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왜곡 중국측 주장에 대한 우리나라의 반박(내공 30)

고구려사 왜곡 중국측 주장에 대한 우리나라의 반박(내공 30)

작성일 2004.11.01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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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진짜- 급한 문제입니다!

되도록 빨리! 그리고 알맹이만 모아서

답해 주신다면 감사감사!

고구려사 왜곡 중국측 주장에 대한

우리나라 반박 내용을 알았으면 합니다.

"중국의 주장"

1. 귀속 - 중국사

2. 족원 - 중국 민족

3. 건국. 감역 - 중국 군 현의 관할 한반도 북부 - 중국

4. 조공 책봉 - 중국 왕조 예속 (지방정권)

5. 수,당과 전쟁 - 중국 내 통일 전쟁

6. 고구려 유민 - 중국 흡수




위의 것에 맞춰서 답해 주시면 정- 말- 감사하겠구요.

정 안되겠다 하시면,

그냥 다른 중국 주장에 대한 반박도 감사하겠습니다.

혹은 저 안에 속한 주장 일부에 대한 반박두요.

감사합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4. 당시의 조공 책봉의 관계는 중국을 위시한 대부분의 국가들의 관계였습니다.
조공은 실제로는 문화를 배우기 위한 하나의 무역관계였다고 보면 되겠지요..
또한 책봉의 문제는 조선시대에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중국의 나라인가요?

5. 수당 전쟁을 중국내 통일 전쟁으로 본다면 신라의 삼국통일과정에서 신라와 고구려와의 전쟁도 통일 전쟁아닌가요? 이런식의 논리를 편다면 솔직히 지금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하면 이것도 통일전쟁이라고 할수 있단 말이되나요? 또한 수와 당과의 전쟁에서 고구려는 끝까지 영토를 지켜내었고 승리하였습니다.

6. 고구려유민의 흡수는 솔직히 말도 안되는 논리입니다. 고구려 유민이 중국이 좋아서 흡수되었나요.... 그리고 고구려의 대부분의 왕실은 신라에 귀화하였어요

1. 중국사? 이런 무지막지한 놈들 현재의 자신의 영토에 있었던 모든 국가들이 자신들의 역사라고 한다면 과거 소련의 역사에서 소수민족들의 역사는 없다라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소련연방하에 있던 국가들은 현재 자신들의 역사는 없겠네요
아마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집필했던 사가들은 고구려를 자신들의 역사에 넣는다는 것을 오랑캐를 자신의 역사에 넣는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의 역사서에는 그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또한 자신들의 제후국이라고 인식하였더라도 그것은 욕심이나 허영이었습니다. 과연 자신의 나라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는 나라가 어디있습니까?

2. 중국민족이라고 말하는데 솔직히 이건 잘 모르겠네요.... 우리는 분명히 중국놈들하고 계통이 다르긴한데.... 하지만 자기들과 계통이 같다면 모두 자신의 민족 이라고 할수 있나요... 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긴것이 100년밖에 안된다고 하는데 당시에 과연 민족이라는 개념이 있기는 했답니까? 단지 국가의 관념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같은 민족은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면 지금 간도는 분명히 후세에 우리나라의 역사로 기록되어야 할것입니다.
또한 백제를 건설한 것도 고구려 유이민세력이었고 신라를 건설한 것도 고구려 유이민세력이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3. 자신들의 역사에 넣고 말고는 현재의 땅덩어리로 재단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바로 그당시의 국가가 과연 어떠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어느 나라를 계승의식을 가지고 있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고구려는 분명히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국과는 많은 차이를 가진 주체적인 국가이었습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저도 더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더 많이 공부해서 첨가 시키겠습니다. 오늘밤을 세워서라도




밤새웠네요^^

논문중에 좋은 글 있어서 그대로 복사했어요..

