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광개토대왕vs백제,신라,가야,일본

고구려 광개토대왕vs백제,신라,가야,일본

작성일 2022.05.05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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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신라 가야 일본이 광개토대왕을 공격하면 광개토대왕을 이길 수 있나요?

중국이 없다는 가정하에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유사하게 그런적이 있었죠.

현재 신라인들이 점유중인 한국사학계에서는 쉬쉬하지만

4세기의 백제는 가야,신라를 복속시켜서 지방정권으로 삼았고 열도에까지 판도를 넓혔던 강국이었습니다.

헌데 복속은 했어도 자치를 인정해주었고 오히려 백제품속에서 발전이 되는 상황이다 보니 백제의 지배체제에 반감을 품은 지역이 있던 반면(신라,대가야등), 백제의 충실한 일부로써 역할을 다한 지역도 있었죠.(금관가야,아라가야,야마토등)

자, 담덕이 남침을 벌이자, 백제는 연패로 이어지다 결국 항복하고 맙니다. 하지만 이후로도 드문드문 항쟁을 이어가는데 이때 신라가 배신하고 구려에 붙어버려요.

신라가 구려에 붙자, 구려의 세력은 남해안을 위협하게 되었고 이에 불안을 느낀 가야는 백제를 대신해서 신라를 응징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죠.

담덕비에 기록된 "왜"의 정체는 가야예요.

일본이 아니라는 거죠. 왜를 일본으로 해석해버리면 일본이 한반도남부를 지배해서 교두보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임나일본부설, 남한경략설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일본에서 직접 신라를 칠까요?

담덕이 신라를 구하기위해 파견된 병력이 5만군이죠?

그럼 신라를 쳐들어간 왜군이 대략 2-3만이라는 소리가 나와요. 왜냐하면 공격군은 방어군보다 2,3배 동원하는 것이 전략의 기본이니까요.

그렇다면 이 2,3만만명을 동원하고 그들을 실어나를 함선 300,400척은 누가 준비했냐는 겁니다.

4세기의 열도는 백제가 세운 야마토가 그나마 나라다운 모습이었고 나머지 수십, 수백개의 소국들은 목책이나 세워서 유지하던 수준이었습니다.

야마토도 상황이 넉넉치 않았고요.

7세기에 가서 사이메이여왕이 백제구하려고 전선 400척에 병력 27000명을 준비할수 있었던 건 야마토가 주변을 평정하고 어느정도 통일을 이룩했기에 가능한 것이었죠. 또 기록에도 남아있고요.

하지만 신라를 침입한 "왜"에 관해서 당대 일본의 역사서는 침묵하고 있죠. 기껏해야 일본이 가야를 지배하고 있었었으니까 신라를 공격한 왜군은 일본군이다같은 한심한 주장도 나오는 것이예요.

구려가 가야=왜군을 신라땅에서 몰아내고 그 기세로

금관가야까지 쳐들어간건 금관가야가 가야=왜의 본거지였기때문이고 담덕비에 기록된 안라인술병(安羅人戍兵)이라는 글은 아라가야사람들이 구려군이 다가오자 무기를 들고 사수했다는 소리입니다.

신라학자들은 戍을 뜬금없이 위로를 했다로 해석하던데

戍은 지킨다는 의미예요.

아라가야는 창원에 비정되는데 구려군이 추격하던 왜는 어디로 사라지고 뜬금없이 금관가야,아라가야와 전쟁을 한다는 말입니까?

결국 왜는 가야라는 소리예요.

구려가 가야를 낮잡아보기위해 라고 한거죠.

(훗날 신라놈들도 그걸 흉내내서 열도로 망명한 백제인들을 왜라고 부르며 경멸합니다.)

정리하자면 백제+가야+소수의 야마토군이 구려의 남침에 맞서 싸우긴했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죠.

