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로마 교육 비교

그리스와 로마 교육 비교

작성일 2012.10.20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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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와 로마 의 문화를 간략히 설명하고 그에따른 교육내용을 비교해주세요~

 

 

A4반장 정도로 최대한 짧게요~ 외우고 이해할 수 있을정도로 핵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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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민족적 교육학

딜타이는 교육적 논의에서 항상 국가와 민족을 상정하고 있다. 그의 저작 곳곳에서 국가정신, 독일정신, 민족정신, 민족적 에토스(Ethos) 등의 용어가 발견되는데, 그는 그러한 정신을 길러주는 일을 공적인 교육기관에서 수행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물론 교육의 역사에서 국가와 교육의 관계를 최초로 강조했던 인물은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다. 정의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최상의 수단으로 그는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계층의 능력에 맞는 교육을 주장했다. 양자의 관계에 대한 입장에서 딜타이는 다분히 엘리트주의적인 플라톤의 생각보다는 자신의 정신적 스승인 슐라이어마허의 생각을 따르고 있다. 슐라이어마허는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을 개성의 신장과 유용성의 실현에서 찾고 있다. 이는 교육의 방향이 두 차원, 즉 개인적 차원과 국가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때 개별화(Individuation)와 개별성(Individualität)은 개인적 차원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된다. 교육은 이처럼 그 어느 것으로도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 자기만의 특성을 지닌 인간을 육성하는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인이 유일성, 독특성, 개성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개인을 둘러싼 공동체, 즉 국가의 안녕과 발전의 굳건한 토대가 없는 개성 실현이란 사상누각과도 같이 의미가 없다. 딜타이는 개인의 만족과 전체적 유용성을 힘주어 말한다.

“개인이 위의 모든 능력을 갖추고 세상에 당당히 등장하여, 자신의 힘의 척도에 따라 올바른 곳에서 자신의 만족과 전체의 유용성을 위하여 이러한 문화와 과제를 붙잡는 것,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최고의 과제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교육의 발전은 국가와 민족적 차원에서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이 점은 과거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중의 하나다. 딜타이의 민족과 국가에 대한 강조가 독일 국민정신의 형성을 중요시했던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대외적으로,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의 황금기와 프랑스의 나폴레옹 전성기에 맞서 오랜 지방분권에서 탈피해 점차 중앙집권 국가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고자 했던 독일의 노력은 국가정신과 민족정서를 강조하는 교육으로 나타났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는 부국강병의 수단으로서 한편에서 강력한 국가를, 다른 한편에서 학문ㆍ예술ㆍ교육의 진흥을 전면에 내세웠다. 딜타이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역설은 이러한 시대 상황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딜타이가 시ㆍ문학ㆍ예술ㆍ철학 등을 통해서 독일정신을 발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추앙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철학자 니체와 음악가 바그너의 경우처럼 독일정신의 지나친 강조가 후일 히틀러 국가사회주의에 의해 오용된 점을 감안해 본다면, 딜타이 교육학의 민족적 혹은 국가적 특성은 비판적 관점에서 수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문화적 교육학

딜타이는 교육을 사회적 기능을 지닌 것으로 보고 있다. 교육은 수업을 통하여 성장 세대의 미래의 존재 설정에 이중적으로 관여한다. 교육은 인간을 한편으로는 건전한 인격과 개성을 지닌 개인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최상의 능력과 유용성을 지닌 사회 구성원으로 길러야 하는 과업을 안고 있다. 적어도 18세기의 교육학적 상황을 조망해 볼 때, 개성적 인간의 도야를 강조하는 도야(Bildung)의 이념과 사회 및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의무와 역할을 강조하는 시민 교육은 서로 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전자가 루소와 칸트의 교육적 이상이었던 반면, 후자는 다분히 공리주의적 입장에 가까웠다. 딜타이는 양자의 입장을 비판적 견지에서 검토한 후 변화된 산업사회에 적합한 교육의 방향성을 모색한다. 그 관점은 오늘날 이미 우리에게는 당연한 사안이 되었지만, 개인의 자아실현과 사회적 공헌의 접점을 ‘직업’에서 찾고 있다.
딜타이의 교육학은 문화교육학이다. ‘문화’라는 개념은 오늘날 복잡다기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정신과학에서는 인간의 정신 구조와 정신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어다. 인간ㆍ사회ㆍ역사의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정신과학 방법론으로서의 해석학은 정신의 근간이 되는 인격과 문화재를 이해하는 데 그 궁극적 과제가 있다. 딜타이 해석학의 기본 도식인 삶ㆍ표현ㆍ이해의 구도에서 문화재는 삶의 표현의 산물에 해당된다.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산출한 문화를 파악해야 한다. 교육학적인 면에서 볼 때 우리가 파악하고자 하는 문화재는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은 물론 수업 교재, 교과서, 수업 자료, 시청각 매체, 행정 문서 등의 텍스트가 모두 포함된다.

