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옛이야기

안동 옛이야기

작성일 2020.07.13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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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옛이야기는 무엇이 있나요?


#안동 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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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옛이야기 27개를 올려드립니다.

(안동의 옛 이야기)

1.천사 성황당

옛날에 마을주민 한사람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너는 나를 믿어라라고 이야기를 했어. 꿈이라고 하지만 너무나 생생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꿈을 깼거든.그 다음날 그 사람이 집에 걸터 앉아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방울소리가 들리더니, 마루에 방울이 떨어졌어. 마을 사람들이 이를 매우 신기하게 여겨서 신이 준 방울이니, 이 방울을 모셔야 되겠다.고 의견을 모았어.그후 사람들은 방울을 성황당에 옮겨 놓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그 방울이 서낭대에 걸려있지.

서낭당 안에는 호랑이도 모시고 있는데, 서낭이 내려와서 올라갈 때는 호랭이를 타고 올라 가거든. 사람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어쩌다가 깊은 밤에 호랑이 거동을 본 사람도 있지. 그리고 당고사에서 부정이 있거나,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큰 소리로 울기도 해.서낭신과 호랑이는 징소리를 가장 듣기 좋아해서 매구(풍물)를 자주 치지.예전에는 서낭대 싸움도 자주 있었는데 사천 서낭과 이웃의 묘곡 서낭이 주로 많이 싸웠어. 어느 해인가 싸움 도중에 묘곡 서낭대가 부러져 지금도 묘곡에는 서낭대가 없어.

2.수곡 무실의 처녀당

마을에 살던 과년한 처녀가 시집을 못 가고 죽었는데, 그후로 이제까지 별로 탈이 없던 마을에 재앙들이 자꾸 생겨서 마을굿을 했어. 무당이 처녀를 통해 말하기를 나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어서 뒷산을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나를 마을 사람들과 같이 살게 해 다고. 그랬거든.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논의 후에 산에 당을 만들고 정월 열나흗날이면 추렴을 해서 제를 지내게 되었어. 그 후에 그 산을 처녀를 모신 당이 있다하여 아기산이라 부르기 시작했지.

그런데 어느때 부터인가 제사를 지낼라 하니 산이 높아서 음식 나르기가 불편해서 안돼, 그래서 마을굿을 하고 당을 지금의 장소인 동리 어귀로 옮겨 모시고 이름도 처녀당이라 바꾸었지.당이 얼매나 영험한 지, 당에 대한 정성이 부족하면 마을에 재앙이 나고, 행인들까지 재앙이 번지곤 하는데, 언젠가 지나가던 우마가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기도 했어요.제를 드릴 때는 제관과 음식을 마련하는 유사들은 인적이 그친 밤에 개울가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부정한 것을 피하여 하루 종일 집에서 나가지 못해요. 그리고 첫닭이 울기 전에 제수를 차려 가지고 붉은 흙을 음식 차리는 집에서 당집까지 뿌리고, 음식을 마련하는 집에는 새끼줄(금줄)을 걸고 흰종이를 꽂아 다른 사람의 출입을 막아요.

3.용상동 여랑당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에 왔는데 한 여랑를 데리고 와서 늘 곁에 두고 귀여워했어. 공민왕은 적군하고 싸우기 위해 안동에 왔기 때문에, 진지를 구축하고 홍건적하고 계속 싸웠는데 이때에도 여랑이 계속 따라다니고 그랬지. 그러다가 어느 싸움에서 홍건적이 가만히 숨어 있다가 왕에게 화살을 쐈는데, 그때 여랑이 몸을 날려가 대신 맞았어. 왕을 살린게지. 그후 왕이 슬퍼하면서 지극 정성으로 간호했지만 여랑이 고마 죽어버렸어. 죽으면서 여랑이 하는 말이나는 홍건적을 물리치는 신이 되겠다 그랬거든. 그 유언때문인지, 왕이 홍건적과 전투에서 계속 승리하여 난을 평정했어. 그 후 다시 환도했는데, 왕이 여랑을 생각해서 원혼을 달래기 위하여 이곳에 당집을 지어 모시도록 명을 내렸어. 그래서 주민들이 여기에 당집을 짓고 여랑당이라고 부르며 안동부사가 매년 정월 열나흗날 밤에 제를 지내게 된게라.

