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질이 순박하고 온유한 충청도 사람들은 식생활 또한 검서한 편이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음식 차림 역시 호화롭지 않고 꾸밈이 없습니다.
충남 지역 음식은 수산물이 풍부하고 충북지역 음식은 내륙에 위치하여 생선요리, 젓갈이 고작이라고
합니다.
산과 들이 많아서 향기로운 산채와 버섯등은 그 맛이 뛰어나다고 하고,
백마강의 웅어회, 공주의 장국밥, 간월도의 어리굴젓, 게적, 소라젓, 등이 유명하고
호박죽과 호박고지, 호박범벅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뱅이라고 하는 민물새우와 싱싱한 무를 곁들어 만들어낸 구수한 무지짐이를 즐겨 먹습니다.
대표적인 충청도 음식은
콩나물밥 . 녹두죽, 고추젓, 굴냉국, 홍어어시육 , 공주장국밥, 호박지 , 칼국수 , 호박범벅, 청국장, 김자반, 아욱국, 늙은 호박나물, 호박고지 , 말린 묵 볶음, 모시조개 냉이국, 미꾸라지 회 , 시래기국 , 콩국, 가죽나물, 청포묵국, 콩김치국, 호박고지적, 웅허회 , 쑥범벅, 충주냉장탕 등이 있습니다.
(충청북도의 자랑거리)
1.큰바위얼굴 조각공원
주소 충북 음성군 생극면
미국 러시모어 국립공원의 큰바위 얼굴에 얽힌 이야기를 모르는 이는 없을 줄 안다. 이와 똑같은 큰바위 얼굴 조각공원이 음성에 있다. 그것도 개개 석상의 규모는 미국의 ‘큰바위 얼굴’에 못 미칠 뿐 개수면에서는 훨씬 더 많다. 여기에 행정구역이 음성일 뿐 일죽에서 가까워 수도권에서도 하루나들이 코스로도 충분하다.
일죽에서 생극을 지나 음성이나 진천으로 가다 보면 길가에 늘어선 몇몇 큰 얼굴 조각을 보게 된다. 신기한 마음으로 가다보면 관성주유소 바로 앞에 큰바위얼굴 조각공원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내부에는 높이 3.5m, 개당 무게가 30t에 달하는 화강암으로 만든 전 세계 유명인 얼굴조각이 1,400여개나 전시돼 있다.
이 공원을 조성한 인물은 음성정신병원·현대정신병원의 정근희 이사장. 1991년부터 병원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기 시작해 지금껏 1400점이 넘는 대형 조각을 만들어 냈다. 즉, 큰바위 얼굴공원은 현대정신병원내의 테마 공원인 셈이다.
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불국사의 다보탑이 서 있고, 그 뒤로 성철스님의 얼굴조각상이 근엄한 표정 그대로 서 있다. 매표소 뒤쪽을 돌아보면 세계 4대 성인들과 제자들의 모습이 입상형태로 서 있고, 성철스님앞으로 죽 늘어선 세계종교지도자들의 석상이 햇빛이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다.
약간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세계 경제인들이 줄지어 있고 왼쪽으로는 전세계의 유명 정치인들의 얼굴 상들이 사열하듯 줄지어 있다. 아래로 넓은 광장의 위쪽에는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과 고종황제,명성황후의 석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초대대통령이었던 이승만에서부터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까지 다양한 표정의 석상들이 인상적이다.
대통령들의 석상들 아래쪽으로 세계 여성지도자들의 얼굴들이 전시되어 있고,이들을 죽 돌아나가면 독립운동가들과 세종대왕상이 서 있다.
이들 조각상들을 돌아보고 있노라면, 웃음과 미소가 절로 나온다. 주름살 잡힌 위인들의 표정들이 너무 생생해 옛 모습이 그립기도 하고, 어떤 조각상들은 다소 과장된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게도 한다. 유명한 이론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의 일그러진 얼굴은 말을 뱉을 듯하지만 전신상 형태로 제작된 ‘젊음과 반항의 표상’ 제임스 딘은 아랫배가 약간 나와 있어 의외기도 하듯이 말이다.
