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친일파들은 일본제국이 열도로 다 물러나면서 끈이 떨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이승만에게 충성합니다.
''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이승만 박사님 명령을 받들고 국민을 위해 봉사할테니 제발 저희를 보살펴주십시오 ''
사실 이승만에게 충성하기전에 먼저 일본놈을 섬기며 익힌 접대 기술로
미군이 들어오자 미군을 섬기던게 친일파였습니다.
해방기때만해도 전 한반도에서 좌익이 강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규정되는 이런 야들야들한 좌익이 아니고
지금 평양에 원쑤 미제를 핵으로 샤워시키겠다는 북쪽 형제들 같은 좌익 말입니다.
이승만은 유명세가 있었고 머리도 좋았는데 직접 부릴 수하는 없었습니다.
이승만과 동지적 관계를 맺고 있던 김구같은 경우에는 중국에서 한인 애국단을 운영하고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키면서
김구의 칼이 되어줄 수하가 여럿있었는데
이승만은 미국에 있으면서 외교적 활동에 치중했기에 이승만을 위해 움직여줄 수하, 이승만의 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끈떨어진 친일파를 수하로 맞이하여 애용합니다.
특히 조선인 일제 경찰들을 말입니다.
조선인 일제 경찰들은 일제통치동안 이 한반도 내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독립 세력을 색출하는데 도가 텄는데
그중에 좌익세력이 아주 적극적으로 독립을 이야기했기에 좌익색출에 일가견이 있었고
이승만과 미군정은 애용합니다.
양반이 독립운동 한다하면 임시정부로 상놈이 독립운동한다하면 공산당 한다는게
일제때였습니다
이승만은 아 이 나라가 일본놈들로부터 해방이 됐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일본놈들 견제하고 빨리 발전하겠냐 생각했고
결론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미국과 함께 하는게 답이다 결론 내립니다.
사실 이같은 결론은 아주 예전부터 내렸던거고 이 결론에 따라 상해 임시정부때
국제연맹에 위임 통치해달라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청원넣었다가 욕을 먹기도 했고
대통령 선출 됐는데 하와이서 상해로와 제대로 거주하지 않고 돈도 하와이에서 임시정부로 안보내고
몰래썼다는 이유로 탄핵당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자본주의 중심국가였고 공산당 색채가 가득한 조선인을 그다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승만은 좌익같으면 일단 다 때려잡으며 미국에 점수를 얻습니다.
항일군 대다수가 좌익이었고 해방후에 북쪽에 많이 모였습니다.
북에서는 이승만 못 봐주겠다, 양반 지주놈들 못 봐주겠다, 친일파 못 봐주겠다, 분단 인정 못한다!
그리고 쌀도 전부 남쪽에서 나잖아! 라면서
북쪽에서 많이 나던 금과 철광석 같은걸로다가
소련에게서 무기를 엄청나게 사가지고는
1950년 6월 25일에 38선을 돌파해서 밀고 내려옵니다.
2차대전 이후로 미국이 국제연맹을 대신해서 국제연합을 주도 창설한 상태였고
38선 남쪽에선 유엔의 지도를 받고 대한민국이 출범한 상태였지요.
38선 위에서 인민군이 몰려 내려오자
미국은
'' 아니 저 빨갱이 인민군놈들한테 대한민국이 밀려 없어지면 유엔의 위엄은 땅에 떨어진다. 이번 기회에 새로 출범한 국제기구 유엔의 힘을 확실히 부여주겠다!''
생각하고
미군이 중심이되어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갈구하던 여러 국가의 군대들을 한데 모아다가
유엔군을 만들어서 인민군을 막습니다.
이때 유엔군에 한국군의 군사권까지 이승만은 빠르게 척 이양하면서 완전하게 미국 줄을 잡게되었으니
그때부터 미국의 여러 지원을 받으며 휴전선 남쪽 대한민국은 빠르게 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