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홍보

순창 홍보

작성일 2012.05.19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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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평가가 지역홍보지 만들기인데요

 

순창으로 정했습니다

 

 

순창의 산업같은것 좀 알려주세요

 

그리고 문화재나 특산물..

'설명'과 '사진' 부탁드려요 

에이포 한면 분량이라 많이는 필요없구요

 

 

내공걸겠습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순창의 산업)

 

농업


2010년 현재 농가인구가 군 전체인구의 약 45.0%를 차지하는 농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보이지만, 산간지대에 속하여 경지면적이 10,264㏊로 20.7%의 낮은 경지율을 보인다. 논이 7,517㏊, 밭은 2,747㏊이며, 농가당 경지규모는 1.6㏊로 비교적 영세한 편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의 식량작물과 고추·무·배추·감 등이며, 양잠도 한다. 특히 이 곳에서 생산되는 고추는 껍질이 두껍고 맛이 좋으며, 메주콩도 당분이 많아 이들을 원료로 한 고추장은 예로부터 유명하다. 북서부의 산지에서는 고랭지채소·약초·잎담배 등이 많이 재배된다. 복흥면에서는 인삼도 재배되고 있다.


양잠농가는 많이 감소했으나 동계면과 구림면을 중심으로 아직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감·배 등의 과수 재배면적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적성면과 팔덕면에서는 감, 금과면에서는 배가 많이 재배되고 있다.


축산업

 
한우·산양·닭·오리·꿀벌 등의 축산업도 활발하다. 구림면에서는 산양, 유등면·동계면에서는 닭, 구림면·쌍치면·동계면에서는 꿀벌이 많이 사육된다. 특히 풍산면에는 대규모 오리사육농장이 있다.


임업

 
산지가 많아 밤·죽순·산나물 등 임산물의 생산이 활발하다. 도내에서도 대표적인 밤의 주산지로 구림면이 유명하다.


공업

 
공업은 낙후했으나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소규모 가내수공업 형태의 고추장 제조공장이 설립되기 시작하여 군내의 전체 공장 가운데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주로 음식료품 관련 제품생산이 큰 비중을 차지하나 고령토 등의 비금속광물 생산도 조금씩 이루어진다. 순창읍에는 가남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현재 5개 업체가 입주하여 모두 가동중에 있다. 종사자수는 293명이며 2004년 기준으로 생산액은 1,012억원, 수출액은 383만3000에 달했다. 전통 수공업으로 예로부터 베개자수가 유명했지만 현재는 노동력 부족 등으로 그 명맥만 유지될 뿐이다.


상업
 

군내에는 4∼5개의 정기시장이 열린다. 그러나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광주상권의 영향이 강해져 그 기능이 위축되고 있다. 순창읍 남계리의 순창장이 1·6일, 동계면 현포리의 동계장이 2·7일, 복흥면 정산리의 복흥장과 구림면 운남리의 구림장이 3·8일에 개설된다. 이들 장에서는 배추·무와 밤·고추 등이 거래된다.


특산물로는 고추장·토종꿀·밤·은어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이 고장의 기후와 물맛, 품질 좋은 고추와 콩, 그리고 독특한 제조기술로 만들어지는 고추장은 조선시대 이래 진상품으로 유명하다. 강천산에서 생산되는 토종꿀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적성강의 은어 또한 이 고장의 명물로 알려져 있다.

 

(순창의 문화재)

 

1.충신리 석장승

 

종 목  중요민속문화재 제101호 
지 정 일 1979.01.23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966-7 
시 대 조선시대


충신리 대로변에 위치한 석장승이다. 순창읍에서 전주로 가는 길을 따라 북쪽으로 500m 정도 가면 길 오른쪽 논둑에 서 있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당산’혹은 ‘벅수’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상에 솟은 부분이 180㎝에 이르는 거대한 사각의 자연석인데, 그 한 면만을 다듬어 장승의 모습을 갖추었다. 머리는 왼쪽으로 경사지도록 깎여 있고, 일대의 다른 장승과는 달리 눈이 작게 조각되었다. 콧날은 세모난데 끝이 뭉툭하게 잘려져 있다. 장승의 코가 아들을 낳는데 효험이 있다는 민간신앙에 따라 아들 낳기를 원하는 마을 아낙들이 떼어간 듯하다. 이마와 양 볼에 혹이 불거져 나왔는데 이마에 새겨진 혹은 불상의 눈썹사이에 있는 백호를 연상시킨다. 웃는 듯한 입 사이로 내민 혀의 모습이 소박하고 친근감을 느끼게 해준다. 대개의 석장승이 몸체에 이름을 새겨 성을 드러내지만 충신리 장승에는 이런 내용이 새겨져 있지 않아 그 구분이 애매하지만 마을에서는 애교스런 생김새와는 달리 남장승으로 전하고 있다.

