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0-1776 년도사이의 미국사좀 알려주세요.

1750-1776 년도사이의 미국사좀 알려주세요.

작성일 2006.10.12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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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1760년도에 일어난 일들을

상세히좀 적어주세요 ㅜㅜ

 

미국사이여야합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1754 년 프렌치 - 인디언 전쟁

 

프랑스와 영국이 전세계에 걸쳐 9년 동안 벌인 전쟁(1754~63) 중에서 아메리카를 무대로 한 전쟁.

이 전쟁은 7년전쟁(1756~63)의 한 국면이었고 방대한 북아메리카 영토의 통제권을 결정했다. 이 전쟁으로 확대되기 이전에 해외 영토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영국과 프랑스 간의 3차례 전쟁은 각각 윌리엄 왕의 전쟁(1689~97), 앤 여왕의 전쟁(1702~13), 조지 왕의 전쟁(1744~48)으로 구분해 다루어진다.

프렌치 인디언 전쟁은 오하이오 강 상류 지역 버지니아인과 펜실베이니아인에게 교역과 정착의 기회를 열어줄 대영제국의 영토인지, 아니면 프랑스의 영토인지를 결정하는 국지적인 문제를 둘러싸고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이 문제의 이면에는 어떤 민족 문화가 북아메리카의 심장부를 장악하게 될 것인가라는 훨씬 더 큰 쟁점이 숨어 있었다. 서로 탐내고 있던 이 지역에서 수적으로는 영국계 정착민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탐험과 무역, 인디언과의 유대면에서는 프랑스가 우세했다. 이미 1749년부터 뉴프랑스(북아메리카의 프랑스 영토)의 총독은 영국인들의 정착지를 애팔래치아 산맥 동쪽 영토로 국한시킬 목적으로 그 지역의 모든 영국인들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다. 1754년 봄 프랑스군은 오하이오 강 여러 지류에서 버지니아군을 몰아냈고 이에 조지 워싱턴 대령이 응전하여 소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워싱턴의 부대는 개전 직후 펜실베이니아 주의 니세서티 요새에서 포위되어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두 나라 중 어느 한쪽이 지배권을 갖고 있는 전세계 모든 지역으로 전쟁이 확산되었다. 신대륙에서는 프랑스의 육군이 월등히 우세했기 때문에 개전 이후 4년 동안 영국 정규군과 아메리카 식민지군은 심각한 패배를 당했다. 식민지인들의 전쟁 지원 능력이 부족하여 영국의 고충은 배가되었다. 그러나 1757년말경부터 3가지 요인으로 인해 전쟁의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윌리엄 피트 영국 총리의 활기찬 지휘력이었다. 또한 실제로 그는 '제국의 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았다. 이어 영국이 재정 및 산업 자원, 식량 공급, 해군 장비 등에서 계속 우위를 보인 반면, 프랑스는 전국적 파산과 경제의 마비상태로 치닫고 있었다는 점과 영국군과 아메리카군은 점차 야전 전투에 익숙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1758~59년 영국군은 프랑스 해안과 세인트로렌스 만의 효과적인 봉쇄에 힘입어 루이스버그, 프롱트나크 요새, 카리용 요새, 크라운포인트, 뒤켄(지금의 피츠버그), 나이애가라 요새 등지에서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다. 영국의 승리는 에이브러햄 평원 전투(1759. 9. 13)에서 절정에 달해 퀘벡은 결국 항복할 수 없었으며, 양국의 사령관인 제임스 울프와 몽칼름 후작이 치명상을 입었다(→ 퀘벡전투). 1년 후에 몬트리올과 캐나다의 전지역이 함락되었고, 파리 조약(1763. 2. 10)에 따라 프랑스는 북아메리카에서 모든 군사적·정치적 기득권을 포기했다.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역설적으로 전쟁의 부채, 확장된 식민지 제국의 행정 및 정착과 같이 승리에서 생겨난 문제들을 안게 되었는데, 이러한 부담으로 인해 10년 후에 치른 미국 독립전쟁에서 패배하게 되었다.
 
1767년 타운센드 법 발효

 

영국 의회가 아메리카 식민지를 대상으로 제정한 4가지 법(1767. 6. 15~7. 2).

다루기 어려운 식민지의회를 일시 정지시키고 식민지에 추가세금을 엄격하게 부과함으로써 영국 본국이 식민지에 대해 전통적으로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보이기 위해 제정되었다.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은 발의자인 찰스 타운센드의 이름을 따서 이 법을 타운센드 법이라고 불렀다. 첫번째 법인 업무 일시 정지법은 뉴욕 식민지의회가 영국군의 주둔 비용 분담을 규정한 숙영법(1765)을 받아들일 때까지는 어떠한 업무도 처리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흔히 타운센드 관세법이라고 부르는 2번째 법은 납·유리·종이·페인트·차(茶)에 식민지 역사상 2번째로 직접세를 부과하고 식민지 항구에서 세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3번째 법은 엄격하고 자의적이기까지 한 관세징수체제를 세우도록 했다. 여기에는 관리·세관원·밀정의 증원, 연안 경비선의 증설, 수색영장의 발부 확대 등이 포함되며 시행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관세 수입으로 충당하도록 했다. 4번째 법은 차에 대한 무역세를 철폐해 영국에서는 전혀 세금을 내지 않고 차를 식민지로 수출할 수 있게 했다. 이 4가지 법은 식민지의 자치 전통, 특히 식민지의회의 과세 관행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되었으며 따라서 식민지 전역에 반발을 일으켰다. 식민지 주민들은 곳곳에서 선동적인 연설과 물리적인 폭력, 고의적인 납세 거부 등으로 저항했다. 상인들은 다시 영국 상품의 수입을 거부하기로 했으며 특히 보스턴 항에서는 영국 세관원에 대한 공공연한 적대행위가 일어났다. 식민지에서 이같은 소란이 일어나자, 빈번한 내각 교체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던 영국은 결국 1770년 3월 5일(1770년말 보스턴 학살사건이 일어났음) 차세를 제외한 모든 관세를 철회하고, 숙영법을 철폐했으며, 보스턴에서 군대를 철수함으로써 식민지인들의 반발을 일시적으로 무마시켰다.

 

1773년 보스턴 차 사건

 

미국 독립전쟁 전에 보스턴 항구에서 어둠을 틈 타 인디언으로 위장한 미국의 식민지 반군이 영국 동인도회사 소유의 값비싼 차가 실려 있던 배를 파괴한 사건(1773. 12. 16).

1773년 4월 영국의회가 차조례(茶條例)를 통과시켜 대중 음료인 차에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대해 식민지인들이 가장 강력히 저항한 사건이었다. 그 보복으로 영국의회는 손상된 차를 배상할 때까지 보스턴 시의 해상무역을 봉쇄하는 보스턴 항구 폐쇄법(Boston Port Bill)을 포함하여 식민지들 사이에 참을 수 없는 법(Intolerable Acts)으로 알려진 일련의 징계조치를 통과시켰다.
 
1776년 13개 주 독립 선언
 
1776년 메인, 뉴햄프셔, 버몬트, 메사추세츠, 뉴욕, 펜실베니아, 웨스트버지니아,

버지니아, 델라웨어, 메릴랜드, 노스 캐롤라이나, 사우스 캐롤라이나,

조지아의 13개 주의 독립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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