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재탐방 ㅇ_ ㅇ;?(감사내공)

과학문화재탐방 ㅇ_ ㅇ;?(감사내공)

작성일 2005.12.13댓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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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 사회 보고서.. 래는데요 +ㅁ+

 

         침성단. 성덕대왕신종(에밀래종). 석빙고. 팔만대장경판. 금속활자. 앙부일구. 자격루

      

         측우기. 선추와 휴대용해시계. 신기전. 거중기. 해인사 장경판전.

 

         중에서.. 몇가지라도 괜찮으니 좀 알려주세요 ㅇ_ ㅇ; 여러가지 .. 자세하게요

 

         하지만 프린터가 없어서 길게는 안되구요.. 간단하게 요약해서 짧게 부탁드려요

 

        내공은 감사내공 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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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부일구지정번호 : 보물 제845호
지정연도 : 1985년 8월 9일
소장 : 궁중유물전시관
소재지 : 서울 중구 정동 5-1
1437년(세종 19) 처음으로 만들어져, 혜정교와 종묘 남가에 각각 석대를 쌓아 그 위에 설치하여 한국 최초의 공중시계 역할을 하다가 임진왜란 때 유실되어 없어지고, 2∼3세기 후에 만들어진 2개의 앙부일구가 남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혼천의 지정번호는 국보 230호이며, 문화재명 혼천시계, 지정일은 1985.03.03이다 소재지는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1가 1 고려대학교박물관이며, 재료, 재질은 금속이다.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여 천문시계의 구실을 하였던 기구.
선기옥형·혼의혼의기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의 우주관이던 혼천설에 기초를 두어 BC 2세기경 중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확실한 자료가 없어 추론에 불과하나, 삼국시대 후기에서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만들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한국 최대의 종. 국보 제29호. 높이 3.33 m, 입지름 2.27 m, 두께 2.4 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에밀레종 또는 봉덕사(奉德寺)에 달았기 때문에 봉덕사종이라고 도 한다. 종명(鐘銘)에 의하면 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이 그의 아버지 33대 성덕왕의 명복 을 빌기 위하여 큰 종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 혜공왕(惠 恭王)이 뒤를 이어 771년(혜공왕 7)에 구리 12만 근(72 t)을 들여 완성하고 성덕대왕신종이라 불렀다고 한다. 원래 봉덕사에 걸었던 것을 1460년(세조 6) 영묘사(靈妙寺)에 옮겨 걸었 는데, 홍수로 절이 떠내려가고 종만 남았으므로 현 봉황대(鳳凰臺) 옆에 종각을 짓고 보존하다가 1915년 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 종 모양은 입 부분에 당초무늬로 된 띠가 있으며, 당초 무늬 사이에 8개의 큼직한 연꽃무늬를 일정한 간격으로 둘렀다. 종 위에는 웅건한 모습의 용(龍)이 음관(音管)을 감고 있다. 몸체에는 당초무늬를 두른 견대(肩帶)가 있고 그 아래에 4개의 유곽(乳廓) 안에 각각 9개씩 모두 36개의 연꽃을 넣었으며, 그와 대칭으로 보상화 무늬와 연꽃으로 된 당좌(幢座)가 있다. 비천상(飛天像)은 양각된 종명을 사이에 두고 2구씩 상대한 4구가 연화좌(蓮花座) 위에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공양상(供養像)이다. 그 주위로 보상화(寶相華)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비천상 사이의 2개처에 이 종의 유래와 종을 만들 때 참가한 사람 및 글쓴이의 이름이 적힌 종명이 있어 신라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 가 된다.

 

자격루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신흥국가로서 기세가 강하였고 마침 세종을 지도자로 하여 새로운 문화부흥 운동이 활발한 가운데 각종 천문의기(天文儀器)의 제작, 역법(歷法)의 확립, 천문형상의 관측 등에 획기적 발전을 이뤘다. 동양 고대의 과학 기술을 망라하고 여기에 아라비아의 앞선 기술을 망라하고 여기에 아라비아의 앞선 과학을 수용하면서 당시로서는 세계의 첨단을 달리는 과학문화를 창출해 내기에 이르렀다.

우리 학계에서는 전통적으로 이것을 조선 왕조 초기의 중요한 문화업적의 하나로 으뜸으로 꼽고 있다. 국사 교과서 와 모든 개설서에서는 간의(簡儀), 자격루(自擊漏) 및 측우기(惻雨器)로 대표되는 세종대의 천문연구 사업을 꼭 다루고 있다. 이것들은 우리가 자랑스런 문화 유산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과학적 우수성과 창조성을 대표하는 대명사가 되어왔다.

