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관련 인물들 질문입니다.

세계사관련 인물들 질문입니다.

작성일 2015.07.28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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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에 관한 기사를보다가 관심이 생겨 이것저것 궁금한게 생겼습니다.
나폴레옹 칭기스칸 히틀러 모택동 스탈린 등에 관해서 인데요 각자 활동했던
시대 그리고 업적 학살내용 추구하던 사상등 자세하게 좀 알려주세요~! 그리고 그 외 한 나라를 떠나 여러나라까지 정복이나 큰 학살등을 한 지도자가 있으면 또 알려주세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자세하게 적어달라고 하셨지만 연도 사건 등 여러가지를 적어봐야
그냥 제가 생각하기에 읽기 쉽게 적도록 하겠습니다.







나폴레옹은 어린시절 절대왕권국가 프랑스 남단의 섬에서 태어난 걍 어촌 사람입니다.
그런 뒤 상경해서 사관학교에 들어가 군인이되고, 이 후 군대로 들어가 포병장교까지 오르게 됩니다.

당시 유럽은 절대왕권시기였지만 동시에 계몽시대 였습니다.
왕이라는 절대권력이 있는데, 어디 하찮은 국민이란 것들이 왕의 말에 토를 다느냐! 이런 시대였죠.

하지만 당시의 절대 군주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안절부절 못하던 때였기에, 정치적으로 방해가 되면 최대한 빠르게, 아무도 모르게 처리하곤 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유명한 바스티유감옥인데, 이곳은 사실 정치범 수용소라고 할만큼 풍요로운 감옥입니다.
악명과는 틀리게 돈이 있는 정치인들은 저곳에 들가면 풍요롭게 살 수 있었지요.

그렇다고 해도 그곳에 들어가 있는 정치인, 귀족들이 정계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었기에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중 계몽을 원하였던 수많은 국민들은 절대왕권을 끌어내리길 원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승전보와 관록으로 젊은 나이에 군인장교로 정계에 진출 하였던 나폴레옹이 급부상 하게 됩니다.

많은 귀족들은 그가 시골 촌놈이라고 무시하였었지만, 사실은 역사적으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꿈과 야망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결국은 나폴레옹은 바스티유 감옥사건등 여러사건으로 왕권이 흔들리는 시기를 틈타 군부를 장악하고, 
공화정의 프랑스 정점에 앉아 투표를 실시 합니다.
나폴레옹은 국민 98%에 가까운 지지율을 받으며 (제1통령) 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곧 나폴레옹은 스스로를 황제라 자칭 하게 됩니다.(이 소식을 들은 베토벤은 나폴레옹에게 음악을 써주었던 악보를 찟어버렸다고 합니다.)

스스로 막을 내린 절대왕권을 스스로 다시 연 나폴레옹에 주위 많은 학자들은 실망을 금치 못합니다.
하지만 그의 통치는 다른 절대왕권의 무능함이 아닌 현대의 프랑스를 보여주듯 모든 분야에서 통치를 실시 합니다.

교육, 사법제도개선 등 그의 많은 업적은 나폴레옹 법전에서 보여주듯이 당시의 다른 왕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당시 강국이었던 프랑스는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 강경한 외교정책을 펼쳤고, 이에 반발은 나라들은 철저히 짓밟아 버리게 됩니다.

사실 먼저 시비를 거는것은 주위 절대왕정 국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프랑스라는 거대국가에서도 그러한 반란이 일어나 혁명이 성공 했다는것이 자신들의 위치에 얼마나 위협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군부에서 수많은 전쟁을 이끌었던 백전노장인 나폴레옹을 감당하기에 유럽의 귀족과 왕가들은 무능함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당시의 전략 전술과 탄도학을 잘 이해했던 나폴레옹은 소수의 정예병력으로 다수를 격파하는 수많은 전쟁 업적을 만들어 냅니다. 물론 무모하게 거대한 알프스 산맥을 돌아서 침공하는 일도 있었죠.
하지만 무모한 수많은 작전들을 성공 하고 맙니다.
정말 내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를 몸소 실천한 사례이니까요.

