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사회계약론이 계몽주의를 어떻게 반영하나요?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계몽주의를 어떻게 반영하나요?

작성일 2007.01.26댓글 1건
    게시물 수정 , 삭제는 로그인 필요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18세기 계몽시대를 어떻게 반영하나요?

 

혹은 루소 그 사람이 계몽주의를 어떻게 반영하나요?

 

음,,,다르게 표현 한다면,  어떤 점에 있어서 루소를 계몽주의 Philosoph라고 할 수 있나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3. 루소와 민주적 공화주의

루소(1712-1778)는 근대성에 대한 믿음이 지배력을 확보해 가던 계몽주의의 전성기에 근대 문명의 한계와 인간 소외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계몽주의에 내재하는 엘리트주의를 비판하고 민주적 공화주의의 가능성을 추구한 사상가이다.

루소는 근대 과학이 추구하는 진리가 결국에는 시민들을 타락시켜 도시의 건전한 유지에 치명적인 해를 초래한다고 본다. 고대 철학자들은 덕을 가르치고자 노력했음에 비해 근대 철학 및 과학자들은 원자적 개인주의와 자기 보존의 원리, 이기주의를 과학적 진리로 절대화하였다. 루소는 시민의 관점에서 공동체와 유기적으로 통합된 고대의 시민과 근대문명의 산물인 근대적 개인 즉 공동체적 유대로부터 벗어나 소외를 경험하는 고립된 개인을 대비시킨다. 근대 학문과 예술은 도덕의 발전을 가져오지 못하고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타락한 근대인을 출현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홉스, 로크 등의 근대 정치이론의 한계는 공적 질서의 기초를 사적 이익으로 환원하고 소외된 개인을 정치사회의 기본적인 단위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발견된다.

루소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정치적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 상태의 시원인은 여타의 동물과 같이 자기보존의 본능을 갖는다. 그러나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의 능력과 자기완성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그리고 자연상태의 인간은 평등하며 자기애와 타인에 대한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시원인은 자연상태에서의 자유를 향유하며 자족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자연상태의 인간이 이성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본다. 이성의 능력을 사회적 삶의 산물로 보기 때문이다.

자연상태의 평등은 인간이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불평등으로 변환된다. 분업과 가족, 사유재산을 포함하는 일련의 발전과정에 의해 자연상태에서의 능력과 자질의 자연적 불평등은 시민사회의 형성과 더불어 경제적 불평등으로 전화된다.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이 계급갈등의 양상으로 전개되면 시민사회는 붕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수립되는 국가권력에 의해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불평등으로 전화된다. 경제적, 정치적 불평등의 심화는 인간 소외의 극단화를 이룬다.

그러나 루소는 자유선택의 능력에 의해 인간이 소외와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고 보았다. 루소는 민주적 자치를 자유와 정치적 의무를 결합시킬 수 있는 궁극적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자기 입법에 의해 제정된 법을 준수한다면 자우와 정치적 복종은 상호 대립적인 관계로부터 상보적인 관계로 재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일반의지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정치적 소외와 불평등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참여하는 이상형성과정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공공선에 대한 인식과 공공정신이 자발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루소는 그리스적인 폴리스를 정치적 이상으로 삼아 정치공동체의 규모, 공동체 내부의 동질성과 경제적 형평성 등이 일반의지의 형성에 중요한 조건들임을 밝힌다. 나아가 고전적 공화주의의 전통을 계승하여 시민 교육을 통한 덕성의 함양, 입법가의 자질, 시민 종교의 기능에 대해서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다.

루소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는 민주적 공화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제시함으로써 고전적 공화주의에 내지한 배타성과 강압성을 극복하고자 시도하였다. 루소의 민주적 자치의 이념에 의해 자유와 도덕, 자연권과 정치적 의무가 결합됨에 따라 그 당시 정치사상의 주류인 정치 현실주의에 대한 비판과 극복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 정치학의 이해 (서울대정치학과, 박영사)에서 발췌

 

 

제가 전에 사회계약론자인 홉스와 로크, 루소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찾아둔 자료가 있어서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다
음에 같은 질문을 하실 분들을 위해 자료를 올립니다. 사회계약설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철학자 홉스, 로크, 루
소에 대한 생애와 사상에 대해서도 자세히 덧붙여 두었으니 각자 그들의 사회계약설이 가지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
교하시는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회 계약론자>
-  홉스  :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며, 국가 성립 이전의 자연 상태에서는 정의와 부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 만인
에 대한 만인의 투쟁 )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보전을 위해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 자연 상태의
권리를 국가에 양도하는 것으로 본다.
- 로크  : 인간의 본성은 선하므로, 자연 상태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 극단적인 투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
다. 다만, 시민이 탐욕적인 사람들에 의해 자연 상태의 권리를 침해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계약을 맺어 국가를 구
성한 것으로 보았다.
- 루소  : 시민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하여 동의에 의해 자발적으로 정치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
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 그는 시민들은 양도하거나 나눌 수 없는 주권을 행사하여 시민의 일반 의사에 입각한
정치 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회계약설(社會契約說)>
 정치사회 성립의 역사적·논리적 근거를 평등하고 이성적인 개인 간의 계약에서 구하려는 정치 이론. 17, 18세기 영
국 및 프랑스에서 전개된 이론이며, 부르주아 혁명 때에는 근대 시민계급의 이데올로기적 기둥으로 중요한 구실을 하
였다. 이 이론은 국가 기타의 정치적 제도는 실제적·실체적 성격을 잃고, 계약을 지탱하는 개인의 의지에 따라 그 존
재가 좌우되는 인공적 가구물(假構物)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종래의 지배 질서는 모두가 비판을 당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계 쟝약설의 혁명적 성격도 이 점에 있지만 동시에 그 이론적 결함도 또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치사회 성
립의 실증성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민주국가의 윤리성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가치는 간과할 수 없다.
 이 이론의 전형적 전개론자로는 T.홉스, J.로크, J.J.루소 등을 들 수 있다. 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이 자연권을 지배자에게 위양 함으로써 평화적인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여, 17세
기 절대왕정제 이론을 성립시켰다. 로크는 계약에 의해서도 생명·자유·재산 등의 자연권은 지배자에게 위양할 수 없
다고 주장하여, 입헌군주제의 이론을 선도하였다. 그리고 루소는 인간의 불평등 원인을 사유재산에 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사회계약에 입각하여 각인이 자유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자연 상태를 구상하였다. 즉 인민의 일반의지로서
의 국가가 자유 평등을 보장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 프랑스 혁명의 이론적인 근거를 세웠
다.

