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연개소문이 공격 대상으로 고구려를 생가했나요?

왜 연개소문이 공격 대상으로 고구려를 생가했나요?

작성일 2012.04.02댓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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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연개소문이 고구려에 없어서는 안될 인물인데,

왜 당나라와 싸우고 큰 승리를 거두고 왜 그 다음 공격상대를 고구려로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제발 빨리 좀 알으켜 주세여......................

내공100&이상한글은 NO!

빨리좀 알켜주세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내분을 멈추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고구려에서는 권력다툼이 심각했어요

멸망 이유도 권력다툼때문이고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당나라는 신라와 연합을 한뒤 백제를 치고

고구려를 668년에 합락시켰는데

676년 수나라의 살수대첩과 당나라의 안시성 싸움으로 국력이 약해져서 그리고 연개소문이 죽은 뒤 자식 간에 권력 다툼으로 패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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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개소문인가?
 
시대가 부르는 연개소문     [email protected]

 


 
    
중국이 조선을 넘어다본 것은 하루 이틀의 역사가 아니다. 지금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은 중국 동북 지역, 즉 한민족의 고토인 만주 벌판과 한민족의 역사를 자국의 영토와 역사로 편입하려는 음모이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삼키기 위해 ‘국내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전쟁이, 고구려와 수, 당과의 전쟁이다.

 

고구려와 당과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연개소문(603~657)을 지목할 수 있다. 그는 불교, 도교 등 외래종교사상을 배격하고 한민족 고유의 신교문화의 상무(尙武)정신을 크게 떨친 희대의 대영걸이다. 그는 또한 당대 최상의 병법가이기도 했다. 중국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숭앙 받는 당태종도 고구려를 정벌하려다 그의 신출귀몰한 전략에 말려들어 끝내는 절명하고 말았다.

 

 

참고 :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조대기朝代記>를 인용하여 연개소문의 아버지 이름은 태조太祚, 할아버지는 자유子遊, 증조부는 광廣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연개 소문의 할아버지와 증조부의 이름은 <태백일사>를 제외한 어떠한 문헌에도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1923년 중국 낙양의 북망산에서 출토된 연개소문의 아들 천남생의 묘지에서 천남생의 증조부 이름을 자유로 명기하고 있어서 <태백일사>의 진가가 드러나게 되었다.

 

 

왜곡된 연개소문에 대한 이미지

그러나 연개소문(淵蓋蘇文)에 대한 평은 극과 극을 달린다. 그에게는 고구려를 당의 침입에서 구한 민족의 영웅이라는 색채와 국왕을 시해한 희대의 역적이라는 두 가지 색깔이 공재한다. 특히 유교 윤리를 바탕으로 형성된 조선 시대 이후에는 그에 대한 이미지는 ‘역적’이라는 호칭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그가 훌륭한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죄인의 낙인을 찍힌 이상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런 인식의 출발점은 사실 좀 더 이전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이다.

 

‘그 부친인 동부대인(東部大人) 대대로(大對盧)가 죽자 연개소문이 마땅히 그 자리를 잇게 되었는데, 나라 사람들이 그 성품이 잔인하고 모질다고 미워해 그 자리를 얻지 못했다. 소문(蘇文)이 여러 사람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고 그 자리에 임시로 있어 보아서 만일 불가한 일이 있으면 폐하여도 후회하지 않겠다고 간청하므로 여러 사람들이 가엽게 여겨 허락했다.

 

연개소문이 동부 군사를 모아 마치 열병하는 것처럼 하면서 성의 남쪽에 술과 음식을 성대히 베풀어 놓고 모든 대신들을 초청해 함께 관람하자고 하였다. 손님들이 오자 연개소문은 그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는데 그 때 피살된 자가 100여 인이나 되며, 연개소문은 이어 궁중으로 달려가 왕을 시해한 다음 그 몸을 몇 도막으로 잘라 개천에 버렸다.’

이 기록은 연개소문을 국왕과 대신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희대의 악한 내지는 살인마로, 굉장히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연개소문이 전국을 호령하며 나라 일을 제 멋대로 하는데 매우 위엄이 있었으며, 몸에 다섯 개의 칼을 차고 있으니 좌우의 사람들이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말에 오르내릴 때마다 항상 귀족이나 무장들을 땅에 엎드리게 하여 발판으로 삼았으며, 출행할 때는 반드시 대오(隊伍)를 벌려 앞에서 인도하는 자가 긴 소리로 외치면 사람들이 구렁텅이나 골짜기라도 가리지 않고 달아났으니, 나라 사람들이 심히 괴롭게 여겼다.’