東北工程’의 배경과 내용 및 대응방안
-고구려사 연구동향과 문제점을 중심으로-
최광식(고려대)

중국사회과학원 직속 邊疆史地硏究中心에서는 2002년 2월부터 ‘東北邊疆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이하 ‘동북공정’이라 약함)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5년간 추진하고 있다. 중국 동북지방의 역사, 지리, 민족문제 등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학제적으로 다루는 국가적 중점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동북공정’에서 다루는 문제중에서 고구려를 비롯한 고조선과 발해 등 한국고대사와 관련된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어 한국의 정부와 학계, 언론 및 국민들이 초미의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는 중국 당국이 ‘동북공정’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 배경을 알아보고, ‘동북공정’의 내용을 고구려사 연구동향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고구려의 역사적 정체성을 고찰하고, ‘동북공정’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대응방안을 살펴보고자 한자.

1. ‘동북공정’의 배경
중국은 1980년대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내세워 소수민족정책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특히 소수민족들이 모여 사는 신장 위구르 자치주와 운남성 등 국경지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에 중국은 1983년 사회과학원 직속에 국경지방의 역사와 지리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이라는 연구센터를 세운 것이다. 이후 중국은 1989년 동구권이 변화하고, 1991년 소비에트가 해체되면서 국경지방의 소수민족의 민족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이후 동북지방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특히 한국인들이 이 지역에 와서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을 답사하면서 한국역사와 관련된 발언을 할 때 매우 긴장하였으며, 한국인들의 출입을 감시하고 통제하기도 하였다. 한편 중국당국은 조선족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며 조선족들의 정체성에 대해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더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탈북자들이 대거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동북지방의 정체성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때부터 동북지방의 연구기관들을 통하여 동북지방의 역사와 지리 및 민족문제와 관련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 정권으로 보고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보려는 연구결과들이 활발하게 발표되었던 것이다. 필자가 1999년 1학기 북경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고대사를 강의할 때 수강하던 교수들과 대학원생들과 고구려와 발해에 대해 토론을 하며 앞으로 많은 문제가 야기될 것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한국대사관에 이 문제에 대해 대비할 것을 제안한 적이 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북경대 사학과 교수들은 고구려의 역사가 평양 천도 이전에는 중국사이며, 평양 천도 이후에야 한국사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다 2001년 한국 국회에서 재중동포의 법적지위에 대한 특별법이 상정되자 중국 당국은 조선족 문제와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된 문제 등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세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2001년 북한이 고구려의 고분군을 UNESCO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신청하자 국가적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을 기획하고 추진하게된 것으로 보인다. 2002년 가을 한국고대사학회에서는 2002년 12월 {고구려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심포지엄을 열고 그 결과를 {한국고대사학보} 31집(2003년 9월)에 게재하였다.

만약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게 되면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의 역사로 주장하는 명분이 사라질 가능성이 많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방해하고, 2003년 봄 오히려 집안시 주변의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줄 것을 신청한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볼 때 남북통일후의 국경문제를 비롯한 영토문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최광식, [고구려의 역사적 정체성 문제], {중국의 역사왜곡 공개토론회 발표요지},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2003년 10월 31일. 이 토론회에서 여호규교수(한국외국어대)가 ‘고구려사 연구의 한·중 역사인식의 접점과 근거’, 윤휘탁교수(동아대)가 ‘동북공정 프로젝트와 중국의 상황’에 대한 발표를 하였다.
송기호 교수는 향후 신라 이북지역에 대한 중국의 연고권을 주장하는데 그 주요한 목적이 있다고 본다. 송기호, [중국의 한국고대사 빼앗기 공작], {역사비평} 65호, 2003년 겨울호, 역사비평사.
한편 윤휘탁 교수는 남북통일이 동북지구의 조선족에 미칠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보고 있다. 윤휘탁, [현대 중국의 변강·민족인식과 ‘동북공정’], {역사비평} 65호, 2003년 겨울호, 역사비평사.


2. ‘동북공정’의 고구려사 연구동향
1980년대 이래 중국 동북지방의 역사와 지리에 대한 연구성과는 저서가 200여권, 논문은 수천편에 이른다. 연구주제는 동북변경과 지방역사와 관련된 것으로 지방사, 변경민족사, 경계연혁사, 조선이민중국사, 동북과 주변국가 관계사 등에 집중되었다. 중국변강사지중심 홈페이지(www.chinaborderland.com) 참조.

