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대해서

고구려대해서

작성일 2008.08.16댓글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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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서 물어보는건데여

추모왕이 고구려 세워잔나요 그때 당시 나라를 세웟을때 땅이 우리나라보다 컷나요

 

이게 진짜 궁금해서

 

빨른답변 부탁좀 ..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과연 추모왕을 건국시조로 한 900년 대제국 고구려의 영토는 어디까지였을까? 또 그 영토를 지도에 그려보면 과연 어떻게 될까? 우리 국민들에게는 무척이나 궁금한 사항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토의 변화가 수시로 있었던 고구려의 영토를 한 장의 지도로 확정지어 그린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900년의 긴 사직에는 광개토태왕 같은 전성기도 있었지만, 동천왕 때와 같이 위나라 관구검의 침략을 받아 많이 위축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당나라 고종이 언급했듯이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토가 마치 개이빨(犬牙) 처럼 서로 얽혀져있어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며,  또 고구려는 직접 통치의 영역도 있었으나, 연방제국으로 상대국을 인정하며 속국으로 삼아 조공을 받는 식으로 운영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  백제,신라,왜를 연방으로 편입한 고구려 대제국

가 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고구려 광개토태왕은 백제 아신왕을 공격해 백년노객이 되겠다는 맹세와 함께 항복을 받는다. 아신왕을 죽이고 백제의 영토를 고구려의 직할령으로 전부 편입할 수도 있었으나, 조공을 받고 속민으로 삼아 백제라는 국가를 따로 인정하면서 고구려 연방의 하나로 편입한 것이었다. 신라와 가야도 마찬가지로 연방국으로 편입한다.

그러면 우선 사학계의 바이블인 <삼국사기>로 고구려의 영토를 추정해 보기로 하자.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영토의 단서가 될만한 몇 개 기록은 있으나, 근본적인 지리 비정이 잘못되어 있어 고구려의 영토를 제대로 추정할 수가 없게 되어있다. 그럼 왜 어떤 내용이 <삼국사기>에 있기에 고구려의 영토를 추정하기 힘든 걸까?

반도사관의 빌미를 제공한 삼국사기

일 제는 조선을 영원히 식민지배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인의 민족정신과 얼을 빼기 위해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고, 조선과 중국 전역에 있던 고대사서 20만권을 수거하여 불사르고 수많은 우리의 사서들을 일본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남겨놓은 고대사서로는 달랑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둘 뿐이었다. 왜 2권은 남겨 두었을까?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 제는 조선인들이 위대한 단군조선에 대해 알게 되면 민족정기를 빼기 힘들다고 판단되어, 단군조선을 언급한 고대사서는 전부 없애 버리고는 단군을 신화화해 버린다. <삼국사기>는 말 그대로 삼국시대 사서이기 때문에 단군조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삼국유사>에는 단군이 신화로 처리되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살아남는다. 사서를 전부 없애는 것보다는 “너희들의 사서에도 단군은 신화로 기술되어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리라.  

▲ 위대한  조선의 영역도. 이런 민족을 일개 섬나라가 식민지배하기 위해서는 역사왜곡과 단군의 신화화가 필요했다.

< 삼국유사>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아무래도 <삼국사기>보다 많이 떨어진다. 승려가 저술한 역사서이다보니 아무래도 종교관에 입각한 서술이 많이 있다. 고려 때 신라계 김부식선생이 저술한 <삼국사기>는 상당히 정교하기는 하나 선생의 조상이자 승자인 신라 위주로 기술하다보니 고구려/백제를 많이 폄하시켰고, 사대주의 사관에 의해 저술된 사서라 주체성이 없고, 일제에게 반도사관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제의 분서갱유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일제에 의해 철저히 이용되는 것이다.

