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를 우리나라 땅이라고 설득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g...

독도를 우리나라 땅이라고 설득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g...

작성일 2005.06.06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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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부터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고 설득 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재발 답변 부탁바랍니다. 다른 내용 말고요 이 설득내용만 10가지 정도 답변해주시면

 

내공 추가내고까지 합하여 120을 드리니 부탁입니다!!!!!!!! 재발 독도 설득을 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을까요. 재발 부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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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와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근거


독도의 내력은 일찍부터 기록에 오르내린 울릉도와 관련지어 살펴보아야 한다.본토 유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릉도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된 것은 6세기 초 (512) 후였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512)년에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이후 울릉도라는 명칭이 정착됨에 따라 그 부속 도서인 독도로 우산이라는 명칭이 이동하게 되었다.

조선 1432년 (세종 14)에 편찬된 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에서도 "우산, 무릉 두 섬이 (울진)현 정동(正東)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동해 상에 무릉과 우산의 두 섬이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1531년 (중종 26)에 편찬된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 울릉도가 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지리지의 기록을 잇고 있다.1694년 삼척청사 장한상이 울릉도의 300여리 근처에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을 담은 를 펴냈다.

이것은 한국 문헌에 나오는 울릉과 우산(독도) 의 지명은 모두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울릉도와 그 부근에 있던 독도를 우리가 17세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생히 입증하는 것이다. 18세기 에 나온 정상익의 에 이르러서는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되었으며, 조선 후기의 지도첩에는 으레 울릉도 옆에 우산도 또는 자산도를 표기하고 있다. 일본 스스로도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인정한 자료가 줄을 잇는다.

독도는 512년 울릉도와 함께 신라에 귀복되었으며, 고려에서는 행정 구역에 편입시키고 백성을 옮겨살게 하는 등 울릉도와 독도 경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었다. 조선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 '삼봉도', '가산도', '가지도'등으로 불렀다.조선은 한때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모든 섬에 공도정책을 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일본 어민들의 출어가 잦아지자,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 받고 일본 어부의 어로 활동을 금지토록 하였다.1667년 일본인이 편찬한 , 1869년 일본 외무성 고관들이 편찬한 , 1876년 일본 내무성에서 만든 결정서, 1876년 일본 해군성이 작성한 , 1905년 동경박물관에서 펴낸 ,1936년 일본육군참모본부에서 나온 등의 자료 등에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밝혔다.

1899년(광무 3년)에 당시 중등과정 신식교육기관에서 활용됐던 제 1권에 삽입 돼 있는 지도 대한전도에는 울릉도 옆에 '于山'이라는 표기와 함께 섬이 그려져 있으며 좌 측 상단에는 '光武 3년 12월 15일 學部 편집국 刊'이라는 표시가 선명히 적혀져 있다.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독도를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 41조에 의해 독도를 울릉군의 한 부속도서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편입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이 독도를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5년 앞선 것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사실을 뒤엎을 수 있는 귀중한 발견으로 평가된다.'독도'라는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경상 북도에 편입되었고, 2000년 4월 7일을 기점으로 행정구역상 주소를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1~산37로 정하였다.

※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이유

▣일본의 입장


일본 정부가 독도를 일본영토로 편입한 것은 1905년 1월28일. 그로부터 4주 뒤인 2월22일 시마네 현(縣)은 현(縣) 고시40호로 우리의 독도를 「다케시마 」죽도(竹島)로 명명, 오키도사(隱岐島司)의 소관으로 둔다고 공시했다. 그후 독도는 1952년 1월 18일, 대한민국 국무원 고시 제14호로 「인접 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에서 규정하는 해양 경계선은 한˙일 두 나라 사이의 평화가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평화선(Peace Line)'을 규정하였고, 그 뒤 51∼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 협상과정에서 두 나라간의 외교문제로 논쟁대상이 되었으나 그 해결이 뒤로 미뤄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집권 자민당은 최근 선거공약과 정책지침에까지 공공연히 독도 영유권주장을 포함시키는 등 독도문제를 수면 하의 영토문제」에서 「수면 위의 영토분쟁」으로 부상시키고 있다. 일본이 독도 영토편입을 주장하는 근거는 첫번째로, 근세초기 이래 독도는 일본영토였고 영토편입 직전까지 오랫동안 일본이 「실효적 경영」을 했으며 두 번째로, 영토편입 당시 독도는 주인 없는 돌 섬이었으므로 「무주물선점(無主物先占)」을 한 것이라는 두 가지 논리로 집약될 수 있다.