 

마을 수호신인 장승에게 지내는 동제는 매년 음력 정월보름전에 당산제를 올린 후에 지냈으나, 지금은 행해지지 않아 아쉬움을 준다. 순창읍에서 동쪽의 남원으로 가는 길에 다른 석장승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마을로 들어오는 각각의 길목에 석장승을 세웠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이 장승은 마을을 수호하고 부정한 것의 침입을 막기 위한 주민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는 민속신앙의 한 본보기라 할 수 있다.

 

2.남계리 석장승

 

종 목  중요민속문화재  제102호 
지 정 일 1979.01.23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966-7 
시 대 조선시대


순창읍 남계리에 홀로 서있는 돌장승이다. 원래는 한 쌍으로 세워졌던 듯 하나 지금은 하나만 남아 있다.

 

순창읍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의 개울둑을 타고 200m쯤 가면 돌장승이 서 있으며 마을의 평화와 주민들의 건강을 비는 뜻으로 세운 것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 북쪽의 기(氣)가 약해서 북풍을 막기 위한 숲을 만들고 근처에 마을을 지키기 위한 장승을 세운 것인데, 지금은 숲이 벌채되어 논으로 만들어진 상태라고 한다.

 

매우 큰 자연석을 사용하여 앞부분만 조각한 이 장승은 성인 남자의 키와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살찌고 무거운 모습이며 옆으로 찢어진 가는 눈, 가늘고 손상된 코에 입은 작으면서 장난스럽게 혀를 조금 내민 모습이다. 이마와 양 볼에 둥근 점을 튀어나오게 조각하였는데 주민들은 이 장승을 남장승이라고 하지만 볼의 혹이 연지 찍은 모습을 연상하게 해 여장승으로도 보여진다. 제주도의 돌하루방처럼 양손이 표현되었는데 손가락까지 뚜렷하다. 보통 장승이 얼굴 부분만 표현한 것과는 달리 손가락 등을 조각해서 사실적으로 나타낸 것이 특이하다.

 

이 장승은 조선시대의 것으로 만들어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토속적이고 민중적인 예술작품이라는 점에서 연구가치가 있는 민속자료이다.

 

3.순화리 삼층석탑 

 

종 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6호

지 정 일 1973.06.23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514-2 
시 대 고려시대


순창여자고등학교 교정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이다. 탑이 서 있던 터에서 백제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당시의 옛 절터로 추측된다. 원래 탑을 세울 당시에는 기단이 2층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아래층 기단이 땅속에 묻혀 위층 기단만 땅위로 드러나 있고, 그 위로 3층에 이르는 탑신이 쌓여 있다.

 

기단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기고,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에만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얇고 넓다란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느린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각 지붕돌 윗면 꼭대기에는 윗돌을 괴기 위한 높은 단을 두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이 보이고 있다.

 

옛 백제지역에 서 있는 고려 전기의 탑으로서, 백제 양식 특유의 우아한 곡선미가 느껴진다.

 

 

4.삼인대 


종 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

지 정 일 1973.06.23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산271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연산군 12년(1506) 훈구세력인 성희안과 박원종이 임사홍, 신수근 등과 결합하여 포악한 정치를 거듭하던 연산군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중종반정이 일어났다. 중종반정이 성공하자 공신들은 중종의 부인인 신씨를 역적의 딸이라 하여 왕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장경왕후 윤씨를 왕비로 맞이하였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군수인 김정과 담양부사 박상, 문안현감 유옥 등이 결의하여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난 단경왕후 신씨를 다시 왕비로 모시자는 상소를 올렸다. 이들은 관직에서 쫓겨날 것과 죽음을 각오하고 관직을 표시하는 도장(직인)을 소나무가지에 걸었다. 그 후 이곳에 비각을 세워 삼인대라 하였다.

