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나오는건 쉬운데 답은 정말 굉장히 어려운게 있습니다.
대학교에서 전공한 애들 앞에서 강의할때보다 초등학교나 대중강연에서 받는 질문들이 답변자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고 진땀흘리게 하는 경우가 잦죠
이것도 전형적으로 그러한 것인데요
사실 이 질문에는 그 면면에 아주 겹겹히 쌓여있는 여러가지 문제들과 지식들과 담론들과 설명해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이 끼어있습니다.
질문자님의 물음을 해체 해 보면
우선 질문은 기억이란 무엇입니까? 이지만 질문자님이 실제로 묻고 있는 것은
"어떻게 물질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이 출현하는가" 에 더 가깝습니다.
또한 질문자님은 "기억"이라고 하셨지만 그건 그냥 "정보"에 더 가깝습니다.
이건 정보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라는 질문 그리고 감각계와 지각이라는 주제와도 이어집니다.
그리고 정보가 어떻게 보유되고 유지되는가, 말씀하신 그 기억/학습이라는게 무엇이고 관련 신경메커니즘은 어떤게 있나 등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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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에서 어떻게 정신적인 것들이 출현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은 뇌과학에서는 궁극의 난제이고 인류 지성사의 거의 최 전선에 있는 물음입니다.
다른 학문에서 이와 비슷한 느낌을 갖는 물음은 천문학, 물리학, 우주론등에서 "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하면 왜 이 특정 종류의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들 수 있겠군요
아무튼 이런 생각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품어봤을 질문이자, 상당히 논쟁적이며 아직 누구도 쉽게 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 문제는 뇌과학 이야기 이전부터, 그 학문적 뿌리가 상당히 깊습니다. 서양철학에는 Philosophy of Mind, 그리고 현상학, 인식론이라는 분야가 있는데, 이 학문들 자체가 바로 이 물음과 연관된 떡밥들을 물고 늘어지다가 학문이라는 형태를 이룬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저 학문들이 통째로 그 문제와 거기서 파생된 문제들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고 보시면 되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관련 분야 책들을 몇번 골라서 보시면 알겠지만 머리가 지긋이 아파지는 정말 어려운 것들입니다.
뇌과학은 이 천재적인 철학자들이 던진 수많은 떡밥들을 그저 주워다 먹은게 많습니다. Mind body problem이라던가, 한국인 철학자중 가장유명하고 저명한 유일한 학자라 할 수 있는 김재권교수도 심신수반론, 물리주의로 이 문제와 관련 있죠. 토마스 네이글의 박쥐논변이라던가, 철학적좀비라거나, 타인마음문제라거나 설명적 간극이라거나 메리의방논변이라거나 감각질문제라거나...여기에는 얽히고 섥힌 난제, 퍼즐과 같은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이 넘쳐 흐릅니다. 누가 인터넷에서 글 몇줄로 알려줄 수 있는 성질의 질문이 아니에요 그래서 이런 문제를 Hard Problem이라고 부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소위 "천재"스러운 학자들이 서로 살얼음판을 걷듯 논쟁을 하고 있죠
또한 질문자님은 "기억"이라고 하셨지만 그건 그냥 "정보"에 더 가깝습니다.
기억 이전에 정보라고 불리는것의 본질이 정말 어떤 의미이고 그게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세요.
기억은 그 정보가 "파지(retention)"되고 있는것을 의미 합니다. 이 둘은 어느정도 관련은 있지만
어느정도는 별개의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질문자님의 눈 앞에 의자 하나가 있는데 질문자님이 머릿속으로 그 의자에 대해 생각을 한다 해보세요
그때 환경속의 그 실재, 그 의자 자체는 Distal simulus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 의자의 정보 중 일부라 할 수 있는 외형과 관련된 빛, 시각적 정보들이 빛으로 질문자님의 망막을 때려 어떤 상을 맺습니다. 이런 간접 정보는 Proximal stimulus라고 합니다. 즉, 질문자님이 의자를 생각할때 실제 의자가 머릿속으로 들어가는게 당연히 아니라 실제로 밖에 있는 어떤 의자와 정보가 등가적인(우리 감각계가 채집가능한 형태의 정보로 가공되어져서) 그런 형태로 변환하여 어쨌든간에 의자에 대한 일부 정보가 간접적으로 머릿속에 들어갑니다 이떄 그 머릿속에 있는 의자는 밖에 있는 의자의 Representation(re-presentation, 재-표현, 표상)이라 합니다. 이 과정을 Encoding(부호화, 기호화)라고 합니다.
의자가 encoding되어 머릿속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죠. 이때 code는 당연히 우리 신체나 신경계에서 쓰이는 코드(신경세포의 on, off 발화여부)겠죠? 한마디로 의자에 대해 생각할때 우리 머릿속에서 쓰이는 기호로 의자가 기호화, 부호화 되어(즉 외부 실제 세계에 있는 의자에 대한 정보가 우리의 감각계를 통해 채집되어 져서) 머릿속에 들어간다라는 겁니다. 의자에 대해 생각한다고 의자가 통째로 머릿속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히 아니잖아요 의자가 우리가 사용하는 기호로 바뀐다는 겁니다.
어떻게 물질인 뇌에서 사고, 심상, 시각, 배고픔, 성적 욕망, 분노, 공포, 기억 등등등의 정신적 경험이 출현하는 것일까요?
1930년대~50년대 심리학자중에 Donald Olding Hebb이라는 뇌과학, 신경과학사에서 아주 유명한 획을 그은 심리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살던 시대에는 파블로프나, 존 왓슨 그리고 Karl Lashly(위 Hebb의 스승)같은 학자들과 엎치락뒤치락 하던 시대였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너무 길어지니 건너띄고 이 당시의 시대를 한마디로 보면 자극과 반응의 시대였습니다. 파블로프 또한 뇌를 거대한 하나의 반응기관으로 보았죠.
어떤 정신적 사건 x가 질문자님의 궁금함 처럼 해부학적으로 뇌의 어디에 어느부위 어느 위치에 어떤 메커니즘으로 저장될까요?
그때 저 Hebb이라는 사람은 당시 학자들의 생각을 거부하면서 이렇게 판단 했습니다
"외부의 환경에서 일어나는 생활 속의 사건들이 어떻게 두뇌활동으로 표현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생활 속의 사건들에 대한 정보가 저장되는 메커니즘과 위치를 설명하려는 노력에 먼저 선행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물질에서 생각, 사고 같은 정신적인 것들이 표상이 될 수 있을지 머리를 싸매고 씨름을 해나가면서 나온 책이 The Organization of Behavior: A Neuropsychological theory"라는 책 입니다.
이 책은 뇌과학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책입니다. 오늘날 기억, 학습연구의 핵심이 되는 시냅스가소성이란 개념이 저기서 가장 처음 튀어나왔거든요. 그걸 Hebb의 이름을 따서 Hebbian Rule이라고도 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어떤 정보가 외부에 있으면 우리는 그걸 Encoding을 해서 표상을 합니다.
위에 말한 hebb의 책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는데요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극을 받았을 때 반응하는 대뇌피질의 모든 세포들에 의해 외부환경에 존재하는 물체에 대한 두뇌 내부 표상 (Internal representation)이 만들어진다."
이건 뇌과학 역사상 상당히 중요한 개념인데요, 외부 정보에 대한 심상, 사고, 기억이 어떻게 물질인 두뇌에 표상이 되는지를 설명하는 최초의 구체적 가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