또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를 마무리하기 위해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대일평화조약(Treaty of Peace with Japan)」에 실려있는 제2조 (a)항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그리고 울릉도를 포함하는 "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right), 권원(title)과 청구권(claim)을 포기한다."의 세 섬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우리 나라와 일본은 큰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는 이 세 섬의 한국의 영토에 포함되는 중요한 섬의 예로서 언급된 것이며, 따라서 울릉도에 딸린 섬인 독도는 당연히 한국의 영토에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이 세 섬은 한국 영토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외곽선을 표시하는 섬들이며, 따라서 독도는 한국 영토에서 제외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무성 관료 출신의 관변학자 가와카미 겐조(川上 健三)를 중심으로 다수파를 이루고 있는「고유영토=실효. 메이지(明治)시대에 와서도 오키 도민(島民)들은 울릉도로 가는 길에 죽도(竹島)에서 전복 등 해산물채취에 종사했다. 1898년께 부터는 오로지 강치(물개 비슷한 바다동물)잡이에 전념하게 됐다.

그러자 「강치적 경영론」은 1966년 가와카미가 펴낸 「다케시마(竹島)의 역사지리학적 연구」에 매우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저자가 외무성조사관이었을 때 쓴 이 책은 일본측이 독도영유권을 정당화하는데 인용되는 가장 유력한 문건이다. 독도의 실효적 경영에 관한 가와카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죽도(竹島)의 개발럭嚥동 관해서는 1618년에 오타니(大谷)레ザ粲タ(村川) 양인이 막부정부로부터 울릉도로 가는 도항권을 얻어 이 섬의 개발에 종사했고 울릉도를 오가는 길에 지금의 竹島에 들러 어획을 했다. 이에 관한 고문서는 많다. 또한 이 섬의 경영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1696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확한 지도」도 있다.

강치잡이에 나서는 사람이 급속히 늘어나 강치가 절멸위기에 처하게 됐기 때문에 1904년 9월 나카이(中井 養三郞)가 독도의 영토편입렝鍛釉 요청하게 됐다』「국사대사전(國史大辭典)」제9권「죽도(竹島)」항; 길천홍문관(吉川弘文館) 1988년간) 이는 그 자신이 집필한 독도연구서의 핵심적 내용을 일반인이 알기 쉽게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일본측은 울릉도가 조선조의「공도정책(空島政策)」으로 4백50년 동안 무인화해 있는 사이에 오타니(大谷)등이 울릉도를 「발견」, 그곳에서 벌목에 종사하면서 독도에서 어로활동을 한 것을 중시한다. 가와카미와 같은 「실효적 경영론자」들은 수 백년 동안 비어있던 울릉도로 본토의 한국인들이 직접 나가서 개발에 손을 댄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따라서 더 멀리 떨어진 독도로 나가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다는 주장이다.

이상이 일본측 독도영유권주장의 주요핵심이다. 이를 철저하게 논박하고 제압하기 위해서는 현재 확보하고 있는 우리측의 자료와 사료를 한층 더 보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토문제는 가장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그것이 일본측에서 제기될 때 감정폭발이 먼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감정을 진정시키면서 일본을 침묵케 하는 길을 찾는 것은 미래지향적 한렝構喚甕 위해 한국인이 발휘해야할 지혜다.

▣우리의 입장


정부는 독도문제에 관해 「무대응」이 최선책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현재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만큼 일본측의 「시비」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측 입장의 근거는 아래와 같다

▣지정학적 근거


우리 영토인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는 48해리인데, 일본 은기도에서는 이 거리의 약 2배인 82해리이다. 따라서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우리 나라에 포함되어야 한다

▣역사적 근거


1. 독도는 신라시대에 울릉도와 더불어 우산국을 형성하였으며, 우산국은 신라 지증왕 13년 (512년) 신라에 귀순하여 왔다. 그 이후 계속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도 우리 나라의 관리하에 있다.

2. 일본이 1905년 도근현시 40호 행정초지를 취한것은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가 아님을 실증하는 것이다.

▣국제법상 근거


1. 그 지역의 주인이 없어야 한다.
2.영역취득의 국가의사가 있고, 그 의사를 대외적으로 공표 하여야 한다.
3.실효적인 점유가 있어야 한다

▣카이로 선언


포츠담선언 '카이로선언'을 보면 폭력과강요에 의해 취득한 모든 영토를 돌려준다는 구절이 있으며, 일본은 포츠담선언을 통해 카이로선언을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을 선언하였으므로, 폭력과 강요에 의해 빼앗겼던 독도를 일본은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

당시 일본의 폭력성을 증명하는 대표적 예가 '고종강제퇴위'사건이다. 일본은 1905년 그들의 강요로 체결된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다. 이에 대항하여 고종황제가 국가의 자주권회복을 위해 헤이그로 밀사를 파견한자 일본은 이를 빌미로 궁궐밖에 대포를 배치한 채 고종황제를 위협하여 강제 퇴위시켰다

▣국제사회 상황에 따른 우리의 입장


독도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그러나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올 경우 우리도 같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맞대응 하면 국제적으로 독도가 분쟁 수역이라는 인식을 심으려고 하는 일본측의 의도에 말려드는 꼴이 된다. 따라서 소리나지 않게 독도에 대한 실질적 점유를 강화함으로써 일본이 제풀에 지쳐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부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독도에 접안시설 공사를 벌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다.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탈환」하기 위해 당분간 실력행사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이는 한·일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만들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커다란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문제제기는 훗날을 기약하기 위한 「기록용」인 셈이다.

