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박지성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작성일 2010.12.22댓글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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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이 한일 제대로 공찬거 이런거 말고 길게좀 써주시고 배울점도 써주세여 내공도 걸고요

내공냠냠 욕설 신고 갑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박지성의 출생과 현재모습!!

 박지성(朴智星)은 1981년 2월 25일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입니다.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소속으로 뛰고 있으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고 있습니다.

 

 

박지성의 별명!!

 활동량이 넓고 경기장 전체를 폭넓게 뛰어도 체력이 남는 강철 체력을 소유했다는 의미로 맨유팬들이 '산소 탱크'라는 별명이 붙여주었습니다. 휘날리는 머리와 묘한 대조를 이루는 여드름 자국과 시골 사람 같은 외모로 인하여 '고질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 이후, 팀 동료들이 박지성에게 '지(Ji)'라는 애칭을 붙여주기도 하였으며, 또 경기장 어디든지 순식간에 나타나 공을 뺏는 모습을 두고 그의 소속팀 동료 파트리스 에브라는 '유령'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최근 미드필드 중원에서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센트럴 팍(Central Park)'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박지성, 파트리스 에브라, 카를로스 테베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세사람의 친분은 아주 유명합니다.

 

 

박지성 어렸을때~프로생활하기 전까지!!

 수원시 세류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여 6학년 때는 5회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할 정도로 축구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려서는 남들에 비해 체격이 왜소해서 아버지가 각종 영양식을 챙겨 먹였을 정도였고 (심지어 개구리를 잡아서 삶은 물을 먹기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심한 훈련이 성장에 차질을 가져올 까봐 수원공업고등학교 감독은 박지성에게 가벼운 훈련만 시킬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후 이학종 감독의 추천으로 1999년 명지대학교 김희태 감독의 눈에 띄어 명지대학교로 진학하고, 2000년 하계 올림픽 축구 대표팀과 연습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당시 올림픽 대표팀 허정무 감독에 의해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어 좋은 활약을 펼칩니다!

 

 

박지성의 첫 프로팀! 교토 퍼플상가!

 2000년에 명지대학교를 휴학하고 자신에게 스카웃 제의를 보낸 일본 J리그의 시미즈 에스펄스 대신 연봉 5000만 엔 (당시 약 5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과 주전급 대우를 보장한 교토 퍼플 상가에 진출했습니다. 당시에는 황선홍 등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고참급 선수들이 높은 대우를 받으며 일본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박지성이 어린 나이에 당시 하위권이던 교토 퍼플 상가로 이적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후 3년간 그는 교토 퍼플 상가에서 당시 팀 동료이던 마쓰이 다이스케, 미우라 가즈요시 등과 함께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팀이 2부로 강등된 후에도 팀에 잔류하여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이끌었습니다. 2003년 1월 1일에는 일본의 FA컵 대회격인 일왕배 결승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맞아 0-1로 뒤지던 후반 7분 프리킥을 받아 헤딩으로 동점골을 성공시키면서 팀의 2-1 역전승을 도우면서, 교토 퍼플 상가가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이후 2002년 월드컵때 뛰어난 활약으로 히딩크의 총애를 받은 박지성은 히딩크와 함께 유럽의 강호 psv아인트호벤으로 이적을 결심하고, 교토 퍼플 상가는 박지성을 잔류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그는 유럽 무대에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히딩크와 박지성! PSV 아인트호벤!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활약-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한 박지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계약기간 3년 6개월에 연봉 100만 달러라는 조건으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습니다. 사실 새로운 나라로의 이적이 두려웠지만 도전정신으로 네덜란드로 떠나게 되었죠. 2003년, 이적 초기에는 월드컵 이후 소속팀에서 무리한 출전으로 인한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들쭉날쭉한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이 때문에 팀 동료인 마르크 판 보멀이 박지성의 서툰 의사소통 능력과 부진한 활약에 비판을 표할 정도였고, 심지어는 홈팬들로부터도 야유를 받을 정도에 이르렀으며 (당시 PSV의 사령탑이던 거스 히딩크 감독도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그를 주로 원정 경기에만 투입하도록 배려하였다.) 이에 따라 플레이가 위축되는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차차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점점 발군의 기량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팀내 주요 선수로 발돋움합니다.

 

 특히 윙어 아르연 로번과 골게터 마테야 케주만이 프리미어리그로 떠난 04-05시즌, 리그 3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네덜란드 언론의 예상을 뒤집고 PSV 에인트호번이 에레디비시를 제패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또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입성함에 있어서 공격진의 핵심선수로서 활약하였습니다.

 

 당시 박지성이 PSV 에인트호번에서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하였는지는 다양한 증거들로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마르크 판 보멀은 지난 시즌 불만을 표시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인터뷰를 하였으며,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AS 모나코전과 8강 올랭피크 리옹전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프랑스 해설가들은 박지성의 활동반경과 위협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내내 찬탄을 보냈습니다.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AC 밀란과의 원정 1차전 0-2 패배 이후 실낱같은 희망만을 가지고 있던 PSV 에인트호번의 홈 2차전 예상에서 네덜란드의 축구 레전드 요한 크루이프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박지성의 발끝 일 것'이라고 평했고, 요한 크루이프의 말처럼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2차전 경기 초반 디다의 640분 무실점 기록을 종결짓는 선제골을 기록하며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골을 터뜨린 대한민국 선수가 되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PSV 에인트호번은 박지성의 선제골과 필립 코퀴의 2골을 포함 3-1로 승리하여, AC 밀란과 승점과 골득실 부분에서 모두 동률을 이루었으나, 원정 다득점원칙에 따라 결승에는 오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경기 내내 종횡무진 활약을 보였던 박지성은 외신들의 찬사를 받았고, 당시 박지성을 상대했던 선수인 젠나로 가투소는 박지성을 마크했던 일이 괴로운 기억이었음을 추억하는 내용의 에세이를 일본 축구잡지에 송고했으며, 시즌 종료 이후 박지성의 거취가 화두에 오르자 주장이었던 필립 코퀴는 박지성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내용의 칼럼을 제기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그렇게 박지성을 괴롭혔던 PSV 에인트호번 팬들의 야유가 열광적인 '위숭 빠르크' 송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환상적인 시즌을 보낸 박지성에게 들려온 소식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부터의 관심이었다.

 

 

맨유맨!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2005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AC 밀란에 2연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두 경기 모두 0-1 패배로, AC 밀란의 두터운 수비벽을 뚫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PSV 에인트호번 소속이었던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4강 2차전 홈경기에서 불과 전반 9분만에 순간적인 돌파를 통해 선제골을 기록하였고, 이것을 주목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 영입을 결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박지성은 2005년 6월 22일 계약을 하고서, 2005년 7월 14일 입단식을 갖고 등번호 13번을 배정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공식 입단하였다. 2005년 7월 23일 홍콩에서 열린 홍콩 프로 선발팀과의 친선경기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입단 이후 첫 공식 경기를 가졌고, 7월 26일 중국에서 열린 베이징 현대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잉글랜드 무대에서는 2005년 8월 13일 에버턴 FC와의 프리미어리그 원정 경기에서 데뷔하였고, 12월 21일 버밍엄 시티 FC와의 풋볼 리그 컵 원정 경기에서 잉글랜드에서의 첫 골을 넣었다.

 

 리그에서도 첫 골은 풀럼 FC전에서 골을 터뜨렸으나 6개월 후 풀럼이 자책골로 변경하였다.그리고 2006년 아스널 FC전에서 프리미어리그 첫 골을 뒤늦게 신고하였다.그 후 박지성은 아스날을 상대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였으며 웨인 루니와 함깨 맨유에서 아스날에 강한 선수로 지명되었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할 때, 큰 기대를 받았지만 상당수의 대한민국 축구 팬들은 박지성이 후보로 전락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첫 번째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스쿼드 로테이션의 한축을 담당했다.

 

 박지성은 주로 오른쪽 윙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왼쪽 윙인 라이언 긱스와 번갈아가며 출전하였으며, 2006년 9월 10일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경기에서 얻은 부상으로 수술후 회복에 성공해 12월 18일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경기에서 복귀했다.  수술 후, 박지성은 우려와 달리 예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아스톤빌라 FC와의 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찰튼 FC전에서 1골,볼튼 FC전에서 2골(첫 멀티골) 2007년 3월 31일 블랙번 로버스 FC전에서 1골 1도움을 넣는 활약을 펼친 후, 무릎 부상을 입어 선수생명의 연장을 위해 2007년 4월 28일 미국 콜로라도에서 리차드 스테드먼 박사의 지도 하에 수술을 받았고,  재활을 모두 끝마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공식 한글 홈페이지와의 인터뷰에서 "복귀전에서 골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팀이 2006-07시즌에 우승함에 따라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았다. (최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험자는 2001-02시즌 일본의 이나모토 준이치이다. 당시 이나모토 준이치는 아스널 FC 소속이었지만, 리그 경기의 4분의 1 이상 출전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족시키지 못해 메달을 받지 못했다. 둥팡줘도 같은 이유로 메달을 받지 못했다.)

 

 2008년 3월 1일, 박지성은 풀럼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긴 재활 기간에서 돌아와 폴 스콜스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받아넣으며 2007-08시즌 첫 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부상 복귀 이후 3월 한달 간 꾸준한 선발 기회를 잡지 못했던 박지성은 국내에서의 출장 기회에 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2008년 4월 2일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AS 로마와의 원정경기에 선발출장하여 후반 웨스 브라운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하며 웨인 루니의 골을 어시스트 했다. 또한 며칠 후인 4월 6일, 그는 미들즈브러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카를로스 테베스와 교체되어 들어가 웨인 루니에게 결정적인 동점골 어시스트를 함으로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패배의 위기에서 구출하였다.

 

 2008년 4월 9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다시 선발 출장한 박지성은, 엄청난 활동량을 보이며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로써 1-0(총합 3-0)으로 승리한 유나이티드는 4강에 진출하였고,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로 세 시즌 동안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는 기록을 이루어냈다(2004-05 PSV 에인트호번, 2006-07 2007-0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4월 23일과 4월 29일, FC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전에서 두 경기 모두 선발 출장하였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합계 1-0으로 승리하여 결승전에 진출하였으나, 정작 박지성은 5월 21일 첼시 FC와의 맞대결로 결정된 결승전에서 갑작스런 명단 제외로 출전하지 못하였다.

 

 그 경기에서는 박지성을 대신하여 측면 미드필더로 출장한 오언 하그리브스가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맨유와 첼시는 전반과 후반, 연장까지 1-1로 팽팽한 맞대결을 펼쳤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맨유가 첼시를 6-5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2008-09 시즌 초반에는 나오지 못하다가 2008년 9월 21일 첼시 FC와의 원정 경기에 시즌 첫 출장했고, 이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이자 팀의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2009년 3월 7일 풀럼 FC와의 FA컵 원정경기에서 후반 36분 팀의 네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긴 침묵을 깼다.

 

 5월 2일에는 미들즈브러 FC와의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후반 6분 팀의 두 번째 골을, 5월 5일에는 아스널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2008-09 준결승 2차전 원정경기에서 전반 8분만에 선제골을 성공시키며 두 경기 연속 골을 터뜨렸다. 이 경기에서 그는 후반 16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성공시킨 팀의 세 번째 골에도 관여하고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을 하며 90분 풀타임을 소화하였다. 이로써 그는 최근 불거졌던 골 결정력 부족 논란을 불식시켰다.

 

 2009년 5월 16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벌어진 아스널과의 리그 37라운드에서 후반에 교체출장하여 골네트에 공을 꽂았으나 아쉽게도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이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부 리그 통산 18회,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11회 우승을 차지하였다.

 

 2009년 5월 27일 벌어진 FC 바르셀로나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시즌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여 66분간 활약함으로써, 이 대회 결승전에 출전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맨유는 이 경기에서 0-2로 완패하여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2009-2010 시즌에는 무릎부상으로 초반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하였고 복귀전는 베식타스와의 챔피언스리그 5차전에서 치렀다. 리그 첫골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스날과의 라이벌전에서 터졌다. 또한 아스톤 빌라와의 리그컵 결승에 선발로 출전하여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와의 합동 플레이로 여러번 팀의 공격을 주도하고 골대를 때리는 슛을 날리는 등 맹활약 하여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었고 축구 전문가들도 박지성에게 높은 평점을 주기도 하였다.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경기에서는 통산 3호골을 터뜨렸고 팀은 4대0승리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박지성은 이날 경기에서 상대 핵심선수인 피를로를 완벽봉쇄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고 3일 후에 열린 풀럼 FC와의 리그 경기에서는 후반 교체 투입되어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골을 어시스트했다.그 다음주에 열린 리버풀 FC와의 라이벌전에서는 후반전에 대런 플레처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골을 성공시키며 리버풀을 무너뜨렸고 시즌 2호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리그 최종전인 스토크 시티 FC 와의 경기에서 시즌 3번째 골이자 팀의 마지막 득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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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의 출생과 현재모습!!