그는 대부분을 나폴레옹 1인 지도하에 전략전술을 맞춰 다년간 최전선에 나가 전쟁을 치루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나폴레옹은 역사적 2명의 지도자가 범했던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바로 러시아침공입니다.

당시 영국과의 외교 교류를 끊는 대륙봉쇄령을 내린 나폴레옹은
영국과 끊임없는 교류를 하던 러시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결국은 원정을 갑니다.

하지만 결국 날씨와 게릴라전술(초토화전술)에 패배.

결국 이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여럽의 여러나라는 연합하여 라이프치히전투에서 나폴레옹을 몰아내어 유배시켜 버립니다.

나폴레옹은 섬에 유배되었지만, 끝없는 야망을 버리지 못한채 지지세력을 등에 업고 다시 파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곤 그의 일생 마지막 전투인 세계3대 전투중 하나인 워털루전투를 치르게됩니다.
영국의 웰링턴공작과 당시 제국이던 프로이센제국의 블뤼허백작의 연합군에 의해 무너지고 맙니다.
러시아때 눈으로 고생했다면, 이날은 비때문에 재때 증원군이 오지못한 나폴레옹의 패배인것이죠.

워털루전투는 근대의 마지막 전술학적 전투이며, 지금도 화약개발이후 가장 많은 자료와 함께 전술학 연구에 도움이 되는 사료라 합니다.


어찌되었던 나폴레옹의 백일천하는 막을내리고, 다시금 머나먼 세인트 헬레나섬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기 됩니다.


-나폴레옹의 집권으로 인하여, 유럽의 계몽사상이 더욱 파급되고, 많은 민중심리가 발달하며, 교육과 법적 체계가 한단계 발전하게 된다.



















 칭기스칸(테무친)이 태어났던 시절 몽골은 대제국이 아닌 대평원의 수많은 민족들이 분열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어린시절 그는 총명하고, 무예에 뛰어난 장군의 자질을 보였었고, 아버지는 부족의 우두머리 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부족 내에서 암살을 당하게 되고, 테무친은 어린시절 항상 죽음의 상황에서 시달리게 됩니다.

아버지가 죽자 그동안 후원 세력들에게 버림받고, 오히려 노예로 끌려다니기도 합니다.
어쩔때는 강가에서 물고기나 잡으며 간신히 연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중 몽공 중심의 강한 부족중 하나에 들어가 충성을 맹세하고 안전을 보장받게 됩니다.
이 후 자신의 독자세력을 키우게 되고, 서서히 한 부족씩 점령해 나갑니다.
그렇게 그는 수많은 부족들에게 칸의 칭호를 얻고 복종의 맹세를 받아 냅니다.

부족을 통일한 칭기스칸은 대외적으로 넘보게 됩니다.
당시에 서쪽에는 대제국을 이루고 있던 금나라가 있었고,
남쪽에는 쇠퇴하여 금나라에 조공을 받치고 있던 송나라(남송)가 있었습니다.

악비라는 명장을 스스로의 손으로 제거해버린 남송으로서는 더이상 금나라에 대항하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해마다 조공을 바치며 그저 간신들만이 잘살고 있던 그런 보잘것 없는 나라가 되가고 있었습니다.

칭기스칸의 시선으로 봐선 머지않아 금나라가 송나라를 멸망시킨 후 그 다음은 자신의 몽골족, 그리고 서쪽으로 끊임없이 나아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장에 금나라에 대적을 하자니 몽골족은 갑작스럽게 통합된 작은 나라였고, 아직은 대항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서쪽의 여러 나라들과 외교하여, 금나라에 대항할 세력을 갖추고, 이후 남송과 연합하여, 금나라를 멸망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송나라 또한 피폐해지고,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사태까지 가게됩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전쟁을 치룰수록 몽골족의 기세는 갈수록 높아져만 갔고, 결국은 남송의 멸망직전까지 이르게 됩니다.

