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유명한 수학자의 이름좀 가르쳐 주세요... 내공 50

외국의 유명한 수학자의 이름좀 가르쳐 주세요... 내공 50

작성일 2003.07.17댓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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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 파스칼 등등 여러가지 유명한 수학자들좀 가르쳐 주세요...

저의학교 수행평가 입니다 ^^


#외국의 유명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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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탈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아르키메데스, 타트탈리아.

카르다노. 파스칼. 오일러. 뉴턴. 가우스. 데카르트. 라그랑즈. 페르마. 피보나치. 칸토어.

애드워드 캐스너. 에셔. 레플러. 아킬레스. 러셀. 키니히베르그. 린드. 푸리에. 에라토스테네스,

라이프니츠, 갈릴레이, 노이만, 드모르간, 뫼비우스, 배비지, 베르누이, 보어, 샤를, 갈톤. 하디.

프롤레마이오스. 레오나르도다빈치. 디오판토스. 헤론. 카르다노. 아벨. 힐베르트. 바이어쉬트라스.

콜모고로프. 플라톤. 코시. 제논, 알콰리즈미. 리만. 갈루아

등이있지요

백과사전을 찾아보시는것도 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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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타 고 라 스

Pythagoras : B. C 582 - B. C 497년 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수학자. 남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 크로톤에서 비밀교단을 결성하고, 그 후 메타폰티온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당시의 밀의종교(密儀宗敎)의 형식에 따라 절제, 질박(質朴), 심신의 단련을 목표로 하고, 신들과 양친, 친구, 계율에 대하여 절대적 신실(信實)과 자제과 복종을 설파하였다. 그의 종교적 교의는 윤회(輪廻)와 사후의 응보로서 동시에 인간과 동물과의 유사성을 강조하고 육식을 금하였다.
이론적 방면의 연구에서는 음악과 수학을 중시하였는데, 음악에서는 일현금(一絃琴)에 의하여 음정이 수비례(數比例)를 이루는 현상을 발견하고 음악을 수학의 한 분과로 보았다.
저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업적이 그 자신의 것인지 또는 초기 제자들의 것인지의 구별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제자인 필로라오스와 기타 학자들의 저술의 단편에 의하여 당시 피타고라스와 그 일파의 업적이 알려져 있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을 '수(數)'로 보았다. 그 수는 자연수를 말하는 것으로 이들 수와 기하학에서의 점과를 대응시켰다. 예컨대, 자연수 계열의 연속항의 임의의 항까지의 합은 삼각형수이고, 마찬가지로 기수계열의 합은 정사각형수, 우수계열의 합은 직사각형수라는 방법으로 정의하였다.

또 완전수, 인수의 합, 비례와 평균의 연구, 상가평균, 조화평균 등도 분류하였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그 자신의 업적인지 제자들의 업적인지는 불분명하며 그의 증명법도 오늘날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오늘날의 그 정리의 증명법은 유클리드에 유래한다). 그런데 이의 정리에서 의외로 곤란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즉, 정사각형의 한 변과 그의 대각선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이 경우 대각선의 길이는, 한 변을 1이라 할 때 √2가 되어 약분이 불가능한 무리수가 된다. 이것은 자연수만을 수로 생각한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에 있어서는 극히 난문제였기 때문에 수로부터 제외시켰던 것이다. 또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임의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2직각(180°)과 같음을 발견하고 이를 증명하였다.

'플라톤의 다면체(多面體)'로 불리는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정십이면체는 정오각형의 작도를 필요로 하지만 한 선분을 중외비(中外比)로 끊는 문제로 환원시켜 이 작도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피타고라스는 이 정오각형에서 생기는 성형오각형(星形五角形)을 그의 교단의 휘장(徽章)으로 답변확정하였다고 한다. 피타고라스가 수학에 기여한 공적은 매우 크며,그의 영향은 플라톤, 유클리드를 거쳐 근대에까지 미치고 있다. 천문학에서는 지구가 구형(球形)임을 확신하고, 또 중심화(中心火)의 주위에 지구와 태양 및 기타 행성이 원궤도로 회전한다는 일종의 지동설을 제창하였으나, 다른 학자들의 인정은 받지 못하였다.