딜타이 학파의 한 사람인 슈프랑거(E. Spranger)는 딜타이의 문화에 대한 사고를 발전시켜 다양한 관점에서 문화교육학(Kulturpädagogik)을 발전시켰다. 그에 따르면 교육이란 문화의 계승 및 전파와 다름없다. 인류의 발전은 이전 세대의 문화적 유산을 후대에 잘 전승할 때 가능하다. 슈프랑거의 용어를 빌리자면, ‘문화 번식’은 문화의 창조ㆍ육성ㆍ번성ㆍ전파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교육에서 길러주어야 할 중요한 능력은 이 과정에서 교육 주체의 문화적 전승과 재창조 능력이다. 이전 세대의 문화를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하는 일이 중요하다. 슈프랑거는 ≪청년심리학≫에서 정신의 발달 단계에 따른 교육의 단계를 기초 도야, 직업 도야, 고차적 도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문화 능력은 국민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를 교육하는 국민교육과 지역사회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향토교육을 바탕으로 하여, 특정한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전문교육으로 나아가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삶과 세계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 가능한 보편적 단계로 승화되어야 한다.

역사-체계적 교육학

딜타이 교육학은 역사적 교육학이다. 역사는 오직 인간의 역사다. 유한한 존재로서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 세계에 다양한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인간이 남긴 흔적과 발자취를 더듬어가는 과정이다. 그 족적을 추적해 가는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 경험적으로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실증적으로 연구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진위 여부 판명은 그러한 작업의 기초에 속한다. 또한 인간 삶의 역사를 하나의 텍스트로 간주하여 해석해 나갈 수도 있다. 이때 텍스트는 비단 개인의 소소한 역사뿐만 아니라 학교나 교육기관의 문서ㆍ기록물은 물론 사회기관이나 국가의 문화재ㆍ사료(史料)ㆍ기록물 등도 모두 포함될 수 있다.