이들 조각공원에 전시된 인물들은 사회적인 위상과 봉사정신, 업적, 일류애 등을 고려해서 선정했다고 한다.
2.죽령폭포
주소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옛부터 서울과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를 연결하는 요충지로 이 일대는 대나무가 무성하여 죽령이라고 했으며, 내리막 길 30리, 오르막 길 30리, 아흔 아홉 구비의 험하고 힘든 고개로 유명하며 죽령산신당에서는 지금도 그 옛날 도둑잡던 다자구 할머니의 "다자구야 들자구야" 외침이 들리는 듯 하다.
소백산에서 발원된 벽계수가 죽령계곡을 휘감고 돌아 아홉척의 높이 에서 떨어지는 죽령폭포는 마치 은빛의 실로 수를 놓은 듯한 신비경을 자아낸다. 청정계곡이 주변의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3.청풍문화재단지
주소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
충주 다목적댐 건설을 계기로 수몰지역내의 산재되어 있는 문화유산을 복원시킨 곳이 바로 '청풍문화재단지'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곳이며, 지금은 이 곳이 확대 개발되어 제천시에서 가장 대표적인 문화관광지로 발돋음했다.
그리고 드라마 '왕건'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며, 금수산의 등산로 개발, 인공암장설치, 번지점프시설등은 체험할 수 있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보물 2점(한벽루, 석조여래입상), 지방유형문화재 9점(팔영루, 금남루, 금병헌, 응청각, 청풍향교, 고가4동), 지석묘, 문인석, 비석등 42점과 생활유물 2천여점이 보관되어 있으며, 명실상부한 옛 남한강 상류의 화려했던 문화의 산실로 자리잡고 있다.
이곳 문화재는 직접 생활하거나 사용하던 것으로써 타 지역과 차별화되고 있으며 놀거리, 볼거리, 먹거리장을 보완중에 있다.
또한 청풍호반은 충주 다목적댐 건설로 생성된 호수로 뱃길 130리중 볼거리가 가장 많고 풍광이 뛰어난 곳으로 내륙의 바다라고 한다.
작은민속촌 청풍문화재단지를 정점으로 해서 주위로 봉황이 호수위를 나르는 형상의 비봉산, 어머니 품속과 같이 편안하고 포근함을 느끼게하는 금수산을 뒷 배경으로한 청풍호반은 가히 절경이라할 수 있다.
4.고수동굴
주소 충북 단양군 단양읍 고수리 130
종유석 동굴은 태고의 역사를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그중에서도 단양의 고수동굴은 역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종유석 동굴로 칭해진다. 주굴과 지굴의 길이가 1700미터에 이르는 이 동굴은 천연기념물 제 256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매표소에서 계단을 올라 굴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데, 1년 평균기온이 15도 정도다.
입구에서 중간까지는 다소 지붕이 높고 벽면에 형성된 다양한 종유석과 신비한 형상의 바위들을 보게 된다. 도담삼봉 바위와 네명의 딸바위, 나신의 미녀가 하늘을 날아 오르는 형상의 바위, 웅장한 로마의 궁전을 연상케 하는 바위등이 차례로 펼쳐진다. 동굴의 중간쯤으로 가면서 곳곳에 작은 통로가 나타나고,공중에 매달린 종유석과 석순군들이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수십개의 종유석이 갖가지 형상을 보여주고 있는 두 개의 만물상이 최고의 절경. 다음으로 호랑이가 사자가 싸우다가 사자의 아랫턱이 잘려져 나간 형상의 사자바위등이 신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고수동굴 최고의 자랑거리인 동양 최대의 석순이 있다. 황금주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높이 8m의 종유석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또한 지붕에 붙은 끝이 단칼에 베어낸 듯 경사지게 잘려져 나간 종유석은 과학자들도 여태 풀지 못한 수수께끼다.