자연수 (自然數, Natural Number)

: 1, 2, 3,… 등과 같이 수의 발생과 동시에 있었다고 생각되는 가장 소박한 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양(陽)의 정수(整數)에 해당하며, 덧셈과 곱셈은 자유롭게 할 수 있으나, 뺄셈과 나눗셈은 자유롭지 못하다. 즉, 임의의 두 자연수를 취하여 뺄셈이나 나눗셈을 하여도 그 결과가 반드시 자연수가 된다고는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5-5나 3-5의 결과는 자연수가 아니다.
자연수는 가장 소박한 것이면서도 그것이 이론적으로 확립된 것은 금세기에 들어와서인데, 이탈리아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인 G. 페아노(1858~1932)가 '페아노의 공리'라 불리는 다음과 같은 공리계를 발표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 공리계에는 모순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 것은 그가 이 세상을 떠난 후였다.
이 공리계는 ① 1은 자연수이다. ② 임의의 자연수 x에 대하여, 그 다음의 자연수 x'가 오직 하나 존재한다. ③ x'가 1이 되는 그러한 자연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④ x'와 y'가 동일한 자연수이면, x와 y도 동일한 자연수이다. ⑤ M이 다음 두 조건을 만족하는 자연수의 집합이라면, M은 모든 자연수의 집합이 다. 이것을 귀납공리(歸納公理)라 한다. ㉠ 1은 M에 속한다. ㉡ x가 M에 속한다면 x'도 M에 속한다. 이 공리계를 바탕으로 하여 자연수의 모든 성질이 증명된다.
그러나 근래에는 0을 최소인 순서수(順序數)로 보고 이를 유한순서수(0을 포함하는 자연수)에 속하는 것으로 한다. 즉, 공집합을 순서수로 보고 이를 0으로 표시할 때 1={0}, 2={0, 1}, 3={0, 1, 2}… 은 순서수이고, 이 유한집합인 순서수, 즉, 유한순서수는 자연수(0을 포함해서)와 동일하다. 자연수 전체의 집합을 ω라고 하면 ω={0, 1, 2,…} 도 순서수가 되고, 이 ω는 무한집합인 순서수로 초한순서수(超限順序數)라 한다.

기수 (基數, Cardinal Number)

: 집합론에서 사용되는 기본개념으로 농도(濃度) 또는 집합수(集合數)라고도 한다. 2개의 유한집합 A와 B의 원소 사이에 1 대 1 대응이 이루어질 때, 즉, A와 B가 대등이면, 집합 A와 집합 B의 기수는 같다. 또는 같은 크기를 가진다고 하고, 집합 A의 기수를 |A| 또는 로 나타낸다. 기수의 개념은, 유한집합의원소의 개수의 개념에서 무한집합 일반으로 확장할 수 있다.
따라서, 유한, 무한에 관계 없이 2개의 집합A의 원소와 B의 원소 사이에 1 대 1 대응이 이루어지면, 즉, A∼B이면 집합 A와 집합 B는 같은 기수를 가진다고 한다. 결국, 기수는 2개 또는 그 이상의 집합이 서로 같은지, 보다 작은지, 보다 큰지를 결정하는 데 쓰인다. 자연수 전체의 집합과 대등인 집합의 기수를 가산(可算) 기수라 하고, 이것을 α 또는 0(알레프)로 나타낸다. 또, 실수의 집합과 같은 기수를 연속(체) 기수라 하고 c로 나타낸다. n개의 원소를 가지는 유한집합의 기수는 자연수 n을 써서 나타내는데, 이를테면 |ø| = 0, |{0, 1, 2, 3, 4|=5이다.

