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훔쳐간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을 들어봤어요?”
교사가 질문을 던졌다.
“네” 몇 명 빼고 일제히 대답한다.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이 자기 것이라고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아세요?”
침묵이 흐른다.
“그럼 고구려의 역사가 우리나라 역사라는 증거는 뭐가 있을까요?”
“그냥요” , “국사 책에 나왔으니깐 우리나라 역사죠.” “고구려, 그냥 줘버려요. 공부할 내용 줄어드니깐 좋잖아요"
고구려 관련 한-중 역사논쟁에 대하여 수업을 준비하면서 학생들과 나눈 대화이다. 학생들은 지극히 감정적인 차원에서 고구려 문제를 바라보거나 혹은 관심이 없다.
“고구려족은 중국 동북지방의 소수 민족이며, 고구려는 중국역사의 일부이다."
2003년 6월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광명일보 역사면 전면에 걸쳐 실린 글이다. 더구나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중국변강사지 연구중심'에서는 고구려 뿐만 아니라 고조선, 부여, 발해는 물론 현재의 한국까지 연구하는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추진하고 있다. 동북공정이란 중국 동북지방의 역사와 현황에 관한 대형 학술 과제로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이다. 우리말로 ‘동북 변강(국경지역)의 역사와 그에 따라 파생되는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프로젝트’로 옮길 수 있다. 한마디로 동북공정은 현재의 중국 국경선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겠다는 중국의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 이미 중국은 지난 20년 동안 1,000여 편이 넘는 고구려·발해 관련 논문들을 꾸준히 연구 발표하고 고구려가 중국 변방의 역사였음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중국사회과학원과 동북 3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 연구사업은 2002년부터 200억 위안(우리 돈 3조원)을 집중 투자한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인 것이다.
고구려는 중국의 땅이었을까?
중국이 연구, 개발하고 있는 논리는 아직 정연하게 정리되지 못한 실정이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가 갖는 개략적인 결론은 "고구려는 중원민족의 한 갈래가 그들의 통치질서에 있던 한4군 중 하나인 현도군 안에서 건국되어 중국 군현 내에서 발전한 나라이며 대대로 중원 왕조에 속한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를 다시 세부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의 몇 가지 주장이 드러난다.
첫째, 고구려를 세운 사람들은 중국민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둘째, 고구려의 건국 장소는 중국 영토 내부였으며, 정치적으로 중국의 통치 질서 안에 존재했다.
셋째, 고구려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던 종속국이다.
그리고 위 주장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장수왕의 평양천도 후 고구려 문제, 고구려-수·당 전쟁의 성격, 발해·고려의 고구려 계승도 모두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시각에서 반박하는 상황이다.
고구려사 논쟁에서 우리나라가 내세우는 대응 논리를 살펴보면,
첫째, 우리의 조상은 예맥족이며 만주계와는 구별되는 별개의 민족이라는 것이다. 중국 측의 논리를 보면, 고구려는 기원전 3,000년경에 해당하는 3황5제의 하나인 전욱(고양씨라고도 함)이 요서지방 고양에 수도를 두었다가 이들이 중원으로 이동할 때 일부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고구려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전국시대에 쓰여진 역사책으로 서주시대를 다룬 『일주서』에 보면 기원전 10세기경 서주의 축성 기념식에 '고이'가 참석하였는데 그 고이가 고구려라는 것이며, 특히 한자 ‘高'자의 유사성과 요서지방의 돌무지무덤(적석묘), 고구려의 돌무지 무덤의 일치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기원전 3,000년 전의 전설상의 인물 전욱과 또 같은 시기의 요서지방 돌무지무덤, 기원전 2세기경의 예맥족, 고구려 돌무지무덤을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이며 중국 역사학계에서조차 ‘일주서'는 위서로 판명났다는 점에서 중국의 주장은 아전인수일 뿐이다.
두 번째로 고구려의 건국 장소와 관련하여 중국은 한4군의 하나인 현도군의 영토 안에서 고구려가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현도군은 고구려의 초기국가로 성장 기세에 밀려 기원전 75년에 만주로 쫓겨 갔다. 또한 전한왕조를 무너뜨리고 '신'을 건국한 왕망은 고구려가 신의 명을 듣지 않아 엄우를 보냈다는 기록 등은 오히려 고구려가 중국에 맞설 만큼 강력한 국가였으며 현도군을 통해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은 중국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주고 있다.
세 번째로 조공-책봉과 관련하여 고구려가 중국에 종속된 국가였다는 주장인데, 이는 조공의 실체를 알면 금방 해결될 문제이다. 먼저 중국이 고구려에 주었다는 칭호 '고구려후', '고구려왕', '영동대장군' 등과 북위, 북제 및 남조의 각 나라에 공물을 바쳤다는 것을 그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조공은 초기에 중국 내부의 정치적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점차 국가 사이의 외교관계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고구려 뿐 아니라 백제, 신라, 왜도 똑같은 조공-책봉관계를 받았지만 유독 고구려만 중국왕조의 지방정권이라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 결국 의례적인 조공-책봉이라는 외교 관례를 들어 고구려사를 중국의 지방사로 전락시키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다.
왜, 중국은 고구려를 자신들의 역사로 만들려 하지?
