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중국의 역사는 한족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소린가 싶을텐데, 한족의 역사는 1912년 순원의 의해 만들어진 중화민국(대만)과 모택동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유일하다.
거기다 한족(漢族)이란 종족 개념이 만들어진 것도 20세기 중국의 관변학자들에 의해서이다. 그것도 19세기말 일본 학자들이 현재의 중국인들을 지칭하는 만들어낸 개념을 그대로 가져다 쓴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럼 그 이전 국가들은 뭔가 싶을텐데 다음을 보라.
3황5제 = 동이족
하나라 = 동이족
은나라 = 동이족
주나라 = 서이족(동이의 다른 갈래)
진나라 = 동이족 또는 서융족
한나라 = 묘족 또는 남만 또는 만이
5호 16국 = 선비족(동이 계통 5제인 소호금천의 후손들), 흉노족, 갈족, 저족, 강족
남북국시대 = 선비족
수나라 = 선비족
당나라 = 선비족
5대10국 = 돌궐족 또는 사타족(스키타이와 같이 이란계 유목민족인 샤카족 계통의 종족이었는데 오랫동안 철륵과 밀접한 관계를 맺자 튀르크계인 철륵(흉노시대 이래 중원 문헌에 기록된 정령 · 고차의 후신인 투르크계 부족 연맹체를 지칭한다.)에 동화되어 서돌궐의 한 부가 되었다.)
요나라 = 거란족
송나라 = 돌궐족 또는 사타족
금나라 = 여진족(건륭제 때 역사책 『흠정만주원류고』에서는 신라, 고려의 후예라 주장하고 있다.)
원나라 = 몽골족(시조인 칭기스칸 테무진의 조상이 29개언어 600개 원서를 추적한 전원철의 『고구려 발해인 칭기스칸1,2』의 결론은 대진국황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로 나온다.)
명나라 = 회이족(생긴 모습과 함께 이슬람식으로 기도하고 장례를 치뤘다) 또는 고려족
청나라 = 여진족(건륭제 때 만들어진 역사책 『흠정만주원류고』에서 신라, 고려의 후예라 주장하고 있다.)
중화민국 = 손문 1911년 12월 27일 중화민국 초대임시총통에 선출~ 1925년 간암으로 북경에서 사망.
중화인민공화국 = 모택동[마오쩌뚱](문화대혁명으로 역사, 문화 스스로 삭제함) 등소평[덩샤오핑], 장택민[장쩌민], 호금도[후진타오]에 이은 습근평[시진핑]이 주석 자리를 차지. 56개 민족 연합체 2023년 시진핑 3연임
• 중국공산당 창당 1921년 7월 23일
• 제1차 국공내전 발발 1927년 8월 1일
•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수립 1931년 11월 7일
• 대장정 1936년 10월 22일
• 제2차 국공내전 발발 1945년 8월 10일
•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949년 10월 1일
중국은 위와 같이 역사상 112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래 민족이 차지했다.
그걸 순원과 장개석과 모택동이 뒤엎고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을 만들고 특히 모택동이 문화대혁명으로 기존의 역사를 지워버리고 자신들의 노예의 역사를 숨긴 것이 서북공정, 서남공정, 동북공정이다.
거기가 동북공정의 실체라는 것을 보면 더 기가차게 되어 있다.
한국의 역사가 완전히 왜곡 돼 있는 것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그건 다음을 보라.
東夷郎九夷之地 所謂 献夷, 于夷, 方夷, 黃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 陽夷 是也
後爲 朝鮮, 高句麗, 女眞, 挹婁, 新羅, 百濟, 伏餘, 東胡, 烏桓, 鮮卑, 渤海, 沃沮, 三韓, 濊貊
日霫, 安定, 樂浪, 玄菟, 眞番, 臨屯, 帶方, 肅慎, 靺鞨, 勿吉, 高麗, 北貉, 契丹, 孤竹, 等國
- 『황명수문비사(皇命修文備史)』, 명시대 편찬, 북경대 도서관 소장
"동이(東夷)는 곧 구이(九夷)의 땅이다. 일컬어 헌이,우이,방이,황이,백이,적이,현이,풍이, 양이 이다. 후에 조선, 고구려, 여진, 읍루, 신라, 백제, 부여, 동호, 오환, 선비, 발해, 옥저, 삼한, 예맥, 일습, 안정, 낙랑, 현토, 진번, 임둔, 대방, 숙신, 말갈, 물길, 고려, 북맥, 거란, 고죽 등의 나라가 되었다."
立國號曰朝鮮。 朝鮮、尸羅、高禮、南北沃沮、東北扶餘、濊與貊, 皆檀君之理。
- 『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 154권, 「지리지 평안도 평양부」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니, 조선(朝鮮),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 옥저(南北沃沮), 동·북 부여(東北扶餘), 예(濊)와 맥(貊)이 모두 단군의 다스림이 되었다.
唯東夷從大, 大人也. 夷俗仁, 仁者壽, 有君子不死之國. 孔子曰:「道不行, 欲之九夷, 乘桴浮於海. 有以也. 去芉切」. 『설문해자(說文解字)』「 第四上」
'동이(東夷)는 대(大)가 의부이니, 대인(大人)이라는 의미이다. 이(夷)의 습속은 어진데 어진 자는 장수하므로 죽지 않는 군자(君子)가 있는 나라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띄워서 바다를 건너 구이(九夷)의 나라에 가고자 한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東方有君子之國. 『회남자(淮南子)』「卷四」 墜形訓,
'동방(東方)에는 군자(君子)의 나라가 있다.'