그러나 정부의 「무대응」 전략에도 한계는 있다. 94년 발효된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전세계가 바다의 경계선을 긋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고 한·일양국도 그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 Exlusive Economic Zone)은 그 수역의 주인이 되는 연안국이 그 수역 안에서 돈벌이가 될 만한 모든 경제적인 활동을 배타적(독점적)으로 할 수 있는 수역을 가리킨다.

이 수역은 영해와 공해의 중간에 자리잡는 '제3의 수역' 이다. 이 수역의 성격은 경제 활동 면에서는 영해와 같고, 선박이나 비행기의 통과와 국제 통신 등에 있어서는 공해와 같다. 이 수역의 주인이 되는 연안국이 배타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대강 다음과 같다.

◎생물, 비생물 자원의 탐사와 개발 및 보존과 관리
◎수력, 조력, 풍력 발전을 비롯한 경제적 탐사와 개발
◎인공섬 시설 및 구조물을 설치 운영 하는 권리
◎해양 환경의 보호 보존에 대한 관할권
◎해양에 대한 과학적 조사권

이상과 같은 특성 때문에 이 수역을 '자원 영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수역에서 다른 나라들의 모든 권리가 박탈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들은 이 수역에서 선박 항해 및 비행기상공 비행의 자유와 해저 전선 파이프라인 부설 등의 자유를 지닌다.

앞으로의 협상추이에 따라서는 독도문제가 국제해양법재판소등의 심판대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 정부가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일본과의 영유권 다툼은 피할 수 없게 된다.정부는 이런 상황이 오더라도일본측의 논리를 제압할 수 있는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는 각종 역사적 자료와 지도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참고자료


울릉도에서 뱃길로 3시간 여 소요(군함이나 해경정일때 소요시간)되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라는 행정구역을 가진 독 도. 해발 98m의 동도와 해발 168m의 서도라는 두 개의 주요 섬과 주변의 가제바위, 지네바위, 구멍바위, 미륵바 위 등 각각의 생김새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36개의 암초로 구성된 독도. 250만년 이상 전에 울릉도, 제주도 보다 먼저 형성된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유적이라는 독도.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 정된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의 번식지 등 다양한 그들만의 아름다운 생태계가 형성된 독도

*도대체 가로세로 400m의 이 조그마한 땅덩이에 무엇이 있길래, 한국과 일본은 이리도 오랜 세월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영유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가?

㉮ 독도의 일반적인 경제적 가치.


독도주변 해역은 황금어장이다.독도주변해역이 풍성한 황금어장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북한한류와 남쪽 에서 북상하는 대마난류계의 흐름들이 교차하는 해역인 독도주변해역은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회유성 어족이 풍부 하기 때문에 좋은 어장을 형성한다.

어민들의 주요 수입원이 되는 회유성 어족인 연어, 송어, 대구를 비롯해 명태, 꽁치, 오징어, 상어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오징어잡이 철인 겨울이면 오징어 집어등의 맑은 불빛이 독도 주변 해역의 밤을 하얗게 밝히곤 한다. 또한 해저암초에는 다시마, 미역, 소라, 전복등의 해양동물과 해조류들이 풍성히 자라고 있어 어민들의 주요한 수입원이 되며, 특히 1981년 서울대 식물학과 이인규 교수팀의 조사에 의하면, 독도의 해조식생이 남해안이나 제 주도와 다른 북반구의 아열대지역이나 지중해 식생형으로 볼 수 있기에, 별도의 독립생태계 지역으로 분할할 수 있을 정도로 특유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 독도의 군사적 가치 및 해양 과학적 가치


1905년 러.일전쟁의 최후를 장식한 이른바 '동해의 대해전'에서 독도의 군사적 가치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은 한국령 독도를 일본령 '다케시마'로 개명하며 시마네현 은기도(隱岐島)의 소관으로 1905년 2월 15 일에 일본내무성의 결정으로 독도를 강제적으로 일본령으로 편입하였으며, 1905년 8월 19일에는 독도에 망루를 준 공하였기에, 러시아 함대를 맞아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독도에 고성능 방공레이더 기지를 구축하여 전략적 기지로 관리하고 있으며, 이곳 관측소에서 러시아의 태평양함대와 일본 및 북한 해·공군의 이동상황을 손쉽게 파악하여 동북아 및 국가안보에 필요한 군사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경상북도에 의하면 1998년부터 2001년까지 72억원을 들여 독도 북서쪽 800m 해상에 50평 규모의 철골 구 조물인 해양과학기지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대구매일신문.98년 12월 4일자) 이 독도 해양과학기지를 통해 독도주변해역의 해양상태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여 기상예보모델의 초기값 중 해양상태를 나타내는 값을 보다 정확하게 입력시킴으로서 보다 적중률 높은 기상예보가 가능함은 물론, 지구환경 연구, 해양산업활동 지원과 해양오염방지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제 1993년 10월 북한 청진항 동쪽 300km 해상에서 러시아가 핵 폐기물을 투기한 행위가 환동해권 국가인 한 국 및 일본을 극도로 자극하였으며, 이후 동해 내에 투기된 오염물질의 이동, 확산, 분해, 해저 침적과정 등을 이 해하고 정확히 예측하는 과학적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동해의 해수 및 물질순환에 관한 연구 3차년도 최종보고 서. 과학기술처. 1997)