완전수 (完全數, Complete Number)

: 자연수 a 중에서 a 이외의 약수(1을 포함)의 합이 a와 같게 될 때의 a를 의미하며 완수(完數)라고도 한다. 이를테면 6 = 1+2+3, 28 = 1+2+4+7+14이므로 6, 28은 완전수이다. 완전수라는 명칭은 유클리드가 명명한 것이며, 그의 기하학원본에는 'p>1일 때, 2P-1이 소수(素數)이면, a = 2P-1(2P-1)은 완전수이며,짝수의 완전수는 이와 같은 꼴의 자연수에 한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를테면, p = 2, 3, 5, 7, 13, 17에서 2P-1을 만들면 이들은 소수이며, 따라서, 2P-1(2P-1) = 6, 28, 496, 8128, 33550336, 8589869056은 완전수이다. 이것을 완전히 증명한 수학자는 L. 오일러이다. 홀수의 완전수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완전수가 무한히 존재하는지의 여부도 밝혀져 있지 않다.

피타고라스의 정리 (Pythagorean Theorem)

: '직각삼각형의 직각을 포함하는 두 변 위의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빗변 위의 정사각형의 넓이와 같다'라고 하는 정리로 직각삼각형의 3개의 변을 a, b, c라 하고 c에 대한 각이 직각일 때 a2 + b2 = c2로됨을 뜻하는 것으로서,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가 처음으로 증명했다고 하여 피타고라스의 정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것을 삼평방의 정리라고도 한다. 이것의 특별한 경우로서 3변이 3 : 4 : 5의 비율인 삼각형이 직각삼각형으로 된다는 것은 고대 이집트나 바빌로니아, 인도, 중국 등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또 바빌로니아 등지에서는 일반적인 경우의 정리는 증명되지 못했으나 그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 정리는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고 옛날부터 각국에서 그 증명법이 연구되어 왔다.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것은 유클리드의 고안이라고 하고 있으나 그 밖에 비례를 사용해서 증명되는 것, 두 개의 정사각형을 절단해서 하나의 정사각형을 조립하는 것 등 100종류 정도의 증명법이 고안되어 있다.



가 우 스

Karl Friedrich Gauss : 1777 - 1855

독일의 수학자이며, 관측자. 대수학과 해석학 그리고 기하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겨, 19세기 최대의 수학자라고 일컬어진다. 수학에 이른바 수학적 엄밀성과 완전성을 도입하여, 수리물리학(數理物理學)으로 부터 독립된 순수 수학의 길을 개척하여 근대수학을 확립하였다. 한편 물리학, 특히 전자기학(電磁氣學)·천체역학(天體力學)·중력론(重力論)·측지학(測地學) 등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브룬스비크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빈궁한 가운데 성장하였지만, 일찍부터 뛰어난 소질을 보였기 때문에, 어머니와 숙부의 노력으로 취학할 수 있었다. 10세 때 등차 급수의 합의 공식을 창안하는 등 신동(神童)으로 알려져 브룬스비크공(公) 페르디난드에게 추천되어, 카롤링 고교를 거쳐 괴팅겐 대학에 진학하였다. 고교시절에 이미 정수론(整數論)이나 최소 제곱법(最小自乘法) 등으로 독자적인 수학적 업적을 올렸는데, 괴팅겐 대학 재학 시절에 정 17각형의 문제에 열중한 것이 수학의 길을 선택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가우스는 헬름슈테트 대학으로 옮겨 22세 때 학위를 받았으며, 그 후 다시 브룬스비크로 돌아와 페르디난드공(公)의 도움을 받으면서 수학을 계속 연구하였다. 1801년에 간행된 명저(名著) 《정수론연구(整數論硏究), Disquistiones Arithmeticae》는 2차의 상호법칙의 증명을 풀이하였으며, 합동식(合同式)의 대수적 기법을 도입하여 이 분야에 획기적인 업적을 쌓아 올렸고, 학위 논문에서 이룩한 대수학의 기본정리의 증명과 더불어 학계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그에게 대학에서의 지위를 가져다 준 것은 오히려 천체역학에 관한 업적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의 학계에서 뉴턴역학의 영향이 얼마나 컸던 가를 짐작할 수 있다. 즉, 1801년 소행성 케레스(Ceres)가 발견되자,이 별의 궤도결정이 문제로 대두되어, 가우스가 이를 계산해 내어 해결한 공을 인정받아 1807년에 괴팅겐 대학 교수 겸 천문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800년 이후 가우스의 연구는 대략 4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소행성의 궤도결정을 시작으로 천체역학을 연구하던 1820년까지의 시기이고, 이 시기의 연구는 《천체 운동론》(1809)에 집대성되어 있다. 또한, 수학 분야에서는 초 기하급수(超 幾何級數)의 연구 및 복소 변수(複素 變數)의 함수론의 전개가 있다(베셀에게 보낸 서한에 적혀 있으며, 훗날의 코시의 정리도 포함한다).

