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있는 유적지나 역사 박물관좀 부탁해요..!

인천에 있는 유적지나 역사 박물관좀 부탁해요..!

작성일 2006.07.19댓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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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학숙제가 역사 박물관or유적지 갔다 오기인데요,

 

제가 그런쪽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이렇게 글을 띄웁니다.

 

먼저 제가 제시해 드리는 내용만 들어 가게 해주시면

 

감사내공 까지 드릴께요..

 

 

1. 역사박물관or유적지 이름(꼭 인천걸로만 해주세요)

2. 버스 노선(저희집은 인천 만수동입니다.)

3. 각 주제에 맞는 홈페이지 있으면 올려주시고요.

4. 입장료가 있다면 해주시고,

5. 추가로 내용 있으면 넣어주세요.

 

*주의  : 고인돌 x,  상륙작전 박물관 x

 

하나만 해주지 마시고 2-3개 해주세요

해주신 갯수에 따라 내공이 올라갑니다~!

 

성의있는 답변 기다릴께요   


#인천에 있는 대학교 #인천에 있는 대학교 순위 #인천에 있는 고등학교 #인천에 있는 중학교 #인천에 있는 대학 #인천에 있는 여고 #인천에 있는 산 #인천에 있는 과학고 #인천에 있는 전문대 #인천에 있는 섬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1. 능허대지 - 연수구 옥련동 194-54 (기념물 제8호)

옛날에 중국으로 가려면 대륙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서해안에서 뱃길을 이용했었다. 더구나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축을 벌이던 삼국시대에 백제는 육로를 통하지 않고 대륙으로 가는 길이 필요했다.

 

능허대지는 백제가 중국 동진과 통교를 시작한 근초고왕 27년부터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개로왕 21년(475)까지 사신들이 중국을 왕래할 때 출발했던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당시 삼국으로 나뉘었던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남북조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고구려와 적대관계에 있던 백제는 육로를 포기하고 뱃길을 이용해서 남조로 들어갔다.

 

능허대에서 가까운 한나루는 중국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목에 있는 항이었다.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은 능허대에서 머물다가 배를 탔고, 따라서 능허대는 사신들을 배웅하는 장소였던 셈이다. 당시에는 멀어져가는 배를 한참동안 바라보아도 고개가 아프지 않을 만큼 적당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아파트와 유원지로 개발돼 도심 한가운데 자리잡게 되었다.

옛날의 자취는 전망대에 올라 서해를 바라보며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능허대지는 송도 앞바다를 매립하면서 당시의 장소를 기리기 위해 이곳으로 옮겨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이곳에는 작은 정자와 연못이 있으며 연못에는 인공폭포와 분수대 그리고 잉어 등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2.원인재 - 문화재자료 제5호 , 연수구 연수동 2동 584

 

원인재는 인천이씨 중시조인 이허겸의 재실이다. 팔작지붕 형식인 이 건물의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32대 손이 쓴 [원인재기]와 33대 손이 쓴 원인재상량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순조 7년(1807) 또는 고종 4년(1835)인 것으로 추측된다.

 

원인재는 신연수역과 원인재 역을 잇는 길 중간에 있다. 인천이씨 중시조 이허겸을 모신 재실로, 원인재 옆에는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린 언덕 한가운데에 시조 이허겸의 묘소가 있다.

원인재가 위치한 연수동 548번지 일대는 과거에 간치도라 불렸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까치섬’이다. 이곳을 칭하던 또 다른 명칭으로는 ‘연화부수지’가 있는데, 이 말은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을 말한다. 실제로 시조 이허겸의 묘소가 자리한 언덕은 송도 갯벌이 연수구가 개발되기 전만 하더라도 물이 들어오던 곳으로, 마치 작은 섬이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시조 이허겸 묘가 1천여 년이 넘도록 이 자리를 고수해 온 것에 반해, 원인재 자리는 여기가 아니었다. 현 인천여고 부근에 있던 것을 연수택지개발공사로 철거당하게 되자 인천이씨 대종회가 나서서 이곳 묘소 자리로 옮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천시로부터 자연녹지로 지정된 토지 일부를 불하 받아 부지를 조성했고, 지방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인정돼 인천시문화재 자료 제 5호로 지정되면서 지방문화재 복원에 필요한 자금도 얼마간 지원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허겸을 시조로 모시는 인천이씨의 본래 선대는 가야국 김수로 왕의 둘째 아들로 전해진다. 이후 고려조가 들어서면서 인천이씨는 본격적으로 권력과 영화를 누리게 된다. 인천이 7대 어향이라고 불렸던 것도 인천이씨 일가에서 왕의 내외향이 나온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허겸묘 - 비지정 지방유형문화재 , 연수구 연수2동 286-10

