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는 1894년 동학 농민 봉기를 시초하여
1910년 이후로 항일 무장 봉기가 전국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중 서울진공작전이라던지 청산리 대첩,봉오동 전투 등에 있어
독립군들은 일본군을 효과적으로 무찔렀습니다.
또한 귀천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 의병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신돌석이 있죠.
하지만 국내에서 활동하던 조선인들은 큰 고역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른바 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인하여 수많은 의병장들이 처형당하거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국외의 사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은, 남만주 철도 부설권이 이미 일본에 넘어가고 청 왕조가 멸망하였으며
국민당과 공산당의 갈등도 심화되어 만주의 확고한 지배력을 잃어갔습니다.
당시 만주에 있던 한국 독립군들은 사령부가 여러곳으로 나누어져 있어
한곳으로 힘을 모을 수 있는 응집력이 부족했습니다.
일제에 대한 보복의 대표적인 것은 청산리 전투입니다.
이 전투의 패배로 인해 만주에 살고 있던 간도 이주민을 마구 학살하였습니다.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1940년대가 되면서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독일,이탈리아,일본이
동맹을 맺게 되었습니다.
일단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을 내세워 중국,태평양,남아시아 등을 침략하여
침략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때 미국이 참전하였고 한국인들은 만주에 김원봉을 중심으로 한
한국 광복군이 창설되어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참전으로 일본은 진주만 공습을 하고 이후로 패전을 하자
연합국은 일본에 항복을 요구했습니다.
이미 독일과 이탈리아는 항복하고 소련도 대일본 전투에 참가하게 되어
일본의 입지가 난처했으나 일본 정부는 항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히로시마 육군 기지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무조건 항복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그때 10만의 광복군은 출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손으로 찾을 수 있는 독립이었지만 이것도 운명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 돌아가는 정서에 따라 저절로 독립이 된다고 하지만..
그때 역시 우리가 피해가지 못할 것이 있었을 겁니다.
바로 신탁 통치입니다.....당시 우리는 식민 국가였고 그들의 눈에는
바로잡아야 할 것이 있다고 판단 신탁통치를 강제적으로 해왔을 겁니다.
그리고 공산화된 소련의 진로 또한 지정학적 위치로 가장 중요한 한반도로
잡았겠지요....이것은 우리에게 피할수 없는 운명이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