이뿐아니라 동굴속에는 곱등이,노래기, 톡톡이, 장님엽새우, 염주다슬기등 약 25종의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봄철에는 소백산 철쭉, 여름에는 계곡, 가을철에는 단풍등산, 겨울에는 소백산 설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주위 관광을 접목시켜 입지 조건이 좋은 편 이다.
단양에서 목장으로 오는 길목에는 단양8경의 하나인 사인암이 자리잡고 있고, 유황 온천 탕도 인근에 있어 관광과 온천욕을 함께 즐기면서, 목장 에서 오붓하게 여가를 보낼 수가 있어 일석이조이다.
5.충주호
주소 충북 충주시 동량면
충주호는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사이의 계곡을 막아 만든 다목적호수로 우리나라 호수 가운데 가장 크고 깨끗한 호수입니다. 월악산, 송계계곡, 청풍문화재단지, 단양 8경, 수안보온천 등 수많은 관광자원들이 주변에 펼쳐져 있으며, 국제적인 관광지로 외국인을 포함,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동량면 하천리에 위치한 충주호리조트는 호반관광지로 축구장, 배구장, 족구장, 서바이벌장, 퍼터골프장, 수영장 등의 운동시설 및 오락시설이 고루 갖추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충주호와 연계된 수상 스포츠 시설이 겸비되어 있어 전천후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6.충민사
주소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57
충민사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 12호로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의 주장 충무공 김시민과 문숙공 김제갑의 위패를 봉인하고 제향하는 사당이다. 김시민(1554~1592)의 자는 면오, 본관은 안동으로 선조11년(1578년) 무과에 급제하고 선조 24년(1591년) 진주 판관이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진주목사로 사천, 고성, 진해에서 적을 격파하고, 영남 우도병마절도사에 올았다. 그 후 진주성 싸움에서 적을 격퇴하다가 전사하였다.
선조37년(1604년) 선무공신 2등에 추록되고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김제갑(1525~1592)의 자는 순초, 호는 의재, 본관은 안동으로 명종8년(1553)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선조 14년 충청관찰사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원주목사로 관군과 의병을 이끌고 싸우다 전사하였고 영의정을 추증받았다.
김시민은 진주 충렬사에서 제향되었으나 고종 3년에 훼철되어 김제갑의 충렬사에 합사하였는데 1976년 묘소를 이곳에 옮기고 충민사를 세웠다.
충민사는 능촌리 야산자락에 위치하며, 입구의 안내판을 지나 석조계단을 오르면 앞에서 부터 자연경사를 따라 외삼문·내삼문·사당이 일렬로 서 있다. 바깥 마당에는 김시민장군신도비와 박종화가 짓고 이상복이 쓴 김시민장군유적정화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효충문이라 불리는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올린 평삼문이고 선무문이라 불리는 내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맞배지붕을 올린 솟을삼문이다. 본 건물인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처마 밑에 ‘충민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7.신륵사
주소 충북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8
월악산에는 영봉을 중심으로 삼각점을 이루며 덕주사와 보덕암 그리고 신륵사 등 세 사찰이 있는데 이중 신륵사는 동쪽 지점의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신륵사는 제천지역의 사찰 중 가장 빠른 진평왕 4년(582년)에 아도화상이 대덕사란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뒤에 문무왕 때에 원효대사가, 고려말 공민왕때 무학대사가 각각 중창, 중건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신라 문무왕때의 일이었다. 한 고승이 수경대에서 백일기도를 한 후 득도를 하고 절에 내려와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절 아래와 월악 일대에 갑자기 괴질이 돌았다. 손을 쓸 방도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다급하게 절로 찾아왔는데, 고승은 한 걸음에 수경대에 올라가 병풍 바위에 숨어있던 귀신을 잡아 코를 꿰고는 항복을 받아냈다. 그러자 마을에 퍼졌던 괴질이 씻은 듯이 없어졌는데, 이때부터 이 절을 신륵사라고 불게 되었다고 한다.
