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 이동면의 문화재

남해군 이동면의 문화재

작성일 2014.12.06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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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이동면의 지금 존재하는 문화재는 무엇무엇이 있습니까? 

 

남해군 이동면의 문화재에 대하여 자세한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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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이동면의 문화재)

 

1.남해 용문사 괘불탱

 

종 목  보물  제1446호 
지 정 일 2005.09.06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용문사 
시 대 조선시대


본존불상 좌·우에 협시보살상만을 배치시켜 삼존도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다. 중앙의 본존불상을 위시하여 좌측에는 정면을 향한 채 똑바로 서서 여의를 들고 있는 보살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좌협시보살상과 동일한 자세로 서서 연꽃가지를 받쳐 든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다.

 

중앙의 본존불상은 어깨가 훤히 드러난 오른손을 길게 내려뜨리고 왼손을 가슴 앞까지 들어올린 채 두 발을 좌·우로 벌려 연화좌를 딛고 서 있는 입불상으로, 둥글넓적해진 형태에 눈·코·입이 작게 묘사되고 미소가 잘 보이지 않는 경직된 표정의 얼굴은 수평으로 들어올려 각이 진 어깨와 더불어 18세기 후반 이후 불화들에서 주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식 특징이다.

 

좌협시보살상은 보관을 쓰고서 여의를 들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석가모니불의 좌협시인 문수보살상이라 추정된다. 머리 크기에 비하여 어깨가 좁아지고 작아진 발로 인하여 위축된 느낌이 들긴 하지만, 팔에 걸쳐 흘러내린 길고 굵은 천의자락으로 인하여 전체적으로는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우협시보살상 또한 좌협시보살상과 표현이 유사하다. 그림 하단부에는 화기가 남아 있다.

 

이 괘불탱은 인물의 형태 및 표정, 신체 비례 등에 있어 18세기 중반 이후 불화의 전형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직된 듯 조화롭고 세련된 표현기법을 보여주어 18세기 중반 이후 불화 연구의 자료적 가치가 크다.

 

2.다정리 삼층석탑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3호

지 정 일 1974.02.16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다정리 587-1 
시 대 고려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다천사에 세웠던 석탑이라 한다. 절의 내력과 역사는 알 수 없고, 다만 다천사가 용문사에 편입될 당시 탑만이 원래의 절터에 남게 되었다고 전한다.

 

현재 탑신부의 몸돌 2개와 지붕돌 2개만 남아 2층탑의 모습이지만, 원래는 3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이 보이고, 지붕돌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3개의 보주(작은 공모양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지붕돌이 두툼해지고 밑면의 받침이 3단인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3.보리암 전 삼층석탑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4호

지 정 일 1974.02.16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상주리 2065 
시 대 고려시대


보리암이라는 암자와 가까운 남해금산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어, ‘보리암전삼층석탑’이라 불리고 있는 3층 석탑으로, 주변의 경치가 너무나 빼어나 더욱 유명해졌다.

 

2층 기단 위에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을 놓고 머리장식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2개씩의 안상을 얕게 조각하였다. 위층 기단은 아래층에 비해 폭이 크게 줄었다. 탑신의 몸돌 각 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가지런히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는 직선을 유지하다 네 귀퉁이로 갈수록 두툼해지면서 위로 솟았다. 꼭대기에는 보주(구슬모양의 장식)만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허태후(김수로의 왕비)가 인도에서 가져온 사리를 원효대사가 이곳에 모셔 두었다 하나, 두꺼운 지붕돌 과 3단의 지붕돌받침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

 

 

4.용문사 대웅전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5호

지 정 일 1974.02.16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용문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금산에 세웠다는 보광사를 후에 이곳에 옮겨 지은 것이라 전하나, 처음 지은 때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처음에는 첨성각만이 있었으나, 조선 현종 2년(1661)에 탐진당과 적묵당을 지었다. 이렇게 절의 규모가 커지자 이곳이 보광사보다 좋은 곳이라 하여 보광사의 대웅전과 봉서루를 옮기고 용문사라 이름하였다. 지금의 건물들은 임진왜란(1592)으로 불탄 것을 다시 지은 것이며, 승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운 절이라 하여 숙종 때 왕실의 보호를 받았다.

 

용문사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은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기둥은 대체로 낮고 가운데 부분이 다소 볼록한 배흘림 기둥이다.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으로, 앞면의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2구씩 공포를 배치하였다. 처마 밑에는 절의 이름에 어울리게 용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으며, 공포부분에는 연꽃무늬 장식을 하였다. 겹처마 건물로 덧서까래가 길어서 전체적으로 지붕이 위로 휘어져 들려보이며, 네귀퉁이에 추녀를 받치는 기둥인 활주가 있다. 내부의 불단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달아 장엄하였다.

 

용문사 대웅전은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법당 건축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5.용문사 석불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지 정 일 1974.12.28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통일신라


약 300년 전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문사 경내에서 발견된 보살상이다. 현재는 하얀 분칠을 한 상태여서 본래의 모습을 자세히 알 수 없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원만하나 눈과 입이 작고 코가 큼직하여 다소 형식화된 면이 보인다. 긴 상체에 넓은 무릎 등은 부피감이 풍부하고 탄력적이어서 보살상의 격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흘러내리고 있는데, 띠주름 무늬가 자연스러워 불상의 특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왼손은 배에 대고 병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에 대었는데 연꽃가지를 잡고 있었던 것 같다.

 

통일신라 후기의 원만한 특징이 표현된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 내지는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6.촌은집 책판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72호 
지 정 일 1979.12.29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이 책판은 조선 인조 때의 학자 유희경(1545∼1636)의 시집인『촌은집』을 간행하기 위하여 만든 판목이다.