반 도사관의 빌미란 <37권 잡지 지리>에서 우리 고대 강역에서 중요한 위치인 패수(浿水)의 위치를 대동강으로 분명하게 비정하면서, 고구려의 평양성은 서경(西京)인 것 같다고 적었다. 그 근거로 <당서>의 기록을 인용했다. 이 문구는 나중에 일제에게 악용되어 망국의 반도사관을 고착화시켜 아직까지 정설로 이어지고 있다.

즉 <삼국사기>에 의해 패수가 현 대동강으로 비정되는 바람에 낙랑군 등 한사군의 위치가 전부 현 북한 지역이 되고, 현 평양이 고구려의 평양성으로 왜곡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고대사의 강역이 실제보다 엄청 축소되어 버린다. 일제는 <삼국사기>의 이 점을 이용하기 위해 분서갱유에도 없애버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삼국사기>를 직접 조작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  현 국사교과서의 삼국의 영토

필자는 김부식이 인용한 <당서>를 열심히 읽어 보았으나 패수가 대동강이라는 확정적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패강의 어귀를 지나면 신라의 서북이 된다.”또는 “패강을 지나 평양에 도착한다.”는 문구가 있다. 아무리 사대주의에 물들어있는 유학자라 하더라도 <삼국사기>의 집필진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인데 이런 글귀만 보고 패수를 대동강으로 단정지울 수는 없다. 패수란 중국 사서에서도 숱하게 언급되는 지명이기 때문이다. 이는 뭔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결 국 <삼국사기>로 추정할 수 있는 고구려의 영역은 현 국사책에 나와 있는 고구려 영역과 별 차이가 없다. 즉 현재의 북한 지역과 만주 땅만을 그 영역으로 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영역은 고려와 근세조선의 영역일 뿐, 고구려와 대진국의 영역은 아니라고 잘라 말하고 싶다. 그럼 실질적인 고구려의 강역은 어떠했을까?

고구려의 강역을 전성기와 평상기와 쇠퇴기로 나누어 지도에 그린다는 것은 힘들고, 전성기에 동서남북으로 어디까지 최대로 진출했느냐를 알아보는 것으로 고구려의 영역을 말하기로 하겠다.

동쪽으로는 어디까지?

고 구려가 중원의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동쪽으로는 당연히 한반도 전체와 만주 일대가 고구려의 영역이라 하겠다. 그러나 한반도 남부에는 백제 신라가 있어 고구려의 영역이 아니라고 국사책에서 배운 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 러나 우리 역사의 진실은 국사책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백제와 신라는 원래 대륙에 있었던 나라들이며, 대륙에도 있으면서 한반도에도 들어온 것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5-6세기 경으로 볼 수 있다. (이 점은 나중에 따로 자세히 언급하기로 한다.) 나중에 신라는 고구려 말기에 만주 지역까지 진출한다. 그래서 고구려 평양성(요양) 동쪽에 신라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이지, 평양성이 대동강 평양이 아닌 것이다.

그럼 동쪽인 현 일본 열도는 어떠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광개토태왕 비가 훼손되고 조작되기 전에 <한단고기>를 엮은 계연수선생이 직접 비문을 보고 글로 적어 놓은 <비문징실>이 전하는데 거기에는 왜 정벌 기사가 나온다. 그리고 <한단고기>에도 광개토태왕이 왜를 정벌한 기사가 나오는데 여기서의 왜는 현 일본 열도라기보다는 열도로 옮겨오기 전 중국 남쪽대륙과 대륙에서 가까운 큰 섬으로 추정한다.

그 리고 <한단고기>에 의하면 고주몽과 같이 동부여를 떠나 길을 떠났던 사람은 오이 마리 협보였는데, 이들 중에 협보는 나중에 다파라국(왜)의 시조가 된다. 이 다파라국은 뒤에 임나를 병합하여 연정을 세워 이를 통치케 했는데, 3국은 바다에 있고 7국은 뭍에 있었고 일찍이 고구려와 친교를 맺고 늘 통제를 받았다 한다. 다파라국(왜)도 역시 고구려 대제국의 일개 연방이었던 것이다.