극락전 외벽의 사명대사일본행지도 이 벽화에는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강화정사로 일본을 상륙했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신륵사는 보물 1296호인 삼층석탑이 있으며, 극락전, 국사당, 산신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극락전은 내부 단청이 화려하고, 벽과 천장에 그려져 있는 불화로 유명하다.
8.충렬사
주소 충북 충주시 단월동 385-1
사적 제 189호인 충렬사는 조선시대 인조 때의 명장 임경업(1594~1646)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숙종 23년(1697)에 건립하고, 영조 3년에는 지방유생들이 조정에 건의하여 영조대왕이 충렬사란 사액을 내리게되었고, 관리를 보내어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으며, 그 후 1978년에 성역화 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충렬사로부터 3.5km지점인 충주시 풍동에는 충청북도기념물 제67호로 지정되어 있는 임경업 장군의 묘역이 약 200평 정도 규모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9.상당산성
주소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적 제212호인 상당산성은 원형이 잘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석성으로12.6ha의 면적과, 성 둘레 4,400m, 높이 4.7m로 일정치 않은 석재로 거의 수직에 가까운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부는 토사(土砂)로 축조한 22만평의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상당산성의 축조방식은 삼국시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상당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2개의 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고, 통일신라 때 행정구역인 서원소경이 청주에 설치되는데 이때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서현(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
지금의 모습은 임진왜란 중인 선조 29년(1596)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부터 영조 23년(1747)까지 대대적으로 개축되었다. 이 때 성벽 축조는 물론 성내에 구룡사 및 남악사와 장대사의 3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으며, 관아건물과 장대·포루·창고 등이 완성되어 면모를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보수되었다. 현재 상당산성은 동문(진동문)·서문(미호문)·남문(공남문)의 3개문과 동암문·서암문의 2개암문, 치성 3개소, 수구 3개소가 남아있다. 진남문·미호문·공남문 현판은 의학박사이자 서예가이며 화가이기도 한 서봉 김사달 박사의 글씨이다.
10.삼년산성
주소 충북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사적 제235호로 지정된 신라시대 석성이다. 신라 자비마립간 13년(470) 축성을 시작한지 3년만에 완성하여 삼년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견고함이나 역사성, 위치적인 가치등등에서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축산성으로 평가된다. 작게는 8미터에서 넓게는 10미터에 이르는 폭에 13미터의 높이로 약 1.7㎞ 가량의 길이로 쌓여있다. 이 성에는 서문·북문·동문터가 있고, 특히 성벽의 군데군데에 곡성이 있어 우리 나라 고대 축성법 연구에 매우 중요시 되고 있다. 성내에는 아미지란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작은 흔적만 남아있다. 아미지 바로 옆의 암벽에는 아미지의 위치를 알려주는 옥필, 유사암, 아미지 등의 글씨가 음각되어 있는데 김생의 필체로 전해오고 있다.
삼년산성이 있는 곳은 높이 500미터 정도의 야산이지만 성벽 부근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천혜의 요새였음을 금방 알 수 있게 한다. 성루에 서면 보은땅에서부터 청주에 이르는 들녘에 한눈에 들어온다. 그만큼 성이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을 알려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삼년산성은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견제하면서 서북지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전초기지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삼국통일 전쟁때 태종 무열왕이 당나라 사신 왕문도를 이곳에서 맞이했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후 삼국때는 왕건이 후백제와 이곳에서 전투를 했는데 결코 이기지 못했다고.....
이와 더불어 삼년산성에는 재미있는 전설하나가 전해진다.