제2기는 측지학(測地學)에 관계한 시기로서, 1821년에 하노버 정부와 네덜란드 정부의 측지사업의 학술고문으로 위촉받은 일이 계기가 되어 곡면론(曲面論)의 검토, 즉, 곡률(曲率)의 문제, 등각 사상(等角 寫像)의 이론, 그리고 곡면의 전개가능성 등을 고찰하였다. 이것은 미분기하학(微分幾何學)으로 향하는 최초의 일보였다. 한편, 정수론의 영역에서도, 주로 4차(次)의 상호법칙 연구에서 비롯하여 복소 정수(複素 整數)의 연구에 이르러 대수적(代數的) 정수의 이론을 창시하였고, 이것은 아인슈타인, 쿠머, 데데킨트 등에게 계승되었다. 또한, 데이터의 처리와 관련하여 1821∼1823년의 논문에서 최소 제곱 법을 이론화하여 통계에서 가우스분포의 의의를 강조하였다.

제3기는 1830년부터의 10년간으로서, 주요 관심사는 물리학 쪽으로 옮겨져 갔다. 특히, W. E. 베버와의 협력 아래 추진한 지구자기(地球磁氣)의 측정 및 이의 이론적 체계화가 두드러진 업적이다. 괴팅겐에 자기관측소를 설립하고, 측정을 위하여 자기기록계를 제작하였으며, 또한, 절대단위계(絶對單位系)를 도입함으로써 전자기학의 기초를 닦는 데 공헌하였고, 한편으로는 퍼텐셜론(論)을 전개하여 이것의 수학적 기초의 수립을 추진하였다. 이 밖에, 전신기(電信機)의 발명과 모세관현상의 연구 등도 이 시기에 이룩한 것이다.

1840년경부터 만년에 이르는 제4기에는, 오늘날의 위상해석학(位相解析學)인 위치해석학 및 복소 변수의 함수와 관련된 기하학을 연구하였다. 이상과 같이 수학자이며, 동시에 관측자이기도 했던 그는 '괴팅겐의 거인(巨人)'으로서 이름을 남겼지만, 우선권 다툼이라든지 후진의 업적에 대한 냉담한 태도 등으로 가끔 나쁜 평을 받게 된 것은 아마도 완전성을 중요하게 여긴 그의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그의 좌우명은 “수(數)는 적으나 완숙 하였도다”였다.



대수학의 기본정리 (代數學의 基本定理, Fundamental Theorem of Algebra)


: 대수방정식의 근의 존재에 관한 정리로 D. 디데로와 J. L. R. 달랑베르가 1746년에 발표하였으나 증명이 불충분했으며, K. F. 가우스가 1797년에 발표한 학위논문에서 '대수방정식은 반드시 근을 가진다'고하여, 엄밀한 증명을 처음으로 부여하였다. 즉, '실계수(實係數) 또는 복소 계수를 가지는 방정식은 반드시 복소수의 근을 가진다'고하는 것으로서 이 정리로부터 n차의 방정식 f(x) = 0의 좌변은 f(x) = a0(x-α1)(x-α2)…(x-αn)과 같이 일의적으로 분해되므로 '복소수체는 대수적 폐체(代數的 閉體)이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n차의 방정식은 n개의 근을 가진다. 이 기본정리의 증명에 복소 함수론, E. 갈루아의 이론을 사용한 A. L. 코시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별도로 증명한 것도 알려져 있다. 1826년 N. H. 아벨이 증명한 '5차 이상의 대수방정식은 일반적으로 대수적 해법(4칙연산과 거듭제곱근 풀이)으로는 풀리지 않는다'라고 하는 명제와 함께 방정식론의 기본이 되어 있다.