남송이 아무리 망세가 들었다 하여도 제국은 제국이었습니다.
칭기스칸은 서쪽으로 나아가 호라즘이라는 당시 제국을 상대로 외교를 펼칩니다.
초반에는 잘 나가다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시킨 호라즘왕국은 몽골과의 전쟁을 선포하게 됩니다.

결국 금나라를 부수었던 기병대가 호라즘 왕국을 밟고 이후 서쪽으로 더나아가 수많은 왕국들을 정복하게 됩니다.
자신의 아들들에거 왕국들을 맞기게 됩니다.

자신이 젊은시절 봐오던 송나라의 성벽을 결국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다시금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세수를 다한 칭기스칸은 송나라 멸망직전 세상을 뜨게 되고, 얼마뒤 문치국가 송나라는 역사속 뒷전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본격적인 원나라의 시작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몽골의 원정은 동유럽에 수많은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오래전 아틸라의 훈족이 유럽을 휩쓸었던 것처럼 칭기스칸의 몽골족은 유럽을 휩쓸며,
전무후무한 대제국을 건설하게됩니다.


몽골족은 유목민족이기에 정착의 삶이 익숙치 않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정복을 했음에도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한다기 보단,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여 점차 자신들의 문화를 잃어 갔습니다.

-칭기스칸은 항상 절제의 삶을 살았으며, 자신을 믿는 국민,부족민들에게는 한 없이 위대한 군주 였지만, 자신에게 반항하거나 거역하는 자들은 철저히 짓밟는 등 그들에겐 그 무엇보다도 잔인한 폭군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민족의 문화를 존중하였고, 모든것을 포용할 수 있을정도로 포부가 넓은 지도자 였습니다.
그렇기에 역사상 가장 많은 영토를 거머쥔 지도자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사후에 나라들이 다시금 분열되고, 몽골부족들 또한 분열되어 다시금 자신들의 터전으로 쫓겨나게 된다는 것(원나라)이 자식과 아버지의 역량차이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가 아닐까 합니다.















히틀러는 어린시절 오스트리아에서 출생 하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엄격한 오스트리아 세관 고위관료였습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었습니다.
공부에는 뜻이 없었는지 낙제가 가득하였고, 언제나 아버지에게 혼나기만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실업학교를 간신히 졸업 한 후 자신의 꿈인 예술가의 꿈을 꾸게됩니다.

거리에서 그림을 그려주며 돈을 벌고, 화가가 되기위해 여러번 미술학교에 지원하게 되지만,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만약 이때에 히틀러가 꿈을 이루었었다면, 피로얼룩진 2차대전의 주인공은 히틀러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후 1차대전이 일어나게 되고, 독일군은 패전국으로서 수많은 리스크를 앉게됩니다.
국토의 상실, 천문학적인 배상금, 치솟는 물가

당시 오스트리아 독일군에서 생활하던 히틀러는 1차대전 직후의 독일을 바꾸기 위해
정계로 진출 하게됩니다.
초창기에는 투표에서 밀리기도 하였고, 무력으로 나라를 전복시키려고도 하였다가 투옥도 됩니다.

하지만 그는 감옥에서 책을 벗 삶으며 좀 더 낳은 방법을 찾게 됩니다.
이 후 그는 여론을 통해 유대인들의 음모론과, 그들을 비판하며,
게르만 우월주의를 삼아 연설을 펼쳤습니다.

당시 패배로 인하여 피폐해져 있던 독일국민들은 게르만 우월주의에 열광하며, 유대인들을 몰아내면, 자신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윤택해지리라 믿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알버트 아인슈타인도 쫓겨나듯 달아나게 됩니다.

그렇게 히틀러는 총리의 자리에 올랐고, 이후 독일의 전 군권을 장악,
군수산업을 몰래 키워 군 인프라를 구축하고, 고등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히틀러는 신형 폭격기의 위력 실험을 위하여 게르니카에 폭격을 가해 수많은 학살을 자행하게 됩니다.

