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미국,러시아에대해서,우리나라와의 관계는 어떤지,,,,

중국,일본,미국,러시아에대해서,우리나라와의 관계는 어떤지,,,,

작성일 2005.11.13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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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위의 나라들에 대해서와 우리나라와의 관계좀 알려주세요!!!

내공 드릴수 있는데로 드림니다..뭐 적겠지만 최대한 간략하게 좀 해주세요..

울집 프린터가 맛이가서.... 최대한 빨리 부탁함니다 최대한 간략!!!!!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간략하게 설명하시라 하셔서 하는데까지 요약하여 서술하겠습니다

 

중국은 과거에는 적대적 우호적 항상 교차되어 왔지만 현대는 우호적으로 지내고있죠

 

일본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나라에 득을 보게한적이 거의 없지만 뭐 지금은 서로 과거와 비교적 친하게 지내고 있죠

 

미국은 개화기 일본에 의한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의 주선으로 첫 외교적 관계를맺고 일제의 패망후 우리나라에 진주해...지금까지 잘 아시다시피 가장 중요한 우방국으로 지내고있죠

 

러시아는 청나라시기 조선의 나선정벌로 전투를 벌이던 적도 있었고 개화기 후엔 남하정책을 펼쳐 한반도로 진출하려 했으나 밑에있는 일본이 선전포고를 하여 러일전쟁을 벌였었죠 러일전쟁에서 패전하여 한반도에서 물러났지만 일제패망후 소련으로서 미국과 같이 우리나라에 진주했죠 소련붕괴후 러시아와 정상외교를 시작했죠

 

****밑에부턴 자세하게 설명하갰습니다 여기서 참고해보세요...몇시간동안 정성것 썼으니 ㅎㅎ****

 

                                                                             중국

 

 

 중국과의 접촉역사가 고조선때부터라는 설이 많지만...(왜냐면 기록이 재대로된건 이때것밖에 없기때문에...) 다른학설로는 7천년 ,,,,심하면 9천년...이라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문명이 동이족(중국이 주로 한민족을 과거에 낮추어 부르던말) 에서부터 파생되어 매소포타미아에 전해지고,,, 중국본토에 환국 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세웠지만 후에 갈라져...

신시배달국을 동이족이 재건...중국 한족이 수립한 하나라(몇년전까진 신화상의국가로 알려졌지만 최근 발굴에 의해 실제 존재하던 중국 최초의 국가라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에 의해 다시 멸망....

그다음이 우리가 우리민족의 역사의 시작점으로 알고있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건설된 국가 단군조선....

 

이런 학설도 있습니다....어디까지나 설이고...일단 참고해두시라는것

 

이 학설에 의하면 중원의 주류는 원래 우리민족이었으며 우리나라를 고대부터  가르치는 삼한 은 한반도에 국한된게 아닌 중국과 한반도 전체에 걸쳐 수립된 국가라는 말이 됩니다..

너무 국수성이 심하기때문에..지금의 우리나라선 모두 부정하고있는상황이지만..

오히려 이 학설들은 우리민족이 아닌 외국인들에 의해(러시아학자,일본학자.중국학자) 연구가 되고있습니다...

적어도 한국에서도 이 학설을 어느정도 받아들여 좀 연구좀 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희망이 절실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이미 수천년동안 중국...또는 일제 식민지때 심각하게 훼손됬기때문에....지금 우리가 학교서 배우는 지식도 절반이상은 죽은지식일겁니다

 

믿을수가 없어요...

 

뭐 어쨋든 이제부턴 제가 배워먹은 정석 의 지식대로 설명할께용///

 

한나라와 (하나라=>은나라=>주나라=>춘추전국=>진나라=>그리고 이 한나라) 

 단군조선 (중국이 기자조선이라 주장하여  한반도는 고대부터 자신들에게 종속되있었다 주장하려 하지만...사실이 아닌 조작) 이 존재하던시기

 

중국은 고조선을 고전끝에 점령해 우리나라에 한사군 (한반도안에 4군이 있었다 주장하지만...만주와 중국대륙의 일부에 걸쳐 4군이 존재했다고 보는 학설도 있음///반도안에 있던 군현은 단 1개의군현 이라는..)