유희경은 조선 전기의 시인으로, 남언경의 문인이었다. 특히 상례에 밝아 국상은 물론 평민의 장례까지 그에게 문의해왔다. 또한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관군을 돕기도 하였다.


『촌은집』은 그의 시문집으로 시, 창, 전기와 한문학의 문체 가운데 하나인 묘표, 묘지명 등을 수록하였으며, 3권 2책으로 판각된 책판 수량은 52매이다. 유희경의 손자인 유자욱이 편집, 정리하고 김창협이 서문을 붙였으며, 유희경이 증손자 유태웅이 남해 용문사에서 다시금 발간한 책판이다. 이것은 거의 300년 세월이 지남에 따라 더러는 썩고 마멸되었다. 조선시대 상례의 자료인만큼 그 점이 특히 문화재로서의 아쉬움이 남는 것이라 하겠다. 

 

 

7.남해 용문사 부도군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5호 
지 정 일 2005.07.21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의 용문사 부도원에 있는 부도군이다. 총 9기로 이루어져 있다. 부도 1·2·3은 동체 1장과 대석(받침돌) 1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석종형 부도이다. 동체는 종 모양이며 밑으로 가면서 좁아진다. 대석 둘레에는 복련의 연꽃무늬가 있지만, 손상이 심해 알아보기가 어렵다.


부도 3은 세담당일행대사의 것이다. 동체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에 새긴 연꽃무늬가 선명하게 보이고 상륜은 연꽃 봉오리가 약간 벌어진 모양을 하고 있다. 부도 4는 용문사 부도군 중에서 가장 크고 기단석, 동체, 옥개석 각각 1장씩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체는 원기둥 모양으로 가운데가 불룩하고 옥개석은 사각형이다.


부도 5는 대석, 동체, 옥개석 각각 1장씩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석은 윗부분이 둥글고 아랫부분이 네모로 각이 져 있다. 동체는 육각형으로 가운데가 불룩하고 윗부분과 아랫부분에 무늬를 새겨 넣었다. 옥개석은 편평한 사각형이고 가운데에 복발이 올려져 있다.


부도 6·7은 동체와 대석 각각 1장씩으로 이루어진 석종형 부도이다. 동체는 밑으로 가면서 좁아지고 상륜은 보주처럼 생겼다. 부도 8은 기단석, 대석, 동체, 옥개석 각각 1장씩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석은 땅속에 묻혀 있고 대석은 8각형이다. 옥개석은 네모난 지붕 모양이고 한가운데에 자라 무늬가 새겨져 있다. 동체 옆에 별도의 표석이 있으며 '해진당천해대사족록비'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지만, 손상 정도가 심하다.


부도 9는 기단석, 동체 각각 1장씩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석은 자연석이다. 동체는 밑으로 가면서 좁아지고 윗부분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상륜은 보주처럼 생겼다.


각 부도는 잘 보존되어 있고 당호를 새기는 표현기법으로 보아 17~18세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석종 형식의 부도를 연구하는 데 사용된다.

 

 

8.남해 용문사 목조지장시왕상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6호
지 정 일 2005.07.21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의 용문사 명부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1호)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이다. 모두 25구인데, 가운데 지장보살상을 비롯해 좌협시 도명존자와 우협시 무독귀왕, 그리고 시왕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용문사에 있는 발원문을 통해 1678년 지현이라는 금어가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지장보살상은 전체적으로 양감이 느껴지고 안정되어 있다. 몸은 곧게 펴고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얼굴은 네모나고 이마가 매우 넓으며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다. 두 손은 허벅지 위에서 각각 첫째 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대의 안에 입은 편삼은 오른쪽 어깨에 걸쳐 있으며 대의는 엉덩이까지 길게 늘어져 있고 옷 주름을 간략하게 나타내었다. 왼쪽에 있는 도명존자는 오른손에 석장을 쥐고 있으며 오른쪽에 있는 무독귀왕은 합장을 하고 있다.


시왕상들은 모두 앞을 보고 의자에 앉아 있다. 세밀한 표현기법까지 비슷하지만, 각각의 상마다 손에 든 것이 약간씩 다른데, 홀을 쥔 상, 책과 붓을 든 상, 손을 무릎 위에 걸친 상 등 다양하다. 옷은 위에는 홍포를 입었고 아래에는 푸른색이나 붉은색 군의 위에 녹청색·백록색·푸른색 등의 요포를 걸쳤다.

 

 

9.남해 용문사 목조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7호 
지 정 일 2005.07.21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의 용문사에 있는 나무로 만든 구유(소나 말 따위의 가축들에게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형태의 지조이다. 조선시대에 절에서 종이를 만들 때 원료를 풀 때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나무의 가운데를 파서 만들었으며 표면에 나이테가 선명하다. 목조의 양끝에 있는 턱받이의 길이는 각각 약 37㎝, 약 47㎝이다. 한쪽 턱받이 밑에는 부재가 세로로 붙어 있는데 지름 약 7.5㎝의 원이 뚫려 있고 용기 내부의 가운데 바닥에도 지름 약 5.5㎝의 원이 뚫려 있어 배수에 이용된다. 부분적으로 갈라진 틈이 보이나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다.

 

 

10.남해 용문사 목조사천왕상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8호 
지 정 일 2005.07.21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의 용문사 천왕각 안의 양옆에 있는 목조사천왕상이다. 천왕각 좌우에 각각 2구씩 놓여 있는데, 오른쪽에는 동방 지국천왕, 남방 증장천왕이 있고, 왼쪽에는 서방 광목천왕, 북방 다문천왕이 있다.


