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답변 드리겠습니다.
발해가 멸망한 후 거란에 의해 세워졌던 동단국(東丹國)이 927년 서쪽의 요양(遼陽)으로 옮겨가고, 그곳 홀한성에 발해 대씨 왕실의 진정한 부흥왕조가 세워졌는데, 이것을 이전의 발해와 구별하여 '후발해(後渤海)'라고 한다. 그러나 대씨정권은 곧 실질적 권력을 올야(兀惹) 출신의 오씨(烏氏)에게 빼앗겼다. 후발해는 975년에는 발해 유민과 함게 발해의 옛 부여부를 탈환하려는 군사작전을 펴기도 하였고, 후당에 7차례나 사신을 파견하기도 하였고,11세기초에 붕괴되었다.
한편 발해의 서경압록부가 있던 압록강 일대를 중심으로 한 발해 유민들의 부흥운동은 열씨(烈氏)의 정안국(定安國) 건국으로 이루어졌다. 정안국은 935년에서 970년간에 건국되어,970년에는 국왕 烈萬華가 송나라에 사신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고려 경종 4년(979)에 고려에 내투해 오는 수만의 발해인들은 대체로 정안국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발해의 또다른 부흥운동은 1029년 대연림(大延琳)이 일으킨 이른바 흥료국(興遼國)이다. 대연림은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의 大將軍으로서 동경유수 등을 살해하고 이곳에서 즉위하여 나라 이름을 흥요국이라 하고 연호를 天慶이라 하였다. 대연림은 건국후 거란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남쪽의 고려에 무려 5차례나 사신을 파견하여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다음해인 1030년 거란에 사로잡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거란은 발해부흥운동의 싹을 없애고 그들을 이간시키기 위하여 발해유민들을 강제로 거란의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로 이주시키기도 하였다.흥료국의 실패 후 많은 발해유민들이 다시 고려로 망명하였다.
흥료국 붕괴 후 많은 발해유민들이 떠난 뒤 요양지방을 중심으로 1116년 정월에 발해유민 고영창(高永昌)이 다시 '大渤海國'(혹은 大元)을 세웠다.고영창은 대발해국 황제에 즉위하여 융기(隆基)라는 연호를 사용하고,건국 후 10여일만에 요동의 50여주를 점령하기도 하였으나 얼마 뒤 금나라 군대에 의해 죽음을 맞아,대발해국의 운명도 다하였다.이와같이 발해 부흥운동은 발해 멸망 후 100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