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와룡산 선사시대 유적지 자료 좀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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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와룡산 선사시대 유적지 자료 좀 보여주세요!!
안동와룡은 선사인들이 거주하면서 거석문화의 꽃을 피운 지역으로 다양한 형태의 산물들이 상호조화를 이루고 있어 선사시대 문화기행에 으뜸가는 명소로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군(고창, 강화, 화순)이 세계에서 뛰어난 유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지난 2000년 11월경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한국 고인돌의 예술적 우수성과 타월한 가치를 국제적으로 공인 받아 보존되고 있다.
안동와룡산 거석유적들의 특징은 다듬어진 기념물이 예술성 면에서 독창미가 뛰어나고, 형태면에서 독창성이 가미된 독득한 형태로 발달되어 이 땅에 살던 선조들이 주술적 의미를 가미시커 생명을 불어 넣은 선돌과 고인돌이 함께 선사문화의 산물들이다.
안동와룡산 일대 뿌리깊은 선사시대 문화기반위에 준비된 역사시대를 맞이한 안동 전통학문발전은 한국 정신문화의 꽃을 피워 수준 높은 안동 전통정신철학으로 승화되었다.
따라서 안동와룡 선사 유적지는 다양한 고인돌과 선돌들이 함께 자리잡고 있어 한국 거석문화의 박물관이라 여겨지며, 안동 와룡산은 꿈나무들의 문화유적 탐방투어와 선사시대 역사교육장에 산실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고인돌 : 와룡1호~15호, 선돌 : 선돌1호~10호
준비중....
* 안동와룡산 선사유적 고인돌의 특징
1.꼬리달린 고인돌
2.쌍두석식 고인돌과 다지석식 고인돌
3.고인돌 피장자와 관련있는 다양한 성혈
4.고인돌 채석장
5.흔들바위 독바우
6.거북형태와 배모양 고인돌 등...
◆ 안동와룡 선돌(立石) 유적지
[소재지] 주계리 와룡산 일대
[해석] 안동와룡산은 선조들이 돌에 생명을 심어 놓은 유적지로서 능선을 따라 다양한 형태로 세워진 선돌들이 특이하며, 옛날 이곳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곰이나 나무 혹은 돌이나 태양, 달 같은 것에 소원을 빌었다. 이처럼 모든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애니미즘이라고 하고, 이와 비슷하지만 특정한 동식물 등을 수호신으로 삼아 숭배하는 것을 토테미즘이라고 한다. 단군 신화에 나오는 곰을 숭배하는 부족의 믿음이 토테미즘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런한 풍습은 신석기 시대부터 생겨났다
선돌은 원시인들의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기능과 한 집단의 영역을 표시하는 표지석에 역할도 했으며, 선사시대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 주고 있다.
이곳은 미래의 주인공이 될 우리 어린이들에게 색다른 자연환경과 고대 선사시대 체험장으로써 역사기행에 큰 무대가 되고 있다.
선돌 1호인 곰신바위는 원시사회 당시 출산의 중요한 것을 보여주는 남근과 여근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 음기에 양기가 삽입된 행위가 섬세하게 표현된 것으로 보아서 성을 숭상한 성교모의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지금까지 알려진 삼국시대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토우의 성신상 보다 선사시대 와룡산 희귀한 선돌의 성신상(聖身像)이 역사적으로 앞서고 있어 귀중한 역사적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돌 2호인 부처바위는 능선 비탈에 남근석과 쌍으로 세워진 것으로서 둥근기둥(圓椎)모양이고 뒤에는 미륵부처 형상이며 전자는 남성을 상징하고 후자는 여성을 상징하여 성별구분이 뚜렷한 남성 상징물이 여성 상징물 보다 더 크다.
후대에 이르러 부처바위는 성신신앙의 기능인 마을의 풍요를 빌거나 집안 자손에 번성과 풍요로운 수확을 비는 생식적인 기능을 행하고, 동양 정신적인 뿌리의 한 형태로서 고을민의 민간신앙처로 보호받고 있다.
선돌도 준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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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460.8m | 안동시 와룡면 주계리 |
안녕하세욧~~저두 6학뇬 이에용~ㅎㅎㅎ
수고~^^
(시작!!)
암사동선사주거지유적은 지금으로부터 약 6,000여년전에 우리의 조상인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유적으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밝혀진 신석기시대의 최대 집단취락지이다.
이 유적은 동남쪽의 구릉에 신석기시대 다음시대인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유적(無文土器遺蹟)과 인접되어 있어 두시대의 문화가 접촉하는 양상을 알려주며, 또 농경문화 개시를 입증하여 주는 고고학적자료도 발견되어 한국선사문화의 추이를 밝히는데 있어서 유일하고도 귀중한 유적이다.
이 유적은 1925년 을축년 홍수에 한강변 모래언덕 지대가 심하게 패어져 수많은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노출되면서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 임이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1967년에는 대학연합발굴단, 1968년에는 서울사대 조사팀, 1971∼1974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그리고 1983년에는 서울대 암사동 유적발굴단에 의한 대규모 조사로 수혈주거지군(樹穴住居地群)과 그 부속시설이 확인되었고, 이후 계속된 발굴조사에 의해 많은 빗살무늬 토기와 석기는 물론 청동기시대의 유물도 출토되었다.