각각의 사천왕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갑옷을 입고 있다. 얼굴은 네모형이고 모두 분홍색이지만 다문천왕상은 붉은빛을 띤 연한 검푸른 색으로 색칠되어 있다. 옷자락이 두 어깨에서 발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손에는 각각 지국천왕은 비파, 증장천왕은 장도, 광목천왕은 용과 여의주, 다문천왕은 보탑을 들고 있다. 발을 아래로 내리고 있으며 발 밑에 잡귀 1구씩을 밟고 있다.

 

 

11.남해 용문사 건륭이십오년 명운판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9호 
지 정 일 2005.07.21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운판의 형태는 정상부의 보주형 장식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원형의 당좌를 중심으로 외곽을 화염형으로 처리하였다. 일반적인 운판의 형태가 구름모양을 띠는 것과 달리 이 운판은 화염형에 가까운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좌우보다 상하가 긴 형태이다. 앞뒤 면 모두 당좌 주변에 돋을새김 문양을 장식한 양면식 운판이다.


당좌의 상부에는 범자 삽입 원권문 3개가 삼각형 구도로 배치되어 있으며, 그 정상부와 좌우에 매달기 위한 구멍이 각각 1개씩 모두 3개가 뚫려있다. 당좌는 이중 원형 테두리를 둘러 구획하였는데, 당좌 내부에는 별다른 조식이 없고, 테두리 안에는 도식화된 연당초문이 시문되어 있다. 그리고 당좌 주위의 여백에는 궐수문과 구불구불한 선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데, 운판이라는 유물의 성격으로 볼 때 도식화된 운문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당좌의 둘레에는「건륭25년경진5월일」과「진주백천사」라는 명문이 점각되어 있다. 그리고 배면의 문양구성 역시 당좌 테두리 내에 연당초문이 생략되었을 뿐 전면과 동일하며, 「도광17년정유2월일매득」과 「남해용문사」라는 점각 명문이 새겨져 있다.

 

 

12.남해 용문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6호 
지 정 일 2006.11.02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이 삼존불은 대웅전 중앙에 위치한 장방형 불단 위에 각각의 연화좌를 두고 그 위에 봉안되어 있다. 머리 뒤편 정수리 쪽으로 서너 개의 나발이 결손 되었거나 소매와 군의자락에 도금이 탈락한 것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세 구의 불상은 저부에 마련된 복장공이 모두 열려 있었고, 복장물 역시 대부분이 도난당한 상태였으며, 그중 경전 · 다라니 등이 불상 내부의 목 부분과 팔, 다리 쪽으로 끼워져 남아 있었다. 또한 양측 협시상은 저부의 복장공 외에 배면 중앙에 타원형의 복장공을 따로 만들어 다른 판재로 엉성하게 덧대어 마감되어 있었다. 배면에 마련된 별도의 복장공은 팔의 내부나 머리와 같이 좌상의 밑바닥에서 복장물을 채우기 어려운 것을 쉽게 처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13.남해 다정리 지석묘

 

종 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62호

지 정 일 1983.08.06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다정리 911-5 
시 대  청동시대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서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뚜껑돌을 덮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들판의 논둑을 따라 대체로 3∼4m 씩 사이를 두고 11기의 고인돌이 있다. 형태상 모두 바둑판식으로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3m, 너비 2m이다. 땅 속에 마련된 하부구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상자 모양의 석관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 주변에서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이들 고인돌 외에 남해군에는 남면리, 평현리, 심천리 등 각지에 고인돌들이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이 지역 청동기시대의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14.남해장성


종 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154호 
지 정 일 1996.03.11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신전리 115외 12필지 
시 대 고려말~조선초

 
경상남도 남해에 있는 이 성은 자연돌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은 장성이다. 장성은 국경의 경계지대에 쌓아 적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쌓은 것을 말한다.


축성 방법이 특이하여 전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성의 형태이며 둘레 150m, 높이 1∼2m이다. 논과 밭 주변의 성벽은 거의 훼손되어 형체를 찾아보기 어려우나, 임야 속의 성벽은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이 성은 군사상의 목적으로 고려말이나 조선 초기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15.용문사 천왕각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0호 
지 정 일 1985.11.14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용문사는 조선 중기에 탐진당과 적묵당을 지었는데, 이곳 자리가 좋다하여 금산의 보광사 대웅전 등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기고 절의 이름도 용문사라 하였다.


절의 입구에 있는 천왕각은 조선 숙종 28년(1702)에 지었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사천왕을 모시고 있는데, 다른 절의 경우 마귀를 밟고 있는 형상이지만 이곳의 사천왕은 부정한 양반이나 관리를 밟고 있다. 동쪽은 지국천왕, 남쪽은 증장천왕, 서쪽은 광목천왕, 북쪽은 다문천왕이 비파, 칼, 용, 창 등을 들고 절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잡귀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문지기 구실을 한다

 

 

16.용문사 명부전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1호 
지 정 일 1985.11.14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용문사는 조선 중기에 세운 절이다. 처음에는 탐진당과 적묵당이 있었는데, 근처 금산의 보광사 보다 좋은 자리라고 하여 백월당 스님이 보광사 대웅전 등의 건물을 옮기고 ‘용문사’라 하였다.


명부전은 임진왜란 뒤에 세웠다고 전하나 지은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지장전,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건물 안쪽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시왕을 좌우에 모시고 있다. 지장보살은 모든 인간을 교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시왕은 지옥계의 심판관이다.