***** 쟈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1712년 6월 28일 스위스의 쥬네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
버지 이쟈크 루소는 시계 수리공이었다. "나의 탄생은 수 많은 내 불행가운데 최초의 것이었다."고 그가 회고하듯이
그의 어머니 쉬잔느(Susanne)는 그를 낳은지 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때부터 어린 루소는 두 사람의 숙모와 함
께 살게 되었고, 아버지도 감상적이고 여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은 그의 성격을 여성적이고 수
동적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10살 되던 해에 그의 아버지와 형이 가출하여 13세되던 해 금
속가동 공장에서 도제 수업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인생은 굴절되기 시작한다. 그를 가르치는 마이스터(우두머
리) 마스롱의 횡포와 지나친 속박에 대해 그는 반항하기 시작했고,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마침내는 도둑질까지 하게
되었다. 16세가 되던 해 봄, 탈출하여 3년 동안 여러 지방으로 떠돌아 다녔다. 1731년 10월, 샹베리 마을로 돌아와 바
랑 부인에게 정착했다. 루소는 이때를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를
잃은 루소가 찾아온 사람은 모성애를 느낄 만한 여성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10세 연상의 여인과의 사
랑은 근친상간과도 같이 느낀 그녀와의 관계는 결국 그에게 평생 동안 치유될 수 없는 정신적 외상(外傷)이 되고 말
았다. 그는 평생 동안 여러명과 연애했으나, 진정한 사랑이나 결혼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루소는 1735년 23세가 되던
해에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자신의 목숨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른바 <자기교육>에 몰두하기로 결
심했다. 1741년 리용에 살고 있는 마블리(Mably)가(家)의 가정교사가 되어 그들의 소개로 파리의 백과전서파들과 교
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742년 파리에서 음악교사로서 힘겨운 생활을 했으며, 그 이듬해 베네치아 주재 프랑스 대
사 몽테뉴의 비서가 되었다. 그러나 대사와의 잦은 충돌로 인해 일년만에 면직되고 이때부터 테레즈와 동거하기 시작
하여 5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모두 고아원 문 앞에 버렸다. 이 일은 루소를 평생 동안 죄의식 속에서
고통받게 할 만큼 그의 삶에 가장 큰 멍에였다. 1749년에는 디드로의 요청에 따라 『백과전서』의 <음악>에 관한 항
목들을 집필했다. 1750년은 학술원에서 그의 논문 『학문예술론』이 당선되었고, 1758년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출판했다. 1755년 그는 『백과전서』에 정치 경제에 관한 항목들을 썼으며 1758년 이것들을 『정치경제론』
(Discours sur l'economie politique)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는 백과전서파들과는
완전히 결별한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사유재산 제도에 대한 루소의 공격에 대해 일종의 거지철학이라고 볼테르가 비판한 것
이 결렬의 첫번째 계기였다. 애정소설인 『신엘르와즈』(Julie, ou la nouvelle Heloise)를 시작으로 『에밀, 혹은 교
육에 관하여』(Emil ou de l'education)와 『사회계약론』(Contract Social)이 1761년 여름 완성되었다. 그런데
『에밀』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이 책을 소각하고 루소를 체포하도록 명령했다. 결국 그는 죽을 때까지 8년 동안 악보
베끼는 직업으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그후 루소는 외부세계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더 이상 갖지 않은채 생을 마감했
다.  

