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에 대해서...

광개토태왕에 대해서...

작성일 2007.02.23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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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광개토 대왕이라는 표기가 잘목됐다고 그러잖아요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떄는 광개토 대왕이라는걸 이해하지만

 

이제 고등학교 다니면서 국사교과서 확인했더니 ,.,,,

 

여전히 광개토 대왕이네요...

 

언제쯤 광개토 태왕이될까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유적을 지키기 위한 대규모 운동을 하는 건 없나요??

 

저도 그런것 참여하고 싶은데... 그럼 답변 부탁드릴꼐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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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은 후대적 호칭이라고 한다면, 광개토태왕은 그 당시에 쓰인 명칭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나 국사교과서는 후대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파악합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광개토태왕이라는 용어는 학계에서도 다양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광개토왕, 광개토대왕, 광개토태왕 등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리고 대왕과 태왕은 거의 비슷하다고 봐도 됩니다. 서로가 위아래 구분이 되는게 아니지요. 대왕과 태왕이 아래에는 왕이 있습니다. 이는 삼국시대의 여러 문헌자료에서 확인되지요.

 

중국의 고구려 유적을 지킬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다만 그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남한 내에 있는 고구려 유적에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태왕에 대해서는 제가 예전에 쓴 글이 있습니다. 아래에 올려놓겠으니 천천히 읽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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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백과 : 금석문 자료에서 보이는 고구려 태왕의 용례

 

태왕은 고구려 중기 이후의 왕 호칭입니다. 문헌자료는 많지 않지만, 고고학적 자료, 즉 금석문이 여럿 남아 있으므로 이를 뒷받침해주지요. 관련 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광개토태왕릉비문」

17세손(世孫)에 이르러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 18세에 왕위에 올라 칭호를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 하였다.

至十七世孫國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二九登祚號爲永樂大王


태왕은 (百殘主가 저지른) 앞의 잘못을 은혜로서 용서하고 뒤에 순종해 온 그 정성을 기특히 여겼다. 이에 58성 700촌을 획득하고 백잔주(百殘主)의 아우와 대신 10인을 데리고 수도로 개선하였다.

太王恩赦▨迷之愆錄其後順之誠於是得五十八城村七百將殘主弟幷大臣十人旋師還都


태왕(太王)이 은혜롭고 자애로워 신라왕의 충성을 갸륵히 여겨, 신라 사신을 보내면서 (고구려측의) 계책을 (알려주어) 돌아가서 고하게 하였다.

太王恩慈矜其忠誠▨遣使還告以▨計


이 외에도 태왕의 용례는 2건 더 보이나, 제일 처음 언급한 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중복이기에 그냥 생략하였습니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우선 광개토태왕은 태왕이라 불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호태왕이라고 쓰이지 않고 태왕이라고 쓰였다는 점은 광개토태왕이 호태왕이라 불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시 쓰인 단어입니다. 다른 문장에서도 주어가 단순히 太王이라고 나와있다면, 이는 태왕이라 불렸다는 것이지 好太王으로 불렸다는게 아니지요. 그래서 중국에서 광개토태왕을 호태왕이라고 부르는 게 잘못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광개토태왕만 태왕이라고 부른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음 자료에서 보시길 바랍니다. 「광개토태왕릉비문」에서 광개토태왕만 태왕이라고 쓴 것은 비문 전체의 주어가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기 때문입니다.



「광개토태왕호우」

을묘년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 호우 십(十)

乙卯年國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호우총에서 출토된 그릇에 쓰인 글귀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이번에 경주여행을 갔을 때 호우총을 갔었는데... 안습이더군요. 아무튼 여기에는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이라고 쓰여져있습니다. 境이 地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지만, 둘 다 땅을 뜻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요.



「태왕릉출토전명」

원하옵건대 태왕릉(太王陵)이 산처럼 안전하고 뫼처럼 튼튼하소서.