이허겸은 인천이씨의 중시조이다. 문학산 아래 간치도(看雉島) 신좌(辛坐)의 자리에 있다. 간치도는 까치섬이라고 부르는데 밀물 때 멀리서 보면 마치 연꽃이 물위에 살포시 떠있는 모습이라해서 연화(蓮花)부수지(바다 가운데 섬)라고 부른다.

이곳은 명당 중의 명당으로 풍수지리로 살펴보면 연화부수형, 또는 해중복구형(海中伏龜形:바다 한가운데 거북이 엎드린 형국)을 이루고 있어 석물(石物)을 세우면 그 무게를 못 견뎌 바다로 가라앉아 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돌사람이나 돌사자와 같은 석물이 세워져 있지 않다.

 

인천 이씨는 이곳에 조상의 묘를 쓴 뒤부터 불이 일어나듯 번성하여 고려시대 최고의 가문으로 번성하게 된다. 손자 이자연은 재상이 되고 문종, 선종, 순종, 헌종, 숙종, 예종, 인종의 왕비를 배출하거나 외가집(7대어향)이 되어 큰 권력을 누렸다.

 

이 묘는 약 1070여 년 동안 수호 유지되어온 고려시대 담장묘 형식의 무덤이다. 본래는 바다 가운데 섬(부수지)이었는데 주변이 간척사업으로 농토가 되었고 1990년대 택지개발 사업으로 산소 보존의 위태로움도 겪었으나 문중의 노력으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원인재 복원공사를 하면서 증축하여 묘의 둘레는 약15m이며, 높이는 2m이다. 주변에 있는 소나무가 붉은 기운을 띠고 있다.

 

3.각국조계석 - 문화재자료 제 4호 , 연수구 옥련동 525 (인천시립박물관)

조계(租界)란 일정한 지역범위 안에 외국인 전용 거주지역을 정하여 그 곳의 지방행정권을 그들 외국인에게 위임한 지역을 말한다.

조계는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일본조계(중앙동, 관동 일대)를 시작으로 1884년 청국지계(선린동 일대), 각국 조계(송학동, 송월동, 북성동)등 3개 조계가 설정되었다. 이 중 각국 조계는 우리나라와 미국?영국?청국?일본?독일(독일은 1885년에 가입함) 대표 사이에 체결된 ?인천제물포 각국조계장정?에 따라 송학동?송월동?만석동 일대 약 14만 평 규모로 설정되었다.

현재 시립박물관 야외에 전시(본래는 중구 내동 인천상공회 입구에 있었음)되어 있는 각국 조계석은 조계의 경계를 표시하는 기능을 하였던 것이다.

 

4.학익지석묘 - 기념물 제 34호 , 연수구 옥련동 525 (인천시립박물관)

지석묘(고인돌)는 선사시대 돌무덤의 하나이면서 거석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적이다.

지석묘는 형태에 따라 북방식?남방식?개석식으로 나누어지는데 일반적으로 매장시설이 지상에 있는 것을 북방식이라 하고 매장시설이 지하에 설치되어 있는 것은 남방식이라 하며 남방식 중에 받침돌이 없는 것을 개석식이라 한다. 학익지석묘는 이중 북방식에 속하며, 1927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내부에서 빗살무늬 토기 파편, 돌화살촉, 돌칼 등이 출토되었고 출토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이다.

학익지석묘는 본래 인천구치소(구 소년교도소) 내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시립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옮겨 전시하고 있다.