파 스 칼

Blaise Pascal : 1623 - 1662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물리학자. 종교철학자이자 작가이기도 하다. 근대 확률이론을 창시했고, 압력에 관한 원리를 체계화했으며, 신의 존재는 이성이 아니라 심성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종교적 독단론을 설파했다. 직관론에 바탕을 둔 그의 사상은 장 자크 루소와 앙리 베르그송 및 실존주의자 등 후세의 철학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아버지 에티엔 파스칼은 클레르몽페랑에 있는 세무 법원 판사였다. 1626년 어머니가 죽고 1631년 파스칼의 가족은 파리로 이사했다. 존경받는 수학자였던 에티엔은 파리로 옮겨온 뒤에는 자식 교육에만 전념했다. 2세 아래인 누이 자클린이 문단에서 신동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동안, 파스칼은 수학분야에서 그에 못지않은 천재성을 발휘했다.
1640년 그는 종합 사영(射影) 기하학에 관한 지라르 데자르그의 저서를 연구하여, 그 결과를 가지고 《원뿔곡선론, Essai pour les coniques》을 썼다. 이 책은 수학계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의 위대한 합리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 같은 사람조차도 시샘할 정도였다. 1642~1644년 파스칼은 아버지(1639년에 루앙 시 행정관으로 임명되었음)의 세금 계산을 도우려고 계산기(파스칼 계산기)를 착안하여 발명했다. 파스칼의 동시대인들은 이 기계만으로도 파스칼이 명성을 누릴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당연했다. 어떤 의미에서 이 기계는 최초의 디지털 계산기였기 때문이다. 1646년까지만 해도 파스칼 일가는 겸손을 신앙으로 여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가톨릭 교리를 엄격하게 지키는 독실한 신자였다. 그러나 우연한 사건으로 파스칼은 보다 심오한 종교 세계와 만나게 되었다. 아버지가 아플 때 두 사도를 만난 것이 그 계기였다. 포르루아얄 수도원 원장이었던 생시랑 신부의 수도원 생활과 사상에 얀센이 창시한 얀센주의의 엄격한 도덕과 신앙을 도입했다. 얀센주의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17세기 형태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주의였다. 얀센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거부하고 신의 예정설을 답변확정했으며, 구원의 열쇠는 인간의 선행이 아니라 신의 은총이라고 가르쳤다. 포르루아얄 수도원은 얀센주의 종파의 본산이 되었다. 속세에서 신에게로 완전히 전향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첫번째 사람은 파스칼 자신이었으며, 그는 1646년 가족들까지 설득하여 얀센주의적 신앙생활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그의 편지들을 보면 그가 오랫동안 가족의 정신적 조언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세계와 금욕 생활 사이에서 겪는 내적 갈등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시금 과학적 흥미에 빠져든 파스칼은 갈릴레오와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기압계 원리를 발견한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의 이론을 검증했다.

그러던 중에 그는 수은 기압계를 만들어 파리와 클레르몽페랑이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서 기압을 측정하여 대기압에 관한 실험을 검증하고 확대시켰다. 이 실험결과는 유체동역학과 유체정역학에서 좀더 진전된 연구가 이루어지는 데 길잡이가 되었다. 또한, 실험 과정에서 파스칼은 주사기를 발명했으며, 파스칼의 원리(밀폐된 유체에 주어진 압력은 그 압력이 주어진 범위에 관계없이 모든 방향에 같게 전달됨)를 바탕으로 유압 프레스를 고안해냈다. 1647~1648년 진공 문제에 관한 논문을 잇달아 발표하여 더욱 명성을 얻었다. 그는 과로로 병이 났고, 의사들은 더 이상 연구에 몰두하지 말고 기분을 전환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파스칼은 여전히 과학 연구에 몰두함으로써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 기간(1651~1654)에 그는 액체평형에 관해서, 공기의 무게와 밀도에 관해서 또 산술 3각형에 관해서 논문을 썼다. 특히 산술 3각형에서는 확률 계산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1653년말에 종교적 가책을 느끼기 시작한 파스칼은 1654년 11월 23일 밤에 '은총의 불'을 경험하고, 이것이야말로 새 삶의 시작을 알리는 신의 계시라고 믿었다. 이듬해 1월 포르루아얄 수도원에 들어간 그는 비록 은둔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글을 쓰면서 여생을 보냈고, 저서를 발표할 때도 자기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가 《시골친구에게 쓴 편지, Les Provinciales》와 《명상록, Pensees》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두 저서를 집필한 것은 그가 포르루아얄 수도원에 입문한 것과 거의 같은 시기이다.