 

이후 한,후한,,,그다음 위진남북조 시대  이 중국의 혼란기동안 또다시 4개로 분열시켜놨던 삼한인들은 점점 뭉쳐서 각각의 국가들을 세우고.... 서로 통합하고 통합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 이렇게 국가가 수립되죠

 

고구려의 1대호태왕인 고주몽이 자신의 본처의 아들인 유리태자로 하여금 후대를 잇게하여 두번째 왕비의 두 아들들이 왕이되지못하자 고주몽에게 간청해 남쪽으로 내려갔고 이두 아들들이 세운나라가 백제죠 

 

그런데 고구려에서 백제가 분화됬지만...신라민족은.. 북방민족일 확률이 높다는것이 여러 유물로 인해 확인되었습니다.... 가깝게는 흉노와 스키타이족..멀게는 유럽에서 세력을 떨치던 훈족 (훈족의 구성원은 상당수가 동양민족이라는 사실을 유럽측 그들의 외양에대해 남긴기록에서 확인해볼수있음)  ..이 훈족과 신라의 왕들은 여러 유물로 보여지는 공통점이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게 편두 죠..

편두는 기마민족이 자신의 머리를 투구와 고정 시키기위해 어렸을때부터 머리에 돌을 깔아서 머리를 타원형으로 만드는건데.

이런 민족이 세계에 훈족과 동쪽끝에있는 신라의 왕족 뿐이라는거죠..

 

중국의 기록에도 '신라의 왕들은 모두 편두다' 이런 기록도 있고.. 그밖에 말에 기수를 고정시키기위한 도구인 등자...그리고 북방민족이 모두썻다지만 한민족이 더욱 발전시켜 써왔던 특유의 맥궁과 그들의 활과 화살에서의 일치점 등등.....

아마도 중국의 공격을 받은 흉노가 세력을 이끌던 지도층이 두 부류로 나뉘어 한부류는 유럽으로 진출 또 한부류는 한반도 남쪽끝까지 내려와 신라를 건국,,,이런설이 있습니다

 

훈족은 당시 유럽에선 공포의 대상이었죠...

게르만족들을 로마로 도망치게한 하나의 이유를 제공한게 이 훈족의 잔인함과 강건함이었고..지금까지도 훈족의 제왕 아틸라 (세계의 4대 정복자중 한명) 를 유럽에선 저주의 대상으로 생각하고있을정도로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간 종족(하나의 인종으로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아니라) 입니다

 

고구려는 점점 세력이 강대해져 광개토대왕과 장수왕때는 절정기를 맞이하였고 언제쯤인진 잘 기억이 안나나....중국의 제국인 북조 와 대등한 힘을가지고 후엔 아예 북조를 제압하여 그들에게 왕실계보 (왕실의 혈통을 쓴 문서를 말하는데 그 시대엔 이 문서를 상대국에게 건내준다는건 그 상대국에게 신하의 예를 갖춘다는 뜻과 마찬가지였음) 까지 받아낼정도로 강대해졌습니다

 

 그 당시 동아시아 세계의 모든 국가의 왕들은 고구려를 중국의 황제국들과 동급선에서 대우할만큼 강한 국가였죠...하지만 중원의 많은 국가들은 후에 모두 멸망되는 반면 고구려는 700년 가까이 국가를 유지하였습니다

 

후에 중원전체를 통일한 수나라는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수나라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만은 끝까지 수나라와 대등한 황제국(스스로 그들의 왕을 호태왕 이라 칭했죠...황제와 같은 의미입니다)이라 칭하자 수나라는 2대에 걸쳐 고구려를 침공했습니다

 

1대 양견 수문제가 수륙3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공했으나(침공이유는..고구려가 먼저 수나라에 쳐들어갔기때문입니다...대대적인 침략의 의미가아닌 수나라의 화를 돋구어 고구려로 쳐들어오게끔 하는 전략이었다 보는 학자들이 많죠)

 

고구려 장군 강이식장군 분명히 존재한 장군이엇을 뿐더러 지금의 진주 강씨의 시조입니다...참으로 한심한것은 지금 우리나라의 역사가들은 아직도 이를 학계에 문제로 삼고있지않는다는 겁니다...

