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고대 명검이 없나요?

우리나라에는 고대 명검이 없나요?

작성일 2005.10.10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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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들은 엑스컬리버니.. 무라마사,  쿠사나기의 검 , 칠지도,  청홍검이니..의천검이니.. 여러가지 고대 명검들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 빠른 철기시대를 맞이한 우리나라에서 고대 명검이 없다는건 이해가 안됩니다. 

  혹시 우리나라에는 고대에 있었거나 아니면 현존하고 있는 명검이 없나요?

  그리고 명검은 어떤것을 명검이라고 일컫는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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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검들...

 

1.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劍)


조선시대(朝鮮時代, AD 1392 ~ 1896)에 사인(四寅; 寅年, 寅月, 寅日, 寅時)의 시각에 맞추어 제작한 것으로, 악귀(惡鬼)를 베는(斬) 벽사용(逐邪用)으로 제작되었다. 전체 길이 134.5cm이며, 검의 등대능각(脊部稜角)에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오목새김(陰刻)으로 새겨져 있고, 검자루(劍柄部)에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劍)이라고 새겨져 있다.

2. 삼인검(三寅劍)
사인(四寅) 가운데 하나가 빠진 삼인(三寅) 시각에 제작된 것으로,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劍)과 같은 용도로 제작되었다. 전체 길이 130cm이며, 검의 등대능각(脊部稜角)과 검자루(劍柄部)에 삼인검(三寅劍)이라고 새겨져 있다.

3. 태조(太祖)의 어도(御刀)
태조(太祖)가 직접 사용한 것이라고 전한다. 전체 길이는 146cm이며, 칼의 단면은 마름모꼴이고, 검자루 끝의 마구리장식에는 용의 머리(龍頭)가 조각되어있고 단청(丹靑)을 칠해 놓았다.

4. 패월도(佩月刀)

전체 길이 105cm로서, 의식용(儀式用)이다.

 

용광검(龍光劍) : '단군고기'에 나오는 해모수가 찬 전설의 칼
삼인검(三寅劍) : 호랑이년 호랑이월 호랑이일에 맞추어 만든 칼
본국검(本國劍) : 모양은 쌍수도와 비슷하며 신라때부터 전해온 우리나라의 칼.                속칭 신검 및 신라검이라 하며, 그 무예는 신라의 황창의 소전이
                라고 한다.

등등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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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지도는 백제의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전해졌다고 내려오고 있지만,

현제에는 일본의 국보가 되엇답니다.

위에 분이 사진까지 잘해주셨네요.

 저는 우리나라의 명검 조건을 알려드릴께요 ㅎㅎ

1.검을 꺼냈을경우 어두운 곳에서도 보름달같이 은은한 빛을 내야한다.

2.검을 뺄때의 검명은 너무 시끄러운것은 용렬한 검이며 너무 작은 검은 패기가 없는 검이니 그 중간정도 되어야 한다.

3.차돌을 쳐서 잘라도 흠집이 없어야 한다.

4.피가 묻지 않아야 한다.

5.좋은철은 구한후 100일간 몸을 정결히하여 길한 날을 골라서 만든다.

5.휘어지거나 부러지지 않아야 하며 적당한 탄력이 있어야 한다.

6.사람을 베어도 잘 무디어지지 않으며 낙카로워야 한다.

중국의 사서에는 많은 명검이 나오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한단고기에 실린 부여의 시조인 해모수의 용광검등 손에 꼽을정도로만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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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일본도'를 탄생시킨것도 우리나라니까요.

 

일본의 지금 갑옷이 '가야갑옷'의 시초이고

 

일본도의 형뻘인 '타치'는 백제에서 '환두대도'를 일본에 전해줘서 발전된것이죠.

 

참고로 칠지도는 우리나라칼이라고 해도 맞습니다.

 

일본에 보면 '칠지도'에 대한 만화가 거의없죠. 만화소재로는 딱인데.. 그 이유는

 

칠지도는 백제근초고왕이 일본에게 하사한검으로, '나를 받들라'라는 충성심을 높이게하며

 

백제왕권을 강화하기위해 준 '신검'입니다.