㉰ 독도의 지질학적 가치 .. 독도는 세계적인 지질유적


앞서 잠깐 언급되었지만, 독도의 생성연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450만년 전부터 250만년전 사이인 신생대 3기의 플라이오세(Pliocene epoch)기간의 해저 화산 할동에 의해 형성되어졌으며, 이 시기는 울릉도(약 250만 전∼1만년 전)및 제주도(약 120만년 전∼1만년 전)의 생성시기 보다 앞선 시기이다. 생성시기로 따진다면 울릉도, 제주도의 형인 셈이다. 애국가의 표현대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은다면', 독도는 더 이상의 작은 바위섬이 아니고, 높이 2천여m의 거대한 산의 꼭대기라고 한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독도는 동해의 해저로부터 해저의 지각활동에 의해 불쑥 솟구친 용암이 오랜 세월동안 굳 어지면서 생긴 화산성 해산이다. 이러한 독도는 원래 동도,서도가 한덩리인 화산섬이었다. 몇십만년의 세월이 흐르며 바닷물에 의해 침식작용 과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을 거듭하며 원래 부드러운 성질의 돌이 천천이 깍여들어갔다.(파랑에 의한 해식작용) 이 러한 해식작용의 결과로 칼로 깍은듯 날카롭고 가파른 해식애(sea cliff)들이 만들어졌으며, 한편에서는 서도의 북 쪽과 서쪽 해안처럼 파식대지(wave-cut platform:파도에 깍여 만들어진 바닷가 해저의 평탄면) 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지질구조를 갖는 독도는 지질학적으로 큰 중요성을 갖고 있다. 독도는 해저 밑바닥에서 형성된 벼개용 암과 급격한 냉각으로 깨어진 부스러기인 파쇄각력암이 쌓여 올라오다가 해수면 근처에서 폭발적인 분출을 일으켜 물위로 솟다가 대기와 접촉할때 생기는 암석인 조면암, 안산암, 관입암 등으로 구성된 '암석학의 보고'라고 한다. 해저산이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드문 예이며, 또한 오랜세월 동안 파식 및 침강작용에 의해 원래 의 모양을 간직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독도는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유적이라고 한다.

일본이 독도에 관심을 갖는 진짜 이유 - 독도주변 해역에 천연 가스층이 존재한다. 1997년 12월 러시아과학원 소속 무기화학 연구소에서 연구중인 경상대 화학과의 백우현 교수는 연구소장 쿠즈 네초프(Kuznetsov)로부터 '한국의 동해바다 한 지점에 붉은 색으로 하이드레이트 분포 추정지역임을 분명히 표기 하고 있는 지도'를 선물로 받았다.(신동아, 98년 9월호)'하이드레이트'란 메탄이 주성분인 천연가스가 얼음처럼 고체화된 상태로서, 기존 천연가스의 매장량보다 수십배 많은데다가 그 자체가 훌륭한 에너지 자원이면서도 석유자원이 묻혀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시자원'이라고 한다.

98년 5월 백우현 교수가 러시아를 재방문했을 때 '동해에 관련된 하이드레이트의 자세한 정보'를 부탁하자, 쿠즈 네초프 소장은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우리 연구소 규칙상 공개할 수 없는 자료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동해의 독도영유권을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 다지요?』. 신동아는 이 부분의 이야기를 매우 충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이 한국의 영토인 독도를 자기네들 땅이라고 우겨온 중요한 이유가 동해상의 풍부한 해양자원 확 보를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항간의 소문이 근거있는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란다.

현재 하이드레이트의 개발수준은 그 매장량이 막대한데도 개발기술이 초보단계이므로 러시아 만을 제외하고 상 업적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일본은 하이드레이트층에 대한 매우 축척된 탐사자료를 통해 99년 11월에는 난카이 해구에서 시험생산체계에 돌입한다고 한다. 1997년 기준 우리의 원유소비량은 전세계6위이며, 원유 수입량은 세계 4위이며, 에너지의 해외 의존도는 97.8%라고 한다.(신동아 98년 9월호. 1997년 에너지 경제연구원) 이러한 이유로 정부는 1970년부터 30만㎢에 달하는 대륙붕에 7개의 광구를 설정하여 해저탐사를 벌여왔으며, 실제 89년과 93년에는 비록 경제성이 미흡했지만 동해중심해역에서 가스층이 발견되었으며, 최근 98년 7월 27일에 는 울산 남동쪽 50km 해상의 대륙붕에서 이전의 것과 비교 안되게 뛰어난 천연가스층이 발견되었다.