朝鮮建國孤竹爲君 『두로공신도비(豆盧公神道碑)』 (모용은 비문)
'조선(朝鮮)이 건국되고 고죽(孤竹)이 임금(君)이 되었다.'
北至於孤竹·山戎·穢貉 『관자(管子)』
(제환공[제나라 15대 군주, 춘추오패]이)북쪽으로는 고죽·산융·예맥에 이르렀으며...
北伐山戎, 制泠支, 斬孤竹, 而九夷始聽, 海濱諸侯莫不來服. 『관자(管子)』
(제환공이)북쪽으로 산융(山戎)을 정벌하여 영지(泠支)를 제압하고 고죽(孤竹)의 군주를 참하자 구이(九夷)가 비로소 명령을 따랐다.
孔鼂云: 山戎亦東北夷 『일주서(逸周書)』 '공조(孔鼂)가 말하였다. 산융(山戎)은 동북쪽 이(夷)이다.'
孔鼂云: 孤竹, 東北狄. 『일주서(逸周書)』 '공조(孔鼂)가 말하였다. 고죽(孤竹)은 동북쪽 적(狄)이다.'
孔鼂云: 不令支, 皆東北夷. 『일주서(逸周書)』 '공조(孔鼂)가 말하였다. 불령지(不令支)는 모두 동북쪽 이(夷)이다.'
服虔云 : 山戎蓋今鮮卑 按, 胡廣云 : 「鮮卑, 東胡別種.」 『사기史記』 「흉노열전匈奴列傳」
'복건이 말하길 산융(山戎)은 모두 지금의 선비(鮮卑)이다. 호광이 말하길 선비(鮮卑)는 동호(東胡)의 별종(別種)이다.'
燕北有東胡 ... 其後燕有賢將秦開,為質於胡,胡甚信之。歸而襲破走東胡,東胡卻千餘里 『사기史記』 「흉노열전匈奴列傳」
'연의 북쪽에는 동호가 있었는데... 그 이후에 연나라의 현명한 장수 진개가 있었다. 호가 그를 질(인질)로 삼았으나 호가 그를 심(심히) 신뢰하였다. 돌려보냈으나 습(엄습하며) 파(물리쳐서) 동호를 달아나게 했다. 동호는 천리를 퇴각하였다.'
燕乃遣將秦開 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番汗爲界, 朝鮮遂弱 『위략魏略』
'연은 장군 진개를 파견하여 (조선의) 서쪽 지방을 침공하고 2천여리의 땅을 빼앗아 만번한에 이르는 지역을 경계로 삼았다. 마침내 조선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통전(通典)』 「고구려전」 , 당나라 재상 두우(杜佑:735∼812)가 편찬한 200권짜리 제도사로 766년에 착수하여 30여 년에 걸쳐 초고(初稿) 완성
"고구려의 땅이 후한 시기(서기 25~220)에는 사방 2천리였고, 위나라 시기(220~265)에는 남북이 점점 좁혀져 겨우 1천여 리였으나, 수나라 시기(581~618)에 이르러서는 점점 커져 동서 6천리에 이르렀다."
"성산가야 호북성 경산현을 말한다." 『중국고대지명대사전』 p424
"소가야 고성은 호북경계에 있다. 지금 사천성 창녕현의 땅이다." 『중국고대지명대사전』 P439
"오가야 중 비화가야는 창녕(가야)인데 감숙성 영창현 동북쪽에 있다.혁거세왕편에 이것이 본피부 최씨의 조상이 출생한 곳이다. 화산은 하남성 비원현 남쪽 육십리에 있다." 『중국고대지명대사전』 P532
"신라혁거세 왕궁실 남단의 금산 가리촌을 환기부라 하며 배씨의 시조가 탄생한 곳이다. 하남성 신양현(信陽縣) 남쪽 56리에 있다. 신라혁거세 왕궁실 남산은 하남성 섬서현에 있다." 『중국고대지명대사전』 P582
"거서간혁거세의 무덤은 호구산(虎丘山) 운암사(雲岩寺) 남쪽 4리에 있다." 『세종장헌대왕실록』 「지리지」
강소성(江苏省) 소주시 (苏州市) 호구산(虎丘山) 호구탑(虎丘塔) 정식명칭 운암사탑(雲岩寺塔) 높이 47.5m 팔각형 7층 석탑
"고구려와 백제가 전성기에는 강병이 100만이어서 북으로는 유,연,제,노 남으로는 오,월을 굴복시켜 중국(수도가 섬서성 장안에 있던 전한, 하남성 낙양에 있었던 후한, 하남성 허창에 있었던 위, 하남성 낙양에 있었던 진과 섬서성 장안에 있던 수,당, 양자강 중류 안휘성에 있던 신라 등)에 골칫거리가 되었다."
- 김부식, 『삼국사기』 권46「신라본기」《최치원전》
'아들의 편지를 보니 "요동의 왕울덕(王鬱德)은 왕씨의 후예로서 군사를 일으키려 한다."고 하였다. 매우 놀랄일이다. 우리 나라의 병사들이 쇠잔하고 피폐한데 이를 어찌하랴' (역주:초고본에는 을미년 5월 4일자에 나온다.) - 이순신, 노승석 역주, 『난중일기 교주본』 「을미일기」 11월 4일, 출판사 여해, 1판 2쇄 2022년 2월 7일, 2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