2002년 시작된 국가적 프로젝트 ‘동북공정’은 과거의 연구성과를 총정리하고, 우수한 연구 역량을 집중하여 역사상 의문시되어온 문제, 현재에 있어서 관심이 집중되는 문제, 이론상의 난점을 보이는 문제를 극복하며, 총체적인 연구수준을 비교적 크게 제고시키며, 이를 기초로 하여 계열화시키고, 권위있는 연구성과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포함한 연구류, 번역류, 문서자료의 3대계열로 나누어 연구공작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한 연구내용은 고대 중국 변경에 대한 이론연구, 동북지방사연구, 동북 민속사 연구, 고조선·고구려·발해사 연구, 중조관계연구, 중국 동북지방 변경과 러시아 원동지역의 정치경제 관계사 연구, 동북변경의 사회안정 전략연구, 조선반도의 형세변화와 중국 동북변경의 안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등이다.
한국고대사와 관련된 연구주제를 살펴보면 ‘호태왕비 1580년’, ‘발해국사’, ‘기자와 기자조선 연구’, ‘발해사론’, ‘간명 고구려사’, ‘삼국사기역주 및 연구’, ‘발해이민의 통치와 귀속문제’, ‘압록강 이남의 고구려유지 조사연구’ 등이 있다. 한국고대사와 관련된 번역과제를 살펴보면 ‘조선·한국사학계의 고조선· 부여 연구논저선편’, ‘조·한학계 고구려의 연구문헌’, ‘국외 발해사연구 자료집’, ‘중·조 변경사’ 등이 있다. 이처럼 연구주제와 번역 주제에 있어 한국고대사 관련 주제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동북공정’의 2003년 연구과제는 15개가 공고되어 있는 바 한국고대사와 관련된 주제는 ‘고구려 민족과 국가의 연변’, ‘조선반도 민족·국가의 기원과 발전’, ‘말갈·발해와 동북과 각국·각족 관계사연구’, ‘고구려의 족원과 강역’, ‘발해유지와 현상 조사연구’ 등이 있는데, ‘동북변강지구 사회안정문제 연구’라는 주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지역의 사회안정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을 살펴보면 한국고대사에 대한 연구는 고조선과 고구려 및 발해에 걸쳐있지만 가장 핵심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주제는 고구려로서 전문주제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이 우리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문제인데 고구려를 고대중국의 일개 지방민족정권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고구려정권의 귀속에 대해 중국 학계에 부정확하고 착오적인 견해가 존재하였으나, 이제는 대다수의 학자들이 공인되었다고 정리하고 있다. 그동안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있었으나 국가적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을 통하여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단정하여 공식적 견해로 확정하여 버린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몇 가지 제시를 하고 있으나 사실에 기초하여 볼 때 수긍하기 어려운 궁색한 이야기들이다. 고구려가 중국영역내의 민족이 건립한 지방정권이라는 것, 활동중심에 있어 몇 번의 천도가 있었으나 결코 한사군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것, 고구려가 줄곧 중국역대 중앙왕조와 군신관계를 유지하였고, ‘중국’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 그 관계를 스스로 끊지 않았다는 것, 고구려 멸망 후에 그 주체집단이 한족에 융합되었다는 것 등을 내세워 고구려가 고대중국의 지방 민족 정권이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고구려와 고려 및 조선족은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고구려의 고씨와 고려의 왕씨는 혈연적으로 다르며 시간적으로 250년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역사적 계승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왕조는 한족과 북방민족의 왕조가 번갈아가며 중원을 차지하였으며, 한족의 왕조도 모두가 다른 성씨이므로 역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보아야할 것인가?
2003년 7월 9일부터 13일까지 장춘과 통화에서 ‘제2기 동북변경 역사와 현상 및 고구려 학술토론회’가 개최되었다. 북경 및 동북 3성에서 온 100여명의 전문학자가 회의에 참석하였으며, 대략 7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중심논제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동북변경의 역사와 현상, 다른 하나는 고구려에 대한 문제를 토론하는 것이었다.