실제 국내 대륙붕 및 인접 중국과 일본의 석유 발견지점을 지도를 보면, 동중국해에서 동북방향으로 울산남동 쪽을 거쳐 독도인근해역을 거쳐 일본 서부연안을 향해 유전지대가 펼쳐진다고 한다. 30만㎢의 광할한 대륙붕에서 단지 30개의 시추공만을 꽂았을 뿐이며(일본은 38만㎢의 대륙붕에서 175개의 시추 공을 꽂았다고 한다), 이중 12개는 외국계회사가 국내에 석유를 팔려면 의무적으로 한반도 대륙붕에서 석유를 탐 사해야 한다는 의무조항 때문에 그나마 형식적으로 시추공을 박았다고 한다.

금번 러시아 과학원의 연구소에서 제공한 동해의 '하이트레이트층' 의 분포추정 지도나 석유발견지도의 경향을 보았을 때 독도주변해역의 해양석유자원의 보유가능성은 매우 명확하다고 하며, 그 경제적인 가치 또한 매우 높다 고 한다독도주변해역의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정부는 분명 상기해야 할 것이며, 결코 독도주변해역의 경제적 가치와 무관하지 않을 일본정부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의미깊게 상기해야 할 필요성이 재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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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증거는 14가지나 있습니다.


1. 독도, 서기 512년부터 한국영토

독도는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에 우산국(于山國)이 신라에 병합될 때부터 한국의 고유영토가 되었습니다.


2.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의 『조선왕국전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시

서기 1737년, 프랑스의 유명한 지리학자 당빌(D'Anville)이 그린 『조선왕국전도』에도 독도(우산도)가 조선왕국 영토로 그려져 있습니다.


3. 일본 고문헌과 일본 고지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기록

1667년의 일본 관찬 고문헌 『은주시청합기』에도 울릉도와 독도옆에 '조선의 것'이라고 글자를 써 넣었습니다.


4. 17세기 말 일본정부,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재확인

1696년 일본정부는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및 독도) 고기잡이를 엄금했습니다.


5. 19세기 일본 메이지 정부 공문서,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확인

일본 외무성의『 일본외교문서』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부속으로 되어있다'라는 실증자료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6. 일본 내무성,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재확인

일본내무성은 시마네현에게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영토이고 일본과는 관계없는 땅임이라고 결정하였습니다.


7. 일본 최고국가기관(태정관),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결정

일본 태정관 또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는 것을 심득(心得, 마음에 익힐 것)할 것'이라는 훈령을 내무성에 내려보냈습니다.


8. 19세기말 대한제국 정부,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정확히 표시  

갑오개혁 후 작성된 근대적 한국 지도에서는 울릉도와 독도를 정확한 위치에 표시하고 한국 영토임을 명백히 하였습니다.


9.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독도를 한국 영토로 세계에 공표

대한제국은 1900년, 독도가 대한제국 영토임을 세계에 공표하였고, 서양 사람들은 독도를 '리앙쿠르 바위섬' 이라고 호칭하였습니다.


10. 일본, 1905년 독도 강제 편입

일본은 1905년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 '다케시마'로 명명하였습니다.


11. 연합국, 1946년 1월 독도를 한국에 반환하는 군령 발표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1945년, 한반도 주변의 제주도·울릉도·독도등을 일본 주권에서 제외하여 한국에 반환 시켰습니다.


12. 연합국의 『구일본 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규정

1950년 연합국은 다시 한번, 독도는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할 영토라고 밝혔습니다.


13. 연합국, 샌프란시스코 '對일본강화조약'에서 독도 누락

미국은 일본의 맹렬한 로비로 인해 '對일본강화조약'에서 독도를 누락하고 말았습니다.


14. 유엔군, 독도를 한국 영토에 포함


1950년 유엔군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하여, 한반도와 함께 방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무리 그들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땅!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숙제인가..?

-설득...? 일본을....?

-설득 필요없어..우리도 독도는 물론 대마도까지 우리땅이라고 주장 해야돼.

먼 옛날 대마도는 우리 선조가 정벌하여 우리한테 꼬박 꼬박 조공(세금)을 바치던 우리의 속지였는데...맘 좋은 조상들이 인사 잘하고 조공 잘바친다고 놔둔거야..

그때 일본 놈들 내쫒고 우리 백성 보내서 살게해야 되는건데....

-현재 일본놈들이 우리가 국력이 저희보다 약하다고 얕잡아보고 지랄하는거야 , 국민들이합심하여국력을 빨리 일본보다 강하게 만들면 그 놈들 찍소리 못해..