 

삼국사기는 고려 이후로 관(官)에서 발행한 정사(正史)로 인정되었으니, 삼국사기의 기록을 버리지 못한다면 연개소문은 계속해서 역적이 되는 수 밖에 없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서 우리 역사를 재조명하는 의식들이 생기면서, 연개소문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열려가는 것은 기쁜 일이다. 몇 달 뒤에는 연개소문을 주인공으로 한 대하드라마도 나온다고 하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당태종은 성인 임금으로 묘사

삼국사기를 저술한 김부식의 정신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몇 군데를 더 읽어보기로 하자. 연개소문에 대해서는 그렇게 부정적으로 쓴 김부식은 고구려를 침범한 당태종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논평한다. 당나라의 태종은 성명(聖明, 성인과 같이 성품이 밝음)하여 세상에서 극히 드문 임금이다. 난을 다스린 것은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에 비길 수 있고, 다스림을 이룬 것은 성왕(成王)와 강왕(康王)에 가깝다. 군사를 쓸 때에 이르러서는 기이한 꾀를 내는 것이 무궁하여 향하는 곳마다 대적할 사람이 없었는데, 동방 정벌에서는 안시성에서 패전했으니 안시성주는 호걸이며, 비상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고구려의 지도자였던 연개소문에 대한 이미지와 정반대로 당태종에 대한 이미지는 더 이상이 없는 성인 임금으로 그리고 있다. 반면에 당태종을 격파한 안시성주는 크게 이름을 띄우고 있으니, 고구려의 승리는 연개소문과는 관계없는 안시성주 양만춘의 독자의 성과인 셈이다. 알다시피 지금까지도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수나라를 격파한 것은 을지문덕인데, 당군을 격파한 것은 양만춘으로 그리고 있으니, 당시의 최고 지도자였던 고구려 황제의 이름은 알 수조차 없다. 고구려 황제들은 따로 해외 도피하여 놀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연개소문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인 것으로 그려진 것은, 김부식을 비롯한 ‘삼국사기’ 편찬자들이 연개소문을 묘사할 때 이용했던 거의 모든 자료가 ‘자치통감’(資治通鑑) ‘북사’(北史) ‘수서’(隋書)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등 중국측 자료라는 점이다. 게다가 중국측의 시각을 검증하는 사료비판도 거의 수행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고구려의 후손의 시각으로 역사서를 편찬한 것이 아니고, 고구려를 침범한 중국인의 눈으로 역사서를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것임이 옳은 것일터인데, 김부식 일당의 심보야말로 역심(逆心)이 아닌가? 

 
왜 연개소문을 알아야 하는가?

여기서 연개소문에 대해서 우리가 왜 알아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자.

20세기 후반 세계는 단순히 소련과 미국이라는 양대 힘의 세력 속에서 살고 있었다.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의 무한한 문화적, 문명적 잠재력은 미래에 대한 소박한 장밋빛 꿈을 키워주었다. 우리는 21세기가 되면 최첨단 과학문명이 우리 인류를 구원해 줄것이라 생각했었다. 물론 공상과학영화들이 그려주는 환경오염이 낳을 암울한 미래에 대한 이미지도 반쯤 섞여 있었지만 말이다.

막상 21세기의 문턱에 들어서고 보니, 모든 것은 꿈 속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몸으로 느낀다.

첫째, 국제정세의 변화는 미처 상상도 못한 현실의 변혁 속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 소련은 무너졌다. 소련이라는 ‘악의 제국’이 무너지고 이제 평화가 계속 될 것이라는 작은 소망은 불과 10여년만에 깨어졌다. 지금은 북한, 이라크와 같은 ‘악의 축’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가공할 만한 군사력을 총동원하는 미국이라는 큰 나라가 보기에도 안쓰럽게도 거대한 몸을 몸소 움직여 세계 위에 군림하려는 모습을 엿볼수 있다.

 

한편으로 세계 각지에서는 미국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 대표주자는 중국이다. 중국은 늙은 용이 아니었다. ‘죽(竹)의 장막’으로 굳어버린 화석도 아니었다. 지금 세계 어디보다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젊은 나라가 되었다. ‘대국의 행보’에 서양오랑캐들의 의견에 휘둘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대다수의 인민은 생각하고 있다. 이미 상하이, 선전과 같은 도시들은 왠만한 개발도상국의 생산력을 뛰어넘고 있으며, 최상위 1%의 생활 수준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들의 인구는 알다시피 전 세계 인구의 1/4을 차지하므로, 그 숫자만 해도 엄청난 것이다. 중국 경제의 비약적인 성장은 상대적으로 전 세계 경제는 암울하게 하고 있다. 몇십년 후에는 전 세계의 모든 나라의 공장이 멈추고 중국의 공장만 돌아가도 전 세계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다. 