장구한 교육의 역사에서 인간과 교육을 이해할 때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삶은 언제, 어디서나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공통성, 즉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인간 존재에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점은 인간이 사고, 의지, 감정을 지닌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 아메리카 인디언, 아프리카 원주민, 북극 지역의 에스키모인을 막론하고 시대와 장소를 넘어 우리가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삶에 공통적으로 깃들어 있는 정신 구조의 유사성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인간은 공통성, 유사성, 보편성과 아울러 성, 인종, 민족, 종교, 국가에 따라 각기 다른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역사의 전개 과정 안에서 인간은 미시적으로는 개인의 특유성에서, 거시적으로는 민족의 고유성ㆍ국민성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고유한 특성을 발전시켜 왔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성공한 개인, 민족, 국가는 빼어난 의지와 남다른 민족적 에토스를 가지고 있었다. 개인적 능력과 국가적 힘을 최상으로 끌어올려 시대와 지역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후세대의 모범과 귀감이 될 만한 위상을 확고하게 마련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개인이나 국가가 탄탄대로의 장밋빛 성공만을 부여받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는 항상 흥망성쇠(興亡盛衰)가 뒤따르게 마련이며, 어느 개인이나 민족도 지속적인 부침을 겪는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나폴레옹도, 천하를 호령하던 대로마제국도 그 전성기를 지난 후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하게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점에서 역사는 교훈적이다. 그 이유는 역사가 과거의 잘못을 인식하도록 일깨워 주며, 이러한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일침을 주는 까닭이다. 역사는 가령 그리스와 로마의 찬란한 문화를 가능하게 했던 동인이 무엇이며, 그 시대의 사회ㆍ문화적 배경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준다. 특히 그 시대를 쇠망으로 몰고 간 근본적인 원인을 깨닫게 하여 우리가 실수와 과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러한 역사의 중요성을 감안해 볼 때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역사의식을 올바로 세워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딜타이의 영향을 받은 리트(T. Litt)는 일찍이 모든 교사는 ‘역사적 현주소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역사적 분석과 함께 딜타이는 교육학에 체계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근대의 교육학은 코메니우스에서 발원하여 헤르바르트(Herbart)에 의해서 학문적으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교육학은 이론에서 연역된 규범적 교육학이었다. 교육의 실천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 순수한 사변에서 도출된 것이다. 이들은 18세기 교육학의 일반적 경향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이들은 교육의 목적을 인습적으로 철학(윤리학)에서, 교육의 방법을 아동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심리학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다. 딜타이는 이러한 경향성에서 탈피하여 학문 이전의 교육 실제에 녹아 있는 교육현실(Erziehungswirklichkeit)을 바탕으로 새로운 유형의 교육학 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물론 딜타이 이전에 그의 정신적 스승인 슐라이어마허는 교육이론에 앞선 실천의 위엄(Dignität der Praxis)을 강조하며 실천에 입각한 교육학을 정립하려고 시도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딜타이는 교육현실의 배후에 작용하는 다양한 힘들을 파악함으로써 교육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교육학의 관점에 대한 방향 전환은 딜타이의 다음 물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즉, 보편타당한 교육학은 가능한가? 이에 대한 딜타이의 답변은 자명하다. 언제, 어디서나 보편타당한 교육학은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역사적 존재로서 항상 변화의 중심축에 서 있듯이, 인간이 창조한 교육제도와 교육이념들 또한 부단히 변화하며 시대적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으로부터 연역된 헤르바르트의 일반교육학도,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스펜서(Spencer)의 공리주의적 교육학도 일정한 한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러한 교육학이 엄연히 살아 있는 교육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섣부른 체계화와 이론화의 덫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딜타이는 교육학의 올바른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육 받는 대상의 정신적 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즉 인간의 사고와 기억, 지성과 논리, 의지와 주의 집중, 판단력 그리고 기분과 정서, 욕구와 욕망 등에 대한 특성을 경험적ㆍ분석적으로 파악해야 함은 물론, 개인이 사회 및 문화 구조에 미치는 영향과 생성된 구조가 다시 개인에게 미치는 상호작용의 기제를 총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육현실에서 이론화 작업으로 나아가고 잠정적으로 형성된 이론으로부터 교육현실을 분석하여, 점차 설득력 있는 교육학의 체계가 세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하여

빌헬름 딜타이의 전집 제9권 ≪교육학: 역사와 기초 개요(Pädagogik: Geschichte und Grundlinien des Systems)≫은 독일의 토이프너(B. G. Teubner) 출판사에서 간행되었고, 초판은 1933년에 간행되었다. 연대기로 서술된 교육사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교육의 주요 내용과 배경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유럽문화의 원형을 이루고 있는 문화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다. 그중에서도 교육사적으로 볼 때 서양문화를 구성하는 원류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 바탕을 두고 있는 헬레니즘 문화다. 모든 철학이 플라톤에서 발원하는 것처럼 오늘날의 모든 서양문화는 그리스에 그 시원(始原)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르네상스기의 인문주의자들이나 그 이후의 신인문주의자들이 교육적 이상으로 삼았던 것은 고대 그리스 정신이었으며, 역사적 질곡으로부터 이들은 언제나 돌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으로 고대 그리스를 동경해 마지않았다.

