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는 괜찮은 것 같은데 참고하라고 한 말은 어처구니가 없군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죠. 과연 모두가 비겁할까요? 악의 존재를 인정안 하면 경박하고 따분한가요? 또한 미숙한 가요? 그것은 선생이라는 사람의 극히 개인적인 생각인 것 같은데 자기 생각을 참고해서 글을 쓰라는 건데 솔직히 웃기네요.
특히 결론까지 정해져 있고 글을 쓰라는 것은 거의 교육에 있어서 폭력과 같은 겁니다. 사람이 다른 만큼 생각이 다를 수도 있구요. 굳이 성선 성악에 얽매이지 말고 동등한 입장에서 자기가 괜찮다고 싶은 곳을 택하시면 됩니다. 논술은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주장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주장하느냐 즉 그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됩니다.
인간의 본성의 문제는 동양에서 특히 전국시대에 유행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맹자, 순자, 고자를 들 수 있는데요. 일단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하고 생각해 보죠. 성선과 성악은 인간의 선천적인 본성을 말하는 겁니다. 어떠한 외부적인 교육이나 물듬이 없는 상태에서 인간은 선하다 악하다 또는 고자처럼 선도 악도 아니다 라는 거죠.
인간 본성의 문제는 그 파장이 매우 큽니다.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같은 문제가 발생해도 대처하는 방법이 달라지니까요. 인간이 선하다면 선한 본성을 계속 더 확충해 나가고 악으로 가지 않게 노력(수양)하라고 하겠죠. 악한 행동을 해도 선하게 다시 돌리기 위한 쪽으로 노력을 하겠죠. 반대로 인간이 악하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선하게 해야겠죠. 그런 방법이 교육같은 것이 있을거구요. 대신 악한 행동을 했을 때는 선하게 할 가능성이 부정되어 있기 때문에(인간은 선천적으로 악하다면) 처벌을 하고 제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는 성선을 포기할 수 없는 어떠한 당위적인 측면이 되는겁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현실속에서 볼 때는 어떤가요? 착한 사람보다는 악한 사람이 더 많아 보이죠. 물론 성선설에서도 인간이 악해지는게 환경이나 인간의 탐욕과 욕심으로 설명을 하지만 있는 현실을 얼마나 잘 설명하느냐? 에서는 성악설이 더 적합해 보이기도 합니다.
즉 현실에서는 악해 보이는 인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성악설이 설명에서는 더욱 설득력을 가지지만 인간 본성 문제가 가진 파장을 가진 영향을 생각하면 성선설을 포기하기는 힘듭니다. 반대로 이렇게 혼란하고 악해 보이기 때문에 더욱 성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할 수 있죠. 이것은 사실을 넘어서는 가치의 문제와 연결이 됩니다.
유교가 2천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성악이 현실에 적합한 설명이라고 분명 느끼면서도 성선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성악이 가진 폐단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순자같은 경우 책에서는 성악설을 주장했다고 해서 왠지 색안경 끼고 볼 수 있는데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을 도덕적으로 교화하기 위한 설명(예치, 교육)에서 등장합니다. 즉 성악이라고 말했지만 절대적으로 악하다는 것은 아니죠. 그런 측면에서 순자를 소극적 성악설이라고 하는데요. 문제는 순자의 제자들(한비자, 이사)에 가면 완전 적극적 성악설이 됩니다. 이쯤되면 인간의 가치는 거의 바닥에 떨어지죠. 인간이라는 동물은 언제 악한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군주를 위한 강력한 법을 통해 다스려야 한다는게 '법가사상' 입니다.
순자가 유학사에서 이단시 되는 이유도 법가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부과되어 있는거죠. 솔직히 법가의 법을 보면 어떻게 하면 악한 인간을 처벌할까? 하는 부분에 관심이 있으니 거기서 인간의 가치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거의 독재를 생각하면 편합니다.
대충 성선과 성악에 대해서 설명했으니 각각의 장단점도 참고가 되었다고 생각이 되네요. 성악도 현실을 더욱 잘 설명해준다는 측면에서는 분명 장점도 있지요. 물론 단점이 가진 영향력이 큰 게 사실이지만요. 성악을 기본 모토로 글을 쓴다고 하면 절대적인 성악으로 가서는 곤란합니다. 소극적 성악에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선하게 하기 위한 기타 도구들을 설정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