      
지금 중국의 석유소비량은 전세계 평균 소비증가율의 6배로 증가 하고 있으니, 앞으로 전쟁이 난다면 석유를 둘러싼 전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현대 문명이란 석유의 힘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석유가 없다면, 연인의 몸을 감싸줄 아름다운 옷도,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도, 연인과 함께 할 아름다운 집도, 먼 곳에서 이곳까지 아름다운 음식을 운송해 줄 차량도 없다.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대체연료’를 개발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석유의 연장선에 불과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을 때서 나오는 에너지로 모든 것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가 사는 시대는 ‘불의 문명시대’이다. 석유부족현상은 이미 현실화 되어가고 있다. 이미 지난 2년 사이에 세계 석유 판매가는 2배로 뛰었지 않는가?

 

지금 전 세계는 다시금 전쟁의 불기둥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확장해야 하는 불의 문명은 서로 충돌하게 될 수밖에 없다. 불의 문명은 불 속에서 화려하게 타오른다.

 

전쟁의 시작은 역사 전쟁

사실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세계 각국은 자국민을 독려하기 시작하고 있다. 전쟁의 시작은 외침(外侵)에 대비하여 내부 방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다. 또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서 내실을 기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기 나라 국민의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것이다. 바로 오늘 신문에는 일본에서 ‘애국심’ 고취 교육을 시작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일본 연립여당은 ‘애국심’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기본법 개정안에 “우리나라와 향토를 사랑한다”는 표현을 담기로 합의했다. (2006.4.14 한겨레신문)

 

한편 중국에서는 알다시피 지난 80년대의 서남공정에 이은, 90년대 동북공정으로 소수 민족의 분열에 의한 국력 낭비를 막고자 하고 있다. 그것은 북한 붕괴와 남북통일 이후에 통일한국이 만주 지역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막기 위함임을 세상이 다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만이 독립 노선을 걷는데 대한 견제도 매우 강력하다. 2008년 북경 올림픽 이전에 대만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도 바로 얼마 전까지도 기사에 오르내렸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떠한가? 미국은 민족의 개념보다는 종교의 개념이 중요한 나라이다. 미국은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종교의 입김은 두각을 보였다. 부시 미 대통령을 다시 대통령의 권좌 위에 올려놓은 사람들은 이른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다. 부시는 그들을 등에 업기 위해서 ‘낙태’를 불법화 하고, ‘동성애’를 불법화하는 공약을 내걸어야 했다. 한 때 종교를 초월해서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여는 것 같았던 미국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자기의 종교를 밝히지 않으면 대화에 참여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대는 위기를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가?

 

위기는 하루아침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만물의 변화는 본래 겉으로 드러나기 전에 상(象)을 드리우는 법이다. 그것을 눈치채는 자가 있는가 하면, 변화에 둔감한 자가 있다. 변화에 적응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본래의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태풍에 나무 뿌리 뽑히듯 한순간 뽑히는 자도 있다. 본래 인간의 권(勸)과 위(位)라고 하는 것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다. 길고 짧은건 대봐야 안다는 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주위에 밀려오는 세계의 압박은 하루 이틀에 이렇게 몰려온 것이 아니고, 세계 정세가 흘러가는 과정에 따라서 어찌할 수 없이 그렇게 부딪치게 된 것뿐이다. 우리 민족이 이 길에서 살아남느냐 죽어 소멸되느냐 하는 문제도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연개소문이 태어났을 당시에도 이 땅 고구려에는 지금만큼이나 혼미한 대륙의 황사가 불어왔다. 연개소문이 채 10살이 되기 전에 고구려는 수양제의 100만 대군을 맞아 싸워 이겼다. 물론 을지문덕 혼자서 100만 대군을 물리쳤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구려의 정신은 살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수나라는 이윽고 망했다. 수는 고구려를 침입하기 위해 100만 대군을 동원하고, 남북 운하를 팠다. 운하를 건설하느라 국력은 약해지고, 몰살당한 100만 대군의 식솔들의 원성을 사서 자멸하고 말았다.

 

더 큰 위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수가 망하자 당이 일어섰다. 본래 수나라는 선비족이 세운 나라인데, 당나라 이세민도 선비족의 혈통이다. 연개소문은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나라를 구할 방도를 세웠다.

