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역사 내공30;;;;

자동차의 역사 내공30;;;;

작성일 2005.06.22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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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역사를 1900년 부터 2005년 지금까지 역사를 자세하게 적어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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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1910 과학 문명을 이끌게 된 자동차산업

[ Ford - Model T, 1908 ]
미국과 유럽에서는 자동차 제조업이라는 종합기계산업이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대부분 수공업으로 자동차를 만들었는데, 르노, 씨트로앵, 벤츠, 푸조, 포드, 롤스 로이스와 같은 세계적인 자동차가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최초로 세계를 일주하는가 하면, 각종 경주에서 경쟁을 벌이며 보다 좋은 차를 만드는 데 힘써, 자동차산업은 20세기 과학문명을 이끌어 나가는 선두주자가 되었습니다.


1910~1920 많은 사람의 꿈을 이루어준 포드자동차

[ Rolls Royce - Silver Ghost, 1910 ]
자동차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갖고 싶어했지만, 아무나 탈 수 없을 만큼 비싼 것이 흠이었습니다. 이때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는 처음으로 대량생산방식을 도입하여 서민용 자동차인 포드 T형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의 꿈을 이루어 주었습니다. 포드 T형은 당시 다른 자동차들이 1천 달러 정도인데 비해 440달러에 판매됐는데, 1914년부터 1927년까지 무려 1,500만 대가 생산되었습니다.

1920~1930 더욱 빠르고 더욱 안전하게

[ Chrysler - Six, 1924 ]
자동차업체들은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며 더욱 빠르고 안전한 자동차를 만드는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속도가 크게 빨라진 것은 물론이고, 생명을 보호하는 안전장치와 보호장치가 개발된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이 생산한 자동차의 성능을 시험해 보이기 위해 각종 자동차경주에서 경쟁을 벌였는데, 세계를 열광하게 만든 이 경주들을 통해 자동차산업과 기술은 더욱 발전했습니다.


1930~1940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차들

[ GM Cadillac - V16, 1930 ]
오늘날까지도 그 명성이 식지 않는 명차들이 이 시기에 탄생했습니다. 히틀러가 타고 나찌 군대를 사열하던 메르세데스 벤츠, 헐리우드 톱스타들이 즐겨 탔던 듀센버그, 왕족이나 부호들이 애용한 롤스 로이스 같은 차들이 그 주인공. 이 명차들은 뛰어난 성능과 높은 품격으로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며, 신분과 품격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1940~1950 자동차 기술을 한단계 끌어올린 전쟁

[ Volkswagen - Beetle, 1949 ]
194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세계를 휩쓴 전쟁의 시기였습니다. 유럽에서는 대부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고 말았지만, 미국은 자동차에 군사 기술을 적용시켜 큰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1941년 미국 국방성의 요청으로 윌리스사와 포드사가 만들어낸 네바퀴굴림(4륜 구동) 지프는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50~1960 전쟁이 남긴 폐허 속에서 꽃핀 소형 국민차

[ Mercedes Benz - 300SL, 1955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는 전쟁으로 폐허가 돼 버렸습니다. 심한 불황에 빠진 유럽 각국은 경제적인 국민차를 개발하는데 박차를 가했습니다. 독일의 폴크스바겐 비틀, 영국의 모리스 미니, 프랑스의 르노 4CV 같은 차가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독일의 포르쉐 박사는 1954년, 전쟁전 히틀러가 제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폴크스바겐 비틀의 개량형을 만들어냈는데, 20년 동안 1,900만대를 생산하여 국민차의 지표를 세웠습니다.


1960~1970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이 된 미국

땅이 넓고 자원이 풍부한 데다가 전쟁으로 경제부흥을 이룩한 미국이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으로 떠올랐습니다.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은 크고 강하고 화려한 미국식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데 열중했습니다. 특히 전투기의 날개 모양을 본따 만든 ‘테일 핀 스타일’ 캐딜락은 롤스 로이스, 메르세데스 벤츠 리무진과 함께 세계 3대 고급차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1970~1980 경제적인 앞바퀴굴림차

[ Honda - Civic CVCC, 1974 ]
1970년대는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수출 금지 조치로 두 차례의 석유파동이 세계경제를 뒤흔든 시기였습니다. 자동차산업, 특히 미국의 대형 자동차산업은 큰 피해를 입었으며,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경제적인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최대의 과제로 등장했습니다. 유럽과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은 이미 개발된 소형차들을 연료 절약형으로 개선하고, 실점수간을 넓히는 한편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는 앞바퀴굴림차(전륜구동)를 만들어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1980~1990 세계가 함께 만들고 함께 타는 월드카

[ Plymouth - Voyager, 1984 ]
석유파동 뒤 세계경제가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자동차업계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자동차 역사를 주도해 온 선진국의 자동차회사들은 노동력이 싸고 풍부한 개발도상국으로 생산공장을 옮겼습니다. 결국 선진국의 기술과 자본이 값싼 노동력과 결합해 생산원가를 낮추고 더 넓은 지역에 자동차를 팔 수 있게 됐습니다. 세계가 함께 만들고 함께 타는 '월드카’시대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1990~2000 컴퓨터 발달로 똑똑한 자동차 등장


[ GM Chevrolet - Corvette, 1999 ]
인류가 컴퓨터를 만든 이후,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해서, 자동차 역시 컴퓨터 덕분에 상상을 초월하는 진보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른바 인공지능 자동차. 안전장치가 자동화된 것은 물론, 컴퓨터가 알아서 달리는 무인주행 네비게이션 장치, 고장을 알아서 판단하는 시스템도 개발됐습니다. 이러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우리는 인간 중심의 다양한 자동차, 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자동차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2000년대 환경을 생각하는 자동차로
자동차는 한 세기 동안 인간의 발 노릇을 하며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으로 자리매김 해왔습니다. 하지만 에너지를 마구 쓰는 바람에 에너지 자원이 고갈되고 대기를 크게 오염시켜 지구를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 21세기에는 수소나 전기, 천연가스와 같은 대체에너지를 이용해 환경오염을 줄여나갈 뿐 아니라, 더욱 인간적인 자동차, 그리고 첨단과학을 동원해 더욱 편리한 기능을 갖춘 자동차가 우리 앞에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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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마차의 시대