그리스 문화는 인문주의와 자유교양 교육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군국주의적이었던 스파르타보다 비교적 자유로웠던 아테네의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파이데이아(paideia)’에서 우리는 그리스 교육의 인본주의적 특성을 엿볼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의 조화 및 균형을 추구했으며, 아름답고 선한 인간이 되고자 했다. 관조적 삶 속에서 문학과 학문, 음악과 예술을 즐기고 숭상했다. 그리스 시대의 문화적 창조는 그 깊이와 넓이에서 타 시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탁월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 교육은 도시국가인 폴리스(Polis)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원전 9∼8세기부터 등장하는 폴리스는 모든 시민이 운영하는 정치ㆍ군사ㆍ교육 공동체다. 폴리스는 진정한 의미의 교육공동체로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도시국가를 통하여, 즉 폴리스를 위한 교육적 관계에서 참다운 시민이 태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폴리스는 개인과 동일시될 만큼 공동체적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폴리스가 갖는 윤리는 절대적 가치를 지니면서, 동시에 모든 시민들의 삶에 목적과 방향을 부여해 주는 초개인적 특징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리스의 대문호였던 호메로스(Homeros) 시대부터 이어지는 그리스 교육의 전통은 무엇인가? 그것은 폴리스적 삶에 의한 교육, 다시 말하면 공공성 또는 시민의식을 지닌 유용한 시민을 기르는 것이다. 다른 한편 폴리스 자체를 위한 교육을 들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가를 통하여 삶의 질을 고양하는 것이다. 아테네 초기에 이러한 교육의 두 가지 측면이 상호 결합되면서 철저하게 국가중심 교육이 시행되었다.
그리스 교육이 심신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했고, 착하고 아름다운 인간을 기르는 데 궁극적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학교가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다. 신체적 도야를 중시했던 고대 그리스 올림픽도 이러한 학교의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서양교육사상을 돌이켜볼 때 고대 그리스에서 최초로 등장한 학교는 바로 음악학교와 체조학교다. 이들 학교의 이상은 지적ㆍ심미적ㆍ신체적 조화를 갖춘 인간을 기르는 것이었다. 호메로스 시대의 이상적 인간상은 무사와 영웅에서 그리스 융성기의 선미인(善美人)으로 발전되고, 나중에 로마 시대의 연설가와 이를 계승하려는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전통으로 이어진다.

여러 도시국가 가운데 고대 그리스 교육의 전형(典型)을 보여주는 것은 아테네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정치적ㆍ경제적 변화를 겪으며, 아테네의 종전의 국가중심 교육은 크게 약화되었다. 이와 더불어 등장한 사람들이 소피스트(Sophist)다. 이들의 주된 관심은 아테네 청년들의 정치적 출세욕에 부응하여 새로운 인간을 형성하는 교육에 있었다. 여기서 종전의 국가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개인의 목적을 합리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형, 즉 주지주의적 도야인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교육 목적, 교육과정, 교수방법 등에서 새로운 전환을 이뤄낸 사람들이 소피스트였다. 이들은 기원전 6세기경부터 사용해 오던 훈련, 교육, 도야라는 의미의 ‘파이데이아(paideia)’라는 용어를 확대하여 일반적ㆍ포괄적 교육을 뜻하는 ‘엔키클리오스 파이데이아(enkyklios paideia)’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들에 의해 고대 교양교육의 체계가 이루어진 셈이다. 이 시기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플라톤의 철학적 도야에 맞서 수사학적 도야를 강조한 이소크라테스(Isocrates, BC 436∼BC 338)를 꼽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BC 399)의 사상을 대비시킬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소피스트는 일군의 상대주의 철학자 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소피스트는 그리스 초기의 자연철학적 경향에 대해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철학의 관심을 자연에서 인간으로 전환시키는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그리스 청년들은 정치가, 연설가로 진출하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 수단이 되는 지식, 즉 변론술ㆍ수사학ㆍ연설술 등을 전수받는 데 주력했다. ‘현자’로 불리며 이러한 지식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던 소피스트의 가치는 당연히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피스트 교육은 다분히 출세 위주의 입신양명(立身揚名)에 그 목적을 두었으므로 자체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소피스트에 맞서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인생의 참의미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소크라테스다.