ㅡㅡㅡ

동북아 곳곳에 있는 "왜"의 기록

1.한국사가 엉터리인 이유중 하나가 "왜"를 무조건 일본이라고 가르친다는 겁니다.

왜는 한족이 연안에 사는 한민족을 비칭하는 단어였죠. 그것이 점차 고구려가 가야를 가리킬때 썼고 또 이후 신라가 가야,망명백제인을 가리키는 말로 썼죠.

당나라도 열도의 가야세력을 왜라고 했으며 일본(백제계)과 왜(가야계)를 따로 구분했습니다.

"일본은 왜국의 하나로 나라가 태양이 뜨는 곳에 있다하여 일본으로 불렀다. 또는 말하기를 왜국 스스로가 그 이름이 우아하지 못하므로 일본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혹은 이르기를 '일본은 원래 소국이었는데 왜국을 병합하였다'.

『구당서』

각종 중국사서들을 봐도 왜가 열도를 가리키는게 아니라는 걸 알수 있죠.

"낙랑의 바다 한 가운데 왜인들이 있으며, 이들은 나누어져 1백여 국이 있었다."

-한서

낙랑은 발해만 인근, 황해도 인근 두가지 설이 있는 데 어느쪽이든 현재 일본쪽은 아닙니다. 바다 한 가운데라는 소리가 있다하여 섬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뒤에는 이런 글도 붙죠.

"그 후 한나라 군사들이 조선을 정벌하고 이로써 낙랑군과 현도군이 되었다.>>조선은 바다 가운데 있고<<마치 남쪽 오랑캐들의 형상[越之象]을 하고 있지만 북방의 오랑캐의 지역이다."

고조선이 바다 한가운데에 있었던가요?

"주나라 때 천하가 태평하여 월상(越裳)에서는 하얀꿩[白雉]을 헌상하고 왜인들은 활집을 특산물로 바쳤다."

-논형

주나라라면 기원전 11세기입니다. 이때 열도에는 나라는 고사하고 아이누족, 즈치구모족같은 사람들이 원시인처럼 살고 있던 때인데 그 먼 주나라에까지 가서 왜 활집을 바친단 말입니까?

AD 178년 경에 "텡스퀘이[? 단석괴(檀石槐)]가 큰 호수에 물고기가 많은 것을 보았는데 고기를 잡을 줄 아는 자들이 없던 차에 왜인들이 어로에 능한 것을 알고 왜인국을 공격하여 이들을 잡아와 물에 배치했다"

-후한서

어부를 납치하기 위해 그 먼 열도에 군대를 보냈다는 건 말이 안되죠.

이제 "왜"의 정체가 보이시나요?

2. 중국 최초의 지리지『산해경』에 "개나라는 거연 남쪽이고 왜의 북쪽이며 왜는 연나라에 속한다(蓋國在鉅燕南倭北 倭屬燕 : 권 12 해내북경)."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기존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안 되지요. 왜냐하면 왜국은 바다 건너 멀리 있는데 요동반도인 연나라 옆에 있다니요? 세상에 이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 뿐이 아니죠. 『삼국사기』의 기록은 더 이상한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보면 차대왕(次大王)이 왕제(王弟) 시절에 "(132년) 왜산(倭山)에서 사냥했다"는 기록(『三國史記』「高句麗本紀」太祖大王 80年, 94年)이 그것이죠. 당시의 고구려는 압록강 중류를 거점으로 하여 요동으로 진출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던 시기입니다. 그런데 고구려의 귀한 왕자가 왜산에서 사냥을 했다니요? 그렇다면 왜산이라는 곳은 요동이나 요서 지역처럼 들리는데요?

3. 왜는 요동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한반도 남부까지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삼국지』나 『후한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죠.