인간이 고대인류문명의 획기적인 전기가 되는 원형바퀴와 달구지를 발명한 것은 기원전 6천년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처음에는 소달구지로 수확한 곡물을 운반하였으나 보다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인간의 속도욕망은 야생의 말을 가축으로 키워 마차를 만들었으며, 이 발명은 기원전 3천년경 중앙아시아의 아리아족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발명한 마차는 세계 각처로 번져나가 고대 로마제국은 마차가 끄는 전차군단으로 기동력을 발휘하여 서양 세계를 정복하였고, 유럽전역에 도로망을 닦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은 우마차를 이용하면서 풍력이나 수력에 의해 움직이는 탈 것(Vehicle)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고, 더 나아가 자기 힘으로 달리는「말 없는 마차(Horseless Wagon/Horseless Carrige」의 발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1250년 영국의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베이컨은 그의 저서「과학적 근대철학」에서 자동차, 비행기 기선 등을 예언하였고, 15세기 르네상스시대에 대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80년 태엽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스케치로 남기었다

2. 증기자동차의 출현

1765년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증기엔진 시대를 열었고, 1769년 프랑스의 포병장교인 니콜라스 죠셉 뀌뇨는 2기통 증기엔진을 탑재한 3륜 증기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발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시험도중 사고를 일으켜 감옥에 갖히는 불운을 겪었다. 그후 끊임없는 증기자동차의 실용화 노력은 이어져 1820∼1840년에 걸쳐서는「증기자동차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증기자동차의 보급으로 실업자가 늘어나고 도로 파손과 검은 연기로 시민의 반감이 일어나자 자동차 발달을 못마땅히 여겨 온 마차와 철도업자들이 증기자동차를 규제하라는 압력을 넣어 영국은 1865년「적기조례(Red Flag Act」라는「세계 최초의 교통법」이 제정되어 영국에서는 자동차의 발달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3. 증기철도와 기선의 전성시대

1825년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함으로써 증기철도는 급속하게 발달하여 1838년 영국의 철도길이는 8백km를 넘어섰고 10년후에는 8천km로 10배나 증가하였다. 또 유럽대륙과 미대륙에서도 철도가 급격히 보급되어 자동차와 비행기가 출현하기까지 증기기관 철도와 기선은 19세기 교통혁명의 주역이 되었다.

4. 가솔린 자동차의 발명

실린더내에서 직접 연료를 연소시켜 그 폭발력으로 동력을 얻는 내연기관의 실험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실용화된 것은 1862년 프랑스 르노아르의 2기통 석탄가스 엔진이었다. 그후 1870년 독일의 오토가 가솔린을 이용하여 열효율이 높은 4기통 엔진을 발명한데 이어 오토의 조수인 독일의 고트리브 다임러(G. Daimler)는 1885년 자동차용 가솔린엔진을 개발하였고 이듬해인 1886년 2인승 4륜마차의 탑재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발명하였다. 또한 같은 해 독일의 발명가인 칼 벤츠(K. Benz)도 가솔린엔진을 탑재한 3륜자동차를 개발하였는데, 이 두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모른채 자동차를 발명하여 독일은「근대 자동차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이 두사람을 갖게 되는 영광을 갖게 되었고, 이들이 세운 회사는 1926년 합병하여 유럽 최대의 복합기업인 다임러 벤츠그룹(Daimler Benz)과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인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 Benz AG)로 성장하였다.

5. 전기자동차의 출현과 퇴진

전기자동차는 프랑스 라파엘과 영국의 포크등에 의해 개발되어 가솔린 자동차보다 3년 먼저 실용화되었으며, 초창기인 1900년 전후까지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압도하였다. 또 1899년 자동차레이스에서 전기자동차가 시속 105km를 기록하여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축전지의 무게가 1톤 가까이나 되며 주행거리도 짧고 충전시간도 길어 내연기관자동차에 밀려 1920년경에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세계 자동차산업의 발전과정

세계 자동차산업의 역사는 1886년 독일에서의 자동차 발명으로 시작되어 100여년에 걸친 변화와 경쟁을 거듭하면서 20세기 근대산업발전을 선도하였고 현대과학문명의 꽃을 피웠다. 자동차의 최초 발명이후 지난 100여년간 기본컨셉트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생산방식, 규모, 조직 등과 기술의 진보로 얻어진 경제성, 편리성, 거주성, 생산성 등은 초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변혁이었다. 초기 자동차산업의 생성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19세기 산업화 초기단계에서 각종 기계공업제품의 생산이 수공업방식에서 직공을 중심으로 기술이 축적되어 갔으며 특히 19세기말 미국에서「Singer」와「Colt」 브랜드로 유명한 재봉기나 총기류의 대량생산에서 얻어진 기계설비를 이용한 생산시스템은 20세기초 미국 자동차산업의 도입기반이 되는 하부구조가 되었다. 이 하부구조를 바탕으로 1910년대 미국의 포드사가 주도하는 주문생산에서 대량생산으로의 대전환을 세계 자동차 산업발전과정의 그 첫 ***이라고하면, 1950년대 유럽의 생산자가 미국의 대량생산에 대응하기 위한 제품의 다양화는 제2의 대전환이었으며, 1960년대말 일본의 생산자가 생산조직과 방식의 획기적인 변화로 값싸고 품질 좋은 차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시장을 지배하게 된 것이 제3의 대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산업의 생성

자동차 발명의 영예는 독일이 갖고 있지만 당시 독일에서는 자동차를 위험물로 취급하여 여러 가지 규제를 가함으로써 산업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1889년 프랑스 파나르 르바소는 독일 다임러사로부터 제작권을 획득하여 세계 최초의 자동차 메이커가 되는 기록을 갖게 되었다.
1890년 이후 프랑스의 르노, 푸조, 이태리의 피아트 등 소규모 메이커가 수없이 생겨나 수공업형태 생산으로 한 종류에 한 대꼴로 만들어지는 오늘의 시작차와 같은 것이 주류를 이루었고 수요도 부자들의 오락용에 불과하였다. 그 후 생산량은 서서히 증가하여 1900년에는 독일과 프랑스가 세계자동차 시장의 58%를 차지하면서 세계 총생산 규모는 년간 5만대에 이르렀다.