 

 

5.순창객사

 

종 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8호

지 정 일 1974.09.27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313 
시 대 조선시대


영조 35년(1759)에 지어진 조선 후기의 관청 건물이다. 원래는 가운데의 정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동대청, 오른쪽에 서대청, 앞쪽에 중문과 외문 그리고 옆쪽에 무랑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정당과 동대청만이 남아있다.

 

정당에서는 ‘전하 만만세’라고 새긴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그리고 나라의 일이 있을 때 궁궐을 향하여 절을 했다고 한다. 또한 새로 부임한 수령은 반드시 이곳에서 가례를 올렸으며, 중앙의 관리가 이 고을에 찾아 왔을 땐 이곳에서 머물렀다. 광무 9년(1905)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을 때는 면암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켜 싸웠던 곳이기도 하다.

 

정당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으로 안의 바닥은 벽돌을 깔고 궐패를 안치하고 있다. 동대청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다.

 

 

6.강천사 석탑

 

종 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지 정 일 1980.03.08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996 
시 대 고려시대


강천사 대웅전 앞마당에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1층 기단 위로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화강암으로 정교하게 다듬었다. 탑신부의 각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는데, 1층은 확실히 보이고 있으나 그 위층부터는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있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양끝에서 서서히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조그만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고려 충숙왕 3년(1316) 절을 크게 확장할 때 이 탑을 세웠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기단과 지붕돌의 일부가 파손되었고, 1959년에 약간의 보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7.순평사 금동여래좌상 

 

종 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5호

지 정 일 1998.11.27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637 
시 대 고려시대


전라남도 순창의 순평사 대웅전에 모셔진 높이 1.04m의 불상이다. 원래는 남원의 한 사찰에 모셔져 있었는데, 담양으로 옮겨져 개인이 보관하다가 다시 순평사로 옮겨 왔다.

 

얼굴과 가슴에 부분적으로 금칠이 벗겨져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얼굴 표정은 근엄한 편이며 귓볼이 목 중간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양 어깨에 걸친 두꺼운 옷에는 탄력이 줄어든 u자형 옷주름이 표현되었고, 속옷의 띠매듭은 X자를 이루고 있다. 양 손 모두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잡은 모습이다.

 

불상 안에서 여러 가지 유물들이 발견되었으나 이는 1946년에 다시 넣은 것이고, 원래의 복장유물은 없어진 것 같다.

 

전체적으로 고려시대 양식에 속하지만 평면적인 조각수법과 형식화된 띠 매듭표현 등으로 볼 때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8.현포보수로 및 중건불망비 

 

종 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82호

지 정 일 1992.06.20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동계면 현포리 산2외3필, 주월리 476 
시 대  조선시대


가뭄과 홍수로 생활이 어려웠던 때에 제작되었던 보와 수로 및 주민들이 감사의 뜻으로 세운 김원보의 불망비이다. 보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둑을 쌓고 흐르는 냇물을 막아두는 곳이며, 수로는 물이 지나가는 통로이다.

 

당시 이 지역 일대는 계속되는 가뭄과 홍수로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받고 있었으며, 관개시설이 없어 매년 흉작을 면치 못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참판인 김원보가 꿈에 보를 개설하라는 노인의 지시를 받아 주민을 동원하여 보를 설치하고 석축을 쌓아 수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편안한 생활을 누리게 된 주민들은 김원보의 은혜를 기리고자 수로 언덕 위에 불망비를 세워두었다.

 

비는 직사각형의 단순한 형태로, 윗모서리 양끝을 사선으로 처리하였다. 보와 수로가 제작된 건 영조 12년(1736) 때의 일이다.

 

 

9.귀래정 신말주 후손 세거지 

 

종 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86호

지 정 일 1994.08.10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534 
시 대 조선시대


이곳은 신말주 선생과 정부인 설씨를 비롯하여 신경준 선생 등 그의 후손들이 살았던 곳으로, 1996년부터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세거지 좌측에는 보물 제728호인 설씨부인권선문첩을 비롯한 여러점의 문화재 보호각이 위치하고 있으며 보호각 뒤쪽에는 귀래정과 수백년 된 노송들이 서 있다. 

 

 

10.설진영 서실

 

종 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96호

지 정 일 1998.01.09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금과면 동전리 25 
시 대 일제강점기


남파 설진영(1869∼1940)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고 민족사상을 배향하였던 곳으로 1910년에 세웠다.