*****홉스(1588.4.5-1679.12.4)
 영국의 철학자. 맘즈베리 출생. 무명의 목사 아들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에서 스콜라철학을 전공하였다. 스튜어트
왕조를 지지하는 정치가로 지목되자, 퓨리턴 혁명 직전에 프랑스로 망명하여 유물론자 R.가생디와 철학자인 R.데카
르트 등과 알게 되었다. 그 후 크롬웰의 정권 하에서는 런던으로 돌아와 정쟁(政爭)에 개입하지 않고, 오직 학문 연구
에 힘썼다. 왕정복고(王政復古) 후에도 찰스 2세 통치하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는 F.베이컨과는 달리 귀납법(歸納法)
만이 아닌 연역법(演繹法)도 중시하여, 양자의 상즉적(相卽的) 관계에 의하여 이성(理性)의 올바른 추리인 철학이 성
립된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주요 저서인 《철학원리》는 제1부 <물체론>(1655), 제2부 <인간론>(58), 제3부 <시민
론(市民論)>(42, 47) 등 3부로 나누어졌는데 베이컨 학설보다 더 체계적으로 구축되었다.
 제1부 <물체론>에서 그는 자연학(自然學)을 철학의 기초에 두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인(形相因)·목적인(目的
因)을 버리고 전실재(全實在)를 물체와 그 운동이라는 동력인(動力因)만으로 설명하려는 유물론, 즉 자연주의 입장
을 취하였다. 자연적 물체에 대한 이와 같은 생각을 인위적 물체인 ‘인간’이나 ‘국가’에도 미치게 하여,감각·감성(感
性) 등의 인식의 이론이나 정념론(情念論), 윤리학, 법·사회의 이론에도 적용하였다. 정신은 미세한 물체이고, 인식
은 외계의 운동이 감관(感官)에 주는 인상에서 생기며 실재의 모사(模寫)가 아니고 주관적이라 하였다. 이는 기억 속
에 저장되어 있으며, 지적인 판단이나 추리는 그 표현 수단으로서 언어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후자도 실재에 근거
하는 것이 아니고 개개의 물체만이 실재하는 것이며, 추상적·보편적 개념은 기호(記號)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견해는 중세(中世)의 W.오컴 등에서 현저했고, 또 후일의 영국 경험론에서 보는 고유한 유명론(唯名論)의 전형
적인 예이다. 수학(數學)은 앞에서 말한 기호로서의 보편자(普遍者)에 관계되는 지식의 모범이라 하였다. 감정이나
정서에 대해서도 똑같은 원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외적 자극에 대한 이론적 반응이 감각인 데 반하여, 실천
적 반응은 쾌(快)·불쾌(不快)의 감정이다. 선(善)이란 쾌이므로 인간이 바라는 것이고, 악(惡)이란 불쾌이므로 인간
이 싫어하는 것이다. 의지(意志)는 외적으로 결정되며 결정론(決定論)은 필연이다. 본질적으로 선한 것은 없고, 선악
(善惡)·정사(正邪)는 상대적인 것이어서 국가와 법이 성립되었을 때에 그 판정의 기준이 생긴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
이어서 ‘자연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금할 수 없고, 개인의 힘이 권리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끝까지
추구하는 자연 상태에서는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있고, ‘사람은 사람에 대하여 이리[狼]’이기 때문에 자
기 보존(自己保存)의 보증마저 없다. 그러므로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사람은 계약으로써 국가를 만들어 ‘자연권(自然
權)’을 제한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의지에 그것을 양도하여 복종한다.
1. 홉스의 출발점
 홉스(T.Hobbes, 1588-1679)사상의 이해는 17세기 영국의 정치, 경제, 문화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당시 유럽은 주
권국가론에 입각한 절대군주에 의해서 국위선양과 구북강병의 정책을 최우선시하는 약육강식의 식민지 개척의 시대
였다. 각국은 경제적으로 관세에 의해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증대함으로써 국점수업을 보호·육성하려는 정책을 취
했다.("후기중상주의"). 또한 이 시기는 근대적 자연과학의 획기적인 발전에 따라 뉴턴(I.Newton, 1642-1727)의 물리
학,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의 수학, 그리고 하비(W. Harvey, 1578-1657)의 혈액순환원리 등이 알려진
때이다. 홉스는 수차례에 걸친 대륙여행에서 당시의 자연과학적 학문풍토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후 그는 모든 사물
을 기계적인 운동과정으로 이해하고 과학적 지식의 체계 속에 자신의 독자적인 정치사상을 전개하였다.
2.홉스의 정치사상
(1)유물론적 인간관
 홉스는 자신의 철학체계의 구상을 세 부분, 즉 오늘날 수학과 물리학이라 부르는 물체의'제1부분'과 개개인간의 생
리학과 심리학을 포함한'제2부분', 그리고 모든 물체 중 가장 복잡한 형태인 사회 혹은 국가라는 '인공적'물체를 포함
하는'제3부분'으로 나누어 파악했다. 홉스는 가장 명캐한 것을 먼저 취하고 더 복잡한 문제로 나아갈 때는 앞서 증명
된 것만을 이용하는 수학적 방법에 따라서 '인간행동의법칙'을 모든 사회 및 국가적 현상의 동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회와 국가는 인간이라는 이기적 동물의 상호 행위의 합성물이며 '자기보존의 본능'에 따른 작용과 반
작용의 결과일 따름이다. 실체는 항상 신체기관들의 운동 속에서 존재하며 감각기관을 통해 전달되고 나타난다. 그
는 심장을'생명운동'(vital motion)의 기관으로 보고 생명운동에 유리하도록 팽창하는 감각을 '욕망'으로, 그리고 생
명운동을 위축시키는 원초적 감각을 '혐오'라 부른다. 전자9욕망0는 다시 용기와 자비로 조합된 '희망'이라는 감정으
로 나타나고 후자(혐오)는 두려움과 분노로 조합된 '절망'의 감정으로 표출된다. 요컨대 홉스는 인간을 두려움과 용
기, 분노와 자비 등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일종의 '심리학적 장치'(자동인형, automation)로 보고, 자신의 생명을
보장하고 미래의 안전을 증대하기 위해 권력을 추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모든 인류의 보편적인 성향의 하나로서 죽음에 의해서만 비로소 끝나는 권력에 대한 항구적인 욕망을 들고 싶
다. 이 욕망의 원인은 인간이 이미 획득한 것보다 더 큰 기쁨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 보다 많은 권력을 축적하지 않
고서는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권력과 생계수단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2)자연상태
 홉스는 인간의 원초적 감각으로서 모든 충동과 감정이 야기하는 욕망과 혐오 외에 이성이라는 '자기보전'을 위한 계
산된 이기심을 들고 있다. 그는 "고독하고 가난하고 더럽고 야수적이며 단명으로 끝나는"'사회 이전의 상태'(pre-
social states)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상태로 보고, 각자는 자기보전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계약」을 맺는다고 주장했다. 그는'사회 이전의 상태', 즉 자연상태(state of nature)를 본래 '평
등'하게 태어난 인간이 오로지 잣니의 힘에 의해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공포와 폭력'의 상태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몸 전체를 지배하는 심장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상태로서 자연법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일종의 전쟁
상태(state of nature)에 해당된다. '자연법'(law of nature)은 "사회나 인간의 평화적 조건"으로서 생명보전을 그 주
된 목적으로 하는 이성의 계율 또는 보편적 규칙이다(제1계율). 또한 자연법은 비참한 자연의 투쟁상태에서 벗어
나 '평화와 자기보존'을 성취할 수 있는 국가상태로 옮겨가게 하는 이성의 일반법칙이기도 하다(제2계율).
 말하자면 홉스에게 있어서 '자연법'과 '자연권'(right of nature)은 구별되는 것으로서, 전자(자연법)가 자기보번에
대한 위협적 요소와 행위를 '금지하는' 것인데 비해 후자(자연권)는 인간이 자기의 생명보전을 위해 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liberty)이다. 요컨데 각자가 자연권만을 추구할 경우 이것은 자연법에 위배되며,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자연권조차도 실현이 불가능해진다.
(3)사회계약과 국가주권론
 홉스는 자연법과 자연권의 모순관계를 자연권의 상호양보에 의해 해결하고자 했다. 그는 각 개인이 인류의 평화라