한편 미국은 철도건설에 주력하여 1850년에 이미 철도총길이가 1만4,520km에서 20세기초에는 40만 km를 넘어서는 철도대국이 되어 있었다. 미국대륙은 더욱 광활해졌고 개인주의적 국민성과 풍부한 석유자원에 힘입어 자동차산업이 급격히 발전하게 되는 기반이 조성되어 1899년 올즈모빌사가「세계자동차의 메카」로 불리우는 디트로이트에 세워져 훗날 제너럴 모터스(GM)의 탄생기반이 되었다. 20세기에 들어 1903년 포드 자동차사를 창설한 포드 1세가 포드A형을 생산하기 시작할 즈음 당시 미국의 총생산은 1만 1천대로 유럽에 비해 약간 늦은 출발을 하고 있었다.

포드 혁명과 GM의 세계제패

포드사는 1909년 1500만대 생산기록을 갖는 세계 자동차사상 초유의 단일모델인「포드 T-Model」을 개발하였다. 「포드혁명」 또는「포드생산방식」으로 불리우는 포드시스템은 컨베이어에 의한 대량 생산방식으로 자동차생산의 혁명을 이루었으며,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보급하게 되어 미국은 세계최초로「자동차대중화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에 들어서 미국 자동차시장에 이상한 변화가 나타났다. 미국 총생산 362만대 가운데 포드가 167만대를 기록한 1923년 이듬해부터 생산과잉과 대체수요 발생으로 단순한 디자인의「포드 T-Model」에 싫증을 느낀 수요자가 외면하기 시작하였고, 포드사는 다양한 수요의 욕구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GM의 추격에 밀려 결국 오늘날까지 GM에 이어 세계 2위의 자리에 머무르게 되었다. 한편 1908년 GM을 창업한 위리엄 듀란은 2년후「Buick」,「Olds」,「Cadillac」등 25개사를 흡수합병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고, 1923년부터 알프레드 슬로안의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오늘날 세계최대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다졌다.

BIG3의 세계진출과 유럽시장의 확대

미국의 BIG3(GM, FORD, CHRYSLER)는 1920년대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에 진출하여 유럽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럽에 진출한 미국의 현지조립공장은 유럽의 고관세장벽 때문에 현지에서 일괄생산할 수 있도록 전략을 바꾸었으며, 미국의 제조기술과 유럽메이커의 최고기술을 향한 노력이 더해져 유럽시장은 적정생산규모를 확보하였고, 다양한 제품개발로 1950년부터 이후 세계 최대의 생산지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초 유럽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할 무렵 세계시장의 85.9%를 차지하고 있던 미국은 해외시장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보호되어 시장변화에 둔감하였고, 스스로 자만에 빠져 기존 제조방식이 최적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반면에 유럽메이커들은 제품차별화와 시장세분화 전략을 통해 서서히 세계자동차산업의 강자로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본도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세계자동차산업의 경쟁대열에 진입하면서 독특한 생산방식을 개발하는 노력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갔다. 한편 1970년대초 유럽의 시장규모와 생산대수는 미국을 능가하기에 이르렀으며, 1950년 37만대에 불과하던 수출은 1970년 189만대로 증가하여 세계 최대의 수출지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일본의 세계제패와 미·일· EC의 3극화체제 형성

일본의 자동차산업은 1920년대 GM과 FORD의 진출로 대량생산의 기반이 다져졌으나, 1936년 외국기업을 배제하는 법규가 제정되어 독자적으로 자동차산업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사목적과 트럭중심의 형편없는 구조로 산업은 매우 취약하였다. 1950년대에 들어 한국전쟁에 따른 특수경기, 군수산업기술자의 민수사업대거 참여, 정부와 업계의 외국차 진출제한, 승용차 중심으로의 산업전환 등에 따라 비약적인 성장의 기반을 다지고, 1960년대들어 세계무역장벽 완화로 자동차무역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일본도 수출시장에 뛰어들었다. 특히 일본은 새로운 산업조직과 특유의 생산방식으로 새로운 노사관계를 만들었고「도요다생산방식」으로 대표되는 「간판방식」과「JIT방식」에「TQC」가 확산되면서 일본 특유의 제조철학이 뿌리를 내렸다. 이러한 제조기술은 가일층 개선되었고 여기에 1968년부터 불붙은 자동차대중화(Motorization)로 내수기반이 확장되면서 대량생산과 저코스트의 생산자로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갔다.
특히 70년대 2차에 걸친 오일쇼크때 연료소모가 적은 소형차급에서 완전경쟁우위를 확보함으로써 1970년에 이미 530만대 생산기록을 세우고, 1974년에는 268만대 수출로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하여 미국, 유럽과 함께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3극화체제를 형성하게 되었다

신흥공업국의 세계 진출

미국·일본·유럽의 3극체제 속에서 1980년대부터는 개발도상국과 동구제국이 저임금과 양산체제를 바탕으로 세계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한국과 멕시코, 브라질 등 몇 개 국가를 제외하고는 성공한 국가가 별로 없었다. 한국은 1962년 완성차 수입 금지와 함께 국산화 정책, 중화학공업 정책, 수출산업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80년대 고도성장에 따른 자동차대중화 진입을 바탕으로 소형차가 미국시장 진출에 성공하였으며, '90년대 중반에 세계 5위의 생산대국으로 부상하여 신흥공업국 중 가장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조금 간단하게 정리해서..

 


   

 

자동차 역사 - 한국의 4WD의 역사

▣1969

신진자동차에서는 1969년 미국의 KAISER 지프에서 부품을 공급받아 조립 생산해서 우리나라에 최초로 민간용 지프를 생산했다.

