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한복의 특징(내공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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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한복의 특징(내공드림)
삼국시대에 복식은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서 볼 수있는데 머리에는 관모를 으며 저고리가 엉덩이까지 내려오고 직선으로 교차시켜 여미는 깃형태의 직령교임식으로 외쪽여밈이다. 또 깃 부리 도련에는 다른 천으로 선을 두르고 바지는 가랑이가 좁은 홀태바지 형이다. 그리고 양복바지와 같은 궁고 가랑이가 넓은 광고 잠방이와 같은 바지도 있었다. 치마는 길이가 길고 거단까지 잔주름이 잡혀 있다. 두루마기는 무릎을 내려갈 정도로 길고 저고리와 같이 선도 보인다. 신은 주로 화를 신고 이도 병용하여 신었다. [고구려] 고구려는 BC 37년에 건국되었다. 원래 고구려는 동북 아시아적인 문화 위에 웃 북부 중국의 한(漢) 육조문화 그리고 북부 중국을 거쳐서 스며드는 고대 서북방 민족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만주에 진출했던 흉노족을 비롯한 변방의 여러 부족을 통한 스키타이문화 등 북방계 문물과도 접촉했다. 고구려의 복식은 평양 부근과 통구평야 지대이다. 먼저 머리에는 남녀 모두 관모를 썼는데, 남자들은 건, 책, 절풍, 입, 변등을 썼고 여자들은 건귁을 썼다. 북방계 유목민있어던 우리 민족은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추위를 피하거나 햇빛을 가리기 위해 '관모'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기록으로는 '삼국지'의 '부여전'에 금과 은으로 장식한 모자를 썼다고 처음 나온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는 책이나 절풍을 비롯한 많은 관모가 나타난다. 또'삼국지'난 '후한서'등에는 '고구려에서 는 대가와 주부는 책을, 소가는 절풍을 썼는데, 그 형태는 고깔 모양이었다'라고 씌여 있다. 이것으로 보아 고구려의 관모는 실용적인 목적외에도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었다. '당서'나 '구당서'의 '동이전'에는 "부인은 머리에 건귁을 썼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것은 고구려의 여인들은 건귁이라는 머릿수건을 즐겨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건귁은 계속 이어져 내려와 근세 이후 개성 이북의 여인들이 많이 쓰던 머릿수건이 이것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고구려의 두루마기의 기본형은 곧은 깃에 왼쪽여밈, 좁은 소매였다. 이 두루마기는 저고리인 유가 길어진 것으로, 하층계급의 사람들이 입었다.상류층에서는 둥근 깃에 오른쪽 여밈, 넓은 소매로 된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중국 한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 추위를 막기 위해 입던 두루마기는 점차 의례적인 차림으로 바뀌어 갔다. 저고리는 곧은 깃에 좁은 소매, 왼쪽 여밈으로 되어있고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이가 길었다. 바지는 통이 좁았는데 신분이 높은 사람은 중국식의 통 넓은 바지를 입기도 하였다. 여자들은 짧은 치맛속에 바지를 덧입었다. 치마는 무용총 접견도에 보이는 승복용 치마를 제외하면 모두 여자의 옷이었다. 일반적으로 길이가 길고 허리에서 치맛단에 이르기까지 잔주름이 있으며, 저고리와 마찬가지로 치마 끝에 선을 둘렀다. [백제] 백제는 고구려와 같이 부여족의 한 갈래이다. 시조왕(始祖王) 온조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백제라 하였다. 그 후 마한의 여러 부족국가를 멸망시키고 북으로 대방군을 공격하여 국세를 확장시켰다. 그러는 동안 고구려를 통해 북조문화의 영향을 받고 중국 남조문화를 들여와 찬란한 백제문화를 형성하였다. 백제의 초반(AD6C)엔 뛰어난 금속공예술을 보였다. 