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여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은 1929년 5월 4일 벨기에 부르셀(Brussels)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본명은 오드리 캐슬린 러스턴(Audrey Kathleen Ruston)이다. 아버지 조셉 러스턴(Joseph Victor Anthony Ruston)은 영국 귀족출신의 은행가였으며, 어머니 엘라(Ella van Heemstra)는 네덜란드 출신의 남작부인이었다. 부모의 이혼 후 헵번은 어머니와 함께 런던으로 가서 사립여학교를 다녔는데, 방학 때는 네덜란드의 아른햄(Arnhem)에서 머물고는 했다. 헵번은 나치 점령기 때 시련기를 보냈는데, 해방 이후 런던의 발레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모델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녀는 매우 우아한 모델이었고, 모델직업이 천직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영화제작자들이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내면서 그녀의 인생항로에 큰 변화가 생겼다.
1950년대에 들어 헵번은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1953)을 필두로 하여 <사브리나>(Sabrina, 1954),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 1956), <하오의 연정>(Love in the Afternoon, 1957), <파계>(The Nun’s Story, 1959), 그리고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 1961) 등의 작품들에서 명연기를 선보임으로써 배우로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그녀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로 처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래로 영국아카데미(BAFTA Awards)에서 1960년에 <파계>(The Nun’s Story)와 1965년에 <샤레이드>(Charade)로 각각 최우수영국여배우상(Best British Actress)을 받았다.
1960년대 말 헵번은 유명 배우인 멜 화라(Mel Ferrer)와 이혼을 한 이후 은퇴를 결심하기도 했지만, 영화에의 꿈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재혼을 한 후에도 그녀는 <로빈과 마리안>(Robin and Marian, 1976) 같은 영화에 출연을 했지만, 예전의 명성을 찾지는 못했다. 헵번은 1988년 유엔 유니세프(UNICEF)의 명예대사가 되어 남미와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에 나섰다. 그녀는 영어, 화란어는 물론이고 스페인어, 불어, 이태리어에 능통하여 국제 기자회견장에서 여배우로서 나아가 인도주의자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녀는 1993년 1월 20일 스위스에서 사망할 때까지 대사직을 수행했다. 그녀는 1993년 아카데미 인도주의 상(Jean Hersholt Humanitarian Award)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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