 

중국측 기록이 폭우와 장마로 인해 고구려땅에 상륙도못하고 태반이 죽었다하지만....현대모 방송사 역사프로그램에 밣혀진바에 의하면 고구려의 수군에 의해 전멸되었고.....결국 중국 본토로 돌아간 군대는 열명중 7~8명 선이었다 합니다

 

2차침공은 수문제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수양제에 의해 시작되죠

수양제는 고구려가 끝네 신하의 예를 갖추지않자 세계사에 거의 유래가 없는 대군을 결성하여 친히 육군 113만 수군 10만으로 다시 고구려를 침공했습니다

 

중국에서 고구려 침공군을 결성할때마다 대륙(특히 산동지방)의 백성들은 끼니도 못 이을정도로 수탈당하여 거의 죽을지경이었죠 (후엔 계속 고구려에 대한 원정이 실패하자 요동(고구려)에 가서 개죽음당하지 말자는 노래까지 크게 유행했답니다  자기 팔 다리를 잘라서 징병을 피해보려는 자들도 속출했고.)

 

2차침공은 아시다시피 수나라 대군이 고구려군에 의해 전투불능상태 까지 박살난후 대륙본토로 후퇴하여 종결됬습니다

 

그후로 3차침공을 준비하죠...그런데 수양제가 2차때 고구려에게 패한 결정적인 이유가 요동성의 견고함이라는걸 알아내고 기상천외한 공성무기(그 당시대엔)들을 이끌고 몇주 싸울무렵에 수나라 본국에서 대규모의 반란이 일어나는바람에 모든 공성무기들을 그대로 두고 수양제가 본국으로 도망쳐버려 자동적으로 고구려의 승리로 끝납니다

 

그후 또다시 4차침공을 계획했지만 한계에 다다른 중국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켜 결국  수양제는 부하의 손에 의해 암살당하고 수나라는 멸망했죠///

우리측에선 수나라는 고구려에게 멸망당했다 이렇게봐도 좋을만큼 고구려침공에 수나라는 목숨을 걸고 덤벼들었습니다

 

왜 역대 중국의 통일제국들이 계속 우리민족의 국가에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덤벼들었냐 하면...

우선 대륙에 후방에 있기때문에 우리민족의 국가가 강해지면 그들은 북방민족이나 통일전쟁에 힘을쏟을수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더구나 고구려시절 우리민족은 동아시아 최강의 기병단 (좋은말과 뛰어난 제철술,,고구려의 강철의강도는 현대시대 우리가쓰고있는 강철과 맞먹을정도로 뛰어나다합니다..놀랐음.) ,,,성능이 뛰어난 맥궁 ..등등 이미 군사강국이었기 때문에 중국에선 도저히 가만 놔둘수 없는 상황이었죠..

자신들이 세운국가가 혼란기에 다달으면 우리민족이 중원으로 뛰쳐나가서 자신들을 지배해버릴지도 모르지않습니까

 

더구나 고구려 시절....수.당 중국역대 최강의 왕조들이 고구려를 경계했던 큰 이유는 그시절 존재했던 돌궐의(투르크)제국 때문이었습니다

고구려와 돌궐과 중국은 동아시아 패권을두고 계속 다투었고 나중엔 돌궐을 중국과 고구려 누가 자기편으로 끌여들이냐에 따라 동아시아의 수많은 민족들이 고구려에 붙을지 중국에 붙을지를 결정할 만큼 돌궐이 강력했던시기였으니까요

중국의 제왕들이 가장 우려하는 사태가 돌궐과 고구려가 손잡고 자국으로 침공해 들어오는 거였죠..

 

지금 터키가 은근히 우리나라에 형제의 애를 느끼고 6.25때 미군 다음에 가는 규모의 군대까지 파병해줬던것은 아마도 이때부터 수천년간 꾸준히 쌓아온 친밀감 때문일 것입니다

 

수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건국됬습니다

당 고조 이연은 건국 초기엔 고구려에게 화해의 제스쳐를 취하였고. 포로교환 사절단 교환 등 교류를 했습니다

 

허나 고구려의 영류왕시절  쯤 당나라는 당태종 이세민이 즉위하였고 강압적엔 태도로 바뀌어 고구려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라 강요를 했습니다 영류왕은 온건파에 속했기때문에 당나라에게 쩔쩔맸죠...

 당나라는 고구려를상대로 심리전을 발휘했던겁니다 ....속되게 표현하자면 삐진척하면서 상대의 애간장을태우고 절정에 달할때 얼른 화해해서 뭔가 좀 이득좀 보겠다..이런 심보였지만...

연개소문이 영류왕등 온건파들을 모두 숙청하고 대막리지 자리에 올라버리자...모든게 물거품이 되버렸죠..

