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 플라톤plato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입니다. 대략 기원전 3세기의 인물로, 지금보다 2300년쯤 전에 생존했던 사람이네요. 그리스어로 플라톤이란 이름은, '넓다'는 뜻입니다. 플라톤은 어깨가 넓은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였던 것 같습니다. 니체에 따르면 플라톤은 또한 귀족 출신이었다고도 합니다.
플라톤은 자신보다 앞선 철학자들의 이론을 종합한 사상가입니다. 예를 들면 플라톤은 피타고라스로부터 '수' 혹은 '개념'의 불변성이라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였으며, 파르메니데스로부터는 '운동하지 않는 존재'라는 개념을 받아들였습니다. 아주 거칠게 표현하자면, 플라톤은 자신보다 앞선 철학자들로부터 '불변성'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이것을 최고의 원리로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플라톤은 '운동'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말해 플라톤은 '변화하고 운동하는 것'을 덧없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무상한 것, 일상적인 용어를 쓰자면 앞서 표현한 것처럼 '덧없이 흘러가는 것'
플라톤은 변화라는 개념을 존중하지 않았고,
변화를 보여주는 감각 또한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법(문답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앎' 이란, 특정 대상에 대한 개념적 정의이며, 이것은 불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그의 이데아론으로 이어졌습니다.
니체
- 니체는 플라톤과 반대되는 사상가입니다. 플라톤이 '불변성'이나 '실체성'을 강조하였다면 니체는 이러한 것들을 강력하게 비판(종종 비난)하고 그것들과 완전히 반대되는 사상을 제시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의 서술, "참된 세계란 가상 세계에 덧붙여 날조된 것에 불과하다."
언뜻 보면 이상해보이는 이 발언을 기독교식 용어로 바꾸어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천국이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고 지어낸 개념에 불과하다."
니체는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니체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다 목사였습니다. 니체 또한 어린시절에는 신앙심이 깊었던지 성경 암송을 잘 해서 '꼬마 목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니체는 자신이 그보다 조금 더 성장한 12살 무렵에 기독교의 핵심적인 개념을 의심하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내 나이 열두 살에 나는 기발한 삼위일체를 생각해냈다
: 즉 신-아버지, 신-아들, 신-악마라고 하는.
나의 결론은 신이 자기 자신을 사유하는 과정에서 신성의 두 번째 인격을 창조했다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사유할 수 있기 위해 그는 자신에 반대되는 것을 생각해내야 했다는 것.
말하자면 창조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 그럼으로써 나는 철학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책세상 니체전집 17권 334p
니체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기독교를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니체는 신을 믿지 않았습니다.
"내게 있어서 무신론이란 (과학적 발달의) 결과가 아니라 (그 자체로 당연한) 현상이다. 내게 무신론이란 즉각적인 사실이다. 나는 (신이라는) 조잡한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다. 신이란 우리 사상가들의 입에 맞지 않는 맛없는 반찬이다."
<이 사람을 보라> - 나는 왜 이다지도 현명한지 1번글 -
니체는 플라톤이 주장했던 '불변성'이라는 개념에 완전히 반대하면서 '변화'를 긍정하는 입장에 서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니체가 플라톤 사상의 모든 부분에 반대했던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니체는 플라톤의 엘리트주의에 상당히 동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니체는 플라톤을 평하면서, "플라톤은 동정심을 경멸했다"고 말합니다.
즉, 니체는 함께 슬퍼하는 행위 (Mitleiden; 독일어 Mit + 독일어 leiden; Mit = with = 함께, leiden = 슬픔, 다시말해 함께 슬퍼하는 행위) 가 다같이 의기소침해지는 결과만을 불러올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체와 플라톤은 둘 다 좀 더 강인한 인간 유형을 좀 더 긍정적인 눈길로 바라봅니다.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고통을 자양분으로 받아들이는 인간.
그렇기에 고통을 씁쓸한 그 무엇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끝내 자신의 성장을 위한 무엇이었다고(성장통) 받아들이는 관점.
비트겐슈타인
- 20세기 최고의 천재 철학자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막연하게 아는 것을 써보자면,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에 대한 자신의 독창적인 관점을 제시한 사람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젊은 시절에 '그림 이론'이라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림 이론'이란 언어에 대한 이론인데, "단어들이 마치 그림과 같이 실제 대상과 1:1 로 대응한다"는 뜻입니다. 즉 '모든 단어에는 그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말년에 가서 자신의 이론을 변경하게 되는데
이 이론은 '언어 놀이'라고 불립니다.
앞선, '그림 이론'에서 언어란, '상황에 딱 들어맞는 한 가지 쓰임새를 지닌 기호'로 파악됩니다.
그런데 나이든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자신의 앞선 관점을 변경하여, 언어란 그 언어가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다른 뜻을 지닐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예를 들어 목수가 나무를 깍다가 중간에 잠깐 '차'라고 말했을 때,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차car를 타고 싶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차tea를 마시고 싶다'는 뜻일까요?
맥락을 고려해보면 아마도 무언가를 마시고 싶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지식이 매우 피상적이어서 더 깊게 설명드릴 수는 없는 점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제가 수박 겉핡기 식으로 설명해놓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무언가를 지시하는 기호; 이를테면 언어'와 '대상 ;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 그리고 확실성 개념 등에 대해 깊게 생각한 사상가입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좀 더 읽어보아도 좋을만한 사상가라고 생각되네요.
비트겐슈타인의 삶에서 특이한 점들을 꼽자면
우선 그의 집안은 당시 유럽에서 손꼽히는 철강 재벌이었고,
비트겐슈타인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지 않고
생의 거의 전 기간을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았습니다.
교수 일을 하기도 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아이들을 때려서 해직된 적도 있으며, 한동안 정원사나 건축가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형제들 중에는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람이 있고,
이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의 아버지는 비트겐슈타인이 자유롭게 살도록 내버려 둔 것 같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로 알려져있지만
정작 자신은 철학과에 입학한 것도 아니고, 공과대학에 입학해서 철학수업을 듣다가 철학자 러셀을 만나 본격적으로 철학자의 길을 밟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