 

백제검 이죠. 정확히는

 

칠지도안의 문장은 '황금'이며 그 뾰족한 불꽃의모양의 검을 만들기위해서는 지금의 철제기술로도

 

상당히 어렵다고하니, 백제 철제기술이 상당히 엄청나다고 할수있겠죠?

 

고구려는 백제철제기술보다 더 앞서갔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어도

 

사인검

 

삼인검

 

본국검

 

용광검

 

이순신장군의 검 2자루

 

연개소문 다섯자루비도.

 

등등 많죠..

 

용광검

 

주몽의 아버지,해모수 즉,천제의아들의 검이다.

항상 이검을 들고다녔으며,전설도 전해진다.

   젊은 해모수는 웅심산에 의거하여 난빈의 제실을 지어 황궁으로 삼고,    머리에는 오우관 (烏羽冠-까마귀 깃털의왕관)을 썼으며, 허리에는 용광검(龍 光劍)을 차고    출동할 때는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정사(政事)를 보니 그 모습은 천신 같았 고 위엄은    천하에 떨쳤다고 한단고기에서 전해진다.

 해모수가 역사적 기록에 등장한 연대는 BC 80년 경으로 철기문화가 본격적으로 급속도로 전파될 때다. 신의 아들이 가지고 내려왔다는 용광검은 일단 철기로 봄이 타탕하다. 신의 아들이 들고온 검의 재질을 놓고 청동이니 철기니 따지는 것도 우습지만 용광검은 초기의 고리 자루 큰칼의 즉, 환두대도와 유사한 재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양날이냐 외날이냐 하는 것인데 검이라 하고 다분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칼이니 양날로 본다. 그리 길지는 않고 80cm 정도 내외로 아주 잘 제련되고 단조되어 칼날에 광채가 휘황하며 곧고 바르다. 칼자루에는 용문양의 장식이 되어 있고 칼자루 끝에는 고리가 있다.

 

본국검

 

신검,혹은 신라검이라고도 전해짐.

신라 화랑 '황창랑'의 검이다. 당시 9세의나이로(더 어렸다는 설이있다.)

백제로 와서 검무를 추었다,그랬더니 백제와는 다른 신라만의 검법에 취해 백성들과

무사,그리고 심지어 황제까지 보러왔다고 하였다.

황창랑은 난세에서 신라를 구하기위해 어린나이에 자객으로 돌변하여,

백제황제의 심장에 칼을 꽂고 자신도 죽었다고하였다.

신라인들은 황창랑의 용기를 가상케여겨,황창랑의 모습을 탈로 만들어,검무를 추었으니

이것이 '본국검법'의 유래이다.

 

 

 

 

 

 

 

 

 

섬광검(김유신검)

 

원래는 보검이었으나,하늘의 힘을 받아.영검 혹은,성검으로 승급한검이다.

보검을 난승(難勝)이라는 도인에게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난세의 비법을 전해주었다 한다. 김유신의 보검 이후를 여기서는 편의상 '성광검(星光劍)'이라 하겠다

건복 29년(진평왕 34년 :  612)에 이웃 나라 적병이 점점 닥쳐오자, 공은 장한 마음을 더욱 불러일으켜 혼자서 보검(寶劍)을 가지고 열박산(咽薄山)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갔다. (중략)이어서 천관(天官)께서 빛을 드리워 보검에 신령을 내려달라 기도하였다. 3일째 되는 밤, 허성(虛星)과 각성(角星) 두 별의 빛 끝이 빛나게 내려오더니 칼이 마치 흔들리는 듯하였다."

―《삼국사기〉김유신 열전 中

 

 

 

 

 

 

용봉문환두대도     

 

용봉문환두대도는 삼국시대에 가야국과 신라국에서 왕들이 소장했던 칼이 라고 한다.
    환두대도 끝부분에 용문양과 봉황문양이 같이 있어서 용봉문환두대도이다.
    용문환두대도는 용문양이 있구요 봉황문환두대도는 봉황이 있다.
    용봉문환두대도는 어디까지나 왕들을 위한것이었다.
    검은 약간 휜 만도형태가 가장 좋겠죠 실용적이고 직선적이면    싸울때 도과 도의 압력으로 그걸 검압 등 때문에    도가 깨지기가 쉽다고 한다. 그래서 곧은 도에서 약간 휜 만도형태로    변형되었다고 전해진다. 용봉문환두대도의 경우 그 만도형태로 넘어가기 전 의 형태이다.
   

