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봉길 의사 흉상 (직접촬영, 윤봉길의사생애사적전시관 소재)
도시락 폭탄에 대하여 다들 아시는지요? 그럼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일본군을 살해한 의사는 잘 알고 계신지 묻고 싶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1908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났습니다. 19살 무렵 농촌계몽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야학당을 설립하여 한글 교육 및 민족의식 고취를 위하여 노력하며 농촌 개혁을 실천하였지요. 그러나 한국인이 진정으로 인간적인 삶을 살려면 결국 독립운동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는 1930년 '장부출가 생불환'(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글을 남기고 가족을 한국에 남기고 홀로 중국으로 망명하였습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그는 임시정부의 지도자 김구 선생을 만났고,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의 거사를 계획합니다. 윤봉길 의사는 거사 성공을 위하여 체계적으로 준비하는데, 거사 3일 전인 4월 26일, 자신이 일으킬 의거가 개인의 행동이 아닌, 한민족 모두의 의사를 대변하는 것임을 알리기 위하여 한인 애국단에 가입하였으며, 의거 장소를 답사하고 폭탄을 준비하였습니다.
2) 1932년 4월 29일
1932년 4월 29일. 이 날은 일본군에게는 기념적인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날은 일왕의 생일인 동시에1932년 상하이 사변을 빌미로 일으킨 중국과의 전쟁에서 거둔 성공을 기념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죠. 일본군은 중국 상하이 소재 홍커우 공원 (홍구 공원)에서 기념식을 가지기로 하였는데, 윤봉길 의사는 이 날은 의거일로 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야채장수로 분장하여 기념식장에 대하여 사전답사를 다녀오기도 하였고,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일본군 제거용 도시락 폭탄과 물통 폭탄을 준비하였죠.
1932년 4월 29일, 기념식장에서 윤봉길 의사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묵념하고 있을 때, 단상에 수류탄을 던졌고, 그 결과 상해 파견군사령관 시라카와, 상해의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다(河端貞次) 등은 현장에서 사망하였으며, 제3함대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郎) 중장,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중장, 주중공사 시게미쓰(重光葵)등은 중상을 입었습니다. 아깝게도 자결용 물통 폭탄은 불발하여 결국 윤봉길 의사는 일본군에게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그 해 12월 일본 오사카 위수형무소에서 총살형을 당하였습니다.
3) 의거, 그 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