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농적 실학사상과 중상적 실학사상은 모두 다 당시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방법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 간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중농적 실학사상이 `우리가 가진 빵을 서로 잘 나누어 먹자`(분배론)는 것이라면
중상적 실학사상은 `우리가 먹을 빵을 늘려가자`(성장론)는 것입니다.
분배에 힘을 기울이면 빈곤의 평등이 될 수가 있고 성장에 힘을 기울이면 빈부의 차이가 커질 수 있습니다.
이렇듯 분배와 성장의 문제는 조화시키기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으며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이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실학자들은 나름대로의 처지에서 문제 해결의 방법을 주장하였으나 그들 대부분이 몰락 남인이거나, 권력을 잡고 있었다 하더라도 낮은 지위의 관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현실 정치에 반영되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권력자들에 의해 무시되어 이론과 주장에 그친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중농학파
이들의 토지제도개혁론은 전통적 이상제도인 정전제를 기반으로 했지만, 과거의 경구를 나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먼저 유교의 원전과 고제를 다시 연구ㆍ해석하여 개혁론의 이론적 당위성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변화와 농업생산력 발전까지 수용하여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탐구했습니다.
유형원의 균전론, 정약용의 여전론 등은 모두 이러한 연구의 산물입니다. 토지개혁을 달성하고 그 성과를 국가체제 전반으로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담당하는 정치세력의 개편과 정치 참여층의 확대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관료제와 과거·교육·행정제도, 나아가 향촌사회 조직까지 새로 구상했으며, 이러한 체제를 기반으로 조세·군사·군현제 등을 합리적으로 개혁하고, 양반층의 특권과 신분차별의 원리에 입각한 각종 폐단을 제거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현실의 문제를 분석하고, 현실에 적합한 새로운 방법론을 추구하는 태도는 철학과 역사학에도 반영되었습니다. 이전처럼 자연세계의 법칙에서 만물에 공통된 원리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사회의 원리를 분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실제적인 것에서 사실을 발견한다는 실사구시를 강조하며, 격물치지와 같은 중세사상의 핵심적인 원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하면서 천문학·의학·수학 등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졌습니다. 이전에는 천시하던 자연개조와 기술개발에 대한 인식도 변했는데, 이 역시 신분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작용했습니다. 중국이 아닌 한국의 현실에서 방법론을 찾는 태도는 한국사 연구와 역사지리 연구에도 적용되어 이 시기 이후로 많은 지리서와 지도가 편찬되었습니다.
중상학파.
중상학파를 북학파라고도 하는데 북학은 청나라에 남아 있는 중국의 선진문물을 배운다는 의미로 북학이라 했습니다.
실학은 조선 후기 특수한 사회적·경제적 상황 속에서 발생한 사상으로서 공리공담이 아닌 실질적인 것, 실제적인 것을 추구하는 학문이며 그것을 통해 현실을 개혁하려는 경세치용의 학문입니다. 나아가 실제 사회에 이용될 수 있는 이용후생의 학문이었습니다.
<서경> 대우모에 수록된 '이용'이란 백성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각종 기계나 운송수단 등을 말하며, '후생'이란 의복이나 식량 등을 풍부하게 하여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대체로 18세기 이후 실학의 흐름은 이익으로 대표되는 경세치용학파와 박지원·박제가·홍대용으로 대표되는 이용후생학파 및 완당 김정희에 이르러 일가를 이룩하게 된 실사구시학파로 대별됩니다.
그러나 이 세 유파가 제각기 학문분야를 달리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념과 방법에 있어서는 모두 당시의 관념적인 주자학의 세계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차원을 지향하여 실용과 실증을 창도했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습니다.
북학파의 개혁 상상은 농업에만 치우친 이상 국가론에서 탈피하여 부국강병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며 개화 사상의 등장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북학파의 사상이 형성된 배경으로는 조선 후기 사회의 상공업 발달과 청나라 문물의 수용, 그리고 서양 문물의 영향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 혁신 등이 부국 강병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북학파 실학자들에게 깨우쳐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