이시대에 많은 장신구들이 출토되었다. 백제의 복식 모양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난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고 본다. 곧 허리까지 오는 저고리에 바지(또는 치마)를 입었고 필요에 따라 포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양의 직공도에 보이는 백제국사의 옷 모양이, 고구려 백화의 인물상의 옷과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한층 확실시되고 있다. 다만 백제국사의 옷 모양에서 특이한 사실은 바지 끝단에 선이 둘러져 있었고 양복바지와 같이 대님을 매지 않고 그대로 입었다는 점이다. 물론 고구려 백화의 인물상에서도 바지 밑단에 가선을 두르거나 부리를 동여매지 않고 입은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의 예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만큼 고구려와 백제의 의복 차이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신라] 신라의 복식을 보면, 먼저 관모로는 일반인의 경우 가죽으로 만든 삼각형의 변형모를 많이 썼다. 또한 상류층에서는 금, 은, 옥 등으로 만든 금속제 관모를 예복용으로 썼다. 신라의 의복에서 남자는 허리까지 이르는 저고리에 통이 넓은 바지를 입었는데, 바짓부리는 묶여져 있었다 또한 여자는 허리 아래에 이르는 저고리에 발목까지 오는 긴 주름치마를 입고 있었다. 이러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기본적인 옷차림이 고구려인과 같았다는 것을 뜻한다. 기본 복식 위에 입었던 포도 그 형태가 고구려나 백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신라의 신 또한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이와 화가 함께 착용되었는데, 이는 주로 여자들이 많이 신었고 화는 남자들이 많이 신었다. 신의 재료도 천,금속제,흙,풀 등의 다양한 재료가 이용되고 있어 삼국 중에서는 가장 화려한 신발 문화를 이룩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화는 크게 발달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화가 남녀 모두에게 착용된 고구려와는 달리 신라에서는 남자들만 착용하였으므로 미에 관심이 많은 여자용의 이처럼 다양한 발달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신라의 복식 생활에서 또 하나 특기할 사실은 의료 수공업의 발달이었다. 이는 일찍이 신라에 가배라는 방적기술 연마 풍속이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의료 중에서도 특히 많이 생산된 것은 마포였고, 가는 견사를 날실로 하고 굵은 견사를 씨실로 해서 짠 비단의 일종인 모초도 생산되었다 |
발해는 신흥 거란에 의해 멸망됨으로써 그들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한민족에게 이어주지 못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발해의 관복은 발해라는 국호 자체를 당의 현종으로부터 받은 [발해군왕]이라는 작호에서 따온 것인만큼, 대략 당의 사색공복제도를 모방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발해고', '발해국지'등에 나타나 있듯이 9품을 4등급으로 나누어 3품 이상의 관리는 자색의 관복에다 아홀을 주고 금어대를 찼으며, 4품과 5품은 짙은 붉은색 관복에다 역시 아홀과 금어대(金魚袋)를 찼다. 또한 6품과 7품은 옅은 붉은색 관복에다 목홀을 쥐었으며, 8품과 9품은 녹색의 관복에다 목홀을 쥐었다. 평상복은 대략 고구려의 제도를 따랐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것은 발해의 역대 왕들이 항상 고구려에 대한 계승의식을 가지고, 고구려의 전통을 이어가려고 애를 썼기 때문이다. 그 한 증거로 속일본기에는 발해 무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가 게재되어 있다. |