 

5.김재로 영정- 유형문화재 제10호 , 연수구 옥련동 525 (인천시립박물관)

김재로(1682~1759)의 자는 중례 호는 청사이다. 1710년 충당대시 문과에 을과로 합격하여 세자시강원설서(세자를 가르치는 일)를 시작으로 관직에 나아가 내외의 주요관직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으나 1740년 영의정에 오른 이후 1758년 관직을 떠날 때까지 네 차례에 걸쳐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현재 시립박물관에는 한국본과 중국본 영정 2점이 보관되어 있는데 51세 때 모습을 그린 한국본은 국수 변상벽?한종유가 공동제작한 것으로 전신사조의 경지를 보여주면서 18세기 중엽 공신상에서 볼 수 있는 좌안팔분면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6.정우량 영정- 유형문화재 제9호 , 연수구 동춘동 325

정우량(1692~1754)의 자는 자휘 호는 학남(鶴南)이다. 조선 경종 3년(1723)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간 후 대사성?좌승지,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을 지냈다. 특히 영조 4년(1728)에는 왕의 교지를 지어 한글로 번역해 각도에 보내기도 하였으며, 개성 계성 사비와 연수구 연수동에 그가 지은 신도비가 있다.

현재 동춘동 후손이 보관하고 있는 그의 초상화는 측면을 향하고 있는 얼굴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정면을 향한 좌우대칭구도를 이루고 있으면서 복식?윤곽?옷의 주름 등을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다. 채색 방법은 수용성 물감을 아교액과 조합하여 진한 색채로 사실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7.목조보살좌상 - 유형문화재 제14호 , 연수구 옥련동 525 (인천시립박물관)

이 불상(佛像)은 왼손이 훼손되어 수인(手印:손모양)은 알 수 없으나 조각기법과 모습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아 조선시대 때 제작된 보살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승유억불정책을 일관함으로써, 왕실이나 시민들 사이에 불사나 예불은 계속되어 불상의 조성이 필요하였음에도, 국가정책이나 사회문화로 꽃피지 못하고 개인의 복을 염원하는 데 그쳤다. 따라서 불교가 융성했던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조성된 세밀하고 화려하며 예술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불상양식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이 보살상에는 화려하거나 세밀함은 찾아보기 어려우나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미간에는 백호가 있으며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또한 다소 두꺼운 느낌을 주면서도 어깨에서 무릎까지 흘러내린 통견의도 좌우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세기가 부족하고 투박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불상양식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으로 이 보살상이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8.목조여래좌상 - 유형문화재 제13호 , 연수구 옥련동 525 (인천시립박물관)

여래상은 석가여래상의 준말로 불교 창시자인 석가모니를 형상화한 것이다.

인천시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여래상은 좌상(坐像)으로, 손이 훼손되어 손의 모양은 확인할 수 없으나 선정인(가부좌일 때 취하는 것으로 왼쪽 손바닥을 위로해서 배꼽 높이에 놓고 오른손을 펴서 손바닥을 위로 해 겹쳐놓되 두 엄지손가락을 서로 대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부양식을 살펴보면 머리는 나발(소라)모양이고 상호는 원만하며 양미간과 코?입술 등은 잘 다듬어져 있을 뿐 아니라 이마에는 백호가 있고 삼도가 뚜렷하다. 또한 법의는 통견으로 좌우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등 전체적으로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고려시대 불상양식을 반영한 조선 초기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9.관음좌상 - 유형문화재 제5호 , 연수구 옥련동 525 (인천시립박물관)

불상(佛像)이란 넓은 의미로는 부처님의 형상을 새기거나 그린, 모든 불교(佛敎) 조각을 통칭하지만 일반적으로 머리에 쓴 보관(寶冠)과 그 깨달은 진리를 상징하는 손의 모양(수인手印 또는 인상印象) 그리고 소지한 물건의 종류에 따라 불?보살?천?나한?조사 등으로 구분된다. 유형문화재 제 5호인 이 불상은 보살 중에서도 관음보살에 속하며 제작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형태로 보아 중국 명 또는 청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머리에는 구슬로 장식된 보관(寶冠)을 쓰고 가슴에는 화려한 구슬 목걸이를 하고 있으며,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천의는 지면까지 흐르고 있다. 오른쪽 어깨에서 시작된 천의 자락은 가슴을 거쳐 무릎 위 손목을 덮고 양련형(연꽃잎이 위로 향한 것) 대좌 위까지 이르고 있다.

대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은 오른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오른손을 편안히 올려 놓았으며, 왼손은 지면을 짚고 있어 전반적으로 평온한 느낌을 준다.