 

 

 

 

 

 

 

금동장봉황 환두대도

 

태종무열왕의검이다. 안에는 봉황이 장식되어있으며,이 검에대한 전설도전해진다.

환두대도는 고대에선 최고에 칼로 명성이 높여졌으며,기원은 중국에있고

발전은 삼국(고구려,백제,신라)에있다. 환두대도가 건너가 일본도 로 발전돼었는데,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검의전설이나 등이 전해진다.

몽고족역시 환두대도를 썼던걸로 추정된다

 

 

 

 

 

 

 

 

 

 

 

 용천검

임경업장군이 속리산에서 무술수련을 하던중 연못에살던 용이 칼을 물고나와 바쳤다는 이야기가 있는 전설의검이다.

현재는 일제시대때 도난당해서 그 존재는 일본에 있다.

 

 

 

 

추련검

時呼時來否再來 一生一死都在筵 平生丈夫報國心 三尺秋蓮磨十年 라고 써져있으며,

검명이 의미하는 바는 가을 연꽃의 연대가 직선으로 주욱 자라기 때문에 직검이라는 의미에서 쓴 것이다.

 

 

어니하의비도(費刀)

 

 

연개소문이 들고다니던 5자루의 비도.

5자루를 차고 다니던 고구려인의 대표적예로 연개소문 이라는 호걸장수가 쓰던 칼이다.

'환두대도'의 종류로 추정되는데, 중국경극에는 연개소문이 날아다니며 보배로 나오고 한번 검기를 휘두루면

태풍이 일어나고 설인귀와 부딫치면 폭풍이 일어날정도로 그의 위용은 크게 나타나있다.

연개소문은 죽어서 청룡으로 변하여,불사의 신이되어 세상에 맞설자가 없는 호걸이 되었다고한다.

실제로 연개소문은 5자루를 쓰며 싸웠다고한다.

 

 

칠지도   

 

백제의 왕이 일본후왕에게 하사한 검   1873년 이소노카미 신궁의 大宮司 스가 마사토모(菅政友)가 신궁의 물품 중 에 육차모(六叉?)라 적힌 상자에서 발견한것으로 발견할때    는 물품 품목에 六叉?(여섯가지 갈래의 창)라고 적혀있었으나 나중에 칠지도 (七支刀: 일곱가지의 칼)이라고했습니다      14. 마사무네    일본의 3대 도장인 마사무네가 만든 검의 총칭.
   일본의 가마꾸라(鎌倉) 시대에 오까자끼 마사무네(岡崎定宗)라는 힘세고 칼 잘쓰는 역사(力士)가 있었다.
   그의 신검(神劍)을 존경한 나머지 전통적인 일본도의 이름으로 그의 이름 正 宗(마사무네)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모습은 실로 불꽃과도 같이 생겼다고 기록된다. 실제로 방송에서 칠지도만드는걸 해보았지만 지금 21세기기술로도 하기

힘든 고도의작업이며,글씨에 금색을 박았어야하며,그 날은 엄청나게예리하고, 기술도 일반 철제기술이아니다.

또한 철역시 강철이었다.

 

 

 

 

초치검   

 

천총운검이라고도 불림    금관가야의 김수로왕의 친손자가 일본의 신무천황이라는 설이있는데...
    그 신무천황의 검이 근초고왕의 손에 이르러 초치검(草?劍; 쿠사나기쯔루기) 으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김수로 왕이 신무천황에게 하사한 신검이 초고왕의 검(초치검)으로 이름을 바꿨으니.
   백제에서 하사한게 아니라 금관가야에서 하사한 것이라고 보는게 맞다.
   즉 일본으로 출정온 일본무존(초고왕)이 일본에 기틀을 잡은 신무천황(가야 계)쪽을 정벌하고 얻은 전리품이 아닐까?라는...설이 있다.

 

 

 

 

일휘소탕 혈염산하. 삼척서천 산하동색.
 

이순신장군이 명나라장인에게 받은 도검.칼날과 칼잡이등이 모두 붉게 되어있으며,긁귀가써져있다.