“너 자신을 알라.” 델포이 신탁에 씌어 있는 이 문구에서 소크라테스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너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라’다. 즉 무지의 자각에 대한 외침인 것이다. 이는 앎의 과정에서 갖게 될 수 있는 현학적인 자세를 경계하고, 만용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경구이기도 하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겸양의 미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지의 자각을 위해 소크라테스는 ‘산파술’이라는 대화법을 활용했다. 흔히 ‘소크라테스 방법’으로 알려진 이 문답법은 학습자의 가식과 무지에 일침을 놓음으로써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방법이다. 깨달음의 주체는 교사가 아니라 학습자 자신에 있다. 이것은 아이를 낳는 사람이 결국 산파가 아니라 산모인 것과 같은 이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경구는 아는 것은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실천의지를 포함하고 있다. 배울수록 더욱 겸허하고,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는 일이야말로 교육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다. 요컨대 소크라테스는 삶의 참의미를 탐구하고, 교육의 윤리적 측면을 숙고함으로써 인간교육의 원형을 남겨주었다.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이 주장했던 상대주의적 지식관을 비판하고 지식의 절대성과 보편타당성을 주장했다. 그는 인간이 본래 진리의 싹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산파법, 대화법, 변증법을 통해서 그것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무지의 자각으로 얻어진 참된 지식(진리)은 소피스트가 강조한 잡다한 지식과 다르다. 즉 소크라테스의 지식과 진리는 언제나 실천적인 삶을 형성하는 힘이다. 토론이나 회의를 통해 배워야 하는 대화적인 지식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무지하면 덕을 행할 수 없다고 보고, 지식을 덕과 동일시하는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주장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아 지적ㆍ도덕적 상대주의에 저항했고, 보편타당한 개념을 통해 자신의 인식론과 형이상학을 정립했다. 그는 ≪국가≫에서 서양 최초로 체계적인 교육사상을 제시했다. 그의 인간관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결합된 존재다. 영혼은 지성, 욕망, 기개(氣槪) 등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지성과 관련된 이성적 부분으로 나머지 욕망과 기개에 해당하는 부분들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인간이 이상적 인간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대로 국가관으로 연결된다. 이성의 영혼은 통치자, 욕망의 영혼은 생산자, 기개의 영혼은 군인에 해당된다. 이성적 인간이 통치할 때 이상적 국가가 된다. 이 세 계층의 조화로운 상태가 곧 ‘정의(正義)’다. 여기서 통치자는 나머지 계층을 지배하고 협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플라톤의 교육론은 통치자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를 가리켜 엘리트주의, 국가중심주의 교육론이라고 말한다.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등장하는 파이데이아 개념이다. 통치자는 동굴에 갇힌 채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을 진리의 세계, 즉 이데아의 세계로 인도할 책무가 있다. 여기서 파이데이아는 해방, 인도, 강제, 길의 안내 등을 의미한다. 그리스의 파이데이아 개념은 교육의 핵심 개념으로 로마의 후마니타스(humanitas), 근대의 자유교육과 일반교육의 초석이 된다.