<옛날 보은땅 산속에 천하장사 오누이가 살고 있었는데, 항상 힘자랑 싸움을 하였단다. 이를 보다 못한 어머니가 오누이에게 시합을 시켜 이긴 쪽이 진쪽의 목을 베기로 했다. 아들은 나막신에 소를 끌고 서울을 다녀오고, 딸은 산을 빙둘러 석성을 쌓기로 한 시합이었다. 하루 해가 저물기 전에 딸은 이미 성을 다 쌓고 문짝만 달면 되었다. 아들이 질것을 걱정한 어미는 딸을 꾀어 문을 달지 못하도록 팥죽을 먹이며 시간을 지체시켰다. 팥죽을 먹는 사이 아들이 해가 뉘엿해질 즈음 서울에서 돌아왔다. 결국 아들이 이기게 되었다. 그리고 아들의 도끼날아래 딸은 죽고 산성만 남았다. >
11.속리산국립공원
주소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리 ...
1970년 3월 국립공원 지정한국팔경 중의 하나인 속리산은 태백산맥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 나오는 소백산맥 줄기 가운데 위치하여 충북 보은군, 괴산군, 경북 상주군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해발 1057m인 속리산은 화강암을 기반으로 변성퇴적암이 섞여 있어 화강암 부분은 날카롭게 솟아오르고 변성퇴적암 부분은 깊게 패여 높고 깊은 봉우리와 계곡은 가히 절경을 이루고 있어 광명산, 미지산, 소금강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화강암의 기봉과 산 전체를 뒤덮은 울창한 산림은 천년고찰 법주사와 잘 조화되어 승경을 이루고 있다.
최고봉인 천황봉을 중심으로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등 8봉과 문장대, 입석대, 신선대 등 8대 그리고 8석문이 있다. 은폭동계곡, 용유동계곡, 쌍룡폭포, 오송폭포, 용화온천이 있으며 정이품송(正二品松 천연기념물 제103호), 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207호) 등 672종의 식물과 까막딱다구리(천연기념물 제242호),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제328호) 등 희귀 동물을 포함하여 344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자원의 보고이기도 한다.
12.월악산국립공원
주소 충북 제천시 한수면
월악산국립공원은 1984년 12월 31일에 우리나라 20개 국립공원 중 17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행정구역상으로 제천시, 충주시, 단양군, 문경시 4개 시·군에 걸쳐 있으며 북으로 충주호반이 월악산을 휘감고, 동으로 단양8경과 소백산국립공원, 남으로 문경새재와 속리산국립공원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둘러싸여져 있다 월악산 영봉은 국사봉이라고도 불리며 예로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져 '영봉'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해발 1,097m로 험준하며 가파르기로 이름나 있고 암벽높이가 150m높이에 둘레가 4km나 되는 거대한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공원 내에는 1,161m의 문수봉을 비롯하여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다는 하설산, 매두막, 대미산, 황장산 등의 1,000고지가 넘는 높은 산들이 산악군을 형성하며 벌재에서 마패봉에 이르는 백두대간이 뻗어있고 고봉준령들 사이로 많은 경관명소들을 지닌 송계계곡, 용하계곡, 선암계곡이 굽이쳐 흐르며 산악공원의 장관을 보여주고 있다.
주변에 충주호반을 비롯하여 문경새재도립공원과 제천의 의림지, 단양 적성의 선사유적지와 석회암지대에 형성된 많은 동굴들, 청풍의 문화재단지 등 문화·경관자원이 산재해 있고 수안보·문경·문강·단양유황온천이 30-4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을뿐 아니라 공원내에 미륵사지를 비롯하여 덕주사, 신륵사 등의 전통사찰과 마애불 미륵사지, 빈신사지사자석탑, 덕주산성, 신륵사 3층석탑 등 많은 문화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자연과 문화자원이 어우러진 빼어난 국립공원이다.
총면적 284.5㎢로서 2개도 4개 시군 9개읍면 34개리에 걸쳐 있는 산이며 해발 1,097m의 월악영봉을 비롯하여 150여m의 기암단애가 치솟아 맹호처럼 우뚝선 준험한 산세와 웅장함으로 예로부터 영산이라 불리어 왔고 깎아지른 산줄기는 끝을 모르고 내리뻗어 사이사이로 운치있게 자란 청송과 기묘한 암반길을 지나 주봉에 올라 보면 충주호의 잔잔한 호수와 산야풍치가 눈 아래 사위에 전개되고 사방으로 창공이 상쾌하여 집니다.