칼의 길이가 매~~~우 긴데,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크다고한다(이순신의 키는 상당히 작은편.)

때문에 이 칼은 전투용이 아닌,지휘용으로 알려져있다. 2자루의 검.    

三尺誓天 山河動色   삼척서천 산하동색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매 산과 물이 떠는도다.”    一揮掃蕩 血染山河   일휘소탕 혈염산하   “한번 휘둘러 쓸어 버리매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아산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는 우리나라 보물 제326호인 충무공 이순신(李舜 臣) 장군의 장검(長劍)에는   각각 위와 같은 문장이 새겨져 있다.

 

 

 

 

사인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12간지 중 호랑이를 뜻하는 인 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만들어진 사인검(四寅劍) 정신은 정의로써 악을 징 벌코져 하는데 있다.
    사인검은 임금이 병마를 지휘하는 장수에게 주었던 검으로 임금의 도장이 새겨져 있으며 명령을    어긴 자는 허락없이 죽일 수 있다.
       사인검 유물 현황    벽사를 목적으로 특정한 날에 제작되는 참사검(斬邪劍)에는 사인검(四寅劍)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삼인검(三寅劍), 사진검(四辰劍), 삼진검(三辰劍) 등이 있다. 따라서 이들 모두 는 참사검으로    분류하는 것이 옳겠으나 현재 전해지는 유물 중에는 삼진검이나 사진검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미 사인검이라는 이름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참사 검 대신    사인검이라는 명칭으로 벽사용 도검을 통칭하고자 한다. 한편, 삼인검은 사 인검을 만들 때    함께 만들어지며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에 제작된 인검(寅劍) 중 에서    인시(寅時)에 만들어진 것을 사인검이라고 하고 그 이외의 시간에 만들어진 것을 삼인검이라고    하는 것이므로 그 의미나 제작 과정은 동일하다.
    현존하는 사인검 유물은 약 30여점 정도로 알려져있는데 원래 사인검 자체 가 주로 궁중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상당수는 경복궁에 소장되었다가 나중에 궁중유물전시 관과 육군박물관 등에    소장되었다. 그밖에 고려대학교 박물관과 종중 및 개인 수집가에게 여러점 이 소장되어있으나    그 실상은 파악되지 않는다.
       현존하는 사인검 유물을 칼자루의 형식에 따라서 나누어 보면 대략 다음의 세가지 종류가 있다.
       - 삼엽환두(三葉環頭) 양식    삼엽환두(三葉環頭) 양식은 칼머리가 삼국시대의 삼엽(三葉) 환두대도(環頭 大刀)와 삼루(三壘)    환두대도(環頭大刀)를 합쳐놓은 듯한 모습이다. 삼엽문은 세잎고리 양식이 라고도 하고 삼루문은    세고리 양식이라고도 하는데 이 둘 모두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걸쳐서 환두대도의 병두에    자주 나타나던 양식이다. 환두 대도와 삼엽환두양식의 사인검간에 계통적인 상관관계는 분명히    확인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조형적인 감각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상관 관 계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병두와 칼자루는 모두 검신과 별도로 주조하여 조립하였으 며 재질은 검신과 같다.
    또한 삼엽환두양식의 사인검에는 검신과는 별도로 주조한 황동제 코등이가 부착되어있는데 이    코등이는 여러겹으로 겹쳐진 연꽃잎의 모양이며 칼날 쪽에 수직으로 뻗어있 다.
       - 여의두(如意頭) 양식    여의두(如意頭) 양식의 사인검은 칼자루 끝에 넓고 평평한 여의두 형태의 병 두가 달려있고    그 가운데에 연잎문양으로 테두리를 장식한 구멍이 있다. 여의(如意)란 원래 당(唐)    현종(玄宗)이 등을 긁는 "효자손"을 두고 여인지의(如人之意)라고 한데서 비 롯되었으나    나중에는 그 자체가 길상(吉祥)의 상징이 되어 상아, 옥, 산호 등 진귀한 재료 로 만들어    집안에 두었으며 불가에서는 승려들이 법문을 할 때 이를 사용하였다. 여의 주(如意珠)나    여의봉(如意棒)이라는 말도 다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여의두문은 그 자체로서    만사의 형통을 의미한다.
    이 여의두 양식의 사인검은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의(五禮儀)》에 그려 진 금장도(金粧刀),    은장도(銀粧刀)와 거의 유사한 모습이며 조선시대의 무인석에서도 이러한 양식의 검을 짚고    서있는 것들이 발견된다. 여의두 양식의 사인검 코등이는 환도의 코등이와 유사한 형태이며    꽃잎 모양의 코등이 위에는 범어 주문이 새겨져있다.
       - 당검(唐劍) 양식    당검 양식의 사인검은 칼의 전체적인 형태가 당검(唐劍), 혹은 송검(宋劍) 양 식과 유사하다.
    다만 일반적인 중국검과 달리 병두에 비교적 큰 고리가 달려있는 것들이 있 는데 이는 중국    도교의 칠성검 양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남조(南朝) 때 편찬된    《동현령보도학과의(洞玄靈寶道學科儀)》의 「작신검법품(作神劍法品) 에 는 도교의 제의용    검의 제작 방법이 설명되어있는데 여기에 칼자루에 고리를 달고 이 고리에 주문을    담는다고 하였다. 당검 양식의 사인검 코등이에는 중국 검에서 흔히 나타나 는 치우문양이 새겨져있다.
    중국 명나라 시대의 양날검 중에는 위에 나타난 세가지 종류의 사인검과 상 당히 유사한 것이 존재한다. 물론 시기적인 선후 관계를 분명    히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사인검의 제작 자체가 중국 도교의 영향하에 이루 어졌기 때문에 칼의 형태 또한 중국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    이 높다.