태종의 생각대로 고구려는 빠른속도로 다시 적대성을 취했고 고종은 고구려를 침공하는데 온 힘을 쏟아붓기 위해 우선 당나라에 위협이 되는 주의의 모든 국가들을 정벌합니다..

고구려의 모든 동맹국까지 처리한 당태종은 마침네 친히50만 정예정벌군을 결성하여 또다시 고구려를 침공하였습니다...요동성과 백암성을 점령하였고 안시성까지 쳐들어갔지만

수군은 전멸당하고 당태종의 육군은 끝네 안시성을 넘지못하고 요동의 추운 바람이 다가오자

모두 철수하였죠

하지만 그들이 철수한 큰 이유는 북방의 거란족 수만기마군대가 중원에 쳐들어왔기때문이기도 합니다...이들이 쳐들어온 이유는....연개소문의 로비활동때문이었다는게 밣혀졌죠...연개소문은 전쟁을 국제전으로 확대시키기위해 멀리 우즈벡키스탄쪽 중앙아시아까지 사신을 파견한것이 벽화와 기록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역사서에선 이부분에 당태종이 무사히 본국으로 귀한한걸로 기록되있습니다만..우리측은 다릅니다

당태종이 비참한 꼴로 부하들과 수레를 밀고 진흑뻘을 막 지나갔을때 기다리고있던 연개소문에의해 추격당하여 북경근처까지 도망쳤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의 매복군과 또는 고구려의 수군에의해 후방이 공격당했을거라는겁니다

<어떤 고서 두권인데...신채호선생께서 상고사를 쓰시고나서 사라져버렸죠.. 아쉽습니다> 결국 당태종은 고구려원정 실패때 생긴 화병이 오랫동안 쌓여온 납중독에 의한  지병과 겹쳐서 4년만에 고구려원정 금지령을 내리고 사망하죠

 

 

더구나 이 기록에 신빙성을 부여하는 여러 유적이 만주에서 북경까지 가는 지역마다 남아있는데...어떤 마을에선 당태종이 연개소문에 의해 쫒겨 숨었던 우물탑 이 있고  자신을 숨겨준 농부부자를 기린 절과 다리도 있으며

연개소문과 당태종과 설인귀장군을 다룬 중국의 경극들도 있습니다

이 모든것들에서 당태종은 연개소문에게 쫒겨가는 역할로 나오죠...

<더 깊이 연구하면 고구려의 북경근처 진출설도 확실해질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이 전쟁후부터 연개소문은 중국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서 대륙에 이름이 퍼져나갑니다

 

당나라는 이때부터  고구려와의 전면전을 아예 포기해버리고 끊임없는 개릴라 전술로 고구려를 침략합니다만....승리한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연개소문은 사망전까지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단한번도 패한적이 없는 명장이었고

그가 죽자 수많은 중국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는군요

 

달이 차면 기울듯이..

고구려는 이미 중국왕조들과의 오랜전쟁으로 체력면으론 한계에 다달은 상태였으며...기진맥직한 나라를 돌볼 지도자의 부재로인해 멸망의 길을 걷게됩니다

연개소문의 아들들의 권력다툼과 이를 이용해 신라와 손잡아 쳐들어온 당나라에의해 고구려는 멸망당하였죠....어찌보면 고구려는 당나라에 멸망당했다기보단 3형제에 의한 내분에 의해 자멸했다고 볼수있습니다 첫째 남생과 막내 남산이 거의 나라를 중국에게 들어바쳤기때문입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당나라와 당이 멸망할때까지 친하게 지냈고 신라의 수도 서라벌은 세계의 4대도시에 속할만큼 부유하고 화려한 도시가 됩니다

고구려의 장군출신인 대조영은 발해를 건국하여 고구려의 옛영토와 영화를 재현할만큼 강대한 세력으로 자랐습니다

 

 후삼국이 들어서고 신라멸망후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를 세웠을무렵 중국엔 송나라가 들어서있었지만..곳 발해를 멸망시키고 송나라로 쳐들어간 거란에 의해 남쪽으로 계속 밀려갑니다

 

당시대 세계의 최강의 반열에드는 기마군단을 보유한 거란은 요 나라를 건국해 요나라의 전성기인 성종때 자신을 재쳐두고 송과만 교류를 하는 고려를 끊임없이 침공합니다 1,2차 계속 실패하고 3차때는 10만의 정예기마군단을 몰고왔으나 고려에게 대패하여 돌아갔습니다

 

요나라는 곳 여진족추장 아골타(선조중에 신라인이있음)가 세운 금나라에 의해 멸망합니다

금나라는 고려에게 신하의 예를갖추라 사신을보냈고 당시 고려의 정권을 잡고있던 이자겸,최충헌 은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수락합니다..