4.임동면 마령리 상당나무

옛날에 어느 노승이 마을에서 시주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목이 말라 샘에서 물을 마시고는, 쉴려고 지팡이를 짚고 있다가 죽었어요. 한참 있다가 마을사람들이 노승의 시신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곱게 묻어 주었는데, 그 후 마을에 기근이 나고 질병이 돌아 피해가 많이 났어. 그래서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마을에 사는 여러 사람의 꿈에 노승이 현몽하여 사당을 지 달라.그렇게 말해서 사람들이 노승이 죽은 자리에 당을 지어 주니, 그 후부터 마을에 질병도 돌지 않고 농사도 잘 되었어요.>지금 가보면, 당 옆에 상당나무가 있는데, 노승이 땅에 꽂고 쉬던 지팡이가 자라서 그리 큰 나무가 되었다고 하고, 또 여기서 뿌리가 다시 자라서 하당나무가 되었다고 그래요.

5.가마싸움에 희생된 남선면 원림리 각시당

옛날에는 안동과 의성을 잇는 길은 이 갈라산이 길이 가장 가까웠다 그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다녔는데, 어느날 의성에서 안동으로 시집오는 색시를 태운 가마와, 안동에서 의성으로 시집가는 색시를 태운 가마가 갈라산 중턱에서 마주치게 된게라. 한쪽은 험한 산이고 다른쪽은 높은 낭떠러지인 좁은 길이기 때문에 서로 비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단 말이래. 옛날에는 초행길 가마가 물러서면 재수가 없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맛꾼들이 서로 물러서지 않고 대치를 하고 있었는데 비켜갈 수가 없어서 양측의 가마꾼들이 힘으로 맞부딪치게 된게라. 인제 가마를 맨 채 가마꾼들은 밀고 당기는 가마싸움이 벌어졌는데. 힘이 약한 쪽의 가마가 차츰 밀리다가 그만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지고 말았어. 그래 고마 가마 속에 타고 있던 색시도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지게 되었는데 그만 죽고 말았어. 그래가 갈라산 중턱에 이날 죽은 각시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 각시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게 된게라.

6.풍천면 수리 국신사당

이 마을에 권사도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 도령은 말도 잘 타고 활도 잘 쏘아서 고마 무술이 천하일품이었다 그래.어느날에 이 수리 마을 어디선가 하루종일 하늘을 울리는 용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불안하고 무서워 어쩔 줄을 모르는데, 무술을 잘하는 사도 청년이 용마를 달래 보겠다고 나서거든. 그래 인제 사도가 말을 타고 마을을 달려나가서 낙동강 어귀 깊은 웅덩이 옆 큰 바위 위에서 울고 있는 용마에게 다가갔는데. 신통하게 용마는 사도가 가까이 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울음을 딱 그치는 게라. 그래 사도는 용말을 집어타고 위풍당당하게 마을로 돌아왔어. 그 후에 사도는 용마를 길들이는데 온갖 정성을 다 쏟았는데, 몇 년 뒤 왜란이 일어나자 사도도 인제 용마를 타고 출전하게 되었어. 그래 막 마을을 나서서 국신당 앞에서 도착했는데 말 발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게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놀래서 먼일이 있는 갑다 하면서 술렁거랬어. 그리 권사도가 말에서 내려 이는 국신당을 돌보지 않아 신주가 노하신 것입니다.하며 국신사로 들어가 지성을 다해서 열심히 열심히 빌었어. 한참을 빌고 다시 말에 타니 그제서야 말 발이 떨어져 전장으로 나갔어.그 후에 인제 영험 있는 당이라고 마을에서 중론이 모아져 국신사 사당을 재건하고 정월 대보름날에는 수리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인근 5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사당 앞에서 굿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 굿을 수동별신굿이라 그래. 한 400년 간 굿을 하고 있지.

