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
박 목 월
단추는 오형제,
내 양복 저고리에
정답게 달렸습니다.
그들이 형제라는 걸
나는
처음에
까맣게 몰랐습니다.
한 개가
떨어져 버리게 되자
남은 네 개의
쓸쓸한 모양,
비로소
한 탯줄에 태어난 오형제임을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단추는 오형제,
내 양복 저고리에
정답게 달렸습니다.
미끄럼틀
김 소 운
폭포는
폭포는
산골물이 타고 노는
놀이터 미끄럼틀.
이 골짝
저 골짝에서
졸졸졸 모여든 빗방울들
어깨 겯고 달려와
쏴아― 쏴아―
미끄러지며 외치는
즐거운 비명 소리
온몸으로 부서지는
하얀 물보라.
아찔한 그 기쁨
다시 한번 타고 싶어
자꾸만 맴돌며
흘러가는 산골물
폭포는
폭포는
산골물이 타고 노는
신나는 미끄럼틀.
찻숟갈
박 목 월
손님이 오시면
찻잔 옆에
따라 나오는 보얗고 쬐그만
귀연 찻숟갈.
"손님이 오시면
찻숟갈처럼 얌전하게
내 옆에 앉아 있어."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네, 아버지."
나는
대답도 찻숟갈처럼
얌전하게 했다.
보얗고 쬐그만 귀연 찻숟갈.
휴지통
남 진 원
쓰다가 버린 것들 모두 모여서
세상에 버린 것끼리
모여 사는 동네.
만나는 것마저
버린 것들이
버린 것끼리 만나서
만남을 알고
정마저 잊어 버린 것들이
버린 것끼리 만나서
정을 나누고
쓰다가 버린 것들 모두 모여서
세상에 버린 것끼리
모여 사는 동네.
새 달력
서 재 환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새끼비둘기 같은 숫자들이
반듯반듯한 창문을 열고 나와
피어나는 꽃잎의 몸짓으로
줄을 지어 앉아 있다.
하루를 열어 주면
푸드득
잠든 하늘을 깨우며 날아오를 것 같은 숫자들
또 하루를 열어 주면
살풋!
꽃씨를 물고 내려앉을 것 같은 숫자들
종소리를 울려 주고
언 강물을 풀어 주고
휴전선을 열어 줄 것 같은 숫자들이
비둘기장 같은 새해 새 달력 속에
저마다 날아오를 날을 기다리며
푸른 날개를 다듬고 있다.
문구멍
신 현 득
빠꼼 빠꼼
문구멍이
높아간다.
아가 키가
큰다.
일기장
이 상 룡
서랍 속 깊숙한 곳에 숨겨 둔 일기장엔
남 모르는 얘기들이 꽃씨처럼 잠을 자요.
흔들면 깨어날 것 같은 얘기들이 잠을 자요.
숨기려 숨기려 들면 더 초롱한 일기장은
나만 아는 지난 날들을 내 귀에다 속삭여요.
더러는 잊어버린 일도 생생하게 속삭여요.
쓰다가 펼쳐 놓은 채 머리맡에 두고 자면
창 밖의 봄비 소리도 갈피에 젖어들고
촉 트는 텃밭 상추씨 같은 애기들이 돋아나요.
<198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자판기
정 갑 숙
길가 오두막 집안에
누가 살길래
지나가는 사람 불러
따뜻한 물을
한 잔씩 나눠주는 걸까.
한 사람씩 불려가
솔솔 김이 나는
물 한 잔씩 받아온다.
누구일까
더 나눠주고 싶어
밖을 내다보는
저 오두막집 주인.
달력
최 계 락
즐거운 일이 많을까?
괴로운 일이 많을까?
시간표와
나란히
새 달력을 걸어두고
한 해는
삼백하고
예순 다섯 날을
기쁜 일이 많을까?
슬픈 일이 많을까?
조용히
책상 앞에
마음 고쳐 앉으면
아라비아 숫자 속에
사철이
피고
지는
한 해는
삼백하고
예순 다섯 날에
기쁜 일만 있었으면.
즐거운 일만 있었으면.
님 어디초??
난 무안군 해제초임
님도 우리초면 방가
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