 

선생은 고종 32년(1895) 기우만과 함께 장성에서 의병활동을 하였으며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오랑캐는 상대할 수 없다고 하여 아미산 남쪽에 남파 서실을 세우고, 학문 연구와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여 많은 영재와 항일 애국지사를 배출하였다. 1940년 일제 민족말살정책의 하나인 창씨개명에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다가 성(姓)을 절대로 고치지 않겠다는 절명서와 유서를 남긴 채 서실 앞 우물에 투신 자결하였다.

 

서실은 앞면 4칸·옆면 3칸으로 앞·뒷면 모두 툇마루가 있는 집이다. 왼쪽부터 방과 방, 그리고 대청으로 이어지며 방과 대청 사이는 분합문이 있어 오른쪽 3칸은 필요시 모두 터서 한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동시에 모아 놓고 강의를 할 수 있는 서실에 적합한 구조로 꾸민 것으로 대청 전면에는 4짝 들어열개문을 달아 여름에는 터서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초가였으나 현재는 시멘트 기와로 초가였던 지붕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서실 뒤로는 대숲이 있고 마당 오른쪽 한편에는 뒷간이 있는 헛간채를 배치하여 놓았다.

 

 

11.산동리 남근석 


종 목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14호

지 정 일 1979.12.27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팔덕면 산동리 452 
시 대  미상


남근석은 남성 성기 모양의 자연석이나, 암석을 조각하여 세운 것을 이른다. 성기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모든 복과 다산·풍농·풍어를 기원하는 것이다.

 

산동리 마을 앞 당산나무 부근에 자리한 이 남근석은 높이 1.65m, 둘레 1.45m 이며, 화강암으로 정교하게 조각되었다. 생김새는 건장한 남성의 성기가 충분히 발기되어 있는 모양으로, 아랫부분에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는 점이 독특하다.

 

500여 년전 여장사가 2기의 남근석을 치마에 싸 가지고 오다가 무거워서 1기는 창덕리에 버리고 1기는 이곳에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언제 세운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다른 남근석에 비해 매우 섬세하게 조각되어 주목되는 작품이다.

 

 

12.창덕리 남근석 


종 목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15호

지 정 일 1979.12.27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팔덕면 창덕리 161 
시 대  미상


남근석은 남자 성기 모양의 자연암석이나 조각하여 세운 것을 이르는 것으로, 복을 빌거나, 다산·풍농·풍어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창덕리 남근석은 높이 165㎝, 둘레 145㎝의 화강암으로, 포경선을 자세히 표현해 놓았고, 아래 부분에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전해오는 전설에 따르면 옛날 500여 년전 태촌마을에 한 걸인이 살았는데, 신분때문에 결혼 뿐만 아니라 성생활도 할 수 없어 이를 비관하며 남근석을 세웠다고 한다. 자녀를 갖지 못하는 부녀자가 이곳에서 공을 드리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 하여 매년 정월 대보름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왔다고 한다.

 

제작자와 제작년도는 알 수 없지만 다른 남근석에 비해 그 표현방법이 섬세한 것이 특이하다. 

 

 

13.귀래정

 

종 목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67호

지 정 일 1984.04.01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산2-1 
시 대  조선시대


귀래정은 조선 세조 2년(1456) 신숙주의 아우인 신말주가 지은 정자로, 지금 있는 건물은 1974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신말주는 수양대군(세조)이 조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오르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켜 벼슬에서 물러나 순창으로 낙향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안쪽에는 서거정이 지은 귀래정기와 강희맹의 시문을 보존하고 있다. 

 

 

14.순창향교 대성전

 

종 목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68호

지 정 일 1984.04.01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순창읍 교성리 134-1 
시 대 조선시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순창향교를 처음 지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성종(재위 1469∼1494)대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와 서무, 명륜당, 동재와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다.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로,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15.홀어머니산성 

 

종 목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0호

지 정 일 1984.04.01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 산55 
시 대  백제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에 있는 이 산성은 대모산성 또는 백산리산성으로 불리는데, 두 산봉우리를 배 모양으로 감싼 형태를 하고 있다.