『삼국지』를 보면, "(변진) 가운데 독로국(瀆盧國)이 왜(倭)와 접해있다(『三國志』東夷傳 弁辰)."고 합니다. 그러면 이 독로국의 위치를 알면 한반도와 관련한 왜국의 위치도 알 수 있겠군요. 독로국은 삼한시대(三韓時代) 변한(弁韓) 12국의 하나로 크게는 두 가지의 설이 있습니다. 먼저 정약용(丁若鏞) 선생은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에서 경상남도 거제도(巨濟島)로 추정하셨고(『我邦疆域考』弁辰別考), 이병도 박사는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東萊) 지역으로 추정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독로국이 어디이든 간에 한반도 경상도 남부 지역에 있었던 사람들도 왜(倭)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후한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또 있습니다.

"한(韓)은 마한(馬韓)·진한(辰韓)·변진(弁辰)의 세 종류가 있다. 마한은 서쪽에 위치하고 북쪽으로는 낙랑이 있고 남쪽으로는 왜(倭)와 접해있다 … 진한은 동쪽에 있고 12개 정도의 나라가 있으며 그 북쪽은 예맥과 접하고 있다. 변진은 진한의 남쪽인데 대략 12개국이 있고 그 남쪽은 왜(倭)와 접하고 있다(韓有三種: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辰. 馬韓在西, 有五十四國, 其北與樂浪, 南與倭接 辰韓在東, 十有二國, 其北與濊貊接. 弁辰在辰韓之南, 亦十有二國, 其南亦與倭接 :『後漢書』『後漢書』卷 85 東夷列傳 第75)."

즉 이제는 전라도 남부 지방도 왜라고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한반도 남부 해안 지역은 모두 왜(倭)라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희근은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目)』(地理考)과 『당서(唐書)』(地理志 高句麗), 『삼국사기』(地理志) 등을 토대로 분석하여 한반도에서 왜의 중심지는 전라남도 나주(羅州)라고 합니다[이희근,『한국사는 없다』(사람과 사람 : 2001) 88~92쪽]. 그러나 나주가 한반도 왜 세력의 전체 중심지라기보다는 전라도 지역의 왜 중심지가 나주라고 보는 편이 타당합니다.

한반도에 국한시켜서만 본다면, 현재 황해의 도서지방과 한반도 남부의 해안 지대에 거주한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 왜(倭)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해안 지방의 우리 민족을 왜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점 제발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한꺼번에 공격하면 이길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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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거 기달렸다 공격하면 간단히 이기는 것도 가능하죠.

지형이 유리하니.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일본 믿었다간 큰코 다쳐요 일본 제외한 나머지 3국이 협력하면 이길 가능성이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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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신라 가야 일본이 광개토대왕을 공격하면 광개토대왕을 이길 수 있나요?

ㅡ 불가능합니다~ 당시에 몽땅다 항복하고 조공받쳤읍니다~ 관리+보호국~

ㅡ 이유

ㅡ 고구려는 철기술이 탁월하여~ 철기병+철기마+로 대국은 점령하고~

ㅡ 소국은 항복하고 조공을 바쳤는데~ 점령국+항복국+왕을 죽이지 않았읍니다

ㅡ 보통은 다 죽이는데~ 고구려는 않죽이고 관리하며 조공을받치게 했읍니다

ㅡ 혹시나 서울 용산에 유물을 전시중으로 방문이나 확인이 가능합니다~

중국이 없다는 가정하에요

ㅡ 본래가 중국은 없읍니다~ 광개토대왕 관리국~속국~

ㅡ 당시에 후연이 있었는데~ 뎀비다가 작쌀나고~ 광개토대왕에게 항복했읍니다

ㅡ 따라서 "고구려 후연"이고~ 조공받침~ 고구려는 왕을 죽이지않고 관리자로 썻읍니다

ㅡ 이런걸 정치철학/이라 부르는데~ 근대~ 대영제국과 미국이 이와 유사합니다..

ㅡ 고구려 전성기 지도를 첨부합니다~

ㅡ 하나더 고구려는 천하제일이란 개념이 있었는데~ 당연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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