이 토론회에서는 현재 중국의 강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민족과 역사상 현재의 강역 내에서 살다가 이제는 이미 소실된 민족 모두가 중화민족을 구성하는 일부분이며, 그들이 역사상 활동하였던 지역과 그들이 건립한 정권의 강역은 모두 중국 역사상 강역을 구성하는 부분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는 신중화주의에 입각한 매우 위험한 발상으로 주변 지역의 국가들과 심각한 갈등과 대립을 빚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古爲今用’과 ‘一事兩用’이라는 원칙에 입각해 고구려의 역사를 평양 천도 이전을 중국의 역사이고 평양천도 이후를 한국의 역사로 주장하였는데,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가 고구려의 역사 모두를 중국의 역사로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 문제가 회의의 중심주제로 수십편의 논문이 발표되어 고구려에 대한 다양한 발표가 있었으나 귀속문제가 여전히 학자들의 초미의 관심주제였다. 여기에 대해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으나 대부분이 고구려가 중국의 고대 변경민족정권으로 인식하였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국가적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이 정치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학술적 공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동북 기타민족에 대한 연구, 중국과 조선의 관계, 조선의 불법입국자에 대한 문제 등을 학술대회에서 함께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을 통하여 볼 때 ‘동북공정’은 단순한 학술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이 짙은 정치적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3. 고구려의 역사적 정체성 문제
{三國志} 卷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제30에는 오환과 선비 및 동이에 대한 기록이 입전되어 있다. 그리고 소위 동이전에는 부여, 고구려, 동옥저, 예, 마한, 진변, 왜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따라서 陳壽는 {삼국지}에서 오환과 선비 및 동이를 삼국사(魏·吳·蜀)가 아닌 다른 민족의 역사로 인식하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록을 가지고 만약 고구려가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한다면 오환과 선비 및 동이 뿐만 아니라 南蠻과 北狄 및 西戎이 모두 중국사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더구나 동이전에 입전되어 있는 고구려와 아울러 부여, 동옥저, 예, 마한, 진한, 변진, 그리고 倭(일본)까지도 중국사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삼국지} 동이전의 기록방식은 중국 사서에 계속 이어졌으며, {周書}의 경우에는 고구려와 백제가 異域列傳에 입전되어 있다. 그리고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부여, 고구려, 예, 마한의 경우 祭天大會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을 주목하여야 한다. 최광식, {고대한국의 국가와 제사}, 1994, 한길사.
북쪽에 위치한 부여와 고구려 및 예와 아울러 남쪽에 위치한 마한의 경우에도 제천대회를 하였다는 것은 남쪽사회와 북쪽사회가 문화적으로 동질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들 사회에서 하늘(天)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은 “제후는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없고 오직 황제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다”는 입장에서 볼 때 제후국이 아닌 다른 독자적인 정치체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천의례를 지낸 고구려와 부여 및 예, 그리고 마한은 중국과 다른 천하관을 가진 독립국가였다는 것이 중국인이 남긴 당시의 기록에서 확인되는 것이다. 광개토왕릉비를 통해서도 고구려가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노태돈, [5세기 금석문에 보이는 고구려인의 천하관], {한국사론} 19, 1988.