 

고구려 26대 영양제(재위 590~618)는 수(隋) 문제의 위협에 맞서 수나라를 선제공격했다. 그는 수 문제, 양제와 벌인 고수(高隋)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수나라를 멸망케 했던 위대한 군주다. 그러나 영양제의 이복동생 고성제(영류제)는 전혀 달랐다. ‘삼국사기’ ‘영류왕조’에 따르면 고성제은 재위 8년 거듭 당(唐)에 사신을 보냈으며, 11년에는 국가 기밀인 고구려의 봉역도(封域圖 : 강역도)를 바쳤고, 재위 14년에는 당의 요청에 따라 대수(對隋) 전승기념탑인 경관(京觀)을 헐어 버렸다. 급기야 재위 23년(640) 세자 환권(桓權)을 보내 조공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그렇게까지 한 것은 부상하는 당의 힘에 위협을 느끼고, 또 다시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차 왕이 될 태자를 장안(서안)까지 보내 조공시킨 것은 고구려의 건국 이념인 천하관을 부인하는 행위였다.

 

고구려는 장수왕 3년(414)에 세운 ‘광개토대왕비문’에서 ‘옛날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세웠는데, 왕은 북부여에서 태어났으며, 천제(天帝)의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물의 신인 하백(河伯)의 딸이었다’고 천제의 아들, 즉 천자라고 여기는 독자적 천하관을 갖고 있었다. 또한 비문은 ‘영락대왕(광개토대왕)의 은혜와 혜택이 하늘에까지 이르고, 대왕의 위력은 사해(四海)에 떨쳤다’고 하여 고구려가 천하의 지배자라고 선포했다.

 

고구려라고 하는 큰 나라도 황제가 방향타를 잘못잡으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당시의 대다수의 백성들은 고성제의 정책에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연개소문은 이러한 민심을 얻고 나아가 황제를 주살하고 당의 침입에 대처했다. 연개소문이 아니었던들 고구려는 몇 십년은 더 일찍 망했을 것이다.

 

연개소문은 시대를 앞서서 움직인 사람이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그는 움직였다. 그럼에도 역사는 그를 역적으로 묘사한다. 그런 인물은 역사에 흔하다. 연개소문은 생전에는 영광을 누렸을 것이지만, 생전에 구족이 멸하는 형벌을 받고, 죽어서도 역적의 호칭을 대대로 받으면서 고개를 들지 못했을 인물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우리는 오늘의 세상을 제대로 알고 행동할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라도, 오직 민족과 나라를 위해서 분연히 일어선 연개소문의 목소리와 눈빛을 다시 회상해야 한다

공격 대상으로 고구려를 생가했나요?

... 거두고 그 다음 공격상대를 고구려로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제발 빨리 좀... 이 가운데 연개 소문의 할아버지와 증조부의 이름은 <태백일사>를 제외한 어떠한...

고구려는 왜국을 필요로했나요

연개소문이 백제와 동맹을 맺은이유는 백제가... 물론 고구려가 총력을 기울여서 신라를 공격한다면 당연히... 그래서 고구려는 백제 - 의 끈끈한 동맹체계를 의식하고 이...

고구려 삼국 통일을 안했나?

고구려는 삼국 통일을 안했나요?? 궁금해서.. 음..... 그때 연개소문이 있었고... 그 사후 연개소문의 아들들이... 그리고 당나라와 신라는 백제를 공격해서 백제를...

연개소문은 무슨 일을 했나요??쫌 자세히....

... 그런데 영류왕이 연개소문을 죽이려 했을까요 이당시... 를 공격해서 연개소문이 직접 평양성에서 당군을 거의 몰살까지 밀어 붙였죠 비록 이겼지만 상공업중심인 고구려...

중국의 본열시기에 공격을안했나요??

... 그당시 고구려가 그래도 강대국이잖아요.. 공격을안했나요?? 분열시기가 거이... 통치의 대상인 한족들은 문화수준이 높았을테고, 강력한 "중화사상"의 압박으로~ 조금만...

그리고 고구려와백제는 왜못했나요??

... 선공격대상이 되었어요~ 백제를 멸망시킨 나당연합군은 이에이어 고구려를 공격합니다~ 고구려는 거듭된 외침에 국력이 약해지고~ 연개소문사후에 벌어진 권력다툼으로...

연개소문을 알고 싶어요

... 당시 백제는 고구려와 저번(=저팬)에게 구원군을 요청하였으나 고구려는 당시 연개소문이 병중에 있어 보고하지 않았는데, 이때 연개소문은 장안성 공격때 독화살에...

백제 멸망직전 고구려는 뭘했나요?

... 쳐도 고구려 백제를 도와주지 않았을까요? ▲ 연개소문 가문의 세습ㆍ독재로... 당나라와 신라가 연합해서 고구려를 공격하려는 시점에서도 고구려 내부에서는 권력...

고구려멸망이 인기검색어인가요~?

연개소문에서 고구려가 멸망하나보죠?.. 연개소문에서... 오히려 고구려 멸망 화풀이 대상 [뉴스엔 김형우 기자]... 거센 공격과 더불어 당나라 선봉장이 된 남생, 정치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