 

 

 

 

 

 

쌍검     

 

임진왜란 때 일등공신이 된 김명윤 선생의 검 2점이다.
    김명윤(1564∼1609)은 임진왜란 때 파주목사로 큰 전공을 세웠다.
    선조가 직접 내려준 것으로 전해지는 이 검은 한쪽 날만 가진 칼(刀) 형태를 하고 있으나    양날을 가지고 있으며, 검의 등쪽에 가지가 붙어 있다. 손잡이는 나무로 만들 었으나 훼손되었고,    나무 손잡이가 없는 검은 길이 73㎝, 폭 5.2㎝이며, 다른 검은 62㎝이다.
    검은 현재 경남 의창군에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도봉 서원에 보관중이다.
    튀어나온 검 등쪽의 가지는 방어용으로 사용되었다고 추측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실전검. 쌍룡검(雙龍劒)

현존하지 않으나 일제시까지 있었다고 하는 충무공의 환도인데 아마 일본에 가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일본해군사관학교에도 이순신장군의 칼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임경업장군의 추련검(秋蓮劍),용천검(龍泉劍)

아래 사진은 충렬사에 전시된 추련검이고 속리산에서 무술수련시 연못에 살던  용이 물고 나와서 바쳤다는 용천검은 일제시에 도난당해서 현재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이처럼 검의전설이나,고대명검이 사라진이유.

 

1.많은 전란과 내란으로 인하여.

 

2.조선시대라는 '문인시대' '유교시대'로써 칼을 천시하는 사상으로, 검의전설이 이어져오지

 

못함.

 

3.고구려시대에 많은 명검이 있었으나, 당나라멸망으로 많이 소멸됬으며, 그대로 남아있는

 

많은 명검들은 시대를 거치면서 사라졌음.

 

4.조선시대 말기는 전쟁터의 중심이었음. 따라서 명검이 있어도 대부분 소멸됬음.

 

5.해외로 빠져나간 유물이 '74434'개나됨 그중에 많은 고대명검 들이 숨어있으나, 찾지못하고

 

있는것이 안타까운 실정.

 

 

 

 

  ※ 우리나라 명검의 조건

1. 검을 꺼냈을경우 어두운 곳에서도 보름달같이 은은한 빛을 내야한다.

2. 검을 뺄때의 검명이 너무 시끄러운것은 용렬한 검이며

 너무 작은 검은 패가 없는 검이니 그 중간정도 되어야 한다.

3. 차돌을 쳐서 잘라도 흠집이 없어야 한다.