 

10.송대철제범종 - 유형문화재 제4호 , 연수구 옥련동 525 (인천시립박물관)

범종은 사찰에서 때를 알리거나 행사 시 대중을 모을 때 또는 불사의례에 사용되던 것으로 불상?불화?탑과 더불어 불교 미술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이 종은 명문이 마모되어 정확한 주조 연대를 확인할 수 없으나 형태?의장등을 고려해 볼 때 송나라 초기에 당의 양식을 반영해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쌍용이 조각되어 있는 용유는 오랜 세월이 흘러 다소 마모되기는 하였지만 웅장한 분위기를 주고 있으며, 종신의 윗부분에는 화려한 장식문이 장식되어 있고 중간과 하단에는 가사문대가 양주되어 있으며 가사문대 내에는 ?풍조우순 중신천추?를 비롯한 대소문자의 명문이 가득 새겨져 있다. 하대는 팔능파상형을 이루고 있으며 하대와 종신 사이에는 용을 조각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단순하면서도 화려하고 웅장하면서도 안정된 느낌을 준다.

 

11.원대철제범종 - 유형문화재 제3호 , 연수구 옥련동 525 (인천시립박물관)

이 범종은 원나라 성종 3년(1298)에 주조된 것으로 중국종 특유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범종은 일반적으로 용유?종신?하대 등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지는데 이 종의 용유부는 두 마리의 용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는 동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고, 용유와 종견 사이에는 당초문이 양주되어 있으며, 당초문 사이에는 8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종신이 양주된 대곽 안에는 ?황제만세 중신천추?를 비롯한 대소문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하대의 중구는 팔능파상형으로 넓은 구연부를 이루고 있다. 또한 종신 하단부와 구연부 사이에는 8괘가 배치되어 있는 등 전반적으로 간결하고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 범종이 인천에 유입된 경위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제가 부족한 철의 조달을 위해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각지에서 공출하여 부평 조병창에 야적하였으나 전쟁이 끝나면서 그대로 두고 철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2.부평도호부청사(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호)

 


 

원래의 도호부청사는 재북부2리(계산동 898번지)였으며 현재는 계산동 943번지 부평초등학교 내에 옛 청사건물이 변형은 되었으나 일부가 남아 있는데, 이곳에는 계산동은행나무(시지정기념물 11호), 욕은지(시지정 문화재자료 1호), 어사대(시지정문화재자료 제3호)의 흔적이 도호부청사 앞에 남아 있다.

 

부평도호부청사는 숙종 3년(1677)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세워진 내력을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고려시대 의종 4년(1150)에 안남도호부로 고종2년(1215)에 계양도호부로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에 부평부가 부평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모든 정황으로 볼 때 부평도호부로 승격이 되면서 청사 건립에 착수하여 약 5년후(태종 18년, 1418)에 완공된 것으로 보여진다. 청사옆에 보호되고 있으며 이때 풍치목으로 심어진 듯한 은행나무의 수령이 약 600여년쯤 되는 것과도 일치한다.

기록에 의하면 객사, 동·서헌, 삼문, 근민당, 좌·우익랑, 동·서책방, 사령청, 향청, 포도청, 훈무당, 부창등 총 23동 23칸으로 당시에는 웅장한 규모였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내아만 남아 있고, 원래는 “ㄱ”자 건물이였으나 1968년 현 위치로 이동하면서 “ㅡ”자건물로 바뀌어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도리집이 되었다.

 

13.부평향교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12호)


 
   

부평향교는 현재의 경인교육대학교에서 북쪽으로 약 2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인종 5년(1127)왕명에 따라 수주(樹州)향교가 계양구 오류동 산4번지에 세워졌는데 당시 전국 56주가 모두 이에 따라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수주의 후칭인 안남도호부가 의종 19년(1165) 계산동(온수골)으로 이전됨에 따라 당시 안남향교도 안남산 남쪽(현재 계산2동 한우리 아파트 부근)에 이전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 충선왕 2년(1310) 부평부가 되면서 부평향교로 고쳐 불러왔고 병자호란(1636)을 맞아 문묘 건물이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조선 숙종14년(1688)에 현재의 위치에 문묘를 재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부평향교에는 명륜당, 재실등 교육시설을 앞에 놓고 그 뒤에 대성전과 동·서무의 문묘시설을 둔 우리나라 향교의 전형적인「전당후묘」의 형식이다. 열성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대성전과 동·서무, 동·서재는 맞배지붕형식으로 되어 있고, 명륜당은 팔작지붕이다. 중국성현5성위와 한국18현을 모신 석전대제는 매년 음력 2월과 10월 초정일에 봉해하고 있다.