장수왕의 평양 천도 후 고구려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원래 중국 고대의 영토가 한반도 북서부까지 미쳤다는 것을 조작해 역시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사였음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현재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동북공정의 기본 논리에서조차 맞지 않다.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 존재하는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보는 동북공정은 ‘고대의 중국 영토'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취급하는 내부의 논리적 오류부터 손질해야 할 만큼 모순투성이다. 그리고 고구려와 수·당사이의 전쟁은 기존의 중국 정권이 요구한 의례적인 관계를 넘어 복속과 예속을 요구하는 수·당에 대한 고구려의 저항이라는 면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왜 중국은 스스로 논리적 모순과 많은 역사왜곡을 통해서 고구려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드려 할까? 중국의 고구려사 연구는 이미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섰다. 이미 수 백 편의 고구려 관련 논문을 내놓았으며 동북공정으로 더 조직적이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특히 80년대 중국에서 갑자기 고구려 연구에 몰두한 까닭은 1979년 개혁개방과 더불어 중국민족정책을 확립하면서부터였다. 이때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제시하면서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현재의 중국 국경선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정리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중국 내 고구려사 연구의 독보적 존재인 손진기 교수는 이미 이때 '고구려인=한족'이라는 논리를 폈으며,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도 영토확장을 목표로 한 침략전쟁이 아니라 요동의 지방정권(군, 현)을 수복하려는 시도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중국 민족과 영토에 관한 집중적인 논의를 거치게 되는데 논의 중 담기양은 “몇 천 년 동안 역사발전에 따라 자연 형성된 중국 전체가 역사상의 중국이다. 한때 역사상의 중국 범위 이외의 지방을 통제하고 있었다면, 그 지방이 역사상의 중국 범위 안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몇몇 중국 왕조의 판도 안에 있었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하여 역사적으로 중국 주변에 있는 모든 국가는 중국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중국의 판도 안에 들어있다고 주장하여 크게 각광을 받았다. 그 후 동북지방의 고구려와 발해가 큰 관심거리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동북공정에 맞설까?
북한이 1979년 『조선전사』를 편찬하면서 고구려의 대외투쟁을 강조한 것이나 1990년대 한-중 수교 이후 고구려 유적 답사에 나선 수많은 한국사람들이 중국에서 보여준 민족적인 감정 자극, 그리고 2000년 남북관계의 개선과 2001년 한국 국회의 조선족 법적 지위에 대한 특별법 상정, 같은 해 북한이 추진한 '고구려 고분벽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신청하면서 중국은 더욱 긴장하였다. 특히 북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신청 문제는 중국 입장에서 보면 고구려사에 대한 중국의 연고권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하는 결정타였던 것이다. 중국은 발빠르게 움직여 한반도의 통일 후 국경선 설정 문제 등을 고려하여 국가 차원의 대책으로 동북공정을 추진했다.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방해하고 작년에는 중국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 신청을 한 것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고구려사를 연구하는 학자의 숫자가 적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사를 연구하기에는 중국과 북한에 비해 지리적인 한계도 안고 있다. 고구려사를 연구하는 소수의 연구자들마저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데 급급했을 뿐 고구려의 귀속문제, 즉 고구려의 정체성을 연구하는 작업은 등한시 되어 왔다. 궁색한 변명처럼 들리지만 고구려사가 우리나라 역사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당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을 수 없기에 고구려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에 나서야 한다.
먼저, 중국의 고구려사 연구에 대해서부터 알아야 한다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그들의 논리를 명확히 분석하여 역사왜곡과 억지 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할 대응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늦었지만 우리나라도 고구려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 성과를 축적시키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한 역사학자들이 학문적 공조를 바탕으로 고구려사에 대한 공동연구와 공동대응에 나서야 한다. 북한의 고구려사 연구는 정치적인 이유도 포함되어 있지만 현재 남한보다 한발 앞서 있으며 유네스코 문화유산등록의 당사자이다. 이 일에 남북이 함께 협력하여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남북관계 개선 뿐만 아니라 같은 핏줄을 이어받았다는 민족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중국의 역사 왜곡은 일본의 검인정 교과서 왜곡과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이다. 일본이 일부 우익 역사가를 중심으로 벌인 민간차원의 경우라면 중국은 국가가 전면에 나서 주도하는 상황이라 매우 심각한 사태이다. 그리고 고구려사를 잃게 되면, 제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요동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하였다고 되어 있는 고조선도 잃게 되고, 고구려 계승을 자처했지만 민족 구성은 소수의 고구려 유민과 다수의 말갈족이다라고 설명되는 발해도 함께 잃을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나라의 역사가 한반도 안으로 고정되고 역사의 연원도 2000년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역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자만이 미래를 설계한다
국사교과가 수능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전락하고 역사에 대한 강조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들리는 세대가 되어버렸다. 시간은 우리편이 아니다. 중국은 몰라보게 경제규모가 확대되었으며 외교력 강화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발언권도 점차 강력해지고 있다. 이번 한-중 역사논쟁도 중국의 영토패권주의의 단면을 보여준 한 사례에 불과하다. 결국 오늘 우리가 고구려사를 살려내지 못하면 '반만년 유구한 역사', '삼국시대'라는 표현은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고구려를 살려야 한다. 고구려를 살리는 것은 우리 역사를 살리는 것이다.
"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진 뜨거운 흙이여"라는 가사의 노래가 있다. 우리가 다시 우뚝 서 뜨겁게 움켜쥐어야 할 곳, 고구려의 땅이다. 역사를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자만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