 

옛날 양씨 부인이 살고 있었는데, 설씨 총각이 결혼할 것을 요구하자 부인은 “총각이 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올 때까지 내가 성을 다 쌓지 못하면 허락하겠다”고 하였다. 부인이 마지막 성돌을 채 올리기 전에 총각이 돌아오자, 돌을 나르던 치마를 뒤집어쓰고 성벽 위에서 몸을 날려 자결하여 정절을 지켰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동쪽으로 향한 물이 흘러나가는 구멍(수구)는 직선으로 단을 쌓았으며, 그 북쪽으로는 대모암이란 작은 사찰이 있다. 백제 때 만들어진 산성으로,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까지 군창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16.합미성

 

종 목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1호

지 정 일 1984.04.01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동계면 신흥리 산51 
시 대 백제


이 성은 언제 쌓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백제 때 만든 것으로 보이며, 현재 둘레 500m 정도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성을 보수하여 병사들의 군량미를 저장하였기 때문에 합미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산성의 특징은 내성과 외성이 있는 점으로, 내성은 성곽의 동북쪽 모서리에 돌출되어 있는데, 성 안에서는 가장 높은 있어 조망대 구실을 한다. 성곽의 규모는 동변 19m, 북변 37m이며, 동쪽과 북쪽 성벽이 외성벽을 겸하고 있다. 성 안쪽과 구분하는 성 줄기는 남쪽 40m, 서쪽 13m이다. 북쪽에는 북문터가 있어 밖으로부터 직접 내성에 출입할 수 있게 되어있고, 내성 남변과 외성 사이의 구석에는 외성에서 내성으로 들어가는 성문터가 있다.

 

몇 해 전까지도 합미성터의 땅을 파보면 불에 탄 쌀이 나왔다고 한다.

 

 

17.낙덕정

 

종 목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2호

지 정 일 1984.04.01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복흥면 상송리 산4 
시 대  조선시대


명종 즉위년(1545)에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학자인 하서 김인후가 관직을 그만두고 세상을 피해 숨어 살던 곳이다.

 

김인후는 낙덕암 주위의 산세를 유난히 좋아했던 것으로 전하며, 자연을 즐기는 한편 후세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쳤다.

 

고종 4년(1900)에는 훗날 이곳에서 훌륭한 인재가 나올 것이라는 김노수의 예언을 따라 낙덕암 위에 정자를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귀암정 

 

종 목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1호

지 정 일 1990.06.30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동계면 귀미리 1028 
시 대 조선시대


순창군 동계면 만수탄 위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로, 언제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귀암 양배는 남원 사람으로 일찍부터 학문을 닦아 그 지식이 높았으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어진 사람들이 되려 화 당하는 것을 보고 자연 속에 묻혀 아우 돈(墩)과 함께 세상을 잊고 살았다. 조정에서는 그의 학문과 덕행이

높음을 듣고 사헌부 장령의 벼슬을 내렸으나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았다.

지금도 적성강 상류 만수탄에는 형제가 고기를 낚던 바위가 남아 있어 배암·돈암이라 부르거나 합쳐서 형제암이라 부르고 있다.

 

그가 죽은 뒤에 사림에서는 ‘지계사’를 지어 제사를 모시고 있으며, 후손들은 그의 덕망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귀암정’이라 이름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어은정

 

종 목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2호

지 정 일 1990.06.30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435 
시 대 조선시대


어은 양사형(1547∼1599)이 조선 명종 22년(1567)에 분가하면서 지은 정자이다.

 

처음에는 영하정이라 이름지었다가, 후손들이 어은정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양사형은 조선 선조 21년(1588)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광군수, 병조정랑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우고 선무원종공신이 되었다. 죽은 뒤에는 승정원도승지에 봉해졌으며, 순창의 화산서원에 신주를 모시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정자는 여러 차례 고쳐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1919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20.영광정 

 

종 목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4호

지 정 일 1990.06.30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 산6 
시 대 일제강점기


1910년 한입합방이 되자 순창지방에 살고 있던 금옹 김원중이 뜻을 같이 하는 동지 13명과 일본에 반대하는 사상을 널리 알리고자 지은 정자이다.

 

지붕 처마 끝에 태극팔괘를 새겨 나라 잃은 설움을 되새기며 정자를 영광정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한국전쟁으로 불타 버렸다가 1974년에 지방 유림들이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이며, ‘영광정(迎狂亭)’이라 쓴 현판이 남아 있다. 