7.용계당에 좌정한 용계은행나무 살린 처녀

원 용계에 처음에는 탁씨가 살았다 그래. 다래 몽두리(몽둥이)를 치고 깊은 산속에 나무를 쳐내고 살 때에는 그러니까 은행나무 서 있는 곳이 집터였어. 그 집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건바골 들어가는 건너편에 등성에 묘가 있네. 그 은행나무 세운 처녀 묘가 있어 탁씨네가 현재 제사를 지내고 있거든. 어느 날에 처녀가 강가에 있는 하얗게 까놓은 은행나무가 물에 둥둥 떠서 내려오거든. 그래 처녀가 하도 이상해서 그 나무를 주워서 부뚜막에 요래 파고 묻어놓고 자꾸 물을 주었다 이게라. 물을 자꾸 주고 정성을 들이니 은행나무가 살았어. 촉이 올랐는데 차차 키웠어. 그리고 용계에 권씨네도 들어오고 이씨네도 들어오고 하다가 탁씨네는 가세가 없어져 물러갈 정도가 됐는데. 한 날 꿈에 마을 상노인에게 처자가 현몽을 하는데, 내가 저 건네 은행나무 살린 처년데 날 이 동네 성황으로 세워주면 이 동네를 편안하그러 해주겠다.고 요청하는게라. 상노인 한 사람뿐만 아니라, 동네 몇 사람에게 그랬든 모양이래. 그래서 용계 그 당 나무가 처녀 땅이 된게라. 밑에는 애기당이, 원 당이 옆에 있는데 당에는 고리짝에 치마하고 저고리하고 한 벌이 보쌈에 들어있어. 당 주위에는 돌담을 해놓고 언제든지 정월 열 나흗날 수리할 때, 정월 보름날 제사지내거든. 수리할 때 그 안에 들다보고 버들가지로 만든 고리가 있는가 없는가 들다보고 확인하고 수리하고 그래지.그 옛날에는 제사 지닐 때 어떻게 하는가 하면, 나락을 그날 찧어서, 떡을 하거든. 가령 오늘 제사날이면, 오늘 멍석에 널어 났다가 그대로 쪄가지고 떡과 밥을 해서 제사를 지냈는데 무심코 새가 고걸 먹으면 그 자리에서죽어버렸다 그래요.인제는(지금은) 청년들이 제사를 안 지낼라 카는게라. 귀찮거든. 정월 열하룻날에 공사해서 3일 기도를 하는게라. 기일을 해가지고 제사를 올리기 때문에 그래. 그러니 동네 청년들이 모두 귀찮다고 그만 둘라 캐.

8.자기 조상의 혈을 자른 이여송

이여송이 중국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웃대에 대국 들어가서 살았던 조선사람이래. 따지고 보면 맹 조선사람이지. 그런데 임진왜란때 명을 받고 조선을 왔는데 조선의 산수를 보이 심상치 않거든. 이, 조선을 이래 놓아두면 안되겠다. 장군이 나기 시작하면 큰 장군이 나니,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겠다. 이래 마음을 먹고 명산의 혈맥을 짤렀어. 여기 저기 혈을 짤랐는데, 짜르다 보이 저 조상 혈도 짤라부렀어. 그래 돌아가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아문데 가가 보니 장군이 날 것 같아서 혈을 짤라 버렸니더. 그러니까. 듣고 있던 문중사람이 탄식하면서 야야, 거기는 우리 우리 몇 대 할뱄다.

9.지렁이 장군 견훤을 물리친 삼태사

견훤은 껄개이(지렁이)가 화한 사람인데, 나라를 차지하려고 안동으로 들어왔어. 안동에는 삼태사, 삼장군이 있었는데, 지렁이하고 싸우게 되었어. 싸워 보이 지러이한테 삼장군이 안된단 말이래. 결국 이기기는 이겼는데 어애이겼노 하면, 인제 지러이는 물에만 들어갔다가 나오면 힘을 더 쓴단 말이래. 그러니 힘만 빠지만 물에 들어가서 힘을 내가 나오고, 또 힘만 빠졌다 하면 물에 들어갔다 나와 힘을 내고, 그런단 말이지. 싸우다가 그런걸 몇 번 겪어 보니 그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인제 싸우다가, 또 물에 들어가니까 이번에는 사람을 시켜서 간수(간장)와 소금을 몽땅 모아서 물에 쏟아 부었어. 견훤이 힘이 빠져서 물에가 보니 소금기가 있거든. 지렁이는 소금이 몸에 닿으면 몸이 녹는데, 견훤은 지렁이가 화한 사람이니 고마 힘이 사라졌다는구만, 그래서 이겼어. 그후에 나라에서 벼슬을 주었는데 벼슬 이름이 삼태사라 그래.