▣1974

1974년 4월 신진지프는 거화로 상호변경을 하면서 미국 AMC사(AMERCA MOTOR COMPANY)와의 합작제휴로 지프만 생산하는 전문업체로 대두 되었으며, CJ모델의 가솔린 엔진의 4인승 캔버스탑, 4인승 하드탑, 3인승 VAN, 12인승 웨곤, 2인승 픽업을 생산했다.


▣1980

거화에서는 지프에 최초로 디젤엔진(4BA1모델)을 탑재하여 CJ모델 외관을 약간 변형시킨 지프를 생산했다.

▣1984

거화의 경영권이 동아자동차로 인수되면서 독자적인 "코란도"도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72마력의 C223 디젤엔진을 탑재하여 4인승 캔버스탑 5인승 하드탑,
6인승 패트롤, 9인승 웨곤, 3인승 VAN을 제작했다.




▣1987

1986년 동아자동차 경영권을 쌍용그룹에서 인수하여 쌍용그룹에서 인수하여 쌍용그룹 계열기업으로 승인했다. 1987년에는 외관과 실내장이 더욱 고급스럽게 변화한 현재 국내시장의 유일한 지프인 코란도의 형상을 보유한 뉴코란도를 생산했다.

▣1987년

동아자동차는 KBS TV팀과 협찬하여 국내 최초로 1987년 9월 1일부터 1987년 12월 30일까지 130일동안 히말라야를 탐사 취재했으며 20m 절벽 아래로 차가 3바퀴나 굴렀으나 탑승자가 모두 무사했던 기록을 남긴
대장정을 실시했다.




▣1988년

국내 최초로 KBS TV팀과 백두산 천지를 촬영하였으며 광활한 중국대륙을 성공적으로 종단했다.

 


▣1988년

쌍용그룹 계열회사의 동아자동차의 상호를 쌍용자동차로 변경하면서 국내 최초의 STATION WAGON형의 다목적 차량인 KORANDO FAMILY를 선보여 국내자동차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1990년

쌍용자동차의 코란도 훼미리를 세계 최초로 양자강 원류탐사를 협찬하여 양자강의 원류를 탐사하는 팀에게 더할 수 없는 고마움과 놀라운 기동력을 보여 주었으며 성공적으로 탐사를 종료했다.



▣1991년

국내 차량으로서는 최초로 지옥의 랠리라고 불리는 파리-다카르 경주에 참가하여 완주함으로 코란도 훼미리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 받았다.

 




▣1990, 1991, 1992년 3년 연속 우승

한국인의 의지( KOREAN CAN DO)의 영문약자인 KORANDO는 쌍용자동차의 본격적인 독자기술 개발에 의해 세계 유수의 4WD메이커가 참여하는 유럽 키프러스 랠리에서 국내 차량으로서는 최초로 90년도에 우승하였으며 이후 2년 연속 우승하여 세계4WD차량에서는 최초로 3년 연속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워 세계인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1993년

쌍용자동차는 93년을 이노베이션의 원년으로 지정하고 국내, 국외 지프 시장의 독보적인 존재인 KORANDO를 시대흐름과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고급 이미지의 93년형을 생산하였고 화물칸이 추가된 5인승은 국내 시장과 해외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1993년

쌍용자동차는 이노베이션의 작품으로 외관과 현가장치, 편의성을 대폭 개선한 93년형 KORANDO FAMILY를 생산하여 한단계 진보된 테크놀리지를 접목시켜 국내 4WD 선두업체로서 진면목을 과시했다.

 




▣1993년

쌍용자동차는 86년부터 추진한 꿈의 4WD 차량을 93년 8월에 국내시장에 선보이면서 국내 자동차산업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안전성은 북미의 자동차 검사기준인 EC법규를 기본으로 하여 설계하였으며, 스타일은 세계 4WD 차량의 이미지에 승용차 개념을 도입한 제 3세대 4WD를 지향하였다.
또한 세계적 차량메이커인 MERCEDES-BENZ와의 기술 제휴로 BENZ의 엔진을 탑재하여 성능면에서는 뛰어난 주행 가속능력과 놀라운 주행정숙성을 보유하였으며 컴퓨터로 치밀하게 설계된 차체와 인체공학을 기준으로 설계된 실내는 고객의 안전과 편의성을 극대화시켰다.

좋은 답변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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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마차의 시대

인간이 고대인류문명의 획기적인 전기가 되는 원형바퀴와 달구지를 발명한 것은 기원전 6천년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처음에는 소달구지로 수확한 곡물을 운반하였으나 보다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인간의 속도욕망은 야생의 말을 가축으로 키워 마차를 만들었으며, 이 발명은 기원전 3천년경 중앙아시아의 아리아족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발명한 마차는 세계 각처로 번져나가 고대 로마제국은 마차가 끄는 전차군단으로 기동력을 발휘하여 서양 세계를 정복하였고, 유럽전역에 도로망을 닦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은 우마차를 이용하면서 풍력이나 수력에 의해 움직이는 탈 것(Vehicle)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고, 더 나아가 자기 힘으로 달리는「말 없는 마차(Horseless Wagon/Horseless Carrige」의 발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1250년 영국의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베이컨은 그의 저서「과학적 근대철학」에서 자동차, 비행기 기선 등을 예언하였고, 15세기 르네상스시대에 대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80년 태엽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스케치로 남기었다

2. 증기자동차의 출현

1765년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증기엔진 시대를 열었고, 1769년 프랑스의 포병장교인 니콜라스 죠셉 뀌뇨는 2기통 증기엔진을 탑재한 3륜 증기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발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시험도중 사고를 일으켜 감옥에 갖히는 불운을 겪었다. 그후 끊임없는 증기자동차의 실용화 노력은 이어져 1820∼1840년에 걸쳐서는「증기자동차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증기자동차의 보급으로 실업자가 늘어나고 도로 파손과 검은 연기로 시민의 반감이 일어나자 자동차 발달을 못마땅히 여겨 온 마차와 철도업자들이 증기자동차를 규제하라는 압력을 넣어 영국은 1865년「적기조례(Red Flag Act」라는「세계 최초의 교통법」이 제정되어 영국에서는 자동차의 발달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3. 증기철도와 기선의 전성시대

1825년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함으로써 증기철도는 급속하게 발달하여 1838년 영국의 철도길이는 8백km를 넘어섰고 10년후에는 8천km로 10배나 증가하였다. 또 유럽대륙과 미대륙에서도 철도가 급격히 보급되어 자동차와 비행기가 출현하기까지 증기기관 철도와 기선은 19세기 교통혁명의 주역이 되었다.