이상주의자인 플라톤이 모든 사물과 별도로 존재하는 이데아에서 실재를 찾았다면, 현실주의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적 사물에서 실재를 찾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virtue)’ 교육론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덕(德)’은 기능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예를 들어 칼, 톱, 배 등의 기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칼은 사물을 잘 자르는 데서, 톱은 나무를 잘 베는 데서, 배는 사람이나 물건을 잘 실어 나르는 데서 그 기능을 온전히 발휘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경우에는 특정 분야에서 기능을 잘 발휘하는 것이 덕이다.
이렇듯 덕은 사회적 역할 수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령 무사(武士)나 정치가의 기능은 후천적으로 획득된 어떤 성향과 관련된다. 다른 관점에서 볼 때 덕은 ‘중용을 선택하려는 성향’과 같은 성품을 의미하기도 한다. 덕 있는 사람이란 바로 그러한 성향이 잘 발달된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여타의 생물과 다르게 이성이 있다. 이성적 원리에 따라 정신적 기능을 잘 수행하는 사람이 바로 유덕한 사람이다. 이러한 삶이 행복한 삶이며, 좋은 삶이다. 인간으로서는 훌륭한 인격자가 됨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론에서 기본적인 것은 덕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여가와 관조적 삶을 통해서 인생의 질을 한층 고양시킬 수 있다.
플라톤의 교육론이 이상국가 건설을 위한 유용한 시민의 양성에 초점을 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 ‘중용’, ‘덕’, ‘이성’과 같은 개념을 교육적 논의에 끌어들임으로써 교육의 차원을 한 단계 승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실제 교육의 측면에서도 플라톤이 주로 서구 최초의 대학으로 불리는 아카데미아(Academia)에서 고차원적 교육을 시행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종의 철학학교인 리케이온(Lykeion)에서 제자들과 주로 산책을 하면서 철학을 발전시켰으며, 그런 이유로 인해 ‘소요학파’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서양문화의 또 다른 원류는 로마적 기풍이다. 그리스 문화가 화려하고 심미적인 데 비해, 로마 문화는 강건하고 실용적이며, 단순미가 있다. 고대 그리스가 문학ㆍ학문ㆍ예술ㆍ철학에서 탁월성을 보인 반면, 고대 로마는 법률ㆍ건축ㆍ도로와 같은 실용적인 면에서 우수성을 보였다. 로마인은 그리스인과 같은 심미적 감각이나 창의적 조형 능력은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발전된 문화를 모방하고, 다른 이질적 문화와 쉽게 동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로마제국은 자신의 문화적 특징을 바탕으로 그리스의 화려한 문화를 수용ㆍ모방하여 자기들의 고유한 문화로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복민의 문화에 흡수ㆍ동화될 수 있었던 로마정신을 기반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스 반도의 패권이 로마로 옮겨 감에 따라 그리스식 교육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하지만 학식 있는 그리스인들이 로마의 부유층 가정교사로 유입되어 그리스식 전통을 이어갔다. 문화가 취약했던 로마는 점차 그리스 문화에 동화되었다. 로마는 그리스 영토를 완전히 점령했지만 문화와 교육은 오히려 그리스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로마의 교육은 크게 초기 공화정 시대와 후기 제정 시대의 교육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초기의 로마 교육은 대부분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가정교육의 보조 수단으로 놀이, 심심풀이라는 뜻을 가진 루두스(Ludus)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머니로부터는 주로 양육을 통한 훈육을, 아버지로부터는 생활 및 시민적 자질과 관련된 지적 교육을 받았다. 교육에서 아버지의 힘은 절대적이어서 자식의 양육 및 교육권은 물론이거니와 생명권까지 손아귀에 쥐고 있을 정도였다. 소년기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사교와 공론장에서의 예절 등을 몸소 익혔다.
후기의 로마 교육은 5현제1) 시대에 절정기를 맞았고, 적극적인 장학 정책의 결과로 발전된 학교 제도가 정착되었다. 이 시기에 초등교육 제도에 해당하는 루두스, 중등교육 제도인 문법학교, 전문인을 양성하는 수사학교, 통치자 교육을 위한 철학학교가 있었다. 특히 고등교육을 받기 위한 예비 과정으로 7자유 교과(septem artes liberales)가 부과되었다. 자유교양 교육의 기초로 부과된 7개의 교육과정은 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수, 기하학, 천문학, 음악 등이다. 수사학교는 로마 시대의 이상적 인물인 연설가를 양성하는 학교로 정계에 입문하려는 사람이 입학했다. 수사학교에서는 수사학과 연설술을 주로 가르쳤다. 수사학은 말 혹은 대화의 기술을 가르치는 학문이었고, 연설술은 말로 대중을 설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철학학교에서는 윤리학이 강조되었으며, 법률학의 전문적 교양 또한 유능한 인간의 필수 조건으로 간주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교육사상가로는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BC 43)와 퀸틸리아누스(Marcus Fabius Quintilianus, 35?∼96?)를 들 수 있다. 로마 시대의 연설가이자 정치가였던 키케로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로마 시대의 대표적 교육사상가다. 자신의 저서 ≪연설가론≫에서 교육의 목적을 인문주의적 교양을 지닌 연설가의 육성에서 찾았다. 그는 그리스 교육 전통을 이어받아 교육을 통한 덕과 행복의 실현을 강조했다. 이상적인 교육적 인간상으로 연설가를 제시하고 연설가 양성에 관한 체계적인 학설을 전개했다. 연설가, 즉 교육받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선천적인 소질, 교육과 훈련, 풍부한 지식과 유창한 언변을 갖추어야 한다. 키케로의 문장은 수려하고 탁월했으므로 후대 인문주의자들의 동경과 모방의 대상이 되었다. 르네상스기 인문주의자들은 로마의 키케로를 모방하고자 열을 올렸는데, 나중에 인문정신은 사라진 채 문장의 형식과 문체만을 모방한 나머지 형식주의자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키케로주의’라는 용어가 형식적 모방주의라는 부정적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이런 배경에 그 원인이 있다.