 

 

17.난곡사

종    목  문화재자료  제237호 
지 정 일  1997.01.30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난음리 910  
시     대  고려시대
 
고려 후기 뛰어난 유학자였던 백이정(1247∼1323)의 사당이다.

백이정은 고려 충렬왕 24년(1298)에 왕을 모시고 중국에 가 10년간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우리나라에 돌아와 성리학을 전파한 인물이다. 이제현, 박충좌 등의 제자를 두었으며 충성왕 때 상의회의 도감사를 거쳐 상당군에 봉해졌다.

본당인 난곡사는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내부 정면에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 외에 근래에 세운 외삼문과 경내의 도동재 및 내삼문이 있다.

이곳에서 해마다 음력 3월 10일이면 이 고장의 유림들이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제례를 지내고 있다. 

 

 

18.남해 용문사 건양2년 영산회상탱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47호 
지 정 일 2004.07.01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의 용문사에 보관되어 있는 영산회상탱이다. 영산회상은 영취산에서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하던 자리를 말하며 이를 그린 불화가 영산회상탱이다. 그림의 가운데에는 석가모니가 있고 그 양 옆에 협시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사천왕이 있다. 그 윗부분에는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 관음보살, 지장보살 등이 각각 2구씩 있으며, 가장 위쪽에는 대제자상, 8금강, 사천왕상 등의 권속들로 꽉 채우고 있다.


주로 사용된 색채는 흰색·녹색·붉은색이고 푸른색과 회색도 일부 쓰이고 있다. 본존불의 불신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머리는 검은색으로 윤곽선을 그렸다. 대의는 붉은색의 우견편단(右肩偏袒)이며 가장자리에 꽃무늬를 장식하였고 대의 안쪽 면은 푸른색이다. 나머지 보살들도 본존불과 표현기법이 매우 비슷하고 사천왕상의 색채도 매우 화려하다.


화기에 의하면 건양 2년인 1897년에 조성된 작품으로 편수, 연호, 봉의 등의 화원이 그림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시주자의 명단도 알 수 있다.

 

 

19.남해 용문사 소장 문헌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51호 
지 정 일 2004.07.01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의 용문사에서 보관하고 있는 문헌이다. 필사본 2건 5책으로 만년통고 2책과 복전집 3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의 내용은 1704년(숙종 30)에서 1956년 후반까지 용문사 내에서 있었던 주지와 간부 승려의 변화, 여러 가지 주요 사건, 시주자의 명단, 시주 물건의 목록 등에 관한 기록이다.


이외에도 나라 안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과 행사 등도 함께 적고 있다. 당시 실명을 담고 있어 남해군의 역사 및 사찰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20.남해 용문사 삼장보살탱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52호 
지 정 일 2004.07.01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의 용문사 대웅전에 걸려 있는 삼장보살 탱화이다. 화면의 구조는 2단으로 나뉘어 있다. 화면의 윗부분에는 가운데에 천장보살이 있고 그 양옆에 진주보살과 대진주보살이 있다. 그 왼쪽에는 지지보살, 용수보살, 다라니보살이, 오른쪽에는 지장보살상이 있다. 지장보살상 양옆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있다. 화면 맨 위쪽에는 천부중, 신중, 명부중 등 권속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화면 아랫부분에는 동자 2구와 신장상 22구가 그려져 있다. 각 도상들이 있는 화면은 구름으로 나뉜다.


주로 사용하는 색깔은 주색·녹청색·살구색이며, 일부는 푸른색과 회색을 사용하고 있다. 화면 맨 아래쪽은 땅을 나타내는 황토색이 칠해져 있다. 용문사에 소장되어 있는 또 다른 작품인 용문사 건양2년 신중탱(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53호)과 같은 시기인 1897년에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조선 말기의 삼장보살 도상을 연구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로 이용된다.

 

 

21.남해 용문사 건양2년 신중탱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53호 
지 정 일 2004.07조선시대.01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의 용문사 대웅전에 걸려 있는 신중탱이다. 그림의 크기는 가로 213.5㎝, 세로 194.5㎝이다. 화면은 크게 위와 아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윗부분에는 범천과 제석천을 왼쪽과 오른쪽에 두고 그 둘레에 천녀와 천동 그리고 여러 권속들을 두었다. 아랫부분에는 가운데에 위태천을 두고 그것을 중심으로 12신장상을 배치하였다. 주로 사용한 색깔은 흰색과 붉은색이고 녹색과 푸른색도 사용하였다. 담묵을 사용해 일부에 음영을 나타냈고 몰골법으로 문양이나 주름, 매듭을 표현하여 입체감을 주었다.


건양 2년, 즉 1897년에 제작되었으며 참여한 화원의 수가 많았다. 보존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조형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22.남해 용문사 동종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77호 
지 정 일 2005.07.21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의 용문사 대웅전 내에 있는 동종이다. 용뉴(종 꼭대기 부분의 장식)는 입을 벌린 용 모양으로 1개의 여의주를 받치고 있는 형태이다. 꼬리가 음통을 두 번 휘감고 있고 음통의 입구 가장자리는 연잎 4개가 벌어져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천판은 연꽃 12잎으로 이루어져 있고 편평하다. 천판 바로 아래에 몸체가 이어져 있다.


천판과 몸체가 만나는 부분인 종견은 돌기선으로 나뉘어 있다. 돌기선 아래에 있는 원 안에 범자(梵字)를 새겨 무늬띠를 만들었으며 이 무늬띠를 상대라고 한다. 상대 아래에는 4개의 유곽과 4구의 보살입상이 교대로 새겨져 있다. 유곽은 사다리꼴을 하고 있으며 그 안에 유두 9개가 새겨져 있다. 몸체 아래는 하대라고 하며 여기에는 보상화와 당초 무늬가 새겨져 있다.