4. 가솔린 자동차의 발명

실린더내에서 직접 연료를 연소시켜 그 폭발력으로 동력을 얻는 내연기관의 실험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실용화된 것은 1862년 프랑스 르노아르의 2기통 석탄가스 엔진이었다. 그후 1870년 독일의 오토가 가솔린을 이용하여 열효율이 높은 4기통 엔진을 발명한데 이어 오토의 조수인 독일의 고트리브 다임러(G. Daimler)는 1885년 자동차용 가솔린엔진을 개발하였고 이듬해인 1886년 2인승 4륜마차의 탑재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발명하였다. 또한 같은 해 독일의 발명가인 칼 벤츠(K. Benz)도 가솔린엔진을 탑재한 3륜자동차를 개발하였는데, 이 두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모른채 자동차를 발명하여 독일은「근대 자동차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이 두사람을 갖게 되는 영광을 갖게 되었고, 이들이 세운 회사는 1926년 합병하여 유럽 최대의 복합기업인 다임러 벤츠그룹(Daimler Benz)과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인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 Benz AG)로 성장하였다.

5. 전기자동차의 출현과 퇴진

전기자동차는 프랑스 라파엘과 영국의 포크등에 의해 개발되어 가솔린 자동차보다 3년 먼저 실용화되었으며, 초창기인 1900년 전후까지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압도하였다. 또 1899년 자동차레이스에서 전기자동차가 시속 105km를 기록하여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축전지의 무게가 1톤 가까이나 되며 주행거리도 짧고 충전시간도 길어 내연기관자동차에 밀려 1920년경에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세계 자동차산업의 발전과정

세계 자동차산업의 역사는 1886년 독일에서의 자동차 발명으로 시작되어 100여년에 걸친 변화와 경쟁을 거듭하면서 20세기 근대산업발전을 선도하였고 현대과학문명의 꽃을 피웠다. 자동차의 최초 발명이후 지난 100여년간 기본컨셉트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생산방식, 규모, 조직 등과 기술의 진보로 얻어진 경제성, 편리성, 거주성, 생산성 등은 초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변혁이었다. 초기 자동차산업의 생성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19세기 산업화 초기단계에서 각종 기계공업제품의 생산이 수공업방식에서 직공을 중심으로 기술이 축적되어 갔으며 특히 19세기말 미국에서「Singer」와「Colt」 브랜드로 유명한 재봉기나 총기류의 대량생산에서 얻어진 기계설비를 이용한 생산시스템은 20세기초 미국 자동차산업의 도입기반이 되는 하부구조가 되었다. 이 하부구조를 바탕으로 1910년대 미국의 포드사가 주도하는 주문생산에서 대량생산으로의 대전환을 세계 자동차 산업발전과정의 그 첫 ***이라고하면, 1950년대 유럽의 생산자가 미국의 대량생산에 대응하기 위한 제품의 다양화는 제2의 대전환이었으며, 1960년대말 일본의 생산자가 생산조직과 방식의 획기적인 변화로 값싸고 품질 좋은 차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시장을 지배하게 된 것이 제3의 대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산업의 생성

자동차 발명의 영예는 독일이 갖고 있지만 당시 독일에서는 자동차를 위험물로 취급하여 여러 가지 규제를 가함으로써 산업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1889년 프랑스 파나르 르바소는 독일 다임러사로부터 제작권을 획득하여 세계 최초의 자동차 메이커가 되는 기록을 갖게 되었다.
1890년 이후 프랑스의 르노, 푸조, 이태리의 피아트 등 소규모 메이커가 수없이 생겨나 수공업형태 생산으로 한 종류에 한 대꼴로 만들어지는 오늘의 시작차와 같은 것이 주류를 이루었고 수요도 부자들의 오락용에 불과하였다. 그 후 생산량은 서서히 증가하여 1900년에는 독일과 프랑스가 세계자동차 시장의 58%를 차지하면서 세계 총생산 규모는 년간 5만대에 이르렀다.

한편 미국은 철도건설에 주력하여 1850년에 이미 철도총길이가 1만4,520km에서 20세기초에는 40만 km를 넘어서는 철도대국이 되어 있었다. 미국대륙은 더욱 광활해졌고 개인주의적 국민성과 풍부한 석유자원에 힘입어 자동차산업이 급격히 발전하게 되는 기반이 조성되어 1899년 올즈모빌사가「세계자동차의 메카」로 불리우는 디트로이트에 세워져 훗날 제너럴 모터스(GM)의 탄생기반이 되었다. 20세기에 들어 1903년 포드 자동차사를 창설한 포드 1세가 포드A형을 생산하기 시작할 즈음 당시 미국의 총생산은 1만 1천대로 유럽에 비해 약간 늦은 출발을 하고 있었다.

포드 혁명과 GM의 세계제패

포드사는 1909년 1500만대 생산기록을 갖는 세계 자동차사상 초유의 단일모델인「포드 T-Model」을 개발하였다. 「포드혁명」 또는「포드생산방식」으로 불리우는 포드시스템은 컨베이어에 의한 대량 생산방식으로 자동차생산의 혁명을 이루었으며,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보급하게 되어 미국은 세계최초로「자동차대중화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에 들어서 미국 자동차시장에 이상한 변화가 나타났다. 미국 총생산 362만대 가운데 포드가 167만대를 기록한 1923년 이듬해부터 생산과잉과 대체수요 발생으로 단순한 디자인의「포드 T-Model」에 싫증을 느낀 수요자가 외면하기 시작하였고, 포드사는 다양한 수요의 욕구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GM의 추격에 밀려 결국 오늘날까지 GM에 이어 세계 2위의 자리에 머무르게 되었다. 한편 1908년 GM을 창업한 위리엄 듀란은 2년후「Buick」,「Olds」,「Cadillac」등 25개사를 흡수합병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고, 1923년부터 알프레드 슬로안의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오늘날 세계최대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다졌다.