왜에서 처음 국가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백제계 응신이 세운 야마토왜(大和倭)이다. 그 이전의 왜는 실질적인 국가로 보기가 어렵다. (응신은 백제 12대 계왕의 손자로 왜로 건너가 백제 아신왕과 손잡고 광개토태왕과 일전을 벌이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북쪽으로는 어디까지?

<삼국사기> 지리지에서는 중국의 사서 <통전>을 인용하여 “주몽이 북부여에서 동남쪽으로 길을 떠나 홀승골성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국호를 구려라 하고 성을 고씨라 하였다.”그러므로 홀승골성이나 졸본은 같은 것 같다고 기록하였다.

몽고 과학원 수미야바타르 박사의 설에 의하면, 주몽의 설화 배경은 몽고의 부이르호나 할힌골강인 것으로 비정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북부여 건국 장소로 언급되는 홀승골과 <위서>에 나오는 홀승골은 몽고의 할힌골 강이며, 졸본의 비류수(沸流水)는 부이르호수로 비정하고, 북부여가 몽고에서 건국되었다는 사실은 광개토태왕 비문에서도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바이칼호 연변에 사는 부리아트인들이 스스로 코리아(Korea)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학설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설이기도 하다.

전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교수는 그의 저서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에서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천문기록을 컴퓨터로 계산하여 발표했는데 거기에는 놀라운 사실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일식기록으로서, 일식은 월식과는 달리 지구 전 지역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과학상식으로 알고 있는 사항이다. 천문을 관측하던 곳은 원래 그 나라의 수도와 가까운 법이다.

고구려의 일식기록을 분석해보니 최적관측지가 바이칼호 우측 몽고지역이며, 백제는 북경지역, A.D 201년 전의 상대신라는 양자강 중류, 787년 이후의 하대 신라는 한반도 남부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최적관측지란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 위치이므로 부분일식까지 보는 지역은 그 주위로 많이 넓어진다.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으로는 개기일식인지 부분일식인지 구별이 안된다.

▲  전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교수의 저서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에서 나오는 삼국의 일식기록도
  
참고로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는 일식기록을 분석해보니 628년-709년 사이에는 동지나 해상 즉 대만 필리핀 해남도와 대륙의 남부가 최적관측지였다. 1189년 이후에야 비로소 현 일본열도가 최적관측지로 되고 있다.

따 라서 고구려의 핵심강역과 수도는 원래 우리 민족의 고향인 바이칼호 우측을 중심으로 위로는 시베리아까지 그리고 아래로는 현 내몽고지방이나 하북성 북쪽(북경 주변) 어딘가에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고구려의 수도가 현 대동강 평양이 아니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례라 하겠다.

우리 민족의 문명이라 하는 홍산문명의 발견지는 내몽고 적봉시 근처이다. 또 광개토태왕 비문에 보면 내몽고의 염수라는 곳을 정벌한 것으로 되어있어 이 사실의 신빙성을 더해주며, 게다가 1976년 북한 덕흥리에서 발견된 유주자사 진(鎭)의 무덤에서 발견된 벽화는 이러한 사실을 확정시키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  1976년 북한 덕흥리에서 발견된 유주자사 진의 무덤 안의 벽화. 주변 13태수가 진에게 하례를 올리고 있다.  

무 덤의 주인공 진은 고구려 소수림왕/고국양왕/광개토태왕 때의 인물로 유주자사(유주는 현 북경지방으로 유주자사는 우리로 치면 경기도지사)를 지냈는데, 진에게 주변 13 지역의 태수가 하례를 올리는 장면이 벽화로 남아있는데, 13지역은 현 하북성 전 지역과 산서성과 산동성의 일부 지역까지로 이는 광개토태왕 시절 유주(북경)가 고구려의 핵심강역 임을 강력히 입증하는 자료라 하겠다.