고려 태조 왕건은 신라와 후백제로 하여금 스스로 합병해 오게하니, 936년에 후삼국의 재통일이 이룩되었고 이에 고려시대의 막이 열리게 되었다.고려는 처음에는 통일신라 후기의 제도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 그러나 중앙 집권화 정책을 쓰면서 고려 사회는 점차 변화되어 갔다. 이러한 정치적인 대외 관계는 고려의 복식 제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던 바, 그 변천 과정은 대략 3기로 구분된다. 제1기는 오대와 송의 영향을 인한 변화 제2기는 원의 침입으로 몽고 복식의 영향을 받으면서 생긴 변화 제3기는 명의 영향권에 들면서 생긴 변화이다. 그러나 이렇나 대외 영향은 주로 관복 제도에 변천을 가져왔을 뿐, 일반 복식은 우리 고유의 복식 구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보편적으로 넓어진 바짓가랑이, 길이가 짧아진 저고리, 넓은 치마폭 등의 세부적인 변화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복의 세부적인 변화는 전체적으로 의복의 아름다움이 강조된 것이어서 복식미의 진일보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고려시대의 복식 생활에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문익점에 의한 목면의 전래였다. 이것이 비단이나 명주를 마음대로 입을 수 없었던 서민의 복식 생활에 커다란 전환기를 마련해 주었다. 고려의 복식제도는 신라시대의 것을 계승하였을뿐만 아니라 당, 송, 원 등의 문화를 다각도로 흡수하였다. 왕복을 비롯하여 백관복에 이르기까지의 관복은 송, 중국화된 원, 그리고 명의 제도를 받아 들였으나, 일반의 복장인 우리 나라의 고유복식은 서민층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왔으며, 여성복식은 공경대부(公卿大夫)에서 사민(士民)의 처(妻), 기생(妓生)에 이르기까지 큰 차이는 없었다. 충렬왕 이후 원나라의 부용국이 되면서 복식풍습 또한 많이 몽고풍을 따르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질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으며, 공민왕때 원나라가 쇠망하고 한족에 의한 명나라가 다시 중국을 지배하게 되자 몽고풍은 사라져 갔다. 그러나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소매가 좁아진 것은 몽고 복식에서 온 영향이며, 이로 말미암아 띠가 없어지고 대신 고름을 달기도 하였다. 또 여자 화관이 당나라에서 전해 온 것이라고 하면, 족두리는 몽고인의 고고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목면의 전래가 있었고, 이것이 비단이나 명주를 마음대로 입을 수 없었던 서민의 복식 생활에 커다란 전환기를 마련해 준 시대였다. 백관의 공복을 4가지 색으로 구분하여 제정한 것으로 원윤 이상은 자삼, 중단경 이상은 담삼, 도항경 이상은 비삼, 소주부 이상은 녹사밍었다. 이로부터 고려는 22대 강종 원년 1212년까지 거란, 송, 요, 금 등의 관복을 따르고 있다. 여자의 복식 바지 : 무늬있는 비단으로 만든 통넓은 것을 입었는데 생견으로 안을 받쳐서 옷이 몸에 붙지 않도록 품을 크게 하는 관고를 좋아했다 |
고려 말엽에 이르러 신흥 사대부와 결탁한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정권을 잡고 조선왕조를 건국하였다. 고려의 복식은 남자는 바지, 저고리에 두루마기 여자는 치마, 저고리의 기본형이 서민복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다가 성종 5년 [국조오례의]의 편찬으로 의례복이 법제화되었고 [경국대전]의 편찬으로 백관들의 복식제도가 재정비되었다. 한편 서민의 복식은 엄격한 신분 사회제도에 묶여 직물의 종류, 색깔, 문양등에 이르기까지 앞 시대보다 한층 심한 규제를 받았다. 임진왜란 이후 작고 짧은 저고리에 풍성한 치마, 웅장한 머리모양 등 하후상박의 전통 한복미가 나타났다. 신분과 권력에 따른 복식이 특색있게 발달하는 등 많은 변화를 겪은 복식발전기이다 대례복은 종묘사직에 제사를 지내거나 원단, 조례, 왕비를 맞이할 때 등에 착용하던 복식으로, 면복이라고도 했으며 면류관과 곤복으로 되어 잇었다. 이때의 면류관은 고려와 같은 9류면이었고, 곤복 또한 고려에서처럼 9장복이었다. 