월악산은 산형지세가 천혜의 요새를 이루어 많은 애환을 품고 있으며 송계계곡에는 명성왕후의 별궁이 한때 있었던 곳이기도 하며 또한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마주 보고 망국의 한을 달래고 있다는 미륵사지의 석불입상과 덕주사 마애불상(보물 제406호)을 비롯하여 사자빈신사지석탑(보물 제94호), 덕주산성(지방기념물 제35호) 등 많은 문화재가 산재하고 있어 천년 명산유곡임을 증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월악산은 많은 문화재와 사찰을 보는 것 외에도 등산인들에게는 산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정상모습이 각각 다른 형태를 이뤄 더욱 인기가 있는데, 우선 북서쪽 20㎞ 거리인 충주시 달천 부근에서 계명산과 남산 사이로 바라 보이는 월악산 정상은 마치 쫑긋한 토끼귀를 보는 것 같고, 동쪽인 덕산 일원에서 올려다 보이는 정상은 쇠뿔과 같으며, 남쪽인 미륵리 방면에서는 수직절벽이 햇빛을 받아 마치 히말라야의 거봉을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또한 서쪽 산행 시발점인 송계리에서는 정상이 풍만한 여인의 젖가슴인양 아름다운 자태로 올려다 보입니다. 영봉을 동서로 8㎞의 송계계곡과 16㎞의 용하구곡(억수계곡)이 쌍벽을 이루면서 맑은 물과 넓은 암반, 그리고 천염수림이 잘 어울려 천하절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용하구곡(억수계곡)이 발원하는 문수봉과 대미산을 넘어 또 하나의 절경을 연출하니, 이것이 바로 단양팔경중 3경이 있어 길손을 끄는 12㎞의 선암계곡으로 충주호로 흘러 장회마을에서 옥순봉과 구담봉이 금수산과 마주하여 서로 자태를 뽐내며 충주호의 푸른물과 어울려 선경을 연출하니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하고 있습니다.
13.소백산국립공원
주소 충북 단양군 대강면
1987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국립공원의 중심이 되는 소백산 비로봉(1,440 m)은 북쪽으로 국망봉, 남쪽으로 민배기재와 연봉을 이루어 예로부터 태백산과 함께 신성시되는 산이다.
서쪽으로는 고위평탄면에 해당하는 비교적 반반한 고지가 펼쳐지고, 그 사이를 고수리 부근의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국망천이 흐르면서 어의실을 기점으로 하는 등산로를 이룬다. 동쪽은 비교적 경사가 급하며, 낙동강 상류의 지류인 죽계천의 수원이 되는데 이 계곡은 등산로로 이용된다. 비로봉에서 죽계천을 따라 내려가면 석륜광산이 있고, 이곳을 지나 더 내려가면 초암사가 있다. 석륜광산에서 북동쪽으로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계곡이 아름다운 골짜기가 나타나는데 이곳에는 석천폭포 ·성혈사 등의 명소가 있다. 이 골짜기에서는 산천어가 잡힌다.
비로봉에서 남서쪽으로는 4 km 가량 비교적 평탄한 고위평탄면이 나타나는데 이를 따라 내려가면 연화봉이 있고, 다시 4 km 가량 내려가면 제2연화봉에 이른다. 그 중간에 국립천문대가 있다. 이 산의 남쪽 약 4 km 거리에 죽령이 있으며 제2연화봉의 동쪽 비탈면에는 희방사 ·희방폭포 등이 있고, 더 내려가면 국도와 중앙선 철도의 희방사역이 있다. 소백산 부근에는 예로부터 산삼을 비롯한 약초가 많고 정상 일대는 주목이 군락을 이룬다.