 박지성(朴智星)은 1981년 2월 25일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입니다.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소속으로 뛰고 있으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고 있습니다.

 

 

박지성의 별명!!

 활동량이 넓고 경기장 전체를 폭넓게 뛰어도 체력이 남는 강철 체력을 소유했다는 의미로 맨유팬들이 '산소 탱크'라는 별명이 붙여주었습니다. 휘날리는 머리와 묘한 대조를 이루는 여드름 자국과 시골 사람 같은 외모로 인하여 '고질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 이후, 팀 동료들이 박지성에게 '지(Ji)'라는 애칭을 붙여주기도 하였으며, 또 경기장 어디든지 순식간에 나타나 공을 뺏는 모습을 두고 그의 소속팀 동료 파트리스 에브라는 '유령'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최근 미드필드 중원에서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센트럴 팍(Central Park)'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박지성, 파트리스 에브라, 카를로스 테베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세사람의 친분은 아주 유명합니다.

 

 

박지성 어렸을때~프로생활하기 전까지!!

 수원시 세류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여 6학년 때는 5회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할 정도로 축구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려서는 남들에 비해 체격이 왜소해서 아버지가 각종 영양식을 챙겨 먹였을 정도였고 (심지어 개구리를 잡아서 삶은 물을 먹기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심한 훈련이 성장에 차질을 가져올 까봐 수원공업고등학교 감독은 박지성에게 가벼운 훈련만 시킬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후 이학종 감독의 추천으로 1999년 명지대학교 김희태 감독의 눈에 띄어 명지대학교로 진학하고, 2000년 하계 올림픽 축구 대표팀과 연습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당시 올림픽 대표팀 허정무 감독에 의해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어 좋은 활약을 펼칩니다!

 

 

박지성의 첫 프로팀! 교토 퍼플상가!

 2000년에 명지대학교를 휴학하고 자신에게 스카웃 제의를 보낸 일본 J리그의 시미즈 에스펄스 대신 연봉 5000만 엔 (당시 약 5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과 주전급 대우를 보장한 교토 퍼플 상가에 진출했습니다. 당시에는 황선홍 등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고참급 선수들이 높은 대우를 받으며 일본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박지성이 어린 나이에 당시 하위권이던 교토 퍼플 상가로 이적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후 3년간 그는 교토 퍼플 상가에서 당시 팀 동료이던 마쓰이 다이스케, 미우라 가즈요시 등과 함께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팀이 2부로 강등된 후에도 팀에 잔류하여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이끌었습니다. 2003년 1월 1일에는 일본의 FA컵 대회격인 일왕배 결승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맞아 0-1로 뒤지던 후반 7분 프리킥을 받아 헤딩으로 동점골을 성공시키면서 팀의 2-1 역전승을 도우면서, 교토 퍼플 상가가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이후 2002년 월드컵때 뛰어난 활약으로 히딩크의 총애를 받은 박지성은 히딩크와 함께 유럽의 강호 psv아인트호벤으로 이적을 결심하고, 교토 퍼플 상가는 박지성을 잔류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그는 유럽 무대에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히딩크와 박지성! PSV 아인트호벤!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활약-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한 박지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계약기간 3년 6개월에 연봉 100만 달러라는 조건으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습니다. 사실 새로운 나라로의 이적이 두려웠지만 도전정신으로 네덜란드로 떠나게 되었죠. 2003년, 이적 초기에는 월드컵 이후 소속팀에서 무리한 출전으로 인한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들쭉날쭉한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이 때문에 팀 동료인 마르크 판 보멀이 박지성의 서툰 의사소통 능력과 부진한 활약에 비판을 표할 정도였고, 심지어는 홈팬들로부터도 야유를 받을 정도에 이르렀으며 (당시 PSV의 사령탑이던 거스 히딩크 감독도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그를 주로 원정 경기에만 투입하도록 배려하였다.) 이에 따라 플레이가 위축되는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차차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점점 발군의 기량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팀내 주요 선수로 발돋움합니다.

 

 특히 윙어 아르연 로번과 골게터 마테야 케주만이 프리미어리그로 떠난 04-05시즌, 리그 3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네덜란드 언론의 예상을 뒤집고 PSV 에인트호번이 에레디비시를 제패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또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입성함에 있어서 공격진의 핵심선수로서 활약하였습니다.

 

 당시 박지성이 PSV 에인트호번에서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하였는지는 다양한 증거들로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마르크 판 보멀은 지난 시즌 불만을 표시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인터뷰를 하였으며,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AS 모나코전과 8강 올랭피크 리옹전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프랑스 해설가들은 박지성의 활동반경과 위협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내내 찬탄을 보냈습니다.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AC 밀란과의 원정 1차전 0-2 패배 이후 실낱같은 희망만을 가지고 있던 PSV 에인트호번의 홈 2차전 예상에서 네덜란드의 축구 레전드 요한 크루이프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박지성의 발끝 일 것'이라고 평했고, 요한 크루이프의 말처럼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2차전 경기 초반 디다의 640분 무실점 기록을 종결짓는 선제골을 기록하며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골을 터뜨린 대한민국 선수가 되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PSV 에인트호번은 박지성의 선제골과 필립 코퀴의 2골을 포함 3-1로 승리하여, AC 밀란과 승점과 골득실 부분에서 모두 동률을 이루었으나, 원정 다득점원칙에 따라 결승에는 오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경기 내내 종횡무진 활약을 보였던 박지성은 외신들의 찬사를 받았고, 당시 박지성을 상대했던 선수인 젠나로 가투소는 박지성을 마크했던 일이 괴로운 기억이었음을 추억하는 내용의 에세이를 일본 축구잡지에 송고했으며, 시즌 종료 이후 박지성의 거취가 화두에 오르자 주장이었던 필립 코퀴는 박지성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내용의 칼럼을 제기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그렇게 박지성을 괴롭혔던 PSV 에인트호번 팬들의 야유가 열광적인 '위숭 빠르크' 송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환상적인 시즌을 보낸 박지성에게 들려온 소식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부터의 관심이었다.

 

 

맨유맨!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2005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AC 밀란에 2연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두 경기 모두 0-1 패배로, AC 밀란의 두터운 수비벽을 뚫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PSV 에인트호번 소속이었던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4강 2차전 홈경기에서 불과 전반 9분만에 순간적인 돌파를 통해 선제골을 기록하였고, 이것을 주목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 영입을 결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박지성은 2005년 6월 22일 계약을 하고서, 2005년 7월 14일 입단식을 갖고 등번호 13번을 배정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공식 입단하였다. 2005년 7월 23일 홍콩에서 열린 홍콩 프로 선발팀과의 친선경기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입단 이후 첫 공식 경기를 가졌고, 7월 26일 중국에서 열린 베이징 현대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잉글랜드 무대에서는 2005년 8월 13일 에버턴 FC와의 프리미어리그 원정 경기에서 데뷔하였고, 12월 21일 버밍엄 시티 FC와의 풋볼 리그 컵 원정 경기에서 잉글랜드에서의 첫 골을 넣었다.

 

 리그에서도 첫 골은 풀럼 FC전에서 골을 터뜨렸으나 6개월 후 풀럼이 자책골로 변경하였다.그리고 2006년 아스널 FC전에서 프리미어리그 첫 골을 뒤늦게 신고하였다.그 후 박지성은 아스날을 상대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였으며 웨인 루니와 함깨 맨유에서 아스날에 강한 선수로 지명되었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할 때, 큰 기대를 받았지만 상당수의 대한민국 축구 팬들은 박지성이 후보로 전락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첫 번째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스쿼드 로테이션의 한축을 담당했다.

 

 박지성은 주로 오른쪽 윙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왼쪽 윙인 라이언 긱스와 번갈아가며 출전하였으며, 2006년 9월 10일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경기에서 얻은 부상으로 수술후 회복에 성공해 12월 18일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경기에서 복귀했다.  수술 후, 박지성은 우려와 달리 예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아스톤빌라 FC와의 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찰튼 FC전에서 1골,볼튼 FC전에서 2골(첫 멀티골) 2007년 3월 31일 블랙번 로버스 FC전에서 1골 1도움을 넣는 활약을 펼친 후, 무릎 부상을 입어 선수생명의 연장을 위해 2007년 4월 28일 미국 콜로라도에서 리차드 스테드먼 박사의 지도 하에 수술을 받았고,  재활을 모두 끝마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공식 한글 홈페이지와의 인터뷰에서 "복귀전에서 골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팀이 2006-07시즌에 우승함에 따라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았다. (최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험자는 2001-02시즌 일본의 이나모토 준이치이다. 당시 이나모토 준이치는 아스널 FC 소속이었지만, 리그 경기의 4분의 1 이상 출전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족시키지 못해 메달을 받지 못했다. 둥팡줘도 같은 이유로 메달을 받지 못했다.)

 

 2008년 3월 1일, 박지성은 풀럼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긴 재활 기간에서 돌아와 폴 스콜스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받아넣으며 2007-08시즌 첫 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부상 복귀 이후 3월 한달 간 꾸준한 선발 기회를 잡지 못했던 박지성은 국내에서의 출장 기회에 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2008년 4월 2일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AS 로마와의 원정경기에 선발출장하여 후반 웨스 브라운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하며 웨인 루니의 골을 어시스트 했다. 또한 며칠 후인 4월 6일, 그는 미들즈브러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카를로스 테베스와 교체되어 들어가 웨인 루니에게 결정적인 동점골 어시스트를 함으로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패배의 위기에서 구출하였다.

 

 2008년 4월 9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다시 선발 출장한 박지성은, 엄청난 활동량을 보이며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로써 1-0(총합 3-0)으로 승리한 유나이티드는 4강에 진출하였고,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로 세 시즌 동안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는 기록을 이루어냈다(2004-05 PSV 에인트호번, 2006-07 2007-0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4월 23일과 4월 29일, FC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전에서 두 경기 모두 선발 출장하였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합계 1-0으로 승리하여 결승전에 진출하였으나, 정작 박지성은 5월 21일 첼시 FC와의 맞대결로 결정된 결승전에서 갑작스런 명단 제외로 출전하지 못하였다.

 

 그 경기에서는 박지성을 대신하여 측면 미드필더로 출장한 오언 하그리브스가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맨유와 첼시는 전반과 후반, 연장까지 1-1로 팽팽한 맞대결을 펼쳤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맨유가 첼시를 6-5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2008-09 시즌 초반에는 나오지 못하다가 2008년 9월 21일 첼시 FC와의 원정 경기에 시즌 첫 출장했고, 이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이자 팀의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2009년 3월 7일 풀럼 FC와의 FA컵 원정경기에서 후반 36분 팀의 네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긴 침묵을 깼다.

 

 5월 2일에는 미들즈브러 FC와의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후반 6분 팀의 두 번째 골을, 5월 5일에는 아스널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2008-09 준결승 2차전 원정경기에서 전반 8분만에 선제골을 성공시키며 두 경기 연속 골을 터뜨렸다. 이 경기에서 그는 후반 16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성공시킨 팀의 세 번째 골에도 관여하고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을 하며 90분 풀타임을 소화하였다. 이로써 그는 최근 불거졌던 골 결정력 부족 논란을 불식시켰다.

 

 2009년 5월 16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벌어진 아스널과의 리그 37라운드에서 후반에 교체출장하여 골네트에 공을 꽂았으나 아쉽게도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이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부 리그 통산 18회,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11회 우승을 차지하였다.

 

 2009년 5월 27일 벌어진 FC 바르셀로나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시즌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여 66분간 활약함으로써, 이 대회 결승전에 출전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맨유는 이 경기에서 0-2로 완패하여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2009-2010 시즌에는 무릎부상으로 초반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하였고 복귀전는 베식타스와의 챔피언스리그 5차전에서 치렀다. 리그 첫골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스날과의 라이벌전에서 터졌다. 또한 아스톤 빌라와의 리그컵 결승에 선발로 출전하여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와의 합동 플레이로 여러번 팀의 공격을 주도하고 골대를 때리는 슛을 날리는 등 맹활약 하여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었고 축구 전문가들도 박지성에게 높은 평점을 주기도 하였다.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경기에서는 통산 3호골을 터뜨렸고 팀은 4대0승리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박지성은 이날 경기에서 상대 핵심선수인 피를로를 완벽봉쇄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고 3일 후에 열린 풀럼 FC와의 리그 경기에서는 후반 교체 투입되어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골을 어시스트했다.그 다음주에 열린 리버풀 FC와의 라이벌전에서는 후반전에 대런 플레처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골을 성공시키며 리버풀을 무너뜨렸고 시즌 2호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리그 최종전인 스토크 시티 FC 와의 경기에서 시즌 3번째 골이자 팀의 마지막 득점을 올렸다.