그러다가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던 광부 원년에 면류관이 12류면으로 되었고, 곤복도 12장복으로 되었다. 12류면의 형태는 기본 구조가 9류면과 같았으나, 면줄이 12개였고 각 면줄에는 7개의 채색(황.적.청.백.흑.홍.녹색)구슬이 서로 엇바뀌어꿰어져 있었다. 또한 12장복은 고려에서와 같은 9개의 무늬 외에 황제를 상징하는 일,월,성신의 3가지 무늬가 더하여졌다. 한편 면복의 일습은 곤의,상,중단,폐슬,혁대,패옥,대대,수,말,석,규로 고려 시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상복은 왕의 평상시 무복으로 익선관, 곤룡포, 옥대, 화로 일습을 이루었다. 조선 중.후기의 임진, 병자 양란 후에 실학 사상으로 말미암아 복식에도 실용성을 부여하게 되고 단순화 시키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고종 21년 갑신정변과 더불어 복제 변경을 단행하였다. 개화기에 이르러 우리나라 복식은 고유복식과 양복의 소용돌이 속에서 끈질기게 그 전통을 발전시켜 왔다. 왕 복 제복으로 면복, 조복에는 원유관, 강사포, 상복에는 익선관, 곤료오, 첩리, 답호가 있으며 전쟁시에 전립위에 융복을 입고 한가히 지낼 때는 편복을 입었다. 면 복 왕의 제복 및 대례복으로 면류관에 곤복으로 구성된다. 면류관은 위모관과 더불어 중국 고유의 관모로 주나라에서 유래된 것이다. 면류는 황제가 12류 12옥이고 황태자, 친왕은 9류 9옥이며 옥의 색채도 5채옥과 3채옥 등을 엮었다. 익선관. 곤룡포 익선관에는 왕의 상복으로 평상 집무 때입는 옷이다. 세종 26년 3월에 사은사 유수강이 명나라에서 가져온 왕의 상복을 보면 익선관, 곤룡포로 기록되어 있다. 익선관은 복두를 모방하여 만든 관모로 탕건위에 썼다. 그리고 명사 에 기록된 곤룡포를 보면 황제는 황색포에 앞뒤와 양어깨에 용문을 직금하였고 황태자는 색만 다른 홍색포였다. 따라서 조선에서는 친왕례에 따라 세종조에서 조선 말가지 홍색의 곤룡포를 입었으나 고종이 황제가 된후에는 황색포를 입었다. 사인복 사인복은 유관자 아닌 반인 계급의 복식을 말한다., 남삼, 심의 남삼은 단령에 선을 두른 형태로 상사의 복식으로 삼았는데 이것은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입는 옷이다. 아울러 생원, 진사, 창방이 입었으며 앵삼과 같은 것으로 옥색길에 검은선을 둘렀다. 심의는 고대 중국의 천자, 제후의 평복이었고 사대부에게는 상복, 서인에게는 길복이었으며 유자의 법복이었다. 그 형태는 백포로 만들어 의 4폭, 상 12폭을 서로 연하여 둥근 소매, 모난깃, 굽은 단을 가졌으며 깃, 도련, 부리에 검은선을 두르고 복건을 썼다. 굽은 단을 가졌으며 깃, 도련, 부리에 검은 선을 두르고 복건을 썼다. 여기서는 치마폭의 12폭인 것은 1년 12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심의의 재료는 세포(세마포), 명주를 썼으나 특수층은 비단을 사용하였다. 이옷에 매는 띠오 흰색에 검은 선을 2줄 둘렀으며 매는 방법은 동심결로 맨다. 여성복식 |
조선 후기는 실학 사상과 서양문물이 도입되었다. 즉 천주교와 기독교의 전래와 동학사상의 영향이 복식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 사회개혁은 조선후기 풍부한 의복의 형태는 곧바로 갑신의제개혁을 필두로 의제의 간편함과 실용성을 법령으로 강조하였다. 극도로 다양화된 조선 후기의 포제를 두루마기 하나로 통일시켰으며, 광수포의 착용을 법으로 금지 하였다. 1897년 병자수호조약제결 이후 서구문물이 유입됨에 따라 복식에서도 전통의 한복문화에서 한·양복 혼용문화로 넘어가는 변화를 겪게 되었다. 1895년의 단발령이 시행 되었고 1900년에는 관복이 양복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과거의 우리의 전통복위에 관복의 도입과 마찬가지로 왕상과 상류층에서 하류층으로 전파되었다. 개화기에 남자 한복은 현재 입혀지고 있는 우리한복 고유의 기본형으로 간소화되었다. 신교육의 보급, 특히 여성교육기관의 설립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가능하게 했고 교육기관과 언론의 보급은 의복의 변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
한복의 장점
1. 한복은 아름다운 옷이다.