 

14.답동성당

사 적 : 제287호

 

규모 및 구조 : 건평307.2평,단층 벽돌조

 

시 대 : 1933년 착공, 1937년 준공

 

소 재 지 : 인천광역시 중구 답동 3의 1

 

지 정 일 : 1981. 9. 25

 

지정면적 : 8,262.5㎡(2,499.4평)

 

뾰족 돔 얹힌 아름다운 외관!

 

프랑스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 빌렘신부가 초대 본당 신부로 부임하면서 답동 언덕에 설립되었다.

1890년 7월 성당 건축 정초식을 갖고 1894년 착공해서 1897년에 고딕식의 단층건물로 세워졌다.

현재 모양의 답동성당은 1933년에 옛 성당건물을 보존하면서 외벽을 벽돌로 쌓아올려 1937년에 완공한 성전으로 로마네스크양식을 띠고있다.

중앙의 탑상부와 양측의 소탑의 상부에 뾰족돔을 얹어 아름다운 외관을 형성하고 있다.

 

15.인천 일본 제일은행지점

 

지정번호 : 인천광역시지정문화재 제7호

 

위 치 : 인천광역시 중구 중앙동 1가 9

 

시 대 : 1889년

 

지 정 일 : 1982. 3. 2

1883년 11월 일본의 제일국립은행 부산지점의 인천출장소로 출발했다.

1909년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창립되어 제일은행인천지점이 한국은행인천지점으로 바뀌었다.

언뜻 보기에 옛 중앙청 건물과 닮은 구석이 있는 이 건물은 중앙에 돔을 설치한 석조 단층의 후기 르네상스 양식이다.

해방 후 조달청 인천사무소, 동인천 등기사무소 등 주인이 바뀌면서 증축되거나 개축되면서 건물의 외향이 조금씩 변형되었지만 기본골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6.(구)인천우체국

지정번호 : 인천광역시지정문화재 제8호

 

위 치 : 인천광역시 중구 항동 6가 1

 

시 대 : 1923. 12. 8

 

지 정 일 : 1982. 3. 2

 

인천의 우체사(郵遞史)는 우리나라 우정(郵政)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갑신정변이 일어났던 해인 1884년에 우정총국이 설립됐고 그해 11월 17일에 우정총국 인천분국이 개원되었다.

서울보다 먼저 우편업무가 개시되면서 인천우체국은 사실상 우리나라 우정업무의 효시가 된다.

(구)인천우체국은 1923년에 신축되었는데 지난 1982년 인천시유형문화재 제 8호로 지정될 만큼 서양과 동양의 건축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17.용궁사

 

지정번호 : 인천광역시지정문화재 제15호

 

위 치 : 인천광역시 중구 운남동667

 

시 대 : 조선철종5년(1854년)

 

지 정 일 : 1990. 11. 9

 

용궁사는 영종도 백운산 기슭 평평한 대지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백운사(白雲寺)라 하였다고 전하며 일명 구담사(瞿曇寺) 라고도 한다.

조선조 철종 5년(1854)에 흥선대원군이 중창하여 용궁사라 개칭하고 고종이 등극할 때까지 이 절에서 칩거하였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영종도 중산 월촌에 사는 윤공이란 어부가 꿈을 꾼뒤 바다에서 작은 옥불을 어망으로 끌어올려 이 절에 봉안하였다고 하며 현재 그 옥불은 없고 모조 옥불을 모시고 있다.

경내의 관음전(觀音殿)은 맞배 지붕, 홑처마 건물로서 옥석(玉石)으로된 관음상이 봉안되어 있으나

일제때 도난당하고 현재는 후불탱화를 배경으로한 관음상이 걸려 있으며 건물 전면에는 해강(海岡)김규진이 쓴 4개의 주련(住聯)이 걸려있다.