 

답변확정 부탁여...

저 진짜 저도 급해서

(허접한 답변이였습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알단 박지성은 이런사람입니다

인물 정보

박지성 축구선수
출생
음력 1981년 2월 25일
신체
178cm, 73kg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MF (미드필더))
가족
아버지 박성종, 어머니 장명자
학력
명지대학교대학원 체육학
데뷔
2000년 교토 퍼플상가 입단

 

 

 

박지성(朴智星, 1981년 2월 25일 ~ )은 대한민국축구 선수이다.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출생하였다. 현재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소속으로 뛰고 있으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고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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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인 생활 [편집]

청소년 생활 [편집]

수원공업고등학교 시절 [편집]

수원시 세류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여 6학년 때는 5회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할 정도로 축구에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어려서는 남들에 비해 체격이 왜소해서 아버지가 각종 영양식을 챙겨 먹였을 정도였고 (심지어 개구리를 잡아서 삶은 물을 먹기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심한 훈련이 성장에 차질을 가져올 까봐 수원공업고등학교 감독은 박지성에게 가벼운 훈련만 시킬 정도였다고 한다.[1]

명지대학교 시절 [편집]

이학종 감독의 추천으로 1999년 명지대학교 김희태 감독의 눈에 띄어 명지대학교로 진학했다. 이후 2000년 하계 올림픽 축구 대표팀과 연습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당시 올림픽 대표팀 허정무 감독에 의해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다.

선수 생활 [편집]

교토 퍼플 상가 [편집]

2000년명지대학교를 휴학하고 자신에게 스카웃 제의를 보낸 일본 J리그시미즈 에스펄스 대신 연봉 5000만 엔 (당시 약 5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과 주전급 대우를 보장한 교토 퍼플 상가에 진출했다.[2] 당시에는 황선홍 등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고참급 선수들이 높은 대우를 받으며 일본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박지성이 어린 나이에 당시 하위권이던 교토 퍼플 상가로 이적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후 3년간 그는 교토 퍼플 상가에서 당시 팀 동료이던 마쓰이 다이스케, 미우라 가즈요시 등과 함께 맹활약을 펼쳤다. 팀이 2부로 강등된 후에도 팀에 잔류하여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이끌었다. 2003년 1월 1일에는 일본FA컵 대회격인 일왕배 결승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맞아 0-1로 뒤지던 후반 7분 프리킥을 받아 헤딩으로 동점골을 성공시키면서 팀의 2-1 역전승을 도우면서, 교토 퍼플 상가가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는데 크게 기여했다.[3] 교토 퍼플 상가는 박지성을 잔류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그는 유럽 무대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PSV 에인트호번 [편집]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활약-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한 박지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계약기간 3년 6개월에 연봉 100만 달러라는 조건으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다.[4] 사실 새로운 나라로의 이적이 두려웠지만 도전정신으로 네덜란드로 떠나게 되었다. 2003년, 이적 초기에는 월드컵 이후 소속팀에서 무리한 출전으로 인한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들쭉날쭉한 플레이를 펼쳤다.[5]

이 때문에 팀 동료인 마르크 판 보멀이 박지성의 서툰 의사소통 능력과 부진한 활약에 비판을 표할 정도였고, 심지어는 홈팬들로부터도 야유를 받을 정도에 이르렀으며 (당시 PSV의 사령탑이던 거스 히딩크 감독도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그를 주로 원정 경기에만 투입하도록 배려하였다.) 이에 따라 플레이가 위축되는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그러나 이후 차차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점점 발군의 기량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팀내 주요 선수로 발돋움했다.

특히 윙어 아르연 로번과 골게터 마테야 케주만프리미어리그로 떠난[6] 04-05시즌, 리그 3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네덜란드 언론의 예상을 뒤집고 PSV 에인트호번에레디비시를 제패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또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입성함에 있어서 공격진의 핵심선수로서 활약하였다.[7][8] 당시 박지성이 PSV 에인트호번에서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하였는지는 다양한 증거들로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마르크 판 보멀은 지난 시즌 불만을 표시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인터뷰를 하였으며,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AS 모나코전과 8강 올랭피크 리옹전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프랑스 해설가들은 박지성의 활동반경과 위협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내내 찬탄을 보냈다.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AC 밀란과의 원정 1차전 0-2 패배 이후 실낱같은 희망만을 가지고 있던 PSV 에인트호번의 홈 2차전 예상에서 네덜란드의 축구 레전드 요한 크라위프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박지성의 발끝 일 것'이라고 평했고,[9]요한 크라위프의 말처럼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2차전 경기 초반 디다의 640분 무실점 기록을 종결짓는 선제골을 기록하며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골을 터뜨린 대한민국 선수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 PSV 에인트호번은 박지성의 선제골과 필립 코퀴의 2골을 포함 3-1로 승리하여, AC 밀란과 승점과 골득실 부분에서 모두 동률을 이루었으나, 원정 다득점원칙에 따라 결승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경기 내내 종횡무진 활약을 보였던 박지성은 외신들의 찬사를 받았고, 당시 박지성을 상대했던 선수인 젠나로 가투소는 박지성을 마크했던 일이 괴로운 기억이었음을 추억하는 내용의 에세이를 일본 축구잡지에 송고했으며, 시즌 종료 이후 박지성의 거취가 화두에 오르자 주장이었던 필립 코퀴는 박지성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내용의 칼럼을 제기하였다.

무엇보다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그렇게 박지성을 괴롭혔던 PSV 에인트호번 팬들의 야유가 열광적인 '위숭 빠르크' 송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환상적인 시즌을 보낸 박지성에게 들려온 소식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부터의 관심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편집]

2008년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 후의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2005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AC 밀란에 2연패를 당하며 탈락했다.[10][11] 두 경기 모두 0-1 패배로, AC 밀란의 두터운 수비벽을 뚫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PSV 에인트호번 소속이었던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4강 2차전 홈경기에서 불과 전반 9분만에 순간적인 돌파를 통해 선제골을 기록하였고, 이것을 주목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 영입을 결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박지성은 2005년 6월 22일 계약을 하고서,[12]2005년 7월 14일 입단식을 갖고 등번호 13번을 배정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공식 입단하였다.[13]2005년 7월 23일 홍콩에서 열린 홍콩 프로 선발팀과의 친선경기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입단 이후 첫 공식 경기를 가졌고,[14]7월 26일 중국에서 열린 베이징 현대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15]잉글랜드 무대에서는 2005년 8월 13일 에버턴 FC와의 프리미어리그 원정 경기에서 데뷔하였고,[16]12월 21일 버밍엄 시티 FC와의 풋볼 리그 컵 원정 경기에서 잉글랜드에서의 첫 골을 넣었다.[17]리그에서도 첫 골은 풀럼 FC전에서 골을 터뜨렸으나 6개월 후 풀럼이 자책골로 변경하였다.그리고 2006년 아스널 FC전에서 프리미어리그 첫 골을 뒤늦게 신고하였다.그 후 박지성은 아스날을 상대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였으며 웨인 루니와 함깨 맨유에서 아스날에 강한 선수로 지명되었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할 때, 큰 기대를 받았지만 상당수의 대한민국 축구 팬들은 박지성이 후보로 전락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첫 번째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스쿼드 로테이션의 한축을 담당했다.

박지성은 주로 오른쪽 윙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왼쪽 윙인 라이언 긱스와 번갈아가며 출전하였으며, 2006년 9월 10일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경기에서 얻은 부상으로 수술후[18] 회복에 성공해 12월 18일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경기에서 복귀했다.[19] 수술 후, 박지성은 우려와 달리 예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애스턴 빌라와의 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 찰튼전에서 1골, 볼튼전에서 2골(첫 멀티골) 2007년 3월 31일 블랙번 로버스 FC전에서 1골 1도움을 넣는 활약을 펼친 후,[20] 무릎 부상을 입어 선수생명의 연장을 위해 2007년 4월 28일 미국 콜로라도에서 리차드 스테드먼 박사의 지도 하에 수술을 받았고,[21][22] 재활을 모두 끝마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공식 한글 홈페이지와의 인터뷰에서 "복귀전에서 골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팀이 2006-07시즌에 우승함에 따라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았다.[23] (최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험자는 2001-02시즌 일본이나모토 준이치이다. 당시 이나모토 준이치아스널 FC 소속이었지만, 리그 경기의 4분의 1 이상 출전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족시키지 못해 메달을 받지 못했다. 둥팡줘도 같은 이유로 메달을 받지 못했다.)

2008년 3월 1일, 박지성은 풀럼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긴 재활 기간에서 돌아와 폴 스콜스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받아넣으며 2007-08시즌 첫 득점을 기록했다.[24] 하지만 부상 복귀 이후 3월 한달 간 꾸준한 선발 기회를 잡지 못했던 박지성은 국내에서의 출장 기회에 관한 논란[25]에도 불구하고 2008년 4월 2일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AS 로마와의 원정경기에 선발출장하여 후반 웨스 브라운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하며 웨인 루니의 골을 어시스트 했다.[26] 또한 며칠 후인 4월 6일, 그는 미들즈브러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카를로스 테베스와 교체되어 들어가 웨인 루니에게 결정적인 동점골 어시스트를 함으로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패배의 위기에서 구출하였다.[27]2008년 4월 9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다시 선발 출장한 박지성은, 엄청난 활동량을 보이며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28] 이로써 1-0(총합 3-0)으로 승리한 유나이티드는 4강에 진출하였고,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로 세 시즌 동안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는 기록을 이루어냈다(2004-05 PSV 에인트호번, 2006-07·2007-0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4월 23일4월 29일, FC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전에서 두 경기 모두 선발 출장하였고,[29][30]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합계 1-0으로 승리하여 결승전에 진출하였으나, 정작 박지성은 5월 21일 첼시 FC와의 맞대결로 결정된 결승전에서 갑작스런 명단 제외로 출전하지 못하였다. 그 경기에서는 박지성을 대신하여 측면 미드필더로 출장한 오언 하그리브스가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맨유와 첼시는 전반과 후반, 연장까지 1-1로 팽팽한 맞대결을 펼쳤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맨유가 첼시를 6-5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31]

2008-09 시즌 초반에는 나오지 못하다가 2008년 9월 21일 첼시 FC와의 원정 경기에 시즌 첫 출장했고, 이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이자 팀의 선제골을 기록하였다.[32] 그리고 2009년 3월 7일 풀럼 FC와의 FA컵 원정경기에서 후반 36분 팀의 네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긴 침묵을 깼다. 5월 2일에는 미들즈브러 FC와의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후반 6분 팀의 두 번째 골을, 5월 5일에는 아스널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 준결승 2차전 원정경기에서 전반 8분만에 선제골을 성공시키며 두 경기 연속 골을 터뜨렸다. 이 경기에서 그는 후반 16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성공시킨 팀의 세 번째 골에도 관여하고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을 하며 90분 풀타임을 소화하였다. 이로써 그는 최근 불거졌던 골 결정력 부족 논란을 불식시켰다. 2009년 5월 16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벌어진 아스널과의 리그 37라운드에서 후반에 교체출장하여 골네트에 공을 꽂았으나 아쉽게도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이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부 리그 통산 18회,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11회 우승을 차지하였다. 2009년 5월 27일 벌어진 FC 바르셀로나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시즌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여 66분간 활약함으로써, 이 대회 결승전에 출전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맨유는 이 경기에서 0-2로 완패하여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33]

2010년 8월 풀럼과의 경기에서의 박지성

2009-2010 시즌에는 무릎부상으로 초반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하였고 복귀전는 베식타스와의 챔피언스리그 5차전에서 치렀다. 리그 첫골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스날과의 라이벌전에서 터졌다.또한 아스톤 빌라와의 리그컵 결승에 선발로 출전하여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와의 합동 플레이로 여러번 팀의 공격을 주도하고 골대를 때리는 슛을 날리는 등 맹활약 하여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었고 축구 전문가들도 박지성에게 높은 평점을 주기도 하였다.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경기에서는 통산 3호골을 터뜨렸고 팀은 4대0승리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박지성은 이날 경기에서 상대 핵심선수인 피를로를 완벽봉쇄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고 3일 후에 열린 풀럼 FC와의 리그 경기에서는 후반 교체 투입되어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골을 어시스트했다.그 다음주에 열린 리버풀 FC와의 라이벌전에서는 후반전에 대런 플레처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골을 성공시키며 리버풀을 무너뜨렸고 시즌 2호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리그 최종전인 스토크 시티 FC 와의 경기에서 시즌 3번째 골이자 팀의 마지막 득점을 올렸다.