한편 사대주의사학자라고 비판을 받는 金富軾이 올린 進三國史記表를 보면 “신라와 고구려 및 백제의 삼국이 정립하여 능히 예로서 중국과 교통한 때문에 범엽의 한서라든가 송기의 당서에 다 그 열전이 있지만 그 사서는 자기 국내에 관한 것을 상세히 하고, 외국에 관한 것은 간략히 하여 자세히 실리지 아니하였고…” 라고 하여 신라와 고구려 및 백제를 포함하여 삼국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으며, 이들 삼국은 중국과 다른 외국이라는 것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 권 50 중 신라본기는 12권, 고구려본기는 10권, 백제본기는 6권으로 편성하여 삼국의 역사를 하나의 역사 체계속에서 인식하여 서술하고 있다. 열전에서도 을지문덕, 을파소, 명림답부, 창조리, 연개소문 등 고구려 인물을 신라와 백제의 인물들과 함께 입전하고 있다. 또한 제후국에서 사용하는 世家라는 표현이 아니라 중국사서에서 사용하는 本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三國遺事}에는 기이 2권에 우리의 역사체계 속에 인식하고 있는 왕조의 조목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고조선, 위만조선, 마한, 2부, 72국, 낙랑국, 북대방, 남대방, 말갈 발해, 이서국, 오가야, 북부여, 동부여, 고구려, 변한 백제, 진한 등이 기록되어 있어 {삼국유사} 찬술 당시이들 국가가 하나의 역사속에 체계화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동부여와 북부여와 아울러 고구려를 졸본부여로 인식하고, 백제의 경우 남부여라고 하여 부여계통의 공통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를 우리 역사속에서 함께 인식한 것은 이승휴의 {帝王韻紀}와 이규보의 {東國李相國集} 동명왕편에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러한 사서를 통하여 우리는 고구려를 신라와 백제와 함께 삼국으로 인식하고 삼국시대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만약 고구려사가 한국사가 아니라면 우리는 삼국시대가 아니라 양국시대로 불러야 할 것이다.
중국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만리장성 이남을 자기의 역사 영역으로 하고 있다. 만리장성을 기준으로 남쪽에는 한족이 자리잡고, 북쪽에는 북방민족이 자리잡고 역사를 영위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북방민족이 만리장성을 넘어 중원을 차지하여 중국의 역사를 주도하기도 하였지만 중국인의 기본적 인식에는 북방민족을 막기 위한 방책이 만리장성인 것이다. 한편 고구려에는 천리장성이 있어 중국과 경계를 하고 당나라의 침입을 막고자 하였던 것이다. 천리장성은 중앙정권과 지방정권 사이를 구별하기 위해 쌓은 것이 아니라 국가(고구려)와 국가(당나라) 사이의 경계를 위해 쌓았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중국의 초급중학 중국역사 교과서 제2권에서는 제1과 ‘繁盛期의 隋朝’에서 고구려에 대한 서술은 없이 지도에 ‘高(句)麗’를 수나라 영역밖에 표시하고 있다. 한편 제4과 ‘一家를 위한 和同’편에서는 발해를 중국사의 일부로 해서 대조영의 건국과 해동성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인민교육출판사역사실편, 초급중학교과서 {중국역사} 제2책, 2001년 11월, 인민교육출판사.
제4장의 제6절 ‘수당의 통일과 다민족국가의 발전’에서는 ‘말갈과 발해’ 편목을 설정하여 발해가 정식으로 당왕조의 판도에 들게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위와 같음
그리고 고등중학 중국고대사 교과서 제3장 ‘봉건국가의 분열과 민족융합’에서는 지도에서 위나라의 영역을 한강 이북까지 표시하여 놓고 있다. 인민교육출판사역사실편, 고급중학교과서 {중국고대사} 제1책, 2001년 12월, 인민교육출판사.