4. 피가 묻지 않아야 한다.

5. 좋은철을 구한후 100일간 몸을 정결히 하여 길한 날을 골라서 만든다.

6. 휘어지거나 부러지지 않아야 하며 적당한 탄력이 있어야 한다.

7. 사람을 베어도 잘 무디어지지 않으며 날카로워야 한다.

 

 

 

운검[雲劍]

 

 

[명사]<역사>
1 의장(儀仗)에 쓰던 큰 칼.
2 임금을 호위할 때에, 별운검이 차던 칼. 칼집은 어피로 싸고 주홍색으로 칠하며, 장식은 은을 썼다.
3 =별운검.

 

 

 

 

 

별운검[別雲劍]

 


 

 

[명사]<역사> 조선 시대에, 임금이 거둥할 때 운검(雲劍)을 차고 임금의 좌우에 서서 호위하던 임시 벼슬. 또는 그런 벼슬아치. ≒운검.

 

 

 

 

삼인검 [三寅劍]

 


 

호랑이년 호랑이월 호랑이일에  만든 칼 북두칠성새기었다.

 

 

 

사인검 [四寅劍]

 

[명사]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 등 인(寅) 자가 네 번 겹쳐지는 시간에 맞추어 쇳물을 부어 만든 보검.
  • 삼정도가 인기를 끌자 지난 1993년 10월 권영해 당시 국방 장관은 45주년 국군의 날에 김영삼 대통령에게 새 정부의 군 개혁을 칭송하는 문구가 적힌, 왕권을 상징하는 조선 시대형 ‘사인검(四寅劍)’을 만들어 바쳤다가 논란을 빚기도 했다. ≪경향신문. 2003. 10. 19.≫
  • 조선 시대의 대표적 도검인 환도(環刀)가 원나라에서 전래되었음을 근거를 들어 밝히고, 한문과 범어 주문을 화려하게 새긴 사인검(四寅劍)의 상징 체계를 도교적 측면에서 설명한 부분도 눈에 띈다. ≪동아일보. 2004. 10. 9. B2면≫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劍)

 

 


 

↑백제 환두대도

 

 

 

 


 

형태 및 사용

 

환두대도는 파두에있는 환형의 장식에서 그 명칭이 유래한 편도형 직도이다.

중국에서 도래한 형식으로,자루머리가 큰 고리모양에 여러가지 동식물을 조각했으며,

조각의 문양에는 쌍룡문,단룡문,삼엽문,삼계문 등이있다.이들 환두는 주로

청동이나 금동으로만든다. 이렇게 장식이 화려한 환두대도나 고리가달린 대도의 소유는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로 한정되어있었지만,일반대도는 일반병사까지 폭넓게 사용되어왔다.

이 칼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전기까지 많이 애용되어서,후의 조선에 태조인 이성계가

이 환두대도를 사용하였다.

대도는 기본적으로 한손으로 잡는다.

방패를 쥐는 중국식 용법이 대도에서 전통적으로 남아있기때문이다.

주로 베는공격을하지만,때로는 날카로운날로 찌르는공격을 하기도한다.

 

 

세부설명

 

삼국시대에 들어오면서 모든 생산공구류나 무기류가 철제로만 만들어지고 복잡해진

생활에따라 그 기능도 다양화하고 용도도 분화되었다.

따라서,칼도형태가 여러가지로 변하고 사용자의 신분에 맞춰서 화려한 장식을 하게되었다.

이 시대에 가장 대표적인 칼은 곧고 긴칼,즉대도이다.

삼국시대 중기의대도가 고분에서 많이 발견된다.

칼몸의 중간에 길게 금이나있을것을 호대도

호가없이 평평한것을 평대도라하는데

호대도보다 평대도가많다.

칼끝은 뾰족한것과 일직선인것이있고,칼등은 편편하게 직선으로된것과

약간 휘어져있는것이있다.삼국시대전기에는 칼몸의 너비도넓고 길이도 길며

무계도 무겁던것이, 중기이후로내려오면서 차차 좁고 날씬하며,가벼워졌다.

이것은 칼을만드는기술이 발전해간것을 의미한다.