몸체에 명문이 없어서 확실한 제작시기를 알 수는 없으나 그 표현기법을 볼 때 17~18세기 작품이라고 짐작된다.

 

 

23.남해 용문사 청동반자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78호 
지 정 일 2005.07.21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의 용문사 적묵당 툇마루에 보관되어 있는 징을 닮은 반자이다. 지름은 약 70cm이고 청동을 재료로 하고 있다. 앞면에는 원형의 돌기선이 3줄 있어 내구, 중구, 외구로 나뉘어 있다. 내구는 오랫동안 때려 쳐서 많이 닳아 있으며 내구과 중구는 무늬가 없다. 외구에는 동그란 연꽃잎 무늬 5곳 속에 범자를 새겨 넣었다. 옆면에도 3줄의 동그란 띠가 둘러져 있으며 따로 만든 3개의 반원 고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 있다.


옆면은 손상되어 구멍 난 부분이 약간 보이나, 보존상태는 좋은 편이다. 조선 후기 불교 공예 양식을 연구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24.남해 용문사 봉서루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94호 
지 정 일 2006.04.06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번지 
시 대 조선시대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의 용문사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 거치는 건물이다. 경내로 들어서는 출입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봉서루에는 《불구산봉서루병서》(1720년)와 《영산전천왕각봉서루중수기》(1833)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최초로 건립된 것은 1720년이고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833년일 것으로 보인다.


앞면 7칸, 옆면 4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팔작지붕을 갖춘 2층 건물이다. 누 아래로 지나다니게 되어 있는 구조를 하고 있으며 아래층의 기둥을 높게 만들었다. 아래층의 공간은 앞면이 비어 있고 뒷면은 가운데에 난 통로를 뺀 나머지 공간에 창고를 마련하여 벽을 막았다. 위층의 바닥은 우물마루로 된 넓은 강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면과 옆면의 벽에는 바라지 문이 나 있으며, 대웅전 쪽을 향하는 뒷면은 교살창의 삼분합문을 달았다. 천장은 연등천장(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천장)이고 공포(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는 조선 후기의 초익공 형식이다.

 

 

25.남해 용문사 아미타여래오존탱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06호 
지정(등록)일 2006.07.20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의 용문사에 보관되어 있는 후불홍탱이다. 본존불은 아미타여래이고 좌우협시불은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며 뒤쪽에는 가섭과 아난존자를 배치하여 5존 형식을 갖추고 있다. 주로 사용한 색깔은 붉은색이고 여기에 어두운 녹청색과 군청색들을 사용하였으며, 사물의 윤곽과 구름에는 노란색을 사용하였다.


존상들은 신체의 비례감이 좋은 편이다. 대좌 위의 본존불은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두 손은 각각 첫째 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맞대고 있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 왼손은 무릎 위에 두고 있다. 짙은 녹청색의 편삼 위에 입은 붉은색 대의는 변형통견이다. 옷 주름 선은 짙은 붉은색으로 그렸다. 몸통의 색은 황백색이고 테두리는 붉은색 선으로 칠하였으며 다른 존상들도 같은 표현기법을 사용하였다.


1870년 금암당 천여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상된 부분이 많이 보이지만 홍탱화의 표현양식을 연구하는 데 이용된다.

 

 

26.남해 용문사 동치3년 신중탱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07호 
지 정 일 2006.07.20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의 용문사에 보관되어 있는 신중탱화이다. 그림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지만, 신들의 수가 많으며 이를 알맞은 구도로 배치하였다. 화기가 잘 보존되어 있어 동치 3년, 즉 1864년 봉의, 법선 등이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색을 보완하기 위해 칠한 흔적이 없어 원래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27.남해 용문사 현왕탱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08호 
지 정 일 2006.07.20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이 작품은 현왕을 중심으로 11존의 권속이 원형으로 둘러 서 있으며, 권속들은 좌우대칭 구도를 이룬다. 흰 바탕 위에 담묵으로 산수를 그린 4곡병 앞에 현왕은 의자 등받이에 흰색 천이 덮인 의자를 뒤로 하고 목리문이 그려진 넓은 탁자위에 반가좌의 자세로 앉아 있다.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두고 왼손은 가슴 위까지 들어 홀을 가볍게 쥐고 있는 모습으로 일반적으로 탁자가 놓인 의자에 앉아 권속들과 망자를 심판하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현왕의 양 옆에는 관을 쓰고 공복을 입은 인물이 쟁반에 복숭아와 함을 들고 서서 그 옆으로 등을 돌려 선 인물과 서로 이야기하듯 서 있어 인물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로 이어져 있는 듯하며 다시 그 아래에는 산개를 든 2명의 인물이 서 있다.


현왕의 앞에 홀을 들고 등을 살짝 구부려 대륜성왕과 전륜성왕이 서 있고, 그 좌측으로 녹사가 명부를 들고 있거나 혹은 가운데 무릎을 꿇어 망자의 죄상을 고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무릎 꿇은 인물은 관찰자의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각자의 역할을 맡아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역동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물들을 자세히 보면, 현왕의 피부색은 옅은 갈색으로, 다른 권속의 흰 피부색과 차이를 두고, 찌푸린 미간, 인중이나 턱 등에는 선염하여 음영을 주었다. 눈썹과 수염은 담묵으로 펴 바르고 검은 세선과 흰 세선을 교대로 그어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사선으로 올라간 눈, 이마로부터 뻗은 코, 몰골법으로 그린 작은 붉은 입술은 다물어 신중히 판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현왕을 표현하기에 손색이 없다.