일찍이 러훠스 교수(Carl W.Rufus, 1915∼17년 사이에 연희전문 재직)가 자격루를 '인형시계(puppet clock)' 로 서방에 소개한 이래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연구 돼 왔다.
한국과학기술사를 연구해온 전상운, 박성래, 유경로 교수님을 비롯하여 영국 캠브릿지 대학의 저명한 중국과학사가인 니덤(joseh Needham)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자격루에 관한 많은 자료를 발굴하고 정리하였다.

본 필자는 수년 전부터 자동제어공학의 기법을 적용하여 자격루의 원리를 밝혀 내고 구조를 복원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 사회 각분야에서 이것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어 멀지 않아 자격루는 그 옛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자격루의 뿌리와 그것의 독창성을 밝혀 과학기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정립하는 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이다.

자격루는 원대(元代)의 곽수경(郭守經)이 만들었다는 대명전등루(大明殿燈漏)와 순제(順啼)[주 :원의 마지막 화제 (1320∼70)로서 시계 기술사였음]의 궁중시계(宮 )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13세기 아라비아[현재 모로코의 페스(Fez)]의 알자자리(ai-jazai)가 만든 자동 인형시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중국이나 아라비아 시계를 모방한 것이 아니며 [주:명(明)의 건국과 함께 원대의 시계는 모두 파괴되었다] 세종대왕과 장영실을 비롯한 과학기술자들의 독창적인 발명품이다. 오늘날 우리는 일찌기 겪어 보지 못했던 경제성장과 첨단기술, 국제화의 개방, 민족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가능성이 충만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와 같은 혼란과 거센 물결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실현하여 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길이 무엇보다도 민족적 자아의 확립과 새로운 민족문화의 창조에 있다. 민족문화의 창조적 발전을 과학정신의 관점에서 오늘날을 있게 한 조상의 과학기술 유산을 학문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정리하고. 연구하여 올바른 모습과 진정한 가치를 밝혀내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여러분의 충심어린 권고가 있어 미천하지만은 그 동안의 결과를 본지에 몇 번 나눠 싣기로 하였다. 먼저 본 호에서는 자격루의 제작배경을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다음 호에서는 필자와 영국 니덤 박사루의 제작배경을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다음 호에서는 필자와 영국 니덤 박사의 최근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자격루의 우너리와 구조를 살펴 보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자격루의 뿌리를 찾는 일의 하나로 아라비아와 중국의 중세 물시계들을 자격루와 비교해 보기로 하겠다. 본문의 곳곳에는 여러 가지 기록의 원문을 인용하고 이해가 어려운 것은 따로 주를 달아 읽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자격궁루에서 자격루가

세종대왕은 이미쓰고 있는 물시계인 경점지기(更鮎之器) [주 : 세종 6∼7년에 장영실 등이 만든 밤시간을 알리는 시계]가 정밀하지 못하고 이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시각을 알리는 데 착오가 있으면 중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항상 염려하던 끝에 행사직(行司直) [주 : 사직은 조선조때 오위(五衛)의 정5품 벼슬] 장영실(裝英實)에게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시각에 따라 시계'를 만들 것을 명하였다.

이에 따라 '시간을 맡을 나무 사람을 만들어 물시계를 지키는 관리의 노고를 대신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자격루이다. 이 시계의 시간을 천체를 관측하여 얻은 시간과 비교해 보면 털끝 만큼도 틀리지 않았다고 한다. 자격루는 경복궁의 경희루 남쪽에 세운 보루각(報漏閣)이라는 전각에 설치하여 운영했기 때문에 '보루각루(報漏閣漏)'라고도 불렀으며, 한편 임금이 거처하는 대궐에 있다 하여 '금루(禁漏)라고도 불렀다. 자격루란 명칭은 세종께서 자격궁루(自擊宮漏,스스로 치는 궁정시계라는 뜻)라 부른 데서 연유했다. [주 : 세종실록 권 61,55L면, 세종 15년 9월 16일 을미] 이것은 나무사람이 종, 북, 징을 쳐서 각각 시(時), 경(更), 점(鮎)을 알리고 시를 알리는 팻말을 들고 시의 경과를 알려주는 자동보시장치가 붙은 시계였다. 이 시계가 순제의 '궁루'보다 만듦새가 훨씬 정교하다고 확신하여 장영실을 호군(護軍)[주:오위의 정 4품]으로 승진시켰다. 세종대왕은 간의대(簡儀 )[주 : 경복궁의 후원에 설치한 천문대]의 간의(簡儀)를 써서 특정한 천문학적 시간을 참고하여 자격루의 시각을 바로 잡아 표준으로 삼고 세종 16년인 1434년 7월 1일(병자)부터 표준시간제를 실시하였다. 궁궐과 도성에서의 정사(政事)와 일상생활은 모두 이 시계가 알려주는 시각에 따랐다. 아울러 이 시계의 시각을 분(分)단위까지 잘게 쪼개어 정확성을 기하고 천문역구에도 활용했다.