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


태왕릉에서 출토된 돌입니다. 이 돌에 태왕이라는 글자 때문에 태왕릉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의 오해입니다만, 사실 태왕릉은 고국원왕의 무덤입니다. 광개토태왕의 무덤은 바로 장군총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태왕릉이 광개토태왕의 무덤, 그리고 장군총이 장수왕의 무덤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태왕릉의 뒤편에 광개토태왕릉비가 있습니다. 이는 태왕릉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말이며, 비면의 위치에서도 1면이 태왕릉을 등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럼 왜 장군총이 광개토태왕의 무덤인가? 그건 비문과 장군총간의 거리가 직선이며, 비문은 장군총의 앞에 당당히 서 있습니다. 물론 거리는 굉장히 멉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는 가까운 태왕릉이 광개토태왕릉비의 무덤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 기존의 논의에서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제 4면에 있는 수묘인들이지요. 광개토태왕릉비의 제 4면을 보면 수묘인들이 330가, 즉 330호나 됩니다. 이 말은 수묘인들 수만 하더라도 1가를 5명씩 잡는다면 약 1700여명의 수가 됩니다. 이렇게 된다면 이해가 되시는지요? 고대시대의 경우 그보다 더 많은 경우가 많았으니 약 2000명으로 추산한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인원이 바로 어디에 있었을까요? 바로 광개토태왕릉비문과 장군총, 이 사이에 있었으리라 봅니다.


태왕릉의 주인인 고국원왕은 비록 전쟁에서 져서 목이 달아났으나 고구려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왕입니다. 현재의 평가는 몰라도, 당시 고구려에서는 그러한 고국원왕을 어떻게 생각하였을까요? 그리과 광개토태왕은 고구려의 영광을 드높이면서 영토를 확장한 왕입니다. 그러한 광개토태왕을 드높이기 위해서 수묘인들을 데려왔는데... 고구려 귀족들이 이곳을 참배하지 않았을까요? 참배하면서 제일 먼저 고국원왕의 무덤인 태왕릉을 보면서 경건해지고, 그리고 고구려의 영광을 빛낸 광개토태왕비문을 읽으면서 흐뭇해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광개토태왕이 정벌한 땅에서 데려온 포로들, 즉 수묘인들을 돌아다보면서 고구려가 과연 얼마나 강하였는지를 몸소 느꼈을 것이며, 마지막에 장군총에서 광개토태왕을 참배하면서 고구려의 영광을 다시 한 번 되새겼을 것입니다.


이 논의는 이미 학계에서 이루어 진 것이며, 최근에는 태왕릉을 고국원왕의 무덤으로, 장군총을 광개토태왕의 무덤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다만 기존에는 태왕릉이 광개토태왕에서 태왕이라는 말 때문에 그렇게 오해한 것일 뿐이지요.


이로서 고국원왕도 태왕이라 불렸음을 추측 할 수 있습니다. 이렇다면 광개토태왕만 태왕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하지요.



「서봉총출토은합우」

(蓋 內)

연수원년태세재묘삼월중(延壽元年太歲在卯三月中)

태왕경조합우용삼근육량(太王敎造合杅用三斤六兩)

(外 底)

연수원년태세재신(延壽元年太歲在辛)

삼월▨태왕교조합우(三月▨太王敎造合杅)

삼근(三斤)


아주 말이 많은 유물이지요. 그러나 이 유물에서 연수라는 연호가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국에는 연수라는 연호가 없습니다. 즉 고구려나 신라의 연호인데, 신라의 연호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신라가 연호를 처음 쓴 것은 법흥왕 때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진흥왕도 연호를 썼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신묘년은 바로 진흥왕 32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흥왕 32년의 연호는 태창입니다.


이는 결국 앞서 말한 광개토태왕호우와 마찬가지로 이해한다면 고구려의 연호를 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상 영락이 광개토태왕의 연호이고, 이는 광개토태왕릉비문에도 쓰여진 사실이니 연수의 주인공은 장수왕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즉 장수왕 또한 태왕이라 불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고구려 중기의 왕들을 태왕이라 불렀다고 볼 수 있지요.