그 후 그는 노골적으로 다른 나라에 자신의 군대로 얼마든지 땅을 되찾거나 뺏을 수 있다는 위압감을 주게됩니다.

당시 억지평화를 유지하고 싶었던 프랑스, 영국 같은 주요 국가들은 히틀러의 요구에 순응하며, 땅들을 조금씩 내어줍니다.

하지만 결국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쪽으로 진출하며, 세계2차대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독일의 기갑사단은 강력하였으며, 떨어져 있던 수많은 국가들은 빠르게 점령당하였습니다.
결국 역사적 강국이었던 프랑스마저 점령 당하여, 비시프랑스라는 괴뢰정부가 세워졌습니다.

그 후 대전차전의 달인 명장 에르빈 롬멜을 파견하여 아프리카를 점령하는듯 그 세력을 뻗어 나갔습니다.
그때부터 사막의 여우(롬멜)와 사막의 생쥐(몽고메리)의 승부까지 아프리카군은 독일의 손안에서 놀아나게됩니다.

하지만 그 막강하던 독일군에 제동을 거는 일이 발생하니,
히틀러는 역사상 2번째로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바로 러시아 침공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나폴레옹의 전쟁과 똑같은 양상이었습니다.
단지 무기의 기술력 차이일뿐 과정과 결과는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추운 날씨와 길어진 보급선, 넓은 국토, 끊임없는 게릴라전술.
결국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배하며 쓴 고배를 마시며, 후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때쯤 사막에서는 아이젠하워 휘하 몽고메리 장군이 롬멜군을 격퇴함으로서 아프리카의 많은 땅을 수복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독일의 기갑사단은 기름과 같은 군수물자의 부족으로 점차 밀려나기 시작한 추세였습니다.

다음의 행보 또한 독일에겐 결코 좋지 못한 행보로 이어지는데, 바로 무제한 잠수함 작전 입니다.
당시 유럽의 마지노선은 러시아와 영국이었습니다.
영국에는 프랑스 망명정부가 피난가 있었고, 사실상 유럽의 힘있는 마지막 제국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독일군의 강한 공군력도 좀 처럼 런던 이북을 뚫수가 없었고, 기나긴 런던 대공습은 취소 되게 됩니다.

그 후 실행하게 된것은 영국의 물자 운송을 저지하는 잠수함 작전이 시행되게 되는데,
이 유보트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초기에 효율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결정적 실수를 하게되니 바로 미국의 함선을 격침시키게 됩니다.
이에 명분이 부족하던 미국은 소극적 지원에서 적극적인 전쟁 참여를 선포하게 되고,
마침내 판세는 백중세를 이루게 됩니다.

전쟁의 후반기에 다다르자 연합군은 인류역사상 가장큰 상륙작전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치게 됩니다. 결국 독일의 유럽에서의 기반은 점점 뒤로 밀려나게 됩니다.
물론 그 후 연합군의 무모한 작전인 마켓가든 작전들이 독일에 좋게 작용하였지만,

결국 세계3대전투중 하나인 벌지 대전투에서의 독일군의 패배로 2차대전의 종전이 앞당겨지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오합지졸군과 일본국의 동아시아 침략군은 이미 패퇴하여, 더이상 추측군(독,일,이)에는 희망이 없어지게 됩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몰린 히틀러는 자살을 하여 모든 전쟁이 종전되게 됩니다.
히틀러의 정확한 생사여부는 현대까지도 논란이 많았지만 결국 전쟁은 종전되고,
전 후 처리까지 다 진행되게 됩니다.




-히틀러의 사상은 게르만 우월주의에 있습니다.
이 민족 우월주의는 적당하면 애국심이 될지는 모르지만, 과하게 되면 그 무엇보다도 추억한 이기주의가 되버립니다.

그 대표적 우려가 바로 유태인 학살입니다.

당시 수많은 국가의 고위관료층이나 사회의 부 대부분은 많은 유태인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그런 유태인들은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죄악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 히틀러도 총리에 오를때까지 민족주의와 반유대인주의로 수많은 표를 얻었을정도이니
당시의 독일이 얼마나 어지러웠을지는 불보듯 뻔한 것입니다.