2010-2011 시즌에서는 9월 22일 스컨도프 유나이티드와의 칼링컵 3라운드에서는 시즌 1호골을 터트렸고 10월 26일에는 울버햄튼 원더러스과의 다음 라운드에서 칼링컵 2경기 연속골을 기록해 시즌 2호골을 기록했고, 11월 6일 11라운드 울버햄튼 원더러스와의 홈경기 에서는 선제골과 종료직전 결승골을 박지성 자신이 모두 기록하며 최고의 경기를 치뤘다.

국가 대표 생활 [편집]

2000년 4월 5일, 2000년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 라오스와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2002년 FIFA 월드컵2006년 FIFA 월드컵국가대표로 출전하였다. 특히, 2002년 FIFA 월드컵에는 주전 미드필더로 맹활약하여 대표팀 4강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4년 하계 올림픽 당시에 박지성 차출을 놓고 대한축구협회PSV 에인트호번 사이에 갈등을 빚었고, 결국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2004년 AFC 아시안컵에 차출하기로 결정하였다.[34]

2002년 월드컵 직전의 잉글랜드프랑스와의 친선경기,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3차전 포르투갈전,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2차전 프랑스전에서 골을 넣으며, 강팀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2002년 6월 14일, 인천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3차전에서 예술적인 골을 성공시켜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이 골은 축구팬들이 뽑은 '2002년 최고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35]

2008년 10월, 김남일이 경고 누적으로 명단에서 제외되자 국가대표팀 주장 자리를 이어받았고, 이후 계속 주장을 맡고 있다.[36]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5골로 대한민국 팀의 최다 득점자가 되었으며, 대표팀이 무패로 본선 직행하는 데 기여하였다.[37]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박지성은 1차전 상대인 그리스를 상대로 이정수의 골에 이어 후반 7분 개인 드리블에 의한 두번째 골을 넣었다.

경기 스타일 [편집]

박지성의 주 포지션은 윙어로, 보통 측면 미드필더 또는 측면 공격수로 뛴다. 양발을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좌측과 우측 어느 쪽에서나 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넓은 행동 반경과 많은 활동량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스태미너가 가장 큰 특징으로, '산소 탱크', '세 개의 폐'(three-lung Park)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열심히 뛰는 선수로 인정받는다. 패싱 능력과 스피드도 수준급이며, 공을 다투는 경합 상황에서 집중력과 근성이 돋보인다. 특히 공간 활용 능력과 영리한 움직임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이 점을 수 차례 칭찬한 바 있다. 또한 박지성은 윙어임에도 불구하고 공격력 뿐만 아니라 수비적인 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며 '수비형 윙어'라는 새로운 포지션의 장르를 개척한 다재다능한 면모까지 보이고 있다. (일례로 2009-10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볼프스부르크전에서는 소속팀 수비진의 붕괴로 잠시 측면 수비수로 뛰기도 하였다.) [38][39] 공격 전개시에는 자신이 직접 볼을 처리하기보단 보다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를 활용하는 팀 플레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팀의 승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기여한다. 또한 2009-10 시즌 중반이 지나면서 팀의 측면 자원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중앙 미드필더로도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AC 밀란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2차전에는 중원에 배치되어 상대 공격의 핵인 안드레아 피를로를 철저히 봉쇄했으며 리그에서는 리버풀 FC과의 홈경기에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장하여 결승골을 넣는 등 뛰어난 전술적 이해력도 보였다.

그 외 [편집]

  • 2002년 아시안 게임 당시에는 '축구팬들이 가장 기대하는 선수'에 선정되기도 하였다.[40]
  •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하여 활약하자, '2005년 포털사이트 최다 검색어 1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41]
  • 2008년 창설된 지 2년이 된 K3 리그가 개막하자,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42]
  • 종교는 불교이다.[43]
  •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월드컵 3회 연속골을 기록했다.[44] 역대 월드컵 최다 연속골은 '축구황제' 펠레이다. 펠레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부터 은퇴 전 마지막 월드컵이었던 1970년 멕시코 월드컵까지 4개 대회 연속골을 기록했다.[45]
  • 카를로스 테베스와 절친한 친구인 것을 포함하여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과 깊은 인연이 있다. 리오넬 메시는 좋은 라이벌로서, 다른 몇몇 선수들도 한때 같은 팀 동료서 인연이 있다.
  • 2010년, 대한민국이 그리스전에서 승리하자 축구팬들은 대한민국 에이스를 통틀어 양박쌍용(兩朴雙龍)이라는 별명을 만들어줬다. 양박은 리더(2010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박지성과 박주영, 쌍용은 기성용이청용이다. 그리고 그리스전 때 들어오는 공마다 선방한 모습을 보여준 정성룡도 가세해서 양박삼룡(兩朴三龍)으로 재개되었다.
  • 박지성 역시 징병제가 모든 분야에 대해 방해요소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꾸준히 성적을 올리고 강팀들과 거리를 좁히려면 병역혜택은 당연히 필요하다."라고 말했다.[46]
  • 박지성은 일본의 배구선수 기무라 사오리와 열애설이 생기자 "나(178cm)보다 키가 큰(184cm) 모양인데 나는 나보다 키가 큰 여자는 사귈 생각이 없다."라고 말하며 열애설을 부인했다.[47]

별명 [편집]

활동량이 넓고 경기장 전체를 폭넓게 뛰어도 체력이 남는 강철 체력을 소유했다는 의미로 '산소 탱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휘날리는 머리와 묘한 대조를 이루는 여드름 자국과 시골 사람 같은 외모로 인하여 '고질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 이후, 팀 동료들이 박지성에게 '지(Ji)'라는 애칭을 붙여주기도 하였다. 또 경기장 어디든지 순식간에 나타나 공을 뺏는 모습을 두고 그의 소속팀 동료 파트리스 에브라는 '유령'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최근 미드필드 중원에서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센트럴 팍(Central Park)'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박지성, 파트리스 에브라, 카를로스 테베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세사람의 친분은 아주 유명하다.

주요 미디어 출연 및 저서 발간 [편집]

방송 출연
  • KBS여유만만 - 피와 땀으로 얼룩진 눈물 겨운 가족 사랑》 (2009.07.30)
  • MBCMBC스페셜 -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 (2009.04.19)
서적 - 자서전 발간

책 이름 출시일 페이지 판형 출판사 국제 표준 도서 번호 비고
나를 버리다 - 더큰 나를 위해 2010년 5월 6일 268쪽 A5 중앙북스 (중앙일보 출판법인) ISBN 9788927800309
멈추지 않는 도전 2006년 3월 8일 250쪽 A5 랜덤하우스코리아 ISBN 895986529X
꿈을 향해 뛰어라 ([멈추지 않는 도전]의 어린이 판) 2008년 1월 16일 1권 188쪽 / 2권 181쪽 / 3권 192쪽 A5 랜덤하우스코리아 ISBN 9788945125163 어린이/아동
그림은 만화가 전세훈 화백


관련 서적
  • 《박지성 휘젓고 박주영 쏜다》, 김화성 지음, 동아일보사, 2006.3.
  • 《도전! 슈퍼코리언 박지성》, SBS 프로덕션 편집부 지음, 주니어중앙, 2008.2.
  • 《프리미어리그와 사랑에 빠지다》, 최보윤 지음, 소담출판사, 2008.1.
  • 《퍼감독 루니좀 말려줘 (세계 최강 맨유군단 시끌벅적 한국원정기)》, 김석현 지음, 일간스포츠, 2009.9.
  • 《가슴으로 꾼 꿈이 행복한 미래를 만든다》, 박성종 (박지성 선수 아버지) 지음, 서울문화사, 2010.6.

경기 기록 [편집]

클럽 시즌 리그 리그 컵 UEFA 경기 기타[48] 합계
경기 경기 경기 경기 경기 경기
교토 퍼플 상가 2000 13 1 1 0 2 0 16 1
2001 38 3 1 0 1 0 40 3
2002 25 7 4 1 0 0 29 8
합계 76 11 6 1 3 0 85 12
PSV 에인트호번 2002-03 8 0 0 0 0 0 0 0 8 0
2003-04 28 6 1 0 10 0 1 0 40 6
2004-05 28 7 3 2 13 2 0 0 44 11
합계 64 13 4 2 23 2 1 0 92 1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5-06 34 1 2 0 3 1 6 0 0 0 45 2
2006-07 14 5 5 0 0 0 1 0 0 0 20 5
2007-08 12 1 2 0 0 0 4 0 0 0 18 1
2008-09 25 2 3 1 1 0 9 1 2 0 40 4
2009-10 17 3 0 0 2 0 6 1 1 0 26 4
2010-11 10 4 0 0 2 2 5 0 1 0 18 6
합계 112 16 12 1 8 3 31 2 4 0 167 22
경력 합계 252 40 22 4 11 3 54 4 5 0 344 51


최신 업데이트 : 2010년 12월 21일 (GMT+9)[49]

국가대표팀 득점 [편집]

스코어와 결과 리스트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득점을 먼저 기록하였다. (ex:스코어 1-0일 때 1이 대한민국)

# 일시 장소 상대 국가 스코어 결과 매치 형식
1 2000-06-07 이란, 테헤란 마케도니아 공화국 2-0 2-1 친선 경기
2 2002-05-21 대한민국, 서귀포 잉글랜드 1-1 1-1 친선 경기
3 2002-05-26 대한민국, 수원 프랑스 1-1 2-3 친선 경기
4 2002-06-14 대한민국, 인천 포르투갈 1-0 1-0 2002 FIFA 월드컵
5 2005-06-06 쿠웨이트, 쿠웨이트 시티 쿠웨이트 4-0 4-0 2006 FIFA 월드컵 최종 예선
6 2006-06-18 독일, 라이프치히 프랑스 1-1 1-1 2006 FIFA 월드컵
7 2008-02-06 대한민국, 서울 투르크메니스탄 3-0 4-0 2010 FIFA 월드컵 3차 예선
8 2008-05-31 대한민국, 서울 요르단 1-0 2-2 2010 FIFA 월드컵 3차 예선
9 2008-10-15 대한민국, 서울 아랍에미리트 2-0 4-1 2010 FIFA 월드컵 최종 예선
10 2009-02-11 이란, 테헤란 이란 1-1 1-1 2010 FIFA 월드컵 최종 예선
11 2009-06-17 대한민국, 서울 이란 1-1 1-1 2010 FIFA 월드컵 최종 예선
12 2010-05-24 일본, 사이타마 일본 1-0 2-0 친선 경기
13 2010-06-12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트 엘리자베스 그리스 2-0 2-0 2010 FIFA 월드컵


경력 [편집]

선수 경력 [편집]

국가 대표 경력 [편집]

수상 경력 [편집]

개인 [편집]


클럽 [편집]

교토 퍼플 상가
PSV 에인트호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가 대표팀 [편집]

대외 활동 [편집]

관련 항목 [편집]

주석 [편집]