경내입구의 대방(大房)정면에는 용궁사(龍宮寺)라는 대원군의 친필현판이 걸려있다.

이밖에 칠성각(七星閣)객사가 있으며 절뒤에는 높이 11m에 달하는 미륵불이 있으며 객사앞에는 수령 1,300여년된 고목 나무가 있다. 부속건물인 칠성각은 1944년, 용황각은 1966년에 각각 건축되었다.

 

18.중구 문화원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17호

 

위 치 : 중구 송학동 1가 7번지

 

규 모 : 대지 158평, 지하 1층, 지상 1층, 건물 135평

 

건축연도 : 1901. 6. 22(1950년도 일부 개축)

 

지 정 일 : 1993. 7. 6

 

중구문화원은 우리나라 근대 역사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보낸 건물이다.

1901년 6월에 낙성된 이 건물은 인천에 거주하던 미국,독일,러시아,일본인들의 사교장인 제물포구락부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사교실,도서실,당구장 등이 있었다.

1913년 조계제도가 철폐되면서 일본재향군인회 인천연합회가 들어서며 정방각(情芳閣)이 들어섰고 해방 후에는 미군의 장교클럽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휴전 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이 설립되면서 1989년 박물관이 연수구 옥련동으로 이전하기까지 시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19.중구 요식업조합(일본58은행 인천지점)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19호

 

위 치 : 중구 중앙동 2가 19-1

 

구 조 : 연와조 2층(건평 94.19평)

 

지 정 일 : 1993. 7. 6

 

(구)58은행은 일본 오사카에 본점을 둔 58은행의 인천지점으로 1892년 7월에 개점했다.

그후 제3은행 등 군소은행과 합병해 야스다은행으로 바뀌었다.

1939년 신축된 이 건물은 광복 후 조흥은행 인천지점,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현재 중구 요식업조합이 입주하고 있는 프렌치 르네상스 양식의 2층 건물로 초기 양식 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외관은 벽돌조 구조물에 석판마감으로 구성됐다. 2층 발코니 형식이 이국풍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20.홍예문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49호

 

위 치 : 중구 송학동 2가 20번지

 

시 대 : 1908년

 

지 정 일 : 2002.12.23

 

원래 홍예문은 윗머리가 무지개 형상을 하고 있는 문을 말하는데 이제는 자유공원에 있는 돌문의 고유명사가 되다시피 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중앙동, 관동 등에 일본 거류민들이 급격히 늘자 만석동 방면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뚫은 돌문이다.

1905년에 공사를 시작했는데 예기치 못한 거대한 암석들이 나타나 3년여 걸려 완성했다.

반석위에 세워진 문답게 지은지 100년 세월이 다 되가는데도 지금도 끄덕없다.

인천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원한 골바람이 불어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21.(구)인천 일본은행 18호 인천지점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50호

 

위 치 : 중구 중앙동 2가 24-1

 

시 대 : 1890년

 

지 정 일 : 2002.12.23

 

18은행은 1890년 준공되어 그해 10월에 개점하였고 중앙동2가 24번지에 있으며 58은행의 바로옆에 위치해 있으며 1954년에는 한국흥업은행으로 사용되었다.

18은행은 일본이 한국의 금융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계획되어 세워진 은행이었다. 18은행뿐 아니라 그 당시에 세워진 일본 은행들 모두가 한국 금융계를 일본 식민지화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7개의 은행을 비롯해 13곳의 보험사의 소유자가 천일은행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의 소유였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1954년에 상공은행과 신탁은행의 합병으로 발족한 한국흥업은행 지점으로 사용된 이후, 1992년까지는 카페 그 후 중고 가구 도매상이 임대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상 허접한 답변 jjs980427이엿습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인천은 잘 모르겠고 서울이나 경기쪽만 아는데 그거라도..

 

마사박물관 (경기 과천시)

02-509-1283

무료  연중 무휴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종로구)

02-398-5086

무료  매주 월요일 휴관

 

 

절두산 순교 박물관 (서울 마포구)

02-3142-4434

200원  매주 월요일 휴관

 

 

롯데월드 민속박물관 (서울 송파구)

02-411-1761

2,000원  연중무휴

 

 

인천으로 못해드려 죄송합니다

인천은 아는게 없어서..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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