 

 

21.고려직제학 양수생 처 열부 이씨려

 

종 목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2호

지 정 일 2000.11.17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568 
시 대 조선시대

이 정려는 고려 때 직제학을 지낸 양수생의 처 이씨의 지조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씨 부인은 남편 양수생이 죽은 후, 당시의 풍습대로 개가를 하라는 부모의 청을 거절하고, 이곳 구미리로 내려와 살면서 아들 양은보를 키워 가문을 잇도록 하였다. 양은보의 후손 중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오게 된 것도 모두 이씨부인의 노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씨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 부인의 행실을 알게 된 조선 세조는 1467년에 정려를 내려 후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비와 정려각은 이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조선 영조 50년(1774)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건물로 세웠다.

 

이 정려에 대해서는 1760년에 간행된 「옥천군지」에 조선후기 성리학자 도암 이재가 쓴 ‘열부이씨전’이 수록되어 있으며, 정려비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얘기가 전한다. 

 

 

22.석산리 마애여래좌상

 

종 목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4호

지 정 일 2003.05.16
소 재 지 전북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 산130-1 
시 대 고려시대


순창 적성면의 선돌마을을 지나 도왕마을 쪽으로 1㎞ 정도 올라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약 2.5m 정도되는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오른쪽 대좌부분이 약간 떨어져 나간 것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평평한 바위면에 두광과 신광, 불신, 대좌 등을 얕은 부조로 조각하였는데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하여 얼굴이 큰 편이며 항마촉지인을 결한 채 결가부좌하였다.

 

머리 부분은 마치 두터운 모자를 쓴 듯 투박하게 표현되었으며 민머리에 큼직한 상투 모양의 육계가 묘사되었다. 얼굴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편으로 눈은 마모되어 분명치 않으나 가늘게 뜨고 있는 듯하며 큼직한 코, 두툼한 입술 등이 얕게 부조되었다. 특히 입술은 가장자리를 쳐지게 표현하였으며 입술과 이마 선을 따라 붉은색의 칠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목이 짧아서 3개의 주름인 삼도는 몸의 상단에 걸쳐지게 표현되었으며, 신체는 얼굴에 비하여 유난히 작게 표현되었는데 어깨가 좁고 위축되어 있다. 오른쪽 어깨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으며 왼쪽 어깨에는 대의 자락을 걸쳐 우견편단식 옷차림법을 보여 주고 있다. 법의 자락은 배부근에서 결가부좌한 두 다리 위로 평행밀집형의 가는 주름을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다.

 

오른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아래로 내려 촉지인을 결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양 무릎 위에 살짝 올려 놓았다.

 

대좌는 연꽃모양으로 장식한 대좌이지만 오른쪽 부분이 파손되었으며 광배는 키형의 거신광 안에 두광과 신광을 표현하였는데 광배의 여백을 따라 당초무늬를 선각하였다.

 

이 마애불은 얕은 부조기법과 토속화된 얼굴 표현, 평행밀집형의 옷주름 표현 등에서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별다른 손상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불신에는 채색을 하였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어 당시 불상 조성의 일면을 보여주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순창의 특산물)

 

1.순창 고추장


전국적으로 가장 맑고 깨끗하다는 섬진강 상류의 오염되지 않은 지하 암반수와 햇볕에 잘 건조해 말린 태양초 고추장의 품질을 좌우하는 효모균 번식에 최적인 기후 조건 여기에 여인의 손맛이 한데 어우러져 전통재래식 비법으로 제조,숙성된 순창전통고추장은 옛날부터 그 명성이 자자하였습 니다.

 

특히 이조 오백년동안 궁중진상식품으로 유명한 순창전통고추장은 타지방에서 찾아보기 힘든 검붉은 색깔에 은은한 향기와 감미로우며 알싸한 맛으로 타지방의 추종을 불허하여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식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2.무량쌀


품질 좋고 밥 맛이 좋은 품종을 엄선하여 재배하고 있으며 생육기간 중 팽연왕겨를 살포함으로써 화학 비료를 크게 줄여 건강에도 좋고 밥 맛이 좋은 것이 특징임


3.금과배


신비한 황토의 효능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바 청정지역 황토질에서 생산되는 금과배는 과육이 단단하고 당도가 매우 높을 뿐 아니라 독특한 향기를 가져 과수직판장에서 매우 인기가 높고 해외로도 수출하여 그 성과를 높이고 있습니다.