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각자의 자연권을 양도한다는 공리적 입장에서 '사회의 기원'을 논하고 있다. 즉 이기적인 개
이들이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라는 '수단'을 통해 자기보전이라는 최고의 목적을 달성한다
는 것이다. 요컨대 홉스에게 있어서 사회는 '다른 사람들도 역시 그러할 경우' 라는 가정 하에서 이루어진 일종의 '인
위적 조직체'이며 개별적인 '이기심의총합'인 것이다.
 그러나 홉스는 이기적인 인간이 '신뢰'를 믿기보다는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를 응징할 수 있는 절대적인 '국
가의 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칼(sword)을 가지 않은 계약은 단순한 말(word)"에 불과하기 때문에 '리바이어
던'(Leviathan)이라는 강력한 주권자의 처벌 위협을 통해 평화와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나도 나 자신을 지배하는 권리를 포기하고 그 사람 또는 그 회의체에 권위를 부여한
다. …이것이 바로 리바이어던, 즉 영원하신 하느님의 가호 아래 평화와 방어를 힘입고 있는 저 '현세의 신'(Mortal
God)의 출현이다."
주권자(sovereign power)인 군주는 국가의 대리자로서 입법과 사법을 관장하고 강제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하급
관청을 조직하는 임무를 맡은다. 군주에 대한 저항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으로, 군주의 권위는 무제한적이고 절
대적인 것이다. 따라서 국민이 군주에 반역하는 것은 여하한 경우라도 죄악이며, 주권자의 권력은 나누어질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3.맺음말
 홉스의 정치사상은 17C유럽의 「30년전쟁」(1618-48)이라는 처참한 종교전쟁과 약육강식의 국제정치적 맥락에
서 '어떻게 하면 이류를 평화롭게 살도록 할 것인가'라는 그의 고민에 공감할 때 보다 잘 이해될 수 있다. 그가 군주
의 절대권을 주장한 것은 절대군주야말로 영국의 평화와 안전을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보았기 때문이
다.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당시의 자연과학적 연구경향의 영향으로 심리학과 정치학을 결합하는 논리적 과정에서 제
시된 '정치적 구상'(political design)이다. 그는 수학의 증명방법을 원용하여 보편적인 인간행동의 한 원리로서 '자기
보전의 운동"을 제시하고 이에 의거해 사회와 국가라는 인위적 조직체를 '연역'해 냈다. 사회계약론은 이기적인 인간
들이 그들의 '상호이익'을 위해 만들어낸 논리적 대안이었다.  그의 사회계약론의 특징으로는 그것이 전적으로 시민
사이의 계약이며 계약 당사자로서 주권자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과 그에 따른 계약의 절대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홉스의 주권개념은 그 이전이나 이후의 어떤 주권이론보다도 절대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서, 예컨대 그로티우스
(H.Grotius, 1583-1645)는 국가의지를 자연법과 국제법의 하위에 두었다. 마키아벨리역시 국가이성이 도덕과 종교보
다 중시될 수 있는 것은 국가적 위기에 한한다고 보고 있는데 비해, 홉스는 시민적 도덕과 종교적 진리의 기준까지도
주권자의 의지와 판단에서 나온다고 봄으로써 초절대적 주권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로크(Locke, John. 1632.8.29-1704.10.28)
 영국의 철학자·정치사상가. 브리스틀 근교의 링턴 출생. 계몽철학 및 경험론철학의 원조라 일컬어진다. 아버지는 소
지주·법률가로서 내란 때는 의회군에 참가하여 왕당군과 싸웠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자연과학·의학 등을 배웠
고, 한때 공사(公使)의 비서관이 되어 독일 체류 중에 애슐리경(뒤의 샤프츠베리 백작)을 알게 되어 그의 시의(侍醫)
및 아들의 교사 그리고 고문이 되었다. 백작이 실각되자 반역죄로 몰려, 1683년 네덜란드로 망명했다가, 89년 사면되
어 귀국하였다. 망명생활 동안 각지를 전전하면서 여러 학자들과 친교를 맺고, 귀국 후 《종교 관용에 관한 서한》
(1689) 《제2서한》(90) 《제3서한》(92) 《통치이론》(90) 《인간오성론(人間悟性論)》(90) 등을 간행하여 국내외
에 이름을 떨쳤다. 그 후 관직에 있었으나 1700년 이후 은퇴하여 에식스의 오츠에서 사망하였다. 데카르트 철학과 I.
뉴턴에 의해 완성된 당시의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졌고 반(反)스콜라적이었다. 《인간오성론》은 그의 영향을 바탕으
로 G.버클리, D.흄에게로 계승되었던 경험론과 내재적 현상론(內在的現象論)의 입장에서, I.칸트에 이르러 결실을 보
게 되는 인식을 근본 과제로 제기하여 논술한 저서이다. 제1권에서는, 먼저 R.데카르트나 케임브리지 플라톤파(派)
의 본유관념(本有觀念)과 원리를 부정하고, 그 위에 제2권에서는, 인지(人智)는 모두 감각과 반성이라는 경험을 통하
여 얻어지는 단순 관념에 유래하며, 그로부터의 복합 관념으로 설명된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실체(實
體)’ 개념도 단순관념의 복합이며, 기체(基體)는 그 배후에 상정되는 불가지(不可知)의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단, 색
(色)·향(香)·음(音)과 같이 감각에 대하여 상대적인 제2성질과, 연장(延長)·운동·고체성(固體性)과 같이 물(物) 자체
에 구비된 제1성질과 구별하여, 전자(前者)는 후자가 감각 기관에 자극을 줌으로써 생긴다고 생각하여, 당시의 과학
적 실재론을 전제로 삼았다. 또, 불가지인 물적 실체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정신에 대해서도 반성의 관념과 기능적 인
격에 의한 설명을 하고 있지만, 정신 실체나 신의 존재를 인정한 점에서, 그 문제를 다음의 버클리와 흄에게 남겨 놓
았다. 제3권의 언어론은, 스콜라적 실체형상(實體形相)의 비판, 개념론 또는 유명론적(唯名論的)인 보편개념의 설명·
정의에 대해서의 견해 등 현대 의미론(意味論)에 통하는 중요한 고찰을 포함시켰다. 제4권은 제3권까지 논술한 것들
을 바탕으로 하여 지식의 확실성·가능성·종류 등을 논했다. 제4권에서 자아의 직각지(直覺知)를 지식의 근원으로 하
는 것 등 이성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으나, 지식을 관념과 대상 간이 아니라 관념간의 일치 또는 불일치의 지각
(知覺)이라는, 관념간의 관계라고 한 것은 후의 경험론의 방향을 보인 것이다. 그에게는 《인간 오성론》에서 단편적
으로 취급된 이외에는 정리된 윤리서(倫理書)는 없다. 그러나 도덕의 심리적 해명 방법이나 쾌락주의·행복주의의 경
향과, 도덕을 신(神)의 법, 자연법, 국법과의 일치에서 구하려고 한 방향 등은 영국 고유의 윤리와 공통된 성격을 보
인다. 또, 계시(啓示)의 뜻을 인정하면서도 이성적 논증(理性的論證)의 한계를 넘는 것을 개연적(蓋然的)이라 생각하
는 점에서 종교상 이신론(理神論)을 조장하는 입장에 섰다. 법·정치 사상에서는 계약설을 취하지만, 홉스의 전제주의
(專制主義)를 자연 상태보다도 더 나쁘다고 생각하여 주권재민(主權在民)과 국민의 반항권을 인정하여 대표제에 의
한 민주주의, 3권분립, 이성적인 법에 따른 통치와 개인의 자유·인권과의 양립 등을 강조하여 종교적 관용을 역설했
다. 그의 정치사상은 명예혁명을 대변하고 프랑스혁명이나 아메리카 독립 등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 서유럽 민주주의
의 근본 사상이 되었다. 또 교육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당시의 교육법을 통렬히 비판하여 그리스·라틴어 집
중주의, 암기식 주입주의를 반대하고 수학적 추리와 유용한 실제적 지식, 신체·덕성의 단련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그
사람의 소질을 본성에 따라서 발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하여 가정교사에 의한 교육을 주장했다.
1.영국의 시민혁명과 로크
 로크(J. Locke, 1632-1704)는 영국 시민혁명의 와중에서 자라고 시민혁명에 간접적인 영향을 준 정치사상가였다.
로크가 열 살이 되던 1642년에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의 교회를 영국 국교회의 지배하에 두려고 하다가 스코틀랜드
군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찰스 1세(Charles Ⅰ)는 이에 방위비의 갹출을 의회에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고, 의회는
찰스 1세를 지지하는 왕당파와 의회파로 나뉘어 대립했다. 1645년 의회파의 크롬웰(O. Cromwell, 1599-1658)이 왕