한복의 아름다움은 세계인이 인정한다.
사선과 직선의 아름다움 - 동정, 버선코처럼 살짝 들어올린 아름다움 - 섶코,
처마의 곡선을 보는 듯한 도련과 배래, 오방색을 사용하여
화려하면서도 품위있는 아름다움
2. 한복은 건강을 지켜주는 옷이다.
한복은 평면재단으로 넉넉하게 만들어 몸을 조이지 않음으로 건강에 아주 좋다.
“가슴 위는 차게, 배꼽 아래는 따뜻하게 하여야 건강하다”는 한방의 이론에 잘 맞는다.
목 부위는 시원하게 터주고, 허리끈과 대님으로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준다.
또 “삼음교”라는 경혈자리에 대님을 묶어 비뇨기과 계통의 건강을 돕는다.
3. 한복은 더불어 사는 옷이다.
넉넉한 품과 허리로 키만 비슷하면 내옷 네가 입고, 네옷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이다.
4. 한복은 몸을 감춰준다.
한복은 넉넉한 옷으로 뚱뚱하거나 마른 체형을 감춰주어 신체의 부끄러움을 감춰준다.
5. 한복은 자신이 살찌거나 마르거나 상관이 없다.
입는 사람이 마르거나 뚱뚱해져도 아무 문제없이 입을 수 있다.
등등거리 : 등에 걸치는 것으로, 옷이 살갗에 닿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바람이
옷속으로 잘 통하게 해주는 것이죠
등토시 : 팔에 끼는 것으로 옷 사이로 바람이 잘 통하게 하여 시원하게
해줍니다.
죽부인 : 대나무로 만들어 감촉이 차가운데다. 잠잘 때 끼고 자면 이불 속에 공간이 생겨
바람이 잘 통하므로 시원합니다.
부채 : 손에 쥐고 흔들어서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덜거나 불을 일으키는 데 쓰는 물건.
통발 : 조상들의 옷이 삼베이기 때문에 무더위에는 찌듯이 더워 옷에 바람이 잘 통하도록철제로 만든, 옷 속에 넣어 사용하던 일종의 바람통하는 기계..
화문석 : 물들인 왕골로 꽃무늬 등을 놓아 짠 돗자리로 공기가 잘 통하여 여름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다.
<-- 화문석
<-- 부채
1. 겨울철 한복의 특징
(1) 목화의 보급으로 두 겹의 천 사이에 솜을 둔 핫바지나 핫저고리와 같은 솜옷을 입었다.
(2) 바지에 대님을 매고 소매 끝에 토시를 끼고, 저고리 위에 조끼, 마고자 등을 겹쳐 입어
추운 기후에 대응하였다.
(3) 외출할 때에는 방한과 의례용으로 솜두루마기나 누비두루마기를 입었다.
(4) 한복은 추위를 막기 위해 여러 겹 껴입었다.
① 남자의 경우 '속고의 → 바지 → 저고리 → 버선 → 대님 → 조끼 → 마고자 → 두루
마기'순으로 껴입었다.
② 여자의 경우 상의로는 '속적삼 → 속저고리 → 저고리 → 배자 → 두루마기'순으로
입었고, 하의로는 '다리속곳(가장 밑에 입는 옷) → 속속곳(바지 밑에 입는 옷) → 바
지속곳(단속곳 밑에 입는 옷으로 고쟁이라고도 한다) → 단속곳(바지 위에 입는 옷으
로 길이가 약간 길다) → 너른바지(단속곳 위에 입는 옷) → 무지기(귀족들의 속치마)
또는 대슘치마(왕족들의 속치마) → 치마'순으로 입었다.