▲  덕흥리 고분의 벽화의 13태수의 지역을 지도로 표시했다. 하북성은 물론 산서성과 산동성 일부 지역도 포함된다.

고 구려의 핵심강역에서 북쪽 영토는 어디까지였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바이칼호 북쪽인 북시베리아나 북극 쪽으로 올라가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기후 관계로 동토인 북시베리아를 힘들여 굳이 정벌할 이유는 없지 않았나 싶다. 당연히 바이칼호 북쪽대신 따뜻하고 물자 많은 남쪽으로 진출하지 않았나 싶다.

고구려의 남쪽과 서쪽까지의 전체 강역을 굳이 논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야기한 핵심강역만 보더라도 현 국사교과서는 엄청난 왜곡이 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고구려는 단군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의 맥을 잇는 정통성 있는 적장자 국가이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영역은 고조선의 영역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현 국사교과서는 이러한 고구려를 만주 지방에 가두어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 박노자 같은 국적불명의 강아지가 여기저기서 고구려의 진실을 왜곡하며 함부로 멍멍 짓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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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주몽의 건국 이야기가 맞다고 치면 부여에서 도망쳐나온 사람이 추종자 몇 명 이끌고 세운 나라가 그렇게 컸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고구려의 초기 영토는 몇 가지 뚜렷한 한계에 의해 제한됩니다.

 

1. 낙랑군의 북쪽 경계보다 남진할 수 없다. 당시에는 낙랑군이 엄존했다. 낙랑군의 치소는 평양이다.

 

2. 요동군의 동쪽 경계보다 서진할 수 없다. 요동성의 치소는 요양이다.

 

3. 제2 현도성(대략 오늘날의 신빈) 보다 서진할 수 없다.  

 

4. 옥저 경계보다 동진할 수 없다. 옥저는 오늘날의 함남~함북 지방이다.

 

5. 읍루 경계보다 동진할 수 없다. 대략 백두산 동쪽 지방은 읍루이다.

 

6. 부여의 남쪽 경계보다 북진할수 없다. 부여의 중심지는 오늘날의 길림 지역이다.

 

7.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은 고구려의 초기 영역을 두고 "둘레 2천리(方二千里)" 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대충 그려보면 아래 지도에서, 가운데의 파란 부분이 고구려의 초기 영토입니다.

 


(지도 제작: 부흥카페 석 님)

 

 

 


뭐 그건 그렇고, 바로 위 답변글에 대한 코멘트만 좀 하면,

 

 

(1) 일제의 역사서 20만권 분서설은 날조입니다. (참고: http://munbba.egloos.com/356187) 다 불태우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 남겼다는 것 역시 새빨간 거짓말.

 

 

(2) 전근대시대의 사서에는 낙랑군 위치가 모두 평양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 만 그렇다는 주장은 역사에 아무 지식이 없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말입니다. (예시: http://shaw.egloos.com/1791930)

 

 

(3) <<구당서>> 와 <<신당서>> 에는 장안에서 고구려의 수도 평양에 이르는 거리가 기재되어 있으며, 이는 거의 정확히 오늘날의 평양에 맞아떨어집니다. 즉, 두 당서에 나오는 패수는 대동강이 됩니다. (참고: http://katnani.egloos.com/1170428)

 

사실 이런 점을 떠나, 고구려시대 패수의 위치를 고증하는데 사용되는 기본 사료는 <<수경주>> 입니다. (참고: 지식in링크)

 

 

(4) <<환단고기>> 는 1970년대에 만들어진 위서(僞書)로, 사료상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참고: 지식in링크)

 

 

(5) 박창범의 일식 연구는 "틀린 연구" 로, 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참고: http://katnani.egloos.com/489964)

 

링크에는 나오지 않지만, 박창범 연구에서 썼던 방법대로 "대한민국의 위치" 를 계산해 보면 북태평양 한 가운데가 나옵니다. 그야말로 쓰레기 연구.

