐겨 입었다.


** 형태 면에서 평면적인 옷감을 직선적으로 재단하고 사람이 입으면 입체감을 주도록 주름
     을 잡아 끈으로 고정시킨 형태이다.


** 구성면에서 활동에 상당히 편하도록 하고 있으며, 바지의 경우 마루폭, 큰사폭, 작은사폭
     으로 나누어 앞뒤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 아름다움 면에서 우리선조의 뛰어난 미적감각을 느낄수 있는 선의 흐름이 둥글면서도 뽀
     족하다. 곡선과 예리한 직선의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과히 계적으로 으뜸이아닐수 없다.


**  재질는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옷감을 사용, 자연과 조화를 이룰수 있게 했다.

 

** 색채감 면에서 자연색과 조화를 이뤄 상당히 고운 색감을 사용 했고 움직일 때 선의 아름다움   과   어울려 한층 더 아름다움을 감미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여기 도움돼요. 우리반 선생님이 알려주셨답니다.

안돼면 그냥 우리의 한복이라 쳐서 내려가보면 우리의 한복이라는 것이 있어요.

들어가서 하세요............................... 아이디 만들실려면 이름과 자신주민만 있으면 되요...

http://user.chollian.net/~kjg0520/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일단 기계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요, 사람들이 편한 것만 찾으려고만 하는 문제점이 있고요.

교통편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가까운 거리에도 편하게 가려고 하고 걷지 않고 타고 다니기만 해서 건강이 많이 쇄약 해지게 되죠.

그리고 로봇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해야 할일을 로봇한테 시키게 되면 사람들의 노력과 책임 등이 많이 쇄약 해져 사람들의 정신적으로도 안 좋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계 중에서도 연기를 내뿜어야 하는 기계도 있잖아요. 그런 기계 같은 경우에는 사람 몸만 해로운 것만이 아니라 환경에서도 안 좋습니다. 요즘 오존층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환경오염 때문에 많이 걱정을 하게 돼는 원인도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가스나 프레온 가스가 원인이 될 수가 있지요.

프레온 가스와 매연가스가 기계에서 많이 사용하게 돼서 이런 문재가 발생하게 된 것이죠.

기계는 우리한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해가 되기도 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돼는 경우도 있지요.

요즘 뭐 로봇 청소기 같은 것도 나오고 있지요. 이렇게 되면 인간의 힘도 쇄약해지고 사람이 게을러지고

그렇게 되면 몸도 약해지고 자신의 힘으로 일을 해결 할 수 없는 능력까지 쇠퇴하게 되고 자신이 해야 할일도 잘 몰라서 쩔쩔매는 일도 일어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시대별 한복의 특징(내공드림)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생 5학년되는 어리~인 나이랍니다 ^^ 부족국가의 한복의 특징과 발해의 한복의 특징을 알고싶습니다. 1시간만에 올려주세요 삼국시대에 복식은 고구려의...

시대별한복의특징이뭐에요??

... 시대별한복의특징 예를들어서 시대:부족국가: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 신라: 발해... 제발가르쳐주세요 내공은 많이못걸지만요 제발부탁드려요 ㅠ0ㅠ 고구려시대 고구려...

한복의 특징과 사진(내공 많이 드림..추가...

... 근데 선생님께서 한복의 특징과 사진을 알아 보라고 하시네요? 최대한 빨리 좀 알려 주세요. 내공 많이 드릴게요. 아주 좋은 답변 기다릴게요. 예를 들어서 여름철 및 겨울철...

시대별 한복의 변화

시대별 한복의 변화 좀 알려주세염.... 남자 여자 따로..... 사진도 부탁드립니다!!!(내공 10) 빨 리요......1시간 내로요!... 그 특징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복식흐름의...

내공드림! 비단 한복의 특징 가켜주삼요~!

... 그냥 한복의 특징도 괜찮아요! 내공드리는 건 확실하게! 하겠지만... 드리는 방법 또한 가켜주세요~ 그냥 등록하면 돼나요?? 쓰면 저절로 받아지나요?? 그리구! 기한은 오늘...

명칭,모양,특징좀 부탁드려요 내공20드림

제가쓴 한복특징과 모양,명칭 좀 써주세요.. 그림도 있으면 좋고요. 다 남자 한복 입니다 1.바지 2.저고리 3.조끼 4.마고자 5.두루마기 6.버선 바지 고의(袴衣)라고도 불리워지는...

한복 시대별로 분류해주세여

한복 시대별로 분류해서 알려주세여 고려, 신라, 백제, 조선이여~~ 내공 많이 드릴게영 꼭이여~~ 상고시대... 그 특징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복식흐름의 성향은 전란...

시대별 한복의특징

... 의상의특징과 조선시대 저고리와 치마 외투 (남,녀) 에대한것좀 써주세요 부탁좀요 쓸대없는이야기 하면 신고합니다 내공은 충분히드려요!!!!! 급해요 오늘 1시전까지...

시대별에 대한 한복

시대별에 따른 한복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려주세여. 내공 드릴께여... 상고시대 우리나라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그 특징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복식흐름의 성향은...

한복의 특징 빨리

한복의 특징 빨리 자세히 설명. (내공 많이 드림) 1) 한복이란? 한복이란 간단히 말해서 한국 고유의 옷을 뜻한다. 한복은 형태나 구성이, 아름다움, 재질, 위생적인 면에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