우리는 표준시간 실시 역사는 이처럼 거슬러 올라간다. 자격루의 제작 동기, 원리와 구조는 당시 집현전(集賢殿)의 직전(直殿) [주 : 정 4품벼슬]이었던 김빈(金 )이 지은 '보루각명병서' (報漏閣名幷序)와 직제학(直堤學)[주 : 종3품]이었던 김돈(金墩)이 지은 '보루각기(報漏閣記)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시계는 임진왜란중(1592년) 경복궁이 불탈 때 소실되었다. 세종 자격루를 본받아 중종 31년(1536년)에 만든 신자격루는 창경궁에서 조선 말기까지 쓰였으며 유물은 1938년에 현재 보관중인 덕수궁 광명문안으로 옮겨 왔으며 1985년 8월 3일 국보 229호로 지정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 유물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만원권 지폐의 도안으로 올라 있으며 우리의 과학 문화재이자 세계적으로도 몇 개 남지 않은 귀중한 유물이다.

 

측우기
1.조선시대 세종시절
2.비가 내린 양을 재서 농사의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 진것
3.비가 내린 양을 보고 물을 잘 조절했음
4.물을 받아서 잰다는 슬기로움이 돋보임여기까지..

한마디로 측우기는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하여 쓰인 기구입니다.
1441년 세종 23년 8월에 예조가 측우기를 설치할 것을 건의하여, 다음해 5월에는 측우에 관한 제도를 새로 제정하고 측우기를 만들어 서울과 각 도(道)의 군현(郡縣)에 설치하였습니다.
원래 측우기가 쓰이기 이전에는 각 지방의 강우량의 분포를 알아내는 데 매우 불편하였습니다.
즉, 비가 내림으로써 흙속 깊이 몇 치까지 빗물이 스며들었는지를 일일이 조사해 보아야 하는데, 이때 흙에는 마르고 젖음이 같지 않아 강우량을 정확히 알아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측우기는 일정기간 동안 그속에 괸 빗물의 깊이를 측정하여 그 곳의 강우량으로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측우기는 안지름이 주척(周尺)으로 7치(14.7 cm), 높이 약 1.5척의 원통으로 되어 있는데, 비가 올 때 이 원통을 집밖에 세워 두면 빗물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측우기에 괸 물의 깊이는 자[尺]로 측정합니다. 즉, 대(臺)를 관상감에 만들어서 측우기를 대 위에 올려놓고 비를 받도록 합니다. 중앙에는 관상감에, 지방에는 각 도의 감영(監營)에 설치하였습니다.

처음에 철로 만들었으나, 뒤에 구리로 만들어 쓰기도 하였고, 지방에서는 자기(瓷器) ·와기(瓦器) 등을 쓰기도 했습니다. 주척은 나무 또는 대나무로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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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하루 되세여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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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첨성대
    ① 동양에서 가장 오래 된 천문대로 신라 선덕 여왕 때에 세워졌습니다.
    ② 하늘의 변화를 관측하고, 별자리를 살피기 위해 쌓았습니다.
    ③ 모습 : 도자기 모양이며, 바깥 벽면은 성벽을 떠올리게 하는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④ 아름다운 모습과 견고한 축조 기술로 조상들의 멋과 슬기를 알 수 있습니다.

▲ 첨성대

(2) 성덕 대왕 신종
    ① 오늘날 남아 있는 고대의 범종으로는 가장 큰 것으로, 종의 울림이 크고 은은하며 맑고,
       울림이 오래 갑니다.
    ② 주조 기술도 매우 뛰어나 범종으로서 세계 최고의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 고려 시대 주요 과학 문화재

(1) 팔만대장경판
    ① 부처님의 가르침을 목판에 새긴 것입니다.
    ② 현존하는 대장경판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완벽한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③ 세계 문화 유산에 동록되어 있습니다.


▲ 팔만대장경판

(2) 장경판전
    ①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건물로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② 습기 조절 : 땅에 숯과 횟가루, 찰흙 등을 넣어 다져서 자동적으로 습기를 조절할 수 있도
       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③ 통풍 : 통풍이 잘 되도록 과학적으로 창문이 만들어졌습니다.