 

 

(6) 바이칼 인근 주민은 스스로 "코리아" 라고 부르지도 않으며, 주몽이 몽고에서 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는 수미야바타르 혼자서 단순히 지명 발음 유사성만을 근거로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 http://shaw.egloos.com/1735644)

 

졸본은 국사학계에서 오늘날의 환인으로 비정하고 있으며, 초기 도성은 오녀산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7) 염수가 내몽고 어딘가의 강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 강은 서요하 근처의 어느 지류일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참고: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 염수(鹽水)는 소요수(小遼水)로 비정하는 설(朴時亨), 태자하(太子河) 상류로 보는 설(王健群), 요하 상류 시라무렝하 유역에 있는 염호(鹽湖)인 광제호(廣濟湖) 일대로 비정하는 설(徐榮洙) 등이 있다. 『삼국사기』에 광개토왕 원년에 ‘北伐契丹’하였다고 했고, 그에 앞서 소수림왕 8년에 ‘契丹犯北邊’이라 하였다. 모두 그 방향이 북쪽이다. 이를 볼 때 개원(開原)·창도(昌圖) 방면의 요하(遼河) 상류 쪽으로 비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겨진다.)

 

(8) "홍산문화는 한민족의 문화" 라고 볼 수 없습니다. 자세한 것은 링크 참조. (참고: (링크1)홍산문화, (링크2)요서의 청동기문화)

 

 

(9) 유주자사 진 묘는 고구려가 유주를 지배했다는 증거로 볼 수 없습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망명한 중국인으로, 망명하기 전의 직책이 "유주자사" 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 지식in링크 <--두번째 제 답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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쬐끄매요

6학년1학기고구려대해서,,,

... 졸업하신 선배들께서 잘아시겠지만,,, 내일 고구려대해서 발표해야돼요ㅜㅠ 최대한 빨리 해주세요 쫌 길게 해주세요.... 중요한것만;;ㅎ0ㅎ 저..그건 1. 고구려의 역사 당시...

고구려대해서

궁금해서 물어보는건데여 추모왕이 고구려 세워잔나요 그때 당시 나라를 세웟을때 땅이... ▲ 백제,신라,왜를 연방으로 편입한 고구려 대제국 가 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고구려...

죄송하지만 고구려대해서 간단하게...

죄송해요저기 고구려 대해서 좀가르처 주세요.... 이양이면 간단하게요!!! 빨리요 또 이글보시면 답변 꼭 써줘여!!!! 빠르게!!!!! 안녕하세요 백제의 전성기를 이룩하신분들이...

고구려대 백제대 신라대

... 못해서 한번 더 준비할까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친구에게 동국대학교 듀이카[구.... 선택해서 입학 한 서울 상위권 대학 재학생이랍니다. 쪽지 주시면 제가 어떻게 공부했고...

고구려대학교 정시

... 못해서 고구려대도 간당간당 해요 제가 10월 모의고사 국수영탐(물리1,지구과학1)99888 찍었는데 고구려대학교 갈 수 있을까요? 매일 밤마다 꿈에서 고구려대 합격자 조회를...

고구려대...

... 제가 고1 때 지각 18번 정도 해서 출결이 안 좋아요.. 고구려대학교 출결 안 좋아도 입학 가능한가요? 그리고 제가 내성적인데.. 고구려대학교에 학생수 적은편이죠?...

고구려대에서 고려대

고구려대학교에서 668년만 버티면 고려대학교로 편입 가능한가요?? 네 3수해서 열심히 하시면 됩니다

홍대는 왜 홍대인가요

홍익대 줄여서 왜 홍대인가요ㅠㅠ 친구들이 자꾸 서울대는 그럼 서대고 하버드는 하드 냐고 해서ㅠㅠ 궁금합니다.. +고구려대는 고려대냐고도 하네요.. 진짜 근데 홍익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