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한반도 점령을 한 당나라는 각각 안동도호부,
웅진도독부,계림도독부를 세운 후 현지 지배계층을
왕이나 도독으로 임명해서 당나라의 지방으로써 통치했습니다.
그러니까 점령된 사람들의 반발을 고려해서 당나라에서 직접 관리가 파견되는 것이 아닌
구려, 백제, 신라인들에게 일종의 바지사장을 맡긴거죠.
이게 통했던 이유는 당시 당나라는 초강대국이었기에
귀족들은 차라리 당나라에 붙어서 권세를 누리자는 생각이 지배했기때문입니다.
7세기말에 발해가 건국되서 안동도호부가 붕괴되고
당나라는 대동강 이남을 계림도독부에 통치권을 넘기지만 그래도 여전히 계림도독부 즉, 신라는 당나라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죠.
이게 원할하게 된 이유는 당나라지배층이 선비족이었고 신라는 흉노였기에 서로 조상이 중앙아시아 출신이라는 민족적 동질감이 있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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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학자 하야시 다이스케가 자신의 저서 「조선사」에서 신라의 통일로 정의 ... 일제의 ... 식민사학자들은 신라의 반도통일 ... 로 정리 ... 발해의 역사를 한국사의 범주로부터 분리시키려 ... 김부식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왕조에서도 삼국통일이라 ... 표현하지 않았다 ... 신라는 스스로를 당나라의 속국으로 인식하였다."
< [논문]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재검토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