10.공민왕의 싸움터 오마대

공민왕이 도저히 피란을 안 내려오고는 안되서 안동으로 내려왔어. 그래 내려와서 쓴 글씨가 안동군청 간판이래. 그게 공민왕 글씨 친필이지. 그때 공민왕은 안동에 주재했다가, 적이 내려와 싸움이 일어났어. 이래서 산성 쌓았는데, 예안 부포라는 데가 있어. 거기서부터 산능선을 쌓기 시작하여 산 능선을 타고 산성이라는 데까지 성을 쌓았어. 그래 그 길이 얼매나 큰지 말 다섯 필이 능선을 타고서 왔다 갔다 할 정도였어. 지금도 흔적이 있지

11.태몽치마와 서애대감

서애대감 엄마가 딸만 많이 낳았어. 하루는 친정에 와서 쉬는데 아들을 많이 놓은 형이 태몽꿈을 꿨다고 하면서 먹을 거는 없는데, 용 두마리가 마구 치마에 담기더라. 그래거든. 이말을 들은 서애대감 엄마가 그 치마를 날 벗어다고. 내 비단치마를 주께. 하고는 형하고 치마를 바꿔 입었어요. 그리고 꿈도 내 가지고 간다. 하고 말하고는 다 떨어진 치마를 입고 집으로 왔는거라. 그러고 치매를 바꿔 입은 그 형은 시댁에 가서 치마를 바꿔 입은 이야기 하니, 시어른이 성을 내면서 다시 친정을 쫓아 보내 버렸어. 이혼을 당한거지. 그리고 하회로 돌아온 서애대감 엄마는 그 후에 태기가 있었는데, 그래서 낳은 것이 서애대감이래.

12.용동이 일화

이, 아-들은 많지. 그르이 인제 구 또 할마시 되는 분은 그 가산은 넉넉치 못하이 잔소리할 건 사실이라. 이러고 앉아. 그래, 영감님으는 워째 머식해가주고서 아-들은 밥 달라꼬 저렇게 나대고, 저麝구 나대는데, 워엘라고 머식해가주고 당신은, 영감은 술만 자시고 그꾸 머식하느냐꼬? 허허! 이 사람 할마이 걱정 말게. 이 사람아, 걱정이 된고? 그릇 없다 그래, 숫가락 한 짐 여다 놔, 나무 없다 그래, 검불 때, 걱정이 머 있는고? 나무는 무슨 놈의? 허허! 삼검불(삼 찌꺼기)은 검불 아인가? 또 정지 소다 그래, 마당이 마구 정지래. 남의 석포에 이다 가작 달아 놨으이 말이래. 정지 소다 그래 마구 정지, 마당이 정지래.

13.비뚤게 쓰여진 도산서원 현판

이전에 선조가 그 당시의 명필 한석봉에게 명을 해서 도산서원 현판을 쓰게 하였는데. 이 때 선조가 생각하기를 만약 내가 도산서원 현판이라고 한석봉이에게 가르쳐 주면, 놀래서 붓이 떨려 글씨가 잘 안되께라. 싶어가 가르쳐 주지 않고, 도산서원 네 글자를 거꿀로 한 자 한 자 불렀어요. 그래 한석봉이는 영문도 모르고 받어 쓰는게라. 맨처음에 원자를 쓰고, 다음에 서자, 다음에 산자, 그리고 인제 마지막에 도자를 쓰게 했어. 한석봉이는 원, 서, 산자를 쓰고 나서 도자를 임금이 부르이께네 아하 이거 내가 도산서원 현판을 쓰는 구나. 딱 알아챘어요. 그래 고마 놀래가 붓이 떨려서 마지막 도자를 비뚤게 썼어요. 그래가 도산서원 현판에 글씨가 약간 삐뚤지.