가장자리를 검은색으로 장식한 붉은 색 관복은 바탕보다 짙은 동색의 선을 사용하여 옷주름을 표현하고, 또한 붉은 관복 위에는 황토로 그린 원권문이 장식되었다. 권속의 의복은 주로 붉은색과 녹청색을 번갈아 사용하여 색의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28.남해 용문사 건양2년 독성탱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09호 
지 정 일 2006.07.20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구도는 커다란 암산을 배경으로 한 그루의 노송 앞에 독성을 배치한 구도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화면을 가득 채운 암산과 그 앞으로 노송 한 그루, 해와 새, 계곡의 물줄기 그리고 한편엔 아름다운 꽃과 운무를 적절하게 배치하여 환상적인 심산유곡을 표현하였다. 암산에서 이어진 평평한 암반 위에 독성은 양다리를 옆으로 벌려 앉아서 경상 위의 책과 향로를 옆으로 밀어둔 채 깊은 사색을 즐기며 편안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그려둔 것이다.


오른 팔은 바닥을 짚어 몸을 지탱하고 왼팔은 손목에다 두 줄의 단주와 함께 손에도 다시 굵고 목리문이 그려진 단주를 쥐고 있다.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壽老人처럼 불룩한 머리는 붉은 색을 발라 선염하고, 얼굴 및 피부색은 엷은 갈색을 펴 바르고 붉은 선으로 윤곽을 그렸으며, 이마주변, 안와선, 턱 아래 등에 부분적으로 피부색과 같은 색으로 약하게 음영을 주었다. 늘어진 흰 눈썹과 턱아래 수염은 흰색으로 그리고, 반달모양의 눈은 먹선으로 상금선을 긋고, 하금선 눈꼬리에 끝만을 살짝 표현하였으며, 동공은 갈색을 칠하고 먹선으로 윤곽을 그렸다. 독성은 상체를 드러낸 채 가장자리를 검은색으로 댄 붉은 가사를 몸에 두르고 있다. 붉은 가사 위에는 초문을 그린 원권문이 장식되어 있고, 가사의 옷주름은 먹선으로 그려 넣었다.


독성 뒤의 산수는 양록으로 칠하고 먹선으로 산의 준을 표현하고 그 위에 흰태점을 올려 장식적인 효과를 더하였다.


독성의 좌측에 솟은 노송은 둥글게 아치를 이루면서 머리 위로 휘어졌고 그 노송은 갈색을 칠하고 그 위에 붉은 색을 칠하고 먹선을 한번 돌린 태점을 그려 넣어 나무의 질감을 살렸다. 부채꼴 모양의 솔잎, 붉은 해 아래 청조와 노송 가지를 휘감은 운무, 떨어지는 폭포 등은 19세기 이후 민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며, 산수의 표현이 좋은 작품이다.

 

 

29.남해 용문사 독성탱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10호 
지 정 일 2006.07.20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이 불화는 화면 가득히 독성을 배치하고 최상단의 소나무와 독성의 양측에 암석을 그려 넣어 자연에서 수도하는 수도자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독성은 가장자리에 붉은색을 장식한 자리 위에 3/4분 정도 방향을 틀어 앉아 오른쪽 다리를 세우고 무릎 위에 오른팔을 뻗어 내리고, 왼손에는 주장자를 쥐고 어깨에 비스듬히 기대었다.


구체적인 표현기법을 살펴보면, 피부색은 흰색이며 전체적으로 펴 바르고 붉은색으로 윤곽선을 그었으며, 이마의 주름선이나 미간, 안와선, 턱 등은 선염하여 음영을 주었다. 담채의 몰골법으로 그려진 흰 눈썹과 사물을 주시하는 듯한 눈은 상금선을 먹선으로 긋고, 하금선은 먹선으로 눈꼬리의 끝만을 살짝 그어 윤곽을 그리고, 눈동자는 갈색을 칠하고 그 가장자리와 동공은 먹선으로 마무리하였다. 꽉 다문 붉은 입술은 독성의 눈빛과 아울러 구도자로서의 강인한 의지가 표현되기에 손색이 없다.


가슴과 배가 모두 드러나게 양 어깨에 걸친 가사자락은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펴 바르고 짙은 붉은색으로 그어 옷주름을 표현하였다.


화면 최상단에 그려진 소나무는 부채꼴 모양으로 솔잎이 겹겹이 그려졌는데, 전체적으로 녹색을 칠하고 그 안쪽은 짙은 녹색을 칠해 바깥으로 서서히 선염해 입체감을 주었다. 또한 독성의 양측에 그려진 큐빅 모양의 바위는 바깥으로부터 청색, 백군으로 칠하고, 가운데는 본지가 드러나도록 하여 바위의 입체감을 주었다. 

 

 

30. 남해 용문사 산신탱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11호 
지 정 일 2006.07.20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구도에서 배경이 되는 자연은 중요하지 않은 듯 암산과 폭포, 하늘과 서운, 노송 등을 먼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인 산신과 사자를 함께 화면 가득 도설하고 있다. 깊은 산 계곡에 비스듬히 솟은 노송 앞에 다소 둔중해 보일만큼 큰 체구의 산신이 오른 손에 긴 지팡이를 쥐어 땅에 짚고 왼 손엔 불로초를 들고 커다란 호랑이에 몸을 기대어 우측 전방을 주시하며 앉아있다. 복장은 흰색의 내의를 입고 그 위에 가장자리를 초문을 넣은 흰 반원문으로 장식한 단령포를 입었으며, 가슴과 배에 의대로 묶어 내려 다소 번잡스러운 느낌을 준다. 머리카락은 빗어 올려 정수리에서 상투를 틀어 치포관을 쓰고 그 위에 작은 원문이 장식된 투명한 망건을 썼다.