허나 금나라는 고려가 황제국이란걸 인정했습니다.....

 

왜냐면 여진족은 오랫동안 고려에게 조공을바치는등 많이 억눌리긴했지만..오래전부터 쌓아온 친분이 잇엇을분더러 과거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때 말갈족이란 이름으로 발해에 귀속된 종족이기 때문입니다..(말갈족이 고구려인이고 곳 여진족이 고구려인의 후손이란 설도 있음..)

그리고 또 한가지 그만큼 고려의 군사력이 강했다는걸 반증해주는셈도 되죠..비록 옛날에 비해 많이 약화됬지만..

 

고려후반기가 될무렵 세계를 정복한 몽고의 기마군단에 의해 고려는 30년 항쟁끝에(민중에 의한 항쟁이 주류였죠) 결국 몽고에게 굴복하고

실제적으론 속국은 아니지만 결국 속국과 다름이없는 지경으로 전락합니다...이후상황은 드라마 신돈을 보시면 자세히 아실듯 ^^

 

몽고는 원나라를 세우고 후에 명에의해 멸망할무렵 고려의 공민왕은 얼른 명나라와 친교를 맺고 원나라의 간섭에서 벋어납니다만 결국 권문세족들에의해 제거당하죠

 

조선이 건국될때동안 건문세족에 의해 고려는 좌지우지됬지만 이성계가 군권을 바탕으로 권문세족의 모든 사유지를 몰수해버리자 권문세족은 역사에서 사라져버립니다

 

조선왕조가 세워진후 한민족은 사대주의를 표방한 외교를 중국과 시작하죠

 

명나라가 망해가면서 청나라가 건국되려는대도 현명한 외교정치를 펼치고 임진왜란후 피폐해진 조선을 재건하고있던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인조가 망해가는 명나라에게 사대하다가 결국 두번의 호란을 당하고 조선은 말할수없을만큼 궁핍해져버립니다

후에 선진적인 성향을 갖추며 현명했던 소현세자까지 독살해서 죽여버리죠

 

아마도 조선왕조중 가장 무능력하고 포악하며 한심했던 왕이 이 인조일거같습니다//(연산군은 사이코니 그렇다치더라도..)

 

청나라 말기 서양제국주의국들이 중국 전역을 집어삼키고 있을때 조선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쇄국을 취하고있다 결국 일제에게 먹혀버리죠

 

식민지시절때 우리나라의 임시정부와 수많은 독립단체(특히 무장독립단체) 들은 만주와 중국 본토로 건너가 중국과 연합하여 일제에 대항합니다

 

중국에선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쪄뚱의 공산당의 전투끝에 결국 국민당은 져서 대만으로 도망가고 중국대륙은 모택동의 공산당에 의해 통일되게 되죠

 

그후로 중국은 북한과 만 외교를 갖고 북한이 6.25전쟁을 벌일때 소련의 스탈린과 함께 침공을 원조해줬죠

중공군에 모택동이 가장 아끼던 둘째아들까지 참전..전사합니다

이런 계기들이 쌓여 때문에 아직도 북한과 중국은 그렇게 친하게 지낼수가 있는겁니다

스탈린도 나치독일과의 전쟁때 자신의 두아들을참전시켰고 둘다 전사했다 합니다

 

아마도 이런 독제자들이 죽을때까지 권력을 누릴수있었던것은 이런 개인적인 희생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엔 중국과 아시다 시피 잘 교류하고있습니다

우리나라기업이 중국시장에 진출해 막대한 무역흑자를 보고있고요

 

 

 

                                                              

                                                                       일 본

 

(이 일본 부분은 제가 예전에 다른분의 일본에 대한 질문을 답변해드린걸 그대로 복사해서 올려논거에용 ㅎ;)

 

 

DNA조사결과 우리민족과 일본민족은 가장 유전적으로 일치하는점이 많은 민족이구요  발음구조 형태도 유사해요   (중국민족보다도 더 가까움<만주인과는 비슷>)

 

역사적으로 볼떄도 우리민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 우리민족이 고대시대떄 여러 식민지를 일본본토에 세웠다는 설도있는데 (국수적으로 보지말것,, 사실성을 바탕으로한말)