14.종이학이 터잡아 준 봉정사

의상조사가 영주 부석사를 다 지은 다음, 종이 학을 만들어서 날렸는데, 그 학이 신기하게도 날아서 서후리에 있는 천둥산 뒤쪽 기슭에서 떨어졌어. 그래 의상조사가 이 곳에서 도를 닦겠다. 하고는 자리를 닦아서 절을 지은 것이 봉서사래. 봉서사를 다 지은 다음에 또 종이학을 날랬는데 이번에는 천둥산을 넘어서 떨어졌어. 그래 지은절이 봉정사래

15.눈병 없엔 개목사

조선시대 때, 맹사성이 안동부사로 오게 되었어. 맹사성이 안동부사로 와 보니 이상하게도 안동지방에 눈병 환자가 많은 게라. 맹사성은 풍수지리에 밝아서 안동지형을 가만히 살펴보니 안동의 지세가 눈병이 많은 지세거든. 그래서 당시 흥국사라는 절을 개목사라고 이름을 바꾸었어. 그 후부터는 차츰 눈병환자가 없어졌다고 그래.

16.서기가 비친 영호루 현판

영호루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라 그러는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이곳에 머무를 때 친히 쓴 글씨인게라, 공민왕의 친필이니 만큼 현판 글씨의 필치는 참말로 잘 썼다고 사람들이 그래. 옛날부터 영호루가 수 차례 물 때문에 유실됐는데도 현판만은 지금까지 보존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현판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거든. 원래 영호루에는 여러 개의 현판이 있었는데, 당대 유명한 사람이 오면, 저마다 글을 지어가 붙여둬서 그렇게 현판이 많아지게 된게라. 그래도 그른 현판은 홍수만 나면 떠내려가고 보이지가 않아요. 언젠가 영호루 현판도 홍수에 떠내려 갔었는데 상주땅 어딘가에서 서기가 비치드래. 그래 가보니 그게 영호루 현판이라. 그래가 영호루 현판이 아직도 영호루에 꺼떡없이 걸레 있게 된게라

17.99일만에 지은 흥국사와 불 내려온 천등산

흥국사라는 절이 있는데 아흔 아홉 칸이나 되는 큰 절이래, 이 절을 어떻게 지었는가 하면 구십 구 칸을 하루 한 칸씩 지었다 그래요. 그러니 구십 아홉 칸 짓는데, 구십 구일만에 다 짓다니더. 그렇게 날래(빠르게) 짓다니더. 흥국사가 있는 산도 대 명산이라. 요새 와서는 천등산이라 말하는데, 의상조사가 하늘에서 조명탄 같은 탄이 터저 불이 내려왔다고 해서, 천등산이라 한다디더.

18.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화상싸움

저전리에서 보면 학가산이 뾰족하게 보여 풍수적으로 화재가 자주난다 그래요. 그래 이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서 소나무나, 뽕나무 뿌리를 말려서 단단하게 두드린 후 실로 감아서 세 발 정도 되는 새끼줄을 이어서 만드는데, 새끼줄을 빙빙 돌리면서 싸우지요

19.태워서 시작된 놋다리밟기

공민왕이 난을 피해 안동에 왔는데, 강을 건너게 됐거든. 그런데 강에 다리가 없는게라. 그래도 시기가 시기라서 급하니 그냥 강을 건넬라 그러는데. 참 귀한 공주가 맨발로 강을 건네게 할 수 없어서 안동에 있는 부녀자들이 물 속에 들어가 인교를 놓은게라. 허리를 구부리가(구부려서) 공민왕의 공주를 등으로 지나가게 해서 강을 건네 준게라. 그때부터 그것을 기념해서 놋다리밟기를 시작했다 그래.

