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드리죠.
신라의 문화유물을 소개해 드리죠.
금관총 금관
고신라, 높이 44.4cm
국보 제8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라의 금관 중 제일 먼저 출토된 것인데 1921년 민가의 뜰에서 우연히 발견, 조사되었다.
외관은 이마에 놓이는 出자 모양의 3개의 가지와 사슴뿔 모양의 장식 2개를 세운 전형적인 모습이다.가장자리를 돌아가며 뾰족한 끝으로 눌러 장식하고, 바깥면에는 금실을 달았으며 장식을 늘어뜨려 화려함을 더한다.
다보탑
국보 20 호로 경상북도경주시 진현동 에 있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의 김대성이 불국사를 세우면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는 높이가 10.4m이며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기단부는 사방에 계단과 돌기둥이 있다.
그 위에는 사각형 돌기둥을 세우고 받침을 얹었다.
하층기단 윗면에 4구의 돌사자를 배치하였으나 지금은 1구만 남아있다.
탑의 구조는 동양불탑의 다른 예를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석탑이며 뛰어난 석재 가공기술과 아름다운 비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천마도
신라 5~6세기, 75x53cm
국보 제207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경북 경주시 황남동 천마총(155호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얇게 편 자작나무 껍질을 여러 겹으로 겹치고 14줄로 누비어 만든 말의 안장에 있는 그림이다.
중앙에 있는 천마의 갈기와 꼬리털은 수평으로 휘날려 강한 속도감을 느끼며, 입에서는 긴 혀처럼 불을 뿜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이 말을 어딘지 이국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 그림이 출토되어 분묘의 이름을 천마총이라 하였다.
문무대왕릉
경북 경주시 양북면 앞바다에 있는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이며 사적 제158호. '대왕암'이라고도 한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이 유언으로,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고 한 전설이 내려온다.
이에 따라 유해를 동해의 큰 바위에 장사 지낸 뒤, 사람들은 왕의 유언을 믿어 그 큰 바위를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또한 신문왕은 부왕의 뜻을 이어 동해 변에 감은사를 창건하여 동해의 왜구를 막으려 하였고, 감은사 금당 밑에서 동해를 향해 구멍을 뚫어 바닷물이 금당 밑까지 들어오게 하여, 용이 된 문무왕이 조수를 따라 금당까지 드나들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포석정
경북 경주시 탑정동에 있는 사적 제1호
경주 남산 서쪽 기슭에 자리잡은 포석정은 원래 통일신라시대때 연회장소로, 신라 천년 사직의 종막을 내린 현장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신하들과 향락을 즐기던 신라 55대 경애왕은 불시에 쳐들어 온 후백제의 견훤에게 죽음을 당하고 만다.
포석정이라는 이름은 돌 홈 모양이 전복껍질처럼 구불 구불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경주 남산의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끌어들여, 그 물이 돌 홈을 따라 흘러가면 거기에 잔을 띄워서, 신하들이 지위에 따라 둘러 앉아 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짓는 잔치를 벌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는 신라인들이 유체역학(流體力學)의 원리를 응용해 만든 진귀한 문화유산이다.
아셨나요?
그리고 첨성대는 647년,즉 삼국이 통일되기 이전인 647년에 만들어졌으니 신라시대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는 676년 이후부터 신라가 망하는 935년까지이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