퀸틸리아누스는 국가의 봉급을 받은 최초의 교사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 저술인 ≪연설가론≫은 인문주의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인격 형성의 기초가 되는 가정교육과 함께 공적인 학교교육 체제를 강조했다. 학교는 특히 학생들의 경쟁심을 자극하고, 교우들과 우정을 쌓을 수 있으며, 공동체 생활에 익숙하게 해준다는 이점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연설가의 자질로서 도덕적 인격을 최우선으로 하고, 연설가는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의 교육사적 공로는 무엇보다도 체벌의 적극적 반대에서 찾을 수 있다. 체벌은 인간의 심성을 어둡게 하고, 교사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았고, 말이나 대화로써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교육에 관여하는 부모와 교사, 그리고 미래의 교사들이 체벌의 문제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이성적이고 냉철한 ‘체벌반대론’은 현대의 교육에서도 음미해 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리스와 로마 교육 비교

그리스와 로마 의 문화를 간략히 설명하고 그에따른 교육내용을 비교해주세요~ A4반장 정도로 최대한 짧게요~ 외우고 이해할 수 있을정도로 핵심만~ 국가-민족적 교육학...

교육컨설턴트님꼐 질문있습니다.

... 세계사는 교육과정, 내용상(소,중,대단원 혹은... 04 그리스와 로마 Ⅲ 지역 문화의 발전과 종교의 확산 01... 세계사 2014년 개정 전후 단원 비교 참고 하시면 됩니다....

교육감 선거 연령 하향 반대 의견

... 때문이며, 그리스와 로마의 결말도 결국 멸망의 길을 걸었기에 실패한 방식이라고도... 미합중국과 비교를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교육 방식과 미합중국의 교육방식은 매우...

신고전주의

...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유럽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상류층의 교육·여가 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이 때문에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비교에 있어서 둘을...

논문의 역사

... 대해 비교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인포마마입니다.... 반면, 서양의 학문은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철학을 바탕으로...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는 성균관이라는 유학의 최고 교육...

2.안드레아스 배살리우스가 보여준...

... 길드원들의 교육을 위해 당국으로부터 해부를 허가... 특히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시대에 대한 관심의 부활로... 잘 비교할 수 있다. 그것의 근육과 힘줄들은 그것들을...

중2사회

... 2:그리스와 로마문화의 특징을 설명하시오 3... 자체보다는 '영리함'을 교육. ⓓ 주요과목: 수사, 변론... 교회의 비교] {로마카톨릭}...

여러 가지 질문이요

... 이러한 경향에 반대하여 인간으로서 바람직한 넓은 교양과 건전한 인격을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나타난 것이 전인교육이다 2. 그리스와 로마의 이상적 인간상의 비교...

이슬람이 왜곡된 사례

...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유럽의 수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페르시아, 인도의 학문은 물론 심지와... 교육수준의 향상인지, 인터넷이 뉴스보도보다 빨라진...

르네상스 시대의 휴머니즘을 설명하시오!!

... 즉 그리스와 로마문화의 부흥을 의미하며 결과적인... 결과 비교적 분명히 밝혀졌다. 휴머니즘(Humanism)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19세기 초였다. 독일의 교육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