 

설득.....?

1)독도가 우리땅이었다는 역사적 자료들을 모아 세계 매스컴에 호소하여 우리의 땅 임을 전 세계인이 알도록 각인시킨다.

2)니네 땅이면 독도에 일본인이 살았던 근거를 제시하라고 한다.(이거 없음..)

3)네티즌들이 세계의 네티즌들과 채팅, 메일, 메세지를 통하여 일본의 검은 영토 주장을 알리고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알린다.

4)앞으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인사들은 우리 애국단체(?)에서 킬러를 보내어 소리없이 제거한다.(확실한 설득방법임, 몇 번 하다보면 그말 쏙 들어감 )

5)전국민들을 상대로 독도에관한 자료 수집을 하여 독도첩을 만들어 전세계 대학 등 유명 도서관에 배포한다.

6)애국 정신으로 맛이간 사람을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할때마다 일본을 향해 욕을 퍼붓고 일본 본토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을 한다.

7)독도가 탐이 나면 니들 갖고 대신 대마도를 달라고 한다.

8)일본의 양심있는 학자, 국민들에게 호소하여 일본 자체에서 독도가 일본땅이 아니라는 주장이 강하게 나오도록 한다.

9)서문 내용인데 국력을 신장시켜 일본보다 강한 강국을 만들면 그런 소리는 자동으로 사라진다.

10)---이건 내가 대통령이 되면 실행시킬 게획인 극비사항인데...

-김정일과 협력하여 독도에 일본 본토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북한제 지대지(地對地) 미사일 50기만 일본에 포문을 향하게 하여 설치해 놓고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할 때마다 한 방씩 쏜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럼 그 넘들 그소리다신 못할껴...

-아마 그 때문에 일본 넘들도 독도를 시방 탐내고 있능겨.....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먼저 일본의 주장의 가장 큰 틀은 조선보다 먼저 근대화되어 세계정세를 먼저 파악하였기 때문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시 서구열강의 정세는 한마디로 먼저 본 놈이 임자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기입니다.
다들 아시는 콜럼부스가 쿠바에 가서 신대륙 발견하고 이게 모두 스페인왕꺼다라고 주장하면 먹히는 시기였다고 간단히 정리해드릴수 있겠네요.
즉 먼저 발견하면 그 나라것이 되는게 서구식 사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백인 아니면 야만족=인간아님=먼저본놈이 주인 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거죠. 이게 제국주의 확장의 주된 사상입니다. 그래서 필리핀도 먼저 본놈이 가져가고 인도네시아도.... 기타 등등 다들 아시는 아시아 나라들은 다 발견한 놈이 임자인 것입니다.
울 나라도 그런 식으로 독도를 어이없게 분쟁지역으로 만든 것입니다. 즉 먼저 발견해서 알리는 것이 주인행세할 수 있다는걸 일본놈들이 안거죠. 즉 원숭이 흉내기를 멋지게 한 겁니다. 아직 백인들이 모르는 은둔의 왕국 조선을 나는 놈이 없어 가져가지 못한거죠. 물론 중국놈이 지들 속국임네하고 종주권을 주장하지만 중국도 백인들 눈엔 중국=야만 이라는 등식이 머리 한구석에 박혀 있었습니다.

일본이 강화도조약 맺을때 1조가 조선은 독립국이다라고 한 말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겁니다. 즉 중국끼 아니로 누구꺼도 아니다. 그러니 우리가 처음 외교를 맺어 발견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 침 먼저 발랐으니 우리끼 될 공산이 높다라는 등식을 먼저 스리슬쩍 써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게 아... 일본이 우릴 알아주는거구나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거죠. 즉 무주공산이니... 내꺼가 될거니 손대지마라는 일종의 백인들에 대한 액션이죠.

그런 이후 일본은 차근차근 우리 주변을 탐색해 나갑니다. 물론 그냥 찝뽕하려니 중국이 아직은 종이호랑이지만 눈을 뜨고 보고있고 거기가 러시아가 침 흘리고 있으니 함부로는 못 건드리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백인 즉 서구의 나라죠. 과거 스페인이 필리핀 찝뽕하듯이 내꺼다라고 하기엔 조금 부담스러웠다 이겁니다.

그러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덜커덕 일본이 이깁니다. 그러자 한순간에 조선은 종주국이 사라져버린거죠. 중국은 일본에게 패전국으로서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한거죠. 이러자 진짜 조선은 독립국이 되는 겁니다. 참 역사적 아이러니....

일본은 이 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이제 무주공산이 되었으니 조선의 모든 것을 자기들이 알리는 겁니다. 머 조선 좋으라 알리는게 아니죠. 즉 백인 느네들이 모르는 조선의 세계를 우리가 알린다 이겁니다. 이건 바로 과거 콜럼부스가 수만년 잘살고 있던 인디언 한테가서 이거 우리꺼다 하는 식이죠. 왜냐.... 먼저 본 놈이 임자가 이겁니다.