파스칼 계산기(Pascaline)

: 최초의 컴퓨터에 해당하는 파스칼 계산기(Pascaline)는 1642년 고안된 최초의 기계식 수동 계산기로서 가감산이 가능하였고 파스칼리느(Pascaline)라고 불리었으며, 계산기의 자동화에 이바지하였다. 그림과 같은 파스칼 계산기는 여러개의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형태로, 어느 톱니바퀴가 1회전하면 그보다 수학적으로 한단위 높은 의미를 갖는 톱니가 1/10 회전하도록 만들어진 가산기로서, 덧셈과 뺄셈을 수행하는 기계적인 카운터였다.
파스칼 계산기는 다이얼에 의하여 십진수를 표시하는 6개의 원판이 두 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원판에는 0에서 9까지의 십진수가 새겨져 있다. 다이얼을 이루는 두 개의 집합은 각 수를 기억하는 레지스터(register)로 사용되며, 한 레지스터는 계산 결과를 누적하는 누산기(accumulator)로 작동하고, 다른 하나는 누산기에 더하거나 빼는 값을 저장하는 데 사용된다. 파스칼 계산기에서 정립한 개념은 1) 연산시 발생하는 올림수의 처리와, 2)보수에 의한 음수의 표현이 두가지 인데 이 개념은 현대 컴퓨터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현재도 이 개념을 사용한다.

뫼비우스 [ 1790.11.17~1868.9.26 ]

독일의 수학자 ·천문학자.

국적 : 독일
활동분야 : 수학, 천문학
출생지 : 프로이센
주요저서 : 《중심해석(重心解析)》(1827)

프로이센 출생. 라이프치히 ·괴팅겐 ·할레 등지의 여러 대학에서 공부하고, K.F.가우스의 문하생이 되었다. 1815년 라이프치히대학 천문학 교수, 1844년 동 대학천문대장이 되었다. 천문학 이외에도 기하학 ·역학 등을 연구하여 업적을 남겼다. 기하학에서는 동차좌표(同次座標)의 일종인 중심좌표를 처음으로 도입한 업적으로 유명해졌다.

주요저서로는 《중심해석(重心解析)》(1827)이 있다. 사영기하학(射影幾何學)의 기초를 굳혔으며, 직선기하학 연구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면(面)의 표리(表裏)의 구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대한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뫼비우스의 띠

: 좁고 긴 직사각형 종이를 180°(한 번) 꼬아서 끝을 붙인 면과 동일한 위상기하학적 성질을 가지는 곡면으로
독일의 수학자 A.F.뫼비우스가 처음으로 제시하였기 때문에 뫼비우스의 띠라고 한다. [그림 1]의 (1)과 같은 직사각형 띠를 꼬지 않고 점 A와 D, 점 B와 C가 만나도록 변 AB와 DC를 붙여 고리를 만들면 [그림 2]의 (1)과 같이 된다. 또, [그림 1]의 (2)와 같은 띠를 180° 꼬아서 점 A와 C, 점 B와 D가 만나도록 변 AB와 변 CD를 붙이면 [그림 2]의 (2)와 같이 된다. 이 [그림 2]의 (2)의 곡면이 뫼비우스의 띠이다.

이 띠에는 여러 가지 성질이 있다. 이를테면, [그림 2]의 (1)의 띠 바깥쪽에 칠을 하면, 바깥쪽은 전부 칠해지나 안쪽은 칠해지지 않는다(兩側曲面). 그러나 뫼비우스의 띠의 바깥쪽에서 칠을 해가면 안쪽도 모두 칠해진다(單側曲面). 즉, 안쪽과 바깥쪽의 구별이 없다. 따라서, [그림 2]의 (1)과 (2)는 동상(同相:위상적으로 동형)이 아니다.