  1. 박지성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이제는 세계가 지켜봐'
  2. 19세 박지성, 대학생 신분 첫 J리그 입성
  3. 박지성, 교토에 우승선물 '유종의 미'
  4. 박지성, 네덜란드 에인트호벤 입단 확정
  5. 이영표ㆍ박지성, 데뷔전서 명암
  6. 박지성 팀동료 로벤, 첼시로 이적
  7. 박지성-이영표, 한국인 최초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8. 박지성과 이영표, 신화로 가는 문 앞에서 좌절
  9. 크루이프,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 주인공은 박지성'
  10. '우승1순위' AC 밀란, 맨체스터 꺾었다!
  11. 첼시-맨체스터 Utd, 엇갈린 희비
  12. 박지성,75억원 이적료에 프리미어리거 확정
  13. 박지성, '등번호 13번' 맨유 공식 입단
  14. 박지성, 데뷔전서 4차례 강슛! 맨유 2-0승
  15. `산소탱크` 박지성, 맨체스터 데뷔골 폭발!!
  16. 박지성, '성공적 데뷔전...팀은 2-0승
  17. 박지성, 잉글랜드 무대 데뷔골…맨체스터, 칼링컵 4강행
  18. 박지성, 왼쪽 발목 인대 파열로 3개월 결장…14일 오후 수술
  19. 박지성, 부상털고 3개월만에 그라운드 복귀
  20. 박지성, 블랙번 전에서 1골1도움 '폭발'
  21. 英 언론 “박지성 부상 심각… 1년 아웃”
  22. 박지성,무릎 연골 수술 성공리에 마쳐… 재검사 후 복귀 시기 검토
  23. 박지성 '아시아 최초로 EPL 우승메달 받는다'
  24. '복귀 후 첫 골 박지성', 역시 풀럼의 천적
  25. 박지성 또 결장 왜?
  26. 맨유 박지성, 로마전서 루니에 결정적인 1 도움
  27. 박지성이 해냈다…패배위기서 어시스트
  28. 英언론, 박지성 활약상은 결승골 테베스와 동급
  29. '메시와의 중원싸움' 박지성, 풀타임 활약 눈부셨다
  30. 맨유, '박지성 활용' 협력 수비의 성공
  31. 박지성,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결장‥벤치 명단에서도 제외
  32. 英언론, "지치지 않는 박지성, 선제골로 첼시 어렵게 했다"
  33. 챔피언스리그 - 바르샤 첫 트레블..박지성 선발”, 《연합뉴스》, 2009년 5월 28일 작성. 2009년 5월 28일 확인.
  34. 박지성, 아시안컵 멤버로 최종 결정
  35. 박지성의 포르투갈전 골, "2002년 최고의 골"
  36. 박지성, 국가대표팀 주장됐다…'산소탱크' 대신 '뉴캡틴'
  37. '월드컵 예선 최다골' 박지성, 대표팀 주장 진면목 재확인”, 《마이데일리》, 2009년 6월 17일 작성. 2009년 6월 17일 확인.
  38. Player Profile - Park: In The Words Of Others
  39. 박지성, '축구팬들이 가장 기대하는 선수'로 뽑혀
  40. 박지성, 포털사이트 조사 ‘2005년 최다 검색어 1위’
  41. 박지성 'Daum K3리그 2008' 개막에 축하메시지 전해
  42. 불자대상 수상자에 박영석.박지성.김윤규씨
  43. '역시, 박지성'...아시아 첫 월드컵 3회 연속골
  44. 월드컵 최다 연속골은? '축구황제' 펠레
  45. 캡틴 박지성 “한국축구 세계와 맞서려면 병역 혜택 절실” - 일간스포츠
  46. SSTV
  47. Includes other competitive competitions, including the FA 커뮤니티 실드, UEFA 슈퍼컵, 인터컨티넨탈컵, FIFA 클럽 월드컵
  48. Endlar, Andrew. Park Ji-Sung. Manchester United the Official Statistics Website. publisher=StretfordEnd.co.uk. 2010년 12월 14일에 확인. “Goora&Real”

    박지성(朴智星, 1981년 2월 25일 ~ )은 대한민국축구 선수이다.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출생하였다. 현재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소속으로 뛰고 있으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고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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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인 생활 [편집]

    청소년 생활 [편집]

    수원공업고등학교 시절 [편집]

    수원시 세류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여 6학년 때는 5회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할 정도로 축구에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어려서는 남들에 비해 체격이 왜소해서 아버지가 각종 영양식을 챙겨 먹였을 정도였고 (심지어 개구리를 잡아서 삶은 물을 먹기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심한 훈련이 성장에 차질을 가져올 까봐 수원공업고등학교 감독은 박지성에게 가벼운 훈련만 시킬 정도였다고 한다.[1]

    명지대학교 시절 [편집]

    이학종 감독의 추천으로 1999년 명지대학교 김희태 감독의 눈에 띄어 명지대학교로 진학했다. 이후 2000년 하계 올림픽 축구 대표팀과 연습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당시 올림픽 대표팀 허정무 감독에 의해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다.

    선수 생활 [편집]

    교토 퍼플 상가 [편집]

    2000년명지대학교를 휴학하고 자신에게 스카웃 제의를 보낸 일본 J리그시미즈 에스펄스 대신 연봉 5000만 엔 (당시 약 5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과 주전급 대우를 보장한 교토 퍼플 상가에 진출했다.[2] 당시에는 황선홍 등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고참급 선수들이 높은 대우를 받으며 일본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박지성이 어린 나이에 당시 하위권이던 교토 퍼플 상가로 이적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후 3년간 그는 교토 퍼플 상가에서 당시 팀 동료이던 마쓰이 다이스케, 미우라 가즈요시 등과 함께 맹활약을 펼쳤다. 팀이 2부로 강등된 후에도 팀에 잔류하여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이끌었다. 2003년 1월 1일에는 일본FA컵 대회격인 일왕배 결승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맞아 0-1로 뒤지던 후반 7분 프리킥을 받아 헤딩으로 동점골을 성공시키면서 팀의 2-1 역전승을 도우면서, 교토 퍼플 상가가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는데 크게 기여했다.[3] 교토 퍼플 상가는 박지성을 잔류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그는 유럽 무대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PSV 에인트호번 [편집]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활약-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한 박지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계약기간 3년 6개월에 연봉 100만 달러라는 조건으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다.[4] 사실 새로운 나라로의 이적이 두려웠지만 도전정신으로 네덜란드로 떠나게 되었다. 2003년, 이적 초기에는 월드컵 이후 소속팀에서 무리한 출전으로 인한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들쭉날쭉한 플레이를 펼쳤다.[5]

    이 때문에 팀 동료인 마르크 판 보멀이 박지성의 서툰 의사소통 능력과 부진한 활약에 비판을 표할 정도였고, 심지어는 홈팬들로부터도 야유를 받을 정도에 이르렀으며 (당시 PSV의 사령탑이던 거스 히딩크 감독도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그를 주로 원정 경기에만 투입하도록 배려하였다.) 이에 따라 플레이가 위축되는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그러나 이후 차차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점점 발군의 기량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팀내 주요 선수로 발돋움했다.

    특히 윙어 아르연 로번과 골게터 마테야 케주만프리미어리그로 떠난[6] 04-05시즌, 리그 3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네덜란드 언론의 예상을 뒤집고 PSV 에인트호번에레디비시를 제패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또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입성함에 있어서 공격진의 핵심선수로서 활약하였다.[7][8] 당시 박지성이 PSV 에인트호번에서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하였는지는 다양한 증거들로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마르크 판 보멀은 지난 시즌 불만을 표시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인터뷰를 하였으며,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AS 모나코전과 8강 올랭피크 리옹전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프랑스 해설가들은 박지성의 활동반경과 위협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내내 찬탄을 보냈다.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AC 밀란과의 원정 1차전 0-2 패배 이후 실낱같은 희망만을 가지고 있던 PSV 에인트호번의 홈 2차전 예상에서 네덜란드의 축구 레전드 요한 크라위프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박지성의 발끝 일 것'이라고 평했고,[9]요한 크라위프의 말처럼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2차전 경기 초반 디다의 640분 무실점 기록을 종결짓는 선제골을 기록하며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골을 터뜨린 대한민국 선수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 PSV 에인트호번은 박지성의 선제골과 필립 코퀴의 2골을 포함 3-1로 승리하여, AC 밀란과 승점과 골득실 부분에서 모두 동률을 이루었으나, 원정 다득점원칙에 따라 결승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경기 내내 종횡무진 활약을 보였던 박지성은 외신들의 찬사를 받았고, 당시 박지성을 상대했던 선수인 젠나로 가투소는 박지성을 마크했던 일이 괴로운 기억이었음을 추억하는 내용의 에세이를 일본 축구잡지에 송고했으며, 시즌 종료 이후 박지성의 거취가 화두에 오르자 주장이었던 필립 코퀴는 박지성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내용의 칼럼을 제기하였다.

    무엇보다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그렇게 박지성을 괴롭혔던 PSV 에인트호번 팬들의 야유가 열광적인 '위숭 빠르크' 송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환상적인 시즌을 보낸 박지성에게 들려온 소식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부터의 관심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편집]

    2008년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 후의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2005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AC 밀란에 2연패를 당하며 탈락했다.[10][11] 두 경기 모두 0-1 패배로, AC 밀란의 두터운 수비벽을 뚫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PSV 에인트호번 소속이었던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4강 2차전 홈경기에서 불과 전반 9분만에 순간적인 돌파를 통해 선제골을 기록하였고, 이것을 주목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 영입을 결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박지성은 2005년 6월 22일 계약을 하고서,[12]2005년 7월 14일 입단식을 갖고 등번호 13번을 배정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공식 입단하였다.[13]2005년 7월 23일 홍콩에서 열린 홍콩 프로 선발팀과의 친선경기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입단 이후 첫 공식 경기를 가졌고,[14]7월 26일 중국에서 열린 베이징 현대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15]잉글랜드 무대에서는 2005년 8월 13일 에버턴 FC와의 프리미어리그 원정 경기에서 데뷔하였고,[16]12월 21일 버밍엄 시티 FC와의 풋볼 리그 컵 원정 경기에서 잉글랜드에서의 첫 골을 넣었다.[17]리그에서도 첫 골은 풀럼 FC전에서 골을 터뜨렸으나 6개월 후 풀럼이 자책골로 변경하였다.그리고 2006년 아스널 FC전에서 프리미어리그 첫 골을 뒤늦게 신고하였다.그 후 박지성은 아스날을 상대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였으며 웨인 루니와 함깨 맨유에서 아스날에 강한 선수로 지명되었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할 때, 큰 기대를 받았지만 상당수의 대한민국 축구 팬들은 박지성이 후보로 전락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첫 번째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스쿼드 로테이션의 한축을 담당했다.

    박지성은 주로 오른쪽 윙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왼쪽 윙인 라이언 긱스와 번갈아가며 출전하였으며, 2006년 9월 10일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경기에서 얻은 부상으로 수술후[18] 회복에 성공해 12월 18일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경기에서 복귀했다.[19] 수술 후, 박지성은 우려와 달리 예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애스턴 빌라와의 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 찰튼전에서 1골, 볼튼전에서 2골(첫 멀티골) 2007년 3월 31일 블랙번 로버스 FC전에서 1골 1도움을 넣는 활약을 펼친 후,[20] 무릎 부상을 입어 선수생명의 연장을 위해 2007년 4월 28일 미국 콜로라도에서 리차드 스테드먼 박사의 지도 하에 수술을 받았고,[21][22] 재활을 모두 끝마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공식 한글 홈페이지와의 인터뷰에서 "복귀전에서 골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팀이 2006-07시즌에 우승함에 따라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았다.[23] (최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험자는 2001-02시즌 일본이나모토 준이치이다. 당시 이나모토 준이치아스널 FC 소속이었지만, 리그 경기의 4분의 1 이상 출전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족시키지 못해 메달을 받지 못했다. 둥팡줘도 같은 이유로 메달을 받지 못했다.)

    2008년 3월 1일, 박지성은 풀럼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긴 재활 기간에서 돌아와 폴 스콜스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받아넣으며 2007-08시즌 첫 득점을 기록했다.[24] 하지만 부상 복귀 이후 3월 한달 간 꾸준한 선발 기회를 잡지 못했던 박지성은 국내에서의 출장 기회에 관한 논란[25]에도 불구하고 2008년 4월 2일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AS 로마와의 원정경기에 선발출장하여 후반 웨스 브라운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하며 웨인 루니의 골을 어시스트 했다.[26] 또한 며칠 후인 4월 6일, 그는 미들즈브러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카를로스 테베스와 교체되어 들어가 웨인 루니에게 결정적인 동점골 어시스트를 함으로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패배의 위기에서 구출하였다.[27]2008년 4월 9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다시 선발 출장한 박지성은, 엄청난 활동량을 보이며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28] 이로써 1-0(총합 3-0)으로 승리한 유나이티드는 4강에 진출하였고,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로 세 시즌 동안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는 기록을 이루어냈다(2004-05 PSV 에인트호번, 2006-07·2007-0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4월 23일4월 29일, FC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전에서 두 경기 모두 선발 출장하였고,[29][30]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합계 1-0으로 승리하여 결승전에 진출하였으나, 정작 박지성은 5월 21일 첼시 FC와의 맞대결로 결정된 결승전에서 갑작스런 명단 제외로 출전하지 못하였다. 그 경기에서는 박지성을 대신하여 측면 미드필더로 출장한 오언 하그리브스가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맨유와 첼시는 전반과 후반, 연장까지 1-1로 팽팽한 맞대결을 펼쳤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맨유가 첼시를 6-5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31]

    2008-09 시즌 초반에는 나오지 못하다가 2008년 9월 21일 첼시 FC와의 원정 경기에 시즌 첫 출장했고, 이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이자 팀의 선제골을 기록하였다.[32] 그리고 2009년 3월 7일 풀럼 FC와의 FA컵 원정경기에서 후반 36분 팀의 네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긴 침묵을 깼다. 5월 2일에는 미들즈브러 FC와의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후반 6분 팀의 두 번째 골을, 5월 5일에는 아스널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 준결승 2차전 원정경기에서 전반 8분만에 선제골을 성공시키며 두 경기 연속 골을 터뜨렸다. 이 경기에서 그는 후반 16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성공시킨 팀의 세 번째 골에도 관여하고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을 하며 90분 풀타임을 소화하였다. 이로써 그는 최근 불거졌던 골 결정력 부족 논란을 불식시켰다. 2009년 5월 16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벌어진 아스널과의 리그 37라운드에서 후반에 교체출장하여 골네트에 공을 꽂았으나 아쉽게도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이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부 리그 통산 18회,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11회 우승을 차지하였다. 2009년 5월 27일 벌어진 FC 바르셀로나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시즌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여 66분간 활약함으로써, 이 대회 결승전에 출전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맨유는 이 경기에서 0-2로 완패하여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33]

    2010년 8월 풀럼과의 경기에서의 박지성

    2009-2010 시즌에는 무릎부상으로 초반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하였고 복귀전는 베식타스와의 챔피언스리그 5차전에서 치렀다. 리그 첫골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스날과의 라이벌전에서 터졌다.또한 아스톤 빌라와의 리그컵 결승에 선발로 출전하여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와의 합동 플레이로 여러번 팀의 공격을 주도하고 골대를 때리는 슛을 날리는 등 맹활약 하여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었고 축구 전문가들도 박지성에게 높은 평점을 주기도 하였다.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경기에서는 통산 3호골을 터뜨렸고 팀은 4대0승리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박지성은 이날 경기에서 상대 핵심선수인 피를로를 완벽봉쇄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고 3일 후에 열린 풀럼 FC와의 리그 경기에서는 후반 교체 투입되어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골을 어시스트했다.그 다음주에 열린 리버풀 FC와의 라이벌전에서는 후반전에 대런 플레처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골을 성공시키며 리버풀을 무너뜨렸고 시즌 2호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리그 최종전인 스토크 시티 FC 와의 경기에서 시즌 3번째 골이자 팀의 마지막 득점을 올렸다.