(5) 여러 종류의 방한용 모자를 써서 머리 부분의 추위를 막았다.
겨울철 한복에 사용되는 옷감
(1) 명주 : 누에의 실샘으로부터 분비된 단백질이 주성분인 천연 섬유로서 그 광택과 촉감이
우수하며 부드럽고 따뜻하다. 누에고치를 기르는 과정이나 섬유로 만드는 과정이 어려
워 삼국시대 이후 명주나 비단옷은 일부 귀족층에서 주로 입었다.
(2) 무명 : 문익점에 의해 우리 나라에 도입되기 전까지 일반 서민들은 겨울에도 삼베옷을
입었다. 그러나 문익점이 중국으로부터 목화씨를 들여온 후 무명이 전국적으로 보급되
었다. 무명은 천이 부드럽고 손질이 쉬워 사계절 모두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1. 조상들의 겨울나기 물건
(1) 버선 : 지금의 양말과 같은 것으로 겨울에는 천과 천 사이에 솜을 넣은 솜버선을 신어 발을 따뜻하게 하였다.
(2) 풍차 : 외출용 방한 모자의 하나로, 남녀가 모두 썼지만 여자용은 술장식 등으로 장
식을 했다. 볼끼 겉감에는 끈이 붙어있어 그 끈으로 턱 밑에 묶거나 볼끼를 위로올려 정수리에 묶기도 하였다.
(3) 토시 : 겨울철 손목 방한구로서 원래는 남자용이었으나 개화기 이후 부녀자들도 외출시 착용하였다.
덧입는 한복
배자 : 안에 털가죽을 댄 덧옷으로 소매가 없습니다.
갖저고리 : 털가죽을 댄 두꺼운 저고리입니다.
장옷 : 여자들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장옷이나 쓰개치마를 입었습니다.
쓰개치마 : 옛날에 여자들이 나들이할 때 머리에 써서 머리와 윗몸을 가리던 치마이다.
조바위: 여자들이 외출용 방한모자로, 위는 트여있고 귀와 빰을 가릴 수 있었다.
굴레 : 어린아이가 쓰는 수놓은 모자
둥그미신 : 짚으로 엮어 만든 신발
1.삼베
1)서민들이 주로 즐겨입는다.
2)비가 적게 내려도 잘 자란다.
3)전국적으로 재배가 됬다.
4)올이 굴고 거칠다.
5)삼 껍질을 이용하였다.
2.모시
1)귀한 옷감으로 양반이나 귀족들이 입는다.
2)재배 조건이 까다롭다.
3)충청 남도, 전라 북도, 경상 남도 등에서 재배가 된다.
4)깔깔하고 바람이 잘 통한다.
5) 모시풀 껍질을 이용하였다.
겨울철 한복의 재료에는
무명과비단이 있습니다.
1.무명
1)목화솜으로 만들었다
2)부드럽고 따뜻하다
3)손질하기 쉽다.
4)사계절 내내 서민들이 사용한다.
2.비단
1)누에고치로 만들었다.
2)매우 부드럽다.
3)손질하기가 까다롭다.
4)매우 귀한 옷감으로 양반,귀족들이 입었다.
여름한복
여름에는 모시, 삼베가 주소재로 시원한 소재가 역시 인기이다.
초여름에는 무명이나 다듬이한 모시로, 흰색이나 푸른색과 청색 염색 을 하는 데, 자연소재가 갖고 있는 미색 그대로의 빛깔로 만들어 입어도 멋스럽다.
또 명주하면 의례 더운 옷감으로 알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예전부터 생명주, 모시, 항라 등을 여름철 옷감으로 사용했으며,익히지 않은 명주도 여름철 옷감으로 사용해 왔다.
한여름에는 베나 쟁친 모시(다듬이질 하지 않은 모시)로 적삼을 즐겨 입었고, 반저모시 로는 흰 치마저고리를 즐겨 입었다.