위상기하학에서는 어떤 도형이 튼튼하고 탄력성이 있는 재료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이 재료를 자르거나 접거나 잇지 않고 임의로 늘이거나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원 ·삼각형 ·다각형 등은 동상이고, 또 구(球) ·각기둥·각뿔 ·정다면체 등도 동상이다.

[그림 3]과 같이 180°×n(n번)만큼 꼬아서 만든 띠를 Bn이라 하면,n이 짝수일 때 Bn은 Bo([그림 2]의 (1))와 동상이며, n이 홀수일 때 Bn은 B1([그림 2]의 (2))과 동상이다. [그림 2]의 (1)과 같은 띠를 그 중심선을 따라 자르면 2개의 독립된 띠가 되지만, [그림 4]의 (1)과 같이 한 번 꼬아 만든 뫼비우스의 띠 B1을 그 중심선을 따라 자르면 네 번 꼬인 하나의 띠 B4가 된다. 또, [그림 4]의(2)와 같이 뫼비우스의 띠 B1을 그 삼등분선을따라 자르면, 1개의 뫼비우스의 띠B1과 네 번 꼬인 띠 B4가 얽혀 있는 상태가 된다.



존 네어피어(John Napier ; 1550~1617)

네이피어는 최고 수준의 수학자로 알려져 있는 인물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뉴우튼(Newton), 랩슨(Rapson) 또는 테일러(Taylor)와 같이 그들의 이름이 영원히 수학적인 개념, 정리 또는 방법들에 연관된 그런 훌륭한 수학자의 대열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네이피어가 만든 창작품은 수학사의 연대기에 확고부동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또한 모든 수학자들에게 애용되고 있다. 그는 로그(logarithms, 때로는 Napierian logarithms로 불러진다.)를 만들었다. 그리고 소수(小數)의 현대적인 표기법을 소개하였으며, 곱셈을 하는 실용적인 도구(Napier's bones라 불려진다.)도 만들었다. 'logarithm'이란 말은 '식(式)'이란 뜻의 희랍어 'logos'와 '수(數)'라는 뜻의 희랍어 'arithmos'에서 나온 말이다. 이 용어는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음이 입증되었고, 지금은 확고부동한 수학 용어로 자리잡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어원에 대해서는 거의 잊어버린 상태이다.

네이피어는 영국의 에딘버그(Edinburgh)가 가까이에 있는 머치스톤(Merchiston)의 엄한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에딘버그(Edinburgh)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그 뒤 St Andrews에 있는 대학에 가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하였다. 그는 학위를 다 마치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학위를 마치지 못한 것이 수학자로서 성공을 거두는데 지장을 준 것은 아니다.

그는 유럽 대륙에서 2∼3년간 공부하다가 돌아와 1572년에 엔드릭(Endrick) 강기슭에 집을 짓고는, 1608년 그의 아버지가 죽어서 머치스톤(Merchiston)의 집을 상속받기 전까지 행복하게 지냈다. 그는 생계를 위해서 일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놀랄만한 업적은 곧 신화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밭을 기름지게 하기 위하여 소금을 이용하였고, 침수된 탄광에서 물을 뽑아 올리기 위한 수력프로펠러(hydraulic screw)를 고안해서 만들었고, "A Plaine Discovery of the Revelations of St John"이라는 제목을 가진 카톨릭 교회에 대한 심한 비평집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일생의 정열은 천문학에 있었는데, 천문학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그로 하여금 여러 힘들고 어려운 계산을 하는데 있어서 보다 쉽고 경제적인 계산 방법을 찾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손으로 계산을 길게 해야하는 곱셈은 덧셈보다 휠씬 까다롭고 힘든 작업이다. 그러나 곱셈을 덧셈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커다란 진보가 아닐 수 없다. 그러한 가능성은 네이피어 당시에는 없었다. 20년도 넘는 기간 동안 그의 생각은 다음 법칙에 의한 지수의 곱셈에 집중되었다.