결국 아우슈비츠수용소를 비롯하여 수많은 유태인들을 감금과 학살을 자행하고, 샤워실에 가두어 독가스를 살포하는 등 수많은 유태인들이 학살 당합니다.

화학전이 생겨난 이래 가장 추악하고도, 가장 잔인하였던 학살이 바로 이 유태인 학살입니다.
너무도 일방적이고, 너무도 잔혹한일을 자행했던 이 사건은 죽어서까지도 결코 용서받지 못할 행위가 되버리고 맙니다.


히틀러라는 사람이 인류학에서 많은 오점을 남긴 사람이었지만, 그는 문학을 좋아하는 달변가였고, 예술을 사랑하는 문화인이었기도 합니다.

종전 후 히틀러가 빼앗고 모아두었던 예술작품들만 해도 어마어마 했다고 합니다.

만약 그가 예술인이 되었다면 또 세계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모택동(마오쩌둥)이 태어났던 시기는 19세기 말로, 사실상 세계적으로 전제정치가 흔들리던 시기였습니다.
 수많은 나라에는 의회가 건립되고, 총리 통령이라는 가문이 아닌 국민이 뽑는 투표제가 한창 활발한 시기였습니다.

 당시의 중국 청라나 또한 그 황권이 흔들리는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차례 열강들의 침략에 무릎꿇고, 일본에 패배함으로서 조선에서의 권리마저 잃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청나라는 한족의 정통 왕조가 아닌 북방 만주족의 이민족 왕조였습니다.
 그렇다보니 한족이었던 모택동또한 청나라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국 각지에서는 반청복명이라는 구호를 걸고 나라의 멸망을 원하던 한족과, 중국이라는 대륙의 넓은 영토를 나눠먹기하는 서구 열강들로 인해 어지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청왕조타도의 목적을 가진 혁명군은 신해 혁명을 일으켜 왕권을 뒤흔듭니다.
이 때 모택동은 반청사상을 기초로 혁명군에 가입하게 되고,
마침내 혁명군에 의해 중화권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는 역사의 뒷전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혁명군 활동 이 후 학업을 마친 모택동은 대학가 에서 수업을 받게되고, 그 때에 마르크스 주의에 깊은 감명을 갖게됩니다.

중국에서는 국가의 자유와 서구열강으로 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국공합작이 일어나게 됩니다.
당시 공산당파의 대표중 한명으로 모택동이 올라서게 됩니다.

하지만 공산당의 확산이 두려워진 자유파 대표 장제스는 공산당을 견제하게 됩니다.
결국 공산당은 패배하여 뒤로 물러나게 되고, 모택동 또한 후 일을 도모하며 농촌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 후 모택동은 농민군을 조직하여 장제스의 세력에 대항하였으며, 10년여 국공내전 끝에 마침내 장제스를 대만으로 몰아 낼 수 있었습니다.

통일된 국공군을 조직화시켜 일본군에 대항하며, 반일 활동에 나서며 소비에트연방과 외교로 점차 국가의 기틀을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2차대전의 종전과 함께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며, 중화 최대 지도자가 되게됩니다.
중국과 소련의 동맹 끝에 외적인 안정이 되자 모택동은 내정을 다지려 합니다.

모택동은 국가의 근간인 농업 위주의 개혁을 여러차례 단행하게 되지만, 매번 실패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농민들이 굶어죽는 사태에 이르르고,
결국 모택동은 스스로 주석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정권에서 실각한 모택동은 사실상 권력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연금생활을 하며 사실상 잊혀져가던 존재가 되버린 모택동에게 마지막 활로가 생기게됩니다.

바로 중화역사상 분서갱유 이후 최악의 혁명인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중화권 문화가 아닌것은 철저히 배척하며, 묻어버리는 정책을 실시 합니다.

정책 유지과정이다보니 이 때에 많은 정치가가 숙청되었고, 당시 주석이던 류사오치조차 숙청되고 결국은 중국은 많은 문화를 상실하게됩니다.