당파군을 격파함으로써 승리를 거둔 의회측은 시민혁명을 보다 철저히 수행하려는 청교도의 급진적인 독립파와 이
정더에서 국왕과 타협하려는 온건한 장로파로 분열되었다. 결국 독립파가 크롬웰 군대의 힘으로 장로파를 의회에서
몰아내고 찰스 1세를 단두대에서 처형함으로써 「청교도혁명」(1642-1649)은 일단락되었다.
 로크는 임상의 시절(1665)에 알게된 애실리경(C.Ashley), 1621-83, 나중의 샤프츠베리 백작, Shaftesbury)의 후원
으로 종교, 통상 등 정부요직을 맡디도 했으나 찰스 2세와 샤프츠베리와의 대립으로 네덜란드 망명길에 올랐다. 로크
가 네덜란드에서 「인간오성론」등 주요저작을 구상하고 집필하는 동안 제임스 2세의 반동정책에 따른 영국의회의
반발과 윌리엄공에 의한 제임스 2세의 축출 등 일련의 「명예혁명」(1688)이 수행되었다. 로크의 저작은 이같이 긴박
한 정세변화를 목도한 가운데 쓰여진 것이며, 시민혁명을 주도했던 의회세력에게 로크의 사상은 적지 않은 영향을 주
었다. 말하자면 로크의 사상은 영국의 시민혁명의 와중에서 형성된 것이며 동시에 '국민주권', '제한군주제'등 시민혁
명의 옹호이론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로크의 사회계약론
(1)주요 개념
 로크의 정치사상은 「시민정부 2론」(Two Treatises, 1680)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은 필머(R. Filmer, 1588-
1653)의 왕권신수설을 비판하는 제1논문과 로크의 사회계약론이 제시된 제2논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제2논문, 이
른바 「통치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자연상태'의 성격이다. 로크의 자연상태는 홉스의 자연상태, 즉 "만인 대 만인의 투쟁상태"와 달리 "자유'롭
고 '평등'한 상태였다. 로크에 따르면 자연상태 하에서 사람들은 '자연법'의 범위 안에서 자기의 행동을 스스로 규율
하며 각자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대로 소유물과 신체를 취급할 자유(liberty)를 갖는다.
둘째, '자연권'의 개념이다. 로크는 인간을 전지전능하신 조물주의 피조물로 보고 각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의 뜻에
따라 '생명'(life)을 잘 보존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보았다(천부인권론). 그에 따르면 조물주는 또한 사람들에게
이 세계를 공유물로 주셨는데 사람들이 각자의 '노동'을 가함으로써 '사유재산권'(property)이 발생한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계를 인류으 ㅣ공유물로서 하사하셨을 때 동시에 인간에게 노동할 것도 명하셨다. …신과 인간
의 이성(자연법)은 이 대지를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개량하여 그곳에다 그 자신의것인 어떤 것, 즉 노동력을 투하할
것을 명했다. 토지의 어떤 부분을 점유하여 그것을 갈고 씨를 뿌린 어떤 사람의 것에 대해서 다른 어느 누구도 권리
를 갖지 못한다. 만일 이것을 빼앗으려 한다면 그것은 곧 권리의 침해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이성'의 법칙, 즉「자연법」은 사람들을 평등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만들고, 신이
부여한 '생명'(life)과 각자의 노동력이 가해진 '재산권'(property), 그리고 그것을 취급할 수 있는 '자유'(liberty)를 신
성불가침의 권리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2)사회계약
 로크의 자연상태는 적은 인구수와 광대한 토지, 그리고 풍부한 자연물의 상태였기 때문에 '자유롭고 평등한' 평화로
운 상태였다. 그러나 인구수가 많아지고 '화폐'가 생겨남에 따라 빈부의 차가 커지고 다른 사람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자연상태는 그것을 위반할 경우 옳고 그름을 판결할 수 있는 '법률'(law)이 없고, 법
에 따라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재판관'(judge)이 없을 뿐만 아니라 판결에 따라 그것을 집행할 수 있는 '권
력'(power)도 없다. 법률, 재판관, 권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상태 하에서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은 매우 불확
실하며 끊임없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침해받을 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에 사람들은 '생명과 자유와 재산'이라
는 자연권을 보다 더 안정적으로 향유하기 위하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 처벌권을 포기하고 그것을 계약에 따
라 하나의 '공동체'(community)에 일임하게 된다. 계약의 목적은 각자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사회 안과 밖의 침해
로부터 보호하고, 평화롭고 안전하며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데 있다. 이때 공동체의 운영은 다수의 의사, 즉
의회로 대표되는 '다수(majority)의 결정'에 따른다는 것이 로크의 사회계약론의 요점이다(의회주권론).
(3)로크의 주권론
 로크는 정치사회의 기원을 가자의 생명, 자유, 재산을 지키려는 인민의 자발적 동의에서 찾음으로써 국가의 모든 구
성원으로부터 정치권력의 기초를 찾으려는 생각, 즉 '국민주권론'을 형성해 냈다. 인민들은 자연권을 계약에 따라 '가
상 분쟁상태'의 조정자인 국가에서 양도하나 여전히 국가의 최고권을 소유한다는 그의 국민주권론은 영국 혁명뿐만
아니라 이후의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로크는 주권(sovereignty)이라는 말 대신
에 '최고권'(supreme power)을 사용하고 '입법권'을 그 내용으로 보았다. 사회구성원의 자연권을 위임받은 의회
가 '공동의 이익'(공공선, common good)을 위한 법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입법권의 범위로
는 목적으로서 공공복지와 형식으로서의 입헌주의, 그리고 실행규칙으로서 세금부과 등을 들 수 있다.  로크의 최고
권은 홉스와 달리 '제한적'인 것이었다. 입법부가 위의 법위를 벗어났을 때, 즉 의회가 전제적 행위를 하거나 정당하
지 못한 방법으로 인민의 재산을 침해했을 때 인민은 입법부를 제거하고 변경시킬 권한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
의 이같은 '저항권' 개념은 그의 이중계약론, 즉 공동사회를 탄생시킨 '개인간의 계약'과 이를 전제로 정치영역을 탄
생시킨 '정부에 대한 공동사회의 신탁(신탁)'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전자(개인간의 계약)은 파기할 수 없는 것이지
만 후자(정부에 대한 공동사회의 신탁)는 파기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제한정부론).
 로크는 인간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인간이 비록 이성과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
로부터 구별되지만 그것은 절대적일 수 없으며 언제나 잘못을 범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이같은
로크늬 인간관은 그의 정부구조론에서 잘 나타나 있는데, 그는 정치권력을 어느 한 사람이나 단체에 집중시키기보다
는 분산시키고자 했다(who guards the guardian?). 로크는 그의 인간관에 따라 입법, 집행, 동맹의 3권으로 정치권
력을 분립하고 입법권(최고권)을 의회에, 그리고 집행권(행정, 사법)과 동맹권(외교)을 군주에게 각각 위임했다.
3. 평가
 로크의 정치사상을 홉스와 비교해 볼 때 출발점과 문제의식은 같으나 논의의 전개와 결론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것
이었다. 로크는 홉스로부터 개인주의를 받아들이고 개인들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자연상태와 자연관, 자연법,그리고
계약등의 개념을 통해 사회계약론을 전개하고 있지만 홉스가 '절대군주론'을 전개하는 데 비해 로크는 '국민주권
론'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홉스가 주권국가의 형성기와 절대군주시대의 사람이었던데 비해 로크는 {청교도혁명}
과 }명예혁명}으로 대표되는 시민혁명기의 인물이었다는 시대적 배경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이와 같은 홉스와
로크의 정치사상의 비교는 영국 정치사의 변화와 함께 근대 민주주의의 전개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근대 계몽사상은 홉스-로크-루소 의 순서로 발달해 갑니다.