    2010-2011 시즌에서는 9월 22일 스컨도프 유나이티드와의 칼링컵 3라운드에서는 시즌 1호골을 터트렸고 10월 26일에는 울버햄튼 원더러스과의 다음 라운드에서 칼링컵 2경기 연속골을 기록해 시즌 2호골을 기록했고, 11월 6일 11라운드 울버햄튼 원더러스와의 홈경기 에서는 선제골과 종료직전 결승골을 박지성 자신이 모두 기록하며 최고의 경기를 치뤘다.

    국가 대표 생활 [편집]

    2000년 4월 5일, 2000년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 라오스와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2002년 FIFA 월드컵2006년 FIFA 월드컵국가대표로 출전하였다. 특히, 2002년 FIFA 월드컵에는 주전 미드필더로 맹활약하여 대표팀 4강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4년 하계 올림픽 당시에 박지성 차출을 놓고 대한축구협회PSV 에인트호번 사이에 갈등을 빚었고, 결국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2004년 AFC 아시안컵에 차출하기로 결정하였다.[34]

    2002년 월드컵 직전의 잉글랜드프랑스와의 친선경기,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3차전 포르투갈전,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2차전 프랑스전에서 골을 넣으며, 강팀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2002년 6월 14일, 인천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3차전에서 예술적인 골을 성공시켜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이 골은 축구팬들이 뽑은 '2002년 최고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35]

    2008년 10월, 김남일이 경고 누적으로 명단에서 제외되자 국가대표팀 주장 자리를 이어받았고, 이후 계속 주장을 맡고 있다.[36]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5골로 대한민국 팀의 최다 득점자가 되었으며, 대표팀이 무패로 본선 직행하는 데 기여하였다.[37]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박지성은 1차전 상대인 그리스를 상대로 이정수의 골에 이어 후반 7분 개인 드리블에 의한 두번째 골을 넣었다.

    경기 스타일 [편집]

    박지성의 주 포지션은 윙어로, 보통 측면 미드필더 또는 측면 공격수로 뛴다. 양발을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좌측과 우측 어느 쪽에서나 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넓은 행동 반경과 많은 활동량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스태미너가 가장 큰 특징으로, '산소 탱크', '세 개의 폐'(three-lung Park)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열심히 뛰는 선수로 인정받는다. 패싱 능력과 스피드도 수준급이며, 공을 다투는 경합 상황에서 집중력과 근성이 돋보인다. 특히 공간 활용 능력과 영리한 움직임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이 점을 수 차례 칭찬한 바 있다. 또한 박지성은 윙어임에도 불구하고 공격력 뿐만 아니라 수비적인 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며 '수비형 윙어'라는 새로운 포지션의 장르를 개척한 다재다능한 면모까지 보이고 있다. (일례로 2009-10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볼프스부르크전에서는 소속팀 수비진의 붕괴로 잠시 측면 수비수로 뛰기도 하였다.) [38][39] 공격 전개시에는 자신이 직접 볼을 처리하기보단 보다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를 활용하는 팀 플레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팀의 승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기여한다. 또한 2009-10 시즌 중반이 지나면서 팀의 측면 자원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중앙 미드필더로도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AC 밀란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2차전에는 중원에 배치되어 상대 공격의 핵인 안드레아 피를로를 철저히 봉쇄했으며 리그에서는 리버풀 FC과의 홈경기에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장하여 결승골을 넣는 등 뛰어난 전술적 이해력도 보였다.

    그 외 [편집]

    • 2002년 아시안 게임 당시에는 '축구팬들이 가장 기대하는 선수'에 선정되기도 하였다.[40]
    •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하여 활약하자, '2005년 포털사이트 최다 검색어 1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41]
    • 2008년 창설된 지 2년이 된 K3 리그가 개막하자,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42]
    • 종교는 불교이다.[43]
    •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월드컵 3회 연속골을 기록했다.[44] 역대 월드컵 최다 연속골은 '축구황제' 펠레이다. 펠레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부터 은퇴 전 마지막 월드컵이었던 1970년 멕시코 월드컵까지 4개 대회 연속골을 기록했다.[45]
    • 카를로스 테베스와 절친한 친구인 것을 포함하여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과 깊은 인연이 있다. 리오넬 메시는 좋은 라이벌로서, 다른 몇몇 선수들도 한때 같은 팀 동료서 인연이 있다.
    • 2010년, 대한민국이 그리스전에서 승리하자 축구팬들은 대한민국 에이스를 통틀어 양박쌍용(兩朴雙龍)이라는 별명을 만들어줬다. 양박은 리더(2010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박지성과 박주영, 쌍용은 기성용이청용이다. 그리고 그리스전 때 들어오는 공마다 선방한 모습을 보여준 정성룡도 가세해서 양박삼룡(兩朴三龍)으로 재개되었다.
    • 박지성 역시 징병제가 모든 분야에 대해 방해요소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꾸준히 성적을 올리고 강팀들과 거리를 좁히려면 병역혜택은 당연히 필요하다."라고 말했다.[46]
    • 박지성은 일본의 배구선수 기무라 사오리와 열애설이 생기자 "나(178cm)보다 키가 큰(184cm) 모양인데 나는 나보다 키가 큰 여자는 사귈 생각이 없다."라고 말하며 열애설을 부인했다.[47]

    별명 [편집]

    활동량이 넓고 경기장 전체를 폭넓게 뛰어도 체력이 남는 강철 체력을 소유했다는 의미로 '산소 탱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휘날리는 머리와 묘한 대조를 이루는 여드름 자국과 시골 사람 같은 외모로 인하여 '고질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 이후, 팀 동료들이 박지성에게 '지(Ji)'라는 애칭을 붙여주기도 하였다. 또 경기장 어디든지 순식간에 나타나 공을 뺏는 모습을 두고 그의 소속팀 동료 파트리스 에브라는 '유령'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최근 미드필드 중원에서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센트럴 팍(Central Park)'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박지성, 파트리스 에브라, 카를로스 테베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세사람의 친분은 아주 유명하다.

    주요 미디어 출연 및 저서 발간 [편집]

    방송 출연
    • KBS여유만만 - 피와 땀으로 얼룩진 눈물 겨운 가족 사랑》 (2009.07.30)
    • MBCMBC스페셜 -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 (2009.04.19)
    서적 - 자서전 발간
    책 이름 출시일 페이지 판형 출판사 국제 표준 도서 번호 비고
    나를 버리다 - 더큰 나를 위해 2010년 5월 6일 268쪽 A5 중앙북스 (중앙일보 출판법인) ISBN 9788927800309
    멈추지 않는 도전 2006년 3월 8일 250쪽 A5 랜덤하우스코리아 ISBN 895986529X
    꿈을 향해 뛰어라 ([멈추지 않는 도전]의 어린이 판) 2008년 1월 16일 1권 188쪽 / 2권 181쪽 / 3권 192쪽 A5 랜덤하우스코리아 ISBN 9788945125163 어린이/아동
    그림은 만화가 전세훈 화백
    관련 서적
    • 《박지성 휘젓고 박주영 쏜다》, 김화성 지음, 동아일보사, 2006.3.
    • 《도전! 슈퍼코리언 박지성》, SBS 프로덕션 편집부 지음, 주니어중앙, 2008.2.
    • 《프리미어리그와 사랑에 빠지다》, 최보윤 지음, 소담출판사, 2008.1.
    • 《퍼감독 루니좀 말려줘 (세계 최강 맨유군단 시끌벅적 한국원정기)》, 김석현 지음, 일간스포츠, 2009.9.
    • 《가슴으로 꾼 꿈이 행복한 미래를 만든다》, 박성종 (박지성 선수 아버지) 지음, 서울문화사, 2010.6.

    경기 기록 [편집]

    클럽 시즌 리그 리그 컵 UEFA 경기 기타[48] 합계
    경기 경기 경기 경기 경기 경기
    교토 퍼플 상가 2000 13 1 1 0 2 0 16 1
    2001 38 3 1 0 1 0 40 3
    2002 25 7 4 1 0 0 29 8
    합계 76 11 6 1 3 0 85 12
    PSV 에인트호번 2002-03 8 0 0 0 0 0 0 0 8 0
    2003-04 28 6 1 0 10 0 1 0 40 6
    2004-05 28 7 3 2 13 2 0 0 44 11
    합계 64 13 4 2 23 2 1 0 92 1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5-06 34 1 2 0 3 1 6 0 0 0 45 2
    2006-07 14 5 5 0 0 0 1 0 0 0 20 5
    2007-08 12 1 2 0 0 0 4 0 0 0 18 1
    2008-09 25 2 3 1 1 0 9 1 2 0 40 4
    2009-10 17 3 0 0 2 0 6 1 1 0 26 4
    2010-11 10 4 0 0 2 2 5 0 1 0 18 6
    합계 112 16 12 1 8 3 31 2 4 0 167 22
    경력 합계 252 40 22 4 11 3 54 4 5 0 344 51

    최신 업데이트 : 2010년 12월 21일 (GMT+9)[49]

    국가대표팀 득점 [편집]

    스코어와 결과 리스트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득점을 먼저 기록하였다. (ex:스코어 1-0일 때 1이 대한민국)

    # 일시 장소 상대 국가 스코어 결과 매치 형식
    1 2000-06-07 이란, 테헤란 마케도니아 공화국 2-0 2-1 친선 경기
    2 2002-05-21 대한민국, 서귀포 잉글랜드 1-1 1-1 친선 경기
    3 2002-05-26 대한민국, 수원 프랑스 1-1 2-3 친선 경기
    4 2002-06-14 대한민국, 인천 포르투갈 1-0 1-0 2002 FIFA 월드컵
    5 2005-06-06 쿠웨이트, 쿠웨이트 시티 쿠웨이트 4-0 4-0 2006 FIFA 월드컵 최종 예선
    6 2006-06-18 독일, 라이프치히 프랑스 1-1 1-1 2006 FIFA 월드컵
    7 2008-02-06 대한민국, 서울 투르크메니스탄 3-0 4-0 2010 FIFA 월드컵 3차 예선
    8 2008-05-31 대한민국, 서울 요르단 1-0 2-2 2010 FIFA 월드컵 3차 예선
    9 2008-10-15 대한민국, 서울 아랍에미리트 2-0 4-1 2010 FIFA 월드컵 최종 예선
    10 2009-02-11 이란, 테헤란 이란 1-1 1-1 2010 FIFA 월드컵 최종 예선
    11 2009-06-17 대한민국, 서울 이란 1-1 1-1 2010 FIFA 월드컵 최종 예선
    12 2010-05-24 일본, 사이타마 일본 1-0 2-0 친선 경기
    13 2010-06-12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트 엘리자베스 그리스 2-0 2-0 2010 FIFA 월드컵

    경력 [편집]

    선수 경력 [편집]

    국가 대표 경력 [편집]

    수상 경력 [편집]

    개인 [편집]


    클럽 [편집]

    교토 퍼플 상가
    PSV 에인트호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가 대표팀 [편집]

    대외 활동 [편집]

    관련 항목 [편집]