BIG3의 세계진출과 유럽시장의 확대

미국의 BIG3(GM, FORD, CHRYSLER)는 1920년대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에 진출하여 유럽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럽에 진출한 미국의 현지조립공장은 유럽의 고관세장벽 때문에 현지에서 일괄생산할 수 있도록 전략을 바꾸었으며, 미국의 제조기술과 유럽메이커의 최고기술을 향한 노력이 더해져 유럽시장은 적정생산규모를 확보하였고, 다양한 제품개발로 1950년부터 이후 세계 최대의 생산지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초 유럽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할 무렵 세계시장의 85.9%를 차지하고 있던 미국은 해외시장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보호되어 시장변화에 둔감하였고, 스스로 자만에 빠져 기존 제조방식이 최적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반면에 유럽메이커들은 제품차별화와 시장세분화 전략을 통해 서서히 세계자동차산업의 강자로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본도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세계자동차산업의 경쟁대열에 진입하면서 독특한 생산방식을 개발하는 노력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갔다. 한편 1970년대초 유럽의 시장규모와 생산대수는 미국을 능가하기에 이르렀으며, 1950년 37만대에 불과하던 수출은 1970년 189만대로 증가하여 세계 최대의 수출지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일본의 세계제패와 미·일· EC의 3극화체제 형성

일본의 자동차산업은 1920년대 GM과 FORD의 진출로 대량생산의 기반이 다져졌으나, 1936년 외국기업을 배제하는 법규가 제정되어 독자적으로 자동차산업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사목적과 트럭중심의 형편없는 구조로 산업은 매우 취약하였다. 1950년대에 들어 한국전쟁에 따른 특수경기, 군수산업기술자의 민수사업대거 참여, 정부와 업계의 외국차 진출제한, 승용차 중심으로의 산업전환 등에 따라 비약적인 성장의 기반을 다지고, 1960년대들어 세계무역장벽 완화로 자동차무역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일본도 수출시장에 뛰어들었다. 특히 일본은 새로운 산업조직과 특유의 생산방식으로 새로운 노사관계를 만들었고「도요다생산방식」으로 대표되는 「간판방식」과「JIT방식」에「TQC」가 확산되면서 일본 특유의 제조철학이 뿌리를 내렸다. 이러한 제조기술은 가일층 개선되었고 여기에 1968년부터 불붙은 자동차대중화(Motorization)로 내수기반이 확장되면서 대량생산과 저코스트의 생산자로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갔다.
특히 70년대 2차에 걸친 오일쇼크때 연료소모가 적은 소형차급에서 완전경쟁우위를 확보함으로써 1970년에 이미 530만대 생산기록을 세우고, 1974년에는 268만대 수출로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하여 미국, 유럽과 함께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3극화체제를 형성하게 되었다

신흥공업국의 세계 진출

미국·일본·유럽의 3극체제 속에서 1980년대부터는 개발도상국과 동구제국이 저임금과 양산체제를 바탕으로 세계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한국과 멕시코, 브라질 등 몇 개 국가를 제외하고는 성공한 국가가 별로 없었다. 한국은 1962년 완성차 수입 금지와 함께 국산화 정책, 중화학공업 정책, 수출산업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80년대 고도성장에 따른 자동차대중화 진입을 바탕으로 소형차가 미국시장 진출에 성공하였으며, '90년대 중반에 세계 5위의 생산대국으로 부상하여 신흥공업국 중 가장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조금 간단하게 정리해서..

 


   

 

자동차 역사 - 한국의 4WD의 역사

▣1969

신진자동차에서는 1969년 미국의 KAISER 지프에서 부품을 공급받아 조립 생산해서 우리나라에 최초로 민간용 지프를 생산했다.

▣1974

1974년 4월 신진지프는 거화로 상호변경을 하면서 미국 AMC사(AMERCA MOTOR COMPANY)와의 합작제휴로 지프만 생산하는 전문업체로 대두 되었으며, CJ모델의 가솔린 엔진의 4인승 캔버스탑, 4인승 하드탑, 3인승 VAN, 12인승 웨곤, 2인승 픽업을 생산했다.


▣1980

거화에서는 지프에 최초로 디젤엔진(4BA1모델)을 탑재하여 CJ모델 외관을 약간 변형시킨 지프를 생산했다.

▣1984

거화의 경영권이 동아자동차로 인수되면서 독자적인 "코란도"도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72마력의 C223 디젤엔진을 탑재하여 4인승 캔버스탑 5인승 하드탑,
6인승 패트롤, 9인승 웨곤, 3인승 VAN을 제작했다.




▣1987

1986년 동아자동차 경영권을 쌍용그룹에서 인수하여 쌍용그룹에서 인수하여 쌍용그룹 계열기업으로 승인했다. 1987년에는 외관과 실내장이 더욱 고급스럽게 변화한 현재 국내시장의 유일한 지프인 코란도의 형상을 보유한 뉴코란도를 생산했다.

▣1987년

동아자동차는 KBS TV팀과 협찬하여 국내 최초로 1987년 9월 1일부터 1987년 12월 30일까지 130일동안 히말라야를 탐사 취재했으며 20m 절벽 아래로 차가 3바퀴나 굴렀으나 탑승자가 모두 무사했던 기록을 남긴
대장정을 실시했다.




▣1988년

국내 최초로 KBS TV팀과 백두산 천지를 촬영하였으며 광활한 중국대륙을 성공적으로 종단했다.