「모두루묘지명」

之故▨▨▨▨▨▨▨▨

世遭官恩▨▨▨▨罡上

太王之世▨▨▨▨▨


▨世遭官恩恩▨祖之▨

道城民谷民幷領前王▨

育如此遝至國罡上大開

土地好太聖王緣祖父▨


이번 모두루묘지명은 따로 해석본을 올리지 않겠습니다. 사실 해석본이라고 할 만한 게 없지요. 부분부분 망가진 글자들이 많아서 제대로 된 해석이 힘듭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국강상대개토지호태성왕(國罡上大開土地好太聖王)’이라는 이름이 보이지요. 이는 당연히 광개토태왕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여기에서는 호태성왕이라고 쓰여져 있으나, 성왕이라는 명칭 또한 광개토태왕을 드높이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면 태왕이라는 칭호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태왕이라는 칭호 또한 단순히 미칭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광개토태왕 시절 고구려의 정치체계를 보면 강대한 왕권과 5부체계, 그리고 그 아래에 여러 국가들을 아우르면서 간접적으로 나라를 통치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신라와 동부여이지요. 이러한 번국개념을 지니고 있었고, 태왕 아래에 각국의 왕들이 있었기 때문에 황제체계로 보는 것입니다. 이는 중국과 동일한 모양새로, 신라 또한 후에 태왕체계를 보여주며(『화랑세기』나 몇몇 금석문에서는 아예 帝라고 합니다.), 이는 백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에서 백제대왕의 요청으로 태수를 임명해 주는데, 이때 보면 여러 왕들의 이름이 나오지요. 이는 백제 또한 이른바 대왕체계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이미 연구된 사안이며 관련 논문들이 여럿 있으니 한번 찾아보셔도 괜찮을 것입니다.(한국 고대사에서 이런 태왕체계와 대왕체계는 중국의 황제체계와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한국은 고려시대까지 황제국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중원고구려비」

5월 중 고려태왕(高麗太王)의 조왕(祖王)께서 영(令) ... 신라 매금(寐錦)은 세세(世世)토록 형제같이 지내기를 원하여 서로 수천(守天)하려고 동으로 (왔다).

五月中高麗太王祖王令▨新羅寐錦世世爲願如兄如弟上下相和守天東來之


여기에서도 고려태왕이라고 하여 태왕이라는 용어를 쓴 것이 나옵니다. 이 중원고구려비는 장수왕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태왕이라는 용어를 이제 마냥 무시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외에는 고구려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만 신라도 「마운령신라진흥왕순수비문」이나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문」 등을 보면 태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요. 이는 고구려의 영향이기도 하면서 태왕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 말기의 자료는 없거니와, 있다고 하더라도 중국에서 제작한 것이라 여러 칭호에 대한 생략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적어도 고국원왕, 광개토태왕, 장수왕 등이 태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태왕체계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태왕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것을 어느정도 이해하실수 있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11&dir_id=110101&eid=tfmsOyPHv+i4iB9vcHkIlvGr8s0X7gKT&state=R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대왕과 태왕 어떤걸 사용해도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大자나 太자, 얼핏따지면 太자가 더 큰 의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큰 차이는 아닙니다.

 

대왕이나 태왕이나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잘못된 상식이 하나 있는데, 태왕이라는 표현이 중국의 황제라는 표현에 빗대어 만든 고구려인의 정식왕명이라고 하는데, 정식왕명이 아니라 그냥 칭호에 불과합니다.

 

질문추가
그렇지만... 대왕보다는 태왕이 더 낮은 거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우리의 영광을 낮춘건 아닌가요??ㅠㅠㅠ

-> 영광을 낮추다니요, 어차피 우리가 광개토태왕을 영웅으로로 인정한 이상, 영광을 낮춘다고 볼 수는 없지요. 이름석자 새기면 뭐합니까?? 그 분을 진심으로 존경하면

그걸로 족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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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히 설명 해드리죠.

 

태왕이라는 칭호는 고구려 고유의 왕 칭호입니다.

 

뜻은 왕중의 왕이라는 뜻이죠.

 

그래서 고구려의 왕은 왕이 아니고 태왕입니다.

 

예 : 광개토태왕, 장수태왕

 

그리고 예전에 을지문덕의 후손들이 모여서 고구려지키기 운동을 한적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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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때 자신들의 왕을 높여 부르던 명칭입니다.

 

언제부터 썼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광개토왕, 장수왕 등 중기의 왕들은 확실히 태왕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대왕" 이라고 불러오던 것을 폐하고 꼭 "태왕" 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과거의 왕들을 예우하기 위해 그렇게 불러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백제인들은 왕을 어라하, 건길지라고 불렀으니 그것도 존중해 주어야 되는것 아니겠습니까?

 

이 "태왕" 이야기는, 진지하게 주장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많은 경우에는 근본적으로 大 보다 太가 좋아보이기 때문에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공감대가 형성되어, 국민 대다수가 태왕이라고 부르게 된다면 광개토태왕이라 불러 잘못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과서에 그렇게 수록할 것 까지는 아닙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대왕이나 태왕이나 그냥 왕이나 국가 최고 지도자를 나타내기는 마찬 가지입니다.

고구려에선 대왕 혹은 태왕을 국가 최고지도자의 명칭으로 쓴 것으로 보이나 의미는 둘다 중국의 황제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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