한편 세계역사교과서 제1권의 제10과 ‘동아시아의 봉건국가’에서는 ‘신라의 통일과 조선왕조의 건립’이라는 편목을 설정하고, 고구려와 백제 및 신라를 노예제국가로 보고, 676년에 신라가 한반도의 대부분 지역을 통일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인민교육출판사역사실편, 초급중학교과서 {세계역사} 제1책, 2001년 3월, 인민교육출판사.
세계사교과서에서 고구려를 언급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로 보지 않고, 한국사의 일부로 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중국사 교과서와 세계사 교과서에서 고구려를 서술하는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사에서 발해사를 다룸으로써 발해사를 한국사로 이해하려는 한국의 역사학계의 이해와 다르며, 고구려사의 주체문제를 분명하게 하지 않아 앞으로 논쟁의 소지를 남겨두고 있다. 최광식, [중국에서의 한국사 교육-중등학교 역사교과서를 중심으로], {중국에서의 한국어교육과 교재} 국제학술회의 발표논문집,, 2003년 10월 17-18일, 북경외국어대학.
앞으로 ‘동북공정’에서 이루어진 고구려에 대한 연구결과가 중국의 역사교과서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것을 미연에 방지하여야하고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4. ‘동북공정’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대응방안
‘동북공정’의 고구려사를 중국역사의 일부로 하기 위한 역사왜곡은 일본역사왜곡 교과서 사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역사왜곡사건은 검인정 교과서 중에 하나인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왜곡은 중국의 정부기관이 나서서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훨씬 크다. 더구나 고구려사 뿐만 아니라 발해사와 고조선사까지 왜곡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2,000년 밖에 되지 않으며, 공간적으로 한강 이남으로 국한되게 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먼저 고구려사에 대한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 먼저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와 근거를 확실히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 대한 대응논리를 개발하고 사실을 왜곡한 부분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역사왜곡문제에 대해 장기적으로 대비하기 위하여 중국의 동북지방(만주)에 대한 역사와 지리 및 민족문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냉전체제와 냉전이데올로기 때문에 중국과 1992년에 수교하였고, 2000년에 남과 북의 정상이 6.15 남북공동선언을 하여 남북협력의 시대를 열었다. 여태까지 만주지역에 대한 관심이 저조하였으며, 이에 대한 연구는 일천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연구센터를 설립하여 고대 동북아시아에 관한 역사와 지리 및 민족문제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편 ‘동북공정’이 시작된 직접적 계기이자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북한이 UNESCO에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약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단독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다면 고구려의 역사가 마치 중국의 역사인 것처럼 오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역사는 남과 북 어느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이므로 남북공조로서 고구려의 역사를 지켜낸다면 남북공조의 모범적 사례가 될 것이다.
‘동북공정’이 단순한 학술적 프로젝트가 아니며 우리의 역사주권을 침해하는 정치적 프로젝트이므로 한국 정부는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 정부의 공식적 견해를 밝혀야 한다. 중국의 사회과학원은 국책기관으로서 정부기관이므로 중국의 역사왜곡문제를 대처하기 위해 외교적 채널을 통해 정부의 공식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정부와 학계 및 시민단체가 함께 하는 대책기구를 만들어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대응하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맺 음 말
한국고대사학회는 한국사 관련 17개 학회와 함께 이 문제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정부는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연구센터를 설립하여 이를 지원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중국의 경우 수십억원 규모의 연구비를 책정하고 있으나 우리의 경우 내년예산에 수억원 정도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고 들었다. 중국의 경우 수백명의 연구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우리의 경우 고구려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연구자와 고구려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연구자 모두해도 수십명의 연구자를 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를 비롯한 고조선 및 발해 연구자가 이 문제에 대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이 부분에 대한 예산을 늘리고, 학문후속세대들이 고구려와 발해 및 고조선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중국의 학술적 인해전술과 물량공세에 의한 역사왜곡에 대하여 우리는 국제화와 정보화를 통하여 효과적으로 대응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동북공정’의 내용이 무엇이고,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도 참고할 만한 홈페이지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으니 IT 강국이라는 한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실태와 문제점’에 대한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리고 이 지역의 역사와 지리 및 민족문제에 대해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홈페이지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한편 북한, 중국, 일본, 미국, 유럽 등의 학자들과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고구려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결과물을 영어로 출판하는 국제적 활동을 추진하여야 한다. 물론 고구려뿐만 아니라 고조선 및 발해를 비롯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논저를 영어로 출판하여 국제사회에 알려 인정을 받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일이다. 국민들도 이 문제에 관심들을 가지고 연구자들이 연구를 수행하는데 많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고구려사를 비롯한 우리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우리 역사의 정체성을 올바로 정립하여야 이 문제도 잘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daum 사이트에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에 대한 기사에 300만명 이상이 방문을 한 것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해 국민적 관심은 대단한 것 같다. 민간외교단체 vank는 외국의 인터넷 사이트에 고구려사를 비롯한 한국사에 대해 왜곡을 한 사이트를 찾아 이를 시정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비롯한 한국사 왜곡을 바로잡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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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해서 그러거든요 ㅡㅜ 중국왜곡반박 할 수 있는 자료좀 부탁할게요 ㅡㅜ 고구려사요???? 음........................... 제가 설명방식으로 쓸테니까 님께서 주장하시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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