 


▣1988년

쌍용그룹 계열회사의 동아자동차의 상호를 쌍용자동차로 변경하면서 국내 최초의 STATION WAGON형의 다목적 차량인 KORANDO FAMILY를 선보여 국내자동차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1990년

쌍용자동차의 코란도 훼미리를 세계 최초로 양자강 원류탐사를 협찬하여 양자강의 원류를 탐사하는 팀에게 더할 수 없는 고마움과 놀라운 기동력을 보여 주었으며 성공적으로 탐사를 종료했다.



▣1991년

국내 차량으로서는 최초로 지옥의 랠리라고 불리는 파리-다카르 경주에 참가하여 완주함으로 코란도 훼미리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 받았다.

 




▣1990, 1991, 1992년 3년 연속 우승

한국인의 의지( KOREAN CAN DO)의 영문약자인 KORANDO는 쌍용자동차의 본격적인 독자기술 개발에 의해 세계 유수의 4WD메이커가 참여하는 유럽 키프러스 랠리에서 국내 차량으로서는 최초로 90년도에 우승하였으며 이후 2년 연속 우승하여 세계4WD차량에서는 최초로 3년 연속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워 세계인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1993년

쌍용자동차는 93년을 이노베이션의 원년으로 지정하고 국내, 국외 지프 시장의 독보적인 존재인 KORANDO를 시대흐름과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고급 이미지의 93년형을 생산하였고 화물칸이 추가된 5인승은 국내 시장과 해외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1993년

쌍용자동차는 이노베이션의 작품으로 외관과 현가장치, 편의성을 대폭 개선한 93년형 KORANDO FAMILY를 생산하여 한단계 진보된 테크놀리지를 접목시켜 국내 4WD 선두업체로서 진면목을 과시했다.

 




▣1993년

쌍용자동차는 86년부터 추진한 꿈의 4WD 차량을 93년 8월에 국내시장에 선보이면서 국내 자동차산업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안전성은 북미의 자동차 검사기준인 EC법규를 기본으로 하여 설계하였으며, 스타일은 세계 4WD 차량의 이미지에 승용차 개념을 도입한 제 3세대 4WD를 지향하였다.
또한 세계적 차량메이커인 MERCEDES-BENZ와의 기술 제휴로 BENZ의 엔진을 탑재하여 성능면에서는 뛰어난 주행 가속능력과 놀라운 주행정숙성을 보유하였으며 컴퓨터로 치밀하게 설계된 차체와 인체공학을 기준으로 설계된 실내는 고객의 안전과 편의성을 극대화시켰다.

좋은 답변이 되면 좋겠습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1482~1800 자동차 시대의 막을 연 태엽자동차와 증기자동차



인류는 기원전 3200년 쯤 바퀴를 발명했고, 바퀴는 수레로 수레는 자동차로, 인간의 발을 대신하는 문명을 일궈왔습니다. 인류 최초의 자동차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482년에 만든 태엽자동차. 그 후 1769년 프랑스의 니콜라 조세프 퀴뇨가 세바퀴 증기 자동차를 만들면서 본격적인 자동차시대의 막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1800~1900 자동차 기술을 크게 진보시킨 휘발유자동차



1886년 독일의 고트리프 다임러와 칼 벤츠가 각각 휘발유자동차를 발명, 자동차 기술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휘발유자동차는 무겁고 느린 증기자동차에 비해 빠른 엔진, 멋진 스타일, 가벼운 차체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1895년 프랑스의 앙드레 미쉐린이 자동차용 공기타이어를 발명하고, 미국의 헨리 포드는 처음으로 2기통 자동차를 만드는 등 이 시기의 자동차 기술은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1900~1910 과학 문명을 이끌게 된 자동차산업




[ Ford - Model T, 1908 ]



미국과 유럽에서는 자동차 제조업이라는 종합기계산업이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대부분 수공업으로 자동차를 만들었는데, 르노, 씨트로앵, 벤츠, 푸조, 포드, 롤스 로이스와 같은 세계적인 자동차가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최초로 세계를 일주하는가 하면, 각종 경주에서 경쟁을 벌이며 보다 좋은 차를 만드는 데 힘써, 자동차산업은 20세기 과학문명을 이끌어 나가는 선두주자가 되었습니다.




1910~1920 많은 사람의 꿈을 이루어준 포드자동차




[ Rolls Royce - Silver Ghost, 1910 ]



자동차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갖고 싶어했지만, 아무나 탈 수 없을 만큼 비싼 것이 흠이었습니다. 이때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는 처음으로 대량생산방식을 도입하여 서민용 자동차인 포드 T형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의 꿈을 이루어 주었습니다. 포드 T형은 당시 다른 자동차들이 1천 달러 정도인데 비해 440달러에 판매됐는데, 1914년부터 1927년까지 무려 1,500만 대가 생산되었습니다.




1920~1930 더욱 빠르고 더욱 안전하게





[ Chrysler - Six, 1924 ]



자동차업체들은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며 더욱 빠르고 안전한 자동차를 만드는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속도가 크게 빨라진 것은 물론이고, 생명을 보호하는 안전장치와 보호장치가 개발된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이 생산한 자동차의 성능을 시험해 보이기 위해 각종 자동차경주에서 경쟁을 벌였는데, 세계를 열광하게 만든 이 경주들을 통해 자동차산업과 기술은 더욱 발전했습니다.