20.가마싸움에 희생된 남선면 원림리 각시당

옛날에는 안동과 의성을 잇는 길은 이 갈라산이 길이 가장 가까웠다 그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다녔는데, 어느날 의성에서 안동으로 시집오는 색시를 태운 가마와, 안동에서 의성으로 시집가는 색시를 태운 가마가 갈라산 중턱에서 마주치게 된게라. 한쪽은 험한 산이고 다른쪽은 높은 낭떠러지인 좁은 길이기 때문에 서로 비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단 말이래. 옛날에는 초행길 가마가 물러서면 재수가 없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맛꾼들이 서로 물러서지 않고 대치를 하고 있었는데 비켜갈 수가 없어서 양측의 가마꾼들이 힘으로 맞부딪치게 된게라. 인제 가마를 맨 채 가마꾼들은 밀고 당기는 가마싸움이 벌어졌는데. 힘이 약한 쪽의 가마가 차츰 밀리다가 그만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지고 말았어. 그래 고마 가마 속에 타고 있던 색시도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지게 되었는데 그만 죽고 말았어. 그래가 갈라산 중턱에 이날 죽은 각시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 각시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게 된게라.

21.견훤을 물리친 차전놀이

견훤이 안동에 진격하여 왔는데, 안동에는 당시 삼태사가 있었거든. 그래서 싸움이 일어났는데, 삼태사가 인해전술로 견훤을 물리쳤다 그래. 그래서 차전놀이를 하게 되었다고 그래. 또 어떤 사람은 견훤은 지렁이가 화해서 장군이 됐거든. 병산에서 견훤하고 진을 치고 있는데 견훤이 마침 지렁이로 변하여 강가 모래벌에 뒹굴고 있드라 그래. 그래 삼태사가 생각하기를 견훤을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지렁이를 몰아가 차전으로 눌러서 죽였다고 그래

22.서애대감 구한 돌고지바위

서애 류성룡이 여섯 살 때 강가에 헤엄을 치다가 깊은 데 빠졌는데. 갑자기 돌개바람(회오리바람)이 불어가, 서애를 바위 위에 올려놓아 목숨을 건지게 되었그던. 그 후로 하회에서는 이 바우를 돌고지바우라 그래. 기 좋아해서 매구(풍물)를 자주 치지.예전에는 서낭대 싸움도 자주 있었는데 사천 서낭과 이웃의 묘곡 서낭이 주로 많이 싸웠어. 어느 해인가 싸움 도중에 묘곡 서낭대가 부러져 지금도 묘곡에는 서낭대가 없어.

23.도깨비가 끌어올린 건들바위

옛날에 청량산의 한 중이 절을 질라꼬 절터를 찾아 댕기다가 보니 절벽 우에 좋은 터가 있는 게 눈에 띄거든. 근데 가만히 보니, 큰 바우가 있어서 그 바우를 내리지 않으면 절을 지을 수 없게 되어 있어. 마침 이 중이 인근에서 알아주는 장사라서, 이 중이 힘을 써서 그 큰 바우를 수십 길 밑으로 굴려 버렸어요. 그리고 난 후 이튿날 절을 지으려고 가보니, 아! 어제 굴린 큰 바우가 맹 지자리에(또 제자리에) 놓여 있그던. 그래서 이 중이 하는 말이 내가 어제 분명히 힘을 써서 바우를 굴레 내렸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옆을 자세히 보니 절벽 밑에서부터 바우 있는 데까지 자국이 있는게라. 가만히 보니 그 큰돌을 가마니에 깔아가 끌어올린 자국이 분명하그던. 아하 토째비(도깨비)가 이 큰돌을 다시 지자리에 갖다 났는게따(놓아든 것 같다). 도깨비가 이렇게 힘을 써가 갔다 놓은 것을 보면 필경 연유가 있겠다. 그래 생각이 들어, 고마 중이 절 세울 걸 포기했어요. 요새도 이 바우가 있는데, 그때 도깨비가 가마니를 이용해서 올려 두어서 약간만 밀어도 건들건들 거리기만 하고 절벽으로 널찌지는 안해요(떨어지지는 않아요). 그래 그 후로 이 바우를 건들바우라 그래.

24.덤산의 구멍

저 선어대 건너편 남선 신석에 말이래. 그 덤산이 안있는가, 약수 나오는 약산, 고 아래 가면 구멍이 요래 있는데, 보기에 꼭 개 음부같이 생겼어. 예전에, 마뜰에서 보면 거가 똑바로 보이거든. 그래서 말하기를 그래 마뜰 처녀들이 음녀가 많이 난다고 그래요.