이 후 중국최도 지도자로 군림하게된 모택동 이지만 머지않아 천안문사건이 일어나며
최고 지도자였지만 그에 걸맞지 않는 쓸쓸한 죽음을 맞게 됩니다.


-모택동은 2차대전 시기와 맞물려 중국의 탄생과 함께 군권, 경제권, 사법권 모든것을 쥐고 흔들지만, 결국 한 사람의 한계성이 들어남을 너무도 많이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됩니다.
 
 문화대혁명은 지금도 중국 현대 최고 오점으로 기록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문화혁명으로 인해 중국의 발전이 10년가까이 늦혀졌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것 처럼, 틀린 정책을 독재적으로 밀어붙여 결국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는 전형적인 사례인듯 합니다.

 수많은 전쟁, 정쟁을 경험하였지만 언제나 그 누구보다 뛰어나서 올라선 자리라기보단, 항상 기회를 잘 잡았던 것이었기에 어찌보면 중화 영웅이라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매번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는것이 현실입니다.














스탈린은 태어났을적부터 불편한 발과 화목치 못한 가정속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는 볼품없는 작은 아이였고, 학교에서도 늘 상류층에게 멸시를 받으며 살아 왔습니다.

당시의 러시아는 제국주위로 매우 폐쇄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럽민들은 대부분이 이미 계몽사상으로 인해 머리가 깨어 있던 시기 였기에 제국 정부가 국민들을 억누르기에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당시 개혁파의 수장인 레닌의 서적에 큰 감명을 받은 스탈린은
극진 개혁파인 볼셰비키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곳곳에서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제정러시아 또한 문을 닫게 됩니다.

새로운 문을 열게된 소비에트연방이라는 국가는 사회주의를 기초로하는 최초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스탈린은 그곳의 수장인 레닌의 눈에들어 군대를 이끌게 되고, 공적을 쌓아나가게 됩니다.

결국 레닌은 자신의 당에 서기장으로 스탈린을 앉히고 그에게 많은 권력을 쥐어주게 됩니다.
그렇게 많은 권력과 자신의 입지를 단단하게 궂혀가는 스탈린과 다르게
점점 몸의 상태가 안좋아져 죽을날을 실감해가는 레닌은 결국 병석에 눕게 됩니다.

스탈린의 여러가지 잔인하고도 비정한 면모들을 죽기직전까지 지켜보던, 레닌은 자신이 죽은 이후 스탈린을 지도자에서 끌어내리라는 유서를 남기게 됩니다.

하지만 스탈린은 그 유서를 숨기며 자신이 최고 지도자로 서게됩니다.
그러곤 자신들의 정적들을 차례로 숙청해 나가고, 결국은 국가내 최고 권력자기 되게 됩니다.

권력을 잡자마자 그는 많은 개혁들을 단행하게 되는데, 국가 농민들의 사유지를 빼앗에 국유지로 되돌리고 단체로 농업을 실시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후 그는 자신의 체제에 반대하던 정적들과 위협이 되던 자들을 철저히 제거해 나갔다.
수차례 많은 숙청이 이어졌고, 자신을 따르던 혁명군들 또한 숙청을 단행하게 되어 수많은 강이 피로 얼룩지게 되었습니다.

내적으로 안정을 찾아가자 그는 외적으로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그는 서방 유럽 열강들과 우호관계를 맺고, 독일과는 불가침 조약까지 맺게 됩니다.
그리고나서는 주변국들을 차근차근 점령해 나가며 그 세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미 2차대전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사이 독일이 영국을 공격하고 있었다.
당시 소련은 스탈린에 의해 많은 장군들의 목은 이미 시베리아 벌판을 떠돌고 있었습니다.