(충청남도의 자랑거리)
1.봉선홍경사 갈기비
종 목 국보 제7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충남 천안시 성환읍 대홍리 320
시 대 고려시대
봉선홍경사는 고려 현종 12년(1021)에 창건된 절이다. 절이름 앞의 ‘봉선’은 불교의 교리를 전하고자 절을 짓기 시작한 고려 안종이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목숨을 다하자, 아들인 현종이 절을 완성한 후 아버지의 뜻을 받든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현재 절터에는 절의 창건에 관한 기록을 담은 이 갈비만이 남아 있다.
이 비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절을 세운 지 5년이 지난 고려 현종 17년(1026)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문은 ‘해동공자’로 불리던 고려시대 최고의 유학자 최충이 짓고, 백현례가 글씨를 썼다.
2.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종 목 국보 제8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80-2
시 대 통일신라
성주사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낭혜화상 무염의 탑비이다.
절터 서북쪽에 세워진 이 비는 거북 모습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그 위로 머릿돌을 얹은 모습으로, 받침돌이 심하게 부서진 채 흙에 묻혀 있던 것을 1974년에 해체·보수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탑비 중에서 가장 거대한 풍채를 자랑하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각솜씨가 작품속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어 통일신라시대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3.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종 목 국보 제9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379
시 대 백제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이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익산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4.수덕사 대웅전
종 목 국보 제49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20 수덕사
시 대 고려시대
수덕사는 덕숭산에 자리잡고 있는 절로, 절에 남겨진 기록에는 백제 후기 숭제법사가 처음 짓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다시 고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 다른 기록에는 백제 법왕 1년(599)에 지명법사가 짓고 원효가 다시 고쳤다고도 전한다.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5.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
종 목 국보 제58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충남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15 장곡사
시 대 통일신라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에 자리잡은 장곡사 상대웅전(보물 제162호) 안에 모셔져 있는 철불좌상으로, 나무로 된 광배를 배경으로 거대한 사각형의 돌로 만든 대좌 위에 높직하게 앉아 있다.
이 불상은 특이한 탑 모양의 대좌와 감실형의 구조, 그리고 단아한 철불양식을 보여주는 9세기 말 양식을 계승한 10세기 초의 뛰어난 불상으로 평가된다.
6.서산 마애삼존불상
종 목 국보 제84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2-10
시 대 백제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층암절벽에 거대한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이 마애불은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 만든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특히 이 곳은 백제 때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므로, 이 마애불은 당시의 활발했던 중국과의 문화교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7.정산 서정리 구층석탑
종 목 보물 제18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충남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 16
시 대 고려시대
공주에서 청양쪽으로 23㎞ 떨어진 벌판 가운데에 서 있는 탑으로, 부근에 고려시대 백곡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주위에 기와조각 등이 흩어져 있을 뿐 다른 유물들은 찾아볼 수 없다.
전체적으로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석탑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9층이나 되는 층수로 인해 형태가 매우 높아져 안정감이 부족하다. 각 부분의 세부적 조각양식이나 기단의 안상을 새긴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8.성주사지 오층석탑
종 목 보물 제19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시 대 통일신라
성주사는『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법왕 때 창건한 오합사가 이 절이었다고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대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번창시키니 왕이 ‘성주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나, 1층 몸돌 아래에 괴임돌을 따로 끼워둔 것은 고려석탑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형식이며,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각 층의 구성이 짜임새가 있으며 우아한 모습이다.
9.안국사지 석탑
종 목 보물 제101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충남 당진군 정미면 수당리 산102-1
시 대 고려시대
안국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이다. 안국사는 창건된 해가 분명하지 않고, 다만 절 안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통해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감을 잃고 있고 조각도 형식적이며, 1층 몸돌이 작아서 마치 기단과 지붕돌 사이에 끼워져 있는 듯 하여 우수한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고려 중기 석탑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탑이다.
10.보원사지 당간지주
종 목 보물 제103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50
시 대 통일신라
절에서는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양식과 조각수법이 화려하고 장식적이며 발달된 모습이어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주변의 유물들이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