일본이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 부르는데 이것도 원래 이렇게 안 부르고 달 게 불렀습니다. 우리는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고 난 후 독도라 불렀지만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서양지도에 뒤비보니 아!!! 이럴수가 라고 외칠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알파벳으로 독도가 표기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프랑스 사람이 이미 저거꺼라고 '리 앙쿠르(Li ancourt)'섬이라고 표기하고 있고, 영국 사람들이 '호넷(Hornet)'섬이라고 표기 해 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프랑스가 아마 먼저 영유권을 의식했던것 같습니다. 일본 당시 자료엔 리 앙쿠르섬이라고 표시해 두었다고 하더군요. 그 표시는 다큐에서 그러던데 그들의 관보에 기입해 놓았다고 하더군요. 증거물는 독도박물관에 문의

그러자 일본은 감히 백인님의 나라가 먼저 찝뽕한 상태에서는 손댈수 없다고 하여 다시 10년의 세월을 기다립니다. 근데 또다시 기적이 일어납니다 1905년 일본 그 원숭이 아시아놈이 세상에 러시아를 이겨버리지 않겠습니까? 아 오마이갓~~~
물론 일본이 러시아를 이긴건 실력이 아닙니다. 다 라이벌 영국이 러시아 골탕 먹이는 바람에 일본이 어부지리를 얻죠. 당시 영국은 러시아랑 독일을 잴로 미워했다고 합니다. 어이없지만 이 세나라 왕들은 모두 사촌들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지네끼리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치고 박고 싸우면 되는데 이걸 아시아에서 까지 그 영향을 미친 겁니다. 이 통에 호박을 집은건 일본이엇습니다. 당시 유럽에는 러시아의 최강의 함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발틱함대였습니다. 정말 영국이 이 함대를 무지무지 삻어했다고 합니다. 언제 지들사는 섬나라에 올까봐서....

근데 일본이 아시아 동쪽에서 열나게 러시아를 두둘겨주자 기특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물심양면 러시아 직이기에 동참헤주죠. 물론 러시아는 모릅니다....
사촌님이 설마 나 안도와주고 아시아 원숭이놈 돕겠냐는 백인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그런데 일본이 엄청 잘 버티더라 이거죠. 그래서 러시아의 차르는 열받아서 무척의 함대를 동아시아에 파견하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가서 직살나게 두둘겨줘라라고 하면서요. 최신의 함대가 일본열도를 박살내려고 달립니다. 아시아로...
지도 보시면 알겠지만.... 발틱은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잇고 울나라는 저 멀고멀고...먼 아시아 끄트머리에 있죠. 당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두가지, 수에즈운하를 통과하거나 아프리카대륙을 돌아 희망봉을 거쳐 오는 것입니다. 불론 요즘 사람들 같으면 북극으로 오지하겠지만 당시의 기술은 북극의 얼음을 통과할 수 없었지요.

자 무적함대가 아시아로 옵니다. 근데 영국은 러시아를 무지 싫어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본을 돕겠다고 동맹까지 체결해줍니다. 오 사랑해요....일본....
영국의 이런 사랑에 힘입어 일본은 무적함대가 출발했다는 정보도 얻고 그들이 행동하는 모든 것을 파악합니다. 동태파악이 절로 되는거죠.
러시아의 함대는 엄청난 금괴를 싣고 폼나게 유럽을 출발하여 지중해로 와서 다시 수에즈로 갑니다. 근데 당시 수에즈는 영국의 소유였습니다. 물론 반은 프랑스꺼였지만.... 영국이 문을 열어주지 않죠. 미친넘들... 내가 니 잘되는꼴 못본다 이겁니다. 그러자 무적의 함대는 하는 수 없이 아프리카를 한바뀌 돕니다. 희망봉을 돌아 열씸히 아시아로 오는거죠. 아주 열씸히....
근데 일본은 놀고 쳐먹으면서 기다립니다. 어서 오시라....

대한해협에 간신히 도착한 무적의 함대는 겨우 한숨을 돌립니다. 정말 몇날이 걸린지 모릅니다. 지구 반을 돌라왔으니.... 글구 극동함대와 조인트하기 위해 연락도 취합니다. 극동함대는 블라디보스톡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 동해에 있는 함대였는데 개전 초기 일본한테 처음 무지 당한터라 무적의 함대를 기다린 겁니다. 그래서 이 악물고 기다렸다 무적의 함대랑 조인트해서 일본놈으 ㄹ박살내려고 기다리죠. 근데... 온다고 이미 지칠대로 지친 무적의 함대는 더 이상 무적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도조가 뭔가 하는 놈이 이순신 장군을 언급한 대한해협에서의 싸움이 결정타 먹여 러시아는 정말 차마 눈뜨고 못볼 참패를 당합니다. 이 전쟁이 바로 러일전쟁입니다. 아시아국가가 처음으로 서국열강을 깨부수었다고 일본놈들이 침마르도록 광고하는 전쟁입니다. 머 지 혼자 한건 아니지요. 당시 열렬한 영국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이었죠. 하여간 러시아는 코피 터졌고... 이 패전으로 나중 혁명까지 일어나서.... 다 아시는 공산화의 길로 걷습니다.