뭐 그런점을 보지않아도 상당히 교류가 있었죠....백제나 금관가야만 봐도 대충알수있죠 

 

그리고 일왕의 가문에 우리 백제왕조의 피가 상당히 섞여있다는건 2002년 월드컵을 앞둘당시 일왕이 직접발언했던것에서 확인할수있어요

문제는 일제시대떄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의 명분중 하나로 사용됬다는것이죠

 

당시 최남선이 썼던 그...재목은 기억이나지않지만 대충 내용이 백두산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계통이 갈라져나왔다는 내용의 책이었거든요...(나중에 최남선 이사람이 친일하면서 우려먹기도 했음)

 

그리고 백제가멸망했을떄 당시 동시대에 일본에 기록된 역사서에 보면 갑자기 키가크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사람들이 급증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게 백제인일꺼라는건 거의 확실하죠

 

백제가 멸망할당시 지원군을 보내왔다는것도  이미알려져있는 사실이고요

 

문화적으로볼떈  일본이 견수당(수나라에 파견한)을 보내기전까지 백제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고요 심지어 한자를 수입할때도 백제를 통해 해서 일본의 한자 어법도 중국보단 백제식으로 배웠기떄문에 지금도 어법체계가 우리언어와 매우 유사하죠...

(미국과 중국과 유사하고 일본과 한국이 유사하고...이런식으로)

 

예전부터 한국의 훈민정음의 어법체계가 자기네나라(특히 쓰시마섬<맞나;;>)와 상당히 비슷하다고해서 지내나라가 만든걸 우리나라가 수입해갔다 이런논리를 펼치는자들이 있는데... 우리쪽에서 볼떈 정말 가소롭기 짝이없죠.....수입한주제에 종주국 뿌리도 까먹고말이죠.. (특히 쓰시마섬 주변의 어법체계가 훈민정음과 더 닮은 까닭은 고려말떄부터 조선초기 우리나라와 무역이 활발했을떄 훈민정음이 이쪽 무역로로 전파됬기 때문이겠죠..)

 

그런걸 일본인들은 이 쓰시마섬(대마도) 사람들이 사슴뿔,뼈 모양을보고 개발했다고 하니 정말 웃기죠....(천 , 지 ,인   도 모르는 왜인들이 뭘 알았겠소)

 

 

아 그리고 사무라이 문화 에 대해 말하자면요..

신라엔 화랑도가 있었지않습니까    이미 왜와 신라는 오래전부터 교역했었고  특히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해 남북조시대가 열릴당시부터 서서히 왜에선 무사계급에게 충 이란 개념이 자리잡히기 시작했다네요 그전까진 그냥 귀족들의 용병수준 아니었습니까//

이 화랑도의 영향을 어느정도는 받았을거라 생각합니다(어느정도까지입니다)

 

한번은 일본이 발해와 손을잡고 신라땅에 쳐들어올려는 작전을 펼친적이 있다네요..그떄당시 신라와 일본이 사이가 굉장히 안좋은때였고요...

물론 일본의 계획은 그냥 계획으로 끝나고맙니다( 어떤일본학자가 가상의 전투를 벌여봤는데 결과는 일본군이 신라땅에 상륙도못하고 전멸당한다는 결과가나왔습니다 -_-;;)

 

어쩃든 초기의 관계였고 조금지나자 왜와도 다시 활발히 교역을시작했죠

 

아 여기서 신라에 대해 더 말하자면....... 신라 황금기때 서라벌(경주맞나;;) 이 세계 4대 도시중 하나였습니다....  국제적도시였으며   아랍인들의 집단거주지도 있다고했습니다 황금이 지천에 굴러다니고.. (후에 마르코폴로가 일본을 지팡구라 칭했는데 ..황금이 굴러다니는 나라라 소계했습니다....아마도 막연히 동쪽끝에있ㄴ는나라라 했으니 이 서라벌을 신라가망한지 오랜후에도 일본이라 잘못 인지한듯)

그리고 이시대쯤에 장보고가 활약하죠 

 

드라마 에서 보면 일단 재목부터가 해신이잖소  당시 당나라 신라 왜 를 잇는 교역로를 벽란도를 통해서 완전히 장악했었고  거대한 무력집단을 운영해서(중앙정부와 별개니까,군벌세력과 같은) 주변의 국제해적단을 싸그리 궤멸시킵니다   당시에 수많은 외국인들이 장보고를 해상왕이라 불렀었죠

 

고려시대부터 일본은 우리와 조공무역을 한걸로 기억합니다...