4.자수


순창자수는 조선시대 단종 2년(1454년)이후 조선 중엽에 순창군수가 상감을 알현할 때 흉배의 자수솜씨를 보고 감탄한 임금이 순창자수를 진상토록하면서 이후 400년간 지역의 특산품이 되었습니다.

 

순창의 아름답고 단아한 여인의 섬세한 손끝으로 한 땀 한땀 정성껏 수놓아진 자수작품은 요즈음 대량으로 생산되는 기게자수와는 완전히 격이 다른 예술작품으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현재 소수의 기능인이 전통자수의 화려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병풍민속도, 사계절 풍속도, 사군자등을 제작하여 국내시장과 해외시장에 호평을 받으면 판매하고 있어 선물용으로 매우 훌륭한 특산물입니다.


5.오석


순창오석은 석질이 강하고 오랫동안 별색과 마모가 되지 않고 질이 균일하며 색감이 선명하고 다량의 원적외선이 방출되어 품질이 우수합니다.

다양한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으나 그 중 돌침대가 소비자들에게 인기 있는 제품입니다.


6.짚풀공예


예부터 우리 조상을은 짚과 풀을 활용하여 가정에서 필요한 여러 용품을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조상들의 숨결과 지혜와 과학이 들어있는 짚풀공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고 가장 근본적인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7.한과


우수한 농산물을 주원료로 사용하고 고향 어머니의 손맛으로 빚어낸 순창한과는 옛날부터 명절 때와 제사상 잔치상에 빠짐없이 올랐던 전통과자로 나이드신 어르신과 인스턴트 식품에 절은 아이들 간식으로 매우 훌륭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8.감식초


청정지역 순창의 풍부한 햇살과 맑은 이슬을 먹고 생산된 질 좋은 감을 선별하여 전통비법으로 오랜기간 숙성 발효시켜 제조. <br>감속초는 각종 유기산과 미네랄이 함유된 훌륭한 알카리성 식품으로 공해와 인스턴트 식품에 절어 있는 현대인에게 매우 적합합니다


9.쌀겨농법쌀


쌀겨의 제초성분을 활용하여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무농약 품질인증 쌀로 100ha의 친환경단지에서 건조 → 저장 → 가공까지 일원화된 관리로 신선도와 밥 맛이 탁월함


10.순창고추


청정진역 순창에서 생산되는 순창고추는 햇볕에서 잘 건조한 태양초로서 빛깔이 매우 좋고 매우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일품으로 순창전통고추장이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친 이면에는 고추장의 주재료인 고추의 품질이 좋기 때문입니다.


11.복분자


복분자는 양기를 보하여 정력을 강회시키며 간을 보고하고 신경쇠약으로 인한 시력감퇴와 야맹증에 효과적입니다.

특히 여성의 피부를 윤택하게 하고 신경쇠약으로 인한 불임증에 크게 활용되고 있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좋은 건강의 묘약입이다.

복분자는 술외에도 가정에서 차, 쥬스, 쨈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며, 인, 철, 칼륨,등 무기질이 풍부한 건상식품입니다


12.매실


전국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른다는 섬진강 최상류에서 생산되는 동계 매실은 예전부터 그 맛과 효능이 뛰어나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할 뿐 아니라 농민 단체에서 우수한 품질의 상품을 구입, 공급하여 소비자들에게 한층 신뢰감을 더 해주고 있습니다.

순창 홍보

수행평가가 지역홍보지 만들기인데요 순창으로 정했습니다 순창의 산업같은것 좀 알려주세요 그리고 문화재나 특산물.. '설명'과 '사진' 부탁드려요 에이포 한면 분량이라...

순창사과 고추장 꽁자 제공 홍보하며...

요즘도 제주도 (제주시, 서귀포시)에 차량으로 주택단지 돌아다니면서 " 뭐뭐 꽁자로 준다고 나오라고 " 하고서 결국 홍상 1+1 사기 판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4~5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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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모듬은 순창의 고추장 홍보가 되었어요. 그런데 검색해보니까, 순창고추장 넣고 김치찌개 끓이는 법 그런 것들 밖에 없었어요.ㅠㅜ 내일까지는 알아와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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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순창용기사입니다! 지금 빨리 4차를 해야하는데요;;추천사냥터좀요! 스킬다... 쩔 같은건 사절이고요 내공냠냠,프리섭홍보,홍보,그외 딴글 다 신고입니다 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