중기이후로 내려가면 칼을 호화롭게 장식하는 풍습도 크게일어나는데,주로 칼자루와 칼집에는

많은 장식을하였다.자루는 금실이나 은실을 감기도하였다.

파두에 특별히 신경을써서 조각을하는데, 그모양에따라 환두대도,방두대도,규두대도

소환두대도등으로 나뉜다.

환두대도는 자루모양이큰 고리모양이고,거기에 여러가지 상서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조각하였다.이들 환두는 청동이나 금동으로 만들기도하는데,그 형식에따라 만든시기를

판단할수있다.

방두대도는 자루머리가 네모난것으로,장식성이적고 동제나 철제가많은데,그수는적다.

소환두대도는 자루머리가 큰 고리는있으나,장식이별로없는것이고,

규두대도는 자루머리가 산모양으로된것이로 그수는적다.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대도는,역사상 그 임자를 할수있는 유일한것이다.

그중 가장 걸작품은 단룡문이조각된 환두대도이다.

자루의 중간을 금실로 곱게감고,양쪽끝에는 육각형의 문향구획을4개 만들어

서로 연결되어 배치하고 그안에 다시 한마리의 봉황을 새겨 넣었다.

자루는 금동제이다.

함께나온 소도도 금동환과 금실을 적당히 배치하여 아름다운 공예품을 만들었다.

무령왕은 재위중에 군지위관으로서 전쟁에나간일이 없는데도

이처럼 여러자루의 호화로운 대도를가진것은 왕좌의권위를 과시하는 상징으로 쓰인듯하다.

백제뿐만아니라 경주의 신라고분이나 낙동강유역의 가야고분,그리고 영산강유역의

토축묘들에서도 환두대도가 많이 발견된것으로 미루어,당시 사회에서

칼은 남자들이 지니는 필수품이었던것으로보인다.그 이후에도 환두대도는

남,북국시대때는 물론 고려때까지도 많이 이용되었다.

 

 

 

 

환두대도라는 칼에대해 아십니까? 환두대도는 고구려,신라,백제,가야등등 널리 이롭게쓰였

으며,삼국시대에 가장활발히 쓰였던 칼입니다. 당시,일본무인시대처럼

고구려시대엔 환두대도를 남자들은 꼭 차고다녔죠. 위의사진이 환두대도입니다.

고구려는 환두대도를 차고다니는남자들과 자주하는 무사대회

무예숭상등으로써,중국등 다른나라에게까지 고구려는 용맹한나라라고 알게되죠.

물론,실제로도 그러고요.

사실,환두대도는 그 아름다움때문에 처음엔 왕,장수만쓰다가

점차... 병사들도썼죠.당연히 고리모양은 다르고요.계급에따라서 고리모양이다르다고합니다.

병사들은 일반대도를썼고... 은삼각대도,귀두대도등등...각 나라마다 환두대도는 조금씩

변형되어갔고,지금의 일본도(카타나)의원형은 백제의환두대도입니다.

백제의환두대도가 왜나라(일본)으로넘어가 발전한것이 환두대도라고합니다.

어쨋든,이 환두대도는 엑스칼리버같이 신검전설로 있을지도모른다는 학설도있는데...

삼국시대의 자료가 당나라때 많이 불탔기때문에 알수가없다는군요.

다만,왕이 죽었을때 왕은 생전에쓰던 환두대도를 무덤에 같이 묻고...

화랑,조의등등도... 이 환두대도를 자주썼기때문에 환두대도전설이라든지

이런게 있을가능성이 높다는군요.

 

 

 

 

 

 

 

 

 

 

 

 

우리나라는 시대별로 다릅니다.

 

일본의 경우. 명검이 뚜렷하게 나오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바로 '시대'차이죠.

 

우리나라도 명검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명검을 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고구려의 검의장수 '연개소문'이나

 

밀우, 유유나 괴유등이 대표적이고 대무신왕역시 검을 썼죠.

 

그런데 그 검이 전해지지 않는 이유는 지금의 고구려땅이 북한이나 중국에 위치해 있으며 오랜세기를 거쳐있고

 

또 오랜전쟁으로 대부분 없어져 있는 것이 이유입니다.