제가 이 긴 이야기를 한 것은 이 러일전쟁으로 독도의 가치를 뼈저리게 느낀 일본이 엄청 발빠르게 독도의 자국화를 추진했단 것입니다. 동북아시아의 바닷길 제패
에 있어 섬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고 이미 무너저 가는 조선을 뒤로하고 1905년 2월22일기로 자기네 시마네현(島根縣) 소속의 영토라고 관보에다 알립니다. 머 그것도 아주 비밀스러운 곳에다 기입히죠. 일종의 극비문서에다...
말은 공고라고 하는데 텔레비에서 보니깐 저거끼리 열람사항으로 되어 있더군요. 아주 궁색한 증거더군요... 헐

한마디로 저거 보는 관보에다 이거 우리꺼다라고 적어놓고.... 지금까지 우려먹는 겁니다. 현청 몇 놈 보는 문서에다 이거 우리꺼다라고 서로 연락문 보듯이 이게저거네 증거물이라고 하더군요. 그 것은 독도박물관 자료에 잇을 겁니다.

그 후는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조선 전체가 덤테기로 날라가는데 하물며 독도 지 혼자 남았겠습니까? 조선 천지 다들 저거껍니다. 독도를 빼 놓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러일전쟁으로 조선은 확실히 일본으 침발림에서 벗어나 손아귀에 들어가버립니다. 그 후는 일본이 조선에 대해 표시하는 것은 모두 영국이나 미국등이 다 인정하죠. 왜냐 둘 다 동맹국이니깐요. 당시 조선은 발견되면 지꺼라는 국제적 개념조차 없었습니다. 강화도조약 맺을때 솔찍히 신헌이란 분이 갔는데 이분은 무관이었고 국제 외교는 커녕... 중국황제에게 보내는 봉헌서 정도 글 빢에 모르는 까막눈이었다는 겁니다. 글자 모른다는 소리가 아니고 글귀의 속뜻을 전혀 몰랐다는 소립니다. 물론 그 분 후손이 이 소리 들으면 열받겠지만 이건 사실입니다.
나중에 조약 해놓고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고 하더군요. 정말....헐

근데 독도 이 작은 섬의 가치를 누가 알았겠습니까?
숙종때 안용복인가 하는 분이 개인적으로 달려가서 외교를 처리했는데 이걸 나랏님이랑 잘 나가는 양반님이 감히 상놈 주제에 지멋데로 일본에 가서 독도가 우리꺼다는 둥 했다고 곤장때리고 귀양보냈다고 하더군요. 그때 독도는 관심없고 상놈이 조정 놔두고 찾아갔다고 조정 무시했다고 조진거라더군요.
이건 일본이 안용복한테 밀리리깐 조정에다 통보해서 항의를 했다더군요. 글자 조정이란 인간들이 그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아마 전하 그놈 발직하오니.... 감히 양반 놔 두고 지가 외교한다고 설쳐.... 머 이런 식이겠죠.

일본편에서 서신다면
1. 과거 서구열강의 제국주의 시절 영토발견에 의한 관례와 그 국제적 인식을 다루시고
2. 1905년 시네마현 일본측 관보가 존재했음을 증거로 듭니다.

근데 가장 중요한 근거는 머니해도 제1조건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임자라는 국제적 인식이었을 겁니다. 관보는 형식입니다 우리가 그많큼 근대화 되어서 극제적 규약에 맞춰 관보를 통해 알렸다는거죠. 그것이 일본의 최대 무기죠. 울나라는 조선때 그런거 없었습니다. 세께화 기준에 맞는 관보는 커녕 형식이 있는지도 모르죠. 그냥 왕토사상에 입각해서 모두 왕꺼다라는 과거 중국적 인식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게 요즘말로 유행하는 관습헌법 아니겠습니까? 모든것이 왕의 소유... 말이 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1. 현재 독도에 한국 군이 주둔하고 있다

 

2.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증거가 없다.

 

3. 신라시대 한국 땅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4. 한국 땅에 훨씬 가깝다 - 울릉도

 

5. 일본은 독도 말고도 괜히 여기 저기 섬들을 집적대고 있다.

 

6. 그 중 일본것이라고 입증된게 하나도 없다.

 

7. 독도에 대해 한국인들이 훨씬 잘 알고 있다.

 

8. 일본인은 독도 문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

 

9. 역사적으로 독도가 일본 정부에 귀속된 적이 없었다.

 

10. 지난 반세기 넘게 한국정부가 직접 관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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