얼굴은 갈색을 펴 바르고, 이마의 굵은 주름, 턱, 인중, 안와선 등은 선염으로 음영을 주었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담묵으로 칠하고 흰색과 검은색의 세선으로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산신이 기대고 있는 호랑이는 산신만큼 크게 그렸으며, 방울같은 큰 눈의 눈동자는 검은색으로 그 외곽은 갈색과 녹색을 번갈아 칠하고 가장 외곽은 선홍색을 칠해 호랑이다운 눈을 강조하였다. 붉은색으로 칠하고 먹선으로 윤곽을 잡은 코, 입 밖으로 장난스럽게 나온 이빨과 혀는 해학적인 분위기를 준다. 한편, 눈두덩이 위에 눈처럼 보송보송한 하얀 털이나 몸에 표현된 털은 터럭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묘사하여 호랑이와 산신의 일체된 분위기를 연출함에 손색이 없다. 굵고 튼튼한 두 앞발을 적당하게 벌려서 힘차게 버터서서 가슴을 내밀고 얼굴로 산신을 감싸 보호하는 듯 하며, 쭉 뻗은 허리를 따라 S자로 뻗힌 꼬리도 역동적인 힘이 넘쳐 보인다.


표범의 등 뒤엔 산신의 시자인 천재동자가 푸른 천의를 어깨 위로 나부끼며 양손으로 흰 대반에 공양물을 받쳐 들고 있다.


먼 풍경에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와 청명한 하늘에 떠있는 흰 구름, 마치 노송임을 나타내듯 갈색 위에 그려진 다양한 크기의 태점과 부채꼴 모양의 솔잎 등 산수와 함께 산신과 호랑이의 능력이 표현되기에 충분하다. 

 

 

31.남해 용문사 영해당 영정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12-1호 
지 정 일 2006.07.20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19세기 후반 용문사의 화엄강주였던 영해당 기홍의 초상화로 ‘기묘년 조하’에 쓴 유석초의 영찬으로 보아 1891년 4월에 제작된 것이다.


화면속의 인물은 약간 향좌측을 향한 좌안7분면상이며 돗자리 위에 놓여있는 의자에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바닥에는 군청색 테두리를 두른 돗자리가 정면시점으로 펼쳐져 있고 화면 향좌측에는 향탁위에 향로 등이 묘사되어 있다. 왼손엔 주장자를 비스듬히 들고 있고, 오른손은 결가부좌한 무릎 위에 대어 염주를 가볍게 쥐고 있다. 이 향탁과 주장자에는 목리문이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32.남해 용문사 백월당 영정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12-2호 
지 정 일 2006.07.20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화면중앙 돗자리위에 백월당이 좌안 7분면의 결가부좌상을 하고 있다. 왼손에는 주장자를 잡고 오른손에는 염주를 쥐고 있다.


영정의 안면부는 살색으로 칠하고 먹선과 주색으로 윤곽선을 잡았으며 두부의 모발과 수염은 짧은 먹세선으로 표현하였다. 상검선은 농묵, 하검선은 담묵으로 그었고 눈동자는 갈색으로 동공은 농묵으로 찍었으며 눈동자의 좌우 끝은 담묵으로 바림하였다. 눈동자는 눈 상단에 치우친 채 약간 위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안면부의 주름은 먹선 위에 주선으로 강하게 표현하였다.


인물뒤편으로 배경은 생략되었고 바닥에 돗자리만을 묘사하고 있다. 스님은 짙은 잿빛 장삼위에 녹청색과 옅은 군청색 그리고 백색의 세 끈 매듭으로 연결된 홍가사를 걸치고 있다. 장삼 주름은 농묵으로 바림하였고 가사 주름은 짙은 주색으로 표현하였다.


돗자리는 상하윤곽선은 청색으로 처리하고 그 내부에 가로선을 따라 흰색땀을 그려 바느질자국을 나타내었고, 안쪽은 황토색바탕에 짧은 가로 먹선을 그어 돗자리무늬를 묘사하였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염주에는 간략한 목리문이 보인다.

 

 

33.남해 용문사 삼화상 영정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12-3호 
지 정 일 2006.07.20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이 그림은 지공·나옹·무학 삼화상의 모습을 한 폭에 그린 삼화상영정이다.


화면중앙에는 지공화상이 좌안7분면으로 결가부좌를 한 채 왼손에 염주를 들고 있으며 나옹화상 역시 좌안7분면에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지물은 없다. 반면 무학화상은 우안7분면에 결좌부좌자세로 오른손에 주장자를 잡고 지공방향으로 앉아 있다. 지공은 흰색 깃이 달린 내의 위에 녹색의 옷을 입고 그 위에 원권문이 그려진 붉은 색 대의를 걸쳤다. 나옹과 무학은 옅은 잿빛의 장삼위에 홍가사를 걸쳤는데 나옹은 매듭으로 무학은 금구장식으로 가사를 연결하고 있다. 특히 나옹과 무학의 장삼에는 선염에 의한 음영법을 사용하여 입체감을 주고 있다.


스님들의 안면부는 살색을 칠한 후 먹선과 주선으로 윤곽선을 그렸으며, 상검선은 농묵으로 하검선은 담묵세선으로 묘사하였다. 짧은 모발은 담묵바림위에 농묵세선을 그어 표현하였는데 콧수염과 턱수염의 묘사방식도 이와 동일하다.