스탈린도 독일이 불가침을 깨고 소련을 치러 올것이라고는 예상은 하였었지만, 그 상황은 예상과 반대로 앞당겨 지게 되었습니다.
이때에는 잔인하고 자신감에 넘치던 스탈린도 잠시나마 절망에 빠지며 자책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소련이 세워진 후부터 끊임없이 확보 발전한 군수인프라와 전쟁수행 능력, 그리고 서방국가들과의 우호관계로 인한 동맹은 무너질것만 같던 소련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결국 연합군과 스탈린의 소련군은 추축군을 몰아내고 2차대전의 승전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전후 처리당시 스탈린은 소련의 희생과 활약을 주장하며 소련의 세를 아시아권과 동유럽권으로 더욱더 확산시켜 세계 최강대국으로 급 부상 시켰습니다.

한국전쟁이 종전 직전에 그는 별장에서 뇌졸증으로 쓸쓸히 사망하였습니다.
이 또한 영웅이라는 사람의 최후라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결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탈린은 독재자이면서 수많은 피의숙청을 단행하던 그였고, 전쟁터의 영웅이었지만 가족에겐 비정한 아버지와 남편이었습니다.
 그의 핏속에는 철이 흐를것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말들이 가득하였고, 현대 공포정치의 가장 큰 표본으로서 기록되는 그이기도 합니다.

 국가를 부상시키는 그의 수완은 나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나 비정하고 잔인한 면모를 들어냈던 그는 사후 비리와 저질러온 악행이 낮낮히 파헤쳐지며 거의 사형과도 같은 사냥의 표적이 되었고, 결국 영웅의 업적은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리고 맙니다.

어쩌면 그에게 필요하였던것은 나라를 발전시키는 정치적수완력 과 수많은 전쟁을 이길수 있는 용병술이 아니라, 자신이 믿을수 있는 자신의 사람과 다른사람에게 나눠 줄 수 있는 정이 필요 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정복자의 단골 손님에서 빼놓을수 없는 사람들이 몇몇 있습니다.

중국의 최초 통일 왕조를 세우며 절대황권을 자랑하며 스스로 황제에 오른 시황제라던가

공화정 시대에 정복활동과 정계를 동시에 정복한 로마의 카이사르(시저)라던가

유라시아를 어우르며 넓은 고대세계를 정복하며 과학과 문화의 교류 및 발전에 이바지한 알렉산더라던가

많이들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열거된 사람들은 세계역사학적으로 세계역사의 판도를 뒤흔든 인물들에는 틀림 없습니다.








세계사관련 인물들 질문입니다.

... 문화의 교류 및 발전에 이바지한 알렉산더라던가 많이들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열거된 사람들은 세계역사학적으로 세계역사의 판도를 뒤흔든 인물들에는 틀림 없습니다.

세계사 관련 질문!!

... 이렇게 질문 드리게 됬습니다;; 혹시나 부담스러우시다거나 하시면 답변 안해주셔도... 여름방학 동안 읽기 좋은 책은 인물평전이나 부담이 없을 정도의 세계사 관련 서적을...

지리교육과 세계사 세특

... 학교 세계사 세특으로 중국사~서아시아사의 역사 인물 가상 인터뷰 활동을 해야 하는데 지리 관련 인물 추천... 질문주신 내용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 중국사와...

세계사 관련영화 추천좀.

... 대해 질문 하신 건지 뜻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근 영화 중에 세계사관련된 영화라면 올해 국내... 허구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일단 굵직 굵직한 내용과 배경은...

프랑스,세계사 관련 질문

... 내공 당연히 드립니다 시민혁명은 19세기부터 점차 일어나며 루소 등 계몽주의 학자로 인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18세기 ㅡ 19세기 인물 입니다

세계지리, 세계사 4등급 질문

... - 세계사: - 교과서를 꼼꼼히 읽고, 중요한 사건과 인물을 정리해보세요. - 연표를... - 관련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역사적인 사건을 더욱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계사관련서적에대한 책의 줄거리좀...

아무책이면 됩니다 , 다만 세계사라는틀이있을뿐이구요... 숙제해달라는 질문은 아니구요 , 그냥 줄거리만 좀... 빛났던 인물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중세가 우리에게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