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성선설과 순자 성악설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맹자 순자의 시대적 배경입니다. 맹자는 공자의 인(仁)을 계승하여 의(義)까지 포함하여 인의(仁義)를 주장하였습니다. 그것은 맹자가 살았던 시대는 전국시대로서 공자가 살았던 시대보다 복잡하고 힘에 의한 질서가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마음에만 의존하는 인(仁)만으로는 사회의 질서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인과 함께 의(義)까지 주장하였습니다. 의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고 위반하고 도덕적 비난을 받습니다. 그래서 의를 지키지 않을 때는 부끄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다시 말해 맹자는 의를 통해 사회적 질서와 안정을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맹자만 하여도 사람의 본성은 여전히 순하고 착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사람의 선한 본성을 회복하면 충분히 사회적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순자가 살았던 시대는 전국의 7대 강국이 중국의 천하 통일을 지향하면서 격렬하게 대립하였던 전국시대 말기였습니다. 이 때는 맹자가 살았던 시대보다 더 복잡하고 힘에 의한 질서유지가 더 필요했습니다. 이제 말이나 도덕으로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순자는 도덕보다 더 강한 강제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순자도 맹자와 마찬가지로 예의(禮義)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하지만 순자가 의미한 예의는 일종의 법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맹자의 성선설과 정반대됩니다. 즉 인간성 자체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주장한 예의는 법가의 법(法)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의 제자 한비자와 이사가 유명한 법가사상인 것은 그가 이미 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맹자 성선설의 사례입니다.
맹자는 성선설을 설명하면서, 인간의 본성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인의예지는 본성이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의예지는 사단(四端)에 의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의 단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의의 단은 수오지심(羞惡之心), 예의 단은 사양지심(辭讓之心), 지의 단은 시비지심(是非之心)입니다. 이에 관한 내용은 다음의 나의 블로그 글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chass3/208629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