 

 홉스, 로크, 루소는 모두 공통적으로 자연상태에서 인간이 혼자의 힘만으로는 살기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뭉쳐서 자연을 극복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홉스는 따라서 사람들이 권리를 군주에게 다 양도했다고 보고, 로크, 루소는 일부만 양도했다고 보지요. 좀 더 세밀히 보면 루소는 양도할 수 없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루소는 처음으로 이러한 사회계약론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입니다. 그 전의 2명은 사상은 있었으나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죠.

 

 어쨌든 루소의 이러한 국민 주권적 사상이 프랑스 대혁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점이 그를 위대한 사상가이자 계몽주의자로 만들었습니다.

 

 한마디로 내가 자유롭게 다니고 자유롭게 놀고 돈 버는건 내맘이지. 왕의 뜻이 아니라는거죠. 왕이 백성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거지요. 돈도 맘대로 걷어가지 말고 압제도 하지 말란 거죠. 백성들은 단지 권리를 왕에게 잠시 맡긴거 뿐이니까 자기들을 잘 이끌어달라고... 그런데 왕이 멍청하면??? 이 말은 성립이 안 되겠죠? 따라서 루소는 공화정을 주장했답니다. 백성이 투표로 똑똑한 정치가를 뽑는 정치 말이죠.

 

J.J.루소의 저서. 1762년 간행되었다. 1755년에 발표한 《인간불평등기원론》 《정치경제론》을 발전시킨 것이다.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는 사유재산제가 인간 사이에 불평등을 가져왔으며, 기존의 법·정치제도는 모두 사유재산제를 보호하도록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변혁되어야 한다고 했으며, 당시의 절대왕제를 비판하였다. 또 《정치경제론》에서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정치체(국가)가 필요하며, 이 정치체의 통일을 유지하고 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일반의지>라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반의지란 <항상 전체(국가) 및 각 부분(개인)의 보존과 행복을 지향하고, 법률의 원천이 되는 것>이라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계약론》은 어떻게 하여 일반의지가 관철되는 정치체를 형성하고,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가지고 있었던 것과 같은 자유와 평등을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과제를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루소는,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 모였으며, 이때 각 구성원은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권리를 공동체 전체에 전면적으로 양도하여 신체와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사회계약>을 맺으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사람들이 설립한 <공동의 힘> 즉 새로운 정치체를 일반의지라는 최고의지(주권)의 지도하에 두라고 했던 것이다. 루소는 주권이란 불양도(不讓渡)·불분할(不分割)이며 대행될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주권, 즉 일반의지는 각 개인이 계약을 맺어 힘을 집결한 정치체의 최고의지이므로 당연한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주권은 외국세력이나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한 당파에 양도하거나, 국왕이나 신분제의회에 분할할 수 없으며, 또 전 인민의 의사를 대표하고 있지 않은 의회(영국)에 의해 대행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각 시민은 정치체와 일반의지를 형성하는 주체이므로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인민주권론과 법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2대원리를 주장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그의 사상은 프랑스혁명과 각국 민주주의의 성전(聖典)이 되었다.

루소(Rousseau)

루소는 자연상태의 인간과 현재(루소 당시)의 인간을 비교하면서,  자유로왔던 인간이 비참한 속박에 놓여있음을 개탄했다.

루소가 상상한 자연상태의 인간은 자유로왔으며 평화롭게 (*물론 다소간의 갈등은 당연히 있었겠지만)살고 있었다.  자연적인 차별(신체적 능력의 차이)이외에는 평등한 존재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손쉽게 채취할 수 있는 자원에 비해 인구가 많아지면서 경쟁이 발달하고 사적 소유의 개념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것도 개인이 자연물을 손쉽게 채취하기가 어려워지면서 효율적인 생산활동을 필요로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생활 속에서 사유개념이 발달하고,  개인은 차별화되기 시작한다. 나아가 타인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귀속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계급도 발생한다.

사적소유와 계급의 발생은 갈등을 확대시키게 되고 ,  기득권을  가진 인간들은 그들의 권리를 지속적으로 안전하게 보장받기 위해 계약을 맺게 되는 것이다.  불평등이 영속화되는 것이다.

루소는 그 당시 사회를 그러한 불평등의 연장선 위에서 바라본 것이다.

여기서 루소는 새로운 인간사회를 그리는데 그것은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그들의 권리를 양도하여 강력한 권력을 만들어 개인의 행복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논리를 주장한다.  그 강력한 권리는 개인의 의지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일반의지(General Will)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루소의 주장은 다소 이상주의를 지향하는데  루소에 따르면,  이러한 일반의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아주 소규모의 공동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회계약설


→홉스의 사회계약설: 홉스는 인간의 행동이 내적 의지인 격정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바로 이 격정은 이성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들은 자신들의 내적 의지에 따라 각자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홉스는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의 삶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예술도 없고, 학문도 없고, 사회도 없다. 무엇보다도 나쁜 것은 계속적인 공포와 난폭한 죽음의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생활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더럽고 잔인하며, 그 목숨도 짧다는 것이다.” 즉, 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보았던 것이다. 바로 인간에 대한 이러한 관점에서 홉스의 사회계약설이 출발한다.

홉스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들은 경쟁과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놓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이 결코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오랫동안 만족할 수가 없으며, 남보다 뛰어나다는 사실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결코 기쁨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따라서 홉스는 자연인의 공격적인 행위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인간들은 그런 행동을 금지하는 법을 알기 전까지는 그러한 행위들의 죄악을 깨닫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홉스는 법을 통해 인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질서를 19개의 자연법으로 요약했다. 홉스가 제안한 자연법의 내용은 바로 다음과 같다. 우선 인간은 언제나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또한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각자는 자기보호의 자연권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그것을 국가에게 양도해야 한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강제력이 필요하며 그러한 측면에서 모든 권리를 국가의 인격을 갖는 제 3자에게 양도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에 자신의 권리를 양도한 이상 신민들은 국가의 주권적 권력에 복종할 의무를 진다.