 

고려중기 몽고의 침략이 있고 우리가  몽고의 부마국(사위의나라) 으로 격하되어 황실의 명칭을 잃어버렸을떄 잠시 일본이 우리와의 조공무역을 폐지한걸로 알고있고요  곧 중국대륙에 원나라를 세운 몽고족이 우리나라 조정에 압력을 가해서 여몽연합군을 조직 일본에 쳐들어갔지만 아시는바와같이 폭풍만나서 1,2차 두번다 재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원정을 포기했죠 ,일본인들이 이 바람을 카미카제(신풍) 이라 부른거 아시죠> 2차대전 자폭특공대도...  

 

제가 얼마전에 어떤 우극성을 띈 만화책을 본적이있는데....거기에 보면 몽고의 칭기즈칸이 일본인이고  그의아들 쿠빌라이<이것도 일본인이래> 가 일본에 쳐들어온이유가 동포의 나라였기때문이었다고   .......뭐 대충 이런 책을 본적이 있는데요 

 

이것도 다 섬나라에 갖혀서 대륙에서 동떨어져있었던 한에대한 표출의 일환이 아니겠습니까?   꿈이나 꿔보자는...

 

 

뭐 어쨋든 이 여몽연합군때문에 일본인들은 이시대에 은근히 우리나라에대해 불만을 가졌는데요 나중에 왜구가 고려말에 극성을 부렸을땐 (얘넨 수도인 개경주변까지 나타났대요...=_=;;,  ,그리고 해적질 수준이 아니라 거의 원정수준이더군요...400척의 배에 5만의 해적단원을 태웠으니<대부분 퇴역군인,장군출신> 거의 전쟁수준이죠,,,)  고려의 계속되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까요...물론 그때 일본이 전국시대여서 자기내 코도 석자였지만 말입니다

 

이때 이 대규모 해적단을 토벌한장수중 하나가 아시듯이 이성계인데.....  야사에 보면 일본장수가 썼던 투구를(마스크수준) 귀의 연결부분 이음줄을 이성계가 화살로 쏴 끊어버리고 가면이 흘러내리자 부하장수들이 면상에 잇따라 쏴 죽여다더군요....    여기서도 우리민족의 신궁의 기질이 보입니다..

 

나중에 조선이 건국되고 태종때 쓰시마섬 정벌이후  계속 쓰시마섬 성주와의 교역은 계속됬고요  (일본본국과는 별로 특별한 교역이 없었던거같습니다)  조선 중반쯤 안용복이란 어부가 울릉도에 건너가서 독도와 울릉도가 우리땅이라는것을 확신시켰던 일도 있습니다

 

후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7년전쟁이 끝난후 도요토미 세롁이 붕괴되고 토쿠가와가 새 지배자로 등극할떄부터 다시 조선과의 조공무역이 시작됬고  이때 조선통신사를 파견했죠

아 이떄 문화재 침탈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불교에 관련된 그림부터시작해서 성리학책  도자기공 등등 어마어마하게 많은것들을 빼앗아갔죠...(도요토미가 침략당시 아예 문화재 침탈부대가지 따로 편성했습니다..)

이떄 도자기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서 도자기를 만들었고 그걸 일본은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을 통해 유럽에 수출해서 어마어마한 금을 벌어들였죠 이걸 밑바탕으로 일본엔 상업이 발전하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합니다....정말 도둑놈들이죠??

 

 

그후 조선말엽까지 잘 지내다가   일본이 개화되어 정한론이 대두되고 매이지유신(명치)이 일어난후 20년후에 강화도조약을 무력으로 맺고 ......깝치기 시작하여........지금에 이른겁니다 -_-...

일제시대엔....일본놈들은.....산천초목 다 뜯어갔고요....심지어 ...흙까지 퍼갔습니다..;;; 농사용, 도자기 재료용....  일본에의해 훼손 , 조작된 문화재와 고대 중세의 문헌들을 꼽자면 끝도없습니다.....일본에의해 우리의 고대사가 얼마나 지독하게 조작되었는지 현재사는 우리는 가늠조차 할수없죠...