25.임동면 마령리 상당나무

과거시험 점치는 탕건바위 도연폭포 아래쪽에 가면 둘레가 열 아름이나 되는 돌이 하나 있어. 이전에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이 터를 지날 때는, 꼭 바우 앞에서, 올해 과거에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를 점을 쳐요. 바우 앞길에 서서, 왼손으로 돌을 시개(세개)를 던지는데, 한 개라도 바우 위에 걸치면(얹히면) 급제하는 것이고 안 걸치면 허방이래(낙방하는 것이다). 그래 인제 과거에 급제하면 탕건을 쓰그든, 그래가 이 바우를 탕건바우라 그래.

26.과거시험 점치는 탕건바위

도연폭포 아래쪽에 가면 둘레가 열 아름이나 되는 돌이 하나 있어. 이전에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이 터를 지날 때는, 꼭 바우 앞에서, 올해 과거에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를 점을 쳐요. 바우 앞길에 서서, 왼손으로 돌을 시개(세개)를 던지는데, 한 개라도 바우 위에 걸치면(얹히면) 급제하는 것이고 안 걸치면 허방이래(낙방하는 것이다). 그래 인제 과거에 급제하면 탕건을 쓰그든, 그래가 이 바우를 탕건바우라 그래.

27.여자가 만든 여자못

옛날에는 산비탈에만 농사를 짓고 강가에는 농사를 짓지 못했거든. 그래서 못 근처에 농사를 질라꼬 여남은 번(여러번) 시도를 했는데, 농사를 지으려면 둑을 쌓아야 홍수가 안 나거든, 그래서 둑을 만들어야 되는데. 근데 이게 막으면 터지고, 막으면 터지고 그그던.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고민을 한참 하는데. 한 40대쯤 되는 여자가 지나가면서 하는 말이 당신들이 그렇게 둑을 백 번 막아봐야 백 번 헛고생 하는 거시더. 하그던. 그래 이 말을 듣고는 사람들이 거 여자가 쓸데없는 말을 한다. 막 욕을 했어요. 근데 그 중에서도 저리 말하는 게 무슨 연유가 있을 게라고. 그래서 연유를 물어보자. 이렇게 중론이 모아져서 그 여자에게 물어보니, 여자가 하는 말이 서쪽으로 물이 나가는 거랑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거든. 그래 가만히 이치를 생각해 보니, 그도 그럴 것 같거든. 그래서 그 여자에게 총지휘를 맡기고 일을 시작했어. 그랬더니 참말로 둑이 막아졌어. 그후로 그 못물로 농사를 잘 지었어.

안동 옛이야기

안동옛이야기는 무엇이 있나요? 안동옛이야기 27개를 올려드립니다. (안동옛 이야기) 1.천사 성황당 옛날에 마을주민 한사람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너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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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옛이야기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동옛이야기에 대해 알려주세요! 궁급합니다! 저는 안동 용상동의 옛이야기를 잘 알아요. 옛날에 한 아씨 머슴넘이 머슴 생활에 질려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절벽에...

부산시 동구에 전해 내려오는 옛 이야기

사회 조사학습을 하려고 합니다 부산시 동구에 전해 내려오는 옛 이야기나 전설을... 고향 안동의 옛 이름인 영가(永嘉)를 따서 ‘영가대’라고 이름지었다. http://tour....

안동 경치좋은 곳과 쉴수있는곳 좀...

... 여기서 식사하시고 찻집은 안동댐 가는길에 '옛이야기"라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넓은 마당과 앞의 낙동강의 운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차를 한잔 하시고 안동댐 기념탑을...

독도에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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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동의유물과유적,고강동의마을...

... 향토위인,옛이야기,고강동의자랑거리, 역사 고강동 (문화유적) 공장공 변종인... 안동네 등의 마을 형태가 반달과 같이 생겨서 붙여진 명칭이다. (1) 점말: 여월동 초입...

동시 잘쓰는 방법

... 나도 쓸모 있을걸 이오덕 창작과비평사 1984.10.01 팔매 던지기 - 안동 대곡분교 2... 숨은 옛이야기 가득 싣고 어디론가 바람처럼 달려간다. 어디로 가는 걸까? 먼 동화나라로...

시화 쓸만한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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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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