겨울한복
겨울에는 양단과 공단, 실크 등으로 치마저고리를 지어 입고, 겉옷으로 두루마기를 지어 입으면 좋다. 겨울 한복은 물겹바느질을 하는 천으로 지어 입는 것이 제격인데 수직실, 명주, 위사수직,
자미사 등이 그나마 요즘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겨울용 옷감이다.
겨울 한복은 방한용으로, 외출시엔 두루마기나 반두루마기, 갖 저고리를 걸치고 가벼운 외출시에는 배자를 걸치면 추위를 막을 수 있다. 왼쪽이 여름 오른쪽이 겨울
1) 한복이란?
한복이란 간단히 말해서 한국 고유의 옷을 뜻한다.
한복은 형태나 구성이, 아름다움, 재질, 위생적인 면에서 그 뛰어난 특색을 자랑하고
있다. 특별한 날 우리의 눈길을 끄는 옷차림은 고운 색상의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 입
고, 두루마기까지 걸친 한복차림이다. 가장 신부답고 가장 신랑다운 의상은 한복이다.
신부가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녹의 홍상, 녹색 저고리에 붉은
색 치마를 입고 사뿐사뿐 나다니는 신부의 모습은 사뭇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아무리 자유분방한 사람이라도 한복을 입은 자세를 바르게 하게 되어, 어른들에게도
훨씬 좋은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그래서 시대가 많이 바뀌어도 약혼식과 신혼 나들이
길에는 신랑 신부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모습이 한층 정겹고 아름다워 보인다.
2) 한복의 특징
- 형태와 구성상의 특징
한복은 평면적인 옷감을 직선적으로 재단하고 이를 꿰매어, 평면적인 옷을 만들며 이것
을 다시 입체적인 인체에 맞도록 남은 부분을 주름을 잡거나 접어서 끈으로 고정시키는
형태이다. 바지의 경우에는 마루폭 이외에 활동에 필요한 여유분을 주기 위하여 사폭을
만들고 이것을 다시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나누어 전후 좌우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구성방법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우리나라의 자연적인 조건과 민
족적인 미적감각을 잘 살려준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한복은 평면구성으로 이루어져
서 입어야 비로소 입체감이 형성되어 더 부드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 미적인 특색
한복의 아름다움은 외관으로 보이는 선의 흐름과 옷감이 지닌 색채의 조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추녀의 곡선과 같이 하늘을 향한 듯한 저고리의 배레선과 도련의 곡선 동정의 예리
한 직선과 조화를 이루며 여기에 깜찍하고도 앙징스러 우리만큼 동글면서도 뾰복한 작은
섶코의 선은 저고리를 한층 돋보이게 해준다. 한복의 나타나는 이같은 선의 흐름과 조화
에서 우리는 선조들의 뛰어난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으며 여기에 옷을 입고 움직일 때
에 생기는 동적인 선의 아름다움까지 가미하면 우수한 선의 조화는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
을 만한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옷감의 색채면에서 볼 때에는 한민족을 일
컬어 “백의민족” 이라 했듯이 백색은 좋은 인연을 가져온다는 뜻으로 예부터 숭상하게 되
었고 따라서 흰옷을 즐겨 입었다.
** 형태 면에서 평면적인 옷감을 직선적으로 재단하고 사람이 입으면 입체감을 주도록 주름
을 잡아 끈으로 고정시킨 형태이다.
** 구성면에서 활동에 상당히 편하도록 하고 있으며, 바지의 경우 마루폭, 큰사폭, 작은사폭
으로 나누어 앞뒤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 아름다움 면에서 우리선조의 뛰어난 미적감각을 느낄수 있는 선의 흐름이 둥글면서도 뽀
족하다. 곡선과 예리한 직선의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과히 계적으로 으뜸이아닐수 없다.
** 재질는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옷감을 사용, 자연과 조화를 이룰수 있게 했다.
** 색채감 면에서 자연색과 조화를 이뤄 상당히 고운 색감을 사용 했고 움직일 때 선의 아름다움 과 어울려 한층 더 아름다움을 감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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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도움돼요. 우리반 선생님이 알려주셨답니다.