    주석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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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英언론, 박지성 활약상은 결승골 테베스와 동급
    29. '메시와의 중원싸움' 박지성, 풀타임 활약 눈부셨다
    30. 맨유, '박지성 활용' 협력 수비의 성공
    31. 박지성,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결장‥벤치 명단에서도 제외
    32. 英언론, "지치지 않는 박지성, 선제골로 첼시 어렵게 했다"
    33. 챔피언스리그 - 바르샤 첫 트레블..박지성 선발”, 《연합뉴스》, 2009년 5월 28일 작성. 2009년 5월 28일 확인.
    34. 박지성, 아시안컵 멤버로 최종 결정
    35. 박지성의 포르투갈전 골, "2002년 최고의 골"
    36. 박지성, 국가대표팀 주장됐다…'산소탱크' 대신 '뉴캡틴'
    37. '월드컵 예선 최다골' 박지성, 대표팀 주장 진면목 재확인”, 《마이데일리》, 2009년 6월 17일 작성. 2009년 6월 17일 확인.
    38. Player Profile - Park: In The Words Of Others
    39. 박지성, '축구팬들이 가장 기대하는 선수'로 뽑혀
    40. 박지성, 포털사이트 조사 ‘2005년 최다 검색어 1위’
    41. 박지성 'Daum K3리그 2008' 개막에 축하메시지 전해
    42. 불자대상 수상자에 박영석.박지성.김윤규씨
    43. '역시, 박지성'...아시아 첫 월드컵 3회 연속골
    44. 월드컵 최다 연속골은? '축구황제' 펠레
    45. 캡틴 박지성 “한국축구 세계와 맞서려면 병역 혜택 절실” - 일간스포츠
    46. SSTV
    47. Includes other competitive competitions, including the FA 커뮤니티 실드, UEFA 슈퍼컵, 인터컨티넨탈컵, FIFA 클럽 월드컵
    48. Endlar, Andrew. Park Ji-Sung. Manchester United the Official Statistics Website. publisher=StretfordEnd.co.uk. 2010년 12월 14일에 확인. “Goora&Real”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박지성
(朴智星)
개인 정보
로마자 표기 Park Ji-Sung
출생일 1981년 2월 25일 (29)
출생지 대한민국 전라남도 고흥군
178cm
포지션 윙어 / 공격형 미드필더
클럽 정보
현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번호 13
청소년 클럽
1999-2000 명지대학교
클럽1
연도 클럽 출장수 (골)
2000-2003
2003-2005
2005-
교토 퍼플 상가
PSV 에인트호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76 (11)
64 (13)
112 (16)
국가대표팀2
1999-2004
2000-
대한민국 U-23
대한민국
20 (3)
94 (13)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2010년 11월 6일 기준입니다.
2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10년 8월 11일 기준입니다.

박지성(朴智星, 1981년 2월 25일 ~ )은 대한민국축구 선수이다.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출생하였다. 현재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소속으로 뛰고 있으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고 있다.

목차

[숨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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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인 생활]

청소년 생활

수원공업고등학교 시절

수원시 세류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여 6학년 때는 5회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할 정도로 축구에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어려서는 남들에 비해 체격이 왜소해서 아버지가 각종 영양식을 챙겨 먹였을 정도였고 (심지어 개구리를 잡아서 삶은 물을 먹기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심한 훈련이 성장에 차질을 가져올 까봐 수원공업고등학교 감독은 박지성에게 가벼운 훈련만 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명지대학교 시절 [편집]

이학종 감독의 추천으로 1999년 명지대학교 김희태 감독의 눈에 띄어 명지대학교로 진학했다. 이후 2000년 하계 올림픽 축구 대표팀과 연습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당시 올림픽 대표팀 허정무 감독에 의해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다.

선수 생활 [편집]

교토 퍼플 상가 [편집]

2000년명지대학교를 휴학하고 자신에게 스카웃 제의를 보낸 일본 J리그시미즈 에스펄스 대신 연봉 5000만 엔 (당시 약 5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과 주전급 대우를 보장한 교토 퍼플 상가에 진출했다.[2] 당시에는 황선홍 등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고참급 선수들이 높은 대우를 받으며 일본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박지성이 어린 나이에 당시 하위권이던 교토 퍼플 상가로 이적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후 3년간 그는 교토 퍼플 상가에서 당시 팀 동료이던 마쓰이 다이스케, 미우라 가즈요시 등과 함께 맹활약을 펼쳤다. 팀이 2부로 강등된 후에도 팀에 잔류하여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이끌었다. 2003년 1월 1일에는 일본FA컵 대회격인 일왕배 결승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맞아 0-1로 뒤지던 후반 7분 프리킥을 받아 헤딩으로 동점골을 성공시키면서 팀의 2-1 역전승을 도우면서, 교토 퍼플 상가가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는데 크게 기여했다.[3] 교토 퍼플 상가는 박지성을 잔류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그는 유럽 무대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PSV 에인트호번 [편집]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활약-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한 박지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계약기간 3년 6개월에 연봉 100만 달러라는 조건으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다.[4] 사실 새로운 나라로의 이적이 두려웠지만 도전정신으로 네덜란드로 떠나게 되었다. 2003년, 이적 초기에는 월드컵 이후 소속팀에서 무리한 출전으로 인한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들쭉날쭉한 플레이를 펼쳤다.[5]

이 때문에 팀 동료인 마르크 판 보멀이 박지성의 서툰 의사소통 능력과 부진한 활약에 비판을 표할 정도였고, 심지어는 홈팬들로부터도 야유를 받을 정도에 이르렀으며 (당시 PSV의 사령탑이던 거스 히딩크 감독도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그를 주로 원정 경기에만 투입하도록 배려하였다.) 이에 따라 플레이가 위축되는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그러나 이후 차차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점점 발군의 기량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팀내 주요 선수로 발돋움했다.

특히 윙어 아르연 로번과 골게터 마테야 케주만프리미어리그로 떠난[6] 04-05시즌, 리그 3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네덜란드 언론의 예상을 뒤집고 PSV 에인트호번에레디비시를 제패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또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입성함에 있어서 공격진의 핵심선수로서 활약하였다.[7][8] 당시 박지성이 PSV 에인트호번에서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하였는지는 다양한 증거들로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마르크 판 보멀은 지난 시즌 불만을 표시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인터뷰를 하였으며,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AS 모나코전과 8강 올랭피크 리옹전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프랑스 해설가들은 박지성의 활동반경과 위협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내내 찬탄을 보냈다.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AC 밀란과의 원정 1차전 0-2 패배 이후 실낱같은 희망만을 가지고 있던 PSV 에인트호번의 홈 2차전 예상에서 네덜란드의 축구 레전드 요한 크라위프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박지성의 발끝 일 것'이라고 평했고,[9]요한 크라위프의 말처럼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2차전 경기 초반 디다의 640분 무실점 기록을 종결짓는 선제골을 기록하며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골을 터뜨린 대한민국 선수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 PSV 에인트호번은 박지성의 선제골과 필립 코퀴의 2골을 포함 3-1로 승리하여, AC 밀란과 승점과 골득실 부분에서 모두 동률을 이루었으나, 원정 다득점원칙에 따라 결승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경기 내내 종횡무진 활약을 보였던 박지성은 외신들의 찬사를 받았고, 당시 박지성을 상대했던 선수인 젠나로 가투소는 박지성을 마크했던 일이 괴로운 기억이었음을 추억하는 내용의 에세이를 일본 축구잡지에 송고했으며, 시즌 종료 이후 박지성의 거취가 화두에 오르자 주장이었던 필립 코퀴는 박지성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내용의 칼럼을 제기하였다.

무엇보다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그렇게 박지성을 괴롭혔던 PSV 에인트호번 팬들의 야유가 열광적인 '위숭 빠르크' 송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환상적인 시즌을 보낸 박지성에게 들려온 소식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부터의 관심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편집]

2008년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 후의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2005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AC 밀란에 2연패를 당하며 탈락했다.[10][11] 두 경기 모두 0-1 패배로, AC 밀란의 두터운 수비벽을 뚫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PSV 에인트호번 소속이었던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4강 2차전 홈경기에서 불과 전반 9분만에 순간적인 돌파를 통해 선제골을 기록하였고, 이것을 주목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 영입을 결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박지성은 2005년 6월 22일 계약을 하고서,[12]2005년 7월 14일 입단식을 갖고 등번호 13번을 배정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공식 입단하였다.[13]2005년 7월 23일 홍콩에서 열린 홍콩 프로 선발팀과의 친선경기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입단 이후 첫 공식 경기를 가졌고,[14]7월 26일 중국에서 열린 베이징 현대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15]잉글랜드 무대에서는 2005년 8월 13일 에버턴 FC와의 프리미어리그 원정 경기에서 데뷔하였고,[16]12월 21일 버밍엄 시티 FC와의 풋볼 리그 컵 원정 경기에서 잉글랜드에서의 첫 골을 넣었다.[17]리그에서도 첫 골은 풀럼 FC전에서 골을 터뜨렸으나 6개월 후 풀럼이 자책골로 변경하였다.그리고 2006년 아스널 FC전에서 프리미어리그 첫 골을 뒤늦게 신고하였다.그 후 박지성은 아스날을 상대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였으며 웨인 루니와 함깨 맨유에서 아스날에 강한 선수로 지명되었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할 때, 큰 기대를 받았지만 상당수의 대한민국 축구 팬들은 박지성이 후보로 전락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첫 번째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스쿼드 로테이션의 한축을 담당했다.

박지성은 주로 오른쪽 윙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왼쪽 윙인 라이언 긱스와 번갈아가며 출전하였으며, 2006년 9월 10일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경기에서 얻은 부상으로 수술후[18] 회복에 성공해 12월 18일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경기에서 복귀했다.[19] 수술 후, 박지성은 우려와 달리 예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애스턴 빌라와의 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 찰튼전에서 1골, 볼튼전에서 2골(첫 멀티골) 2007년 3월 31일 블랙번 로버스 FC전에서 1골 1도움을 넣는 활약을 펼친 후,[20] 무릎 부상을 입어 선수생명의 연장을 위해 2007년 4월 28일 미국 콜로라도에서 리차드 스테드먼 박사의 지도 하에 수술을 받았고,[21][22] 재활을 모두 끝마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공식 한글 홈페이지와의 인터뷰에서 "복귀전에서 골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팀이 2006-07시즌에 우승함에 따라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았다.[23] (최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험자는 2001-02시즌 일본이나모토 준이치이다. 당시 이나모토 준이치아스널 FC 소속이었지만, 리그 경기의 4분의 1 이상 출전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족시키지 못해 메달을 받지 못했다. 둥팡줘도 같은 이유로 메달을 받지 못했다.)

2008년 3월 1일, 박지성은 풀럼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긴 재활 기간에서 돌아와 폴 스콜스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받아넣으며 2007-08시즌 첫 득점을 기록했다.[24] 하지만 부상 복귀 이후 3월 한달 간 꾸준한 선발 기회를 잡지 못했던 박지성은 국내에서의 출장 기회에 관한 논란[25]에도 불구하고 2008년 4월 2일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AS 로마와의 원정경기에 선발출장하여 후반 웨스 브라운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하며 웨인 루니의 골을 어시스트 했다.[26] 또한 며칠 후인 4월 6일, 그는 미들즈브러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카를로스 테베스와 교체되어 들어가 웨인 루니에게 결정적인 동점골 어시스트를 함으로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패배의 위기에서 구출하였다.[27]2008년 4월 9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다시 선발 출장한 박지성은, 엄청난 활동량을 보이며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28] 이로써 1-0(총합 3-0)으로 승리한 유나이티드는 4강에 진출하였고,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로 세 시즌 동안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는 기록을 이루어냈다(2004-05 PSV 에인트호번, 2006-07·2007-0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4월 23일4월 29일, FC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전에서 두 경기 모두 선발 출장하였고,[29][30]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합계 1-0으로 승리하여 결승전에 진출하였으나, 정작 박지성은 5월 21일 첼시 FC와의 맞대결로 결정된 결승전에서 갑작스런 명단 제외로 출전하지 못하였다. 그 경기에서는 박지성을 대신하여 측면 미드필더로 출장한 오언 하그리브스가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맨유와 첼시는 전반과 후반, 연장까지 1-1로 팽팽한 맞대결을 펼쳤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맨유가 첼시를 6-5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31]

2008-09 시즌 초반에는 나오지 못하다가 2008년 9월 21일 첼시 FC와의 원정 경기에 시즌 첫 출장했고, 이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이자 팀의 선제골을 기록하였다.[32] 그리고 2009년 3월 7일 풀럼 FC와의 FA컵 원정경기에서 후반 36분 팀의 네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긴 침묵을 깼다. 5월 2일에는 미들즈브러 FC와의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후반 6분 팀의 두 번째 골을, 5월 5일에는 아스널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 준결승 2차전 원정경기에서 전반 8분만에 선제골을 성공시키며 두 경기 연속 골을 터뜨렸다. 이 경기에서 그는 후반 16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성공시킨 팀의 세 번째 골에도 관여하고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을 하며 90분 풀타임을 소화하였다. 이로써 그는 최근 불거졌던 골 결정력 부족 논란을 불식시켰다. 2009년 5월 16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벌어진 아스널과의 리그 37라운드에서 후반에 교체출장하여 골네트에 공을 꽂았으나 아쉽게도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이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부 리그 통산 18회,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11회 우승을 차지하였다. 2009년 5월 27일 벌어진 FC 바르셀로나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시즌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여 66분간 활약함으로써, 이 대회 결승전에 출전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맨유는 이 경기에서 0-2로 완패하여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33]

2010년 8월 풀럼과의 경기에서의 박지성

2009-2010 시즌에는 무릎부상으로 초반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하였고 복귀전는 베식타스와의 챔피언스리그 5차전에서 치렀다. 리그 첫골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스날과의 라이벌전에서 터졌다.또한 아스톤 빌라와의 리그컵 결승에 선발로 출전하여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와의 합동 플레이로 여러번 팀의 공격을 주도하고 골대를 때리는 슛을 날리는 등 맹활약 하여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었고 축구 전문가들도 박지성에게 높은 평점을 주기도 하였다.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경기에서는 통산 3호골을 터뜨렸고 팀은 4대0승리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박지성은 이날 경기에서 상대 핵심선수인 피를로를 완벽봉쇄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고 3일 후에 열린 풀럼 FC와의 리그 경기에서는 후반 교체 투입되어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골을 어시스트했다.그 다음주에 열린 리버풀 FC와의 라이벌전에서는 후반전에 대런 플레처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골을 성공시키며 리버풀을 무너뜨렸고 시즌 2호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리그 최종전인 스토크 시티 FC 와의 경기에서 시즌 3번째 골이자 팀의 마지막 득점을 올렸다.