화면의 뒤편에는 간략한 구름문양이 있을 뿐 배경은 생략되었고 각 인물의 머리 윗편으로 화제란이 위치한다. 화면하단에는 군청색테두리를 가진 무늬 없는 돗자리가 그려졌으며 인물들의 앞에는 목리문이 있는 향탁과 불꽃이 피어오른 향로와 찻잔이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화면 뒤 배경의 황토색 바탕을 보채하면서 인물들의 두부 윤곽이 약간 변형되었다. 

 

 

34.남해용문사팔화상영정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12-4호 
지 정 일 2006.07.20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화면을 상하로 이분한 뒤 상단에는 향우측부터 청진당, 청하당, 청운당, 락서당을, 하단에는 향우측부터 봉성당, 우진당, 용암당, 은암당을 그린 후 오른쪽 위에 각각 명칭을 기입하였다. 이들은 생략된 배경을 뒤로 무늬 없는 돗자리위에 좌안7분면의 결가부좌상으로 염주나 주장자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8명의 스님 가운데 행적이 확인되는 분은 별로 없지만 그 중 낙서당은 삼천포 운흥사 낙서암에 주석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시도유형문화재 제425호로 지정된 용문사 소재 부도군 9기 가운데 팔화상 중 청하당과 은암당의 부도가 포함되어 있다.


배경의 처리방식, 짙은 잿빛 장삼과 옅은 잿빛 장삼을 교대로 배치한 점, 가사의 매듭을 녹색, 청색, 황토색의 여러 끈으로 묶는 방식, 양 어깨의 기울기 정도, 안면부 윤곽과 묘사방식, 음영법에 의한 의복표현 안료의 선택, 화제란의 구성방식 등에서 칠화상영정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 같은 시기에 동일한 화승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삼화상영정은 구름문의 배경처리와 나옹화상의 법의표현은 다소 변화가 있는 요소이지만 무늬 없는 돗자리 표현, 인물의 윤곽과 양 어깨의 기울기, 한쪽어깨에 붉은 가사를 약간 걸치고 여러 매듭으로 연결하는 의복표현방식, 음영법에 의한 옷주름, 화제란의 구성방식 등이 칠화상영정·팔화상영정과 유사한 점이 많아 이 작품역시 같은 시기에 동일화승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35. 남해 용문사 칠화상 영정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12-5호 
지 정 일 2006.07.20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화면을 상하로 이분한 뒤 상단에 향우측으로부터 화영당, 인한당, 해경당을, 하단에 향우측으로부터 세염당, 나월당, 효월당, 송곡당을 순서대로 그리고 인물의 오른쪽 어깨위로 각각의 화제명호란을 만든 후 기입하였다. 스님들은 모두 좌안7분면에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손에는 염주 또는 주장자를 쥐고 있는 모습이다. 잿빛장삼에 홍가사를 걸치고 있으며 녹색, 군청색, 황토색의 매듭으로 가사를 수하고 있다. 짙은 잿빛과 옅은 잿빛 장삼을 교대로 배치하고 지물들도 변화를 주어 단조로움을 피하고 있다.


철선묘로 곧게 그린 후 약간의 음영을 가하여 입체감을 표현한 얼굴과 깊게 주름진 옷주름은 전통초상화법을 따르고 있으나 강한 음영법의 사용, 배경의 생략과 간략화된 돗자리, 일률적이고 변화없는 표정 등으로 보아 20세기 초의 작품으로 간주된다. 

 

 

36.남해 용문사 경암당 영정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12-6호 
지 정 일 2006.07.20
소 재 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시 대 조선시대


화면중앙에 위치한 경암당은 좌안7분면으로 왼손에는 주장자를, 오른손에는 염주를 쥐고 결가부좌하고 있다.


안면부는 백색을 바른 후 담묵선과 주선으로 윤곽을 잡았다. 눈의 상검선은 농묵으로, 하검선은 담묵으로 그었고 눈 양쪽 가장자리는 담묵으로 바림하였으며, 눈동자는 갈색을 바른 후 농묵으로 동공을 찍었다. 얼굴의 주름은 주색으로 긋고 그 주변을 엷게 바림하여 음영을 나타내었다. 머리의 정상부 모발과 수염은 백색의 짧은 선으로, 눈썹은 묵선과 백색의 세선으로 표현하였다.


인물은 흰 깃에 짙은 잿빛장삼위에 홍가사를 입은 후 녹색과 황색의 두 매듭으로 연결하였다. 장삼은 농묵으로 주름을 나타내어 음영을 표현하였고, 왼쪽어깨에 걸쳐진 가사의 모서리에는 사각형녹색바탕에 황색의 ‘天’자를 부착한 장식이 있다. 1955년 한국불교정화운동 이전까지는 홍가사를 수하였는데 이 홍가사에는 네 귀퉁이에 ‘天’자와 ‘王’자가 부착되어 있었다고 한다. 염주와 주장자에는 19세기부터 자주 나타나는 목리문을 그렸고 주장자의 고리와 양끝은 금니로 장식하였다.


인물의 뒷배경은 군청색바탕에 먹선으로 구름문양을 꽉 메운 충전구도이다. 화면의 1/2을 차지하는 돗자리는 갈색바탕에 주색세로선을 그은 후 백색, 황갈색, 먹으로 화문석문양을 묘사하였다. 그리고 돗자리 위의 방석은 주색 테두리에 배경과 동일한 군청색으로 격자문을 표현하였다. 화면 향좌측 목리문이 그려진 향탁위에는 향이 피워진 향로와 여러 빛깔의 과일이 담긴 청화백자가 놓여 있고, 담묵으로 처리한 향이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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