이와 같이 과 의 곱셈은 s=x+y처럼 지수를 더해서 를 얻게 되었다.

밑을 10으로 하는 로그를 자주 사용하는 요즘은 곱셈을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만일 곱셈3.3567×2.6547을 계산해야 할 때, 먼저 10의 지수를 구한다. 이 경우에 각각 3.5678 = , 2.6547 = 이므로 3.5678 × 2.6547 = 이고 지수의 합은 쉽게 구해져서 이고 이 값은 9.46804이다.

손으로 해야 하는 긴 곱셈 대신에 10의 거듭제곱에 해당되는 지수들을 구하여, 그것들을 더한 다음 다시 10의 거듭제곱꼴을 보통의 수로 바꾸어 주면 된다. '10의 거듭제곱을 밑을 10으로 하는 로그'라 한다. 예를 들면 밑을 10으로 하는 3.5678의 로그는 0.55224이고, 밑을 10으로 하는 2.6547의 로그는 0.42402이다. 그리고, 밑을 10으로 하는 9.46804의 로그는 0.9726이다.

곱셈 문자를 덧셈 문제로 바꾸는 일은 로그표만 있으면 된다. 그 동안 여러분들이 때때로 사용했든지 아니면, 비록 계산기나 컴퓨터등이 로그표들을 쓸모 없게 만들었을지라도, 바로 최근까지 학교에서 공부할 떼 이 로그표를 책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한 세대 전에는 사람들이 주로 소수 네자리까지 나온 로그표를 사용하였고, 그중일부는 좀 두껍지만 소수 다섯 자리나 심지어는 여섯자리까지 계산된 로그표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값싸고 손쉬운 계산기가 보턴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소수 여덟 자리 또는 그 이상까지로 계산해 주기 때문에 로그표는 이제 거의 구시대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네이피어의 시대에는 그러한 노동 절약형 장치는 없었다.

네이피어가 만든 로그는 밑이 e=2.71828로 계산되었다. 그러나 남의 비위에 거슬리게도 그는 삼각함수의 계산 관심이 많았다. 그가 1614년에 최초로 발표한 표에는 사인에 대한 로그값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것은 영국 수학자 헨리 브릭스(Henry Briggs)를 자극하여 1616년에 같이 연구하여 1617년에 밑을 10으로 하는 브릭스의 로그표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그 해에 네이피어가 죽었다.

네이피어의 평판에 관해서는 최소한 서로 다른 두 가지 주장이 있다. 그것은 1617년에 쓰여진 책에서 숫자에 소수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서는 소수 1.346은 1/10의 거듭제곱?대응하는 표시가 숫자로 바로 뒤나 위에 나타내서 우리가 소수 부분으로 있도록, 1㉧3①4②6③ 으로 쓰여지거나 또는 으로 표기되었다. 네이피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 과 아주 똑같은 효율적이고도 완벽한 표시법을 발명하였다.

또한 그는 곱셈을 실제적이고도 아주 쉬운 방법으로 계산할 수 있는 정교한 도(Napier's bones)를 고안하였다. 아홉 개의 각 막대자에는 1에서 9까지의 숫자들의 곱셈표가 그려져 있다. 첫 번째 막대자에는 1, 2, 3, …, 9가, 두 번째 막대자에는 2, 4, 6, … 18이, 세 번째 막대자에는 3, 6, 9, … 27 등등이 쓰여져 있다. 예를 들면 237 × 6과 같은 두수를 서로 곱하기 위해 2, 3, 7로 시작되는 세 막대자를 나란해 놓고 6×2, 6×3, 6×7의 곱셈은 이어지는 막대자의 여섯 번째 줄을 읽어 내면 되었다. 다른 숫자 위에 한 숫자를 놓음으로서 막대자들은 나란히 세워질 수 있고, 그래서 대응하는 숫자들을 마음속으로 더해질 수있으며 결과적으로 계산을 할 수 있게 된다.

네이피어는 진정으로 그의 일을 사랑하였다. 요즈음 그의 창작품이 계산기나 컴퓨터의 출현으로 빛이 가려졌지만 니이피어의 작품은 현대 수학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음은 인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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