이렇게 인위적인 계약을 맺어진 국가(Leviathan)는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존하고 영원한 평화를 유지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홉스는 국가권력의 오용은 그 가능성조차 없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저항권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로크의 사회계약설: 로크는 인간은 애초에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태어난다고 여겼다. 사람은 어떠한 직관적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관찰과 회고적 성찰,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습득된다고 보았다. 로크는 이러한 인간 특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과거 어떠한 정부나 정치적 사회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로크는 그러한 자연 상태에서 인간들은 침해당하거나 양도할 수 없는 자연권을 가진 상태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화로운 사회에서도 분쟁과 불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로크는 이러한 분쟁을 막고 인간의 자연권을 보다 확실하게 보장하기 위해 인간들이 상호간의 계약에 기초한 정부를 구성했다고 주장한다.

로크는 이렇게 생겨난 정치적 사회는 바로 인간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임’함으로써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즉, 통치자의 권위는 결코 절대적일 수가 없으며, 위임된 것이므로 철회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로크에게 있어서는 국민의 자발적 동의가 있는 국가권력과 통치만이 정당했다.

이러한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는 공동사회의 동의에 의해서 수립되지 않은 어떠한 입법권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으며, 어떠한 의지나 법의 제한도 받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동의에 의해서 부여된 위임에 따라 입법권이 제정하는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을 받는 것이다. 만약 통치자들이 국민의 소유권을 빼앗거나 파괴하는 등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경우 그들은 국민과의 전쟁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국가가 계약을 위반하고 국민의 자연권을 침해할 경우 국민들은 복종으로부터 벗어나 신이 모든 사람에게 부여한 공통된 수단, 곧 저항에 호소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저항권은 부당한 정부에 맞서 새로운 정부를 재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했다.


→루소의 사회계약설: 루소는 인간은 본래 자연 상태에서 자유롭고 평화스럽게 살아갔다고 주장했다. 인간들이 자연 상태에서 가지고 있던 자유와 평등을 보다 확실하고 제도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계약을 맺어 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루소의 사회계약설이다. 이 때 국가는 자연과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모여서 성립한 것이므로 국가의 목적은 당연히 국민의 자연권 보장이다. 또한 인간의 자연권을 보장하는 국가에 복종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에 부합하는 것이므로, 국가에 대한 복종이 곧 자기 의지에 대한 복종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은 계약에 의해 성립한 국가 속에서도 여전히 자유로운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루소의 사회계약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일반의지이다. 루소의 일반의지란 간단히 말해 각각의 시민이 전체의 선을 생각할 때 모아지는 의지를 가리킨다. 그러나 일반의지는 사회계약을 체결한 각 구성원의 모든 고립된 의지의 단순한 총화는 아니다. 일반의지는 단순한 다수결에 의한 결론이 아니다. 공동의 선을 목표로 할 때,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이유, 경험 또는 사적 양심에 의해서든지 진심으로 마음속에 선의를 간직한 모든 시민에 의해 자발적으로 지지될 때 바로 그럴 때에만 진정한 “일반의지”이다. 다시 말해서 일반의지는 도덕적이고 질적인 관념이다.

한편 일반의지는 전체로서의 공동 사회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주권은 전체로서의 공동 사회 안에 놓여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루소는 주장했다. 따라서 주권은 양도될 수 없으며 어떤 한 사람이나 집단에 위임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루소에게 있어 민주주의란 모든 개인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시민들의 일반의지에 입각하여 공공선을 실현하기 위한 자유로운 계약의 결과가 국가라고 주장했다.




2)여러 사회계약설들의 공통점


→우선 홉스, 로크, 루소 모두 국가가 존재하기 이전의 상태를 자연 상태로 보았다. 국가는 인간에 의해서 훗날 만들어진 것으로 국가 이전에는 일종의 무정부 상태인 자연 상태가 존재했다고 본 것이다.

또한 이들의 사회계약설은 인간들은 이러한 자연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정부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같다. 물론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들의 본성이나 정부 구성의 목적에 있어서는 그 의견을 달리하지만, 공통적으로 자연 상태만으로는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가 없다고 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계약을 통해 정부를 구성하고 자연 상태에서 이룰 수 없는 것들을 보장하고자 했다. 홉스, 로크, 루소의 사회계약설에 나타난 국가는 모두 국가 이전에 인간들이 지니고 있던 자연권을 보장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홉스, 로크, 루소의 사회계약설은 국민의 동의와 계약에 의해 국가권력이 구성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들은 국가란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거나 개인 이전에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계약에 의해서 성립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국가는 신이나 혹은 초자연적인 권위에 의지하여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국민들의 지지와 동의에 근거한 정당성을 바탕으로 성립하는 것이다.




3)사회계약설 간의 차이점(홉스 ↔ 루소, 로크)


→홉스는 절대 군주 시대의 사상가로 왕권이 훨씬 약화된 후대에 태어난 로크나 루소의 사회계약설과는 몇 가지의 차이점을 보인다.

첫째로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그의 유명한 말처럼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들은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이기적인 본성을 바탕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악한 것으로 보았으며(성악설) 따라서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은 필연적으로 투쟁 상태에 놓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반해 로크와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도 인간은 각각 평화와 자유를 누리면 살 것이라고 주장했다. 엄밀히 따지면 로크는 인간의 본성을 백지설, 루소는 성선설로 본 점에는 차이가 있지만, 둘 다 인간을 본성을 선에 가깝게 본 것이다. 따라서 홉스가 자연 상태를 무법의 상태로 인식한 반면, 로크와 루소는 국가 성립 이전의 인간들은 자신들만의 평화와 자유를 누리면서 살았다고 생각했다. 

둘째로 홉스는 군주주권론을 주장하였으며, 국민들은 마땅히 자신들의 권리를 국가에 양도함으로써 국가가 기본권을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홉스가 살던 당시(17세기)의 지배적인 사고방식이 바로 군주 주권이기 때문이다. 홉스는 국민들의 계약에 의해 국가가 성립했다고 주장하기는 했지만, 당시의 시대적인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로크와 루소는 한 국가의 주권은 절대자 1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가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로크와 루소의 주장이 바로 국민 주권론이다. 국민들이 주권을 가지며 이를 행사하는 것도 국민들이라는 주장은 구체적으로 로크에게서는 저항권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을 통해, 루소에게는 ‘일반 의지’라는 개념을 통해 드러나 있다.

셋째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치형태의 모습에서도 홉스는 후대의 사상가인 로크나 루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홉스는 군주주권론을 바탕으로 저항권을 부정했으며 절대군주제를 옹호했다. 이는 사회계약설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왕권신수설과는 분명히 다른 정치체제이지만 여전히 전제정치를 옹호하는 측면이 강하다. 홉스는 왕이나 군주가 다스리는 정치형태를 지향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로크와 루소는 국민들의 주권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는 민주정치를 옹호했다. 구체적으로 로크는 입헌군주제를 바탕으로 한 간접민주정치, 루소는 국민들의 의사가 직접 반영되는 직접 민주정치를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권력행사에 대한 인식에서도 이들의 사상은 차이점을 보여준다. 홉스의 경우 국가권력은 국민들의 권리 양도를 바탕으로 성립한 것이며, 이러한 권력이 잘못 행사될 가능성이 없다고 보았다. 즉, 국민의 기본권을 해칠 가능성을 아예 부정함으로써 저항권을 부정한 것이다. 이에 반해 로크와 루소는 국가에 대한 권리 양도를 통한 기본권 보장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로크의 경우 국가가 잘못된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할 경우 이를 거부할 권리를 국민들에게 부여하였다. 이것이 바로 저항권 사상으로 로크는 이를 명시적으로 규정해놓았다. 루소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국민의 권리가 양도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했다. 그는 국민의 권리는 양도될 수 없으며, 국민의 의사는 대표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국가가 아닌 국민 모두가 자신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식, 즉 직접 민주정치를 주장했다.