 

게다가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김부식이 편찬한건 아닌데.. 잘 기억이 안나서)는 신라위주라

 

고구려, 백제에 대해서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황제에 대해서만 나오고 그 아들이나 부인은 기록조차

 

안한것도 있죠. 따라서 검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에 검은 황제의 자존심이자 위상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유교사상과는 다르기 때문이죠.

 

따라서 신라 왕들은 자신이 죽을때 '용봉문 환두대도'라는 칼을 같이 묻을 정도로 칼을 아꼈습니다.

 

일본은 실제로 나라가 망한 역사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외세의 침략의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으로 일본이 과거에 우리나라보다 훨씬 약한

 

원시인 같은 민족이었으나 그곳이 미개지역이었고 또 우리나라가 있었기 때문에 중국은 일본에 고개를 돌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또한, 일본은 반란이나 여러가지로 자신들이 싸우면서

 

전국시대나 에도, 막부, 헤이안 등등의 여러시대가 있었지만 '시대'일뿐입니다.

 

실제로 일본에선 사극이란 말을 쓰지않습니다. '시대극'이라 하죠. 일본에서는 역사라기보다는 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수많은 전쟁을 하면서 멸망하고 건국되고 하면서

 

시대가 아닌 역사로서 되기 때문에 시대극이아닌 '사극'이 되었죠.

 

따라서 명검들이나 그런것도 수없이 교체되고 발전되고 했죠.

 

 

일단 조선시대의 경우

 

삼, 사인검이 제일 명검입니다.

 

태조의 전어도 같은 경우가 일단 제일 명검이겠죠.

 

 

그럼 고려시대를 가볼까요? 아쉽게도 없습니다. 그럼 고려시대엔 명검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려시대의 역사가 잘 나오지도 알려지지도 않는데 검까지 알려질까요?

 

 

삼국시대로 가보겠습니다.

 

신라에서는 김유신이 쓴 '김유신검', 태종무열왕이 썼던 '금동장봉황 환두대도', 화랑 황창랑이 썼던 '본국검'이

 

유명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명검이 있을것이지만, 예상했듯이 여러전쟁을 거치면서 소멸됬겠죠?

 

또, 일본의 일제감정기 시절에 우리나라 명검을 매우 많이 가져갔다고 했으니, 거기에 있을것도 배제할수

 

없습니다.

 

 

그럼 고구려로 가볼까요?

 

역시 연개소문의 '어니하의 비도(5자루의 비도)'가 유명합니다. 기록으로는 5자루인지 9자루인지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5자루로 추측이 정확하죠. 그리고 비도라지만 실제 검과 거의 비슷할것으로 추정됩니다.

 

연개소문이 실제로 비도술을 5자루로 구사하기 쉬웟던것은 당시 고구려인들이 모두 칼을 찼으며

 

그 칼을 5자루나 찼던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구려 인사법에서도 알아볼수있는데, '궤배'라는 인사법이 그 당시의 인사법입니다.

 

어떤 인사냐구요? 당시 서릿발이 감도는 고구려에서 칼을 뽑기 용이 하게끔 한쪽 고개만 숙인체 나누는

 

공격자세의 인사법입니다. 어떻게보면 조금 예의가 있으면서도 적이 공격하면 바로 발도(拔刀)가 가능한 자세죠.

 

그리고 여러 장수나 무사들이 썼던검도 있을테지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고구려에선 검은색의 옷을 입은 '조의'라는 무사집단이 있었을정도니 검을 숭상했었겠죠?

 

 

 

백제에서도 나름 검을 숭상했습니다.

 

왕이나 장군, 무사, 평민들까지 다양하게 검을 썼긴 했지만 역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자, 이렇게 되겠습니다. 그럼 ㅅㄱ.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일제시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검의 역사는 지워졌습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우리나라에는 패월도와삼인검이있습니다.

그리고 이성계가사용하던검도 명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명검이많이있지만 사람들이모르는것과 알려지지않은게 많은것같네요.

우리나라에는 고대 명검이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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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나 는 일본에 제일인 명검인가요 ??

... 대단한 명검인지 알고십어요 ... 카나타(장검) 이칼날은... 당근히 고대무기 중에서 거기서 카타나 라는 일본검이... 어디 우리나라는 그런 고유 무기들이 없나하는 아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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