2010-2011 시즌에서는 9월 22일 스컨도프 유나이티드와의 칼링컵 3라운드에서는 시즌 1호골을 터트렸고 10월 26일에는 울버햄튼 원더러스과의 다음 라운드에서 칼링컵 2경기 연속골을 기록해 시즌 2호골을 기록했고, 11월 6일 11라운드 울버햄튼 원더러스와의 홈경기 에서는 선제골과 종료직전 결승골을 박지성 자신이 모두 기록하며 최고의 경기를 치뤘다.

국가 대표 생활 [편집]

2000년 4월 5일, 2000년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 라오스와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2002년 FIFA 월드컵2006년 FIFA 월드컵국가대표로 출전하였다. 특히, 2002년 FIFA 월드컵에는 주전 미드필더로 맹활약하여 대표팀 4강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4년 하계 올림픽 당시에 박지성 차출을 놓고 대한축구협회PSV 에인트호번 사이에 갈등을 빚었고, 결국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2004년 AFC 아시안컵에 차출하기로 결정하였다.[34]

2002년 월드컵 직전의 잉글랜드프랑스와의 친선경기,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3차전 포르투갈전,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2차전 프랑스전에서 골을 넣으며, 강팀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2002년 6월 14일, 인천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3차전에서 예술적인 골을 성공시켜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이 골은 축구팬들이 뽑은 '2002년 최고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35]

2008년 10월, 김남일이 경고 누적으로 명단에서 제외되자 국가대표팀 주장 자리를 이어받았고, 이후 계속 주장을 맡고 있다.[36]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5골로 대한민국 팀의 최다 득점자가 되었으며, 대표팀이 무패로 본선 직행하는 데 기여하였다.[37]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박지성은 1차전 상대인 그리스를 상대로 이정수의 골에 이어 후반 7분 개인 드리블에 의한 두번째 골을 넣었다.

경기 스타일 [편집]

박지성의 주 포지션은 윙어로, 보통 측면 미드필더 또는 측면 공격수로 뛴다. 양발을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좌측과 우측 어느 쪽에서나 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넓은 행동 반경과 많은 활동량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스태미너가 가장 큰 특징으로, '산소 탱크', '세 개의 폐'(three-lung Park)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열심히 뛰는 선수로 인정받는다. 패싱 능력과 스피드도 수준급이며, 공을 다투는 경합 상황에서 집중력과 근성이 돋보인다. 특히 공간 활용 능력과 영리한 움직임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이 점을 수 차례 칭찬한 바 있다. 또한 박지성은 윙어임에도 불구하고 공격력 뿐만 아니라 수비적인 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며 '수비형 윙어'라는 새로운 포지션의 장르를 개척한 다재다능한 면모까지 보이고 있다. (일례로 2009-10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볼프스부르크전에서는 소속팀 수비진의 붕괴로 잠시 측면 수비수로 뛰기도 하였다.) [38][39] 공격 전개시에는 자신이 직접 볼을 처리하기보단 보다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를 활용하는 팀 플레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팀의 승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기여한다. 또한 2009-10 시즌 중반이 지나면서 팀의 측면 자원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중앙 미드필더로도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AC 밀란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2차전에는 중원에 배치되어 상대 공격의 핵인 안드레아 피를로를 철저히 봉쇄했으며 리그에서는 리버풀 FC과의 홈경기에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장하여 결승골을 넣는 등 뛰어난 전술적 이해력도 보였다.

그 외

  • 2002년 아시안 게임 당시에는 '축구팬들이 가장 기대하는 선수'에 선정되기도 하였다.[40]
  •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하여 활약하자, '2005년 포털사이트 최다 검색어 1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41]
  • 2008년 창설된 지 2년이 된 K3 리그가 개막하자,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42]
  • 종교는 불교이다
  •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월드컵 3회 연속골을 기록했다.[44] 역대 월드컵 최다 연속골은 '축구황제' 펠레이다. 펠레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부터 은퇴 전 마지막 월드컵이었던 1970년 멕시코 월드컵까지 4개 대회 연속골을 기록했다.[45]
  • 카를로스 테베스와 절친한 친구인 것을 포함하여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과 깊은 인연이 있다. 리오넬 메시는 좋은 라이벌로서, 다른 몇몇 선수들도 한때 같은 팀 동료서 인연이 있다.
  • 2010년, 대한민국이 그리스전에서 승리하자 축구팬들은 대한민국 에이스를 통틀어 양박쌍용(兩朴雙龍)이라는 별명을 만들어줬다. 양박은 리더(2010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박지성과 박주영, 쌍용은 기성용이청용이다. 그리고 그리스전 때 들어오는 공마다 선방한 모습을 보여준 정성룡도 가세해서 양박삼룡(兩朴三龍)으로 재개되었다.
  • 박지성 역시 징병제가 모든 분야에 대해 방해요소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꾸준히 성적을 올리고 강팀들과 거리를 좁히려면 병역혜택은 당연히 필요하다."라고 말했다.[46]
  • 박지성은 일본의 배구선수 기무라 사오리와 열애설이 생기자 "나(178cm)보다 키가 큰(184cm) 모양인데 나는 나보다 키가 큰 여자는 사귈 생각이 없다."라고 말하며 열애설을 부인했다.

별명

활동량이 넓고 경기장 전체를 폭넓게 뛰어도 체력이 남는 강철 체력을 소유했다는 의미로 '산소 탱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휘날리는 머리와 묘한 대조를 이루는 여드름 자국과 시골 사람 같은 외모로 인하여 '고질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 이후, 팀 동료들이 박지성에게 '지(Ji)'라는 애칭을 붙여주기도 하였다. 또 경기장 어디든지 순식간에 나타나 공을 뺏는 모습을 두고 그의 소속팀 동료 파트리스 에브라는 '유령'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최근 미드필드 중원에서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센트럴 팍(Central Park)'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박지성, 파트리스 에브라, 카를로스 테베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세사람의 친분은 아주 유명하다.

주요 미디어 출연 및 저서 발간 [편집]

방송 출연
  • KBS여유만만 - 피와 땀으로 얼룩진 눈물 겨운 가족 사랑》 (2009.07.30)
  • MBCMBC스페셜 -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 (2009.04.19)
서적 - 자서전 발간
책 이름 출시일 페이지 판형 출판사 국제 표준 도서 번호 비고
나를 버리다 - 더큰 나를 위해 2010년 5월 6일 268쪽 A5 중앙북스 (중앙일보 출판법인) ISBN 9788927800309
멈추지 않는 도전 2006년 3월 8일 250쪽 A5 랜덤하우스코리아 ISBN 895986529X
꿈을 향해 뛰어라 ([멈추지 않는 도전]의 어린이 판) 2008년 1월 16일 1권 188쪽 / 2권 181쪽 / 3권 192쪽 A5 랜덤하우스코리아 ISBN 9788945125163 어린이/아동
그림은 만화가 전세훈 화백
관련 서적
  • 《박지성 휘젓고 박주영 쏜다》, 김화성 지음, 동아일보사, 2006.3.
  • 《도전! 슈퍼코리언 박지성》, SBS 프로덕션 편집부 지음, 주니어중앙, 2008.2.
  • 《프리미어리그와 사랑에 빠지다》, 최보윤 지음, 소담출판사, 2008.1.
  • 《퍼감독 루니좀 말려줘 (세계 최강 맨유군단 시끌벅적 한국원정기)》, 김석현 지음, 일간스포츠, 2009.9.
  • 《가슴으로 꾼 꿈이 행복한 미래를 만든다》, 박성종 (박지성 선수 아버지) 지음, 서울문화사, 2010.6.

경기 기록 [편집]

클럽 시즌 리그 리그 컵 UEFA 경기 기타[48] 합계
경기 경기 경기 경기 경기 경기
교토 퍼플 상가 2000 13 1 1 0 2 0 16 1
2001 38 3 1 0 1 0 40 3
2002 25 7 4 1 0 0 29 8
합계 76 11 6 1 3 0 85 12
PSV 에인트호번 2002-03 8 0 0 0 0 0 0 0 8 0
2003-04 28 6 1 0 10 0 1 0 40 6
2004-05 28 7 3 2 13 2 0 0 44 11
합계 64 13 4 2 23 2 1 0 92 1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5-06 34 1 2 0 3 1 6 0 0 0 45 2
2006-07 14 5 5 0 0 0 1 0 0 0 20 5
2007-08 12 1 2 0 0 0 4 0 0 0 18 1
2008-09 25 2 3 1 1 0 9 1 2 0 40 4
2009-10 17 3 0 0 2 0 6 1 1 0 26 4
2010-11 10 4 0 0 2 2 5 0 1 0 18 6
합계 112 16 12 1 8 3 31 2 4 0 167 22
경력 합계 252 40 22 4 11 3 54 4 5 0 344 51

최신 업데이트 : 2010년 12월 21일 (GMT+9)[49]

국가대표팀 득점 [편집]

스코어와 결과 리스트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득점을 먼저 기록하였다. (ex:스코어 1-0일 때 1이 대한민국)

# 일시 장소 상대 국가 스코어 결과 매치 형식
1 2000-06-07 이란, 테헤란 마케도니아 공화국 2-0 2-1 친선 경기
2 2002-05-21 대한민국, 서귀포 잉글랜드 1-1 1-1 친선 경기
3 2002-05-26 대한민국, 수원 프랑스 1-1 2-3 친선 경기
4 2002-06-14 대한민국, 인천 포르투갈 1-0 1-0 2002 FIFA 월드컵
5 2005-06-06 쿠웨이트, 쿠웨이트 시티 쿠웨이트 4-0 4-0 2006 FIFA 월드컵 최종 예선
6 2006-06-18 독일, 라이프치히 프랑스 1-1 1-1 2006 FIFA 월드컵
7 2008-02-06 대한민국, 서울 투르크메니스탄 3-0 4-0 2010 FIFA 월드컵 3차 예선
8 2008-05-31 대한민국, 서울 요르단 1-0 2-2 2010 FIFA 월드컵 3차 예선
9 2008-10-15 대한민국, 서울 아랍에미리트 2-0 4-1 2010 FIFA 월드컵 최종 예선
10 2009-02-11 이란, 테헤란 이란 1-1 1-1 2010 FIFA 월드컵 최종 예선
11 2009-06-17 대한민국, 서울 이란 1-1 1-1 2010 FIFA 월드컵 최종 예선
12 2010-05-24 일본, 사이타마 일본 1-0 2-0 친선 경기
13 2010-06-12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트 엘리자베스 그리스 2-0 2-0 2010 FIFA 월드컵

경력 [편집]

선수 경력 [편집]

국가 대표 경력 [편집]

수상 경력 [편집]

개인 [편집]


클럽 [편집]

교토 퍼플 상가
PSV 에인트호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국가 대표딤

대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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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에대해서 ..뭐 혈액형,신체,생일 막 이런거용 혈액형 : O형 키 : 175cm 출생 : 1981년 3월 30일 팀 : 교토퍼플상가(2000~2003) -> psv 에인트호번(2003~2005) -> 맨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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