▲ 장경판전 창문

(3) 금속 활자
    ①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 발명으로 짧은 시간에 많은 책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② 여러 가지 과학 기술이 만들어 낸 종합 예술품으로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 주는
       전통 공예 기술입니다.


▲ 금속 활자

3. 조선 시대 주요 과학 문화재

(1) 앙부일구(오목 해시계)
    ① 세종 대왕 때 만든 것으로, 24절기의 변화도 알 수 있습니다.
    ② 북극을 향해 비스듬하게 세워 놓은 시침의 그림자가 닿은 선을 보고 시각을 읽습니다.
    ③ 오목한 해시계 안쪽에 그려진 가로선과 세로선은 각각 절기와 시간을 나타냅니다.


▲ 앙부일구

(2) 자격루(물시계)
    ① 세종 대왕 때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든 물시계입니다.
    ② 경점지기와는 달리 자동으로 시각을 알려 주는 자동 시계입니다.


▲ 자격루

(3) 선추와 휴대용 해시계
    ① 선추 : 부채의 고리나 자루에 달던 장식품입니다.
    ② 휴대용 해시계 : 선추에 넣고 다니던 휴대용 해시계에는 방향을 맞출 수 있도록 나침반이
       붙어 있습니다.
    ③ 선추와 휴대용 해시계를 통해 우리 조상들이 과학적이면서도 멋스로운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휴대용 해시계

(4) 신기전 : 고려 말 최무선이 만든 ‘주화’라는 무기를 개량하여 만든 로켓입니다.
(5) 거중기 : 정약용이 서양의 기술과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만든 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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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계의 모양이 하늘을 보는 솥모양과 비슷하며..
해 그림자로 시간을 본다하여 "앙부일구"라고 불립니다.


최초만들어진시기: 1434년(세종 16) 처음으로 만들어짐
2) 양부일구를 읽는법(간단하게):
북극을 향해 비스듬히 시침을 세워 놓고

시침의 그림자의 길이에 따라 시각을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거의 원에 가까운 태양의 운동을 왜곡 없이 읽어낼 수 있는 방법을 만든 것이다. 세종대의 학자들은 평면을 파서 오목한 구형으로 만들고 그림자를 만드는 막대의 축을 북극에 일치시키는 방식의 해시계를 만들었다. 이렇게 되면 지구 주위를 도는 태양의 위치를 거의 완전하게 재현할 수 있다. 앙부일구의 내부에 설치된 영침(影針, 그림자를 만드는 침)의 방향을 지축과 평행한 정북극 방향을 맞춘다. 영침의 끝은 구의 중심이 된다. 그리고 앙부일구의 평면은 그 지점의 수평면이 된다. 여기에서 해시계의 정확도를 높이는데 필수적인 것은 정북극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세종 당시의 유수한 천문학자들이 서울을 기준으로 하는 정북극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냈고 이를 기준으로 앙부일구 내부의 눈금선이 정확히 매겨질 수 있었다.





3) 양부일구에 12가지 동물을 그려넣은 까닭 : 12지의 동물을 그려 넣어 쉽게 시간을 알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합니다.
그 후, 앙부일구는 궁궐, 관공서와 더불어 양반네의 집까지 널리 사용됐다고 합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9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 최대의 종으로, 에밀레종 또는 봉덕사()에 달았기 때문에 봉덕사종이라고도 한다.

종명()에 의하면 신라 35대 경덕왕()이 그의 아버지 33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큰 종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 혜공왕()이 뒤를 이어 771년(혜공왕 7)에 구리 12만 근(27t)을 들여 완성하고 성덕대왕신종이라 불렀다고 한다. 원래 봉덕사에 걸었던 것을 1460년(세조 6) 영묘사()에 옮겨 걸었는데, 홍수로 절이 떠내려가고 종만 남았으므로 현 봉황대() 옆에 종각을 짓고 보존하다가 1915년 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

종 모양은 입 부분에 당초문으로 된 띠가 있으며, 당초문 사이에 8개의 큼직한 연화무늬를 일정한 간격으로 둘렀다. 종 위에는 웅건한 모습의 용()이 음관()을 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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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재 부탁드립니다 (내공50)...

... 정말 감사하고요,, ㅋ 답변 아가리 지식 배로... ㅋ내공 50 드릴꼐요~ 문화재란,, 우리 나라의 역사를 자세히... 그 문화재를 어떤 방식 어떤 과학기술로 만들었는지 잘 모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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