이 암사동선사주거지유적은 1979년 7월 26일 사적 제 267호로 지정되었고 1981∼1988년까지 유적지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총면적 78,133㎡의 문화재 보호구역을 확대하여 9차에 걸친 복원공사로 신석기 시대 움집이 복원되었고 선사유적전시관을 건립하였으며, 이용시민들의 불편이 없도록 주차장, 산책로 등 편의 시설을 완비하여 '88년8월 준공되어 개방되고 있다.
▣ 신석기인의 생활상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집터로써 암사동 유적은 제일 먼저 알려진 곳으로 이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에 의해 기원전 4∼3천년 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석기시대에는 거의 대부분 땅을 깊이 파고 움집을 견고하게 지어서 살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석기시대는 완전한 생산경제의 단계가 아니고 일부 수렵, 채집, 어로에 의존하는 경제단계였기 때문에 대형 저장 시설 보다는 대부분 간단한 제작시설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암사동 움집은 한강을 끼고 널직한 평지에 자리잡고 있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기반이 고기잡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나타내준다고 하겠다. 이것은 어망추, 작살 등 어로도구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뒷받침되며, 화살촉들의 발견으로 인근야산에서 수렵을 했으리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또 도토리, 갈판, 갈돌의 발견은 신석기인들의 주식량이 도토리였으며 보습, 돌낫같은 농기구의 출토는 밭농사가 일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 움 집
신석기시대 살림집은 동굴을 이용한 경우도 있으나 움집이 일반적이다. 움집이란 일정한 넓이와 형태를 가진 구덩이를 파 집바닥을 땅밑에 두고 구덩이안은 별도의 벽체 시설없이 서까래가 바로 땅에 닿게 된 집을 말한다.
신석기시대의 움집은 해안가 구릉이나 큰 강변의 대지에 지어졌는데, 직경 4∼6m 크기의 원형이나 모를 죽인 방형의 구덩이를 깊이 50∼100㎝정도 판 다음 화덕자리등의 내부시설을 마련하고 지붕을 덮었다.
화덕자리는 돌이나 진흙으로 원형이나 타원형, 장방형의 테두리를 돌려 집 중앙에 설치하였는데 보온과 취사에 이용되었다. 바닥은 아무런 시설이 없거나 또는 진흙을 깔아 다진 것이 있는데 그 위에 풀이나 짐승가죽 등을 깔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붕은 움구덩이 주위에 서까래를 걸치고 한 쪽 끝을 움 중앙에 모이게 묶어 골격을 형성하였는데 서까래 아래 사이에 잔나무 가지나 갈대, 억새 등의 풀을 이어 덮었다.
움집의 규모로 작은 움집은 2∼3명, 큰 움집은 5∼6명이 기거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저장공(貯藏孔)
주거지 외곽에 자리잡은 저장공이 모두 4개 확인되었는데 모두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직경 2.3m에 깊이 0.34m, 직경 0.9m 에 깊이 0.35m, 직경 0.95m에 깊이 0.43m, 직경 0.85m에 깊이 0.28m의 4개가 보이고 있다.
규모가 비교적 크기 때문에 저장공(貯藏孔)라 할 수 있는 이 시설물은 원형의 수혈로써 외곽의 한쪽에 2단의 계단을 만든 출입시설이 있다. 직경은 3.4m, 깊이는 1.74m인데 바닥은 어깨면으로부터 1.4m깊이에서 평탄해지다가 중앙부에 이르러 장방형에 가깝게 좁아지면서 깊게 파였다.
저장공에는 집바닥을 파고 바닥이 없는 토기를 거꾸로 묻어 만든것과 벽쪽을 파서 별도의 독립저장 시설을 마련한 것이 있다.
▣ 출토유물
집터에서 드러난 유물중 토기는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가장 특징적인 빗살무늬 토기이다. 이 토기는 바탕흙이 사질토에 운모가루 도는 석면과 활석이 섞여 있으며, 흙테를 하나씩 따로 빚어 차례로 쌓아올린 수법으로 만들어졌다.
그릇 모양은 곧은 입술모양에 뾰족밑 또는 둥근밑이고 반 달걀모양을 하고 있다. 빛깔은 부드러운 갈색이나,문살무늬, 생선뼈무늬 등 여러 유형이 있으며 무늬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지역별로 크게 동북, 서북, 중서부, 남부지방의 4개 문화영역으로 나눌 수 있으며 중서부 지방은 뾰족밑
토기가, 동북지방은 납작밑 토기가, 남부지방은 둥근밑 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뾰족밑 토기는 계란의 윗부분을 옆을 잘라 버린 것 같은 모양을 보인다.
암사동 집터유적지에는 여러 가지 석기가 드러났는데 대표적인것으로는 돌촉·돌도끼·공이·긁개·갈판과 갈돌등이며 이러한 유물은 돌짐승의 사냥과 가죽을 벗기는 데 쓰였다고 보여지며, 공이는 들짐승의 뼈나 열매같은 것을 부수는데 쓰였을 것이다. 그리고 갈판과 갈돌은 도토리알과 같은 열매를 갈아서 가루를 내는데 쓰였을 것이다.
도움 되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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