1930~1940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차들




[ GM Cadillac - V16, 1930 ]



오늘날까지도 그 명성이 식지 않는 명차들이 이 시기에 탄생했습니다. 히틀러가 타고 나찌 군대를 사열하던 메르세데스 벤츠, 헐리우드 톱스타들이 즐겨 탔던 듀센버그, 왕족이나 부호들이 애용한 롤스 로이스 같은 차들이 그 주인공. 이 명차들은 뛰어난 성능과 높은 품격으로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며, 신분과 품격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1940~1950 자동차 기술을 한단계 끌어올린 전쟁




[ Volkswagen - Beetle, 1949 ]



194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세계를 휩쓴 전쟁의 시기였습니다. 유럽에서는 대부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고 말았지만, 미국은 자동차에 군사 기술을 적용시켜 큰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1941년 미국 국방성의 요청으로 윌리스사와 포드사가 만들어낸 네바퀴굴림(4륜 구동) 지프는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50~1960 전쟁이 남긴 폐허 속에서 꽃핀 소형 국민차




[ Mercedes Benz - 300SL, 1955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는 전쟁으로 폐허가 돼 버렸습니다. 심한 불황에 빠진 유럽 각국은 경제적인 국민차를 개발하는데 박차를 가했습니다. 독일의 폴크스바겐 비틀, 영국의 모리스 미니, 프랑스의 르노 4CV 같은 차가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독일의 포르쉐 박사는 1954년, 전쟁전 히틀러가 제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폴크스바겐 비틀의 개량형을 만들어냈는데, 20년 동안 1,900만대를 생산하여 국민차의 지표를 세웠습니다.




1960~1970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이 된 미국







땅이 넓고 자원이 풍부한 데다가 전쟁으로 경제부흥을 이룩한 미국이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으로 떠올랐습니다.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은 크고 강하고 화려한 미국식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데 열중했습니다. 특히 전투기의 날개 모양을 본따 만든 ‘테일 핀 스타일’ 캐딜락은 롤스 로이스, 메르세데스 벤츠 리무진과 함께 세계 3대 고급차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1970~1980 경제적인 앞바퀴굴림차




[ Honda - Civic CVCC, 1974 ]



1970년대는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수출 금지 조치로 두 차례의 석유파동이 세계경제를 뒤흔든 시기였습니다. 자동차산업, 특히 미국의 대형 자동차산업은 큰 피해를 입었으며,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경제적인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최대의 과제로 등장했습니다. 유럽과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은 이미 개발된 소형차들을 연료 절약형으로 개선하고, 실점수간을 넓히는 한편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는 앞바퀴굴림차(전륜구동)를 만들어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1980~1990 세계가 함께 만들고 함께 타는 월드카




[ Plymouth - Voyager, 1984 ]



석유파동 뒤 세계경제가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자동차업계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자동차 역사를 주도해 온 선진국의 자동차회사들은 노동력이 싸고 풍부한 개발도상국으로 생산공장을 옮겼습니다. 결국 선진국의 기술과 자본이 값싼 노동력과 결합해 생산원가를 낮추고 더 넓은 지역에 자동차를 팔 수 있게 됐습니다. 세계가 함께 만들고 함께 타는 '월드카’시대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1990~2000 컴퓨터 발달로 똑똑한 자동차 등장




[ GM Chevrolet - Corvette, 1999 ]



인류가 컴퓨터를 만든 이후,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해서, 자동차 역시 컴퓨터 덕분에 상상을 초월하는 진보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른바 인공지능 자동차. 안전장치가 자동화된 것은 물론, 컴퓨터가 알아서 달리는 무인주행 네비게이션 장치, 고장을 알아서 판단하는 시스템도 개발됐습니다. 이러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우리는 인간 중심의 다양한 자동차, 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자동차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2000년대 환경을 생각하는 자동차로




자동차는 한 세기 동안 인간의 발 노릇을 하며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으로 자리매김 해왔습니다. 하지만 에너지를 마구 쓰는 바람에 에너지 자원이 고갈되고 대기를 크게 오염시켜 지구를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 21세기에는 수소나 전기, 천연가스와 같은 대체에너지를 이용해 환경오염을 줄여나갈 뿐 아니라, 더욱 인간적인 자동차, 그리고 첨단과학을 동원해 더욱 편리한 기능을 갖춘 자동차가 우리 앞에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죄송해요..

전 잘 모른답니다..

윗 님꺼 보고 있는 중...

자동차의 역사 내공30;;;;

자동차의 역사를 1900년 부터 2005년 지금까지 역사를 자세하게 적어주었으면 합니다...... 실내공간을 넓히는 한편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는 앞바퀴굴림차(전륜구동)를...

자동차의 역사

... 자동차의 역사좀 알려주세요. 내공 30이요 일단 1600년대에 네덜란드의 스테빈이라는 사람이 돛단배에 바퀴를 달고 땅 위에서 바람을 이용하여 달렸습니다. 그가 만든 풍력...

미래의 자동차,자동차의 역사...

... 1.미래의 자동차(가장 중요) 2.자동차의 역사(가마... 둘다요) 내공 겁니다,,내공냠냠등 신고합니당,, 미래의... 29~30 대전: 31~32 울산: 33 경기: 34~49 강원: 50~51 충북: 52~53 충남...

자동차의 역사

자동차의 역사가 알고 싶어요! 사회 숙제구여. 이런식의로 해주세여. 도보-말-가마.... 내공 30겁니다! 내공냠냠 신고. 도보 수레 가마 말,소 가마 풍력 자동차(네덜란드의...

자동차의 역사

... 내공 30점 인류가 굴대로부터 바퀴를 발명한 것은 약 6,000년 전이다. 그것을 사람의 힘이나 짐승의 힘으로 굴린 시대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으며, 자체의 힘으로 달리는...

내공 200 자동차 역사

제목 그대로 자동차의 역사좀 알려주세요 짧으면 채택안합니다 1482년... 750cc 30마력의 엔진을 '다프 750'에 얹어 양상 시작 1961년 재규어 E-타입 제네바...

자동차의 역사에 대해 좀 알려 주세요...

... 내공 30 겁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입니다. 제가 자동차 지식이 조금 많아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자동차의 역사는 증기기관의 발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최초의...

2박3일 여행코스 추천 부탁드려요.(내공30)

... 전시.자동차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죠..KBS2 드라마 "열혈장사꾼"촬영장소로도... 07:30~18:00까지(성수기 증편운항)차량운임 : 중소형차 25,000원, 12인승승합차 29,400원...

자료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내공300)

... 구글링 해도 나오는게 없네요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역사는 1898년 페르디난드... 오일쇼크로 30달러까지 급등했습니다. 1977년도에는 폭스바겐에서 마이크로버스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