 

광복후 사실 우리가 남북한으로 쪼개진것도 반이상은  다 일본책임이고

6.25전쟁특수로 경제성장이 가속화된 일본은 맥아더 정권이 물러간후 패전국이 받아야할 책임조차 별로 지지않고 국제사회로 다시 진출합니다

 

그리고 일본은 80년대에 미국에 이어 제2의 경제대국이 되버리구요....

 

이들의 경제기적(이걸 기적이라 해야하나;;)은 다 그들의 아버지세대의 머리에 든 지식에 의한것이라죠...이걸 구체화시키는 작업밖엔 되지않습니다  재건에 필요한 자본은 6.25전쟁떄....우리의 선조들이 피흘리고있을떄 뒤에서 미국 총알 만들어주면서....-_-

 

 

만약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들이 열심히 일해서 지금의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지 않았던들...

 

우리민족 울분터져서 살맛이 나기나 했겠습니까?  개인적으로 박정희(다까끼마사오 중위)를 좋아하진 않지만 정말 이점에선 참 고마운 작자라 생각하겠습니다

 

 

일본이 경제되국이 되버렸고

 

우리나라와 무역에서 우리나라는항상 적자만 본다해도

 

그리 불행한 상황이라 생각지마십시오

 

수천년간 중국민족과 항쟁해오면서

 

그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그 중국통일제국들과의 항쟁에 의해

 

우리에겐 세계의 어느민족도 견줄수없는 오기와 집념이 생겼습니다

 

지금 역사책을보니....정말 중국만큼 그당시 세계에서 큰 세력은 없었습니다..우리민족은 스스로도 모르는사이에 역사적인 기적을 이루고있었죠... 중국민족의 10/1도 안되는 인구로..

 

지금 우리는 일본을 경쟁상대로 삼고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일본과도 대등하게 겨룰날이 다가올것입니다

 

 

 

 

                                                                 러시아

 

 

러시아와의 본격적인 접촉은 개화 이후입니다 청나라의 파병요청으로 나선정벌에 나가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이후엔 별다른 교류는 없었죠

개화후 러시아는 겨울의 나라기때문에 얼지않은 항구는 정말귀합니다

그래서 한반도는 그들에게 중요했으며 일본의 진출을 막는 방어기지로 활용하려하였죠

조선말기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시해당하자 고종은 러시아 대사관으로 도망쳐 잠시동안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되죠

하지만 일제가 광분하였으며 러시아의 진출을 우려한 영국과 동맹을 맺고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 러시아를 패배시키고 한반도에서 몰아냅니다

러시아는 일제패망후 미국과 더불어 한반도에 주둔하였고 그들때문에 우리나라는 두동강이 나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냉전이 시작되고 6.25사변이후 러시아와는 철저히 외교가 단절되었으나 6.25사변이후 전세계는 냉전의 구도에서 벗어나게 되고 화해의 무드가 생성되었으며 후에  고르바쵸프에의한 개혁 개방 정책후 소련이 자체적인 모순에 의해 붕괴하였으며

한국과 정식 국교를 회복하게 됩니다

지난번 러시아의 승전50주년 기념행사때 한국의 노무현대통령을 바로 옆자리에 앉혀뒀을만큼 한국의 위상은 구한말과 비교할수없을만큼 상승되었습니다...

야스꾸니 참배등 이미지가 망가진 일본의 총리 고이즈미는 5번째줄 뒤끝에 쳐박혀있었습니다 똥씹은 표정으로 ㅋ

 

 

                                                                       미국

 

 

미국은 러시아와 비슷하죠...  다만 흥선대원군시절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우리나라에 쳐들어왔지만 우리의 용감한 선조들이 막아내었고 강화도를 점령약 탈당하긴했지만 흥선대원군이 대대적인 쇄국정책을 취하자 깜짝놀라 자국으로 도망쳐버렸습니다

국교는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 이후 체결되었고 외교권이 일본으로 넘어가고 한국과의 외교는 단절되었으나  후에 임시정부가 미국의 연합군과 합작을 벌여 서울에 진공작전을 펼치려했으나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해버려 무산되버렸죠.. 일제가 패망한후 한반도에 주둔...지금까지 우리의 제1우방으로 주둔하고있습니다만//...

현재 제국주의의 정수를 세계에 보여주고 다니는 예쁘게 볼수만은 없는 나라죠..

어쨋든 우리의 우방인건 확실합니다

 

 

 

 

 

 

쓰느라 힘들었습니다..... 쓰다보니 흥이나서 즐겁게 썼어용 ㅎㅎ

점수주세염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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