안돼면 그냥 우리의 한복이라 쳐서 내려가보면 우리의 한복이라는 것이 있어요.
들어가서 하세요............................... 아이디 만들실려면 이름과 자신주민만 있으면 되요...
일단 기계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요, 사람들이 편한 것만 찾으려고만 하는 문제점이 있고요.
교통편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가까운 거리에도 편하게 가려고 하고 걷지 않고 타고 다니기만 해서 건강이 많이 쇄약 해지게 되죠.
그리고 로봇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해야 할일을 로봇한테 시키게 되면 사람들의 노력과 책임 등이 많이 쇄약 해져 사람들의 정신적으로도 안 좋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계 중에서도 연기를 내뿜어야 하는 기계도 있잖아요. 그런 기계 같은 경우에는 사람 몸만 해로운 것만이 아니라 환경에서도 안 좋습니다. 요즘 오존층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환경오염 때문에 많이 걱정을 하게 돼는 원인도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가스나 프레온 가스가 원인이 될 수가 있지요.
프레온 가스와 매연가스가 기계에서 많이 사용하게 돼서 이런 문재가 발생하게 된 것이죠.
기계는 우리한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해가 되기도 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돼는 경우도 있지요.
요즘 뭐 로봇 청소기 같은 것도 나오고 있지요. 이렇게 되면 인간의 힘도 쇄약해지고 사람이 게을러지고
그렇게 되면 몸도 약해지고 자신의 힘으로 일을 해결 할 수 없는 능력까지 쇠퇴하게 되고 자신이 해야 할일도 잘 몰라서 쩔쩔매는 일도 일어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생 5학년되는 어리~인 나이랍니다 ^^ 부족국가의 한복의 특징과 발해의 한복의 특징을 알고싶습니다. 1시간만에 올려주세요 삼국시대에 복식은 고구려의...
... 시대별한복의특징 예를들어서 시대:부족국가: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 신라: 발해... 제발가르쳐주세요 내공은 많이못걸지만요 제발부탁드려요 ㅠ0ㅠ 고구려시대 고구려...
... 근데 선생님께서 한복의 특징과 사진을 알아 보라고 하시네요? 최대한 빨리 좀 알려 주세요. 내공 많이 드릴게요. 아주 좋은 답변 기다릴게요. 예를 들어서 여름철 및 겨울철...
시대별 한복의 변화 좀 알려주세염.... 남자 여자 따로..... 사진도 부탁드립니다!!!(내공 10) 빨 리요......1시간 내로요!... 그 특징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복식흐름의...
... 그냥 한복의 특징도 괜찮아요! 내공드리는 건 확실하게! 하겠지만... 드리는 방법 또한 가켜주세요~ 그냥 등록하면 돼나요?? 쓰면 저절로 받아지나요?? 그리구! 기한은 오늘...
제가쓴 한복에 특징과 모양,명칭 좀 써주세요.. 그림도 있으면 좋고요. 다 남자 한복 입니다 1.바지 2.저고리 3.조끼 4.마고자 5.두루마기 6.버선 바지 고의(袴衣)라고도 불리워지는...
한복 시대별로 분류해서 알려주세여 고려, 신라, 백제, 조선이여~~ 내공 많이 드릴게영 꼭이여~~ 상고시대... 그 특징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복식흐름의 성향은 전란...
... 의상의특징과 조선시대 저고리와 치마 외투 (남,녀) 에대한것좀 써주세요 부탁좀요 쓸대없는이야기 하면 신고합니다 내공은 충분히드려요!!!!! 급해요 오늘 1시전까지...
시대별에 따른 한복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려주세여. 내공 드릴께여... 상고시대 우리나라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그 특징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복식흐름의 성향은...
한복의 특징 빨리 자세히 설명. (내공 많이 드림) 1) 한복이란? 한복이란 간단히 말해서 한국 고유의 옷을 뜻한다. 한복은 형태나 구성이, 아름다움, 재질, 위생적인 면에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