홉스와 로크, 그리고 루소는 국가 권력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계약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홉스의 경우 그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의 특성상 국가에서의 군주의 역할과 그 위치, 그리고 정치적 형태에 있어 로크나 루소와는 많은 차이점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3. 루소의 사회계약설

사회계약이라는 말은 루소가 최초로 사용하였다. 홉스와 로크는 계약 선약 동의와 같은 말만을 썼다. 물론 루소의 경우에도 자연상태 자연권 자연법 사회계약이라는 말이 정치론 안에 나오지만, 자연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법에 따라 사회계약을 맺어 정치사회를 설립한다는 홉스 로크에서와 같은 유명한 이론구성은 사용되고 있지 않다. 홉스와 로크는, 정치사회를 형성하면 인간의 자유나 사회적 평화가 확립된다는 낙관론이지만, 그들보다 약 1세기 늦게 태어난 루소에게 영국의 정치상태는 민주주의적이라고 생각될 수 없었다. 오히려 루소는 자연상태에서 문명상태로 진전한 당시 프랑스 봉건사회를 점점 타락하고 있는 사회로 보았다. 따라서 홉스나 로크처럼 낙관론에 설 수 없었다.

루소는 농업을 대규모화하고 소수자가 다수자를 모아 물건을 생산하는 구조 안에 인간불평등의 기원이 있다고 하고(인간불평등기원론, 1755) 또 이것에 의해 인간은 자유를 잃게 되고 인간은 가는 곳마다 속박에 묶여 있다고 하였다.(사회계약론, 1762)

법 제도 전제군주 등은 이미 다수인민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이므로 이 모두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인민의 자유는 회복되지 않고 평등은 달성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루소 정치론의 출발점이었다. 물론 당시의 프랑스는 엄한 구제도(앙시앙 레짐)아래 있어서 폭력혁명으로 새로운 체제를 창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루소는 보다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를 당시 사람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인민을 계몽하고, 가장 좋은 정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돌리게 하려고 '사회계약론'을 집필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는 개인의 자유 이익과 공공의 자유 이익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시민이 계약을 맺어

<일반의지>를 가지는 정치사회를 확립하고 <일반의지>가 정한 법률에 의해 정치를 실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로크의 커뮤니티(정치사회)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홉스는, 주권자는 한 사람 또는 소수의 집단으로 되어 있는 것에 비해, 루소는 주권자를 계약을 맺은 전원의 의사로 한 점에서 국민주권주의의 의미가 보다 확실하게 되었다.

로크는 입법부에 주권이 있다고 하였으나, 루소는 영국의회는 국왕과 상원은 비(非)민선, 하원은 제한선거에 의해 선출된 의원의 구성체이므로 올바른 민주주의가 아니며 <영국국민은 선거 때만 자유롭고, 그 밖의 경우는 노예상태에 있다.> <일반의지는 대행되지 않는다.>고 하며 영국의 정치를 비판하였다. 영국의회에 대한 비판을 가지고 루소는 대의제를 비판하고 직접민주제를 주장했다는 견해가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루소도 프랑스와 같은 큰 나라에서 직접민주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우선 전국민의 의사를 대표할 수 있는 약간의 회의체 설립을 말한 것으로 이해해야하며, 이것은 사실상 보통선거에 의한 인민주권론을 주장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일반의지>가 인민이나 국민의 계약에 의해 형성된 정치사회의 주권이라고 한다면,  군주, 신분제의회, 제한선거에 의한 의회, 교회, 길드 등에 의해 대행되는 것은 결코 허락할 수 없는 것이다.

루소에 의해 홉스 로크 이래 민주주의적 근대국가론의 모델이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직접민주주의의 선구자 루소가 있습니다.
루소의 계약론의 특징은 평등계약론입니다.
모든 인민이 평등하게 천부적인 정치적인 권력을 갖고 있으며
대등한 비율의 권리를 갖고 정치질서형성을 위해 합의한다는 것 입니다.
로크에게 있어 국민이란 일정한 재산을 갖고 있는 유산자를 의미한 데 데해
루소의 인민은 재산과 관계없이 모든 민중을 의미합니다.
여하튼 루소에 의하면 인민은 자신들에 의해 직접 만든 정치권력이므로
이에 대한 저항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루소의 말에 비추어보면(자연으로돌아가라!)
루소가 상정한 자연상태는 불평등과 차별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루소의 사회 계약론에 대하여 (내공 125)

... 이상 루소의 사회계약론중 2장(2페이지 말고 나눠진... 따라서 《사회계약론》은 어떻게 하여 일반의지가... 잘 반영시켰다. 그는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로...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대해 자세하게...

루소의 사회계약론에대해 공부하고싶은데 자세하게... 의사는 반영되기 전이지요. 물론 봉건사회도 민중의... 그래서 이 일반의사를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루소사회계약론을 왜썼을까요?

궁금합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J.J. 루소의 저서. 1762년... 따라서 《사회계약론》은 어떻게 하여 일반의지가... 잘 반영시켰다. 그는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로...

사회계약론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쳐주세요!

... 따라서 《사회계약론》은 어떻게 하여 일반의지가... 주체이므로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인민주권론과 법의... 잘 반영시켰다. 그는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

루소에 관해서

... 한 계몽주의 사상이 팽배하였다. 인간중심의 사고를... 엘로이즈>와 <에밀>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자연속에서... 그러면서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고립상태의 인간에서...

내공35(총60)$$$루소에관하여$$$

... 따라서 《사회계약론》은 어떻게 하여 일반의지가... 주체이므로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인민주권론과 법의... 잘 반영시켰다. 그는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

자연법사상가)와 루소(18세기 프랑스의...

... 볼테르와 루소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미국 혁명뿐만 아니라 여러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의 영향은 미국 독립 선언문에 반영되어...

장 자크 루소의 생애와 업적등 내공100

... 따라서 《사회계약론》은 어떻게 하여 일반의지가... 주체이므로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인민주권론과 법의... 잘 반영시켰다. 그는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

루소의 발달이론 관련 예시나 이론이...

... 루소, 그는 어떻게 살아 왔는가?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사상가인 장... 그는 1761년의 『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 정치이론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